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418자)
열 시
저승사자도 반한 트로트 가수 · 지백솔
나흘 동안 말희는 밤 열 시마다 병실에서 노래했다. 영상 통화가 아니라 침대 옆 보호자 의자에 앉아서. 저승사자는 창가에 서서 종을 쥐고 기다렸고, 열 시가 되면 종이 울렸고, 말희가 노래를 시작하면 저승사자는 종을 놓았다. 노래가 끝나면 둘은 화투를 쳤다. 우갑은 이기면 사회자 목소리로 판을 정리했고, 지면 배가 아프다며 판을 엎었다.
닷새째 밤, 우갑은 화투패를 쥐지 못했다. 손가락이 패를 잡을 때마다 미끄러졌다. 아홉 시 반에 간호사가 진통제를 한 번 더 넣었다. 약이 들어가도 우갑의 이마에는 땀이 맺혔다. 이를 악문 턱이 떨렸다.
“때가 지난 몸은 이렇소.”
창가의 저승사자가 말했다. 목소리에 나무람은 없었다. 말희는 우갑의 이마를 수건으로 닦았다. 닦으면 땀이 다시 났다.
열 시 오 분 전, 말희는 마음을 정했다. 우갑의 손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입을 다물었다. 종이 울리면 노래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석 달 동안 붙잡아 둔 사람을 오늘은 놓아 줄 생각이었다. 은순이는 가방 안에 넣고 지퍼까지 잠갔다.
우갑이 눈을 떴다. 말희의 다문 입을 보았다. 서른 해를 같이 산 사람은 다문 입 모양만으로도 무슨 생각인지 알았다.
“안 부를 거야?”
“오늘은 쉬자.”
“쉬지 마.”
우갑이 손을 빼려 했다. 힘이 없어서 빠지지 않았다.
“말희야. 결승까지만 불러 줘. 그 뒤엔 내가 알아서 갈게.”
“당신 아프잖아. 내가 아픈 거 보고 있으라꼬?”
“아픈 건 내가 하고, 보는 건 당신이 해. 그게 공평해.”
“그기 와 공평하노!”
말희의 목소리가 커졌다. 옆 침대 할아버지가 몸을 뒤척였다. 말희는 목소리를 낮췄다. 낮추니 목이 메었다.
“삼십 년 동안 당신이 나를 무대에 올렸다. 이번엔 내가 당신 보내 주께. 그게 맞다.”
“아니야.”
우갑이 고개를 저었다. 사회자 목소리가 아니었다. 아주 오래전, 영천 장터 국밥집에서 국밥 세 그릇을 사며 사과하던 청년의 목소리였다.
“나 사회자잖아. 사회자는 가수가 노래 끝내기 전에 무대에서 안 내려가. 당신 결승 무대 끝나면 그때 내가 마이크 놓고 내려갈게. 그게 맞아.”
복도에서 시계가 열 시를 쳤다. 종이 울렸다. 저승사자가 창가에서 한 걸음 걸어 나왔다.
말희는 가방 지퍼를 열지 않았다. 은순이 없이, 맨목소리로 첫 소절을 냈다. 목이 메어서 첫 소리가 갈라졌다. 저승사자의 걸음이 멈췄다. 우갑이 이를 악문 채 웃었다. 웃는 얼굴에 땀이 흘렀다.
*
병원 주차장 자판기 앞에서 저승사자가 말희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정 가까운 주차장에는 매미도 울지 않았다. 말희는 자판기에서 캔커피 두 개를 뽑아 하나를 저승사자에게 내밀었다. 저승사자는 받아서 냄새만 맡고 자판기 위에 올려놓았다.
“당신은 와 나를 안 막노? 그냥 내 입을 틀어막으믄 되잖아.”
“사자는 산 사람 몸에 손을 대지 못하오.”
“그라믄 딴 수라도 쓰지. 귀를 막든가.”
“막았소. 처음부터. 노래를 그만두라 했소.”
말희는 캔을 땄다. 칙 소리가 주차장에 울렸다.
“백중 지나믄 우리 남편 떠돈다 캤제. 그라믄 당신은?”
저승사자가 한참 대답하지 않았다. 자판기 불빛이 창백한 얼굴을 파랗게 물들였다.
“맡은 넋을 떠돌게 한 사자는 갓을 벗소. 저승에도 이승에도 들지 못하고, 놓친 넋과 함께 떠도오. 넋이 어디로 갈지 다시 정해질 때까지. 그것이 백 년일지 천 년일지는 아무도 모르오.”
말희는 캔을 입에 대다가 내렸다.
“그걸 와 이제 말하노?”
“당신이 물어보지 않았소.”
“물어봤으믄?”
“그래도 노래했을 것이오. 당신은 그런 사람이오.”
저승사자가 갓 끈을 만졌다. 말희는 캔커피를 단숨에 비우고 빈 캔을 손으로 구겼다. 알루미늄이 구겨지는 소리가 날카로웠다.
“그라믄 당신 갓하고 우리 남편이 같은 줄에 묶인 기네.”
“그렇소.”
“결승까지 기다려 줄 수 있나?”
“기다리는 것은 쉰여섯 해 해 온 일이오. 다만 백중 자정은 내가 정한 것이 아니오. 그날 밤 열 시, 종은 마지막으로 울리오. 그때 당신이 노래하고 있으면…….”
저승사자는 말을 맺지 않았다. 자판기 위의 캔커피에 이슬이 맺혔다.
*
본선 1라운드는 생방송이 아니었다. 녹화였다. 녹화 날 아침 말희는 저승사자에게 확인했다. 녹화는 숨이 없어서 아무것도 덮지 못한다고, 녹화장 안의 소리가 닿는 데만 덮는다고. 녹화장에는 아픈 사람이 없었다. 말희는 이 대답에 안도하는 제가 싫었다.
무대에 서기 전, 스튜디오 대형 화면에 말희의 사연 영상이 나왔다. 삼 분이었다. 솔미요양병원 4층 창가 침대, 누런 얼굴의 우갑이 화면 밖 작가를 보며 웃었다.
“우리 마누라 노래 들으면 하루 더 살아요. 진짜예요. 의사가 한 달이라 했는데 석 달 넘겼어요. 다 저 사람 노래 때문이에요.”
방청석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났다. 심사위원 하나가 손수건을 꺼냈다. 영상 속 우갑이 카메라를 보며 엄지를 들었다.
“자, 우리 마누라 금말희! 박수 한번 주십쇼!”
말희는 무대 뒤 어둠 속에서 은순이를 쥐고 서 있었다. 우갑의 말은 하나도 거짓이 아니었다. 거짓이 아니어서 더 무서웠다. 저 말 밑에 깔린 진짜 까닭을 이 스튜디오에서 말희와 객석 맨 뒤의 저승사자만 알았다.
무대에 올라 말희는 노래했다. 이날은 2절까지 다 불렀다. 녹화장 밖으로는 아무것도 덮이지 않았다. 심사위원 점수는 본선 진출자 가운데 둘째였다. 첫째는 차온이었다.
녹화가 끝나고 조정실 앞 복도에서 유준이 말희를 기다렸다. 말희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지나갔다. 유준이 등 뒤에서 말했다.
“점수 보셨죠. 사연 하나에 심사위원 점수가 두 단계 올랐어요.”
말희는 돌아보지 않았다.
“니 말이 맞았다. 그래서 니가 밉다.”
*
같은 밤, 염유준은 일산 백석동 어머니 집 식탁에 앉아 있었다. 어머니가 불러서 왔다. 식탁에는 갈치조림이 놓여 있었다. 유준이 어릴 때 시청률이 잘 나온 날이면 어머니가 끓이던 것이었다. 오늘은 숟가락을 들기 전에 어머니가 리모컨으로 텔레비전을 껐다.
“그 영감님 영상, 꼭 그렇게 내보내야 했니?”
“본인이 원하셨어요.”
“원한다고 다 내보내니? 너는 엄마가 아파 누워서 너 잘되라고 카메라 앞에서 웃으면 그거 내보낼 거야?”
유준은 갈치 가시를 바르다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엄마, 심사위원 점수가 두 단계 올랐어요. 그 영상 없었으면 말희 선생님 오늘 떨어졌어요. 떨어지면 결승 못 가고, 결승 못 가면 그 영감님 소원도 없어요.”
“그래서 잘했다는 거니?”
“잘했다는 게 아니라 필요했다는 거예요.”
어머니가 한참 유준을 보았다. 새벽 시장에서 생선 배를 가르던 눈이었다. 무엇이 썩었고 무엇이 싱싱한지 한눈에 가르던 눈.
“필요한 거랑 해도 되는 거는 다른 거야. 너 어릴 때 내가 그렇게 가르쳤다.”
유준은 대답하지 못했다. 어머니가 갈치 한 토막을 유준의 밥 위에 올려 주었다. 유준은 말없이 밥을 먹었다. 갈치는 짰다. 어릴 때도 짰다.
*
본선 1라운드 방송이 나간 밤, 단톡방 「금씨네 셋」에 채란의 문자가 연달아 올라왔다. 물음표도 느낌표도 없었다. 채란이 정말 화가 났을 때의 문자였다.
「엄마 그거 봤어」 「아빠 얼굴 왜 전국에 나와」 「회사 사람들이 아빠 괜찮냐고 물어」 「나 아빠 그렇게 아픈 거 방송 보고 알았어」
말희는 전화를 걸었다. 채란이 첫 신호에 받았다. 울고 있었다.
“엄마는 알았어? 아빠가 그렇게 말할 거?”
“몰랐다.”
“알았으면 막았어?”
말희는 대답하지 못했다. 막으려 했다. 막지 못했다. 우갑이 저를 팔아 말희를 올렸고, 말희는 우갑 덕에 올라갔다. 어느 것도 딸에게 깔끔하게 말할 수 없었다.
“채란아. 아빠가 하고 싶다 캤다. 아빠 거니까 아빠가 정했다.”
“엄마는 맨날 그래. 아빠가 하자는 거 다 하고, 엄마가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나는? 나는 언제 아빠한테 하고 싶은 거 해?”
채란이 전화를 끊었다. 말희는 꺼진 화면을 오래 보았다. 잠시 뒤 우갑이 단톡방에 곰을 보냈다. 이번 곰은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채란은 곰에게 답하지 않았다. 대신 한 시간 뒤에 짧은 문자를 하나 보냈다.
「주말에 올라갈게 아빠」
*
본선 2라운드를 앞둔 주, 일산 별관 지하 연습실 복도에 피아노 소리가 새어 나왔다. 말희는 걸음을 멈췄다. 반 박자를 기다려 주는 손이었다. 서른 해 동안 등 뒤에서 들은 손이었다.
연습실 문에 「차온」이라는 이름표가 붙어 있었다. 말희는 노크하지 않고 문을 열었다.
전자 오르간 앞에 주옥배가 앉아 있었다. 탑차 짐칸에 있어야 할 오르간이었다. 옥배 옆에 차온이 악보를 들고 서 있었다. 둘이 동시에 말희를 보았다. 옥배의 손이 건반 위에서 멈췄다. 리듬 단추가 혼자 「트로트 2」를 한 마디 쳤다.
“누님…….”
“편곡하나?”
옥배가 고개를 끄덕였다. 차온이 악보를 내리고 한 걸음 물러났다.
“선생님, 제가 부탁드렸어요. PD님한테 말씀드리고요. 영천에서 옥배 선생님이 제 숨 짧다고 하신 거, 차에서 들었어요.”
말희는 차온을 보지 않았다. 옥배만 보았다.
“얼마 받았노?”
“계약금 팔백. 그라고…….”
옥배가 말을 멈췄다가 이었다. 옥배는 한 번에 긴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오늘은 길게 했다.
“자막에 이름이 나온대유. 「편곡 주옥배」 삼십 년 동안 누님 무대 치면서 자막에 이름 한 번 안 나왔슈. 장터 현수막에도 안 나왔슈. 누님 이름 옆에 「반주」라고만 쓰여 있었쥬. 그것도 지워질 때가 많었슈.”
말희는 할 말이 없었다. 옥배의 말은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서른 해 동안 현수막 글씨를 정한 사람은 말희였다.
“누님 무대도 같이 치게 해 달라 했슈. PD가 안 된대유. 한 사람만 맡으래유. 공정하게.”
“그래서 젊은 사람 골랐나?”
“이긴다는 사람 골랐쥬.”
옥배가 고개를 숙였다. 오르간 건반 위에 옥배의 손이 얹혀 있었다. 손등에 서른 해 동안 탑차 옆판을 올리고 내리다 생긴 흉터가 있었다. 말희는 흉터가 어디서 생겼는지 알았다. 1999년 홍성 장터에서 비 오는 날 옆판 유압이 고장 났을 때였다.
“가라.”
말희가 말했다.
“가서 저 아 숨 길게 만들어라. 내 꺾기로 내를 이기겠다 카는 아다. 그라믄 니 편곡으로 내를 이겨 봐라.”
“누님…….”
“자막에 이름 크게 나오라 캐라. 작게 나오믄 내가 PD한테 따진다.”
말희는 문을 닫았다. 문 너머에서 한참 아무 소리도 나지 않다가, 반 박자를 기다리는 손이 다시 건반을 눌렀다.
*
별관 주차장에서 말희는 탑차 옆판을 올렸다. 유압 장치가 끼이익 울었다. 짐칸이 비어 있었다. 스피커 두 대와 앰프, 그리고 오르간이 있던 자리에 오르간 다리 자국만 네 개 남아 있었다. 바닥 철판에 서른 해 동안 눌린 자국이었다.
말희는 짐칸에 걸터앉았다. 휴대전화가 떨었다. 학주의 문자였다. 독수리 타법이라 띄어쓰기가 하나도 없었다.
「본선2라운드반주는어찌하오경로당하모니카동아리가있소할멈들이잘부오」
말희는 오르간 다리 자국을 손가락으로 쓸었다. 먼지가 묻어났다. 짐칸 안쪽 그늘에서 검은 갓이 조용히 말희를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