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148자) · 하리 · 시월 보름
문 뒤집기
문세를 못 내면 내 집 문이 벽이 된다 · 백해원
현의 공방은 소금골목과 쇠메골목이 만나는 모퉁이에 있었다. 문짝 만드는 집이라 문이 제일 크고 제일 무거웠는데, 그 문이 요즘은 한 짝도 안 팔렸다. 권양의 문 뒤집기 일을 거절한 뒤로 도급방 구역 집들이 현에게 문을 안 맡겼다. 공방 안에는 다 짜 놓고 못 판 문짝 일곱이 벽에 기대 서 있었고, 대팻밥과 아교와 들기름 냄새가 한데 엉겨 코가 막힐 만큼 짙었다.
소을은 초열흘에 곰례네 집을 비우고 이 공방 다락으로 옮겨 왔다. 아침마다 머리카락에 대팻밥을 달고 사다리를 내려왔다.
“아저씨, 밤새 대팻밥이 귀에 들어갔어요.”
“그럼 귀가 향긋해졌겠구나.”
“나무 냄새 나는 귀는 어디다 써요?”
“목수 하면 되지.”
현은 대팻날을 갈면서 하리에게 경첩 소리를 가르쳤다. 문짝을 하나 세워 놓고 문을 여닫으며, 경첩마다 목소리가 다르다고 했다. 쇠를 누가 벼렸는지, 못을 몇 치 박았는지, 문짝을 어느 쪽으로 기울여 달았는지에 따라 소리가 갈린다. 현이 단 경첩은 삐, 하다가 끝에서 끄윽 하고 가라앉았다. 탁 목수가 단 경첩은 끼익, 하다가 딱 하고 끊겼다.
“탁은 못을 한 치 덜 박는다. 빨리 떼려고. 그놈은 서른 해를 그렇게 달았어. 제 문짝이 남의 집에 오래 붙어 있는 걸 못 참는 놈이지.”
“왜요?”
“떼어야 또 달지. 또 달아야 또 받고.”
하리는 끼익 딱을 입속으로 여러 번 따라 해 보았다. 동이도 따라 했는데 동이가 하면 닭 우는 소리가 났다.
아랫말에서 뒤집힌 문은 지난 보름 동안 열둘이었다. 그중 넷은 문계에 든 집이었다. 권양은 문계를 세지 않는 척하면서 정확히 셌다.
*
해 질 녘 하리는 그날 받은 돈을 도급방에 넣으러 갔다. 도급방은 물문 곁에 붙은 삼 층 돌집이고, 일 층 셈방에는 쇠 띠 두른 돈궤가 벽을 따라 여섯 놓여 있었다. 셈방 탁자에서 무하가 굽은 손가락으로 쇠돈을 열 개씩 밀어 쌓고 있었다. 쇠돈 모서리가 탁자 나무를 긁을 때마다 짧게 사각거렸다. 하리가 돈주머니를 내려놓자 무하는 고개를 들지 않은 채 쇠돈을 셌다.
“순덕네 문설주 눈금이 몇 개더냐?”
“백열 개쯤이요. 영감님이 살 때부터 한 냥 문이었어요.”
“그래. 백열 번을 한 냥으로 울었지.”
무하가 쌓은 쇠돈을 돈궤에 쓸어 넣었다. 뚜껑을 닫으면서 혼잣말처럼 말했다.
“탁이 오늘 밤 소금골목에 간다더라. 나는 들은 게 없다.”
하리가 무하를 봤다. 무하는 벌써 다음 돈주머니를 풀고 있었다.
“현은 좋은 목수다. 좋은 목수는 굶는다. 너도 굶을 테냐?”
하리는 대답하지 않고 셈방을 나왔다. 문을 닫을 때 셈방 문이 둥, 한 번 낮게 울었다. 무하가 도급방에 온 다섯 해 동안 한 번도 뒤집히게 두지 않은 문이었다.
*
그날 밤 넷은 보리댁 빵집 밀가루 통 뒤에 숨었다. 하리와 현과 동이와 소을이었다. 서리가 내리기 시작한 밤이라 돌길이 하얗게 떴고, 쇠 등롱 불빛이 돌벽에 둥글게 묻어 있다가 바람이 불 때마다 한쪽으로 쏠렸다. 밀가루 통에서는 누룩 냄새가 났고, 통에 등을 붙이고 있으니 한낮에 구운 빵의 온기가 아직 나무에 남아 등이 따뜻했다. 앞쪽 돌길은 발이 시려서 동이가 신발 속에서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는 소리까지 들렸다. 보리댁이 뒷문을 빼꼼 열고 식은 빵 네 쪽을 내밀었다.
“숨는 사람이 배고프면 배 속에서 소리가 나. 그럼 들켜.”
“이러다 빵 냄새 때문에 들키겠어요.”
“빵 냄새는 아랫말 어디서나 나. 내 빵이 그렇게 잘 팔려.”
인경이 울리고 한 식경쯤 지났을 때 골목 안쪽에서 소리가 났다. 끼익, 딱. 현이 빵을 입에 문 채 눈을 떴다. 하리도 들었다. 소금골목 과부 순덕네 문이었다. 순덕은 문계에 두 번째로 푼을 낸 사람이었다.
등롱 하나가 순덕네 문 앞에 놓여 있었다. 탁 목수가 쪼그려 앉아 경첩 못을 뽑고 있었다. 쉰 살에 등이 굽었는데 손은 빨랐다. 옆에서 갑쇠가 문짝을 두 팔로 받치고 섰고, 새 경첩 두 벌이 발치에 놓여 있었다. 양쪽으로 열리는 쌍경첩이었다.
현이 밀가루 통 뒤에서 걸어 나갔다. 입에서 빵 부스러기가 떨어졌다.
“탁아. 서른 해 전에 네가 대팻날을 거꾸로 끼워서 손바닥 벗겨졌을 때, 내가 고쳐 줬지?”
탁 목수가 고개도 안 들었다.
“현이냐. 일감 없는 놈이 밤에 빵 먹으러 다니는구나.”
“빵은 받은 거고. 너는 그 문짝 받은 거냐, 훔친 거냐?”
“도급인 어른이 달라면 단다. 문짝은 다는 놈 거야.”
“문짝은 여닫는 사람 거다.”
갑쇠가 문짝을 받친 채 턱으로 하리를 가리켰다.
“수문꾼은 왜 또 있소? 요즘 밤마다 보네.”
“밤에 문이 바뀌니까요.”
하리가 순덕네 문 앞으로 갔다. 탁 목수가 뽑아 놓은 한 냥짜리 안쪽 경첩이 돌길에 굴러 있었다. 현이 그것을 주워 손바닥에 올려놓고 들여다봤다. 순덕네 영감이 살았을 때 현이 단 경첩이었다. 현은 앞치마에서 망치와 못을 꺼냈다.
탁 목수가 벌떡 일어났다. 현이 문짝 아래로 어깨를 밀어 넣었다. 갑쇠의 팔에서 문짝 무게가 반쯤 현의 어깨로 넘어갔다. 문짝을 사이에 두고 목수 둘이 맞붙었다. 한 사람이 못을 박으면 한 사람이 뽑았다. 망치 소리가 골목 돌벽에 부딪혀 두 번씩 울렸다. 탁이 쌍경첩을 대면 현이 그 경첩을 발로 차서 도랑에 빠뜨렸고, 현이 헌 경첩을 대면 탁이 못대가리를 장도리로 물었다. 갑쇠는 문짝을 받친 채 어느 쪽 편을 들어야 할지 몰라 두 사람 머리 위로 문짝을 이리저리 옮겼다. 동이가 그 틈에 갑쇠 발밑에 굴러다니는 쌍경첩 한 벌을 슬쩍 주워 제 품에 넣었다.
골목에 불이 하나씩 켜졌다. 순덕이 속곳 바람에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나왔고, 옆집과 그 옆집에서도 사람이 나왔다. 쇠메가 쇠망치를 들고 나왔고, 보리댁이 밀가루 반죽 밀대를 들고 나왔다. 갑쇠가 둘러선 사람들을 둘러보다가 문짝을 놓았다. 현의 어깨가 문짝을 혼자 받았다. 현이 이를 악물고 마지막 못을 박았다.
현이 뒤로 물러나며 숨을 몰아쉬었다.
“두드려 봐.”
하리가 쇠 패 찬 손으로 문짝 가슴을 세 번 쳤다.
둥.
낮게, 한 번 울었다. 울림이 하리 팔꿈치까지 올라와서 거기서 오래 떨다가 가라앉았다. 순덕이 수건을 벗어 들고 입을 틀어막았다.
“한 냥이요.”
순덕이 속곳 차림으로 방에 뛰어 들어갔다가 쇠돈 한 냥을 들고 나왔다. 하리가 받았다. 그리고 갑쇠 코앞에서 문설주에 눈금 하나를 팠다. 끌이 참나무를 먹는 소리가 골목에 또렷했다. 둘러선 사람들 사이에서 누가 먼저 손뼉을 쳤는지는 알 수 없었다. 쇠메가 망치로 제 앞치마를 두드려 손뼉 대신 쳤다.
현은 아무 말 없이 앞치마로 망치를 닦았다. 이마에 땀이 서리처럼 맺혀 있었다. 스무 해 전에 단 경첩을 제 손으로 두 번 단 사람의 얼굴이었다. 하리는 현이 그렇게 웃는 걸 처음 봤다. 입은 다물었는데 광대뼈가 올라가 있었다.
탁 목수가 연장 자루를 챙겨 들고 침을 뱉었다.
“현아, 네 문은 누가 지켜 주냐?”
*
이튿날 아침 현의 공방 문이 둥 텅 울었다.
하리가 공방 앞에서 두 번 쳐 보고 세 번째는 칠 필요도 없었다. 경첩 못대가리가 새로 번쩍였다. 공방 문짝을 안에서 밀면 밖으로 나가고, 밖에서 밀면 안으로 들어왔다. 현이 공방 한가운데서 문이 양쪽으로 흔들리는 것을 한참 보고 있다가, 문짝에 대고 욕을 했다.
“내 문을 내가 다는 동안 서른 해를 한 번도 안 뒤집혔는데.”
“아홉 냥이에요, 아저씨.”
“누가 모르냐?”
현은 그 자리에서 문짝을 떼어 도로 달았다. 그날 밤 탁 목수가 와서 또 뒤집었다. 이튿날 아침 현이 또 도로 달았는데, 이번에는 경첩 못을 문짝 안쪽에서 거꾸로 박고 대가리를 망치로 짓눌러 놓았다. 밖에서는 못대가리가 안 보였다. 그날 밤 탁 목수가 공방 앞에서 한 식경을 쪼그려 앉아 있다가 빈손으로 돌아갔다. 다락에서 그 소리를 다 들은 소을이 아침에 사다리를 내려오며 처음으로 크게 웃었다.
“아저씨, 탁 목수가 못을 못 찾아서 문짝을 핥아 보던데요.”
“맛은 좋댔냐?”
*
그러나 뒤집힌 문 열둘 가운데 여덟은 이미 봉이 붙은 뒤였다. 권양은 뒤집힌 문이 다시 한 번 우는 날을 기다리지 않고 그믐 전에라도 밀린 집마다 봉을 붙였다. 봉 붙은 집은 이레 동안 품을 못 판다. 그 이레 사이에 방세가 밀리고, 방세 빚은 도급방이 사들인다. 곰례네가 그렇게 넘어갔고, 빨래골목에서 두 집이 더 넘어갔다.
그리고 봉 붙은 집 둘에서 밤에 문이 났다. 한 집은 아이가 열이 올라 물을 찾았고, 한 집은 늙은 어미가 안에 있었다. 두 번 다 보리 할아범 뒷문으로 강둑에 나가 미장이 배보다 먼저 닿았다. 열 오른 아이의 문은 열리자마자 안쪽에서 물 달라는 소리가 먼저 튀어나왔고, 하리가 강물을 두 손에 떠서 문간에 섰을 때 아이 어미는 아이를 안은 채 하리 손바닥에 입을 대고 먼저 마셨다. 제가 목이 말랐던 걸 그때 알았다는 얼굴이었다. 늙은 어미가 있던 집은 문이 열리자 노인이 스스로 걸어 나와, 강둑에 서서 강을 한참 보고는 한마디 했다. 이레 동안 저 소리가 벽 뒤에 있는 줄은 알았는데, 이렇게 가까운 줄은 몰랐다고. 문계 끈에서 아홉 냥씩 두 번이 나갔다. 그날부터 문계에 드는 집이 하루에 하나둘씩 늘었다. 제 집 문이 뒤집힐까 봐 드는 집도 있었고, 보리 할아범 부엌을 지나 강에 나가다가 요강을 한 번 밟고 드는 집도 있었다. 열나흘째 저녁, 소을의 삼끈에 열다섯 집의 푼이 꿰였다. 성벽에 연 문은 넷이 되었다.
그날 저녁 권양이 현의 공방에 직접 왔다. 등롱 든 아이를 문밖에 세워 두고, 털 깃을 여미며 혼자 들어왔다. 공방 벽에 기대 선 문짝 일곱을 하나씩 손끝으로 쓸어 보았다.
“좋은 나무로 짰네. 결을 잘 읽었어. 현, 탁 대신 자네가 내 문을 다는 게 어떤가? 한 짝에 두 냥 주지.”
“뒤집어 다는 거 말이오?”
“고쳐 다는 거지. 문 방향은 주인이 원하는 대로.”
“주인이 원한 적이 없던데.”
권양이 웃었다. 성내지 않는 웃음은 늘 같은 모양이었다. 권양은 공방을 나가다가 문간에 선 하리를 돌아보았다.
“자네 문계, 잘 크고 있더군. 그믐에 문 넷이면 서른여섯 냥이지. 그 돈은 결국 내 금고로 오네. 하리, 자네가 모아서 내게 가져오는 거야. 청 도장 찍힌 문세니까.”
권양의 쇠돈 꿰미 소리가 골목 끝으로 멀어졌다.
다락 사다리에 소을이 앉아서 끈에 푼을 꿰고 있었다. 한 개 꿸 때마다 손가락 끝으로 쇠돈 모서리를 한 번씩 문질렀다.
“이거 다 권양한테 가?”
“그믐에는.”
소을은 대답을 듣고도 손을 멈추지 않았다. 열 개를 채우고 매듭을 짓고, 다음 열 개를 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