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517자)

톱 자국

그 골짜기에 불을 낸 사람 · 진해솔

단옥은 어제 삼거리에서 오토바이를 내려 한 시간 반을 걸어 골로 돌아갔다⁠. 희재가 오토바이를 끌고 따라가며 다시 타라고 했지만 단옥은 돌아보지 않았다⁠. 희재는 읍내로 돌아가 엄마에게 가게 건물이 누구 것이냐고 물었고⁠, 엄마는 국수 솥만 젓다가 대답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튿날 해 뜨기 전에 골 안 마당에 들어섰을 때⁠, 벌통 서른 개의 돌판은 이미 다 덮여 있었다⁠.

단옥은 마루 끝에서 칼로 벌집을 자르고 있었다⁠. 통 하나에서 꺼낸 묵은 벌집이 양푼에 담겨 있었고⁠, 칼날이 밀랍을 지날 때마다 꿀이 실처럼 늘어졌다⁠. 마당에 단내가 엎질러져 있었다⁠.

“⁠어제 덮어 준다 캐 놓고 안 왔다⁠.⁠”

“⁠예⁠. 미안합니다⁠.⁠”

“⁠동생 말 들었나⁠?⁠”

희재는 대답 대신 마루에 걸터앉았다⁠. 단옥이 벌집 한 조각을 칼끝에 얹어 내밀었다⁠. 밀랍 모서리에 벌 두 마리가 붙어 꿈틀거리고 있었다⁠.

“⁠무라⁠. 벌 떼지 말고⁠.⁠”

희재는 벌집을 받았다⁠. 벌이 손가락으로 기어 올라왔다⁠. 털지 않았다⁠. 손가락에서 손등으로⁠, 손등에서 손목으로 올라오는 여섯 개의 발이 간지러웠다⁠. 희재는 벌집을 입에 넣으려고 고개를 숙였고⁠, 이 순간 손목의 벌이 날아올라 콧잔등에 앉았다⁠.

따끔한 것이 아니었다⁠. 누가 코에 못을 박은 것 같았다⁠.

희재가 벌집을 문 채 마루에서 미끄러졌다⁠. 단옥이 손톱으로 침을 긁어내고 된장을 한 숟갈 떠서 콧잔등에 발라 주었다⁠. 된장 냄새가 코를 막았다⁠. 희재는 숨을 들이마셨는데 아무 냄새도 들어오지 않았다⁠.

“⁠코가 안 됩니다⁠. 아무것도 안 납니다⁠.⁠”

“⁠한 시간이면 돌아온다⁠.⁠”

“⁠그 한 시간 동안 불나면예⁠?⁠”

단옥이 웃었다⁠. 이번에는 짧게 소리가 났다⁠. 희재는 콧잔등이 부풀어 오르는 것을 손끝으로 느끼며⁠, 이 사람이 소리 내 웃는 것을 처음 들었다는 것을 알았다⁠.

*

둘은 골을 따라 내려갔다⁠. 단옥이 앞서고 희재가 뒤를 따랐다⁠. 개울 바닥은 말라 하얀 돌만 드러나 있었고⁠, 개울 건너 비탈은 아래로 갈수록 더 검었다⁠. 위쪽 나무들은 껍질만 그을렸는데 어귀 쪽으로 내려갈수록 줄기 속까지 타서 숯이 되어 있었다⁠.

“⁠그 저녁에 니는 탑에 있었고⁠, 나는 여기 있었다⁠. 맞춰 보자⁠.⁠”

단옥이 걸음을 멈추지 않고 말했다⁠.

“⁠나는 일곱 시쯤 통을 보고 있었다⁠. 벌이 하나도 안 나가고 다 들어오더라⁠. 저녁인데 날갯소리가 커⁠. 벌은 연기를 먼저 안다⁠. 그라고 차 소리가 났다⁠. 임도 쪽에서⁠.⁠”

“⁠임도는 쇠줄로 막혀 있지 않습니까⁠. 열쇠는 군청 산림계하고 임도 닦은 회사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차 소리가 이상하더라⁠. 올라갔다가 금방 내려왔다⁠. 그라고 한참 있다 연기 냄새가 아래서 올라왔다⁠. 바람 타고⁠.⁠”

“⁠제가 연기 본 기 일곱 시 사십 분입니다⁠. 냄새는 그 전에 맡았고요⁠.⁠”

“⁠불이 우리 개울까지 온 거는 열한 시 넘어서다⁠. 니가 왔을 때⁠.⁠”

희재는 걸음을 멈추고 검은 비탈을 올려다보았다⁠. 아래에서 시작한 불이 바람을 타고 위로 올라간 길이 나무마다 남아 있었다⁠. 그을음이 줄기의 아래쪽⁠, 어귀를 향한 쪽에 더 높이 올라가 있었다⁠. 불은 어귀에서 와서 골 안으로 갔다⁠. 스무 해를 산판에서 산 아버지가 어린 희재에게 가르친 대로 읽으면 그랬다⁠.

임도 어귀에 닿았을 때 콧잔등의 부기가 조금 빠졌다⁠. 희재는 그제 올려 둔 돌 앞에 쪼그려 앉아 흙에 코를 댔다⁠. 된장 냄새가 아직 남아 있었다⁠. 숨을 짧게 끊어 여러 번 들이마셨다⁠. 된장⁠, 탄 흙⁠, 이 밑에서 실오라기만 한 것이 다시 코 안쪽을 긁었다⁠.

“⁠휘발유다⁠.⁠”

단옥이 옆에 쪼그려 앉아 흙에 코를 대 보았다⁠. 한참 있다 고개를 저었다⁠.

“⁠나는 탄내밖에 안 난다⁠.⁠”

“⁠저도 벌에 안 쏘였으면 더 잘 났을 깁니다⁠.⁠”

단옥은 대답하지 않고 일어서서 비탈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가리켰다⁠.

“⁠저기 봐라⁠. 저거는 불이 쓰러뜨린 기 아이다⁠.⁠”

비탈 위로 그루터기가 한 줄로 서 있었다⁠. 무릎 높이로 잘린 소나무 그루터기들이 어귀에서 능선 쪽으로 곧게 줄을 지어 올라갔다⁠. 희재가 다가가 하나를 손바닥으로 쓸었다⁠. 자른 면이 평평했는데⁠, 이 평평한 면까지 검게 타 있었다⁠. 불이 나기 전에 이미 잘려 있던 나무였다⁠. 불이 나고 나서 잘랐으면 자른 면은 하얀 속살이어야 했다⁠.

“⁠봄에 이 줄로 빨간 비닐 깃발이 꽂혀 있었다⁠. 말뚝마다⁠.⁠”

단옥이 말했다⁠.

“⁠사월에 나무 베는 소리가 하루 종일 났다⁠. 하나 뽑아다가 벌통 문패로 달아 놨다⁠. 벌들이 빨간 거를 잘 찾는다⁠.⁠”

희재는 그루터기를 세었다⁠. 열여섯 개가 자로 잰 것처럼 한 줄이었다⁠. 측량선이었다⁠. 사람이 줄을 띄우고 이 줄을 따라 나무를 베어 내는 자리⁠. 산에 무엇을 지을 사람이 맨 먼저 하는 일이었다⁠.

*

열 시가 조금 넘어 임도 아래에서 엔진 톱 소리가 올라왔다⁠.

변상호가 앞에 서고⁠, 뒤로 벌채반 여섯이 엔진 톱을 어깨에 메고 따라왔다⁠. 두석개발 덤프트럭 두 대가 임도 쇠줄 앞에 서서 시동을 끄지 않고 있었다⁠. 변상호는 희재를 보고 걸음을 늦추지 않았다⁠.

“⁠노희재 씨⁠, 니 오늘 근무 아이가⁠? 와 여기 있노⁠?⁠”

“⁠계장님⁠, 이 그루터기 보이소⁠. 자른 면이 탔습니다⁠. 불 나기 전에 벤 깁니다⁠. 측량선입니다⁠. 봄에 누가 여기 줄 띄우고 나무 베었습니다⁠.⁠”

변상호는 그루터기를 보지 않았다⁠. 서류철을 펴더니 맨 위 종이를 희재 앞에 들어 보였다⁠.

“⁠정리 벌채 허가⁠. 오늘 날짜⁠. 군수님 도장 찍혔다⁠. 불탄 나무 그냥 두면 벌레 끼고 산사태 난다⁠. 비키라⁠.⁠”

“⁠봄에 이 줄 베는 거는 누가 허가했습니까⁠?⁠”

“⁠비키라 캤다⁠.⁠”

희재는 그루터기 줄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가 섰다⁠. 벌채반 반장이 엔진 톱 시동줄을 당겼다⁠. 톱이 비명을 질렀다⁠. 휘발유 타는 연기가 희재의 얼굴로 날아왔고⁠, 희재는 이 냄새를 정확히 맡았다⁠. 벌채반 톱에서 나는 냄새와 흙 속의 냄새는 같지 않았다⁠. 엔진 톱은 휘발유에 엔진오일을 섞은 혼합유를 먹었다⁠. 이 기름은 타면서 매캐한 연기를 냈고⁠, 맨 휘발유보다 냄새가 무거웠다⁠.

“⁠계장님⁠, 톱에서 나는 거는 혼합유 냄새고⁠, 저 흙에서 나는 거는 맨 휘발유 냄샙니다⁠. 이 자리에 누가 휘발유를 부었습니다⁠.⁠”

변상호가 서류철을 탁 소리 나게 닫고 겨드랑이에 끼웠다⁠.

“⁠니 지금 군의원님 지역구에서 방화를 말하나⁠? 무슨 증거로⁠? 코로⁠?⁠”

“⁠예⁠. 코로⁠.⁠”

“⁠코는 증거가 아이다⁠. 몇 번 말해야 되노⁠?⁠”

이때 희재의 허리춤 무전기가 울었다⁠.

“⁠갈미봉에서 노희재⁠. 니 거기 어데고⁠? 계장님 그리 갔다 카던데⁠, 내 엽서에 ‘⁠계장님은 서류철을 베개로 쓰십니다⁠’ 이거 써도 되나⁠?⁠”

벌채반 여섯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엔진 톱 소리 위로 누가 웃음을 터뜨렸다⁠. 변상호가 희재의 허리에서 무전기를 뽑아 들었다⁠.

“⁠왕봉순 씨⁠, 계장이다⁠. 엽서 쓰지 마라⁠.⁠”

“⁠개인택시 삼십칠 번⁠, 시장 앞 대기 바랍니다⁠.⁠”

변상호가 무전기를 내려다보다가 희재에게 손바닥을 내밀었다⁠.

“⁠오토바이 열쇠⁠.⁠”

희재는 열쇠를 꺼내 쥐고 있었다⁠.

“⁠노희재 씨⁠, 근무지 이탈 두 번에 공무 방해다⁠. 오늘부로 감시원 해촉이다⁠. 탑에 다시 올라가면 무단 침입이다⁠. 열쇠 내라⁠.⁠”

희재가 열쇠를 손바닥에 올렸다⁠. 변상호는 열쇠를 집어 주머니에 넣고 벌채반에 손짓했다⁠. 톱이 그루터기로 내려갔다⁠. 반장이 그루터기를 땅바닥과 나란히 잘라 냈고⁠, 검게 탄 윗동이 원반처럼 떨어져 굴렀다⁠. 다음 그루터기⁠, 다음 그루터기⁠. 열여섯 개가 십오 분 만에 땅에 붙어 하얀 속살만 드러냈다⁠. 흙을 실은 트럭이 쇠줄을 넘어 들어와 붉은 흙을 비탈에 쏟았다⁠. 희재가 돌을 올려 두었던 자리가 흙 아래로 사라졌다⁠.

단옥은 그사이 한 번도 소리를 내지 않았다⁠. 벌채반이 다음 비탈로 올라간 뒤에야 단옥이 희재 옆으로 왔다⁠. 앞치마 주머니가 불룩했다⁠. 단옥이 주머니를 살짝 벌려 보였다⁠. 검게 탄 원반 하나가 들어 있었다⁠. 위는 숯이었고 아래는 하얀 속살이었다⁠. 이 사이에 톱날이 지나간 결이 두 겹으로 남아 있었다⁠. 봄에 벤 결과 오늘 벤 결이었다⁠.

“⁠굴러오길래 주웠다⁠.⁠”

“⁠그거⁠, 아무한테도 보이지 마이소⁠.⁠”

“⁠내가 니 말고 누구한테 보이노⁠?⁠”

*

저녁 여덟 시⁠, 국숫집 셔터가 반쯤 내려왔을 때 이 아래로 왕봉순이 허리를 숙이고 들어왔다⁠. 마흔여섯 살 봉순은 한 손에 희재의 가방을⁠, 다른 손에 비닐봉지를 들고 있었다⁠. 봉지 안에서 소주병 두 개가 부딪쳤다⁠.

“⁠니 짐⁠. 탑에 있던 거 다 챙겼다⁠. 김도 있고 수건도 있고 니가 몰래 숨겨 둔 쥐포도 있다⁠. 쥐포는 내가 반 먹었다⁠.⁠”

희재는 가방을 받아 무릎에 올렸다⁠. 가방에서 탑 냄새가 났다⁠. 볕에 달군 유리와 먼지와 모기향 냄새였다⁠. 봉순은 엄마가 내온 열무김치를 젓가락으로 집으며 목소리를 낮추었다⁠.

“⁠오늘 낮에 맹 의원이 탑까지 올라왔다⁠. 흰 지프 끌고⁠. 그 양반 계단 다 올라오더니 숨을 넘어가게 쉬더라⁠. 높은 데 못 서는 사람이다⁠. 난간도 안 잡고 방위판만 붙잡고 서 있었다⁠.⁠”

“⁠뭐라 캅디까⁠?⁠”

“⁠그 저녁 연기⁠, 내가 봤을 때 어데 서 있었냐고⁠. 내가 올라갔을 때는 벌써 골 안으로 다 누워 있었다 캤지⁠. 그랬더니 그 양반이 그라대⁠. 봉순 씨 라디오에 엽서 보낸다매⁠? 방송국 국장이 내 친구다⁠. 봉순 씨 엽서 매주 읽어 주라 칼 수 있다⁠. 대신 그 저녁에 연기가 121도 쪽에 있었다고 기억해 보라고⁠.⁠”

희재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래서요⁠?⁠”

봉순이 소주를 따르며 콧방귀를 뀌었다⁠.

“⁠내가 니보다 나이가 스무 살 많다⁠. 내 엽서는 내 글 솜씨로 읽히는 기지 국장 친구 빽으로 읽히는 기 아이다⁠. 그라고 나는 121이 어데 붙어 있는지도 모른다⁠. 방위판은 니가 보는 거고 나는 무전기 담당이다⁠.⁠”

봉순이 잔을 비우고 희재의 부은 코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근데 니 코는 와 그렇노⁠? 누구한테 맞았나⁠?⁠”

“⁠벌한테요⁠.⁠”

“⁠그것도 엽서에 쓴다⁠.⁠”

“⁠언니⁠.⁠”

“⁠탑에는 내가 있다⁠. 니 코 대신 내 눈이 있다⁠. 그거 하나는 믿어라⁠.⁠”

*

율산읍 국숫집 뒷방은 밤이 되어도 낮의 국수 삶은 김이 빠지지 않았다⁠. 희재는 선풍기를 틀어 놓고 벽에 등을 대고 앉아 있었다⁠. 콧잔등은 아직 부어 있었고⁠, 엄마는 봉순이 돌아간 뒤 셔터를 끝까지 내리면서도 희재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열한 시 반에 뒷문이 열렸다⁠. 인택이었다⁠. 작업복에서 붉은 흙먼지가 떨어졌고⁠, 술 냄새가 났다⁠. 인택은 방에 들어오지 않고 문턱에 서서 담배를 꺼냈다⁠.

“⁠누나⁠, 오늘 어귀에서 계장님하고 붙었다매⁠. 현장에 다 소문났다⁠.⁠”

“⁠잘렸다⁠. 그것도 소문났나⁠?⁠”

“⁠났다⁠. 사장님이 내 불러서 그러더라⁠. 니 누나 그만하라 캐라고⁠.⁠”

인택이 라이터를 켰다⁠. 불꽃이 두 번 꺼졌다⁠. 세 번째에 겨우 담배 끝에 불이 붙었다⁠.

“⁠누나 계속하면 내 잘린다⁠. 엄마 가게도 위험하다⁠. 이 건물 누구 건지 모르제⁠?⁠”

“⁠누구 건데⁠?⁠”

인택은 대답하지 않고 연기만 길게 내뱉었다⁠. 희재는 동생의 손을 보았다⁠. 담배를 쥔 손가락이 떨려서 재가 문턱에 떨어졌다⁠. 희재는 일어서서 문턱으로 갔다⁠. 동생 작업복에서 흙먼지 냄새⁠, 술 냄새⁠, 담배 냄새가 차례로 났다⁠. 그리고 소매 깊숙한 데서⁠, 빨래를 몇 번 했는지 모를 천에 배어 아직 빠지지 않은 냄새가 올라왔다⁠.

희재는 동생의 소매를 잡았다⁠.

“⁠인택아⁠. 니 그날 저녁 일곱 시에 어데 있었노⁠?⁠”

인택이 소매를 잡아 뺐다⁠. 담배가 손가락에서 떨어져 문턱 위에서 굴렀다⁠. 인택은 이걸 줍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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