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816자)

새벽 네 시

고별운행 · 이수

하루는 이렇게 생겼다⁠.

세 시 사십 분에 일어난다⁠. 세수는 찬물로 한다⁠. 뜨거운 물을 기다리는 삼십 초가 아깝다⁠. 네 시에 차에 앉는다⁠. 시동을 걸고⁠, 예열 표시등이 꺼지기를 기다리면서 계기판 옆을 손등으로 한 번 툭 친다⁠.

대리점에 네 시 십오 분에 닿는다⁠. 셔터가 반쯤 올라가 있고 안에서 형광등이 새어 나온다⁠. 빵은 이미 나와 있다⁠. 노란 플라스틱 상자에 종류별로 담겨 있고⁠, 상자 옆구리에 매직으로 코스 번호가 적혀 있다⁠.

정재복의 번호는 7이었다⁠. 이십구 년 동안 7이었다⁠.

상자를 짐칸에 싣는다⁠. 무거워서 힘든 게 아니라 부피가 커서 힘들다⁠. 빵은 가볍고 크다⁠. 잘못 쌓으면 무너지고⁠, 무너지면 아래 것이 눌린다⁠. 눌린 빵은 반품이고 반품은 정재복의 손해다⁠. 그래서 쌓는 순서가 정해져 있다⁠. 아래에 식빵⁠, 위에 크림빵⁠, 제일 위에 카스텔라⁠.

이 순서를 외우는 데 두 주가 걸렸다⁠. 아내는 사흘 만에 외웠다⁠.

*

코스는 서른두 군데였다⁠.

처음에는 서른두 군데였다⁠. 지금 세어 보면 마지막에는 아홉 군데였다⁠.

첫 집은 언덕 아래 「⁠대성수퍼⁠」였다⁠. 간판에 「⁠슈퍼⁠」가 아니라 「⁠수퍼⁠」라고 적혀 있었다⁠. 주인 내외가 부부인데 남편이 먼저 나와서 셔터를 올렸다⁠. 이 집은 셔터 소리가 유난히 컸다⁠.

“⁠오셨어요⁠.⁠”

“⁠예⁠.⁠”

“⁠오늘 춥네⁠.⁠”

“⁠예⁠.⁠”

이게 대화의 전부인 날이 많았다⁠. 그래도 이 집에 이십 년을 넣었다⁠.

두 번째는 「⁠형제상회⁠」⁠, 세 번째는 「⁠미광슈퍼⁠」⁠, 다음이 골목을 하나 건너서 「⁠진주식품⁠」이었다⁠. 진주식품 아주머니는 목소리가 컸고 늘 뭔가에 화가 나 있었다⁠.

“⁠아저씨⁠, 어제 그 소보로 다 남았어요⁠.⁠”

“⁠…그럼 오늘은 줄일까요⁠?⁠”

“⁠줄이면 또 모자라잖아⁠!⁠”

“⁠…그럼⁠.⁠”

“⁠그럼이 뭐예요⁠, 그럼이⁠.⁠”

정재복은 이 집 앞에서 늘 이십 초쯤 더 서 있었다⁠. 아주머니가 화를 다 낼 때까지 기다렸다가 상자를 내려놓고 갔다⁠. 그러면 아주머니가 마지막에 꼭 이렇게 말했다⁠.

“⁠…조심해서 가요⁠.⁠”

이십 년을 그랬다⁠.

*

빵을 넣는 일에는 요령이 있다⁠.

셔터가 안 열린 집에는 문 앞에 놓고 간다⁠. 그런데 그냥 놓으면 안 된다⁠. 여름에는 그늘 쪽에⁠, 겨울에는 바람이 안 드는 쪽에 놓는다⁠. 비 오는 날에는 상자 위에 비닐을 덮고 돌로 눌러 둔다⁠. 이 비닐과 돌은 집집마다 정해진 자리에 두었다⁠. 스물아홉 해 동안 정재복이 접어 둔 덮개가 서른두 개였다⁠.

아무도 그렇게 하라고 하지 않았다⁠. 대리점에서는 그냥 놓고 가면 된다고 했다⁠.

그런데 상자를 아무렇게나 놓고 가면⁠, 이 집 주인이 아침에 문을 열면서 이걸 본다⁠. 젖은 상자를 본다⁠. 그러면 정재복 하루가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정재복은 이게 싫었다⁠.

*

오일은 오천에 갈았다⁠.

정비소 사장이 처음에는 웃었다⁠.

“⁠어르신⁠, 만에 갈아도 돼요⁠.⁠”

“⁠오천에 갈아 줘요⁠.⁠”

“⁠돈 아까우실 텐데⁠.⁠”

“⁠갈아 줘요⁠.⁠”

사장이 몇 번 더 말리다가 나중에는 안 말렸다⁠. 대신 갈 때마다 필터에 종이 딱지를 붙여 줬다⁠. 날짜와 킬로수를 적어서⁠. 이 딱지 붙은 필터를 사장이 한동안 작업대에 늘어놓고 있었다⁠.

“⁠이게 다 어르신 거예요⁠.⁠”

“⁠…버려요⁠.⁠”

“⁠아까워서요⁠.⁠”

정재복이 오천에 간 이유는 단순했다⁠. 이 차는 하루에 수십 번 서고 수십 번 다시 간다⁠. 한 번에 백 미터⁠, 이백 미터를 가고 또 선다⁠. 엔진이 제대로 데워지기도 전에 끄고⁠, 끄자마자 다시 켠다⁠. 이게 엔진에 제일 나쁘다는 걸 몸으로 알았다⁠.

멀리 다니는 차가 아니라 자주 서는 차다⁠. 그러니까 남들보다 더 갈아 줘야 한다⁠.

이게 정재복이 아는 방식이었다⁠. 말로 고맙다고 하는 대신⁠, 오일을 두 배로 갈았다⁠.

*

코스가 줄어드는 건 천천히 왔다⁠.

2003년에 「⁠대성수퍼⁠」가 문을 닫았다⁠. 이 자리에 편의점이 들어왔다⁠. 편의점은 본사에서 빵이 온다⁠. 정재복의 코스가 아니다⁠.

2008년에 언덕 위에 대형마트가 생겼다⁠. 같은 해에 넉 군데가 빠졌다⁠.

2015년쯤에는 코스가 열여덟 군데였다⁠. 이때 대리점 소장이 정재복에게 코스를 합치자고 했다⁠. 옆 코스와 합쳐서 스물여섯 군데로 만들면 되지 않겠느냐고⁠.

“⁠그럼 저 아저씨는요⁠.⁠”

“⁠그분은 그만두신대요⁠.⁠”

정재복은 코스를 합쳤다⁠. 새로 늘어난 집들은 처음 가는 골목이었다⁠. 예순여덟에 새 길을 외웠다⁠. 어느 집 문 앞이 그늘인지⁠, 어느 집이 바람이 드는지⁠, 덮개와 돌은 어디에 두는지를 다시 다 외웠다⁠.

여덟 달이 걸렸다⁠.

*

「⁠진주식품⁠」은 2019년에 닫았다⁠.

셔터에 종이가 붙어 있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손글씨였고 글씨가 컸다⁠.

정재복은 이 앞에 차를 세웠다⁠. 내릴 상자가 없는데도 세웠다⁠. 비상등을 켰다⁠.

한참 있다가 다시 출발했다⁠.

이날 저녁에 아내가 밥상에서 물었다⁠.

“⁠오늘 왜 늦었어요⁠.⁠”

“⁠…진주식품 닫았어⁠.⁠”

아내가 젓가락을 놓았다⁠.

“⁠그 아주머니⁠?⁠”

“⁠어⁠.⁠”

“⁠어디 편찮으시대요⁠?⁠”

“⁠몰라⁠. 안 물어봤어⁠.⁠”

아내가 한참 아무 말도 안 하다가 말했다⁠.

“⁠…그 아주머니 목소리 컸는데⁠.⁠”

“⁠…어⁠.⁠”

두 사람은 이후로 이 얘기를 안 했다⁠.

*

마지막 해에는 아홉 군데였다⁠.

아홉 군데면 새벽에 나가서 여덟 시면 끝난다⁠. 이십구 년 전에는 열두 시가 넘어야 끝났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여덟 시에 끝나는 하루가 열두 시에 끝나던 하루보다 길게 느껴졌다⁠.

정재복은 코스를 다 돌고 나서도 바로 집에 안 갔다⁠.

없어진 가게들이 있던 골목을 한 바퀴 더 돌았다⁠. 대성수퍼 자리⁠, 형제상회 자리⁠, 미광슈퍼 자리⁠, 진주식품 자리⁠. 편의점이 된 데도 있고 카페가 된 데도 있고 빌라가 올라간 데도 있었다⁠.

아무 데도 안 섰다⁠. 그냥 지나갔다⁠.

그러고 나서 집에 갔다⁠.

이십구 년 동안 이 차의 계기판이 사십사만 팔천까지 올라간 것은 멀리 가서가 아니다⁠. 서른두 군데를⁠, 다음엔 열여덟 군데를⁠, 마지막엔 아홉 군데를⁠, 하루도 안 빠지고 돌았다⁠.

한 번에 이백 미터씩⁠.

코스에 산동네가 하나 있었다⁠.

남산 아래 비탈에 붙어 있는 동네였다⁠. 길이 골목인지 계단인지 알 수 없게 생긴 데가 많았고⁠, 차가 들어가는 길은 딱 정해져 있었다⁠. 위로 올라가는 길 하나⁠, 내려오는 길 하나⁠. 이 두 길이 다 좁았다⁠.

정재복은 이 동네를 좋아하지 않았다⁠. 좋아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 동네에 가게가 넷이었다⁠. 넷이면 코스에서 뺄 수가 없다⁠.

*

올라가는 건 힘이 드는 일이다⁠.

경사가 세서 이단으로 못 올라간다⁠. 일단을 놓고 엔진을 울리면서 간다⁠. 짐칸에 빵을 가득 실었으면 더 그렇다⁠. 엔진 소리가 골목에 울려서 새벽에는 미안했다⁠. 창문을 열어 놓고 자는 집이 있으면 이 소리가 다 들어간다⁠.

내려오는 건 다르다⁠.

내려오는 건 힘이 드는 게 아니라 무서운 일이다⁠.

브레이크를 밟으면 안 된다⁠. 밟으면 미끄러진다⁠. 엔진 브레이크로 눌러 가며 내려와야 하는데⁠, 그러려면 저단으로 내려놓고 엔진 회전을 붙잡고 있어야 한다⁠. 이 상태로 골목을 꺾어야 한다⁠. 양옆에는 차가 세워져 있다⁠. 이 사이가 차 한 대 폭이 될까 말까다⁠.

정재복은 이 길에서 늘 왼팔을 창틀에서 내렸다⁠. 두 손으로 잡았다⁠.

*

눈이 온 날이었다⁠.

2011년 1월이었던 것 같은데 확실하지는 않다⁠. 같은 해 겨울에 눈이 많이 왔다⁠.

새벽에 나와 보니 밤새 십 센티가 쌓여 있었다⁠. 큰길은 제설차가 지나가서 괜찮았다⁠. 문제는 산동네였다⁠.

대리점에서 소장이 말했다⁠.

“⁠오늘 저 위는 빼시죠⁠.⁠”

“⁠넣어야죠⁠.⁠”

“⁠길이 얼었을 텐데요⁠.⁠”

“⁠넣어야죠⁠.⁠”

넷 중에 한 집은 이날 빵이 꼭 있어야 했다⁠. 이 집은 아침에 학생들이 들렀다 가는 집이었다⁠. 아침을 안 먹고 나온 애들이 빵 하나 사서 들고 가는 집⁠. 이 집에 빵이 없으면 이 애들이 그냥 간다⁠.

정재복은 체인을 감았다⁠. 손이 얼어서 세 번 만에 감았다⁠.

*

올라갈 때는 두 번 미끄러졌다⁠.

미끄러졌다고 해서 어디로 간 건 아니다⁠. 바퀴가 헛돌면서 차가 옆으로 반 뼘쯤 흘렀다⁠. 이때마다 정재복은 멈추고⁠, 뒤로 조금 빼고⁠, 각도를 다시 잡고 올라갔다⁠.

세 번째 시도에서 올라갔다⁠.

네 집에 빵을 넣었다⁠. 학생들 오는 집 주인이 나와 있었다⁠.

“⁠아이고⁠, 이 날씨에⁠.⁠”

“⁠…예⁠.⁠”

“⁠안 오셔도 되는데⁠.⁠”

“⁠…예⁠.⁠”

주인이 뜨거운 물을 한 컵 가져다줬다⁠. 정재복은 이걸 두 손으로 받아서 마셨다⁠. 컵이 뜨거워서 손이 아팠는데 좋았다⁠.

*

내려올 때였다⁠.

눈이 다져져서 반질반질했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골목이 아니라 미끄럼틀 같았다⁠.

정재복은 일단을 놓고 클러치를 뗐다⁠. 엔진이 낮게 울면서 차를 붙잡았다⁠. 그렇게 조금씩 내려갔다⁠.

첫 번째 꺾이는 데를 지났다⁠. 두 번째도 지났다⁠.

세 번째 모퉁이에 차가 한 대 세워져 있었다⁠.

거기 세워 두면 안 되는 자리였다⁠. 소화전 앞이었고 모퉁이였다⁠. 그런데 세워져 있었다⁠. 눈이 지붕에 쌓인 걸 보니 밤새 있었던 모양이었다⁠.

이 차와 반대쪽 담 사이가 얼마나 되는지 정재복은 눈으로 쟀다⁠.

한 뼘⁠.

한 뼘 정도 남을 것 같았다⁠.

*

멈출 수가 없었다⁠.

멈추려고 브레이크를 밟으면 이때부터 미끄러진다⁠. 미끄러지면 이 차를 그대로 받는다⁠. 후진해서 다시 올라갈 수도 없다⁠. 눈길에서 비탈을 후진으로 올라가는 건 안 되는 일이다⁠.

지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정재복은 왼쪽 사이드미러를 접었다⁠. 손을 뻗어서 접었다⁠. 그리고 오른쪽으로 바짝 붙였다⁠. 담벼락이 조수석 문에 스칠 만큼⁠.

엔진을 붙잡고⁠, 아주 천천히⁠, 차를 밀어 넣었다⁠.

담이 긁히는 소리가 났다⁠. 아니⁠, 안 났다⁠. 정재복은 났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 안 났다⁠. 그건 정재복의 귀에서 난 소리였다⁠.

이 차 옆을 지나가는 동안 정재복은 숨을 안 쉬었다⁠.

지났다⁠.

지나고 나서 십 미터쯤 더 가서⁠, 정재복은 차를 세웠다⁠. 평지가 나온 다음이었다⁠. 기어를 중립에 놓고 사이드를 당기고⁠, 두 손을 운전대에서 뗐다⁠.

손이 떨렸다⁠.

이마에서 땀이 흘러서 안경 안쪽으로 들어갔다⁠. 영하 십 도인데 땀이 났다⁠.

*

정재복은 한참 앉아 있었다⁠.

그러다가 손을 뻗어서 계기판 옆을 툭 쳤다⁠. 시동 걸 때 치는 이 자리를⁠.

한 번 쳤다가⁠, 한 번 더 쳤다⁠.

“⁠…고맙다⁠.⁠”

차 안에서 혼자 한 말이었다⁠. 이 말을 하고 나서 정재복은 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같은 해에 정재복이 「⁠고맙다⁠」는 말을 소리 내서 한 것이 이게 처음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내한테도 안 했다⁠. 아이들한테도 안 했다⁠. 그런데 차한테 했다⁠.

집에 와서 아내가 물었다⁠.

“⁠산동네 갔다 왔어요⁠?⁠”

“⁠어⁠.⁠”

“⁠길 안 미끄러워요⁠?⁠”

“⁠…괜찮았어⁠.⁠”

“⁠체인 감았어요⁠?⁠”

“⁠어⁠.⁠”

“⁠밥 먹어요⁠.⁠”

이날 저녁 밥상에서도 정재복은 아무 말도 안 했다⁠. 손이 떨렸던 것도⁠, 사이드미러를 접었던 것도⁠, 담벼락이 한 뼘이었던 것도⁠.

말할 줄을 몰랐다⁠.

그런 걸 말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나중에 알았다⁠. 텔레비전에서 사람들이 자기가 오늘 얼마나 힘들었는지 이야기하는 걸 보고⁠, 정재복은 저런 말을 저렇게 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

이후로 십오 년을 더 탔다⁠.

그동안 이 차는 한 번도 고장 나지 않았다⁠. 눈길에서도⁠, 빗길에서도⁠, 영하 17도에서도⁠, 짐을 가득 싣고 비탈을 올라갈 때도⁠.

사람들은 이게 차를 잘 만나서 그런 거라고 했다⁠. 운이 좋았다고도 했다⁠.

정재복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1997년에 정재복이 한 약속이 있다⁠. 내가 너 안 버릴 테니까 너도 나 버리지 마라⁠. 이 약속을 정재복은 오일로 지켰고⁠, 차는 브레이크로 지켰다⁠.

이날 이 모퉁이에서 차가 한 번만 미끄러졌으면 약속은 거기서 끝났을 것이다⁠.

안 미끄러졌다⁠.

3화는 어땠나요?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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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줄요약2026.09.11· 3화

    빵은 가볍고 커서 힘들다는 문장이 너무 좋아요. 코스 번호 7은 실제로 있던 번호예요?

    • 이수작가2026.09.12

      번호는 지어냈어요. 스물아홉 해 같은 번호였다는 것만은 바꾸고 싶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