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378자)

쑥불

그 골짜기에 불을 낸 사람 · 진해솔

골 맨 안쪽 마당에 지서 지프가 서 있었다⁠. 희재가 오토바이를 세웠을 때 순경 둘은 수돗가 양동이를 들여다보며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양동이 안에 함석 깡통이 하나 잠겨 있었다⁠. 순경 하나가 소매를 걷고 깡통을 건지려다 말고⁠, 양동이째 들어 올렸다⁠.

“⁠이것도 증거다⁠. 통째로 가자⁠.⁠”

단옥은 마루 끝에 앉아 신발 끈을 매고 있었다⁠. 끈을 다 매고 일어서서 비탈의 벌통 줄을 보았다⁠. 돌판이 열린 통 서른 개가 줄지어 서 있었고⁠, 통 주둥이마다 벌 몇 마리가 드나들었다⁠. 밤새 흩어졌던 벌이 반나절 사이에 조금씩 돌아오고 있었다⁠.

“⁠니 탑으로 안 가나⁠?⁠”

단옥이 희재를 보지 않고 물었다⁠.

“⁠지서 따라갈 겁니다⁠.⁠”

“⁠그라믄 해 지기 전에 여기 들러라⁠. 해 지면 벌이 다 들어온다⁠. 그때 돌판을 덮어 줘라⁠. 짚 덮개 먼저⁠, 돌은 그 위에⁠. 안 덮으면 밤이슬 들어간다⁠.⁠”

“⁠이슬이 안 온 지 석 달인데요⁠.⁠”

“⁠그라믄 담비가 들어간다⁠.⁠”

순경이 단옥의 팔꿈치를 잡았다⁠. 단옥은 팔을 빼지 않고 지프 뒷자리로 걸어가 스스로 올라탔다⁠. 지프가 마당을 돌아 나갈 때 희재 허리춤의 무전기가 울었다⁠. 이번에는 택시 배차가 아니었다⁠.

“⁠노희재⁠, 군청 산림계로 바로 들어와라⁠. 지서 가지 말고⁠. 변상호다⁠.⁠”

*

지서 선풍기는 고개를 돌릴 때마다 끽 소리를 냈다⁠. 단옥은 이 소리를 세며 앉아 있었다⁠. 마흔 번쯤 세었을 때 지서장이 들어왔고⁠, 뒤이어 맹두석이 따라 들어와 지서장 책상 옆 철제 의자에 앉았다⁠. 맹두석은 비닐봉지에서 참외를 하나 꺼내 주머니칼로 깎기 시작했다⁠. 껍질이 끊기지 않고 한 줄로 길게 늘어졌다⁠.

“⁠단옥 씨⁠, 이거 단옥 씨 거 맞지요⁠?⁠”

지서장이 책상 위에 깡통 하나를 올려놓았다⁠. 벌을 다룰 때 연기를 피우는 훈연기였다⁠. 함석 통에 가죽 풀무가 붙어 있었고⁠, 주둥이에 그을음이 앉아 있었다⁠. 순경이 낮에 집 마당에서 들고 나온 것이었다⁠.

“⁠맞습니다⁠.⁠”

“⁠어제 이거 피웠지요⁠?⁠”

“⁠낮에 피웠습니다⁠. 열두 시쯤에⁠. 통 두 개 열어 보고 한 시에 껐습니다⁠.⁠”

“⁠우째 껐는데요⁠?⁠”

“⁠물에 넣었습니다⁠.⁠”

맹두석이 참외 한 조각을 칼끝에 꽂아 지서장 입에 넣어 주었다⁠. 지서장이 받아 씹으며 웃었다⁠. 단옥은 이 웃음을 보지 않고 훈연기 주둥이만 보았다⁠. 그을음에 쑥 냄새가 배어 있었고⁠, 냄새는 하루가 지나 쓴맛만 남았다⁠.

“⁠단옥 씨⁠, 이 골 사람들은 다 안다⁠. 쑥불 그거 바람 한 번 불면 날아간다⁠.⁠”

맹두석은 칼을 손수건에 닦으며 말했다⁠. 지서장보다 먼저 말했고⁠, 지서장은 이걸 막지 않았다⁠.

“⁠니 엄마도 그랬다⁠. 스물두 해 전에⁠. 밭두렁 태운다고 불 놓았다가 온 골 다 태웠지⁠. 그때도 니 엄마가 제일 먼저 지서로 뛰어왔다 카더라⁠. 불났다꼬⁠. 먼저 본 사람이 제일 잘 안다⁠. 지가 놨으니까⁠.⁠”

단옥은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깍지를 꼈다⁠. 깍지 낀 손가락 마디가 하얘졌다가 돌아왔다⁠.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지서장을 보고 물었다⁠.

“⁠지서장님⁠, 이분은 여기 왜 앉아 계십니까⁠?⁠”

지서장이 참외를 삼키다 사레가 들려 기침을 했다⁠. 맹두석이 등을 두드려 주었다⁠.

“⁠의원님은 주민 대표로 오셨지⁠. 불탄 데가 다 의원님 지역구다⁠.⁠”

“⁠그라믄 주민 대표님한테 여쭙겠습니다⁠. 어제 저녁 일곱 시 반에 어디 계셨습니까⁠?⁠”

선풍기가 끽 하고 고개를 돌렸다⁠. 맹두석은 참외를 한 조각 더 깎아 이번에는 자기 입에 넣었다⁠.

“⁠읍내 다방에 있었지⁠. 증인이 열 명이다⁠. 니는⁠? 니 증인은 벌이가⁠?⁠”

지서장이 볼펜 뚜껑을 이로 물어 뺐다⁠.

“⁠단옥 씨 어머니 일은 나도 들었다⁠. 그때 그 양반이 지서로 뛰어와서 불났다 캤다 카대⁠. 단옥 씨도 어제 지서에 전화했나⁠?⁠”

“⁠우리 집에는 전화가 없습니다⁠. 골 안에 전화 있는 집이 한 집도 없습니다⁠.⁠”

“⁠그라믄 불나면 우째 알리는데⁠?⁠”

단옥이 처음으로 지서장의 눈을 보았다⁠.

“⁠안 알립니다⁠. 알리면 엄마처럼 됩니다⁠.⁠”

*

군청 산림계 사무실 벽에 붙은 라디오에서 지방 방송 오후 사연 시간이 흘러나왔다⁠. 변상호는 희재를 책상 앞에 세워 두고 서류철을 넘겼다⁠. 넘기기만 하고 읽지는 않았다⁠. 천장 선풍기가 돌 때마다 책상 위 서류 귀퉁이가 들렸다 내려앉았고⁠, 사무실에는 등사 잉크와 식은 보리차 냄새가 고여 있었다⁠.

“⁠노희재 씨⁠. 니 어제 탑 비웠제⁠.⁠”

“⁠불났는데 진화대가 골 안 길을 모릅니다⁠. 봉순 언니가 교대 들어왔고요⁠.⁠”

“⁠봉순이가 계단 다 올라오기도 전에 니가 먼저 내려갔다⁠. 그거 근무지 이탈이다⁠. 계약서 봤제⁠? 근무지 이탈 한 번이면 해지 사유다⁠.⁠”

희재는 대답하지 않았다⁠. 라디오의 남자 진행자가 다음 엽서를 집었는지 종이 소리가 났다⁠.

“⁠다음은 율산군 갈미봉에서 보내 주셨습니다⁠. 산불 감시원 왕봉순 님⁠. ‘⁠코가 먼저 출근한 날⁠.⁠’ 아⁠, 제목부터 좋네요⁠. ‘⁠우리 탑에는 노 아무개라는 아가씨가 있는데요⁠, 이 아가씨는 눈보다 코가 먼저 출근합니다⁠. 어제 저녁에도 연기보다 냄새를 먼저 맡고 계장님한테⁠…⁠’⁠”

산림계 직원 셋이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떨었다⁠. 변상호가 일어나 라디오를 껐다⁠. 끄고 나서도 한참 손이 다이얼 위에 머물렀다⁠.

“⁠지서 가서 이래 말해라⁠. 연기는 봤다⁠. 어데서 났는지는 탑에서 안 보인다⁠. 그라믄 근무지 이탈은 내가 없던 걸로 한다⁠.⁠”

“⁠연기가 선 데는 보였습니다⁠. 112도였습니다⁠.⁠”

“⁠방위판 바늘 끝에 골 안이 다 들어가나⁠? 1도만 틀려도 산 하나가 바뀐다⁠.⁠”

“⁠그래서 1도도 안 틀렸습니다⁠.⁠”

변상호가 서류철을 덮었다⁠. 덮는 소리가 컸다⁠.

“⁠니가 본 거는 연기다⁠. 불 낸 사람이 아이다⁠. 니 말 한마디에 군의원님 지역구 일이 다 엎어진다⁠. 그거 니가 감당할 수 있나⁠?⁠”

희재는 모자를 벗어 손에 쥐었다⁠. 모자 챙에서 어젯밤의 재가 떨어졌다⁠.

“⁠계장님⁠. 그 골 땅⁠, 누가 사려고 합니까⁠?⁠”

변상호의 눈이 서류철에서 희재 얼굴로 올라왔다가 다시 서류철로 내려갔다⁠.

“⁠나가 봐라⁠.⁠”

*

희재가 지서 문을 밀었을 때 순경 하나가 물이 든 양동이를 두 손으로 들고 들어오는 중이었다⁠. 낮에 단옥의 마당에서 훈연기를 들고 나오면서⁠, 훈연기가 잠겨 있던 양동이까지 증거라며 통째로 차에 실어 온 순경이었다⁠. 양동이는 지프 뒷자리에서 반나절을 흔들려 물이 절반쯤 남아 있었다⁠.

“⁠지서장님⁠, 이것도 같이 보셔야⁠…⁠.⁠”

순경의 발이 문턱에 걸렸다⁠. 양동이가 지서장 책상 위로 엎어졌다⁠. 물이 책상을 건너 맹두석의 무릎으로 쏟아졌고⁠, 양동이 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쑥 재가 검은 띠를 그리며 서류 위에 퍼졌다⁠. 맹두석이 의자를 밀고 일어났다⁠. 남방 앞자락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지서장이 젖은 서류를 집어 들고 한참 들여다보다가 순경을 보았다⁠.

“⁠니⁠, 이거 어데서 가져왔노⁠?⁠”

“⁠훈연기가 이 안에 담겨 있었습니다⁠. 물에⁠.⁠”

“⁠물에⁠.⁠”

“⁠예⁠. 가득⁠.⁠”

단옥은 이 물을 보지도 않았다⁠. 희재는 문간에 선 채 단옥의 옆얼굴을 보았다⁠. 단옥의 입가에 웃음이 소리 없이 번졌다 사라졌다⁠.

희재는 젖은 바닥을 건너 지서장 책상 앞에 섰다⁠.

“⁠갈미봉 감시원 노희재입니다⁠. 어제 신고한 사람입니다⁠. 연기는 일곱 시 사십 분에 무너미골 어귀 112도에서 섰습니다⁠. 임도 쪽입니다⁠. 이분 집은 121도 쪽이고⁠, 그쪽 능선 위로는 그 시각에 아무것도 안 섰습니다⁠. 바람은 동남이었습니다⁠.⁠”

지서장이 볼펜을 들었다가 놓았다⁠.

“⁠바람이 동남인 거는 우째 아는데⁠? 탑에 바람개비 달렸나⁠?⁠”

“⁠손가락에 침 묻혀서 듭니다⁠. 찬 쪽이 바람 오는 쪽입니다⁠.⁠”

“⁠그기 다가⁠?⁠”

“⁠가방에 김 넣어 다닙니다⁠. 김이 부러지면 그날은 불이 잘 붙는 날입니다⁠. 어제는 부러졌습니다⁠.⁠”

순경이 바닥의 물을 걸레로 훔치다 말고 고개를 들었다⁠.

“⁠김이 증거라꼬예⁠?⁠”

“⁠김은 증거가 아이고⁠, 제 코가 증거입니다⁠. 김은 반찬입니다⁠.⁠”

순경이 웃음을 참느라 걸레를 쥔 채 기침을 했다⁠. 맹두석이 손수건으로 무릎을 닦으며 희재를 보았다⁠. 젖은 남방이 배에 붙어 있었다⁠.

“⁠계장한테 들렀다 왔나⁠?⁠”

“⁠예⁠.⁠”

“⁠그래도 그 말 하는 거 보니 계장 말을 안 들었구나⁠.⁠”

“⁠들었습니다⁠. 안 따랐을 뿐입니다⁠.⁠”

맹두석이 웃었다⁠. 이번에는 금니가 보이지 않았다⁠.

“⁠지서장⁠, 오늘은 보내 줘라⁠. 물에 빠진 쑥불로는 안 되겠다⁠.⁠”

지서장이 고개를 끄덕였고⁠, 맹두석이 단옥을 내려다보며 손수건을 접었다⁠.

“⁠대신 단옥 씨⁠, 하나만 묻자⁠. 그 땅 팔 생각 없나⁠? 다 타 버린 골에 혼자 살아서 뭐 하노⁠? 값은 내가 잘 쳐준다⁠. 내가 사면 고발이고 뭐고 다 없던 일이 된다⁠.⁠”

단옥이 일어섰다⁠. 의자 다리가 젖은 바닥에 끌려 길게 울었다⁠.

“⁠엄마 땅입니다⁠.⁠”

“⁠니 엄마는 그 땅에 다시 못 들어오고 죽었다⁠. 니도 그래 될 수 있다⁠.⁠”

맹두석은 젖은 남방 단추를 하나 풀고 지서장 책상 위 전화기를 끌어당겼다⁠. 다이얼을 돌리는 손가락이 느렸다⁠.

“⁠계장⁠, 나다⁠. 내일 아침에 벌채반 데리고 무너미 어귀로 가라⁠. 탄 나무 그냥 세워 두면 벌레 낀다⁠. 싹 베고 흙 덮자⁠. 트럭은 우리 회사 거 보내께⁠.⁠”

희재가 책상 모서리를 짚었다⁠.

“⁠의원님⁠, 그 비탈 손대지 마이소⁠. 불이 처음 난 자리입니다⁠. 나라 산림 관청인 중앙 산림국에서 조사 나오면 봐야 될 자리입니다⁠.⁠”

맹두석이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딸깍 소리가 지서 안을 한 바퀴 돌았다⁠.

“⁠산림국은 서울에 있고⁠, 벌레는 내일 낀다⁠. 아가씨는 탑이나 지켜라⁠. 지킬 탑이 남아 있으면⁠.⁠”

*

지서 앞 플라타너스 그늘에서 희재가 오토바이 시동을 걸었다⁠. 단옥은 지서 계단에 서서 오토바이를 내려다보았다⁠. 골까지는 버스로 한 시간이었고⁠, 막차는 이미 떠났다⁠.

“⁠타입시더⁠. 골 어귀까지 모셔다 드리께예⁠.⁠”

“⁠니 이거 군청 거 아이가⁠?⁠”

“⁠예⁠. 내일이면 못 탈 수도 있습니다⁠.⁠”

단옥이 계단을 내려와 뒷자리에 앉았다⁠. 앉고 나서도 손을 어디 둘지 몰라 짐받이를 쥐었다⁠. 희재가 출발하자 몸이 뒤로 쏠렸고⁠, 단옥의 손이 짐받이를 놓고 희재의 허리를 잡았다⁠. 단옥의 손바닥에서 땀과 쑥 냄새가 같이 배어 나왔다⁠. 희재는 이 손이 허리에 닿는 내내 기어를 한 칸 늦게 올렸다⁠.

읍내를 빠져나가는 삼거리에서 덤프트럭 한 대가 맞은편에서 내려오다 멈췄다⁠. 짐칸에 붉은 흙이 가득했고⁠, 문짝에 「⁠두석개발⁠」이라는 글씨가 흰 페인트로 쓰여 있었다⁠. 내일 불탄 비탈을 덮을 흙이었다⁠. 운전석 창이 내려갔다⁠.

희재의 동생 인택이었다⁠. 스물네 살⁠, 작업복 소매를 어깨까지 걷어 올렸고⁠, 입에 담배를 물고 있었다⁠. 인택은 누나를 보고⁠, 누나 허리를 잡은 단옥의 손을 보았다⁠. 담배를 손가락으로 빼 들었다⁠.

“⁠누나⁠. 그 여자 태우지 마라⁠.⁠”

“⁠니 일이나 해라⁠.⁠”

“⁠사장님이 다 본다⁠. 누나가 그 여자 태우고 다니는 거 보면 내 우째 되는지 아나⁠?⁠”

허리를 잡고 있던 단옥의 손이 풀렸다⁠. 단옥이 오토바이 뒷자리에서 한쪽 발을 땅에 내렸다⁠. 트럭 뒤로 경운기 한 대가 경적을 길게 울렸다⁠. 희재는 핸들을 쥔 채 단옥의 발과 동생의 담배를 번갈아 보았다⁠. 인택이 담배를 다시 물며 말했다⁠.

“⁠누나⁠, 우리 집에 지금 누구 땅에서 밥 먹는지 엄마한테 물어봐라⁠.⁠”

2화는 어땠나요?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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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느린독자2026.10.15· 2화

    쑥불이 모깃불 같은 거예요? 그걸로 산불이 날 수 있나요?

    • 진해솔작가2026.10.16

      모기 쫓는 연기 불이에요. 그 불이 정말 원인이었는지는 탑에서 본 사람과 골 안에 있던 사람의 말이 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