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607자)

화단

이혼 부부의 고양이 · 윤새벽

토요일 열 시⁠, 화단에서 쇳소리가 올라왔다⁠. 할머니의 목소리였다⁠. 할머니는 화가 나면 목소리에 쇠 긁는 소리가 섞인다⁠. 나는 베란다 방충망에 코를 붙였다⁠.

화단에는 사람이 셋 있었다⁠. 할머니⁠, 무전기를 허리에 찬 관리소장⁠, 골프 모자를 쓴 남자⁠. 관리소장에게서는 담배와 박하사탕이 섞인 냄새가 올라왔다⁠. 박하사탕은 담배를 숨기려고 먹는 것이다⁠. 사람들은 모르지만 고양이 코에는 둘 다 들린다⁠. 골프 모자에서는 차 방향제와 손목시계 가죽 냄새가 났다⁠. 사람들은 골프 모자를 동대표라고 불렀다⁠.

“⁠어르신⁠, 민원이 열한 건이에요⁠. 냄새 난다⁠, 밤에 운다⁠, 차에 발자국 찍힌다⁠.⁠”

“⁠구청에서 하라고 한 급식소야⁠. 너네가 뭔데 치워⁠.⁠”

“⁠구청 사업은 작년에 끝났어요⁠. 이제 단지에서 정하는 거예요⁠.⁠”

동대표가 플라스틱 그릇 하나를 발끝으로 밀었다⁠. 그릇이 회양목 밑으로 미끄러졌다⁠. 회양목 그늘 깊은 데서 고등어가 몸을 납작하게 붙이고 있었다⁠. 꼬리가 땅에 붙어 떨렸다⁠. 고등어의 꼬리가 땅에 붙는 것을 나는 처음 보았다⁠.

“⁠지난주에 집 보러 온 젊은 부부도 그러더래요⁠. 화단 고양이 냄새 때문에 망설인다고⁠. 이 동 집값이 다 같이 가는 거예요⁠, 어르신⁠.⁠”

“⁠집값 때문에 짐승 밥을 뺏어⁠?⁠”

나는 집값이라는 말을 몰랐다⁠. 동대표가 집값을 말할 때 숨이 빨라지고 손목시계를 만졌다는 것만 보았다⁠. 사람은 숫자 이야기를 할 때 손목을 만진다⁠.

*

초인종이 울렸다⁠. 다희가 문을 열었다⁠. 도헌이었다⁠. 중개인과 열한 시에 만나기로 했다며 먼저 들렀다고 했다⁠. 도헌의 점퍼에서 오늘도 소파 담요 냄새가 났다⁠.

“⁠밑에서 뭐 해⁠?⁠”

“⁠급식소 치운대⁠. 할머니 혼자 막고 있어⁠.⁠”

다희가 슬리퍼를 꿰어 신고 계단으로 뛰어 내려갔다⁠. 도헌이 뒤따랐다⁠. 현관문이 천천히 닫히다가 문 사이에 신발장 앞 우산이 끼었다⁠. 문이 고양이 머리 하나 들어갈 만큼 열린 채 멈췄다⁠.

고양이 머리 하나가 들어가면 고양이 하나가 다 들어간다⁠. 나는 열두 해 동안 이것을 써먹지 않았다⁠. 바깥은 영역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은 바깥에서 내 영역을 다투는 소리가 났다⁠. 나는 머리를 문틈에 넣었다⁠. 수염이 문틀 양쪽에 닿았다⁠. 들어간다⁠. 어깨가 들어갔다⁠. 배가 조금 끼었다⁠. 통통한 고양이는 배에서 한 번 멈춘다⁠. 나는 숨을 내쉬고 배를 납작하게 만들었다⁠. 빠졌다⁠.

계단은 차가웠다⁠. 시멘트 바닥이 발바닥 흰 털 사이로 냉기를 밀어 올렸다⁠. 계단 냄새는 집마다 다른 냄새가 차곡차곡 쌓인 냄새다⁠. 3층 맞은편 집에서는 된장과 아기 기저귀가⁠, 2층 할머니 집 문틈에서는 멸치 육수와 늙은 흰 고양이가⁠, 1층 우편함에서는 젖은 종이와 남의 집 개 오줌이 났다⁠. 나는 한 칸씩 내려갔다⁠. 늙은 고양이는 계단에서 앞다리를 먼저 내리고 뒷다리를 끌어 내린다⁠. 뒷다리 관절이 칸마다 딸깍거렸다⁠.

1층 현관 유리문이 열려 있었다⁠. 바람이 밀려 들어와 내 수염을 뒤로 눕혔다⁠. 바깥 바람은 집 안 바람보다 열 배는 많은 냄새를 싣고 온다⁠. 자동차 기름⁠, 남의 집 고기 굽는 연기⁠, 벚꽃 떨어진 자리의 단내⁠, 놀이터 모래⁠, 수백 마리 개의 오줌⁠. 코가 한꺼번에 막혔다⁠. 나는 유리문 앞에서 한참 앉아 있었다⁠. 무서웠다는 말은 하지 않겠다⁠. 꼬리가 다리 사이로 말려 들어갔을 뿐이다⁠.

*

화단은 방충망 너머에서 보던 것보다 넓었고 시끄러웠다⁠. 사람이 다섯으로 늘어 있었다⁠. 할머니와 관리소장과 동대표와 다희와 도헌⁠.

“⁠치우지 마세요⁠. 제가 집 앞에 놓고 관리할게요⁠.⁠”

다희가 말했다⁠. 다희는 화가 나면 존댓말을 쓴다⁠.

“⁠사모님 집은 3층이잖아요⁠. 화단은 공용이고요⁠.⁠”

동대표가 도헌을 보았다⁠.

“⁠선생님 댁이 집 내놓으셨다면서요⁠. 사겠다는 분이 고양이 냄새 때문에 망설인다던데⁠. 선생님이 제일 잘 아시겠네⁠.⁠”

도헌이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다시 열었다⁠.

“⁠…⁠…치우는 게 낫겠죠⁠. 밤에 우는 것도 있고⁠.⁠”

다희의 고개가 도헌에게 천천히 돌아갔다⁠. 할머니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눈만 돌렸다⁠.

“⁠너 지금 뭐라고 했어⁠?⁠”

“⁠집 팔아야 되잖아⁠. 사람들 싫어하는 건 사실이고⁠.⁠”

“⁠너 몇 해 동안 화단 고등어 사진 찍어서 나한테 보냈잖아⁠. 귀 잘린 거 보고 할머니한테 누가 이랬냐고 물어본 것도 너야⁠.⁠”

“⁠그거랑 이거랑 같아⁠?⁠”

나는 회양목 쪽으로 걸어갔다⁠. 사람들의 발목 사이를 지나는 동안 아무도 나를 보지 않았다⁠. 사람은 다툴 때 발밑을 보지 않는다⁠. 회양목 그늘에 고등어가 있었다⁠. 방충망 없이 마주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고등어는 생각보다 작았다⁠. 나보다 머리 하나가 작고 몸은 반쯤 되었다⁠. 털에서 비와 흙과 남의 집 생선 비린내가 났다⁠. 나는 눈을 천천히 감았다 떴다⁠. 방충망 너머로 백 번은 주고받은 약속이었다⁠.

고등어는 눈을 감지 않았다⁠. 내 쪽으로 코를 쭉 내밀어 냄새를 맡았다⁠. 내 털에서 나는 것은 처방식과 동물병원 소독약과 섬유유연제와 집 냄새였다⁠. 고등어의 귀가 뒤로 눕고 꼬리가 두 배로 부풀었다⁠.

하악⁠.

방충망 너머로 들을 때는 바람 소리였는데⁠, 바로 앞에서 들으니 뜨거운 침이 내 코에 튀었다⁠. 나는 놀라서 뒤로 물러나다가 회양목 가지 사이로 엉덩이부터 빠졌다⁠. 주황 몸통이 초록 잎 사이에 거꾸로 박혔다⁠. 뒷다리가 하늘을 향해 버둥거렸다⁠. 굵은 꼬리가 회양목 위로 솟아 깃발처럼 흔들렸다⁠.

“⁠어머⁠, 저거 뭐야⁠?⁠”

동대표가 먼저 보았다⁠. 회양목 위에 솟은 주황 줄무늬 꼬리를⁠.

*

할머니가 회양목 가지를 두 손으로 벌리고 나를 꺼냈다⁠. 할머니의 팔에서 멸치와 파스가 왔다⁠. 나는 할머니의 카디건에 얼굴을 묻었다⁠. 늙은 흰 고양이의 침 냄새가 났다⁠. 처음으로 반가웠다⁠.

“⁠얘가 왜 여기 있어⁠!⁠”

다희와 도헌이 동시에 계단을 돌아보았다⁠. 3층 창이 아니라 1층 현관이었다⁠. 두 사람이 한꺼번에 얼굴이 하얘졌다⁠.

“⁠문 안 닫고 나왔어⁠?⁠”

“⁠네가 뒤에 나왔잖아⁠.⁠”

“⁠네가 먼저 뛰었잖아⁠.⁠”

할머니가 나를 안은 채 두 사람 사이를 지나갔다⁠. 동대표가 물었다⁠.

“⁠어르신⁠, 그럼 급식소는⁠…⁠…⁠.⁠”

“⁠월요일에 치워⁠. 오늘은 내 고양이 하나 건졌으니까 됐어⁠.⁠”

내 고양이⁠. 할머니가 그렇게 말했다⁠. 다희가 할머니의 소매를 잡았다⁠.

“⁠할머니⁠, 호박 주세요⁠. 집에 데려갈게요⁠.⁠”

“⁠집에 문도 안 닫고 나오는 사람들이 어딜 데려가⁠. 오늘은 우리 집에서 재운다⁠.⁠”

*

할머니 집은 우리 집과 모양이 같았다⁠. 거실 창이 같은 자리에 있고 부엌이 같은 자리에 있었다⁠. 냄새만 달랐다⁠. 멸치 육수가 벽지에 배어 있었고⁠, 장롱 위에서 오래된 좀약 냄새가 내려왔다⁠. 거실 구석에 방석이 하나 있었다⁠. 하얀 털이 아직 방석 실밥 사이에 박혀 있었다⁠. 할머니는 방석을 탈탈 털어 창가에 깔았다⁠.

“⁠앉아⁠. 우리 흰 애 자리다⁠.⁠”

나는 방석 냄새를 오래 맡았다⁠. 늙은 흰 고양이는 나보다 늙었고⁠, 마지막 몇 달 동안 입에서 쇠 냄새가 났다⁠. 콩팥이 나쁜 고양이의 입에서 나는 냄새다⁠. 내 입에서도 요즘 조금씩 나는 냄새다⁠. 나는 방석 가장자리에 엉덩이만 걸쳤다⁠. 남의 자리에 다 앉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할머니가 부엌 서랍에서 하얀 약 봉투를 꺼냈다⁠. 우리 동네 동물병원 봉투였다⁠. 봉투 안에 내가 먹는 것과 같은 알약이 몇 알 남아 있었다⁠.

“⁠우리 흰 애가 먹던 거야⁠. 너랑 같은 약이야⁠.⁠”

할머니는 약 봉투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한참 내려다보았다⁠.

“⁠작년 겨울에 얘가 물을 안 먹었어⁠. 나는 몰랐어⁠. 물그릇이 그대로 있는데 그냥 덜 먹나 보다 했지⁠. 사흘 지나서 병원 갔더니 늦었대⁠.⁠”

할머니가 내 앞에 물그릇을 놓았다⁠. 하얀 사기 그릇이었다⁠. 그릇 바닥에 흰 털 한 올이 가라앉아 있었다⁠. 나는 물을 마셨다⁠. 털째 마셨다⁠. 할머니가 내가 혀를 몇 번 놀리는지 보고 있었다⁠.

“⁠너네 집 약통⁠, 나도 봤다⁠. 3월에⁠. 세 알 남은 거⁠.⁠”

텔레비전에서는 남자 목소리가 큰 회사들이 본사를 지방으로 옮긴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할머니는 채널을 돌렸다⁠. 바둑 채널이었다⁠. 돌 놓는 소리만 탁⁠, 탁 났다⁠.

*

해가 질 무렵 할머니가 베란다 창을 열었다⁠. 2층 베란다는 화단과 가까워서 회양목 꼭대기가 방충망 바로 아래에 있었다⁠. 할머니는 방충망 아래 틈으로 사료를 한 줌 흘려보냈다⁠. 사료 알이 회양목 잎에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토독⁠, 토독⁠.

“⁠월요일에 치운다며⁠. 그럼 여기서 먹으면 되지⁠. 내 베란다 밑은 내 거다⁠.⁠”

고등어가 회양목 밑에서 나왔다⁠. 사료를 씹다가 고개를 들어 방충망을 보았다⁠. 방충망 안에 내가 있었다⁠. 낮에 회양목에 거꾸로 박혔던 고양이가 할머니의 다리 옆에 앉아 있었다⁠.

고등어가 코를 들어 냄새를 맡았다⁠. 내 털에 이제 할머니의 멸치와 파스와 흰 고양이 방석 냄새가 배어 있었다⁠. 집고양이 냄새 위에 할머니 냄새가 한 겹 덮인 것이다⁠. 고등어의 귀가 앞으로 돌아왔다⁠. 고등어가 눈을 천천히 감았다 떴다⁠.

나도 감았다 떴다⁠. 낮에 맞은 하악질은 잊어 주기로 했다⁠. 할머니가 우리 둘을 번갈아 보더니 혀를 찼다⁠.

“⁠둘이 졸리냐⁠? 해도 안 졌는데⁠.⁠”

사람은 끝까지 못 알아듣는다⁠. 고등어가 사료를 다 먹고 꼬리를 세운 채 회양목 사이로 사라졌다⁠. 꼬리 끝이 한 번 꺾였다⁠. 고마웠다는 꼬리는 아니었다⁠. 이 밥은 기억해 두겠다는 꼬리였다⁠.

*

저녁 일곱 시에 초인종이 울렸다⁠. 다희와 도헌이 함께 서 있었다⁠. 같이 온 것이 아니라 계단에서 마주친 것이다⁠. 둘의 냄새가 한 덩어리로 섞이지 않고 따로따로 문틈으로 들어왔다⁠. 다희의 손에는 내 처방식과 약통이⁠, 도헌의 손에는 수액 봉지가 들려 있었다⁠.

“⁠할머니⁠, 호박 저녁 약 먹여야 돼요⁠.⁠”

“⁠내가 먹였다⁠.⁠”

“⁠수액도 오늘 맞는 날이에요⁠.⁠”

“⁠그건 내일 맞아도 된대⁠. 병원에 전화해 봤어⁠.⁠”

할머니가 문을 반만 열고 서 있었다⁠. 나는 할머니의 발치에 앉아 있었다⁠. 다희가 쪼그려 앉아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다희의 손가락 냄새를 맡았다⁠. 화단의 흙과 도헌의 담요 보풀과 오늘 몇 번이나 운 눈가의 소금⁠. 도헌도 쪼그려 앉았다⁠. 두 사람의 손이 문턱 너머로 나란히 내밀어졌다⁠.

할머니가 혀를 찼다⁠.

“⁠둘이 하나로 말해 봐⁠. 얘 누구 고양이야⁠?⁠”

“⁠제 고양이요⁠.⁠”

“⁠내 고양이요⁠.⁠”

두 목소리가 한꺼번에 나와서 하나의 소리처럼 들렸다⁠. 다른 말이었다⁠.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오늘은 내 고양이다⁠.⁠”

문이 닫혔다⁠. 두 사람의 손이 문 너머에 남았다⁠. 나는 문 앞에 앉아 문틈 냄새를 맡았다⁠. 두 냄새가 한동안 문 앞에 머물렀다⁠. 하나가 먼저 계단을 올라갔고⁠, 하나는 오래 있다가 계단을 내려갔다⁠.

*

밤에 나는 흰 고양이의 방석 가장자리에서 잤다⁠. 자다가 천장에서 나는 소리에 깼다⁠.

할머니 집 천장은 우리 집 바닥이다⁠. 우리 집 소리가 할머니 집에서는 위에서 들린다⁠. 처음 듣는 각도였지만 소리는 다 아는 소리였다⁠. 다희의 슬리퍼가 거실을 지나는 소리⁠. 냉장고 문⁠. 그리고 하나가 더 있었다⁠.

끼이익⁠.

경첩이 녹슨 문이 열리는 소리였다⁠. 우리 집 문 가운데 그렇게 우는 문은 하나뿐이다⁠. 두 해 동안 한 번도 울지 않은 문이다⁠. 작은방 문이었다⁠.

천장 너머에서 다희의 발소리가 작은방 안으로 들어갔다⁠. 한 걸음⁠, 두 걸음⁠, 그리고 멈췄다⁠. 한참 뒤 바닥에 무언가 내려앉는 소리가 났다⁠. 사람이 무릎을 꿇는 소리였다⁠.

나는 방석에서 일어나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귀를 앞으로 세웠다⁠. 다희의 숨소리가 바닥을 뚫고 내려왔다⁠. 아주 작게⁠. 끊어졌다가⁠, 이어졌다가⁠.

할머니도 깨어 있었다⁠. 할머니가 어둠 속에서 이불을 끌어 올리며 말했다⁠.

“⁠그 방 열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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