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489자)

예선장

저승사자도 반한 트로트 가수 · 지백솔

스팀다리미가 칙 하고 김을 뱉었다⁠. 금말희는 대기실 구석 옷걸이에 금색 스팽글 드레스를 걸어 놓고 주름을 하나씩 폈다⁠. 스팽글은 김을 쐬면 서로 부딪쳐 자글자글 소리를 냈다⁠. 서른 해 동안 들어 온 소리였다⁠. 장터 천막 아래서도⁠, 체육관 탈의실에서도⁠,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에서도 드레스는 같은 소리로 펴졌다⁠.

새빛방송 일산 별관 3층 대기실에는 헤어스프레이 냄새가 가득했다⁠. 서른 명 남짓한 참가자 대부분이 말희의 딸보다 어렸다⁠. 한 청년이 이어폰을 빼고 공손하게 물었다⁠.

“⁠어머님⁠, 누구 보호자세요⁠?⁠”

“⁠내가 출연자다⁠.⁠”

청년의 얼굴이 두 번 바뀌었다⁠. 놀란 얼굴⁠, 그다음은 미안한 얼굴⁠. 말희는 미안한 얼굴이 더 싫었다⁠.

“⁠아⁠, 죄송합니다⁠. 저는 차온이라고 합니다⁠. 예전에 아이돌 했었어요⁠.⁠”

“⁠아이돌이 와 트로트를 하노⁠?⁠”

“⁠아이돌은 스물다섯이면 늙었대요⁠.⁠”

청년이 웃으며 말했다⁠. 웃는데 눈가가 웃지 않았다⁠. 말희는 저 나이에 저런 말을 들으면 어떤 기분인지 알았다⁠. 예순둘에 듣는 말과 똑같았다⁠.

“⁠그라믄 우리 둘 다 늙은이네⁠. 늙은이끼리 잘해 보자⁠.⁠”

차온이 소리 내어 웃었다⁠. 이번에는 눈가도 웃었다⁠. 대기실 모니터에 차온의 이름이 뜨자 차온은 꾸벅 인사하고 나갔다⁠. 오 분 뒤 복도 너머에서 박수 소리가 길게 이어졌다⁠. 심사위원 하나가 「⁠올해 우승 후보⁠」라고 말하는 소리가 문틈으로 새어 들어왔다⁠. 말희는 심사위원의 말을 못 들은 척하지 않았다⁠. 귀에 넣고⁠, 꼭꼭 씹어서 삼켰다⁠. 거울을 보며 볼륨 있게 부풀린 짧은 갈색 파마머리를 손끝으로 한 번 더 띄우고⁠, 진한 빨간 립스틱을 입술 끝까지 채웠다⁠.

휴대전화가 연달아 떨었다⁠. 가족 단톡방 「⁠금씨네 셋⁠」이었다⁠.

「⁠엄마 진짜 예선 나간 거야⁠?⁠」 「⁠아빠가 몰래 신청했다는 게 사실이야⁠?⁠?⁠?⁠」

딸 채란의 물음표는 늘 셋이었다⁠. 곧바로 남편 권우갑의 답이 올라왔다⁠. 엄지를 치켜든 곰 이모티콘 하나⁠, 그리고 「⁠내 마누라 화이팅⁠」

말희는 돋보기를 찾느라 가방을 뒤지다가 머리 위에 얹혀 있던 것을 손으로 쳐서 떨어뜨렸다⁠. 주워 쓰고 답을 쳤다⁠.

「⁠느그 아버지 퇴원하면 내가 직이뿐다⁠」

음성 입력은 영천 말을 그대로 받아 적었다⁠. 지울까 하다 그냥 보냈다⁠. 채란이 「⁠ㅋㅋㅋㅋ⁠」를 보냈고 우갑은 곰을 또 보냈다⁠.

방송국에서 전화가 온 것은 사흘 전이었다⁠. 출연 확정이라길래 말희는 행사 섭외인 줄 알고 날짜와 출연료부터 물었다⁠. 담당 작가가 한참 웃더니 오디션이라고 했다⁠. 신청서에 붙은 사진은 2009년 강진 장터에서 찍은 것이었다⁠. 드레스도 머리 모양도 지금과 같아서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

무대 바닥은 생각보다 미끄러웠다⁠. 말희는 구두 굽으로 바닥을 두 번 눌러 보고 나서 마이크 스탠드 앞으로 걸어갔다⁠. 손에는 제 마이크를 쥐고 있었다⁠. 스물아홉 해 전 첫 큰 행사비로 산 은색 마이크⁠, 이름은 은순이였다⁠. 스태프가 방송용 마이크를 쓰라고 했을 때 말희는 은순이를 가슴에 대고 말했다⁠. 이 아이 없으면 음이 안 나온다고⁠. 결국 음향 감독이 와서 선을 바꿔 끼워 주었다⁠.

심사위원 셋이 앞줄에 앉아 있었다⁠. 심사위원석 뒤로 방청석이 계단처럼 올라갔고⁠, 맨 위 줄에는 조끼를 맞춰 입은 노인 방청단이 앉아 있었다⁠. 무대 왼편 높은 유리창 너머가 조정실이었다⁠. 유리 너머 사람들의 얼굴은 모니터 불빛에 푸르게 떠 있었다⁠.

“⁠금말희 씨⁠, 준비되시면 시작하겠습니다⁠.⁠”

반주가 들어왔다⁠. 2박자 전주가 쿵짝⁠, 쿵짝 바닥을 울렸다⁠. 1996년에 낸 단 한 장의 노래 「⁠곱빼기 인생⁠」이었다⁠. 고속도로 휴게소 카세트 판매대에서만 팔린 노래였지만⁠, 말희는 이 노래를 삼천 번은 불렀다⁠.

첫 소절을 내자 객석의 기침 소리가 멎었다⁠. 말희는 기침이 멎는 소리를 좋아했다⁠. 노래가 사람들의 숨을 한 번 쥐었다가 놓아 주는 소리였다⁠.

1절을 지나 간주에서 말희는 객석 맨 뒤를 보았다⁠. 기둥 옆에 키 큰 사내가 서 있었다⁠. 검은 갓⁠, 검은 도포⁠, 종이처럼 창백한 얼굴⁠. 방청단 조끼를 입은 노인들 사이에서 사내만 혼자 다른 시대에서 걸어 나온 차림이었다⁠. 사극 촬영장에서 길을 잃은 단역인가 하고 말희는 2절로 들어갔다⁠.

2절 첫 줄에서 맨 뒷줄 노인 하나가 가슴을 움켜쥐었다⁠. 흰 머리를 단정하게 빗어 넘긴 노인이었다⁠. 검은 갓의 사내가 노인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입을 열었다⁠.

“⁠오⁠—학⁠—주⁠—⁠.⁠”

반주 위로 낮은 소리가 지나갔다⁠. 놋쇠 종을 손바닥으로 덮고 칠 때 나는 소리였다⁠. 노인의 몸이 옆자리로 기울었다⁠.

말희는 후렴으로 들어가는 꺾기를 내던 참이었다⁠. 사내가 두 번째로 입을 벌렸다⁠.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아니⁠, 나왔는데 말희의 꺾기에 덮여 사라졌다⁠. 사내가 한 번 더 입을 벌렸고⁠, 이번에도 말희의 목소리가 먼저 객석을 채웠다⁠.

사내의 두 손이 2박자에 맞춰 마주 오다가 손바닥이 닿기 직전에 멈췄다⁠. 사내가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이어서 무대를 보았다⁠. 말희와 눈이 마주쳤다⁠.

말희는 노래를 끊지 않았다⁠. 대신 간주가 시작되자마자 은순이를 입에서 떼고 맨 뒷줄을 가리켰다⁠.

“⁠저기요⁠! 뒤에 어르신 쓰러졌어요⁠! 119⁠!⁠”

방청석이 술렁였다⁠. 스태프 둘이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반주는 녹음이라 멈추지 않았고⁠, 말희도 멈추지 않았다⁠. 왜 그랬는지는 나중에도 설명하지 못했다⁠. 다만 사내의 입이 움직일 때마다 저도 모르게 소리를 더 밀어 올렸다⁠. 노래가 끝날 때까지 스태프가 노인의 가슴을 눌렀고⁠, 마지막 소절이 끝나는 순간 노인이 콜록 하고 숨을 토해 냈다⁠. 방청단 할머니 하나가 박수를 쳤다⁠. 노인이 살아난 데 대한 박수인지 노래에 대한 박수인지는 아무도 몰랐다⁠.

기둥 옆의 사내는 보이지 않았다⁠.

말희는 무대에서 내려와 들것을 쫓아갔다⁠. 비상계단 앞에서 구급대원들이 들것을 기울였다⁠. 노인이 산소마스크 너머로 눈을 떴다⁠. 눈동자가 말희의 드레스에서 잠깐 반짝였다⁠.

“⁠곱빼기⁠…⁠…⁠.⁠”

“⁠예⁠?⁠”

“⁠곱빼기 인생⁠. 능곡 장터⁠. 구십팔 년⁠.⁠”

노인이 산소마스크를 손으로 밀어내려 했다⁠. 구급대원이 도로 씌웠다⁠. 말희는 들것 옆에 붙어 계단을 두 칸 따라 내려갔다⁠.

“⁠어르신⁠, 그거 알아요⁠? 그거 아는 사람 이 나라에 열 명도 없는데⁠.⁠”

“⁠카세트 세 개 샀소⁠. 하나는 늘어지고⁠, 하나는 이발소에 두고⁠.⁠”

“⁠하나는요⁠?⁠”

노인이 대답 대신 웃었다⁠. 들것이 계단참을 돌아 내려갔다⁠. 말희는 난간을 잡고 서서 아래층으로 멀어지는 바퀴 소리를 들었다⁠. 오학주⁠. 아까 검은 갓의 사내가 부른 이름이 혀끝에 남아 있었다⁠. 노인의 조끼 가슴께에 붙은 이름표에도 같은 석 자가 적혀 있었다⁠.

*

복도 끝 자판기 앞에서 염유준이 말희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흔 남짓한 남자였고⁠, 목에 건 출입증 끈이 셔츠 깃 안으로 말려 들어가 있었다⁠. 손에는 태블릿을 들고 있었다⁠.

“⁠선생님⁠, 연출 맡은 염유준입니다⁠. 아까 대처 정말 침착하셨어요⁠.⁠”

“⁠어르신은⁠?⁠”

“⁠구급차 타셨고 의식 있으시대요⁠.⁠”

말희는 그제야 은순이를 쥔 손의 힘을 풀었다⁠. 유준이 태블릿을 돌려 보였다⁠. 얼굴 사진 일곱 장이 나란히 붙어 있고 사진마다 나이가 적혀 있었다⁠. 스물셋⁠, 스물여섯⁠, 스물아홉⁠, 스물하나⁠.

“⁠지난 시즌 결승 진출자들입니다⁠. 전부 서른 아래예요⁠.⁠”

“⁠그래서⁠?⁠”

“⁠그래서 선생님은 여기까지입니다⁠.⁠”

유준의 말에는 군더더기가 없었다⁠. 말희는 태블릿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이 프로그램 보는 사람들은 몇 살인데⁠?⁠”

“⁠대부분 쉰 넘으셨죠⁠.⁠”

“⁠그 사람들이 늙은 가수는 보기 싫다더나⁠?⁠”

“⁠보는 사람은 나이가 들어도 보고 싶은 얼굴은 손주뻘이에요⁠. 선생님 무대 좋았습니다⁠. 그런데 좋은 무대랑 시청률 나오는 무대는 다릅니다⁠. 저희 이번 시즌 시청률 모자라면 프로그램 접어요⁠. 제작진 서른 명이 다음 달 일자리를 잃고요⁠.⁠”

“⁠우리 손주는 할매 텔레비전 나오면 본다 카던데⁠.⁠”

“⁠손주분 투표권 있으세요⁠?⁠”

말희는 웃음이 터졌다⁠. 터지고 나서야 화가 났다⁠. 유준은 따라 웃지 않았다⁠.

“⁠사람 쓰러진 무대는 방송에 못 써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 일이 없었어도 못 썼을 겁니다⁠.⁠”

“⁠솔직해서 좋네⁠. 니 엄마도 그래 솔직하나⁠?⁠”

유준의 눈썹이 아주 조금 올라갔다⁠. 말희는 은순이를 가방에 넣고 몸을 돌렸다⁠. 구두 굽이 복도 바닥을 또각또각 울렸다⁠. 뒤에서 유준이 자판기 버튼을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캔 떨어지는 소리가 유난히 컸다⁠.

*

주차장 구석에 1톤 탑차가 세워져 있었다⁠. 옆판에 페인트로 적은 글씨가 햇볕에 바래 있었다⁠. 「⁠금말희 쇼 — 개업·회갑·체육대회·칠순 잔치⁠」 반주자 주옥배는 행사가 없는 날이라 오지 않았다⁠. 말희는 운전석 문을 열고 올라앉아 한숨을 길게 쉬었다⁠.

조수석에 검은 갓이 있었다⁠.

말희는 비명 대신 은순이를 쥐었다⁠. 마이크로 사람을 때려 본 적은 없지만 무게는 충분했다⁠. 사내는 갓 끈을 턱 아래로 단정하게 매고 무릎 위에 두 손을 포개고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얼굴이 창백하다 못해 푸르스름했고⁠, 도포 자락에서 오래된 장롱 냄새가 났다⁠.

“⁠내리소⁠.⁠”

“⁠오늘 한 사람을 못 데려갔소⁠.⁠”

사내의 목소리는 종을 덮고 칠 때처럼 낮게 울렸다⁠. 차 안의 공기가 낮은 울림에 맞춰 떨었다⁠.

“⁠당신 노래 때문이오⁠.⁠”

“⁠뭔 소리를 하노⁠. 당신 뭔데⁠? 사극 단역이믄 촬영장은 저 건너다⁠.⁠”

“⁠저승에서 왔소⁠.⁠”

말희는 웃으려다 말았다⁠. 사내의 숨에서 김이 나지 않았다⁠. 7월 한낮의 탑차 안이 찜통인데 사내의 이마에는 땀 한 방울 없었다⁠. 말희는 룸미러를 슬쩍 보았다⁠. 거울에는 제 빨간 입술과 빈 조수석 머리받침만 비쳤다⁠.

“⁠…⁠…보험 영업은 아이제⁠?⁠”

“⁠아니오⁠.⁠”

“⁠종교도⁠?⁠”

“⁠아니오⁠.⁠”

“⁠사람을 데려갈 때는 이름을 세 번 부르오⁠. 세 번째 부름을 들으면 넋이 일어나 나를 따라오오⁠. 오늘은 두 번째부터 당신 노래에 묻혔소⁠. 세 번째도 묻혔소⁠.⁠”

말희는 조금 전 기둥 옆의 장면을 떠올렸다⁠. 입은 움직이는데 소리가 없던 사내⁠, 마주 오다 멈춘 두 손⁠.

“⁠그래서 그 어르신이 살았다는 거가⁠?⁠”

“⁠살았소⁠. 때가 지났는데 살았소⁠.⁠”

“⁠그라믄 잘된 일 아이가⁠.⁠”

“⁠잘된 일인지 아닌지는 당신이 정할 일이 아니오⁠.⁠”

사내가 고개를 돌려 말희를 보았다⁠. 눈동자가 지나치게 검었다⁠.

“⁠노래를 그만두시오⁠. 오늘이 마지막 무대였던 걸로 하시오⁠.⁠”

말희는 시동을 걸었다⁠. 낡은 디젤 엔진이 털털털 떨며 깨어났다⁠. 계기판 옆에 붙여 둔 우갑의 사진이 덩달아 떨었다⁠. 우갑이 마이크를 들고 웃는 사진이었다⁠. 말희는 사진을 손가락으로 한 번 누르고 사내를 보았다⁠.

“⁠내 마지막 무대는 내가 정한다⁠. 내리소⁠. 안 내리믄 이대로 괴산 간다⁠.⁠”

사내는 대답하지 않았다⁠. 말희는 핸들을 꺾어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신호에 걸려 고개를 돌렸을 때 조수석은 비어 있었다⁠. 숨을 고르며 룸미러를 보았다⁠.

짐칸과 운전석 사이 작은 창 너머⁠, 스피커 두 대와 전자 오르간 사이에 검은 갓이 앉아 있었다⁠. 사내가 손가락 마디로 창을 두 번 두드렸다⁠. 2박자였다⁠.

“⁠다음 무대가 어디요⁠?⁠”

휴대전화가 떨었다⁠. 우갑의 음성 메시지였다⁠. 사회자 시절 목소리 그대로였다⁠.

“⁠떨어졌다며⁠? 잘했어⁠. 자⁠, 다음 무대는 토요일 괴산 고추 장터입니다⁠. 박수 한번 주십쇼⁠!⁠”

말희는 신호가 바뀌는 것을 보고 액셀을 밟았다⁠. 룸미러 속 검은 갓이 차가 출렁일 때마다 함께 출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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