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631자)

수액

이혼 부부의 고양이 · 윤새벽

이동장 문이 철컥 열리는 소리는 병원이라는 소리와 같다⁠. 고양이라면 다 안다⁠. 사료 봉지 소리는 부엌 끝에서 나도 들리고⁠, 이동장 소리는 베란다 끝에서 나도 들린다⁠. 수요일 아침 여덟 시⁠, 베란다 구석에서 철컥 소리가 나자마자 나는 안방 침대 밑으로 들어갔다⁠. 늙은 고양이는 서두르지 않지만 병원 앞에서는 예외다⁠.

침대 밑은 내 영역 가운데 가장 깊은 곳이다⁠. 먼지와 다희의 머리카락과 지난가을 잃어버린 귀걸이 한 짝이 있다⁠. 다희가 정장 치마를 입은 채 바닥에 엎드렸다⁠. 휴대전화 불빛이 내 얼굴을 비췄다⁠. 나는 눈을 반쯤 감았다⁠. 반쯤 감은 눈은 불빛이 들어와도 덜 부시다⁠.

“⁠호박⁠. 나와⁠. 츄르 줄게⁠.⁠”

츄르는 안다⁠. 츄르라는 소리 뒤에 대개 손이 나를 잡는다는 것도 안다⁠. 나는 침대 다리 사이로 더 깊이 들어갔다⁠. 다희가 팔을 뻗었다⁠. 팔이 모자라서 어깨까지 침대 밑으로 들어왔다⁠. 정장 단추가 마룻바닥을 긁었다⁠.

“⁠늦었어⁠, 진짜⁠. 아홉 시 반 예약인데⁠. 제발⁠.⁠”

다희의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다희는 오늘 오전을 회사에 반차로 냈다⁠. 반차라는 말은 몰랐지만 다희가 어젯밤 전화로 누군가에게 세 번이나 미안하다고 하는 소리는 들었다⁠. 나는 다리 사이에서 나와 다희의 팔 위에 턱을 올렸다⁠. 다희가 나를 끌어안고 침대 밑에서 기어 나왔다⁠. 정장 등판에 먼지가 하얗게 묻었다⁠.

*

동물병원 대기실은 냄새가 시끄럽다⁠. 소독약⁠, 겁먹은 개의 침⁠, 늙은 고양이의 입 냄새⁠, 츄르 수십 개를 한꺼번에 뜯어 놓은 듯한 닭고기 냄새⁠. 기저귀를 찬 늙은 개가 의자 밑에서 헉헉댔고⁠, 바구니 속 토끼가 코를 쉬지 않고 움직였다⁠.

도헌이 먼저 와 있었다⁠. 대기실 의자에 앉아 손에 쥔 휴대전화를 보지 않고 있었다⁠. 도헌도 같은 시각으로 예약을 했던 것이다⁠. 다희가 접수대 앞에서 멈췄다⁠.

“⁠왜 와 있어⁠.⁠”

“⁠내가 예약했어⁠.⁠”

“⁠내가 예약했는데⁠.⁠”

접수대 직원이 화면을 보다가 작게 말했다⁠.

“⁠두 분이 같은 시간에 각각 하셨네요⁠. 한 건 취소할게요⁠.⁠”

두 사람은 대기실 의자에 한 칸 떨어져 앉았다⁠. 이동장은 두 사람 사이 의자에 놓였다⁠. 직원이 몸무게를 재야 한다며 이동장 문을 열었다⁠. 나는 밖으로 나왔다⁠. 왼쪽에서 다희의 정장 먼지와 복숭아 샴푸가⁠, 오른쪽에서 도헌의 점퍼가 왔다⁠.

도헌의 점퍼에서 소파 냄새가 났다⁠. 우리 집 거실 소파에 늘 덮여 있던 회색 담요의 냄새였다⁠. 도헌은 집을 나가며 담요를 가져갔고⁠, 밤마다 담요를 덮고 잔 것이다⁠. 담요에 열두 해 동안 밴 냄새가 점퍼에 옮아 있었다⁠. 소파 왼쪽과 오른쪽과 가운데 꺼진 자리가 한꺼번에 들어 있었다⁠. 도헌의 냄새와 다희의 냄새와 내 냄새⁠. 이 집 거실이 통째로 도헌의 무릎 위에 있었다⁠.

나는 도헌의 무릎으로 올라갔다⁠. 부르지 않았는데 올라갔다⁠. 처음이었다⁠.

도헌의 무릎이 굳었다⁠. 나를 내려다보는 숨이 짧게 끊겼다⁠. 손이 내 등 위에 내려앉기까지 한참이 지났다⁠. 손바닥이 떨렸다⁠.

다희는 보고 있었다⁠. 다희는 아무 냄새도 내지 않았다⁠. 사람이 숨을 참으면 냄새도 멈춘다⁠. 옆자리에서 늙은 개를 안은 아주머니가 웃으며 말했다⁠.

“⁠아빠를 더 좋아하나 봐요⁠.⁠”

다희가 웃었다⁠. 입만 웃었다⁠. 나는 도헌의 무릎에서 고개를 돌려 다희를 보았다⁠. 다희는 휴대전화 화면을 켰다가 껐다⁠. 나는 다희의 무릎에도 올라가고 싶었다⁠. 무릎은 둘이고 고양이는 하나다⁠. 고양이는 무릎 하나에만 앉을 수 있다⁠.

*

수의사에게서는 소독약과 츄르 냄새가 반반 났다⁠. 젊은 남자 수의사는 늘 왼손에 츄르를 숨기고 오른손으로 바늘을 든다⁠. 나는 왼손만 본다⁠.

“⁠체중이 지난달보다 사백 그램 빠졌어요⁠. 여섯 킬로 백⁠. 피 검사 수치도 올랐고요⁠.⁠”

수의사가 화면을 두 사람에게 돌렸다⁠. 화면에 줄이 여러 개 그어져 있었다⁠. 나는 줄을 모른다⁠. 두 사람이 화면을 보는 동안 숨을 같이 멈췄다는 것만 안다⁠.

“⁠단계가 하나 올라갔다고 보시면 됩니다⁠. 약은 그대로 하루 두 번 드시고⁠, 이제 수액을 같이 하셔야 해요⁠. 피하수액이요⁠. 등가죽 밑으로 수액을 넣어 주는 거예요⁠. 이틀에 한 번⁠. 집에서 보호자분이 하셔야 하고요⁠.⁠”

“⁠제가 할게요⁠.⁠”

“⁠제가 하겠습니다⁠.⁠”

두 사람이 한꺼번에 말했다⁠. 수의사가 츄르를 쥔 손을 잠깐 멈췄다⁠.

“⁠두 분 다 배우시면 좋죠⁠. 그리고 하나만요⁠. 이 나이에 이 수치면 스트레스에 약합니다⁠. 이사처럼 사는 곳이 확 바뀌는 일이 생기면 수치가 갑자기 뛸 수 있어요⁠. 밥을 끊기도 하고요⁠.⁠”

다희가 도헌을 보았다⁠.

“⁠들었지⁠?⁠”

“⁠들었어⁠. 이틀에 한 번 수액⁠. 밤 열한 시에 들어오는 사람이 놔⁠?⁠”

“⁠너는 전주에서 놔 줄 사람이 있어⁠?⁠”

“⁠내가 놓지⁠.⁠”

“⁠너는 고양이 발톱도 못 깎잖아⁠. 열두 해 동안 내가 깎았어⁠.⁠”

“⁠두 분⁠.⁠”

수의사가 수액 봉지를 걸었다⁠. 링거 걸이에 비닐 봉지가 매달렸고⁠, 투명한 줄이 내 쪽으로 내려왔다⁠. 수의사가 내 목덜미 가죽을 집어 올렸다⁠. 바늘이 들어왔다⁠. 따끔했다⁠. 나는 몸을 비틀었다⁠. 수의사의 왼손이 츄르를 내 입에 밀어 넣었다⁠. 나는 따끔한 것을 잊고 닭고기를 핥았다⁠. 핥는 동안 등이 차가워지며 불룩해졌다⁠. 낙타 혹 같다고 수의사가 웃었다⁠. 낙타는 모르지만 나를 놀리는 소리였다⁠.

“⁠처방식은 다음 달부터 다른 회사 걸로 바꾸셔도 돼요⁠. 쓰시던 건 외국 공장에서 오는 배가 자꾸 늦어져서요⁠. 성분은 거의 같습니다⁠.⁠”

두 사람은 수액 봉지를 하나씩 받아 들었다⁠. 봉지 하나를 받는 데도 손을 먼저 내미는 다툼이 있었다⁠.

*

병원 주차장에서 두 사람은 이동장 손잡이 양 끝을 나눠 잡았다⁠. 나는 이동장 안에서 등에 불룩한 혹을 단 채 앉아 있었다⁠. 혹이 천천히 꺼지면서 등이 서늘했다⁠. 이동장이 왼쪽으로 기울었다가 오른쪽으로 기울었다⁠.

“⁠내 차로 가⁠. 집까지 십 분이야⁠.⁠”

“⁠내 차도 십 분이야⁠.⁠”

“⁠너 회사 가야 되잖아⁠. 반차라며⁠.⁠”

“⁠너는 점심시간이잖아⁠.⁠”

이동장이 다시 기울었다⁠. 나는 바닥에 발톱을 박았다⁠. 플라스틱이 미끄러워 발톱이 헛돌았다⁠. 나는 낮게 울었다⁠. 아우우⁠. 늙은 고양이의 울음은 굵어서 주차장 벽에 부딪혀 돌아온다⁠. 두 사람이 한꺼번에 손잡이를 놓았다⁠. 이동장이 아스팔트에 쿵 내려앉았다⁠.

다희가 도헌의 점퍼 소매를 손가락으로 집었다⁠. 회색 보풀이 묻어 있었다⁠.

“⁠담요 가져갔어⁠?⁠”

“⁠…⁠…응⁠.⁠”

“⁠그거 덮고 자⁠?⁠”

도헌은 대답하지 않았다⁠. 도헌의 목덜미에서 짭짤한 땀이 났다⁠. 다희는 보풀을 떼어 바람에 날렸다⁠. 보풀이 이동장 창살에 붙었다⁠. 나는 창살 사이로 코를 내밀어 보풀을 맡았다⁠. 소파 냄새였다⁠.

결국 다희가 이동장을 들었다⁠. 도헌은 자기 차 문을 열어 놓은 채 다희의 차가 주차장을 빠져나갈 때까지 서 있었다⁠. 뒷유리 너머로 도헌이 점점 작아졌다⁠. 고양이 눈은 멀리 있는 것을 흐리게 본다⁠. 도헌은 흐려지다가 회색 얼룩이 되었다⁠.

*

밤 열한 시 반⁠, 다희가 거실 바닥에 혼자 수액 봉지를 펼쳤다⁠. 링거 걸이가 없어서 커튼봉에 옷걸이를 걸고 봉지를 매달았다⁠. 유튜브 영상이 휴대전화에서 흘러나왔다⁠. 목덜미 가죽을 삼각형으로 집어 올리세요⁠. 다희가 내 목덜미를 집었다⁠. 너무 세게 집었다⁠. 나는 몸을 뒤로 빼서 다희의 무릎에서 굴러떨어졌다⁠.

“⁠미안⁠, 미안⁠.⁠”

두 번째에는 바늘이 가죽을 뚫고 나와 반대편 털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수액이 내 털을 적시고 마루로 흘렀다⁠. 다희가 휴지를 뽑았다⁠. 휴지가 모자랐다⁠. 세 번째에 나는 소파 밑으로 들어갔다⁠. 다희는 바닥에 엎드려 소파 밑을 들여다보다가⁠, 이마를 마루에 대고 한동안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소파 밑에서 나와 다희의 정수리 냄새를 맡았다⁠. 복숭아 샴푸가 땀에 녹아 있었다⁠. 다희가 이마를 바닥에 댄 채 웃었다⁠. 울음과 웃음은 숨 쉬는 모양이 비슷하다⁠. 냄새로 가르면 웃음이었다⁠. 아주 조금⁠.

*

토요일⁠, 도헌이 서류 봉투를 들고 왔다⁠. 다희가 문을 열어 주었다⁠. 두 사람은 식탁에 마주 앉았다⁠. 도헌이 종이를 꺼내 식탁 가운데 놓고⁠, 다희가 서랍에서 도장을 꺼내 옆에 놓았다⁠. 나는 식탁 끝에 올라 앉았다⁠. 식탁에 올라가면 안 된다는 소리를 열두 해 들었지만⁠, 오늘은 아무도 하지 않았다⁠.

“⁠집은 팔고 반씩⁠. 호박은 내가⁠. 병원비는 내가 다 내고⁠.⁠”

“⁠집은 내가 네 몫 사고⁠, 호박은 여기⁠. 대출 나오는 만큼 먼저 주고 나머지는 나눠서 줄게⁠.⁠”

“⁠나눠서 몇 년⁠?⁠”

“⁠다섯 해⁠.⁠”

“⁠나 전세 보증금 7월에 내야 돼⁠.⁠”

“⁠그럼 7월까지 기다려 줘⁠.⁠”

“⁠너 대출 한도 모자란 거 알아⁠. 은행 앱 계속 보는 거 할머니가 다 말했어⁠.⁠”

다희의 겨드랑이에서 시큼한 땀이 솟았다⁠. 할머니의 이름이 나오자 다희는 입술을 깨물었다⁠. 도헌은 종이를 다희 앞으로 밀었다⁠. 다희는 종이를 도헌 앞으로 도로 밀었다⁠. 종이가 식탁 위를 두 번 오갔다⁠.

나는 도장을 보고 있었다⁠. 빨간 인주가 묻은 손가락만 한 도장⁠. 식탁 가장자리에 굴러가 있었다⁠. 두 사람의 손이 종이를 밀 때마다 도장이 조금씩 움직였다⁠. 고양이는 식탁 가장자리에 있는 물건을 그냥 보아 넘기지 못한다⁠. 열두 해 동안 컵 넷과 리모컨 둘과 도헌의 안경 하나를 떨어뜨렸다⁠. 나는 앞발을 내밀어 도장을 툭 쳤다⁠.

도장이 식탁에서 떨어져 바닥의 내 물그릇에 퐁당 빠졌다⁠.

“⁠야⁠!⁠”

“⁠호박⁠!⁠”

두 사람이 한꺼번에 의자에서 뛰쳐나왔다⁠. 다희가 물그릇에 손을 넣었고⁠, 도헌도 넣었다⁠. 두 사람의 손가락이 물속에서 부딪혔다⁠. 물그릇 물이 빨개졌다⁠. 인주가 풀린 것이다⁠. 다희가 도장을 건져 올렸다⁠. 도장 끝에서 빨간 물이 뚝뚝 떨어졌다⁠.

“⁠인주 다 번졌잖아⁠.⁠”

“⁠네가 식탁 끝에 놨잖아⁠.⁠”

“⁠네가 밀었잖아⁠.⁠”

두 사람은 물그릇 앞에 쪼그려 앉아 서로의 빨간 손가락을 보았다⁠. 도헌의 입꼬리가 올라가려다 멈췄다⁠. 다희의 입꼬리도 올라가려다 멈췄다⁠. 두 사람이 한꺼번에 웃음을 참는 냄새는 처음이었다⁠. 단 숨이 새어 나오다가 이를 악문 자리에서 막혔다⁠.

도헌이 먼저 일어났다⁠. 바지에 손을 닦았다⁠. 빨간 자국이 남았다⁠.

“⁠협의는 안 되겠다⁠. 법원에서 하자⁠.⁠”

“⁠해⁠.⁠”

도헌은 종이를 봉투에 넣고 나갔다⁠. 다희는 내 물그릇을 비우고 새 물을 받았다⁠. 물에서 아직 인주 냄새가 났다⁠. 나는 한동안 인주 냄새 나는 물을 마시지 않았다⁠. 할머니가 들으면 혀를 찰 일이었다⁠.

*

열흘 뒤 집배원이 초인종을 눌렀다⁠. 다희가 휴가를 낸 날이었다⁠. 집배원은 다희에게 이름을 묻고 휴대전화 화면에 손가락으로 서명을 받았다⁠. 봉투에서 낯선 종이 냄새가 났다⁠. 수백 사람의 손을 거친 서류 창고의 먼지와⁠, 겁먹은 사람의 손때⁠.

다희가 봉투를 뜯어 소리 내어 읽었다⁠. 낯선 말을 읽을 때 다희는 소리를 낸다⁠.

“⁠가정법원⁠…⁠… 조정 기일⁠…⁠… 6월⁠.⁠”

조정이 무엇인지 다희는 혼자 중얼거렸다⁠. 판사 앞에 가기 전에 조정위원이라는 사람이 둘의 말을 듣고 합의를 붙여 보는 자리라고⁠. 나는 판사도 조정위원도 몰랐다⁠. 봉투에서 나는 냄새가 동물병원 대기실과 비슷하다는 것만 알았다⁠. 겁먹은 것들이 줄지어 앉았다 간 냄새⁠.

다희가 봉투를 식탁에 놓았다⁠. 나는 봉투 위에 올라 엉덩이를 내려놓았다⁠. 엉덩이 밑에서 종이가 바스락거렸다⁠. 영역에 들어온 낯선 물건은 깔고 앉는 것이 가장 빠르다⁠.

이튿날 열두 시⁠, 할머니가 올라와 물을 갈다가 식탁 위 봉투를 보았다⁠. 봉투 위에는 내가 그대로 앉아 있었다⁠. 할머니가 돋보기를 끼고 내 엉덩이 옆으로 삐져나온 글씨를 읽었다⁠.

“⁠조정이네⁠. 6월⁠.⁠”

할머니가 돋보기를 벗고 내 귀 뒤를 긁었다⁠. 손끝이 오늘따라 차가웠다⁠.

“⁠조정이면 나도 갈 거다⁠. 낮에 이 집에 누가 있었는지⁠, 누가 말해 줄 거야⁠.⁠”

3화는 어땠나요?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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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느린독자2026.10.31· 3화

    이동장 철컥 소리가 병원 소리라는 거 진짜예요. 우리 고양이도 베란다 끝에서 알아들어요.

    • 윤새벽작가2026.10.31

      고양이 키우시는 분들이 다 고개를 끄덕이시더라고요. 호박은 침대 밑에서 귀걸이 한 짝까지 지키고 있었습니다.

수액 · 이혼 부부의 고양이 · 나오늘 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