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355자)

강아지 사진을 보내는 면접관

8조 해킹한 정찰총국 막내 해커 · 금나율

2026년 11월 4일 수요일 아침 여덟 시⁠, 서울 강남⁠. 김옥화는 가람엑스 19층 보안팀 자리에서 바이낸스 초기 보고서를 형광펜으로 긋고 있었다⁠. 어제 저녁 공개된 영문 보고서를 밤새 우리말로 옮겨 출력한 것이었다⁠. 노란 줄은 사실⁠, 분홍 줄은 우리 회사에도 있는 구멍이었다⁠. 넉 장을 넘기는 사이 분홍이 노랑보다 많아졌다⁠.

화이트보드에 옥화가 손으로 다섯 줄을 적어 두었다⁠. 6월⁠, 지갑 개발자 하나가 수상한 개발 도구를 받다⁠. 9월⁠, 다른 엔지니어에게 가짜 이직 제안⁠. 최종 면접⁠, 대표로 꾸민 사람이 과제를 내다⁠. 10월⁠, 회사 안이 한 사람씩 넘어가다⁠. 10월 29일⁠, 이십 분 만에 63억 4천만 달러⁠.

옥화는 턱선에서 자른 단발을 귀 뒤로 넘겼다⁠. 흰머리 몇 가닥이 손가락에 같이 딸려 왔다⁠. 검은 뿔테 안경을 벗어 셔츠 자락에 닦고 다시 썼다⁠. 책상 모니터 옆에 고양이 사진 한 장이 붙어 있었다⁠. 회색 줄무늬 고양이가 빨래 바구니에 들어앉아 있었고⁠, 사진 밑에 매직으로 「⁠반룡이⁠」라고 쓰여 있었다⁠.

“⁠팀장님⁠, 8조면 떡볶이가 몇 그릇이에요⁠?⁠”

팀 막내 주태강이 커피 두 잔을 들고 왔다⁠. 스물여섯⁠, 입사 두 해째였고 모든 숫자를 떡볶이로 바꿔 보는 버릇이 있었다⁠.

“⁠모르겠습니다⁠.⁠”

“⁠팀장님이 모르시는 것도 있어요⁠?⁠”

“⁠떡볶이는 모르겠습니다⁠. 이건 압니다⁠.⁠” 옥화가 형광펜으로 보고서 한 줄을 짚었다⁠. “⁠바이낸스는 올해 북쪽 소행으로 보이는 공격을 57건이나 잡아냈어요⁠. 사람 하나 꼬드기는 건 못 막았고요⁠.⁠”

“⁠기계는 막고 사람은 못 막았네요⁠. 완전 저희 얘기잖아요⁠.⁠”

“⁠태강 씨⁠, 커피 고맙습니다⁠. 일없습니다⁠, 거기 두세요⁠.⁠”

“⁠일이 없다고요⁠? 저 오늘 야근인데요⁠?⁠”

“⁠괜찮다는 말입니다⁠.⁠”

“⁠아⁠, 팀장님 고향 말⁠. 이제 반은 알아들어요⁠.⁠”

옥화는 커피를 받아 들고 휴대전화를 열었다⁠. 업계 보안 담당자들이 모인 단톡방이 밤새 시끄러웠다⁠. 「⁠바이낸스 출금 다시 열자마자 아홉 시간 반 동안 46억 달러 빠짐⁠」 「⁠순유출만 5조 가까이⁠」 「⁠우리 회사도 이직 제안 받았다는 개발자 둘⁠」⁠. 마지막 줄에서 옥화는 엄지를 멈췄다⁠.

*

아홉 시 반⁠, 지갑팀 윤재하가 휴대전화 충전기를 빌리러 왔다⁠. 거래소가 이용자 돈을 넣어 두는 전자 지갑을 돌보는 팀이었다⁠. 곱슬머리가 한쪽으로 눌려 있었다⁠. 밤새 회사 소파에서 잔 머리였다⁠.

“⁠팀장님⁠, 충전기 하나만요⁠. 제 거 고양이가 씹어서⁠…⁠… 아⁠, 팀장님네 고양이 말고요⁠.⁠”

“⁠가져가세요⁠. 재하 씨⁠, 요즘 이직 제안 받은 거 있어요⁠?⁠”

재하가 충전기를 쥔 채 굳었다가 웃었다⁠.

“⁠어떻게 아셨어요⁠? 싱가포르 핀테크요⁠. 라운드레이크라고⁠, 거기 채용 담당이 진짜 좋은 사람이에요⁠. 에릭 씨라고⁠, 프렌치불도그를 키우는데 이름이 망고예요⁠. 망고가 어제 수박을 먹고⁠…⁠…⁠.⁠”

“⁠그 사람이 사진을 보냈어요⁠?⁠”

“⁠네⁠, 계정도 알려 줬어요⁠. 산책 사진⁠, 동생 결혼식 사진⁠. 사람이 솔직하더라고요⁠. 저도 우리 콩이 사진 보냈죠⁠.⁠” 재하가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보세요⁠. 망고 엄청 귀엽죠⁠?⁠”

화면 속 프렌치불도그가 혀를 내밀고 있었다⁠. 옥화는 개를 보지 않고 화면 위쪽의 날짜를 보았다⁠. 첫 메시지는 10월 31일이었다⁠. 바이낸스 새벽 다음 날이었다⁠.

“⁠재하 씨⁠, 에릭이 뭐 보낸 파일 있어요⁠?⁠”

“⁠사전 과제요⁠. 코딩 문제 세 개요⁠. 아직 안 열었어요⁠, 이번 주말에 하려고⁠.⁠”

“⁠열지 마세요⁠. 답장도 하지 마세요⁠.⁠”

“⁠네⁠? 왜요⁠? 연봉이 지금의 두 배인데요⁠.⁠”

옥화는 화이트보드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재하가 다섯 줄을 위에서부터 읽어 내려갔다⁠. 두 번째 줄에서 재하의 입이 조금 벌어졌고⁠, 세 번째 줄에서 충전기를 떨어뜨렸다⁠.

“⁠망고가⁠…⁠… 가짜예요⁠?⁠”

“⁠개는 진짜일 수도 있어요⁠. 개 주인이 가짜고요⁠.⁠”

*

열한 시⁠, 대표실 유리문에 「⁠회의 중⁠」 팻말이 붙어 있었다⁠. 옥화는 팻말을 손으로 젖히고 들어갔다⁠. 강도원 대표가 소파에서 홍보팀장과 보도자료 초안을 보고 있었다⁠. 제목 줄에 「⁠가람엑스⁠, 바이낸스 사태에도 안전 이상 무⁠」라고 적혀 있었다⁠.

“⁠김 팀장님⁠, 마침 잘 오셨어요⁠. 이 문장 좀 봐 주세요⁠. ‘⁠이상 무⁠’가 나아요⁠, ‘⁠이상 없음⁠’이 나아요⁠?⁠”

“⁠둘 다 틀렸습니다⁠. 이상 있습니다⁠.⁠”

옥화가 재하의 휴대전화 화면을 출력한 종이를 탁자에 올렸다⁠. 강도원은 종이를 들고 망고 사진을 한참 보았다⁠.

“⁠귀엽네⁠.⁠”

“⁠바이낸스와 같은 수법입니다⁠. 가짜 이직 제안⁠, 사진으로 친해지기⁠, 과제 파일⁠. 지갑팀 개발자를 골라서 왔습니다⁠. 오늘 안에 수사기관에 알리고⁠, 전 직원에게 공지해야 합니다⁠. 이직 제안 받은 사람은 전부 보안팀에 말하라고요⁠.⁠”

“⁠전 직원 공지는 안 됩니다⁠.⁠”

“⁠왜요⁠?⁠”

강도원이 보도자료를 내려놓았다⁠. “⁠팀장님⁠, 바이낸스가 출금 다시 열자마자 5조가 빠져나갔어요⁠. 바이낸스니까 버텼죠⁠. 우리가 공지 한 줄 내면 저녁에 기사가 나고⁠, 내일 아침에 이용자들이 돈을 뺍니다⁠. 12월에 은행 실명계좌 재계약 있어요⁠. 투자 설명회도 있고요⁠. 지금 우리 이름이 해킹이라는 낱말 옆에 붙으면 끝이에요⁠.⁠”

“⁠이름이 해킹 옆에 붙는 것보다 돈이 해커 옆에 붙는 게 더 끝입니다⁠.⁠”

홍보팀장이 볼펜을 입에 물었다⁠. 강도원은 웃지 않았다⁠.

“⁠그러니까 조용히 막아 주세요⁠. 그게 보안팀 일이잖아요⁠. 사고 말고 이벤트로 가죠⁠. ‘⁠보안 점검 이벤트⁠’⁠.⁠”

“⁠이벤트는 경품 줄 때 쓰는 말입니다⁠.⁠”

“⁠그럼 ‘⁠보안 점검 주간⁠’⁠.⁠”

“⁠대표님⁠, 저는 신고합니다⁠. 신고는 회사 마음대로 안 하는 게 아니라 법이 하라는 겁니다⁠.⁠”

“⁠그럼 팀장님 이름으로 하세요⁠.⁠” 강도원이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실제로 돈이 나간 것도 아니고 이직 제안 하나잖아요⁠. 수사기관에서 우리 회사 이름이 새어 나가면⁠, 그 책임도 팀장님 이름으로 지시고요⁠.⁠”

옥화는 출력물을 접었다⁠. 반으로 접고 다시 반으로 접어 셔츠 주머니에 넣었다⁠. 대표실을 나오며 휴대전화 연락처에서 이름 하나를 찾았다⁠. 「⁠차승규 — 국정원⁠」⁠. 열다섯 해 전⁠, 남으로 와서 처음 마주 앉은 조사관이었다⁠. 통화 단추를 누르지는 않았다⁠. 아직 보여 줄 것이 종이 한 장뿐이었다⁠.

*

오후 세 시⁠, 옥화는 지갑팀 작은 회의실에서 재하와 마주 앉았다⁠. 재하는 노트북을 방패처럼 품에 안고 있었다⁠.

“⁠팀장님⁠, 저 혼나는 거예요⁠?⁠”

“⁠아니요⁠. 묻는 겁니다⁠. 에릭한테 회사 이야기 한 거 있어요⁠?⁠”

“⁠없어요⁠. 진짜 없어요⁠. 개 이야기만 했어요⁠. 그리고 야근 이야기⁠. 우리 팀 야근 이야기는 좀 했어요⁠.⁠”

“⁠몇 명이 야근하는지도요⁠? 누가 무슨 일을 맡는지도요⁠?⁠”

재하가 노트북을 더 꽉 안았다⁠. “⁠그런 건 안 했어요⁠.⁠”

대답이 빨랐다⁠. 옥화는 재하의 손등을 보았다⁠. 엄지가 노트북 모서리를 계속 문지르고 있었다⁠. 옥화는 더 묻지 않고 기다렸다⁠. 재하가 먼저 입을 열었다⁠.

“⁠팀장님⁠, 근데 저 진짜 옮기고 싶었어요⁠. 보안 예산 두 해 연속 깎이고⁠, 지갑팀 셋이서 다섯 명 일 하잖아요⁠. 에릭이 가짜라도요⁠, 연봉 두 배 주는 회사가 어딘가 있다는 말은 진짜처럼 들렸어요⁠.⁠”

“⁠가짜 회사가 주는 두 배는 영의 두 배입니다⁠.⁠”

“⁠그건 아는데요⁠.⁠” 재하가 고개를 들었다⁠. “⁠팀장님은 회사 편이에요⁠, 우리 편이에요⁠?⁠”

“⁠돈 맡긴 사람들 편입니다⁠. 이백만 명이요⁠.⁠”

재하가 입을 삐죽였다⁠. 옥화는 탁자 위 화이트보드 지우개를 집어 손바닥에 굴렸다⁠.

“⁠예산은 제가 대표님하고 싸웁니다⁠. 대신 재하 씨는 오늘부터 에릭한테 아무 말도 하지 마세요⁠. 개 이야기도요⁠.⁠”

“⁠망고가 서운해할 텐데⁠.⁠”

“⁠망고는 재하 씨 이름도 몰라요⁠.⁠”

회의실을 나오는 길에 옥화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중국 연길 번호였다⁠. 해마다 함흥의 어머니에게 돈을 넣어 주는 중개인 김 선생이었다⁠. 바이낸스 일 뒤로 국경 단속이 세져서 이번에는 수수료를 더 받아야 한다고 했다⁠. 옥화는 얼마냐고 묻지 않았다⁠.

“⁠선생님⁠, 이번에는 어머니 사진 한 장 받을 수 있습니까⁠? 지금 얼굴로요⁠.⁠”

“⁠사진은 따로 백만 원입니다⁠. 사진 찍는 사람이 위험해서요⁠.⁠”

“⁠보내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옥화는 엘리베이터 거울을 보았다⁠. 마지막으로 본 어머니는 지금 옥화보다 젊었다⁠.

*

밤 열 시⁠, 사무실에 옥화 혼자 남았다⁠. 태강은 아홉 시까지 남아 있다가 「⁠팀장님 저 진짜 가요⁠, 진짜⁠」를 세 번 하고 갔다⁠. 옥화는 서랍에서 낡은 노트북을 꺼냈다⁠. 회사 망에도 인터넷에도 이어지지 않은⁠, 수상한 파일을 열어 보는 데만 쓰는 노트북이었다⁠. 재하가 넘겨준 사전 과제 파일을 옮겨 담고 열었다⁠.

코딩 문제 세 개는 평범했다⁠. 목록을 정리하는 문제⁠, 숫자를 고르는 문제⁠, 날짜를 맞추는 문제⁠. 에릭이 보낸 문제 아래에 「⁠참고용 예시 답안⁠」이 붙어 있었다⁠. 친절한 면접관이 지원자의 부담을 덜어 주려고 붙인 예시였다⁠. 파일 자체에서는 나쁜 것이 나오지 않았다⁠. 사람을 낚을 때는 첫 미끼에 바늘을 달지 않는다⁠.

옥화는 예시 답안을 천천히 내려 읽었다⁠. 임시로 쓰는 이름들이 줄줄이 나왔다⁠. 영어 사이에 우리말을 소리 나는 대로 옮긴 이름이 섞여 있었다⁠. 「⁠baekdu⁠」⁠, 「⁠nangnim⁠」⁠, 「⁠myohyang⁠」⁠, 「⁠chilbo⁠」⁠.

백두⁠, 낭림⁠, 묘향⁠, 칠보⁠.

옥화는 노트북에서 손을 뗐다⁠. 손바닥이 차가웠다⁠. 2007년 봄⁠, 평양 김책공업종합대학 실습실이 떠올랐다⁠. 석탄 난로 하나에 학생 서른 명⁠, 정전이 되면 손전등을 입에 물고 칠판을 보던 방이었다⁠. 스물다섯 살 조교 김옥화가 칠판에 썼다⁠.

“⁠임시 이름을 하나⁠, 둘⁠, 셋으로 붙이면 밤새우다 헷갈립니다⁠. 산 이름을 붙이세요⁠. 북에서 남으로⁠. 백두⁠, 낭림⁠, 묘향⁠, 칠보⁠, 금강⁠. 산은 순서가 안 헷갈립니다⁠.⁠”

학생 하나가 손을 들었다⁠. “⁠조교 선생님⁠, 금강 다음은 뭡니까⁠?⁠”

“⁠그다음은 각자 고향 산을 넣으세요⁠. 저는 반룡산입니다⁠. 함흥에 있어요⁠.⁠”

학생들이 웃었다⁠. 함흥 촌사람이라고 놀리는 웃음이었다⁠. 옥화도 웃었다⁠. 남으로 오고 열다섯 해 동안 옥화는 산 이름 버릇을 한 번도 쓰지 않았다⁠. 남쪽 회사에서 산 이름을 붙인 코드를 내는 일은 누가 묻기도 전에 제 입으로 고향을 말하는 일이었다⁠.

예시 답안의 이름은 칠보 다음 다섯 번째 자리의 「⁠geumgang⁠」에서 끝났다⁠. 반룡산은 없었다⁠. 옥화가 가르친 순서를 누군가 그대로 배웠고⁠, 배운 사람이 또 누군가에게 가르쳤다⁠. 이 줄을 친 손은 옥화가 떠난 뒤에 실습실에 앉은 손이었다⁠. 옥화는 계산해 보았다⁠. 2011년에 떠났다⁠. 지금 이 버릇으로 코드를 쓰는 아이라면 스무 살 언저리에 배웠을 것이다⁠.

옥화는 휴대전화를 들어 재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재하 씨⁠, 내일 아침 에릭 계정 비밀번호 저한테 주세요⁠. 답장은 제가 씁니다⁠.⁠」

답은 일 분 만에 왔다⁠. 「⁠팀장님 저 아직 회사예요⁠. 근데 망고는요⁠? 망고한테는 뭐라고 해요⁠?⁠」

옥화는 웃음이 나오려는 입을 손등으로 눌렀다⁠. 노트북 화면에서 커서가 「⁠geumgang⁠」 뒤에서 깜박이고 있었다⁠. 옥화는 자판에 손가락을 올리고⁠, 아무도 보지 않는 빈 줄에 천천히 쳤다⁠. 「⁠banryong⁠」⁠.

2화는 어땠나요?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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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가자리2026.11.06· 2화

    다정한 이직 제안 첨부 파일에서 옛 버릇을 알아보는 옥화 팀장 소름이었어요. 그 와중에 재하 씨가 「망고는요?」 묻는 데서 웃음 터졌고요. 마지막에 「banryong」 치는 장면에서 판이 뒤집히는 느낌이 왔습니다.

    • 금나율작가2026.11.06

      옥화는 그 이름을 2007년 교실에서 처음 봤어요. 반룡산 이야기가 바로 다음 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