10화(5,327자)

마지막 노래

저승사자도 반한 트로트 가수 · 지백솔

능곡 이발관 유리문의 먼지 위에 손자국 하나가 남아 있었다⁠. 오학주는 손자국 위에 다시 손바닥을 대고 문을 밀었다⁠. 열두 해 만에 열리는 문이 경첩에서 끼익 소리를 냈다⁠. 이발소 안에 들어서자 오래된 포마드 냄새가 났다⁠. 냄새는 벽지에도⁠, 가죽 의자에도⁠, 거울 앞 선반의 빈 병에도 배어 있었다⁠.

학주는 걸레를 빨아 의자부터 닦았다⁠. 빨간 가죽이 군데군데 갈라진 이발 의자였다⁠. 닦을 때마다 걸레가 까매졌다⁠. 세 번을 빨아 닦자 가죽에서 윤이 났다⁠. 학주는 의자를 한 바퀴 돌려 보았다⁠. 유압이 끽끽 울며 돌았다⁠.

“⁠앉으시오⁠.⁠”

창가에 서 있던 저승사자가 고개를 저었다⁠.

“⁠사자는 머리를 깎지 않는다고 했소⁠.⁠”

“⁠깎자는 게 아니오⁠. 빗기만 하겠소⁠. 덤으로 사는 사람 청이오⁠.⁠”

저승사자가 한참 서 있다가 의자에 앉았다⁠. 앉는 몸짓이 서툴렀다⁠. 쉰여섯 해 동안 남의 의자 옆에만 서 있던 사람의 몸짓이었다⁠. 학주가 거울 앞 선반에서 빗을 집었다⁠. 거울에는 학주만 비쳤다⁠. 빈 의자 위로 빗을 든 학주의 손이 허공을 빗질하는 모양이었다⁠.

“⁠갓 좀 벗으시오⁠.⁠”

저승사자가 갓 끈을 풀었다⁠. 갓을 두 손으로 받쳐 무릎에 내려놓았다⁠. 갓 아래에서 검은 머리가 나왔다⁠. 포마드를 발라 단정하게 옆으로 넘긴 머리였다⁠. 쉰여섯 해 동안 한 올도 흐트러지지 않은 머리⁠.

학주가 휘파람을 불었다⁠. 빗을 머리에 대 보다가 손을 멈췄다⁠.

“⁠이거 빗으면 흐트러지겠소⁠.⁠”

“⁠흐트러져도 되오⁠. 쉰여섯 해 아무도 손대지 않았소⁠.⁠”

학주가 조심스럽게 빗살을 넣었다⁠. 포마드가 굳어 빗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학주는 뜨거운 물수건을 만들어 저승사자의 머리에 얹었다⁠. 김이 올라갔다⁠. 저승사자의 몸에서는 김이 나지 않는데⁠, 물수건에서는 김이 났다⁠. 학주가 물수건 위를 손바닥으로 지그시 눌렀다⁠.

“⁠이발소 법이오⁠. 굳은 머리는 데워서 푸는 거요⁠. 사람 마음도 그렇고⁠.⁠”

저승사자가 눈을 감았다⁠. 한참 뒤 학주가 물수건을 걷고 빗질을 시작했다⁠.

“⁠악단 머리구먼⁠. 칠십 년대 초⁠.⁠”

“⁠1971년 가을이오⁠. 무대에 오르기 전에 단원들끼리 서로 발라 주었소⁠.⁠”

“⁠어디 무대였소⁠?⁠”

“⁠단양 장터였소⁠. 가는 길에 버스가 고개에서 굴렀소⁠. 무대에는 못 올랐소⁠.⁠”

학주의 빗질이 잠깐 멈췄다가 다시 움직였다⁠. 빗살이 머리카락 사이를 지나가는 소리가 사각사각 났다⁠. 이발소에서 오래 들어 온 소리였다⁠.

“⁠나는 언제요⁠?⁠”

학주가 빗질을 하며 물었다⁠. 거울 속의 학주는 담담했다⁠. 저승사자는 눈을 감고 대답했다⁠.

“⁠준결승 밤이오⁠. 아홉 시 삼십오 분⁠.⁠”

빗이 한 번 더 지나갔다⁠.

“⁠가수 양반 순서는⁠?⁠”

“⁠아홉 시 반이오⁠. 생방송이오⁠.⁠”

학주가 빗을 내려놓고 거울 너머 빈 의자를 오래 보았다⁠. 그러다 웃었다⁠. 이발소를 닫던 해에도 이렇게 웃었다⁠.

“⁠하필이면⁠.⁠”

“⁠하필이면이오⁠.⁠”

“⁠갓 선생⁠. 하나만 더 물읍시다⁠. 가는 사람은 뭘 가져가오⁠? 노잣돈은 사잣밥에 있으니 알고⁠, 그 말고⁠.⁠”

저승사자가 눈을 떴다⁠.

“⁠넋은 마지막으로 들은 노래를 가져가오⁠. 저승 강을 건너는 동안 그 노래만 귀에 남소⁠. 그래서 다들 마지막 노래를 고르려 하오⁠. 고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소⁠.⁠”

“⁠당신은 무슨 노래를 가져갔소⁠?⁠”

저승사자가 갓을 다시 썼다⁠. 끈을 매는 손이 느렸다⁠.

“⁠그건 나중에 말하겠소⁠.⁠”

학주가 빗을 가죽 주머니에 넣었다⁠. 주머니를 닫는 손이 단단했다⁠.

“⁠나는 가수 양반 노래를 가져가고 싶소⁠. 「⁠곱빼기 인생⁠」 할멈도 그 노래를 좋아했소⁠. 가면 할멈한테 들려줘야 하오⁠.⁠”

“⁠가수 양반이 생으로 부르면 내 부름이 덮이오⁠.⁠”

“⁠알고 있소⁠.⁠”

학주가 이발소 창문을 열었다⁠. 시장 골목의 소리가 들어왔다⁠. 생선 장수의 호객⁠, 자전거 방울⁠, 어디선가 틀어 놓은 라디오 트로트⁠. 학주는 창틀에 손을 얹고 골목 소리를 오래 들었다⁠.

“⁠그러니까 방법을 찾아야지⁠. 이발사는 가위가 안 들면 빗으로라도 머리를 만드오⁠.⁠”

*

말희가 학주의 때를 들은 것은 같은 날 저녁⁠, 능곡 경로당 마루에서였다⁠. 학주가 직접 말했다⁠. 하모니카 동아리가 연습을 마치고 돌아간 뒤⁠, 마루에는 둘과 기둥 옆의 저승사자만 남아 있었다⁠.

말희는 한참 말을 하지 못했다⁠. 은순이를 쥔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마룻바닥의 나뭇결만 보았다⁠.

“⁠준결승 안 나갈게예⁠.⁠”

“⁠무슨 소리요⁠?⁠”

“⁠어르신 그날 밤 내가 옆에 있을게예⁠. 노래 안 하고⁠. 손잡고 있을게예⁠.⁠”

학주가 고개를 저었다⁠.

“⁠안 되오⁠.⁠”

“⁠아니믄 옆에서 노래할게예⁠. 우리 남편처럼⁠. 그라믄 어르신 또 덤이다⁠. 덤을 한 번 더 받으믄 되잖아예⁠.⁠”

“⁠그건 더 안 되오⁠.⁠”

학주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단단해졌다⁠. 이발소 의자 뒤에서 손님에게 머리를 숙이라고 할 때의 목소리였다⁠.

“⁠덤은 한 번이면 족하오⁠. 두 번 받으면 욕심이오⁠. 내가 욕심부리면 갓 선생이 감찰한테 또 불려 가고⁠, 당신은 바깥양반 하나로도 모자라 나까지 매달고 노래해야 하오⁠. 나는 당신 목에 매달리는 혹이 되기 싫소⁠.⁠”

“⁠혹이 아이라예⁠.⁠”

“⁠그리고 무대를 빼면⁠, 나 안 가겠소⁠. 떠돌아 버릴 거요⁠. 당신 무대 빼게 만든 늙은이로 저승 가기 싫소⁠.⁠”

말희의 입술이 떨렸다⁠. 진한 빨간 립스틱이 아랫입술 가운데만 조금 벗겨져 있었다⁠. 학주가 손수건을 꺼내 말희에게 내밀었다⁠. 이발소에서 쓰던 하얀 수건이었다⁠. 「⁠능곡 이발관⁠」이 수놓여 있었다⁠.

“⁠울지 마시오⁠. 립스틱 번지오⁠.⁠”

“⁠안 웁니더⁠.⁠”

말희는 수건으로 코를 풀었다⁠. 학주가 질색을 하며 웃었다⁠. 기둥 옆의 저승사자가 고개를 돌렸다⁠.

*

다음 날 오후⁠, 오학주는 지팡이를 짚고 일산 별관 지하 연습실 복도를 걸었다⁠. 말희에게는 말하지 않고 온 길이었다⁠. 「⁠차온⁠」 이름표가 붙은 문을 두드리자 주옥배가 문을 열었다⁠.

“⁠어르신이 여기 웬일이유⁠?⁠”

“⁠반주자 양반한테 부탁이 있어 왔소⁠.⁠”

연습실 안에는 차온이 없었다⁠. 옥배 혼자 전자 오르간 앞에 앉아 악보에 연필로 무언가를 고치고 있었다⁠. 학주는 오르간 옆 의자에 앉아 숨을 골랐다⁠.

“⁠준결승 밤에 가수 양반 반주 좀 해 주시오⁠. 한 곡만⁠.⁠”

옥배가 연필을 내려놓았다⁠.

“⁠계약이 있슈⁠. 한 사람만 맡기로⁠.⁠”

“⁠알고 있소⁠. 그래도 부탁하오⁠.⁠”

“⁠왜 그러신대유⁠?⁠”

학주는 대답하지 않고 옥배의 손을 보았다⁠. 오르간 건반 위에 놓인 길쭉한 손가락⁠, 손등의 흉터⁠.

“⁠내 그날 갈 거요⁠. 아홉 시 삼십오 분에⁠.⁠”

옥배가 무슨 말인지 몰라 학주를 보았다⁠. 학주는 웃었다⁠.

“⁠이발사가 오래 하면 사람 머리만 보고도 언제 다시 올지 아오⁠. 내 머리는 이제 다시 안 오오⁠. 가기 전에 가수 양반이 반주자 양반 손으로 노래하는 걸 한 번 보고 싶소⁠. 삼십 년 동안 장터에서 그랬듯이⁠.⁠”

옥배가 악보를 내려다보았다⁠. 연필 자국이 많았다⁠. 고친 자리를 또 고친 자국⁠. 옥배의 입이 몇 번 열렸다 닫혔다⁠.

“⁠PD한테 물어보겄슈⁠.⁠”

“⁠물어보지 말고 그냥 치시오⁠.⁠”

“⁠그류⁠.⁠”

옥배의 그류는 대답일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었다⁠. 학주는 대답으로 듣기로 했다⁠.

*

같은 주 어느 밤 열 시⁠, 말희는 솔미요양병원 병실에서 노래를 마치고 우갑에게 학주의 이야기를 했다⁠. 우갑은 화투패를 담요 위에 엎어 두고 들었다⁠. 보호자 의자의 저승사자는 이 이야기가 시작되자 창가로 자리를 옮겼다⁠.

“⁠학주 형님이 먼저 가시는구나⁠.⁠”

“⁠먼저라 카지 마라⁠.⁠”

“⁠먼저 맞잖아⁠. 나는 백중이고 형님은 준결승이니까⁠.⁠”

우갑은 날짜를 따지는 사회자처럼 손가락을 꼽았다⁠. 꼽다가 손가락이 떨려서 그만두었다⁠.

“⁠말희야⁠, 형님한테 내 안부 좀 전해 줘⁠. 먼저 가서 자리 좀 잡아 두라고⁠. 저승에도 장터가 있으면 앞자리로⁠.⁠”

“⁠그런 소리 할 거믄 자라⁠.⁠”

“⁠진짜야⁠. 형님 이발사였다며⁠. 저승 가서 내 머리도 해 달라고 해⁠. 나 마지막에 머리 엉망이면 사회자 체면이 안 서⁠.⁠”

창가의 저승사자가 헛기침을 했다⁠.

“⁠저승에서는 머리를 깎지 않소⁠.⁠”

“⁠그럼 빗기라도 해 달라 그래⁠.⁠”

저승사자가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이발소 의자에 앉아 빗질을 받은 사람이 할 말이 없었다⁠. 말희는 둘을 번갈아 보았다⁠. 저승사자의 머리가 오늘따라 갓 아래에서 덜 반듯했다⁠. 옆으로 넘긴 머리 한 가닥이 귀 위로 내려와 있었다⁠.

“⁠당신 머리 누가 만졌노⁠?⁠”

“⁠이발사 어른이오⁠.⁠”

우갑이 배를 잡고 웃다가 아파서 멈췄다⁠. 멈추고도 웃었다⁠.

*

준결승 생방송 순서표가 나온 날 밤⁠, 말희는 별관 조정실로 염유준을 찾아갔다⁠. 순서표에는 「⁠21⁠:30 금말희⁠」라고 적혀 있었다⁠.

“⁠순서 좀 바꿔 줄 수 있나⁠?⁠”

“⁠안 돼요⁠. 준결승은 지난주 방송에서 추첨으로 정했어요⁠. 시청자들이 다 봤어요⁠.⁠”

“⁠십 분만 미뤄도 된다⁠.⁠”

“⁠선생님⁠, 지난 시즌에 다른 방송국이 생방송 순서를 몰래 바꿨다가 조작 의혹으로 프로그램이 통째로 날아갔어요⁠. PD는 징계받았고요⁠. 저희도 그렇게 되면 제작진 서른 명이 같이 날아가요⁠.⁠”

유준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말희는 유준의 말이 맞다는 것을 알았다⁠. 맞는 말에는 대꾸할 데가 없었다⁠.

“⁠왜 그러세요⁠? 무슨 일 있으세요⁠?⁠”

말희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홉 시 삼십오 분에 한 사람이 가야 하고⁠, 학주가 제대로 가려면 내가 아홉 시 반에 노래하면 안 된다⁠. 이 말을 PD에게 할 수는 없었다⁠.

“⁠없다⁠. 잘 있거라⁠.⁠”

*

이틀 뒤 밤⁠, 능곡 경로당 마루에 불이 하나만 켜져 있었다⁠. 학주가 휴대전화를 들고 앉아 있었다⁠. 손자에게 배웠다는 녹음 앱이 화면에 떠 있었다⁠. 빨간 동그라미 하나⁠. 이번에는 신고 단추가 아니었다⁠.

“⁠생으로는 못 들으니까 녹음으로 가져가겠소⁠. 갓 선생 말이 녹음은 부름을 못 덮는다 하오⁠. 그날 밤 나는 이걸 들으면서 가겠소⁠.⁠”

말희는 휴대전화를 받아 들었다⁠. 화면 속 빨간 동그라미가 숨을 쉬듯 깜빡였다⁠.

“⁠반주는⁠?⁠”

“⁠반주는 없소⁠. 반주자 양반은 그날 무대에서 칠 거요⁠. 이건 나 혼자 들을 거니까 반주 없이 해 주시오⁠.⁠”

학주가 기둥을 보았다⁠.

“⁠갓 선생⁠, 녹음으로 가져가도 할멈한테 들려줄 수 있소⁠?⁠”

“⁠마지막으로 들은 소리가 귀에 남소⁠. 녹음이든 생이든 귀는 가리지 않소⁠. 다만 녹음에는 부르는 사람의 숨이 없소⁠.⁠”

“⁠숨이야 내가 쉬면 되지⁠. 이발사는 손님 숨소리 듣고 가위질하오⁠. 남의 숨은 내가 채우겠소⁠.⁠”

말희는 학주의 말에서 무언가를 알아챘지만 묻지 않았다⁠. 기둥 옆의 저승사자가 팔짱을 풀고 두 손을 도포 안에 넣었다⁠. 진지할 때의 자세였다⁠.

말희는 은순이를 내려놓았다⁠. 학주의 휴대전화를 입 가까이 들었다⁠. 녹음 단추를 눌렀다⁠. 빨간 동그라미가 네모로 바뀌었다⁠.

첫 소절을 내기 전에 말희는 숨을 들이켰다⁠. 일찍 쉬지 않았다⁠. 저승사자가 늘 지적하던 자리보다 반 박자 늦게⁠, 끝까지 들이켰다⁠.

“⁠「⁠곱빼기 인생⁠」 능곡 이발관 오학주 어르신께⁠.⁠”

학주가 눈을 감았다⁠. 손가락이 무릎 위에서 2박자를 짚었다⁠. 경로당 마루 한가운데 불빛 하나 아래서⁠, 말희는 1절부터 3절까지 다 불렀다⁠. 휴대전화 화면의 숫자가 사 분을 넘어갔다⁠.

10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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