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401자)

동쪽과 서쪽

먼저 본 사람 · 진해솔

초소에서 제일 먼저 들리는 것은 유리다.

바람이 유리에 닿으면 소리가 난다. 창틀이 헐거워서 그렇다. 나사를 조여 봤는데 하루 만에 다시 헐거워졌다. 산은 낮과 밤의 온도 차가 커서 쇠가 늘었다 줄었다 한다고, 인계해 준 사람이 그렇게 말했다.

그다음이 매미다.

매미는 아침 여섯 시에 시작해서 저녁 일곱 시에 그친다. 그 열세 시간 동안 소리가 한 번도 안 끊긴다. 열흘째 되니까 안 들리기 시작했다. 안 들리는 게 아니라 안 듣게 된 것이다.

임서경은 그것이 조금 무서웠다.

들리는 것을 안 듣게 되면 안 들리는 것도 못 알아챈다.

“동초, 동초.”

무전기가 울었다.

“동초, 이상 없습니까?”

“동초 이상 없습니다.”

“…….”

“지대는요.”

“지대도 이상 없다. 오늘 낮에 사람 하나 올라간다.”

서경이 창밖을 봤다. 능선이 아지랑이로 흔들렸다.

“오늘요.”

“산림청에서 나온다. 조사관.”

“…….”

“한 평 반에 둘이 있어야 되는데 괜찮겠나.”

서경은 무전기를 잡은 채로 초소를 둘러봤다. 한 평 반이다. 접이식 의자 하나, 나무 대 하나, 쌍안경, 무전기, 이십 리터 물통, 능선 지도. 자리가 남을 이유가 없다.

“괜찮습니다.”

“이상.”

무전이 끊겼다.

노다현이 올라온 것은 오후 두 시였다.

능선까지는 마을에서 두 시간 반이다. 마지막 사십 분은 길이 아니라 그냥 비탈이다. 서경은 열흘 전에 그 길을 올라오면서 세 번 앉았다.

다현은 앉지 않고 올라온 것 같았다.

“노다현입니다.”

“임서경입니다.”

두 사람이 서로를 봤다. 다현은 등에 배낭 하나, 앞에 가방 하나를 메고 있었다. 앞 가방이 더 무거워 보였다.

“짐이 많으시네요.”

“절반이 장비입니다.”

“…….”

“무슨 장비요.”

다현이 가방을 내려놓았다.

“나무 재는 겁니다.”

초소 안은 사십오 도였다.

온도계가 그렇게 나왔다. 사방이 유리라 그렇다. 그늘이라는 게 없다.

다현이 들어와서 처음 한 말은 이거였다.

“여기서 주무십니까?”

“네.”

“…….”

“밤에는 내려갑니다, 삼십 도 정도로.”

“그건 자는 온도가 아닌데요.”

서경이 물통을 발로 밀어 자리를 만들었다.

“익숙해집니다.”

“…….”

“정말요?”

서경이 잠깐 생각했다.

“아니요.”

다현이 웃었다. 처음 웃었다.

“솔직하시네요.”

능선은 셋으로 나뉜다.

초소에서 보면 동쪽으로 능선이 하나 뻗고, 서쪽으로 하나, 그리고 정면 아래로 골이 하나 있다. 골은 깊어서 안이 안 보인다.

“동쪽 보겠습니다.”

다현이 지도를 보면서 말했다.

“…….”

“제가 서쪽 보겠습니다.”

서경이 고개를 저었다.

“동쪽은 제가 봅니다.”

“왜요.”

“열흘 봤습니다.”

“…….”

“어디에 뭐가 있는지 압니다. 저기 하얀 거 보이십니까?”

서경이 손으로 가리켰다. 능선 중턱에 하얀 것이 있었다.

“연기 같은데요.”

“바위입니다.”

다현이 쌍안경을 들었다. 한참 봤다.

“…….”

“진짜 바위네요.”

“열흘 전에 저거 보고 신고할 뻔했습니다.”

다현이 쌍안경을 내렸다.

“그럼 동쪽은 임 선생이 보십시오.”

밤이 되니 매미가 그쳤다.

그친다는 말은 정확하지 않다. 한꺼번에 그치는 게 아니라 하나씩 준다. 일곱 시쯤부터 줄기 시작해서 여덟 시 반에 마지막 한 마리가 그친다. 그 마지막 한 마리가 그칠 때가 하루 중에 제일 조용하다.

서경은 그 순간을 열흘 동안 매일 들었다.

“…….”

“왜 그러십니까?”

다현이 물었다.

“아니요.”

“…….”

“지금 조용해서요.”

다현이 랜턴을 켰다. 초소 안이 노랗게 됐다.

“조용한 게 아니라 다른 게 들리는 거 아닙니까?”

서경이 다현을 봤다.

“무슨 소립니까?”

“…….”

“매미가 그치면 바람이 들립니다. 아까는 매미 때문에 안 들렸을 뿐이고요.”

서경은 창을 봤다. 유리가 울고 있었다. 하루 종일 울고 있었을 텐데 지금 들렸다.

“조사관님.”

“네.”

“무슨 나무를 재러 오셨습니까?”

다현이 가방에서 노트를 꺼냈다.

“죽은 나무요.”

“…….”

“이 산에 소나무가 많은데 올해 많이 죽었습니다. 비가 안 와서 죽은 건지 다른 이유가 있는지 봐야 합니다.”

“다른 이유가 뭡니까?”

“그걸 몰라서 재는 겁니다.”

서경이 웃었다.

“정확하시네요.”

“…….”

“모르는 걸 모른다고 하시니까요.”

다현이 노트를 펼쳤다. 표가 그려져 있었다. 칸이 아주 많았다.

정시 무전은 아홉 시였다.

“동초, 동초. 이상 없습니까?”

서경이 마이크를 눌렀다.

“동초 이상 없습니다.”

“조사관 도착했나.”

“도착했습니다.”

“…….”

“이상.”

무전이 끊겼다. 초소가 다시 조용해졌다.

다현이 손을 내밀었다.

“제가 해도 됩니까, 다음부터.”

“무전이요?”

“하나씩 나눠서요.”

서경이 마이크를 건넸다.

“지금 하십시오.”

“지금은 끝났는데요.”

“…….”

“한 번 더 하십시오. 연습으로요.”

다현이 마이크를 잡았다. 잡는 자세가 어색했다.

“지대. 여기 동초입니다.”

“…….”

“왜 이렇게 조용합니까?”

서경이 소리 없이 웃었다.

“누르고 계셔야 합니다.”

“아.”

다현이 버튼을 눌렀다.

“지대. 동초입니다. 이상 없습니다.”

무전기가 잠깐 잡음을 냈다.

“동초. 아까 했다.”

“…….”

“연습입니다.”

“…….”

“이상.”

무전이 끊겼다.

두 사람 다 아무 말도 안 했다. 그러다 서경이 먼저 웃음을 터뜨렸다. 한 평 반에서 웃으니까 소리가 유리에 부딪혔다.

“죄송합니다.”

다현이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

“처음 해 봐서요.”

“아닙니다.”

서경이 눈을 문질렀다.

“…….”

“열흘 만에 웃었습니다.”

밤 열한 시에 두 사람은 자리를 정했다.

침낭 두 개를 바닥에 놓으니 발 디딜 데가 없었다. 서경이 창 쪽, 다현이 문 쪽이었다. 사이가 한 뼘이었다.

“조사관님.”

“네.”

“밤에 소리 나면 깨워 주십시오.”

“무슨 소리요.”

서경이 천장을 봤다.

“모르겠습니다.”

“…….”

“근데 나면 압니다.”

다현이 랜턴을 껐다.

어두워지니 유리 소리가 커졌다. 산에서는 소리가 위로 올라온다. 골에서 나는 소리가 능선까지 올라오는 데 얼마나 걸리는지 서경은 아직 모른다.

“임 선생.”

“네.”

“왜 이 일 하십니까?”

서경은 대답하지 않았다.

“…….”

“죄송합니다. 물을 게 아니었네요.”

“아닙니다.”

“…….”

“대답을 안 하는 거지 기분 나쁜 건 아닙니다.”

다현이 조금 웃는 소리를 냈다.

“그럼 됐습니다.”

새벽 세 시에 서경이 깼다.

소리가 났다. 무슨 소리인지 몰랐다. 몸을 일으켜 창밖을 봤다. 달이 있었고 능선이 보였다. 아무것도 없었다.

옆에서 다현이 눈을 뜨고 있었다.

“들으셨습니까?”

서경이 물었다.

“들었습니다.”

“…….”

“무슨 소리였습니까?”

다현이 창을 봤다.

“나무가 갈라지는 소립니다.”

“…….”

“물이 부족하면 그렇게 됩니다.”

서경이 다시 누웠다. 누웠는데 눈이 안 감겼다.

“조사관님.”

“네.”

“그거 자주 납니까?”

“…….”

“요즘은 밤마다 납니다.”

곽점례가 올라온 것은 사흘째였다.

물통을 지고 올라온다. 이십 리터짜리를 지게에 얹어서 두 시간 반을 올라온다. 일흔한 살이다.

“할머니.”

서경이 뛰어 내려갔다.

“오지 마라.”

“…….”

“내려오면 내가 또 올라가야 된다.”

점례가 지게를 초소 앞에 세웠다. 물통을 내리는데 서경이 잡았다. 무거웠다.

“이걸 어떻게 지고 오십니까?”

“지고 오지 뭘 어떻게.”

“…….”

“내려갈 때는 안 무겁다.”

다현이 나와서 인사했다.

“노다현입니다.”

점례가 다현을 위아래로 봤다.

“나무 재는 사람이가.”

“네.”

“…….”

“재서 뭐 하는데.”

다현이 잠깐 말을 못 했다.

“왜 죽었는지 알아보려고 합니다.”

점례가 앉았다. 초소 그늘에 앉으니 그늘이 한 뼘밖에 안 됐다.

“비가 안 와서 죽었지.”

“…….”

“그거 알라고 두 시간 반 올라왔나.”

서경이 웃음을 참았다. 다현은 안 참았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

“근데 비가 안 와도 안 죽는 나무가 있습니다. 왜 저 나무는 죽고 이 나무는 안 죽는지를 봐야 다음에 뭘 심을지 압니다.”

점례가 다현을 다시 봤다. 아까와 다른 눈이었다.

“그러면 말이 되네.”

물통을 받고 점례는 십 분쯤 앉아 있었다. 그동안 아무 말도 안 했다. 능선을 보고 있었다.

“할머니.”

“어.”

“뭐 보십니까?”

점례가 손을 들어 정면 아래를 가리켰다. 골이었다.

“저 골.”

“…….”

“저기는 바람이 안 나온다.”

서경이 골을 봤다. 깊어서 안이 안 보였다.

“그게 왜요.”

점례가 일어섰다. 지게를 졌다.

“바람 안 나오는 데는 뭐가 들어가면 안 나온다.”

그러고 내려갔다.

서경과 다현이 남았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게.”

다현이 물었다.

“모르겠습니다.”

“…….”

“그런데 열흘 동안 저 골을 봤는데.”

서경이 쌍안경을 들었다.

“…….”

“한 번도 안이 안 보였습니다.”

정시 무전은 매시 정각이다.

낮에는 여섯 번, 밤에는 세 번. 이상 없으면 「이상 없음」만 말한다. 그것 말고는 무전기를 비워 둔다. 다른 초소도 같은 채널을 쓰기 때문이다.

그날 저녁 여섯 시 무전은 다현이 했다.

“지대. 동초입니다. 이상 없습니다.”

“동초 확인. 이상.”

무전이 끊겼다.

다현이 마이크를 내려놓지 않았다.

“…….”

“조사관님?”

다현이 버튼을 다시 눌렀다.

“동초 추가.”

무전기에서 잡음이 났다.

“…….”

“동초, 뭐고.”

다현이 서경을 한 번 봤다.

“물 잘 받았습니다. 할머니께 전해 주십시오.”

“…….”

“그거 전하라고 무전 쓰나.”

“이상.”

다현이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서경이 다현을 보고 있었다.

“…….”

“왜요.”

“무전은 비워 두는 겁니다.”

“압니다.”

“…….”

“근데 오늘 그 할머니가 두 시간 반 지고 올라왔습니다.”

다현이 창밖을 봤다. 해가 서쪽 능선에 걸려 있었다.

“그걸 아무 데도 안 적으면 없었던 일이 됩니다.”

서경은 그 말을 오래 생각했다.

밤에 다현이 노트를 펼치고 있었다. 랜턴 아래에서 숫자를 적고 있었다.

“조사관님.”

“네.”

“그 노트에 나무만 적습니까?”

다현이 손을 멈췄다.

“…….”

“왜요.”

서경이 침낭에 앉아 있었다.

“아까 무전 말입니다.”

“…….”

“그거 어디 적으셨습니까?”

다현이 노트를 덮었다.

“안 적었습니다.”

“…….”

“그건 적을 칸이 없습니다.”

서경이 웃었다.

“그럼 만드십시오.”

“…….”

“칸을요?”

“네.”

다현이 노트를 다시 폈다. 표의 맨 아래 빈 줄에 뭔가를 적었다. 서경이 목을 빼서 봤는데 랜턴이 어두워서 안 보였다.

“뭐라고 쓰셨습니까?”

다현이 노트를 덮었다.

“안 알려 드립니다.”

이 회차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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