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391자)

통영

손주 돌봄 파업 선언 · 윤은류

“⁠알았어⁠.⁠”

계순은 문간에서 그렇게 대답했다⁠. 4월 15일 밤 열 시⁠, 103동 1204호 현관⁠. 딸의 휴대전화 불빛이 진단서 위의 날짜를 비추고 있었다⁠. 계순은 불빛을 피하지 않았다⁠.

“⁠일 년 전에 알았어⁠. 주사 맞으면 석 달은 괜찮더라⁠.⁠”

“⁠왜 말 안 했어⁠?⁠”

“⁠말하면 니가 회사 그만둔다고 할까 봐⁠.⁠”

혜빈의 입술이 떨렸다⁠. 딸은 울지 않으려고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서른다섯 해 동안 계순이 본 딸의 버릇이었다⁠. 학원비를 계산해 오던 열일곱 살에도⁠, 쌍둥이를 낳고 어린이집 대기 이백 번을 받던 날에도 혜빈은 이렇게 입술을 깨물었다⁠.

“⁠그래서 주사 맞고 애 둘을 안았어⁠? 물놀이장에서⁠?⁠”

“⁠안았지⁠. 애들이 안아 달라는데⁠.⁠”

“⁠엄마는⁠… 엄마는 나한테 계약서 쓰라고 하면서⁠, 엄마는 나한테 아무것도 안 썼잖아⁠.⁠”

혜빈은 가방과 봉투를 엄마 손에 쥐여 주고 몸을 돌렸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지 않고 계단으로 내려갔다⁠. 열두 층을 걸어 내려가는 발소리가 계단참에 부딪혀 오래 울렸다⁠. 계순은 발소리가 다 사라질 때까지 문을 닫지 못했다⁠.

*

이튿날 아침 여섯 시⁠, 영채가 1204호 초인종을 눌렀다⁠. 트렌치코트에 챙 넓은 모자⁠, 손에는 계순 몫의 선글라스까지 들고 있었다⁠.

“⁠가자⁠. 버스 일곱 시야⁠.⁠”

“⁠나 안 갈래⁠.⁠”

“⁠어젯밤 니 딸이랑 무슨 일 있었는지 다 알아⁠. 니 목소리가 단톡방 글씨에서도 다 들려⁠. 그러니까 가자⁠.⁠”

“⁠애들이⁠…⁠.⁠”

“⁠애들은 니 남편이 봐⁠. 니가 그렇게 정했잖아⁠. 정해 놓고 니가 안 가면⁠, 니 남편은 내일부터 또 산에 간다⁠.⁠”

영채의 말은 손뼉 치듯 짧았다⁠. 계순은 영채를 봤다⁠. 영채의 눈 밑이 계순만큼 어두웠다⁠. 계순은 선글라스를 받았다⁠.

“⁠찍찍이 소리 나도 웃지 마⁠.⁠”

“⁠웃을 거야⁠.⁠”

*

통영으로 가는 관광버스 안은 남문 시장 장날 같았다⁠. 동창 열넷이 앉자마자 보따리를 풀었다⁠. 삶은 달걀⁠, 귤⁠, 떡⁠, 식혜⁠, 쑥개떡⁠. 버스가 고속도로에 올라가자 누가 노래방 반주를 틀었고⁠, 동창 셋이 통로에 나와 손뼉을 쳤다⁠. 기사가 백미러를 보며 마이크로 말했다⁠.

“⁠어머님들⁠, 앉아서 하세요⁠. 일어나시면 저 단속 걸립니다⁠.⁠”

“⁠앉아서 하면 무슨 재미여⁠!⁠”

“⁠제 면허가 재미없어집니다⁠.⁠”

동창들이 웃으며 자리에 앉아 엉덩이로 춤을 췄다⁠. 계순은 창가에 앉아 그것을 보며 웃었다⁠. 웃는 동안 휴대전화가 두 번 울렸다⁠. 「⁠육씨네⁠」 단톡방이었다⁠. 순범이 쌍둥이 등원 사진을 올렸다⁠. 라율의 양갈래가 처음으로 높이가 같았다⁠. 「⁠정시 도착⁠. 양갈래 좌우 대칭 성공⁠.⁠」 혜빈은 읽기만 했다⁠.

통영에 닿은 것은 열한 시였다⁠. 버스에서 내리자 바다 냄새가 먼저 왔다⁠. 계순은 항구 난간에 손을 얹었다⁠. 다섯 해 동안 계순이 본 가장 큰 물은 107동 욕조였다⁠. 바다는 욕조의 몇 배인지 계산이 되지 않았다⁠. 갈매기가 낮게 날았다⁠. 계순은 선글라스를 벗었다⁠. 햇빛이 눈에 들어와 눈물이 났다⁠. 햇빛 때문이었다⁠.

점심은 충무김밥이었다⁠. 오후에는 케이블카를 타기로 했다⁠. 줄을 서는 동안 영채가 계순 옆으로 왔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자리였다⁠.

“⁠나 사실 너 불러낸 거⁠, 니 걱정돼서 그런 거 아니다⁠.⁠”

“⁠알아⁠.⁠”

“⁠뭘 알아⁠?⁠”

“⁠니 남편 장례식 못 간 거⁠. 나 그거 다섯 해 동안 미안했어⁠.⁠”

영채가 손뼉을 치려다 말았다⁠. 두 손이 공중에서 멈췄다가 천천히 내려왔다⁠.

“⁠그 사람 가고 나서 밥을 혼자 먹으니까 밥이 안 넘어가더라⁠. 반찬을 다섯 개 해도 혼자 먹으면 하나 먹은 거 같아⁠. 그래서 동창들 다 불러냈어⁠. 니가 마지막이었어⁠. 니가 오니까 열아홉이 다 찼어⁠.⁠”

계순은 영채의 손을 잡았다⁠. 영채의 손은 차가웠다⁠. 케이블카 줄이 한 칸 앞으로 갔다⁠. 둘은 손을 잡은 채 한 칸 앞으로 갔다⁠.

*

같은 시각⁠, 이음누리 7단지 놀이터⁠. 오후 세 시 반이었다⁠. 순범은 벤치에 앉아 있었고⁠, 옆에 묘순이 있었다⁠. 노조가 정한 품앗이 돌봄이었다⁠. 쉬는 할머니 몫을 다른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나눠 맡는 날⁠. 오늘은 계순이 쉬는 날이었다⁠. 묘순은 손자 셋⁠, 순범은 쌍둥이⁠. 아이가 다섯이었다⁠.

“⁠총무님⁠, 계순 씨 지금쯤 바다 봤겠네예⁠.⁠”

묘순이 벤치에서 말했다⁠. 동창 단톡방에서 계순이 보냈다는 사진을 순범도 봤다⁠. 항구 난간에 선 아내의 뒷모습이었다⁠. 영채가 찍었다⁠. 선글라스를 머리에 얹은 파마머리가 바닷바람에 반쯤 눌려 있었다⁠.

“⁠봤겠지요⁠.⁠”

“⁠다섯 해 만이라 카던데⁠.⁠”

“⁠…신혼여행을 제주도 갔어요⁠. 그 뒤로 바다는 둘이 같이 간 적이 없어요⁠. 내가 산만 다녀서⁠.⁠”

순범은 말을 마치고 모래밭의 손녀를 봤다⁠. 묘순은 대꾸하지 않고 귤을 하나 까서 반을 순범에게 건넸다⁠. 순범은 귤을 받아 들고 먹지 않았다⁠.

묘순은 귤 껍질을 주머니에 넣고 정글짐 아래로 가서 큰손자와 공을 찼다⁠. 순범은 모래밭에서 라율의 두꺼비집을 봐 주고 있었다⁠. 라겸은 정글짐 위에 있었다⁠. 순범이 고개를 돌렸을 때 라겸은 정글짐 두 번째 칸에 있었다⁠. 순범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산악회 회장이었다⁠. 지난번 팔백만 원 얘기였다⁠. 순범은 전화를 받으려고 등을 돌렸다⁠. 「⁠여보세요⁠, 회장님⁠.⁠」

비명은 짧았다⁠.

라겸은 정글짐 세 번째 칸에서 떨어졌다⁠. 떨어지면서 이마가 쇠 봉에 부딪혔다⁠. 묘순이 먼저 달려갔다⁠. 공을 놓고⁠, 허리를 짚을 새도 없이 달려가 라겸을 안아 올렸다⁠. 삼⁠, 사번 디스크를 가진 예순여덟 살이 열여덟 킬로를 안았다⁠. 라겸의 이마에서 피가 흘렀다⁠. 순범의 휴대전화가 모래밭에 떨어졌다⁠. 「⁠여보세요⁠? 총무님⁠?⁠」 소리가 모래 속에서 났다⁠.

*

계순이 전화를 받은 곳은 케이블카 안이었다⁠. 바다 위 공중이었다⁠. 순범의 목소리가 떨렸다⁠. 이마⁠, 피⁠, 병원⁠. 계순은 한마디만 물었다⁠. 어느 병원⁠. 케이블카는 꼭대기에 닿을 때까지 칠 분이 남아 있었다⁠. 칠 분 동안 계순은 유리창에 손바닥을 대고 있었다⁠. 아래로 바다가 반짝였다⁠.

영채가 택시를 잡았다⁠. 통영 시외버스 터미널⁠, 동탄행 버스⁠, 네 시간⁠. 계순은 버스 맨 앞자리에 앉아 보호대를 풀었다 다시 찼다⁠. 찌이익⁠, 찌이익⁠. 옆자리 남자가 두 번 돌아봤다⁠. 계순은 「⁠육씨네⁠」 단톡방을 열고 닫고 다시 열었다⁠. 혜빈이 올린 글은 한 줄이었다⁠. 「⁠세 바늘 꿰맸음⁠. 엑스레이 이상 없음⁠. 오지 마⁠.⁠」

계순은 「⁠오지 마⁠」를 세 번 읽었다⁠. 그리고 갔다⁠.

버스가 진주를 지날 즈음 순범에게서 전화가 왔다⁠. 계순은 받지 않으려다 받았다⁠. 순범의 목소리 뒤로 병원 안내 방송이 들렸다⁠.

“⁠라겸이 자⁠. 꿰맬 때 울지도 않았어⁠. 할머니 오면 보여 준다고⁠, 이마 거즈 떼지 말래⁠.⁠”

계순은 창밖을 봤다⁠. 산 사이로 해가 지고 있었다⁠.

“⁠당신⁠, 그때 전화 받고 있었다며⁠.⁠”

“⁠…회장이었어⁠. 돈 얘기⁠. 당신 몰래 천백 채워 넣으려고 팔백 빌려 달라고 했던 거⁠. 오늘 안 된다고 하더라⁠.⁠”

순범은 변명하지 않았다⁠. 버스 기사가 그러듯 정해진 말만 했다⁠. 정류장 이름⁠, 출발⁠, 도착⁠. 계순은 남편이 지금 처음으로 사고 보고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서른한 해 무사고였던 사람이었다⁠.

“⁠당신 잘못 맞아⁠. 근데 당신 혼자 잘못은 아니야⁠.⁠”

“⁠…빨리 와⁠.⁠”

“⁠가고 있어⁠. 네 시간 걸려⁠.⁠”

전화가 끊겼다⁠. 계순은 휴대전화를 무릎에 엎었다⁠. 옆자리 남자가 이번에는 돌아보지 않았다⁠.

*

저녁 여섯 시⁠, 동탄의 종합병원 응급실 처치실⁠. 혜빈은 회사에서 택시를 타고 와서 라겸의 손을 잡고 있었다⁠. 의사가 이마를 꿰매는 동안 라겸은 울지 않았다⁠. 울지 않는 대신 계속 같은 말을 했다⁠.

“⁠할머니 오면 보여 줄 거야⁠. 할머니 오면⁠.⁠”

“⁠할머니 멀리 갔어⁠. 바다⁠.⁠”

“⁠바다에서 와⁠?⁠”

“⁠…응⁠. 와⁠.⁠”

혜빈은 그렇게 대답해 놓고 휴대전화를 꺼냈다⁠. 「⁠육씨네⁠」 단톡방에 글을 쳤다⁠. 「⁠세 바늘 꿰맸음⁠. 엑스레이 이상 없음⁠.⁠」 이어서 한 줄을 더 쳤다가 지우고⁠, 다시 쳤다가 지웠다⁠. 세 번째에 보냈다⁠. 「⁠오지 마⁠.⁠」 보내고 나서 혜빈은 라겸의 손을 더 꼭 잡았다⁠. 의사가 마지막 매듭을 지었다⁠. 라겸이 엄마 손가락을 깨물듯 쥐었다⁠.

*

밤 아홉 시⁠, 같은 병원 응급실 복도⁠. 계순은 터미널에서 택시를 타고 왔다⁠. 카디건에 바다 냄새가 배어 있었다⁠. 복도 의자에 순범과 묘순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순범의 손에는 모래 묻은 휴대전화가 들려 있었다⁠. 묘순은 허리를 짚고 있었다⁠. 복도 끝 커튼 너머에서 혜빈이 나왔다⁠.

라겸은 커튼 안 침대에서 잠들어 있었다⁠. 이마에 하얀 거즈가 붙어 있었다⁠. 라율이 동생 침대 옆 의자에 웅크려 엄마 카디건을 덮고 자고 있었다⁠. 찬솔은 야간 근무에서 빠져나오는 중이었다⁠.

혜빈은 엄마를 보고 복도 한가운데에 멈췄다⁠.

“⁠오지 말랬잖아⁠.⁠”

“⁠손주가 꿰맸는데 안 와⁠?⁠”

“⁠엄마 손주 꿰매는 동안 엄마는 어디 있었는데⁠. 통영⁠. 바다⁠. 케이블카⁠.⁠”

혜빈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응급실 복도라서가 아니었다⁠. 혜빈은 이 말을 오는 내내 다듬었다⁠.

“⁠엄마가 노조 한다고 아빠한테 떠넘기고⁠, 할머니들끼리 품앗이 한다고 애 다섯을 둘이서 봤어⁠. 아빠는 전화 받고 있었대⁠. 묘순 할머니는 허리 디스크야⁠. 이게 엄마가 말한 쉬는 날이야⁠?⁠”

계순은 대답하지 못했다⁠. 순범이 일어났다⁠.

“⁠내 잘못이여⁠. 내가 전화를⁠…⁠.⁠”

“⁠아빠는 가만있어⁠. 아빠는 오늘 처음 혼난 거잖아⁠. 나는 엄마한테 묻는 거야⁠.⁠”

계순은 커튼 틈으로 손자의 거즈를 봤다⁠. 세 바늘⁠. 계순은 다섯 해 동안 쌍둥이를 보면서 한 번도 꿰맨 적이 없었다⁠. 넘어질 자리마다 계순의 무릎이 먼저 가 있었다⁠. 무릎이 있던 자리에 오늘은 아무도 없었다⁠.

“⁠…내가 거기 있었으면 안 떨어졌을 거야⁠.⁠”

계순은 그렇게 말해 놓고 자기 말에 놀랐다⁠. 다섯 해 동안 계순을 107동에 붙들어 둔 문장이었다⁠. 내가 없으면 안 된다⁠. 딸이 이 문장을 듣고 고개를 끄덕일 줄 알았다⁠. 혜빈은 끄덕이지 않았다⁠.

“⁠그 말 하지 마⁠. 엄마가 그 말 하면 나 다시 엄마한테 애 맡겨⁠.⁠”

*

복도 끝 자동문이 열렸다⁠. 형광 조끼를 입은 사내가 들어왔다⁠. 묘순의 아들이었다⁠. 이번에는 오토바이 헬멧을 들고 있지 않았다⁠. 사내는 순범과 계순을 보지 않고 어머니 앞으로 곧장 갔다⁠.

“⁠엄마⁠, 허리⁠.⁠”

“⁠괜찮다⁠.⁠”

“⁠안 괜찮잖아⁠. 애 안고 뛰었다며⁠. 그 애 엄마가 전화했어⁠. 고맙다고⁠. 엄마 허리 안 아프시냐고⁠.⁠”

묘순의 아들이 혜빈을 한 번 돌아봤다⁠. 혜빈이 고개를 숙였다⁠. 아들은 다시 어머니를 봤다⁠.

“⁠가자⁠. 이제 노조고 뭐고 그만해⁠. 남의 애 안다가 엄마 허리 끊어지면 그 병원비 누가 내⁠.⁠”

묘순은 대답하지 않고 아들의 형광 조끼 소매를 붙잡고 일어났다⁠. 일어나는 데 두 번이 들었다⁠. 묘순은 아들 팔에 기대 몇 걸음 걷다가 멈췄다⁠. 뒤돌아 계순을 봤다⁠. 꽃분홍 패딩 조끼 지퍼가 반쯤 열려 있었다⁠.

“⁠위원장⁠.⁠”

“⁠네⁠.⁠”

“⁠아이고 마⁠… 나 그만둘란다⁠. 노조⁠.⁠”

묘순의 목소리는 작았다⁠. 경로당 현관에서 할배 몇이고⁠, 하고 소리치던 목소리였다⁠. 계순은 고개를 끄덕이지도 젓지도 않았다⁠. 묘순은 아들 팔에 기대 자동문을 나갔다⁠. 문이 닫히고⁠, 다시 열렸다가⁠, 닫혔다⁠. 복도 의자 위에 묘순이 두고 간 공룡 가방 하나가 남아 있었다⁠.

10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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