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143자) · 소을 · 구월 스무엿새 · 시월 스무날

세 번 두드리면

문세를 못 내면 내 집 문이 벽이 된다 · 백해원

소을은 빨래 광주리를 옆구리에 끼고 보리 할아범 부엌을 지나 강둑으로 나섰다. 시월 스무날 아침이었다. 뒷문을 나서자마자 굵은 밧줄 하나가 무릎 높이로 강둑을 가로막고 있었다. 밧줄 끝을 갑쇠가 쥐고 서 있었다. 그 옆에 선창패 둘이 나무 궤짝을 놓고 앉아 한 푼씩 받고 있었다.

“강둑은 선창 땅이오. 권양 어른 선창이지. 선창 땅을 밟으면 한 푼.”

사흘 전부터 그랬다. 물문이 마르자 권양은 난 문 바깥에 밧줄을 쳤다. 새벽 강에서 올라온 물안개가 밧줄에 이슬로 맺혀 있었고, 갑쇠가 밧줄을 흔들 때마다 그 이슬이 줄줄이 떨어져 강둑 흙에 까만 점을 찍었다. 강 건너 천막 마을에서 아침밥 짓는 연기가 물 위로 낮게 건너왔다. 줄 선 사람들이 한 푼을 내고 넘어갔다. 물문에 내던 것과 같은 돈이니 다들 투덜거리기만 했다. 소을은 광주리를 고쳐 끼고 밧줄 앞에 섰다.

“안 내.”

“그럼 도로 들어가.”

소을이 밧줄을 다리로 넘었다. 갑쇠가 광주리를 낚아챘다. 젖은 빨래가 강둑 진흙에 쏟아졌다. 윗말 어느 댁 흰 버선 한 짝이 흙물에 굴렀다. 소을은 그 버선을 보지 않고 갑쇠의 오른손을 봤다. 손등에 반달 모양으로 하얗게 아문 자국이 있었다. 이빨 여섯 개가 나란히 박혔던 자국이었다.

“그날 밤 배에 탄 사람, 너지.”

갑쇠의 손이 광주리를 쥔 채 굳었다. 줄 선 사람들이 한 사람씩 입을 다물었다. 강물 소리만 남았다.

*

구월 스무사흘 저녁, 도급방 봉꾼들이 할머니 문에 봉을 붙일 때 소을은 선창에 있었다. 권양의 소금 창고에서 밤새 소금 포대를 꿰매는 일이 사흘 치 들어와 있었다. 하루 다섯 푼짜리 품을 여섯 푼 준다고 해서 받은 일이었다. 인경이 울리자 물문이 닫혔고, 선창 품꾼들은 창고 바닥에서 잤다. 소을은 창고에서 자지 않고 빨래터로 갔다. 빨래터 돌판 바로 위 성벽이 할머니 방 뒷벽이었다. 거기 등을 대고 누우면 할머니 코 고는 소리가 들린다고, 어릴 때 소을은 믿었다.

봉이 붙은 것은 이튿날 아침에 알았다. 창고 일꾼 하나가 빨래골목 곰례네가 봉을 맞았다고 전해 주었다. 소을은 물문으로 뛰어갔다. 곽 노인이 쪽문을 막았다. 한 푼. 소을에게는 두 푼이 있었다. 한 푼을 내고 들어가 빨래골목 집 앞에 섰는데, 문이 돌이었다. 창도 돌이었다. 소을이 문을 주먹으로 치다가 손등이 까졌다. 소리는 문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소을 손으로 되돌아왔다.

소을은 그 길로 물문 곁 도급방에 갔다. 일 층 셈방 문을 밀고 들어가자 쇠 띠 두른 돈궤들 사이에 권양이 앉아 있었다. 털 깃 겉옷을 벗어 의자 등에 걸쳐 두고, 따뜻한 보리차를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있었다. 소을은 거기서 처음으로 권양 얼굴을 가까이 봤다. 주름이 적고 눈이 순했다.

“봉을 떼 주세요. 할머니가 안에 있어요.”

“아홉 냥 가져오면 봉꾼이 떼 주지. 규정이 그래. 아니면 이레만 기다려라. 이레는 금방이야.”

“아홉 냥이 없어요.”

권양이 보리차를 한 모금 마시고 웃었다.

“우리 창고에 품이 있다. 낮 일로 하루 여섯 푼. 열닷새 하면 아홉 냥이지.”

소을은 그날부터 권양의 소금 창고에서 낮 품을 팔았다. 소금 포대를 꿰매는 바늘에 손끝이 헤져 소금이 스밀 때마다 따가웠다. 셈을 해 보면 열닷새는 이레보다 길었다. 그걸 알면서도 바늘을 놓을 수가 없었다.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해가 지자 소을은 품삯으로 받은 첫 여섯 푼 가운데 한 푼을 내고 물문을 나가 빨래터로 갔다. 성벽에 등을 대고, 돌을 세 번 쳤다.

한참 있다가, 벽 안쪽 아주 먼 데서 세 번이 돌아왔다.

할머니는 강에서 소을을 부를 때 빨래터 쪽 벽을 세 번 쳤다. 방망이 자루로, 둥 둥 둥. 소을이 강에서 그 소리를 들으면 광주리를 챙겨 집에 들어갔다. 그날부터 소을은 밤마다 빨래터에 누워 벽을 세 번 쳤고, 벽은 밤마다 세 번을 돌려주었다. 성벽 돌이 두꺼워서 소리는 물 밑에서 나는 것처럼 뭉개졌다. 그래도 세 번이었다.

셋째 밤, 구월 스무엿새였다. 파루까지 한참 남은 시각에 소을은 등이 따뜻해서 눈을 떴다.

등 뒤 돌이 나무였다. 소을 바로 옆, 할머니가 벽을 치던 자리에 문이 서 있었다. 결이 세로로 선 널판 문이었고 손잡이가 없었다. 문 아래로 빛이 나왔다. 그 빛이 소을 발끝에 고여서 흔들리지 않았다. 문 안에서 세 번, 이번에는 뭉개지지 않은 소리가 났다. 방망이 자루로 치는 소리였다. 가까웠다. 손 하나만 뻗으면 닿을 데였다.

소을은 문을 밀었다. 안 열렸다. 틈에 손톱을 넣고 당겼다. 안 열렸다. 소을은 문세라는 게 있다는 걸 알았다. 수문꾼이 문을 두드리면 값이 나온다는 것도 알았다. 이 문은 누가 두드려야 하는지, 얼마인지는 몰랐다. 주머니에는 사흘 치 품삯 열여섯 푼이 있었다. 아홉 냥에는 여든넷 푼이 모자랐다. 소을은 열여섯 푼을 다 문턱에 쏟았다. 문틈에서 바람이 불더니 쇠돈이 한꺼번에 튕겨 나와 빨래 돌판 위로 흩어졌다. 몇 개는 강으로 굴러갔다.

소을은 소리를 질렀다. 할머니를 불렀고, 사람을 불렀다.

강에서 노 소리가 났다. 등롱 하나가 물 위에 흔들렸다. 소을은 그게 사람을 부른 대답인 줄 알았다. 배가 강둑에 코를 댔다. 사내 셋이 내렸다. 하나는 석회 통을 들었고, 하나는 흙손을 들었고, 하나는 빈손이었다. 빈손인 사내가 갑쇠였다.

갑쇠가 뒤에서 소을을 안아 올렸다. 커다란 손바닥이 소을 입을 덮었다. 손바닥에서 쌀풀 쉰내가 났다. 발이 땅에서 떨어졌다. 소을은 갑쇠 품에서 버둥거리며 배 쪽으로 끌려갔다. 등롱 불빛 속에서 흙손 든 사내가 석회를 떠서 문에 발랐다. 그 사내는 한 번도 소을 쪽을 보지 않았다. 문 가장자리부터 발랐고, 한가운데를 마지막으로 발랐다.

문 안에서 세 번 치는 소리가 났다. 흙손이 그 위를 지나갔다. 또 세 번. 석회가 한 겹 더 올라갔다. 그다음에는 소리가 석회에 먹혀서 들리지 않았다.

소을은 입을 덮은 손을 물었다. 갑쇠가 욕을 하며 소을을 강둑에 내던졌다. 소을은 진흙에 얼굴을 박고 한참 일어나지 못했다. 입안에 흙과 피 맛이 섞였다. 소을의 피가 아니었다.

“말하면 너도 봉이다. 네 몸에 봉 붙이는 건 일도 아니야.”

배가 멀어졌다. 소을은 하얀 석회 위를 손바닥으로 파랗게 멍이 들 때까지 두드렸다. 석회는 두드리는 소리도 먹었다.

그 뒤로 사흘을 더 빨래터에서 잤다. 넷째 밤에 성벽 안쪽 먼 데서 두 번이 돌아왔다. 다섯째 밤에는 한 번. 여섯째 밤에 소을은 새벽까지 돌을 세 번씩 쳤고, 아무것도 돌아오지 않았다.

이레째 새벽에 봉이 떨어졌다. 소을은 그날 처음으로 물문에 한 푼도 안 내고 들어갔다. 곽 노인이 쪽문을 열어 놓고 고개를 돌렸다.

*

갑쇠가 광주리를 진흙에 떨어뜨리고 손등을 등 뒤로 감췄다.

“빨래꾼 계집 말을 누가 믿어. 그리고 벽에 회 바르는 건 청 방침이야. 스무 해 전부터. 나는 방침대로 한 사람이다.”

“방침에 사람 입 틀어막으라는 것도 있어?”

갑쇠는 대답을 못 했다. 대신 줄 선 사람들 쪽을 둘러보았다. 선창에서 매일 얼굴 보는 사람들이었다. 갑쇠가 봉을 붙인 집 사람도 셋은 섞여 있었다. 아무도 갑쇠와 눈을 맞추지 않았고, 아무도 소을 곁에서 물러나지 않았다.

“빨래꾼 계집 말을 누가 믿냐고.”

“그 손등은 누가 믿어?”

소을은 흙물에 굴러다니는 흰 버선을 주워 들었다. 윗말 판관 댁 버선이었고, 할머니가 마흔 해 동안 빨래를 받아 온 집이었다. 소을이 그 버선을 갑쇠 발 앞에 던졌다.

“이것도 빨아 줄까? 한 푼 받고.”

갑쇠가 한 걸음 다가섰다. 그때 뒷문에서 하리가 나왔고, 그 뒤로 쇠메가 풀무 같은 숨을 쉬며 나왔다. 쇠메가 밧줄을 발로 밟아 강둑에 눌렀다. 밧줄 끝을 쥐고 있던 갑쇠의 손이 밧줄에 끌려 아래로 휘청했다.

“권양 어른한테 가서 전해. 강둑이 선창 땅이면, 선창 땅에서 사람 안아 올린 놈 얘기도 선창에서 하자고.”

갑쇠는 선창패들을 데리고 물러났다. 궤짝에 쌓였던 푼은 챙기지 못했다. 줄 섰던 사람들이 그 궤짝을 한참 보다가, 한 사람씩 제 푼을 도로 집어 갔다. 그리고 그 가운데 다섯 집이 그날 저녁 현의 공방 다락 사다리 앞에 와서 소을에게 아홉 푼씩 내밀었다.

맨 앞은 선창 짐꾼 삼 형제의 막내였다. 맏이가 요강 값까지 쳐서 셋 몫을 냈다고 자랑하고 다니는 통에 저도 제 몫을 따로 내야 사람 구실을 한다고 했다. 막내가 아홉 푼을 세어 내미는데 여덟 개였다. 소을이 손바닥을 펴 보이자 막내는 제 귓바퀴 뒤에 끼워 두었던 한 푼을 꺼냈다. 공방 구석에서 대패질하던 현이 웃다가 대팻날에 엄지를 베일 뻔했다. 소을은 푼을 열 개씩 끈에 꿰었다. 할머니 방망이는 사다리 옆에 세워 두었다. 끈이 굵어질수록 손끝의 소금 쓰림이 조금 덜했다. 그날 밤 문계는 스물이 되었다.

*

밤에 소을은 하리와 함께 빨래터로 갔다. 하얀 석회 자국 앞에 섰다. 한 달 새 석회는 속까지 굳어서 돌보다 더 하얗게 떴다. 현이 긁어 놓은 자리에 회색 죽은 나무가 손바닥만큼 드러나 있었다.

“그날 여기서 잤어.”

“알아.”

“할머니 방에 났으면 방에서 나가는 쪽으로 났어야지. 골목 쪽으로. 근데 여기 났어. 내 등 뒤에.”

“두 번 울었을 때, 알았어?”

하리의 손마디가 움츠러들었다. 하리는 그 손을 감추지 않았다.

“알았어.”

소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으로 된다는 끄덕임이 아니었다. 들었다는 끄덕임이었다.

하리가 석회 자국의 가장자리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보리 할아범 문이 났을 때, 쇠메 대장간 문이 났을 때, 그리고 네 번째까지 하리가 봐 온 것이 있었다.

“난 문은 갇힌 사람이 가야 할 데로 난대. 할아범은 숨이 막혀서 바람 쪽으로 났고, 돌이는 불이 뜨거워서 물 쪽으로 났어.”

소을이 하리를 봤다. 하리는 한참 뒤에 말했다.

“할멈이 가야 할 데가 너였어.”

소을은 대답하지 않았다. 석회 앞에 쪼그려 앉아 방망이 자루로 죽은 나무를 세 번 쳤다. 둥, 둥, 둥. 흙벽 치는 소리가 났다. 아무것도 돌아오지 않았다. 소을은 한 번 더 세 번을 쳤고, 그러고 나서야 방망이를 무릎에 내려놓고 울었다. 소리 없이 어깨만 떨렸다. 강물이 빨래 돌판을 핥는 소리가 그 떨림 위를 한참 지나갔다. 하리는 소을 곁에 서서 등롱을 조금 낮게 들었다. 불빛이 석회 자국 아래쪽, 손바닥만 하게 드러난 죽은 나무에 닿았다. 그 나무 결 사이에 아주 작은 쇠돈 하나가 끼어 있었다. 구월 스무엿새 밤에 튕겨 나온 열여섯 푼 가운데 하나였다. 소을이 그것을 손톱으로 빼내어, 오래 들여다보다가 문계 끈 맨 끝에 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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