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694자)

연기는 코에 먼저 온다

그 골짜기에 불을 낸 사람 · 진해솔

가방 속 김이 바스락 소리를 냈다⁠. 노희재는 김 한 장을 꺼내 손끝으로 접어 보았다⁠. 접은 자리가 소리 없이 부러졌다⁠. 아침에 산 김이 저녁까지 부러지면 산은 이날 바짝 마른 날이었고⁠, 석 달째 비 한 방울 없는 칠월 스무닷새 저녁 일곱 시였다⁠. 갈미봉 감시탑은 사방이 유리라 한낮에 먹은 볕을 해가 기울어도 내놓지 않았고⁠, 희재의 등은 의자 등받이에 붙었다 떨어질 때마다 쩍 소리를 냈다⁠.

“⁠갈미봉⁠, 갈미봉⁠. 교대 십 분 늦는다⁠. 봉순이다⁠.⁠”

무전기가 왕봉순의 목소리를 내놓았다가 곧장 남자 목소리로 바뀌었다⁠.

“⁠개인택시 삼십칠 번⁠, 터미널 앞 할매 한 분⁠, 짐이 많으시다⁠.⁠”

희재는 무전기 옆구리를 손바닥으로 한 대 쳤다⁠. 군청이 준 무전기는 맞아야 제 주파수로 돌아왔고⁠, 안 맞으면 율산읍 택시 회사의 배차를 하루 종일 들려주었다⁠. 봉순은 이 배차를 듣고 터미널 앞 할매가 누군지 맞히는 것을 낙으로 삼았다⁠. 희재는 무전기를 세워 놓고 동쪽 유리창을 열었다⁠.

바람은 동남에서 왔다⁠. 손가락에 침을 묻혀 들어 보면 손등 쪽이 먼저 식었다⁠. 저녁마다 이 바람은 아랫무너미 마을 지붕을 넘어 무너미골을 타고 올라갔다⁠. 골은 탑 정면 아래에서 한 번 꺾여 들어가서⁠, 어귀에 군청이 산허리로 닦아 놓은 찻길인 임도와 밭 몇 뙈기 말고는 안쪽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세 해를 이 탑에 앉아 있었어도 희재는 이 골 안을 위에서 본 적이 없었다⁠.

바람에 냄새가 섞여 들었다⁠.

송진 타는 냄새였다⁠. 솔잎이 마르면 단내가 나고⁠, 이게 타면 단내 끝에 쓴 것이 붙는다⁠. 그런데 이 쓴 냄새 밑에 하나가 더 있었다⁠. 경운기에 기름을 넣을 때 깔때기에서 올라오는 냄새⁠, 코 안쪽을 따갑게 긁고 지나가는 냄새였다⁠. 희재는 창틀을 잡은 채 숨을 두 번 더 들이마셨다⁠. 아직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망원경을 들기 전에 몸이 먼저 방위판 쪽으로 돌았다⁠. 탑 한가운데 놓인 둥근 쇠판에는 눈금이 삼백육십 개 새겨져 있었고⁠, 가운데 바늘 끝에 가늠쇠가 달려 있었다⁠. 희재는 바늘을 냄새가 오는 쪽으로 밀고 기다렸다⁠. 일 분이 지나지 않아 무너미골 어귀 능선 위로 흰 것이 섰다⁠. 처음에는 실오라기 같다가⁠, 바람을 받자 허리를 꺾으며 골 안쪽으로 눕기 시작했다⁠.

가늠쇠 너머 바늘이 112에 닿아 있었다⁠. 임도 어귀였다⁠.

희재는 무전기를 두 번 쳤다⁠.

“⁠군청 상황실⁠, 여기는 갈미봉⁠. 무너미골 어귀⁠, 112도⁠, 임도 쪽 연기⁠. 바람 동남⁠. 골 안쪽으로 눕고 있습니다⁠.⁠”

“⁠배차실입니다⁠. 아가씨⁠, 이 주파수 아니에요⁠.⁠”

“⁠아는데요⁠, 끊지 마이소⁠. 군청 좀 불러 주이소⁠.⁠”

택시 회사 배차 아가씨가 한숨을 쉬더니 수화기를 바꿔 들었는지 무전기가 조용해졌고⁠, 삼십 초 뒤에 군청 당직자의 졸린 목소리가 들어왔다⁠. 희재는 같은 말을 한 글자도 바꾸지 않고 다시 불렀다⁠. 일곱 시 사십 분이었다⁠.

*

봉순은 탑 계단을 다 올라오기도 전에 소리부터 질렀다⁠.

“⁠니 또 코로 먼저 봤제⁠? 내 엽서에 그거 쓴다⁠. ‘⁠우리 탑 아가씨는 눈보다 코가 먼저 출근합니다⁠.⁠’ 어떻노⁠?⁠”

“⁠언니⁠, 탑 지키소⁠. 내 내려갑니다⁠.⁠”

“⁠니가 왜 내려가는데⁠? 감시원은 보는 사람이다⁠. 끄는 사람이 아이다⁠.⁠”

“⁠골 안 길을 아는 사람이 진화대에 없습니다⁠.⁠”

희재는 군청이 준 낡은 배달용 오토바이를 끌고⁠, 예전에 벤 나무를 실어 내던 산판 길을 내려갔다⁠. 아랫무너미 점방 앞 평상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골 쪽 하늘이 저녁놀과 다른 색으로 붉었다⁠. 군 진화대 트럭이 두 대 와 있었다⁠. 대원들은 물주머니를 등에 지는 등짐펌프를 메고 서로의 끈을 조여 주었다⁠. 진화대장이 희재를 보자 턱으로 골을 가리켰다⁠.

“⁠어귀는 벌써 넘어갔다⁠. 바람 타고 안으로 들어갔어⁠. 길 아나⁠?⁠”

“⁠압니다⁠. 따라오이소⁠.⁠”

밤 산은 소리로 탔다⁠. 솔방울이 터지는 소리가 총소리처럼 짧게 났고⁠, 마른 싸리가 타는 소리는 누가 종이를 구기는 것 같았다⁠. 불길은 비탈을 타고 오를 때 빨랐고⁠, 바람이 잠깐 죽으면 땅에 엎드려 숨을 골랐다⁠. 희재는 앞서 걸으며 계곡 물이 마른 바닥을 골라 밟았다⁠. 연기가 눈을 찔러서 수건을 물에 적셔 코에 댔는데⁠, 그래도 냄새는 수건을 뚫고 들어왔다⁠. 송진⁠, 탄 흙⁠, 이 밑에 아까 이 기름 냄새가 아직 가늘게 남아 있었다⁠.

열한 시가 넘어 골이 마지막으로 꺾이는 자리에 닿았다⁠. 거기서부터는 희재도 처음 보는 땅이었다⁠.

돌담을 두른 집이 한 채 있었다⁠. 슬레이트 지붕 위로 불티가 날아와 앉았다가 꺼지고⁠, 마당 끝 비탈에 통나무를 세워 만든 벌통이 서른 개쯤 줄지어 서 있었다⁠. 불빛이 통나무의 갈라진 껍질을 하나하나 비추었다⁠. 벌통 사이에 여자가 하나 있었다⁠.

여자는 맨손이었다⁠. 벌통 위를 덮은 돌판을 두 손으로 밀어내고⁠, 이 아래 짚 덮개를 걷고⁠, 다음 통으로 갔다⁠. 걷어 낸 자리에서 벌이 쏟아져 올라왔다⁠. 날갯소리가 한꺼번에 일어서서 불 소리를 잠깐 덮었다⁠. 벌들은 여자의 머리 위를 한 바퀴 돌다가 불빛 반대쪽 어둠으로 빨려 들어갔다⁠.

“⁠거 뭐 하는 깁니까⁠. 내려가입시더⁠.⁠”

희재가 소리치자 여자가 돌아보았다⁠. 얼굴에 그을음이 묻어 있었고⁠, 목소리는 불 소리 아래로 깔렸다⁠.

“⁠다 열고 간다⁠. 갇히면 통 안에서 익는다⁠.⁠”

“⁠집에 불 붙습니다⁠.⁠”

“⁠집은 다시 짓는다⁠.⁠”

여자는 다음 돌판을 밀었다⁠. 손등 위로 벌이 기어 다녔는데 여자는 털지 않았다⁠. 희재는 진화대를 불러 집 아래 개울가에 줄을 세우고⁠, 자기는 여자 옆으로 가서 돌판을 같이 밀었다⁠. 돌은 낮의 열을 먹고 아직 뜨거웠다⁠. 세 번째 통에서 벌 한 마리가 희재의 목덜미로 들어왔다⁠. 희재는 비명을 삼키고 목을 움츠렸다⁠.

“⁠가만있어라⁠. 털면 쏜다⁠.⁠”

여자가 희재의 목덜미에 손가락을 대고 벌을 받아 냈다⁠. 손끝이 거칠었고⁠, 쑥 태운 냄새와 밀랍 냄새가 났다⁠. 이 손이 떨어지자마자 바람이 숨을 멈췄다⁠.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불길은 개울 건너 돌너덜 앞에서 갈 곳을 잃고 주저앉았고⁠, 진화대원들이 물을 뿜을 때마다 하얀 김이 쉭쉭 소리를 내며 올라왔다⁠.

여자는 마지막 통까지 다 열고 나서야 마당 수돗가에 주저앉았다⁠. 희재는 바가지에 물을 받아 내밀었다⁠. 여자는 물을 마시지 않고 얼굴에 끼얹었다⁠.

“⁠탑에서 왔나⁠?⁠”

“⁠예⁠. 갈미봉입니다⁠.⁠”

“⁠거서는 여기 안 보이제⁠?⁠”

“⁠연기는 보입니다⁠.⁠”

여자가 처음으로 희재를 똑바로 보았다⁠. 웃는 것 같았는데 소리는 나지 않았다⁠.

“⁠단옥이다⁠.⁠”

“⁠노희재입니다⁠.⁠”

*

새벽 네 시⁠, 아랫무너미 점방 평상에서 진화대원들이 컵라면을 불렸다⁠. 점방 할머니 쌍례는 일흔이 넘은 나이에 밤을 꼬박 새우고도 주전자를 들고 평상 사이를 오갔다⁠. 희재가 빈 컵을 내밀자 쌍례가 물을 따르다 말고 골 쪽을 보았다⁠.

“⁠골 안 그 집은 우째 됐노⁠?⁠”

“⁠안 탔습니다⁠. 개울에서 섰어예⁠.⁠”

“⁠벌은⁠?⁠”

“⁠다 날려 보냈습니다⁠. 통을 하나하나 열어서⁠.⁠”

쌍례가 주전자를 내려놓았다⁠. 손등의 검버섯 위로 김이 지나갔다⁠.

“⁠지 엄마 하던 짓을 그대로 하네⁠.⁠”

“⁠할매⁠, 어제 저녁에 평상에 계셨지예⁠? 임도로 뭐 올라가는 거 못 봤습니까⁠?⁠”

쌍례는 대답하지 않고 행주로 평상을 닦기 시작했다⁠. 닦은 자리를 또 닦았다⁠. 이때 희재 허리춤의 무전기가 혼자 울었다⁠. 봉순이었다⁠.

“⁠갈미봉에서 아랫무너미⁠. 불 잡혔다 카제⁠? 내 지금 엽서 쓴다⁠. 제목은 ‘⁠코가 먼저 출근한 날⁠’이다⁠. 니 이름 써도 되나⁠?⁠”

평상의 대원들이 컵라면을 든 채 웃었다⁠. 희재는 무전기를 한 대 치고 꺼 버렸다⁠. 쌍례는 그사이 점방 안으로 들어가 미닫이를 닫았다⁠.

*

이날 정오⁠, 불탄 비탈은 아직 따뜻했다⁠. 신발 바닥으로 열이 올라왔고⁠, 재가 발목까지 묻었다⁠. 희재는 잠을 두 시간 자고 다시 임도 어귀로 올라와 있었다⁠. 불이 가장 먼저 탄 자리를 보고 싶었다⁠. 거기는 어디보다 깊게 탔다⁠. 나무마다 밑동이 숯이 되어 있었고⁠, 흙이 검다 못해 은빛으로 번들거렸다⁠.

희재는 쪼그려 앉아 흙에 코를 댔다⁠. 탄내가 목구멍을 막았는데⁠, 이 밑에서 어젯밤의 이 따가운 냄새가 아직 실오라기만큼 올라왔다⁠. 희재는 이 자리에 돌을 하나 올려놓았다⁠.

흰 지프가 임도를 올라왔다⁠. 각진 차체에 재가 앉아 회색이 되어 있었고⁠, 앞자리에서 두 남자가 내렸다⁠. 하나는 군청 산림계장 변상호였다⁠. 희재의 상관이었고⁠, 언제나 서류철을 가슴에 대고 다녔다⁠. 다른 하나는 반소매 남방에 금목걸이를 늘어뜨린 쉰 줄의 남자였다⁠. 남자는 불탄 비탈을 한 바퀴 둘러보더니 손바닥을 비볐다⁠.

“⁠아이고⁠, 다 탔네⁠. 아까운 거⁠.⁠”

변상호가 희재를 보고 목소리를 낮추었다⁠.

“⁠맹 의원님이시다⁠. 인사드려라⁠.⁠”

군의원 맹두석은 희재가 인사하기 전에 먼저 손을 내밀었다⁠. 손은 크고 말랐고⁠, 손톱 밑이 깨끗했다⁠.

“⁠니가 그 코라는 아가씨가⁠? 군청에서 소문 다 났다⁠. 탑에서 냄새로 불 찾는 아가씨⁠. 잘했다⁠. 상 줘야 된다⁠.⁠”

“⁠냄새로 찾은 기 아니고 연기 보고 신고했습니다⁠.⁠”

“⁠그래⁠, 연기⁠. 그 연기가 어데서 났노⁠?⁠”

희재는 돌을 올려 둔 자리를 가리켰다⁠.

“⁠여깁니다⁠. 임도 어귀⁠. 112도⁠.⁠”

맹두석은 희재의 손가락을 따라 돌을 보고⁠, 다시 희재의 얼굴을 보았다⁠. 그리고 웃었다⁠. 웃을 때 아래 금니가 하나 보였다⁠.

“⁠아가씨⁠, 탑에서 골 안이 보이나⁠?⁠”

“⁠안 보입니다⁠.⁠”

“⁠안 보이제⁠. 그라믄 불이 골 안에서 났는지 어귀에서 났는지 아가씨가 우째 아노⁠? 골 맨 안쪽에 여자 하나 혼자 산다 아이가⁠. 벌 친다고 맨날 쑥불 피우는 여자⁠. 바람이 저 안에서 불씨를 끌고 나와서 어귀에 떨궜으면⁠, 아가씨 눈에는 어귀에서 연기가 선 걸로 보이지⁠.⁠”

“⁠어제 바람은 동남이었습니다⁠. 어귀에서 안으로 불었어예⁠. 안에서 밖으로 끌고 나올 수가 없습니다⁠.⁠”

“⁠바람이 하루 종일 한쪽으로만 부나⁠? 산바람은 돈다⁠.⁠”

“⁠어제 저녁은 안 돌았습니다⁠. 제가 일곱 시부터 손가락 세우고 있었습니다⁠.⁠”

변상호가 서류철을 고쳐 안았다⁠.

“⁠노희재 씨⁠. 제 눈으로 본 것만 올리라 캤제⁠. 손가락은 증거가 아이다⁠.⁠”

맹두석이 변상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렸다⁠. 말리는 손이 무거웠다⁠.

“⁠계장⁠, 아가씨 잘못 아이다⁠. 높은 데 있으면 다 그래 보인다⁠. 근데 아가씨야⁠, 니 계약직이제⁠? 가을까지⁠?⁠”

“⁠예⁠.⁠”

“⁠지서 가서도 그 말 할 수 있겠나⁠? 112도⁠. 임도 어귀⁠. 그라믄 지서에서 물을 끼다⁠. 그 시간에 임도에 누가 있었는데⁠? 아가씨가 봤나⁠? 못 봤제⁠. 못 본 사람 말은 오래 못 간다⁠.⁠”

희재는 대답 대신 돌 옆의 흙을 한 줌 집어 맹두석 앞에 내밀었다⁠.

“⁠의원님⁠, 냄새 한번 맡아 보이소⁠.⁠”

맹두석이 흙을 내려다보았다⁠. 변상호가 반 걸음 물러섰다⁠. 맹두석은 흙에 코를 대지 않았다⁠. 대신 희재의 손목을 엄지와 검지로 가볍게 쥐고 손을 아래로 내렸다⁠. 흙이 손가락 사이로 흘러 떨어졌다⁠.

“⁠아가씨 동생⁠, 인택이 말이다⁠. 우리 회사 현장에 있제⁠? 착하더라⁠. 손이 빠르고⁠. 가을에 정규직 시킨다 캤다⁠.⁠”

희재의 손목에서 맹두석의 손가락이 떨어졌다⁠. 쥐었던 자리가 하얗게 남았다가 천천히 돌아왔다⁠.

“⁠그거는 이 일하고 상관없습니다⁠.⁠”

“⁠상관없지⁠. 내가 그냥 하는 말이다⁠.⁠”

아래 임도에서 엔진 소리가 올라왔다⁠. 지서 지프였다⁠. 지프는 흰 지프 옆에 서지 않고 그대로 지나쳐 골 안쪽으로 꺾였다⁠. 뒷자리에 순경 둘이 앉아 있었다⁠. 맹두석이 차를 눈으로 따라가며 말했다⁠.

“⁠이 골에는 옛날부터 그런 말이 있다 카더라⁠. 불을 먼저 본 사람이 불 낸 사람이라고⁠. 그 여자 엄마가 스물두 해 전에 딱 그랬다⁠.⁠”

희재는 돌아서서 오토바이 쪽으로 걸었다⁠. 변상호가 뒤에서 이름을 불렀지만 돌아보지 않았다⁠. 시동이 두 번 만에 걸렸다⁠. 지프가 남긴 재가 아직 공중에 떠 있었고⁠, 희재는 이 잿가루 속으로 바퀴를 밀어 넣었다⁠.

1화는 어땠나요?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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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해솔작가2026.10.09· 1화

    작가 진해솔입니다. 초소에서는 안 보이는 골 안을 밭의 할머니만 봅니다. 1화의 동초에서 서경이 다시 신고할지 망설이는 마음, 여러분은 어떻게 보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