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338자)

반룡산

8조 해킹한 정찰총국 막내 해커 · 금나율

2026년 11월 6일 금요일 아침⁠, 선양 서탑⁠. 리명길은 송이버섯 상자 다섯 개를 겹쳐 안고 조선 식당 뒷문 계단을 올라가고 있었다⁠. 상자에서 솔잎 냄새와 흙냄새가 같이 올라왔다⁠. 냉장고에서 막 꺼낸 상자라 손가락이 시렸고⁠, 맨 위 상자가 턱을 자꾸 밀었다⁠.

서탑은 선양에서 조선말 간판이 가장 많은 거리였다⁠. 냉면집⁠, 김치 가게⁠, 노래방⁠, 한국 화장품 가게가 한 블록 안에 몰려 있었고⁠, 간판마다 한글과 한자가 위아래로 붙어 있었다⁠. 아침 거리에서 조선말과 중국말과 남쪽 말투가 섞여 들렸다⁠.

“⁠막내⁠, 계단 조심해라⁠. 그거 진짜 송이다⁠. 떨어뜨리면 네 월급에서 깐다⁠.⁠”

염상혁이 빈손으로 뒤를 따라오며 말했다⁠. 식당 주인 류 사장이 뒷문을 열고 상자를 받았다⁠. 중국 사람이었지만 조선말을 서툴게 했고⁠, 상혁을 보면 늘 “⁠염 과장⁠”이라고 불렀다⁠. 상혁은 과장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등을 펴고 목소리를 반 옥타브 올렸다⁠.

“⁠류 사장님⁠, 이번 송이는 칠보산 송이입니다⁠. 향이 다릅니다⁠.⁠”

“⁠지난번에도 칠보산이라고 했잖아요⁠.⁠”

“⁠지난번에는 칠보산 남쪽이고⁠, 이번에는 북쪽입니다⁠.⁠”

류 사장이 상자 하나를 열어 송이 하나를 코에 대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명길은 상혁의 등 뒤에서 웃음을 참았다⁠. 칠보산에 남쪽과 북쪽 송이가 따로 있다는 말은 상혁이 계단을 오르는 동안 만든 말이었다⁠.

차로 돌아오는 길에 상혁이 운전대를 잡고 물었다⁠.

“⁠에릭은 어찌 됐니⁠? 서울 아새끼가 답을 했니⁠?⁠”

“⁠아직입니다⁠. 엿새째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처음부터 말했지⁠. 남자 면접관에 개 사진은 약하다⁠. 여자로 해라⁠. 사진은 이거로⁠.⁠”

상혁이 신호에 멈춘 사이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단발머리 가수가 무대에서 웃고 있었다⁠.

“⁠선배님⁠, 이건 남조선 가수입니다⁠.⁠”

“⁠예쁘잖니⁠.⁠”

“⁠남조선 개발자들이 다 아는 얼굴입니다⁠. 첫 메시지에서 들킵니다⁠.⁠”

“⁠그럼 덜 유명한 가수로⁠.⁠”

“⁠가수는 다 들킵니다⁠.⁠”

상혁이 휴대전화를 거둬들이고 혀를 찼다⁠. 신호가 바뀌자 차 옆으로 공안 순찰차가 붙었다가 앞질러 갔다⁠. 상혁은 말없이 속도를 줄였다⁠. 계기판 옆에 상혁의 휴대전화 배경 화면이 다시 떴다⁠. 강보에 싸인 갓난아기 사진이었다⁠. 9월에 평양에서 태어난 딸이었고⁠, 상혁은 아직 한 번도 안아 보지 못했다⁠.

“⁠연말 총화 끝나면 들어간다⁠. 딸 백일에 맞춰⁠.⁠” 상혁이 화면을 엄지로 쓸었다⁠. “⁠그러니까 서른 상자⁠, 빨리 채워라⁠. 네 일이 늦으면 내 백일이 늦는다⁠.⁠”

“⁠딸 백일입니다⁠, 선배님 백일이 아니고⁠.⁠”

“⁠그게 그거다⁠.⁠”

차가 서탑을 빠져나가는 길에 상혁이 갑자기 오른쪽으로 꺾었다⁠. 큰길로 가면 오 분이면 될 길을 골목 세 개를 돌아 십오 분 걸려 갔다⁠. 상혁은 늘 그렇게 다녔다⁠.

“⁠선배님⁠, 왜 매번 돌아갑니까⁠?⁠”

“⁠저 앞에 남조선 총영사관이 있다⁠. 그 앞으로는 안 지나간다⁠. 우리 같은 사람이 그 문 앞을 지나가면 사진이 찍힌다⁠.⁠”

“⁠누가 찍습니까⁠?⁠”

“⁠다 찍는다⁠. 남조선도 찍고⁠, 공안도 찍고⁠, 우리 쪽 사람도 찍는다⁠.⁠”

명길은 골목 끝으로 멀리 보이는 회색 건물을 보았다⁠. 건물 앞에 공안 둘이 서 있었고⁠, 정문 위에 태극기가 늘어져 있었다⁠. 문에서 횡단보도까지는 열 걸음쯤이었다⁠. 상혁이 운전대를 꺾자 건물은 금세 빌딩 뒤로 사라졌다⁠.

“⁠막내⁠, 저 문은 잊어라⁠. 저기 들어간 사람 가족은 다 지방 간다⁠.⁠”

상혁은 농담처럼 말하지 않았다⁠. 명길은 대답하지 않고 무릎 위의 빈 송이 상자를 손바닥으로 눌렀다⁠.

*

오후 사무실은 조용했다⁠. 조장은 창가 자리에서 아침부터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미국 수사기관 FBI가 북쪽 해킹 조직 트레이더트레이터를 지목했다는 기사가 사흘째 뉴스 창 맨 위에 떠 있었다⁠. 트레이더트레이터는 지난해 바이비트라는 거래소에서 15억 달러를 빼 간 조직이라고 기사는 덧붙였다⁠. 상혁은 기사 제목을 소리 내어 읽다가 조장의 눈치를 보고 그만두었다⁠. 블록체인을 쫓는 미국 회사 TRM 랩스도 같은 이름을 댔다⁠. 사무실 사람들은 트레이더트레이터라는 이름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여기는 해림무역이었다⁠.

명길은 문 옆 자리에서 에릭의 계정을 열어 놓고 있었다⁠. 대화창에는 명길이 보낸 말만 쌓여 있었다⁠. 10월 31일 첫 인사⁠, 11월 2일 망고 산책 사진⁠, 11월 4일 「⁠과제는 부담 갖지 마세요⁠」⁠. 윤재하의 마지막 답은 11월 3일 저녁의 콩이 사진이었다⁠. 털이 하얀 몰티즈가 방석 위에서 자고 있었다⁠.

다니엘 때는 엔지니어가 이틀 만에 답했다⁠. 엿새면 늦었다⁠. 이직 제안을 받은 사람이 엿새 동안 말이 없으면 둘 중 하나였다⁠. 바빠서 잊었거나⁠, 누군가에게 말했거나⁠.

“⁠막내⁠.⁠”

금철이 칸막이 너머에서 불렀다⁠. 감색 양복에 「⁠해림무역 대표⁠」 명찰을 단 평소 차림이었다⁠.

“⁠에릭 답 왔니⁠?⁠”

“⁠아직입니다⁠, 사장님⁠.⁠”

“⁠평양 시간으로 오늘이 11월 6일이다⁠. 연말까지 55일 남았다⁠.⁠”

금철은 날짜만 말하고 칸막이 안으로 들어갔다⁠. 명길은 달력을 보았다⁠. 금철은 날짜도 평양 시간으로 셌다⁠. 베이징 시간이나 평양 시간이나 날짜는 같았다⁠.

평양 시간 저녁 일곱 시 십이 분⁠, 에릭의 화면에 알림이 떴다⁠.

「⁠에릭 씨⁠, 늦어서 죄송해요⁠. 회사 일이 몰려서요⁠. 과제 세 개 다 풀었어요⁠. 망고 수박 사진 보고 웃었어요⁠. 콩이는 요즘 수박 껍질만 먹어요⁠.⁠」

파일 하나가 붙어 있었다⁠. 명길은 숨을 내쉬었다⁠. 늦었지만 왔다⁠.

*

들어오는 파일은 먼저 상혁의 손을 거쳤다⁠. 사무실 규칙이었다⁠. 상혁이 인터넷에서 떼어 놓은 검사용 컴퓨터에 파일을 옮겨 열었고⁠, 명길은 상혁의 어깨 너머로 화면을 보았다⁠.

과제 세 개의 답은 깔끔했다⁠. 깔끔하다 못해 지나쳤다⁠. 지갑팀에서 셋이 다섯 명 몫을 한다는 개발자가 주말도 안 기다리고 쓴 답이라기에는 줄 하나하나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명길은 답안의 임시 이름들을 내려 읽었다⁠.

「⁠baekdu⁠」 「⁠nangnim⁠」 「⁠myohyang⁠」 「⁠chilbo⁠」 「⁠geumgang⁠」⁠.

명길이 예시 답안에 쓴 순서 그대로였다⁠. 남쪽 개발자가 예시를 따라 했다⁠. 그럴 수 있었다⁠. 착한 지원자는 면접관의 버릇을 따라 한다⁠.

여섯 번째 이름이 있었다⁠.

「⁠banryong⁠」⁠.

명길의 손가락이 책상 모서리를 눌렀다⁠. 김책 실습실의 한창범 교원이 떠올랐다⁠. 서른을 갓 넘긴 교원은 첫 수업에서 칠판에 산 이름 다섯 개를 쓰고⁠, 다섯 번째 금강 옆에 분필로 점 하나를 찍었다⁠.

“⁠이 버릇은 내 선생님한테서 배웠다⁠. 함흥 사람이었는데 금강 다음에 꼭 반룡산을 넣었다⁠. 함흥에 있는 산이다⁠. 너희는 너희 고향 산을 넣어라⁠.⁠”

학생 하나가 물었다⁠. “⁠그 선생님은 지금 어디 계십니까⁠?⁠” 한창범 교원은 분필을 내려놓았다⁠.

“⁠없다⁠. 이름은 묻지 마라⁠.⁠”

교실이 조용해졌고⁠, 명길은 입학한 해 봄에 처음으로 반룡산이라는 이름을 공책에 옮겨 적었다⁠. 명길의 고향 산은 평양의 대성산이었지만⁠, 명길은 금강 다음에 아무것도 넣지 않는 버릇을 들였다⁠. 고향 산을 넣으라는 말이 이상하게 무서웠다⁠.

답안 맨 아래⁠, 마지막 함수 끝에 한 줄짜리 주석이 있었다⁠.

「⁠// 기숙사 3층 끝방 창문은 아직도 안 닫히나요⁠」

명길은 숨을 멈췄다⁠. 김책 기숙사 3층 끝방 창문은 경첩이 휘어서 닫히지 않았다⁠. 명길이 입학하기 전부터 그랬고⁠, 졸업할 때도 그랬다⁠. 겨울이면 학생들이 신문지를 접어 틈에 끼웠다⁠. 3층 끝방에서 산 사람만 아는 일이었다⁠.

“⁠이게 뭐냐⁠?⁠”

상혁이 커서로 주석을 짚었다⁠. 명길은 심장이 목에서 뛰는 것을 느꼈다⁠.

“⁠기숙사 창문⁠? 이 아새끼가 우리 김책을 어떻게 알아⁠? 그리고 반룡은 또 뭐냐⁠?⁠”

“⁠선배님⁠, 남조선 개발자들은 주석에 혼잣말을 잘 씁니다⁠. 회사 기숙사 창문이 고장 났나 봅니다⁠.⁠”

“⁠남조선 회사에 기숙사가 있니⁠?⁠”

“⁠큰 회사는 있습니다⁠. 지방에서 올라온 개발자들 재우는 데입니다⁠.⁠”

“⁠반룡은⁠?⁠”

“⁠용입니다⁠. 남쪽에서 유행하는 휴대전화 놀이에 나오는 용 이름입니다⁠. 개발자들은 놀이에 나오는 이름을 변수에 많이 붙입니다⁠.⁠”

명길은 거짓말이 이렇게 길게 나오는 것에 스스로 놀랐다⁠. 다니엘을 할 때 여섯 주 동안 쌓인 솜씨였다⁠. 상혁이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명길을 올려다보았다⁠. 오래 보았다⁠.

“⁠막내⁠, 너 바이낸스 끝나고 좀 이상하다⁠.⁠”

“⁠무엇이 말입니까⁠?⁠”

“⁠다니엘 계정 아직 안 지웠지⁠? 내가 다 안다⁠.⁠”

명길은 대답하지 않았다⁠. 상혁이 검사용 컴퓨터의 화면을 껐다⁠.

“⁠파일은 깨끗하다⁠. 답안에 나쁜 건 없다⁠. 용 이름이든 창문이든 상관없다⁠. 대신 평양 가기 전까지 네가 서른 상자 못 채우면⁠, 다니엘 계정 이야기는 내가 사장님께 한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다음부터 놀이에 나오는 용 이름 같은 건 미리 말해라⁠. 나도 남조선 놀이 좀 알아야 영업을 하지⁠.⁠”

상혁이 일어나 탕비실로 갔다⁠. 명길은 꺼진 화면에 비친 자기 얼굴을 한참 보았다⁠.

창가에서 조장이 의자를 돌렸다⁠. 조장은 하루 종일 한마디도 하지 않다가⁠, 명길과 눈이 마주치자 턱으로 탕비실을 가리켰다⁠. 탕비실에서 상혁이 휴대전화로 남쪽 휴대전화 놀이를 찾아보는 소리가 났다⁠. “⁠반룡⁠…⁠… 반룡⁠…⁠… 막내야⁠, 반룡이 안 나온다⁠!⁠” 조장은 다시 의자를 창가로 돌렸다⁠. 명길은 조장의 등에 대고 고개를 한 번 숙였다⁠.

*

밤 열 시⁠, 금철이 칸막이 문을 열고 나왔다⁠. 손에 귤 두 개를 들고 있었다⁠. 하나를 명길의 책상에 놓았다⁠.

“⁠답 왔다며⁠.⁠”

“⁠예⁠. 과제 세 개 다 풀었습니다⁠. 망고 이야기도 했습니다⁠. 믿음이 쌓이고 있습니다⁠.⁠”

“⁠보안팀장은⁠?⁠”

명길은 귤을 집었다⁠. 껍질이 차가웠다⁠.

“⁠아직 움직임이 없습니다⁠.⁠”

금철이 귤을 까기 시작했다⁠. 껍질을 한 줄로 길게⁠, 끊지 않고 벗겼다⁠. 금철이 생각할 때 하는 버릇이었다⁠. 귤껍질이 바닥까지 늘어졌다가 끊어지지 않고 책상 위에 둥글게 내려앉았다⁠.

“⁠막내⁠, 김책 기숙사에 몇 년 있었니⁠?⁠”

“⁠네 해 있었습니다⁠.⁠”

“⁠몇 층⁠?⁠”

명길은 귤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게 애썼다⁠.

“⁠2층이었습니다⁠.⁠”

“⁠그래⁠.⁠” 금철이 귤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나는 3층이었다⁠. 끝방⁠. 창문이 안 닫혔지⁠.⁠”

금철은 귤을 마저 먹고 칸막이 안으로 돌아갔다⁠. 문이 닫혔다⁠. 명길은 귤을 손에 쥔 채 오래 앉아 있었다⁠. 명길은 3층 끝방에서 네 해를 살았다⁠.

자정이 넘어 명길은 에릭의 계정을 열었다⁠. 재하에게 답장을 썼다⁠.

「⁠재하 씨⁠, 과제 아주 잘 보았어요⁠. 다음 주에 1차 면접 잡을게요⁠. 피드백은 파일로 드릴게요⁠. 망고가 콩이한테 안부 전한대요⁠.⁠」

피드백 파일에 재하의 답안을 그대로 붙이고⁠, 칭찬하는 말을 몇 줄 적었다⁠. 마지막 함수 아래에 커서를 놓았다⁠. 손가락이 자판 위에서 한참 멈춰 있었다⁠. 상혁이 내일 아침 이 파일을 먼저 열 것이었다⁠. 금철이 3층 끝방을 말한 까닭을 명길은 알지 못했다⁠.

명길은 한 줄을 쳤다⁠.

「⁠// 아직도 안 닫힙니다⁠. 겨울엔 신문지를 끼웁니다⁠」

전송 단추를 누르기 전에 명길은 점퍼 왼쪽 가슴의 배지를 손끝으로 한 번 만졌다⁠. 그리고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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