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547자)
포장마차에서 반씩 낸 계산
용왕님 단골 경매사 · 석다감
2028년 1월 10일 월요일 밤 열한 시, 노량진수산시장 뒷길 포장마차는 주황 천막에 김이 서려 안이 보이지 않았다. 천막을 들추자 어묵 국물 냄새와 연탄 냄새가 한꺼번에 덮쳤다. 플라스틱 탁자 세 개 가운데 맨 안쪽에 탁세윤이 앉아 있었다. 검은 패딩을 의자 등에 걸쳐 놓고, 소주 한 병과 빈 잔 두 개를 앞에 두고 있었다.
팔용은 맞은편에 앉았다. 머리에 노란 모자 대신 털모자를 썼다. 포장마차 주인 이모가 팔용의 털모자를 보고 혀를 찼다.
“경매사 양반 모자 바꿨네. 노란 게 낫던데.”
“잃어버렸습니다.”
“모자는 잃어버려도 머리는 남잖아. 어묵 줘?”
“주십시오.”
세윤이 잔 두 개에 소주를 따랐다. 손이 조금 떨려서 한 잔이 넘쳤다. 세윤은 넘친 술을 휴지로 닦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위판장 영상 보셨죠.” 세윤이 말했다. “주문진, 속초, 삼척. 용왕님이 사흘 동안 동해 위판장 세 군데를 돌았어요. 나무 의자 들고 다니세요. 산지 경매사들이 손가락 하나에 세 배를 불러요. 우리 계약 배들이 계약 깨고 위판장으로 갔어요. 세 배 주는데 누가 계약을 지켜요?”
“계약서에 좋은 달하고 나쁜 달이 같이 들어 있다고 하셨습니다.”
세윤이 팔용을 쏘아보았다. 주문진 집회장에서 한 말을 팔용이 어떻게 아는지 묻지 않았다. 집회 영상은 온 나라가 보았다.
“사람들은 좋은 달이 오면 계약서를 잊어요. 그건 몰랐어요.” 세윤이 소주를 반 잔 마셨다. “설 기획전 진열대가 비었어요. 상인회에 넘기기로 한 물량도 못 넘겼고요. 피영애 회장님한테 오늘 낮에 전화로 사과했어요. 회장님이 뭐라셨는지 아세요? 경매장이나 마트나 비기는 매한가지네.”
이모가 어묵 꼬치 다섯 개를 접시에 담아 내려놓았다. 팔용은 국물을 한 숟갈 떴다.
“용건 말씀하십시오.”
“설 전날 새벽 마지막 경매요. 경매사님이 불러 주세요. 그럼 용왕님이 노량진으로 돌아와요. 단골은 가게를 안 바꾼다면서요.” 세윤이 잔을 내려놓았다. “용왕님이 노량진에 계시면 산지 위판장은 숨을 쉬어요. 우리 계약 배들도 돌아오고요.”
“저는 경매에서 빠졌습니다.”
“상무님은 제가 설득해요. 새솔이 노량진 물량을 다시 사 주겠다고 하면 모자 돌려주실 거예요. 17번 통해서 새솔이 사는 물량이 3번 자리 수수료의 큰 덩어리잖아요.”
“그러니까 저를 미끼로 쓰시겠다는 겁니다.”
“네.” 세윤이 망설이지 않았다. “경매사님도 저를 쓰세요. 모자 찾으시려면요.”
*
팔용은 어묵 꼬치를 하나 집었다가 내려놓았다.
“하나 묻겠습니다. 직거래 하신다면서 왜 경매장을 다시 열자고 하십니까?”
“직거래가 틀려서가 아니에요.” 세윤의 목소리가 단단해졌다. “계약 값은 지금도 맞는 값이에요. 바다가 미쳤을 때 사람들이 계약을 지킬 만큼 제가 계약을 튼튼하게 못 만든 거예요. 그건 제 잘못이고요. 경매사님 경매는요?”
“제 경매가 뭐요?”
“경매가 공정하다면서요. 모두가 보는 데서 제일 높은 손이 가져간다면서요. 그래서 모두가 보는 데서 제일 돈 많은 손이 다 가져갔잖아요. 한 달 동안요.” 세윤이 탁자를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그거 공정한 거예요?”
“그래서 모자를 잃었습니다.”
“모자 잃으니까 위판장에서 똑같은 일이 나요. 경매는 어디서 열어도 경매예요. 노량진이 문제가 아니에요.”
“그럼 뭐가 문제입니까?”
“진주요.” 세윤이 말했다. “진주가 돈인데 아무도 진주 값을 몰라요. 용왕님이 내는 돈을 아무도 안 세어요. 끝없는 돈을 든 손이랑 경매하면 경매가 질 수밖에 없어요.”
팔용은 세윤을 보았다. 세윤의 말이 서른 해 동안 팔용이 놓친 자리를 짚었다. 경매장에서 팔용은 손가락을 셌고, 손가락 뒤에 무엇이 있는지는 묻지 않았다. 출하자 이름을 안 본 것처럼.
천막이 들리고 찬 바람과 함께 변두만이 들어왔다. 머리띠에 앞치마 차림 그대로였다. 두만은 둘을 보고 놀라더니 옆 탁자 의자를 끌어와 붙여 앉았다.
“형님, 팀장님, 둘이 술 드세요? 이거 실화냐?”
“두만아, 진주 요새 얼마 받냐?” 팔용이 물었다.
두만의 얼굴이 굳었다. 두만은 이모에게 소주잔 하나를 달라고 해서 혼자 따라 마시고 입을 열었다.
“안 그래도 말씀드리려고 했어요. 종로 감정사 누님이 이제 그만 가져오래요. 용왕님 진주가 종로에 너무 풀렸대요. 도매상들이 창고에 쌓아 놓고 안 산대요. 처음에 한 알 받던 값이 지금은 반에 반도 안 돼요. 다음 주엔 더 떨어진대요.”
세윤이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럼 용왕님 돈이 줄고 있는 거네요. 용왕님은 모르시고.”
“용왕님은 진주를 셀 줄만 아시지 진주 값은 모르세요. 바다엔 시세가 없대요.”
“풍어네요.” 세윤이 말했다. 웃지 않았다. “진주 풍어. 많이 풀리면 값이 무너져요. 우리 아버지 오징어처럼.”
*
“조건 넷입니다.” 팔용이 털모자를 벗어 탁자에 놓았다. 눌린 반백 머리가 드러났다. “하나, 설 전날 경매 전에 어르신 진주를 그날 시세로 원으로 바꿉니다. 종로 감정사를 경매장에 모십니다. 어르신은 원으로만 손을 듭니다. 둘, 새솔은 그날 17번 통해서 다른 중도매인이랑 똑같이 손을 듭니다. 미리 정한 값은 없습니다.”
“좋아요.”
“셋, 상인회도 손을 듭니다. 적립금 모아서. 영애 회장님은 제가 만납니다.”
“넷은요?”
“넷, 설 지나서도 직거래는 하십시오. 그만두라고 안 합니다.”
세윤이 팔용을 한참 보았다. “왜요?”
“계약 값이 맞는 달이 있습니다. 경매 값이 맞는 달이 있고요. 둘 다 있으면 어민이 고릅니다. 하나만 있으면 고를 게 없습니다.” 팔용이 소주잔을 처음으로 들었다. “그날 경매에서 새솔이 지더라도 직거래는 하십시오.”
세윤이 잔을 들어 팔용의 잔에 부딪쳤다. 소리가 작았다.
“제 조건도 하나 있어요.” 세윤이 말했다. “그날 용왕님이 지셔도 경매사님은 경매장이 다 맞았다고 하지 마세요. 한 달 동안 틀렸던 거 인정하세요.”
“인정합니다.”
“지금요?”
“지금 했습니다.”
두만이 둘 사이를 번갈아 보다가 소주를 한 잔 더 따랐다. “두 분 지금 협상하신 거예요? 경매보다 빠르네.”
자정이 넘어 이모가 계산서를 내밀었다. 세윤이 지갑을 꺼냈고, 팔용도 지갑을 꺼냈다. 둘이 동시에 카드를 내밀었다. 이모가 카드 두 장을 번갈아 보았다.
“누가 내?”
“반씩요.” 세윤이 말했다. “계약은 반반이에요.”
“포장마차는 계약 안 해. 그래도 반씩 긁어 줄게. 두만이 술은 누가 내?”
“그건 경매로 정하죠.” 두만이 손가락 하나를 들었다.
*
1월 11일 화요일 아침 아홉 시, 법인 상무실은 히터 바람이 뜨거웠다. 기창술은 책상 뒤에 앉아 탁세윤이 내민 서류를 읽었다. 「새솔마트 설 대목 노량진 매입 계획」. 피영애는 상무실 소파에 앉아 고무장갑을 손에 쥐고 있었다. 팔용은 문 옆에 서 있었다.
“설 전날 새솔이 17번 통해 이만큼 사고, 상인회가 적립금으로 이만큼 들고, 용왕님이 원으로 들고.” 기창술이 계산기를 두드렸다. 숫자를 보고 입꼬리가 올라가다 멈췄다. “용왕님이 안 오시면?”
“오십니다.” 팔용이 말했다.
“당신이 부르면.”
“네.”
기창술이 서랍을 열었다. 노란 모자가 접혀 들어 있었다. 기창술이 모자를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설 전날 하루야. 징계위는 설 지나고 열어. 그날 결과 보고 정할게.” 기창술이 모자를 팔용 쪽으로 밀었다. “남궁 경매사, 그날 또 마음대로 유찰 때리면 그땐 모자가 아니라 자리가 없어.”
“그날은 제일 높은 손을 부릅니다.”
“용왕님이 제일 높으면?”
“부릅니다.”
영애가 소파에서 일어났다. “상무님, 우리 적립금이 어떤 돈인 줄 아세요? 상인회 이십 년 모은 돈이에요. 회비 삼만 원씩. 장례 부조하고 남은 거, 지붕 샐 때 양동이 사고 남은 거. 그걸 설 대목 하루에 다 거는 거예요.”
“회장님, 그럼 안 거시면 되죠.”
“안 걸면 내 수조가 설에 비어요. 설에 수조 비면 우리 상인들 일 년이 비어요.” 영애가 고무장갑을 쥔 손을 흔들었다. “그러니까 거는 거예요. 날아가도 거는 거야. 그게 장사예요. 상무님은 수수료만 받으니까 모르시지.”
기창술이 계산기를 슬그머니 서랍에 넣었다.
“부르면 우리 적립금 날아가요.” 영애가 팔용을 보며 한 번 더 말했다.
“날아가면 날아가는 걸 다 같이 봅니다.” 팔용이 모자를 집었다. “그게 경매입니다.”
팔용은 모자를 쓰지 않고 손에 들었다. 반백 머리 위로 히터 바람이 지나갔다.
*
1월 24일 월요일 오후 다섯 시, 설 대목을 앞둔 하역장은 트럭으로 꽉 찼다. 해일은 법인 점퍼를 입고 지게차 옆에서 스티로폼 상자를 날랐다. 배 위에서 갈라진 손등에 목장갑을 끼고, 상자 열 개를 한 번에 손수레에 실었다. 두만이 옆에서 상자 개수를 세며 해일의 어깨를 쳤다.
“선장님, 힘이 장사네. 우리 32번 직원 할래?”
“한 달만 해요, 아저씨. 배 다시 나가면 가요.”
“배 다시 나가면 아저씨한테 대게 올려. 아저씨가 아버님한테 불러 달라고 할게.”
해일이 상자를 내려놓고 두만을 보았다. 두만이 염주를 굴렸다.
“선장님, 근데 나 고민 있어. 상인회가 설 전날 나더러 손 들어 달래. 적립금 들고. 근데 나는 용왕님이랑 약속했잖아. 끝까지 용왕님 손 든다고. 도중에 내리면 빚 받으러 오신대.” 두만이 목소리를 낮췄다. “선장님 같으면 누구 손 들어?”
해일은 한참 생각하다가 말했다.
“아저씨 손이요.”
“내 손은 내 손이지.”
“그러니까요. 아저씨가 들고 싶은 데 드세요. 저는 그거 하나 하려고 해경 갔어요.”
두만이 염주를 멈췄다. 하역장 끝에서 팔용이 걸어왔다. 손에 노란 모자를 들고 있었다.
*
밤 열한 시, 하역장 뒤편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난간 앞에 팔용이 혼자 서 있었다. 강바람에 털모자가 날릴 뻔해 벗어서 주머니에 넣었다. 강물은 검었고, 강 건너 불빛이 물 위에서 흔들렸다.
팔용은 노란 모자를 머리에 썼다. 그리고 경매장에서 하던 대로 목소리를 높였다. 호창이었다.
“설 전날 새벽 세 시, 노량진 3번 자리, 활어 들어갑니다. 동해 어르신, 진주는 원으로 바꿔 오십시오. 원으로만 받습니다.”
강물이 잠잠했다. 바람만 불었다. 팔용은 한 번 더 부르려고 숨을 들이켰다.
발밑 그림자가 길어졌다. 난간 아래 강둑에 팔용의 그림자가 늘어났는데, 그림자가 팔용의 모양이 아니었다. 비늘이 돋은 몸이 강물까지 구불구불 이어졌고, 끝에 뿔 달린 머리가 물속을 보고 있었다. 강물 한가운데가 둥글게 솟았다. 물속에서 목소리가 올라왔다.
“원으로 바꾸마.”
“감사합니다.”
“대신 내기를 걸자.” 용왕의 목소리가 강물을 울렸다. 물 위에 동그란 물결이 차례로 번졌다. “그날 내가 손을 내리면, 진 것이다. 지면 그물을 풀겠다. 내가 산 고기들이 다시 사람 그물에 들게 하마.”
“어르신이 이기시면요.”
“이기면 설 다음부터 노량진 활어는 다 내 것이다. 원이든 진주든 내가 정한다. 네 손으로 불러라. 날마다.”
팔용은 난간을 쥐었다. 쇠 난간이 손바닥에 얼음처럼 차가웠다.
“받겠습니다.”
“제일 높은 손이 가져간다.” 용왕이 말했다. “네 규칙이다.”
강물이 가라앉았다. 그림자가 팔용의 발밑으로 오그라들어 사람 모양으로 돌아왔다. 팔용은 노란 모자 챙을 한 번 바로잡았다. 난간 너머 강물 위로 물고기 한 마리가 뛰었다가 떨어졌다. 붉은 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