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970자)
설 전날 새벽, 진주 한 알 경매
용왕님 단골 경매사 · 석다감
2028년 1월 26일 수요일 새벽 영 시 반, 설 전날 노량진수산시장 하역장은 트럭 꽁무니가 한강 둔치로 가는 길까지 줄지어 이어졌다. 지게차 경적이 쉬지 않았고, 스티로폼 상자 긁히는 소리가 천장에 부딪쳐 되울렸다. 얼음물이 바닥을 따라 흘러 배수구로 빨려 들어갔다. 비린내와 경유 냄새와 2층에서 내려오는 떡국 육수 냄새가 섞였다.
해일이 법인 점퍼에 목장갑을 끼고 손수레를 밀었다. 손수레에 참돔 상자가 열 개씩 실렸다. 해일은 상자를 경매장 저울 옆에 내려놓을 때마다 상자 옆구리의 출하자 이름을 한 번씩 읽었다. 「통영 한산수산」「완도 청해호」「주문진 대성호」. 읽을 때 입술이 조금씩 움직였다.
팔용은 3번 자리 경매대 앞에서 노란 모자를 썼다. 챙을 두 번 눌러 고쳤다. 오른손에는 「강릉해양경찰서」 볼펜을 쥐었다. 난주가 2층에서 내려와 보온병을 내밀었다. 둥굴레차였다.
“오늘은 먹고 해. 호창 갈라지면 안 돼.”
“먹었다.”
“뭘.”
“국밥.”
“어제 저녁 거잖아.” 난주가 핫팩 두 개를 팔용의 작업복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경매사님, 오늘 지면 우리 적금으로 해일이 벌금 내고, 이기면 용왕 정식 다시 하는 거야.”
“이기고 지는 건 손님들이 한다.”
“그러니까 당신은 부르기만 해. 바르게.”
*
두 시 반, 3번 자리 앞에 접이식 탁자가 하나 놓였다. 종로 진주 감정사가 돋보기 안경을 머리에 얹고 앉아 엑스레이 기계 대신 휴대용 저울과 노트북을 펼쳤다. 탁자 앞에 「진주 감정 · 오늘 시세」라는 종이가 붙어 있었다. 탁자 뒤로 텔레비전 카메라 셋이 삼각대를 세웠다. 출입선 밖에는 설 장을 보러 온 사람들과 구경꾼들이 휴대전화를 들고 빽빽했다.
17번 옆에 탁세윤이 자리를 잡았다. 검은 패딩에 사원증, 태블릿. 태블릿 화면에 「설 대목 매입 상한」이라는 숫자 하나가 떠 있었다. 세윤은 상한 숫자를 몇 번이나 확인했다.
피영애가 상인회 사람들을 이끌고 왔다. 영애의 손에 누런 봉투가 들려 있었다. 「상인회 적립금」. 봉투 대신 계좌로 보내면 된다고 법인 직원이 말했지만 영애는 봉투를 놓지 않았다. 봉투를 쥐고 있어야 손이 덜 떨린다고 했다.
변두만이 나무 의자 옆에서 서성거렸다. 머리띠를 풀었다 묶었다 했다. 세 시 오 분 전, 출입선 사람들이 물결처럼 갈라졌다. 용왕이 걸어 들어왔다. 은빛 수염, 작은 금관, 파도 무늬 푸른 비단 두루마기. 오른손에 비단 주머니 하나를 들고 있었다. 용왕은 나무 의자에 앉았다. 바닥의 그림자가 경매대까지 늘어났다.
두만이 용왕 앞으로 갔다. 염주를 목에서 벗어 손에 쥐었다.
“어르신, 저 오늘 상인회 손 들어요.”
용왕이 두만을 올려다보았다.
“어르신 손 끝까지 든다고 약속했는데요. 오늘 내립니다. 빚 받으러 오세요. 대부업체보다 무서우셔도 괜찮아요.” 두만의 이마에 땀이 맺혔다. “저 이 년 동안 새벽마다 남의 문자 받고 남의 손 들었어요. 오늘은 제 손 들게요.”
경매장이 조용해졌다. 용왕이 한참 두만을 보다가 수염을 쓸었다.
“네 손이 네 것이 되었구나.”
“네.”
“그럼 빚은 받았다.” 용왕이 고개를 돌렸다. “내 손은 누가 들어 주느냐?”
“내가 들어 주지.” 33번 모자를 쓴 늙은 중도매인 할머니가 손을 들었다. 노량진에서 마흔 해를 산 사람이었다. “수수료만 주시면 용왕이든 염라든 들어 드려. 대신 손은 가리셔. 남들 보면 따라와.”
“가리마.” 용왕이 말했다.
*
세 시, 감정사가 저울에 진주 한 알을 올렸다. 용왕이 비단 주머니를 풀어 탁자에 쏟았다. 진주 마흔 알이 탁자 위를 굴렀다. 카메라들이 한꺼번에 다가왔다. 감정사가 돋보기를 내리고 진주를 하나하나 확인한 뒤 노트북을 두드렸다.
“어르신, 오늘 시세로 한 알에 이 정도예요.”
감정사가 노트북 화면을 돌렸다. 용왕이 숫자를 보았다. 12월에 두만이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세던 숫자의 오분의 일이 안 됐다.
“틀렸다.” 용왕이 말했다. “같은 진주다. 12월에도 이 진주였다.”
“진주는 같은데 시세가 달라요. 종로에 너무 많이 풀렸어요. 도매상들이 안 사요.”
“바다에서 같은 진주가 어제와 오늘 값이 다르냐?”
“바다엔 시세가 없으니까요. 여기는 있어요.”
용왕의 그림자가 바닥에서 꿈틀거렸다. 형광등이 한 번 깜박였다. 텔레비전 카메라맨 하나가 뒷걸음질 쳤다. 용왕이 팔용을 보았다.
“네 손님에게 거짓 값을 매기느냐?”
“제가 매긴 게 아닙니다.” 팔용이 경매대에서 내려와 감정사 탁자 앞으로 갔다. “감정사님 값도 감정사님 혼자 매긴 값입니다. 어르신 말씀도 어르신 혼자 매긴 값이고요. 값은 오늘 이 자리에서 정해집니다. 모두가 보는 데서.”
“어떻게?”
팔용이 진주 한 알을 집어 경매대 위에 올려놓았다. 형광등 아래 진주가 우윳빛으로 번졌다.
“진주부터 부르겠습니다. 이 한 알이 팔리는 값으로 나머지 서른아홉 알을 바꿉니다. 사실 분 손 드십시오.”
경매장이 술렁였다. 기창술이 사무실 문간에서 입을 벌렸다가, 진주 낙찰에도 수수료가 붙느냐고 법인 직원에게 물었다.
팔용이 볼펜을 쥔 손을 들었다. 호창이 경매장 천장으로 올라갔다.
“동해산 천연 진주 한 알, 들어갑니다, 오백, 오백, 오백오십.”
감정사가 손을 들었다. 통영 양식장 사장이 금테 안경을 고쳐 쓰며 손을 들었다. 2층 계단 중간에서 난주가 손을 번쩍 들었다.
“엄마!” 해일이 하역장 입구에서 소리쳤다.
“며느리 볼 때 쓰려고 그런다!”
“며느리 없잖아요!”
“그러니까 지금 사 둬야지!”
경매장에 웃음이 터졌다. 난주는 칠백에서 손을 내렸다. 세윤이 태블릿을 내려놓고 손가락 여덟을 폈다가 접었다. 통영 사장과 감정사가 엎치락뒤치락했다. 팔용은 두 사람의 손가락만 보았다. 어느 손이 더 높은지만.
“팔백, 팔백 나왔습니다. 팔백, 낙찰. 감정사님.”
감정사가 손을 내리고 웃었다. “내가 내 가게에 팔 걸 내가 샀네.”
팔용이 용왕을 보았다. “어르신 진주 한 알은 오늘 팔백입니다. 마흔 알을 다 바꾸시면 이만큼입니다.”
전광판에 숫자가 떴다. 설 대목 3번 자리 하루 낙찰가를 다 더한 것보다 컸다. 그래도 끝이 있는 숫자였다.
용왕은 전광판을 오래 보았다.
“사람들이 정한 값이구나.”
“네.”
“바다에는 이런 값이 없다.” 용왕이 진주 서른아홉 알을 감정사 쪽으로 밀었다. “바꿔라.”
*
네 시, 활어 경매가 시작되었다. 통영 참돔, 완도 광어, 주문진 방어. 33번 할머니가 손을 감싸 쥐고 용왕의 손가락을 대신 폈다. 17번이 손을 폈고, 두만이 상인회 봉투를 앞치마 주머니에 넣고 손을 폈다. 팔용은 호창을 이었다. 목소리가 갈라지지 않았다.
용왕이 이기는 상자가 있었고 지는 상자가 있었다. 광어 열 상자는 상인회가 가져갔고, 방어 다섯 상자는 17번이 가져갔다. 용왕은 손을 들다가 내리기도 했고, 내렸다가 다시 들기도 했다. 이길 때마다 33번 할머니가 수수료 계산하는 손가락을 접었다.
다섯 시 반, 마지막 상자가 나왔다. 통영 참돔 열 상자. 12월 6일 첫날 마흔 상자를 보낸 양식장의 참돔이었다. 통영 사장이 출입선 안에서 두 손을 모았다.
“통영 참돔 마지막 열 상자, 들어갑니다.”
세 손이 올라갔다. 17번, 32번, 33번. 값이 오르기 시작했다. 팔용은 숫자를 불렀고, 손가락들이 따라 올라왔다. 세윤이 태블릿의 숫자를 보았다. 17번이 한 번 더 손을 폈을 때 세윤이 17번의 팔을 가볍게 잡았다.
“여기까지요.” 세윤이 말했다. 목소리에 끝이 없었다. “우리 상한이에요.”
17번이 손을 내렸다. 세윤은 태블릿을 품에 안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진 얼굴이 아니었다. 계약서대로 멈춘 얼굴이었다.
남은 손은 둘이었다. 두만이 영애를 돌아보았다. 영애가 봉투를 쥔 손을 들어 보였다. 아직. 두만이 손을 폈다. 33번 할머니가 용왕을 보았다. 용왕의 손가락이 하나 올라왔다. 남보다 하나 더.
값이 올라갔다. 손가락이 올라올 때마다 상인회 봉투가 얇아졌다. 영애의 손이 봉투를 너무 세게 쥐어 종이가 구겨졌다. 출입선 밖의 설 장 보러 온 사람들이 숨을 죽였다. 할머니 손을 잡은 꼬마가 참돔 상자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할머니, 저거 우리 집 가?”
두만이 영애를 돌아보았다. 영애가 고개를 저었다. 마지막이었다. 두만이 손가락 셋을 폈다. 상인회 봉투의 맨 끝이었다.
“삼십삼만, 32번 삼십삼만.”
팔용이 손가락 셋을 들어 값을 받았다. 33번 할머니가 용왕을 돌아보았다. 용왕의 진주 바꾼 돈은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전광판 숫자가 남은 돈을 다 보여 주고 있었다. 손가락 하나만 들면 됐다.
용왕은 손가락을 들지 않고 팔용을 보았다.
“이 참돔은 어디로 가느냐?”
팔용은 호창을 멈추지 않고 대답했다. 경매장에서 서른 해 써 온 목소리였다.
“1층 수조로 갑니다. 거기서 내일 아침 차례상으로 갑니다. 마흔 집, 쉰 집으로 갑니다.”
“바다로 가면?”
“바다로 가면 그물을 비켜 갑니다. 주문진 그물도, 통영 그물도요. 내년 설에도 비켜 갑니다.”
용왕이 출입선 밖을 보았다. 참돔을 가리키던 꼬마가 할머니 다리 뒤로 숨었다. 영애의 구겨진 봉투, 손수레를 붙잡은 해일의 목장갑, 태블릿을 안은 세윤, 2층 계단의 난주가 차례로 용왕의 눈에 들어왔다.
“삼십삼만.” 팔용이 다시 불렀다. “삼십삼만, 더 없습니까?”
용왕이 무릎 위의 손을 쥐었다 폈다. 손가락 하나가 반쯤 올라왔다. 경매장의 모든 눈이 손가락 하나를 보았다. 손가락이 멈췄다. 그리고 천천히 무릎 위로 내려갔다.
“낙찰. 32번, 상인회.”
경매장이 터졌다. 수조 상인들이 서로 끌어안았고 광어 수조 사내가 고무장화를 벗어 흔들었다. 영애는 봉투를 가슴에 대고 의자에 주저앉았다. 두만은 머리띠를 풀어 얼굴을 덮고 어깨를 떨었다. 33번 할머니가 수수료 날아갔다며 혀를 찼다.
용왕은 나무 의자에 앉은 채 팔용을 보았다.
“내가 손을 내렸다. 진 것이다.”
“네.”
“처음 져 본다.” 용왕이 수염을 쓸었다. 입가가 조금 올라가 있었다. “그물을 풀겠다. 내가 산 고기들이 다시 사람 그물에 들 것이다. 바다가 데워지는 건 내가 못 막는다. 그건 너희가 정해라. 손을 들든 도장을 찍든.”
“어르신, 남은 돈은요?”
“수건 통장에 넣어 두어라.” 용왕이 두만을 가리켰다. “내년 설에 또 오마. 원으로. 단골은 가게를 안 바꾼다.”
세윤이 팔용 곁으로 왔다. 태블릿 화면에 결재 알림이 하나 떠 있었다. 「직거래 표준안 개정 — 해황 악화 시 최소 물량 유예 · 승인」.
“직거래는 계속해요.” 세윤이 말했다. “설 지나면 계약 배들 다시 받으러 주문진 가요. 오늘 진 거, 저 안 잊어요.”
“저도 안 잊습니다. 한 달 동안 틀린 거.”
세윤이 처음으로 웃었다. 짧게.
*
여섯 시, 2층 「난주네」 창밖으로 한강 위에 해가 떴다. 물빛이 붉게 번졌다. 테이블 여덟 개가 설 장 보고 올라온 손님들로 찼고, 난주가 쟁반을 들고 테이블 사이를 뛰어다녔다. 입구 종이가 바뀌어 있었다. 「설 떡국 — 용왕님도 드신 맛」.
창가 테이블에 팔용과 해일이 앉았다. 맞은편 의자에 용왕이 앉았다. 금관은 벗어 탁자 위에 올려 두었고, 은빛 수염 끝을 손수건으로 묶어 국물에 안 닿게 했다. 두만이 묶어 준 매듭이었다. 바닥에 그림자가 테이블 밑으로 둥글게 말려 있었다. 꼬리를 제 머리에 감고 잠든 용의 모양이었다.
“아버지, 배 다시 나가면요.” 해일이 말했다. 목장갑을 벗은 손등의 갈라진 틈이 조금 아물어 있었다. “제 대게 불러 주세요. 출하자 이름 보시고.”
“이름부터 부른다.” 팔용이 말했다. “「강원 주문진, 남궁해일」.”
“선주 이름이 올라가요, 아버지. 저는 선장이고.”
“그럼 둘 다 부른다.”
해일이 웃었다. 난주가 쟁반을 들고 테이블 옆으로 왔다.
“경매사님, 뭐 드실래?”
팔용이 손을 들었다. 서른 해 경매대에서 들던 손이었다. 손가락 셋을 폈다.
“떡국 셋.”
난주가 주문서에 적다 말고 팔용의 손가락을 보았다. “낙찰이야?”
“낙찰.”
용왕이 테이블 밑 그림자를 내려다보았다. 그림자 속 용이 꼬리를 한 번 흔들었다. 창밖 한강 위로 갈매기 두 마리가 하역장 쪽으로 낮게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