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594자)

1997년 10월 28일

고별운행 · 이수

쉰 살이었다⁠.

쉰에 자기 차를 처음 가졌다고 하면 사람들은 늦었다고 한다⁠. 정재복은 늦었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그전까지 몬 차가 없었던 게 아니다⁠. 스물아홉부터 쉰까지 이십 년 넘게 트럭을 몰았다⁠. 다만 이 트럭들이 전부 남의 것이었다⁠.

남의 차를 몬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아무리 곱게 몰아도 사장이 팔면 이날로 끝이다⁠. 십 년을 몰아서 이 차의 버릇을 손끝으로 다 아는데⁠, 어느 날 아침에 가 보면 마당에 다른 차가 서 있다⁠. 그러면 이 차의 버릇을 처음부터 다시 익혀야 한다⁠. 새 차라고 좋은 것도 아니다⁠. 사장이 바뀌면 사람도 바뀐다⁠. 차가 팔리면서 같이 팔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마흔여덟에 다니던 회사가 트럭 두 대를 처분했다⁠. 그중 하나가 사장이 십일 년 몰던 차였다⁠. 마지막 날 사장은 이 차를 세차해 놓고 왔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다⁠.

집에 와서 아내한테 이 말을 했다⁠.

“⁠세차를 왜 해⁠.⁠”

“⁠…그냥⁠.⁠”

아내는 더 묻지 않았다⁠.

*

삼립빵 대리점에서 사람을 구한다는 말을 들은 건 같은 해 여름이었다⁠.

조건은 하나였다⁠. 차가 있어야 한다⁠.

빵은 새벽에 배달 된다⁠. 가게 문 열기 전에 진열대에 올라가 있어야 한다⁠. 그러니 대리점 차를 기다렸다가 받아 가는 식으로는 안 된다⁠. 자기 차로 공장에 가서 싣고⁠, 자기 코스를 돌고⁠, 반품을 걷어서 돌아와야 한다⁠. 차가 곧 일자리였다⁠.

정재복은 은행에 갔다⁠. 적금을 깼고⁠, 모자란 것은 할부로 했다⁠. 삼 년 할부였다⁠.

아내가 통장을 보고 한참 말이 없었다⁠.

“⁠쉰에 빚을 지시게요⁠.⁠”

“⁠빚이 아니라 밥벌이야⁠.⁠”

“⁠…그게 그거잖아요⁠.⁠”

그건 맞는 말이었다⁠. 당시에는 대꾸를 못 했다⁠.

딸이 고등학교 이학년⁠, 아들이 중학교 삼학년이었다⁠. 앞으로 들어갈 돈이 산더미인 것을 두 사람 다 알고 있었다⁠. 아내는 사흘쯤 밥상에서 말을 안 하더니⁠, 나흘째 되는 날 아침에 반찬 위에 계란프라이를 하나 더 얹어 줬다⁠. 이게 허락이었다⁠.

*

10월 28일이었다⁠.

아침에 회색 잠바를 입었다⁠. 지퍼가 반쯤 고장 나서 올리다 보면 중간에 걸리는 잠바였는데⁠, 이날 이 집에서 제일 나은 옷이 그거였다⁠. 아내가 잠바 어깨를 손바닥으로 두 번 털어 줬다⁠.

영업소에서 서류를 쓰고⁠, 등록소에 갔다⁠.

창구 직원이 등록증을 꺼내 놓고 볼펜을 들었다⁠. 종이에는 「⁠년⁠」과 「⁠월⁠」과 「⁠일⁠」이 미리 인쇄되어 있고 이 앞이 비어 있었다⁠. 직원이 볼펜을 종이 귀퉁이에 두 번 그었다⁠. 안 나왔다⁠. 두 번 흔들었다⁠. 그제야 잉크가 내려왔다⁠.

년 97 월 10 일 28⁠.

숫자 하나하나가 인쇄된 글자보다 크고 삐뚤었다⁠. 정재복은 이 종이를 받아서 접지 않고 들고 나왔다⁠. 접으면 자국이 날 것 같았다⁠.

마당에 차가 서 있었다⁠.

감청색이었다⁠. 아침 해가 옆면에 닿아 있어서 파란 것도 같고 검은 것도 같았다⁠. 짐칸 나무 바닥이 아직 아무 색도 아니었다⁠. 그냥 나무였다⁠. 아무것도 실린 적이 없는 나무⁠.

정재복은 이 앞에 서 있었다⁠.

한참 서 있었다⁠.

옆에서 영업소 직원이 열쇠를 건네주면서 뭐라고 설명을 했는데 하나도 안 들렸다⁠. 나중에 알고 보니 예열 표시등에 관한 이야기였다⁠.

*

시동을 걸었다⁠.

부르릉―

새 엔진 소리는 남의 차 소리와 달랐다⁠. 무엇이 다른지 말로는 못 하겠는데⁠, 그냥 이 소리가 자기 것이라는 게 달랐다⁠. 이 소리를 자기가 책임진다는 게 달랐다⁠.

정재복은 운전석에 앉은 채로 앞유리 너머를 봤다⁠.

그리고 속으로 한 마디 했다⁠.

― 내가 너 안 버릴 테니까⁠, 너도 나 버리지 마라⁠. 우리 같이 가자⁠.

소리를 낸 것도 아니고 누구한테 들으라고 한 것도 아니다⁠. 쉰 먹은 남자가 쇳덩어리한테 대고 약속을 하는 것을 누가 보면 웃을 일이었다⁠. 그래서 속으로만 했다⁠.

그런데 이 순간에 정재복은 진심이었다⁠. 살면서 그렇게 진심으로 무슨 약속을 해 본 적이 몇 번 없었다⁠. 결혼할 때도 그렇게까지는 아니었던 것 같다⁠.

*

집에 차를 가지고 왔더니 아이들이 뛰어나왔다⁠.

아들이 짐칸에 먼저 올라갔다⁠. 딸은 조수석 문을 열어 보더니 코를 킁킁거렸다⁠.

“⁠아빠⁠, 냄새 좋다⁠.⁠”

“⁠새 차라 그래⁠.⁠”

“⁠이거 언제까지 나⁠?⁠”

“⁠글쎄⁠.⁠”

“⁠오래 나면 좋겠다⁠.⁠”

아들이 짐칸에서 소리를 질렀다⁠.

“⁠아빠⁠! 나 여기 누워도 돼⁠?⁠”

“⁠내려와⁠.⁠”

“⁠누워 볼게⁠!⁠”

“⁠내려오라니까⁠.⁠”

아들은 이날 짐칸에 대자로 누워서 하늘을 봤다⁠. 정재복이 내려오라고 세 번 말했는데 세 번 다 안 내려왔다⁠. 결국 그냥 뒀다⁠. 나무 바닥이 아직 깨끗했으니까⁠.

이게 이 짐칸에 실린 첫 번째 짐이었다⁠.

아내는 나오지 않았다⁠. 부엌 창문으로 내다보기만 했다⁠. 저녁에 밥을 먹으면서도 차 이야기는 한 마디도 안 했다⁠. 그런데 설거지를 하다가 등을 돌린 채로 이렇게 물었다⁠.

“⁠…색이 뭐예요⁠?⁠”

“⁠감청색⁠.⁠”

“⁠감청색이 뭔데요⁠.⁠”

“⁠파란데 좀 어두운 거⁠.⁠”

“⁠…예쁘겠네⁠.⁠”

그러고는 또 아무 말도 안 했다⁠.

*

이날 밤 정재복은 잠이 잘 안 왔다⁠.

할부금 생각이 났다⁠. 삼 년이면 서른여섯 번이다⁠. 서른여섯 번 동안 아프면 안 되고⁠, 사고가 나면 안 된다⁠. 사고가 나면 차가 망가지는 게 아니라 일자리가 망가진다⁠.

그리고 정재복은 이런 생각도 했다⁠. 잘하면 이 차로 십 년은 하겠다⁠. 십 년이면 딸이 시집갈 나이가 되고 아들이 군대를 갔다 온다⁠. 십 년만 버텨 주면 된다⁠.

십 년⁠.

이때 정재복이 생각한 최대치가 십 년이었다⁠.

새벽에 한 번 깨서 창문으로 내려다봤다⁠. 가로등 밑에 감청색 지붕이 반듯하게 있었다⁠. 이걸 확인하고 다시 누웠다⁠.

같은 해가 1997년이었다⁠.

두 달 뒤에 이 나라에 무슨 일이 오는지⁠, 이때 이 집에서는 아무도 몰랐다⁠.

12월이었다⁠.

정재복은 라디오를 크게 틀지 않는 사람이었다⁠. 새벽에 빵을 싣고 다니면 라디오보다 엔진 소리를 듣는 게 낫다⁠. 어디가 이상하면 소리가 먼저 알려 준다⁠.

그런데 같은 해 12월에는 라디오를 켰다⁠.

아나운서가 무슨 말을 하는데 절반은 알아듣지 못했다⁠. 외환이니 협약이니 하는 말들이었다⁠. 알아들은 것은 하나였다⁠. 나라에 돈이 없다⁠.

새벽 다섯 시⁠, 신호 대기에 걸려 있는데 앞차 뒤 유리에 성에가 껴 있었다⁠. 이 성에 위로 누가 손가락으로 뭐라고 써 놨는데 잘 안 보였다⁠. 신호가 바뀌었다⁠.

*

같은 달에 아는 사람 셋이 일자리를 잃었다⁠.

한 사람은 같은 아파트 삼층이었다⁠. 이십이 년 다닌 회사였다고 했다⁠. 아침마다 넥타이를 매고 나가는 사람이었는데⁠, 어느 날부터 운동복을 입고 나갔다가 저녁에 들어왔다⁠. 어디를 다녀오는지는 아무도 묻지 않았다⁠.

또 한 사람은 처남이었다⁠. 처남은 술을 먹고 전화를 했다⁠. 매형⁠, 매형은 좋겠수⁠. 정재복은 뭐가 좋으냐고 물었다⁠.

“⁠차 있잖수⁠.⁠”

“⁠…어⁠.⁠”

“⁠차 있으면 뭐라도 하잖수⁠.⁠”

정재복은 대꾸를 못 했다⁠. 이 말이 맞아서 못 했다⁠.

두 달 전⁠, 아내가 통장을 들여다보며 쉰에 빚을 지시냐고 했을 때⁠, 정재복은 밥벌이라고 했다⁠. 당시에는 그냥 우기는 말이었다⁠. 두 달 만에 이 말이 진짜가 되었다⁠.

*

할부금은 그대로였는데 금리가 올랐다⁠.

은행에서 편지가 왔다⁠. 종이 한 장에 숫자만 적혀 있었다⁠. 정재복은 이 종이를 들고 아내한테 갔다⁠. 아내가 안경을 끼고 한참 봤다⁠.

“⁠이게 다 이자예요⁠?⁠”

“⁠…그런가 봐⁠.⁠”

“⁠이자가 이만큼이면 원금은 언제 갚아요⁠.⁠”

“⁠갚아야지⁠.⁠”

“⁠어떻게요⁠.⁠”

“⁠…더 돌면 되지⁠.⁠”

아내가 종이를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했다⁠.

“⁠나도 나갈게요⁠.⁠”

“⁠어딜⁠.⁠”

“⁠새벽에⁠.⁠”

“⁠됐어⁠. 애들 밥은 누가 하고⁠.⁠”

“⁠밥은 해 놓고 나가면 돼요⁠.⁠”

“⁠됐다니까⁠.⁠”

“⁠…같이 가면 한 시간은 빨라지잖아요⁠.⁠”

정재복은 반대했다⁠. 사흘을 반대했다⁠. 나흘째 되는 날 새벽 세 시 사십 분에 일어나 보니 아내가 벌써 부엌에 서서 애들 도시락을 싸고 있었다⁠. 점퍼를 입고 목도리를 두르고 있었다⁠.

이날부터 조수석에 사람이 앉았다⁠.

*

아내는 빵 상자를 잘 날랐다⁠.

정재복이 놀랐던 것은 정재복이 힘이 세서가 아니었다⁠. 순서를 금방 외웠기 때문이다⁠. 어느 가게에 무슨 빵이 몇 상자 들어가는지⁠, 반품은 어디가 많은지를 사흘 만에 다 외웠다⁠. 정재복은 이걸 외우는 데 두 주가 걸렸었다⁠.

“⁠어떻게 벌써 외워⁠.⁠”

“⁠장 보러 다니는 거랑 똑같아요⁠.⁠”

새벽 골목은 캄캄했다⁠. 가게 셔터는 대개 잠겨 있고⁠, 주인이 나와 있는 데는 드물었다⁠. 셔터 앞에 빵 상자를 내려놓고 가면 주인이 아침에 열면서 들여놓는다⁠. 그렇게 한다⁠. 없어지는 일은 거의 없었다⁠. 없어져도 그건 그냥 없어진 걸로 쳤다⁠.

아내는 상자를 내려놓고 나서 꼭 셔터 손잡이를 한 번 당겨 봤다⁠.

“⁠왜 그래⁠?⁠”

“⁠열려 있으면 안 되잖아요⁠.⁠”

“⁠…그건 우리 일이 아니잖아⁠.⁠”

“⁠그래도요⁠.⁠”

정재복은 그런 사람이었다⁠.

*

같은 해 겨울에 문 닫는 가게가 늘었다⁠.

배달 코스에서 하나씩 빠졌다⁠. 아침에 가 보면 셔터에 종이가 붙어 있다⁠. 「⁠사정상 폐업합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손으로 쓴 것도 있고 인쇄한 것도 있었다⁠.

정재복은 그런 셔터 앞에서 잠깐 서 있다가 갔다⁠. 내릴 상자가 없어서 할 일이 없는데도 차를 잠깐 세웠다⁠.

한 달 사이에 코스에서 여섯 군데가 빠졌다⁠. 여섯 군데가 빠지면 그만큼 매상이 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도는 시간은 별로 안 줄었다⁠. 남은 가게들이 주문을 줄이는 대신 더 자주 넣어 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팔릴지 안 팔릴지 몰라서 조금씩만 받았다⁠.

그러니까 빵은 덜 팔리는데 차는 더 다녔다⁠.

이 겨울에 정재복은 하루도 안 쉬었다⁠. 설날 아침에도 나갔다⁠. 아내가 떡국을 아홉 시에 끓였다⁠.

*

1998년 2월의 어느 새벽이었다⁠.

영하 17도였다⁠. 차를 세워 둔 자리에서 시동이 한 번에 안 걸렸다⁠. 두 번째에 걸렸다⁠. 예열 표시등이 꺼지기를 기다리는 동안 정재복은 두 손을 입에 대고 불었다⁠.

옆에서 아내가 말했다⁠.

“⁠이 차 아니었으면 어쩔 뻔했어요⁠.⁠”

정재복은 아무 말도 안 했다⁠. 그런데 기어를 넣으면서 손등으로 계기판 옆을 한 번 툭 쳤다⁠. 먼지를 터는 것도 아니고 뭘 확인하는 것도 아닌⁠, 그냥 치는 동작이었다⁠.

아내가 이걸 봤다⁠.

“⁠뭐 해요⁠?⁠”

“⁠아무것도 아니야⁠.⁠”

이날 이후로 정재복은 시동을 걸고 나서 계기판 옆을 한 번씩 툭 치는 버릇이 생겼다⁠. 스물아홉 해 동안 그랬다⁠.

*

처남이 같은 해 봄에 다시 전화를 했다⁠. 이번에는 술을 안 먹고 했다⁠.

“⁠매형⁠, 나 트럭 하나 알아보려는데⁠.⁠”

“⁠…어⁠.⁠”

“⁠매형 차 얼마 줬수⁠?⁠”

정재복은 값을 말해 줬다⁠. 처남이 한참 조용히 있다가 말했다⁠.

“⁠그때 사길 잘했네⁠.⁠”

“⁠…어⁠.⁠”

“⁠두 달만 늦었어도 못 샀지⁠.⁠”

전화를 끊고 정재복은 이 말을 생각했다⁠.

두 달⁠.

정재복은 두 달 전에 빚을 냈고⁠, 두 달 뒤에 나라가 뒤집혔다⁠. 이 두 달 사이에 무엇이 있었냐 하면 아무것도 없었다⁠. 정재복이 잘나서도 아니고 뭘 알아서도 아니다⁠. 그냥 이때 대리점에서 사람을 구했고⁠, 이때 은행이 돈을 빌려줬을 뿐이다⁠.

사람들은 같은 해에 무언가를 잃었다⁠. 정재복은 같은 해에 아무것도 안 잃었다⁠. 두 달 전에 하나를 얻어 놨기 때문이다⁠.

이게 마당에 서 있었다⁠. 감청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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