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462자)

휴직계

손주 돌봄 파업 선언 · 윤은류

찬솔의 작업복 점퍼는 오른쪽 어깨 솔기가 한 뼘 뜯어져 있었다⁠. 간담회 날 뒷모습에서 본 그대로였다⁠. 4월 14일 수요일 저녁⁠, 계순은 점퍼를 무릎에 펴 놓고 103동 거실 재봉틀 앞에 앉아 있었다⁠. 솔기 안쪽 시접에 쇳가루가 끼어 있었다⁠. 반도체 공장 설비를 고치는 사람의 옷이었다⁠. 계순은 쇳가루를 칫솔로 털어 내고 실을 꿰었다⁠. 남색 점퍼에 남색 실⁠. 박음질을 두 번 겹쳐 박았다⁠. 한 번 박으면 또 뜯어졌다⁠.

점퍼를 개어 들고 107동에 갔을 때는 저녁 일곱 시였다⁠. 현관을 열자 된장찌개 냄새가 났다⁠. 순범이 끓인 것이었다⁠. 냄새가 조금 짰다⁠. 식탁에서 쌍둥이가 숟가락으로 두부를 건지고 있었고⁠, 찬솔은 야간 근무 전에 저녁을 먹는 중이었다⁠. 혜빈은 아직 퇴근 전이었다⁠.

찬솔이 장모를 보고 일어났다⁠. 계순이 점퍼를 내밀자 찬솔은 어깨 솔기를 손가락으로 쓸어 봤다⁠. 쓸고 또 쓸었다⁠.

“⁠어무이⁠… 장모님⁠. 이거 언제⁠.⁠”

“⁠간담회 날 봤어⁠. 어깨 뜯어진 거⁠.⁠”

찬솔이 뭐라고 대답하려는데 식탁 위 휴대전화가 울렸다⁠. 영상통화였다⁠. 화면에 「⁠대구 어무이⁠」가 떴다⁠. 찬솔이 받기도 전에 라겸이 화면을 눌렀다⁠.

“⁠할매⁠!⁠”

대구 사돈의 얼굴이 화면 가득 나왔다⁠. 국밥집 주방이었다⁠. 머릿수건을 쓰고⁠, 뒤로 커다란 육수 솥이 김을 뿜고 있었다⁠. 사돈은 라겸에게 손을 흔들다가 화면 구석에 서 있는 계순을 발견했다⁠. 손이 멈췄다⁠.

“⁠아이고⁠, 사돈⁠. 마침 잘 계시네예⁠.⁠”

“⁠네⁠, 사돈⁠. 장사는 잘되세요⁠?⁠”

“⁠장사가 문제가 아이고예⁠. 우리 가게 손님이 카톡으로 보내 줬심더⁠. 시의원 글에 사돈 사진이 났다꼬⁠. 할매들이 유치원 앞에서 데모를 한다꼬⁠.⁠”

“⁠데모는 아니고 앉아 있었어요⁠.⁠”

“⁠앉아 있든 서 있든예⁠. 사돈⁠, 우째 손주를 버립니꺼⁠. 쌍둥이가 사돈만 찾는데⁠.⁠”

부엌이 조용해졌다⁠. 순범이 국자를 든 채 멈췄다⁠. 찬솔이 휴대전화를 집으려 했지만 라겸이 놓지 않았다⁠. 계순은 화면 속 사돈을 봤다⁠. 쉰아홉⁠, 대구 서문시장 근처에서 국밥집을 서른 해 한 사람이었다⁠. 머릿수건 아래 이마에 땀이 맺혀 있었다⁠.

“⁠사돈은 처음부터 안 보셨잖아요⁠.⁠”

“⁠내는 국밥집을 하잖아예⁠.⁠”

“⁠나도 수선집 했어요⁠. 닫았어요⁠.⁠”

화면 속에서 육수 솥이 끓는 소리만 났다⁠. 사돈이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계순은 화면에 대고 고개를 숙였다⁠. 무릎을 굽히지 않고 고개만⁠.

“⁠사돈 탓하는 거 아니에요⁠. 사돈은 가게 지키셨고 나는 닫았어요⁠. 닫은 사람도 열고 싶은 날이 있어요⁠.⁠”

사돈은 한참 있다가 머릿수건을 벗었다⁠. 벗은 수건으로 이마를 닦았다⁠.

“⁠…사돈⁠, 다음에 대구 오시면 국밥 한 그릇 대접하께예⁠. 수육 많이 넣어서⁠.⁠”

“⁠가면 먹을게요⁠. 화요일에⁠.⁠”

“⁠사돈⁠, 화요일은 저희 가게 노는 날이라예⁠.⁠”

“⁠그럼 수요일에요⁠.⁠”

“⁠수요일엔 사돈 손주 봐야 안 됩니꺼⁠.⁠”

“⁠수요일엔 바깥사돈이 봐요⁠.⁠”

화면 속 사돈이 처음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육수 솥 김 너머로 웃음소리가 났다⁠. 국자를 든 순범이 헛기침을 했다⁠. 바깥사돈은 된장찌개 간을 보다가 소금을 반 숟가락 더 넣었다⁠.

영상통화가 끊겼다⁠. 라겸이 휴대전화를 놓고 다시 두부를 건졌다⁠. 순범이 국자를 내려놓고 아내를 봤다⁠. 찬솔은 수선된 점퍼를 품에 안은 채 식탁 모서리를 보고 있었다⁠. 장모와 어머니 사이에서 찬솔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계순은 사위의 입술이 두 번 움직였다가 닫히는 것을 봤다⁠.

*

4월 15일 목요일 오전⁠, 동탄 산업단지 세묘테크 삼 층⁠. 혜빈의 회사 메일함에 탁세란 의원실의 메일이 들어와 있었다⁠. 「⁠4월 27일 공청회 발언 순서 안내⁠」 일하는 부모 대표 육혜빈⁠, 첫 번째 발언⁠, 오 분⁠. 조부모 대표 육계순⁠, 여섯 번째 발언⁠, 오 분⁠. 같은 성이 두 줄 떨어져 있었다⁠.

혜빈은 연차 신청서를 올렸다⁠. 사유 칸에 「⁠개인 사정⁠」이라고 쳤다가 지우고 「⁠시의회 공청회 발언⁠」이라고 쳤다⁠. 십 분 뒤 본부장이 팀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육 팀장⁠, 공청회⁠? 시의회⁠?⁠”

“⁠네⁠. 일하는 부모 대표로요⁠.⁠”

본부장은 잠깐 생각하는 얼굴을 했다⁠. 이십오 년 동안 이 본부에서 연차 사유에 시의회가 적힌 적은 없었다⁠.

“⁠회사 이름은 빼⁠. 우리 회사가 반차 많이 쓰는 회사로 나오면 곤란해⁠.⁠”

“⁠반차는 많이 씁니다⁠, 본부장님⁠.⁠”

본부장이 웃었다⁠. 혜빈은 웃지 않았다⁠. 본부장은 웃음을 거두고 결재 버튼을 눌렀다⁠. 문을 닫고 나가면서 한마디를 남겼다⁠. 잘해⁠, 육 팀장⁠. 칭찬인지 경고인지 이번에도 알 수 없었다⁠.

*

4월 15일 목요일 저녁 일곱 시⁠, 해님 유치원 강당⁠. 운영위원회 안건은 하나였다⁠. 「⁠국공립 연장반 신설 시 지원 신청 여부⁠」 원장이 앞에 앉고⁠, 학부모 위원 여섯과 교사 대표 둘이 긴 탁자에 마주 앉았다⁠. 뒤쪽 의자에는 방청하러 온 부모들이 스무 명쯤 있었다⁠. 맨 끝자리에 계순이 있었다⁠. 원장이 「⁠조부모 대표⁠」로 초청한 자리였다⁠. 노조 단톡방이 예순하나가 된 뒤로 원장은 계순을 무시할 수 없었다⁠.

혜빈은 학부모 위원석에 앉아 있었다⁠. 노트북을 펴고⁠, 화면을 강당 스크린에 띄웠다⁠. 표가 떴다⁠. 혜빈이 만든 표였다⁠.

“⁠이번 달 해님 유치원 하원 시간대 보호자 변동입니다⁠. 3월 초까지 하원 보호자의 육십 퍼센트가 조부모였습니다⁠. 지금은 사십 퍼센트입니다⁠. 그만큼 부모들이 반차를 쓰거나 학원을 돌립니다⁠. 연장반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혜빈의 말은 정확했다⁠. 앞줄 부모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원장이 뒤쪽을 봤다⁠.

“⁠조부모 대표님 말씀 들어 볼까요⁠?⁠”

계순은 의자에서 일어났다⁠. 보호대 찍찍이 소리가 강당에 울렸다⁠. 앞줄 부모 몇이 돌아봤다⁠.

“⁠연장반 좋아요⁠. 필요한 집은 써야지⁠. 근데 아홉 시까지 애를 여기 두는 게 답이에요⁠? 다섯 살이 아침 여덟 시에 와서 밤 아홉 시에 가면⁠, 열세 시간이에요⁠. 할머니가 보던 거보다 길어요⁠.⁠”

“⁠그럼 엄마가 아홉 시까지 봐 줄 거야⁠?⁠”

혜빈이 위원석에서 말했다⁠. 강당이 웅성거렸다⁠. 원장이 손을 들어 막으려 했지만 혜빈은 멈추지 않았다⁠.

“⁠위원장님은 다른 집 할머니들 쉬게 하시면서⁠, 연장반도 반대하시면⁠, 애들은 누가 봐요⁠? 엄마들한테 회사 그만두라는 거예요⁠?⁠”

“⁠그런 말 안 했어⁠.⁠”

“⁠결국 그 말이잖아⁠.⁠”

“⁠엄마들도⁠, 할머니들도⁠, 아홉 시까지 일 안 하는 세상을 만들자는 말이야⁠.⁠”

“⁠그런 세상 언제 와⁠? 우리 애들 다 크고⁠?⁠”

엄마와 딸이 긴 탁자 하나와 의자 열 줄을 사이에 두고 마주 봤다⁠. 방청석 부모들 사이에서 누가 휴대전화를 꺼냈다⁠. 원장이 휴대전화 든 손을 보고 눈짓을 했다⁠.

교사 대표석에서 한 사람이 손을 들었다⁠. 라율과 라겸의 담임이었다⁠. 3월 첫 주에 고무줄 두 개를 받아 들고 웃어야 할지 몰랐던 선생님이었다⁠.

“⁠교사 입장에서 한 말씀 드릴게요⁠. 연장반이 생기면 저희 중에 누군가는 밤 아홉 시까지 남아야 해요⁠. 저도 네 살 아들이 있어요⁠. 제 아들은 저희 엄마가 봐 주세요⁠.⁠”

강당이 다시 조용해졌다⁠. 선생님은 더 말하지 않고 손을 내렸다⁠. 혜빈이 스크린의 표를 봤다⁠. 표 어디에도 교사의 아이는 없었다⁠. 계순은 선생님의 손을 봤다⁠. 손톱 옆에 크레파스 물이 들어 있었다⁠.

마침 강당 뒷문이 열렸다⁠. 작업복 점퍼를 입은 찬솔이 들어왔다⁠. 야간 근무에 들어갈 시간이었다⁠. 어깨 솔기가 남색 실로 두 줄 박혀 있었다⁠. 찬솔은 방청석 맨 뒤에 서서 숨을 골랐다⁠. 그리고 손을 들었다⁠.

“⁠…학부모⁠, 강라율 강라겸 아빠입니더⁠. 한 말씀만⁠.⁠”

혜빈이 남편을 봤다⁠. 남편이 운영위원회에 온 것은 처음이었다⁠.

“⁠저 오월부터 육아휴직 냅니더⁠. 여섯 달⁠. 신청서 오늘 냈심더⁠.⁠”

강당이 조용해졌다⁠. 혜빈의 손가락이 노트북 키보드 위에서 멈췄다⁠. 스크린의 표가 그대로 떠 있었다⁠.

“⁠한 달 전에 써 놓고 사물함에 넣어 놨는데⁠, 못 냈심더⁠. 회사에서 남자가 휴직하면 승진 심사 한 해 밀린다 카는 말이 있어서예⁠. 근데 어제 저녁에 장모님이 제 점퍼를 고쳐 오셨는데⁠… 어깨 솔기를예⁠. 저도 몰랐던 걸⁠.⁠”

찬솔은 말을 고르느라 잠깐 멈췄다⁠. 경상도 말끝이 흐려졌다가 다시 붙었다⁠.

“⁠저는 장모님 편도 아이고 혜빈이 편도 아입니더⁠. 라율이 라겸이 편 할랍니더⁠. 여섯 달 동안은 제가 하원합니더⁠. 연장반 신청은 하이소⁠. 우리 집은 여섯 달 뒤에 쓰겠심더⁠.⁠”

방청석에서 박수가 났다⁠. 처음에는 한 사람⁠, 그다음엔 여럿⁠. 은행 사원증의 엄마가 가장 크게 쳤다⁠. 계순은 치지 않았다⁠. 혜빈의 얼굴을 봤다⁠. 딸은 박수 속에서 노트북 화면만 보고 있었다⁠.

*

운영위원회는 연장반 신청을 의결했다⁠. 강당 복도에서 혜빈이 찬솔을 붙잡았다⁠. 계순은 복도 끝 화장실 앞에서 그것을 봤다⁠.

“⁠왜 나한테 먼저 말 안 했어⁠.⁠”

“⁠…말하려 캤다⁠.⁠”

“⁠언제⁠. 한 달 전에⁠? 한 달 동안 매일 같이 밥 먹었잖아⁠.⁠”

“⁠니가 들으면 하지 말라 칼 것 같아서⁠.⁠”

“⁠나 그런 사람이야⁠?⁠”

“⁠니 팀장이잖아⁠. 팀장은 계산하잖아⁠. 내가 휴직하면 내 월급 줄고⁠, 니 회사에서 니가 덜 빠져도 되고⁠, 근데 내 승진은 밀리고⁠. 니가 계산하면 답이 나오잖아⁠. 나는 계산 말고 그냥 하고 싶었다⁠.⁠”

혜빈은 대답하지 못했다⁠. 복도 끝에서 둘을 보는 계순의 머릿속에 3월의 놀이터가 지나갔다⁠. 니가 엄마한테 직접 말을 안 하고 남한테 먼저 한 거⁠. 딸은 맘카페에 먼저 말했고⁠, 사위는 강당에 먼저 말했다⁠. 계순은 화장실에 들어가지 않고 그대로 나왔다⁠. 가방을 강당 의자에 두고 온 것을 잊었다⁠.

*

밤 열 시⁠, 혜빈은 강당 맨 끝 의자에 놓인 엄마 가방을 들고 103동으로 걸었다⁠. 쌍둥이는 순범이 재우고 있었고⁠, 찬솔은 늦게라도 야간 근무에 들어갔다⁠. 놀이터 가로등 아래에서 혜빈은 가방 지퍼가 열려 있는 것을 봤다⁠. 닫으려다 안에서 삐져나온 종이를 봤다⁠. 병원 봉투였다⁠.

혜빈은 봉투를 꺼냈다⁠. 남의 가방을 여는 일이었다⁠. 엄마 가방이었다⁠. 봉투 안에는 진단서 한 장과 영수증 여러 장이 들어 있었다⁠. 혜빈은 휴대전화 불빛을 비췄다⁠.

「⁠요추 제4-5번 추간판 탈출증⁠. 6주간 무거운 물건 들기 및 허리 굽히기를 삼갈 것⁠.⁠」

3월 2일 식탁에서 본 것과 같은 문장이었다⁠. 날짜가 달랐다⁠. 2026년 3월 9일⁠. 일 년 전이었다⁠. 아래 영수증들에는 「⁠신경차단술⁠」이라는 말이 찍혀 있었다⁠. 2026년 4월⁠, 7월⁠, 10월⁠, 12월⁠. 2027년 2월⁠. 석 달에 한 번꼴이었다⁠. 혜빈은 날짜를 하나씩 비춰 봤다⁠. 2026년 7월은 쌍둥이 여름 방학이었다⁠. 엄마가 하루 종일 애들을 데리고 물놀이장에 다니던 달이었다⁠. 혜빈은 지난여름 사진을 기억했다⁠. 물놀이장 얕은 풀에서 쌍둥이를 양팔에 하나씩 안고 웃는 엄마⁠. 혜빈은 물놀이장 사진을 회사 책상 모니터 옆에 붙여 두었다⁠. 사진 속 엄마의 허리에는 아무것도 감겨 있지 않았다⁠. 7월 영수증의 날짜는 사진을 찍은 날 이틀 뒤였다⁠.

혜빈은 영수증을 봉투에 도로 넣지 못하고 손에 쥔 채 놀이터를 건넜다⁠. 그네가 바람에 조금 흔들렸다⁠.

혜빈은 103동 1204호 초인종을 눌렀다⁠. 계순이 잠옷 위에 카디건을 걸치고 문을 열었다⁠. 딸 손에 들린 자기 가방을 보고⁠, 딸의 다른 손에 들린 봉투를 봤다⁠. 계순의 얼굴이 굳었다⁠.

혜빈은 진단서를 엄마 앞에 내밀었다⁠. 휴대전화 불빛이 종이 위 날짜에 머물렀다⁠.

“⁠엄마⁠, 일 년 전에도 알았어⁠?⁠”

9화는 어땠나요?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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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금빵2026.11.01· 9화

    사위 작업복 솔기를 꿰매는 장면에서 파업 중인 할머니 마음이 다 보이네요. 결국 손이 먼저 가는 거죠?

    • 윤은류작가2026.11.01

      손은 늘 마음보다 먼저 갑니다. 대신 이번엔 계순 씨가 꿰매면서 할 말을 하나 정해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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