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521자)

고추 장터

저승사자도 반한 트로트 가수 · 지백솔

“⁠자⁠, 여러분⁠! 오늘 이 자리에 아주 귀한 분을 모셨습니다⁠. 예순두 살 신인 가수⁠, 금⁠! 말⁠! 희⁠!⁠”

요양병원 4층 병실에 사회자 목소리가 울렸다⁠. 창가 침대의 권우갑이 링거 줄을 마이크 선처럼 감아쥐고 있었다⁠. 얼굴은 누렇게 떠 있고 볼은 패었는데⁠, 목소리만은 서른 해 전 체육대회 운동장에서 쓰던 그대로였다⁠. 옆 침대 할아버지가 박수를 쳤다⁠. 맞은편 침대 할아버지는 자다가 깨서 덩달아 쳤다⁠.

“⁠박수 치지 마이소⁠. 이 양반 사기꾼입니더⁠.⁠”

말희는 보온병에서 누룽지 숭늉을 따르며 우갑을 노려보았다⁠.

“⁠내 사진은 어데서 났노⁠?⁠”

“⁠강진 장터⁠. 2009년⁠. 당신 그때랑 지금이랑 똑같어⁠. 머리도⁠, 입술도⁠, 성질도⁠.⁠”

“⁠신청서에 나이는 뭐라 썼는데⁠?⁠”

“⁠사실대로 썼지⁠. 예순둘⁠. 대신 특기란에 ‘⁠사람 살리는 노래⁠’라고 썼어⁠.⁠”

말희는 숭늉 컵을 우갑 손에 쥐여 주다가 멈췄다⁠. 사람 살리는 노래⁠. 어제 예선장 뒷줄의 노인이 콜록 숨을 토해 내던 소리가 귀에 되살아났다⁠.

“⁠떨어졌는데 뭐가 좋다고 웃노⁠.⁠”

“⁠떨어진 건 PD 눈이 삐어서고⁠. 나는 당신이 그 큰 무대에 선 것만으로 됐어⁠.⁠”

침대 머리맡에 세워 둔 휴대전화가 울렸다⁠. 영상 통화였다⁠. 화면에 딸 채란의 얼굴이 떴다⁠. 수원의 회사 탕비실인지 뒤로 정수기가 보였다⁠.

“⁠엄마⁠, 어제 떨어졌다며⁠. 이제 됐지⁠? 행사 좀 줄이고 아빠 옆에 있어⁠.⁠”

“⁠니 아버지가 내보낸 거다⁠. 따질라믄 이 양반한테 따지라⁠.⁠”

“⁠아빠⁠! 왜 그래⁠, 진짜⁠!⁠”

우갑은 휴대전화를 향해 엄지를 들어 보였다⁠. 곰 이모티콘과 똑같은 표정이었다⁠. 채란이 한숨을 쉬었다⁠.

“⁠엄마⁠, 엄마 나이에 무대에서 쓰러지면 어떡해⁠?⁠”

“⁠쓰러진 건 내가 아이고 객석 할배다⁠.⁠”

“⁠그러니까 더 무섭잖아⁠!⁠”

말희는 할 말이 없어서 화면 속 채란에게 립스틱 바른 입술로 뽀뽀를 날렸다⁠. 채란이 질색하며 전화를 끊었다⁠.

간호사가 들어와 우갑의 혈압을 쟀다⁠. 기계가 쉭쉭 공기를 뺐다⁠. 간호사가 숫자를 적다가 말희를 보며 작게 웃었다⁠.

“⁠아버님 진짜 대단하세요⁠. 석 달 넘기셨어요⁠. 처음 오셨을 때 담당 선생님이 길어야 한 달이라고 하셨거든요⁠.⁠”

“⁠이 양반이 원래 질깁니더⁠.⁠”

“⁠밤마다 사모님 노래 들으시는 게 약인가 봐요⁠. 열 시만 되면 다른 방 어르신들도 귀를 세우세요⁠.⁠”

말희는 밤 열 시마다 우갑에게 영상 통화로 노래를 한 곡씩 불러 주었다⁠. 행사장 대기실에서도⁠, 휴게소 주차장에서도⁠, 탑차 운전석에서도⁠. 석 달째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

비상계단은 시원했다⁠. 말희는 계단참 창문을 열고 바람을 쐬다가 돋보기를 떨어뜨렸다⁠. 주우려고 허리를 숙이니 검은 신발 한 켤레가 눈앞에 있었다⁠. 짚으로 엮은 신발이었다⁠.

“⁠깜짝이야⁠!⁠”

돋보기가 계단 두 칸 아래로 굴렀다⁠. 저승사자가 몸을 숙여 돋보기를 주워 건넸다⁠. 손끝이 닿는 순간 말희의 손등에 냉장고 문을 열었을 때 같은 찬 기운이 스쳤다⁠.

“⁠여까지 따라왔나⁠?⁠”

“⁠당신을 따라왔소⁠.⁠”

저승사자는 대답하면서 눈길을 잠깐 복도 끝으로 보냈다⁠. 4층 병실들이 늘어선 복도였다⁠. 말희는 눈길을 따라가지 않았다⁠. 따질 것이 먼저였다⁠.

“⁠어제 그 소리⁠, 다시 해 보소⁠. 내 노래 때문이라는 거⁠.⁠”

“⁠당신 목소리는 저승 종과 음이 같소⁠.⁠”

저승사자가 허리춤을 가리켰다⁠. 손바닥만 한 놋쇠 종이 매달려 있었다⁠. 오래 만져서 손때가 반들반들했다⁠.

“⁠나는 이 종이 울려 알려 주는 이름을 부르오⁠. 부르는 내 목소리도 종소리를 타고 넋에 닿소⁠. 그런데 당신이 노래하면 당신 목소리가 종소리 자리를 먼저 차지하오⁠. 넋의 귀에는 내 부름 대신 당신 노래가 들어가오⁠.⁠”

“⁠그라믄 내 노래 들리는 데서는 아무도 안 죽는다는 거가⁠?⁠”

“⁠그렇소⁠.⁠”

“⁠그기 와 나쁜데⁠? 좋은 일 아이가⁠?⁠”

저승사자가 계단 난간을 손으로 쓸었다⁠. 쇠 난간에 서리 같은 김이 맺혔다가 사라졌다⁠.

“⁠때가 지난 몸은 아프오⁠. 숨은 붙어 있어도 쉬지를 못하오⁠. 쉰여섯 해 이 일을 하면서 때를 넘긴 사람을 여럿 보았소⁠. 다들 좋은 일이라고 하지 않았소⁠.⁠”

말희는 할 말을 찾다가 찾지 못했다⁠. 복도 너머에서 누군가 길게 앓는 소리가 들렸다⁠.

“⁠그라믄 아픈 사람 옆에서는 안 부를게⁠.⁠”

“⁠당신 노래는 스피커를 타오⁠. 스피커를 타면 멀리 가오⁠. 장터에서 부르면 장터 너머 마을까지 가오⁠.⁠”

“⁠우리 스피커가 그래 좋은 기가⁠?⁠”

“⁠너무 좋소⁠.⁠”

저승사자가 진지하게 말해서 말희는 웃음이 터질 뻔했다⁠. 서른 해 동안 스피커 좋다는 칭찬은 처음이었다⁠.

*

탑차로 돌아오는 길에 휴대전화가 떨었다⁠. 트롯 왕관전 공식 채널의 알림이었다⁠.

「⁠패자 부활전 — 예선 탈락자 가운데 두 주 동안 개인 영상 조회수와 시청자 투표를 합쳐 상위 세 명이 다시 무대에 섭니다⁠. 생방송⁠.⁠」

곧바로 단톡방에 채란의 문자가 올라왔다⁠.

「⁠엄마 이거 봤어⁠? 근데 엄마 채널 없잖아⁠」 「⁠아빠 이거 링크 보내지 마 엄마 또 나가⁠」

우갑은 곰을 보냈다⁠. 이번 곰은 두 팔을 들고 만세를 하고 있었다⁠.

*

토요일 아침⁠, 탑차는 중부고속도로를 탔다⁠. 옥배는 조수석에서 귤을 까며 라디오를 이리저리 돌렸다⁠. 트로트가 나오는 주파수에서 손을 멈추고⁠, 노래가 끝나면 다시 돌렸다⁠. 서른 해 동안 같은 버릇이었다⁠.

“⁠옥배 씨⁠, 저승사자 믿어요⁠?⁠”

옥배가 귤 한 조각을 입에 넣고 오래 씹었다⁠.

“⁠우리 엄니 돌아가실 때 엄니가 그랬슈⁠. 문간에 누가 왔다고⁠. 갓 쓴 사람이 왔다고⁠.⁠”

“⁠그래서⁠?⁠”

“⁠그래서 내가 문간에 소금 뿌렸쥬⁠. 엄니는 그날 밤에 가셨슈⁠.⁠”

옥배는 귤껍질을 비닐봉지에 넣고 입을 닫았다⁠. 말희는 핸들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옥배가 한 번에 이렇게 길게 말한 것은 오랜만이었다⁠. 룸미러에는 짐칸과 운전석 사이 작은 창이 비쳤다⁠. 오늘은 창 너머에 스피커와 오르간뿐이었다⁠.

“⁠옥배 씨는 요새 무슨 노래 만들어요⁠?⁠”

“⁠만드는 거 없슈⁠. 남의 노래 치기도 바뻐유⁠.⁠”

옥배가 창밖을 보았다⁠. 옥배의 휴대전화 화면에 악보 앱이 켜져 있었다⁠. 말희는 못 본 척했다⁠.

*

토요일 오후⁠, 괴산 고추 장터에는 매운 냄새가 바람을 타고 굴러다녔다⁠. 빨간 고추 포대가 천막 아래 산처럼 쌓여 있었다⁠. 말희는 탑차를 장터 한복판 공터에 대고 옆판을 올렸다⁠. 유압 장치가 끼이익 울며 옆판을 들어 올리자 짐칸이 그대로 무대가 되었다⁠.

짐칸 안쪽에서 주옥배가 전자 오르간 덮개를 벗기고 있었다⁠. 예순일곱⁠, 서른 해 동안 말희의 반주를 맡은 사람이었다⁠. 말은 적고 손가락은 길었다⁠. 옥배는 덮개를 개어 오르간 다리에 걸고 리듬 단추를 하나 눌렀다⁠. 「⁠트로트 2⁠」 쿵짝 쿵짝⁠, 장터 바닥이 낮게 흔들렸다⁠.

“⁠볼륨 이 정도면 되겄슈⁠?⁠”

“⁠좀 더 올려 보소⁠.⁠”

옥배가 손잡이를 돌렸다⁠. 고추 포대 사이를 지나가던 할머니들이 고개를 돌렸다⁠.

말희는 은순이를 들고 첫 곡을 시작했다⁠. 사람들이 천막 밖으로 나와 박자를 맞췄다⁠. 2절에 들어갔을 때 말희는 고추 포대 산 옆에 서 있는 검은 갓을 보았다⁠. 저승사자가 장터 맨 앞줄을 보고 있었다⁠. 입술이 천천히 움직였다⁠.

말희는 소리를 밀어 올렸다⁠. 옥배를 향해 손바닥을 위로 쳐들었다⁠. 볼륨을 더 올리라는 신호였다⁠.

“⁠왜 볼륨을 올려유⁠? 귀 떨어지겄네⁠.⁠”

“⁠올리라 카믄 올리소⁠!⁠”

옥배가 손잡이를 끝까지 돌렸다⁠. 스피커가 찢어질 듯 울었다⁠. 저승사자가 말희를 쏘아보았다⁠. 말희도 노래하면서 쏘아보았다⁠. 저승사자의 입이 다시 움직였고⁠, 말희는 꺾기를 한 번 더 넣었다⁠. 맨 앞줄의 아저씨들이 신이 나서 어깨를 들썩였다⁠. 아무도 이 싸움을 몰랐다⁠.

말희는 그제야 저승사자의 눈길이 닿은 곳을 보았다⁠.

맨 앞줄 끝⁠, 그늘 천막 아래 휠체어가 있었다⁠. 아흔은 넘어 보이는 할머니가 담요를 덮고 앉아 있었다⁠. 숨을 쉴 때마다 어깨가 크게 들렸다 내려앉았다⁠. 쉰 남짓한 딸이 부채로 할머니 얼굴에 바람을 보내고 있었다⁠. 할머니의 손가락이 담요 위에서 박자를 맞추려고 했다⁠. 반 박자씩 늦었다⁠.

말희의 목소리가 한 소절 흔들렸다⁠. 할머니가 숨을 들이켤 때마다 목 안에서 그르렁 소리가 났다⁠. 스피커 소리에 묻혀도 말희의 귀에는 들렸다⁠. 서른 해 동안 객석의 기침 하나⁠, 박수 하나를 골라 듣던 귀였다⁠.

말희는 후렴을 끝까지 부르지 않았다⁠. 마지막 소절을 낮게 접어 넣고 은순이를 입에서 뗐다⁠. 옥배가 눈치를 채고 반주를 끝맺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할게요⁠. 날이 너무 덥지예⁠?⁠”

장터가 웅성거렸다⁠. 말희는 은순이를 옥배에게 맡기고 짐칸 끝에 걸터앉았다⁠. 스피커가 꺼진 장터에 매미 소리가 쏟아졌다⁠.

저승사자가 휠체어 곁으로 걸어갔다⁠. 허리를 굽히고⁠, 할머니의 귓가에서 이름을 불렀다⁠. 종을 덮고 치는 소리가 매미 소리 밑으로 깔렸다⁠. 한 번⁠, 두 번⁠, 세 번⁠.

할머니의 손가락이 담요 위에서 멈췄다⁠. 어깨가 더 들리지 않았다⁠. 딸의 부채가 한참 더 움직이다가 멈췄다⁠. 딸이 엄마를 불렀다⁠. 대답이 없자 한 번 더 불렀다⁠.

말희는 짐칸 끝에 앉은 채로 무릎 위 두 손을 맞잡았다⁠. 저승사자가 휠체어 뒤에서 몸을 펴더니⁠, 아무도 보지 않는 말희를 향해 고개를 깊이 숙였다⁠.

*

구급차가 떠나기 전에 할머니의 딸이 탑차로 왔다⁠. 땀에 젖은 부채를 쥔 채였다⁠. 말희는 짐칸에서 뛰어내렸다⁠.

“⁠죄송합니다⁠. 제가 노래를⁠…⁠…⁠.⁠”

“⁠엄마가 선생님 노래 좋아하셨어요⁠.⁠”

딸이 부채를 접었다 폈다⁠.

“⁠칠순 때 선생님을 불렀어요⁠. 2007년에요⁠. 청주 뷔페에서⁠. 엄마가 그날 사진을 방에 걸어 두셨어요⁠. 오늘 선생님 오신다고 해서 아침부터 나오자고 하셨고요⁠.⁠”

말희는 칠순 잔치를 수백 번 했다⁠. 청주 뷔페가 어느 뷔페였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기억나지 않는 것이 미안해서 고개를 숙였다⁠.

“⁠끝까지 못 듣고 가셨네요⁠.⁠”

딸의 목소리가 담담해서 더 아팠다⁠. 말희는 은순이를 들지 않고 맨목소리로 후렴 끝 소절을 불렀다⁠. 아까 접어 넣은 소절이었다⁠. 스피커가 꺼진 장터에서 맨목소리는 멀리 가지 못했다⁠. 할머니의 딸과 구급대원 둘⁠, 고추 포대 옆의 검은 갓까지만 닿았다⁠.

딸이 고개를 꾸벅 숙이고 구급차에 올랐다⁠.

*

구급차가 다녀가고 장터가 다시 시끄러워질 무렵⁠, 옥배가 말없이 냉커피를 내밀었다⁠. 종이컵에 얼음이 세 개 떠 있었다⁠.

“⁠쉬었다 다시 해유⁠?⁠”

“⁠한 시간만 있다가⁠.⁠”

“⁠그류⁠.⁠”

옥배는 더 묻지 않았다⁠. 서른 해 동안 물어야 할 것만 물었다⁠.

“⁠금말희 씨⁠!⁠”

장터 입구에서 누가 이름을 불렀다⁠. 말희는 놀라서 허리를 폈다⁠. 저승사자의 낮은 목소리가 아니었다⁠. 갈라지고 신이 난⁠, 사람의 목소리였다⁠.

흰 머리를 단정하게 빗어 넘긴 노인이 케이크 상자를 들고 고추 포대 사이를 헤치며 오고 있었다⁠. 지팡이 대신 케이크 상자로 균형을 잡는 걸음이었다⁠. 예선장 맨 뒷줄에서 쓰러졌던 노인⁠, 오학주였다⁠.

“⁠퇴원하자마자 왔소⁠. 능곡에서 버스 세 번 갈아탔소⁠.⁠”

학주는 탑차 앞에 도착해 숨을 고르고 케이크 상자를 짐칸에 올려놓았다⁠. 상자 뚜껑에 「⁠금말희 1호 팬⁠」이라고 손 글씨가 적혀 있었다⁠. 받침이 하나 빠져서 「⁠1호 팬⁠」이 「⁠1호 패⁠」로 보였다⁠.

“⁠어르신⁠, 몸은 괜찮으세요⁠?⁠”

“⁠덤으로 사는 몸이 뭐가 아프겠소⁠.⁠”

학주가 웃다가 말희 어깨 너머를 보았다⁠. 웃음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말희는 돌아보지 않아도 알았다⁠. 고추 포대 산 옆에 검은 갓이 서 있었다⁠.

학주가 목소리를 낮췄다⁠.

“⁠가수 양반⁠. 저 갓 쓴 양반⁠, 나도 보이오⁠.⁠”

2화는 어땠나요?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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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막차승객2026.11.01· 2화

    링거 줄을 마이크 선처럼 감아쥔 할아버지 때문에 출근길 지하철에서 소리 내서 웃었어요.

    • 지백솔작가2026.11.01

      우갑 씨는 병실에서도 체육대회 사회를 보던 사람이라서요. 저승사자도 그 목소리에 한 번 멈칫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