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606자)
집 보러 온 사람들
이혼 부부의 고양이 · 윤새벽
토요일 아침, 다희가 도헌에게 문을 열어 주었다. 번호는 알려 주지 않고 손잡이만 돌렸다. 도헌은 열 시에 부동산 사람이 온다고 했고, 다희는 대답 없이 거실 창을 활짝 열었다. 바람이 들어와 소파 왼쪽 쿠션에 남은 도헌의 냄새를 마저 걷어 갔다. 도헌 본인은 현관에 서서 신발을 벗을지 말지 망설였다. 자기 집에 들어오면서 신발을 망설이는 사람을 나는 처음 보았다.
낯선 사람이 온다는 소리를 나는 몸으로 알아들었다. 도헌이 휴대전화에 대고 “네, 열 시요” 할 때 목소리가 반 음 올라갔고, 다희는 식탁 위의 고지서와 약통을 서랍에 쓸어 넣었다. 사람은 낯선 사람이 오기 전에 집의 냄새를 감춘다. 고양이는 반대로 한다.
나는 집을 한 바퀴 돌았다. 현관 신발장 모서리에 뺨을 비비고, 냉장고 옆면에 비비고, 식탁 다리 넷에 차례로 비볐다. 욕실 문틀, 안방 문틀, 베란다 창틀. 작은방 문틀에서 잠깐 멈췄다. 문틈으로 오래된 페인트와 새 나무 냄새가 샜다. 두 해째 아무도 열지 않은 방이다. 나는 문틀에도 꼼꼼히 뺨을 비볐다. 지킬 모서리가 열네 개에서 열다섯 개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다희의 종아리에 비볐다.
“얘 왜 이래? 발정 났어?”
“발정 날 나이는 지났어.”
다희가 내 등을 쓸었다. 도헌은 소파에 앉지 않고 서 있었다. 열두 해 동안 앉던 자리를 비워 두고, 남의 집에 온 사람처럼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있었다. 주머니 안에서 열쇠 꾸러미가 짤랑거렸다.
*
부동산 중개인은 믹스커피와 라일락 향수 냄새를 앞세우고 들어왔다. 구두 굽이 마룻바닥을 똑똑 두드렸다.
“어머, 고양이 있는 집이네요. 호호. 사진엔 빼고 찍을게요. 고양이 있는 집은 사진에 고양이 나오면 안 나가요.”
중개인이 휴대전화를 들고 거실 한가운데로 갔다. 휴대전화가 찰칵 하기 직전에 나는 식탁에 뛰어올라 정면을 보고 앉았다. 찰칵.
“어머.”
중개인이 안방으로 갔다. 나는 먼저 들어가 침대 한가운데 배를 깔고 누웠다. 찰칵. 욕실로 갔다. 나는 마른 욕조에 들어가 앉았다. 욕조 바닥이 차서 엉덩이가 시렸지만 참았다. 찰칵.
“선생님, 고양이 좀 잡아 주세요.”
도헌이 나를 안아 올렸다. 나는 몸에서 뼈를 빼고 물처럼 흘러내렸다. 도헌의 팔 사이로 앞발이 빠지고, 배가 빠지고, 꼬리가 빠졌다. 다희가 고개를 돌렸는데 어깨가 흔들렸다. 웃는 것이다. 다희가 웃는 냄새는 오랜만이었다. 입김에 커피 대신 단 숨이 섞여 나온다.
“얘가 사진을 아네.”
중개인은 결국 내가 들어간 사진 넷 가운데 둘을 골랐다. 화면 귀퉁이의 내 엉덩이만 잘라 내면 된다고 했다. 나는 말뜻을 알아듣지 못했지만 손가락이 화면을 오므리는 소리가 내 엉덩이를 오리는 소리처럼 들렸다.
*
열한 시에 집을 사려는 부부가 왔다. 남자에게서는 차가운 민트 껌과 새 운동화 냄새가 났고, 여자에게서는 아기 로션 냄새가 났다. 아기는 없었다. 여자의 어깨에 멘 가방 안에서 작은 흰 개가 낑낑거렸다. 개 냄새가 현관을 넘어 내 수염 끝까지 밀려왔다.
나는 꼬리를 부풀렸다. 몸이 한 배 반으로 커졌다. 원래도 큰 몸이 거실을 반쯤 막았다. 가방 속 개가 한 번 짖더니 머리를 쏙 집어넣었다.
“와, 고양이 크다. 몇 킬로예요?”
“여섯 킬로 반이요.”
“뚱냥이네.”
남자가 웃다가 재채기를 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아, 저 고양이 털 알레르기가 좀 있어서요.”
알레르기라는 말은 몰랐다. 재채기는 알았다. 재채기를 하는 사람은 털을 싫어하고, 털을 싫어하는 사람은 이 집에 살면 안 된다. 나는 남자의 발목으로 걸어가 바지에 몸통을 길게 대고 한 바퀴 돌았다. 한 바퀴 더 돌았다. 짙은 남색 바지에 주황 털이 한 겹 붙었다.
“어, 어. 얘가 저를 좋아하나 봐요. 에취.”
“호박, 이리 와.”
다희가 불렀지만 나는 가지 않았다. 일하는 중이었다.
부부는 거실 창을 열어 보고 수도를 틀어 보고 안방 붙박이장을 열었다. 남자가 금리 이야기를 했다. 미국에서 금리를 내려서 대출 이자가 조금 내렸고, 지금 안 사면 여름엔 또 오른다고. 중개인이 맞장구를 쳤다. 이 단지는 재건축 소문만 돌아도 한 달에 몇천씩 뛴다고. 사람들은 집 이야기를 할 때 숫자를 많이 말한다. 숫자를 말할 때마다 도헌의 손가락이 주머니 속 열쇠를 만졌다.
“여기 방은요?”
여자가 작은방 문고리를 잡았다. 돌아가지 않았다.
“창고예요. 짐이 많아서.”
다희가 먼저 말했다. 목소리가 평평했다. 평평한 목소리 밑에서 심장이 빨라지는 소리를 나는 들었다. 도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주머니 속 열쇠 소리가 멈췄다.
“방 세 개라고 하셔서 왔는데. 아이 생기면 쓸 방이라.”
여자가 문고리를 놓으며 웃었다. 다희는 웃지 않았다. 다희의 눈가에서 짠 냄새가 한 줄기 올라왔다가 금방 말랐다.
“다음에 오실 때 보여 드릴게요. 호호. 아, 그리고 화단에 길고양이 밥그릇 있는 거, 관리사무소에 말해 두면 치워요. 입주민들도 싫어하는 분 많아요.”
“고양이 냄새 빠지려면 도배는 새로 해야겠다. 에취.”
남자는 현관에서 바지를 털다가 털이 안 떨어지자 포기했다. 나는 남자의 운동화 깔창 냄새를 마지막으로 한 번 맡고 꼬리를 바닥에 탁 내리쳤다. 돌아오지 말라는 말이었다. 사람은 못 알아들었다.
*
문이 닫히자 거실에 두 사람만 남았다. 라일락 향수가 아직 공기 위쪽에 떠 있었다. 다희가 창을 더 열었다.
“네 몫 내가 살게.”
도헌이 식탁 의자를 빼서 앉았다. 남의 집 의자에 앉듯 엉덩이를 반만 걸쳤다.
“대출 얼마 나오는데.”
“알아볼 거야.”
“알아보고 말해. 지금 시세면 내 반만 해도 네 연봉 몇 년 치야. 나는 그 돈 한 번에 받아야 돼. 전주 가서 전세라도 얻어야지.”
“호박은 이 집에서 열두 해 살았어. 늙은 고양이는 이사하면 밥을 안 먹어.”
“병원에서 그런 말 안 했어.”
“인터넷에 다 나와.”
“인터넷.”
도헌이 웃었다. 이 웃음에서는 단 숨이 나오지 않았다. 다희의 겨드랑이에서 시큼한 땀이 났다. 화가 나서 나는 땀이다. 다희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다희가 믿는 것을 도헌이 비웃었고, 비웃음을 맞은 사람의 몸에서도 시큼한 냄새가 난다.
중개인이 식탁에 놓고 간 종이 한 장이 있었다. 우리 집 사진이 찍힌 종이였다. 나는 식탁에 올라 종이 한가운데 엉덩이를 내려놓았다. 사진 속 거실 위에 진짜 내가 앉았다.
“비켜, 호박.”
도헌이 종이를 당겼다. 나는 꼬리로 도헌의 손등을 쳤다. 다희가 이번에는 웃지 않았다. 대신 종이를 내 엉덩이 밑에서 빼내 반으로 접어 서랍에 넣었다.
“사려는 사람 또 데려오면 문 안 열어 줄 거야.”
“그럼 법원 가자.”
법원이라는 소리를 나는 처음 들었다. 두 사람 다 법원이라는 말을 하고 나서 숨을 멈췄다. 처음 듣는 소리가 두 사람의 숨을 한꺼번에 멈추게 하면, 고양이는 오래 기억한다.
*
일요일 오후, 다희는 베란다 바닥에 앉아 휴대전화로 은행 앱을 열었다. 나는 다희의 무릎에 올라갔다. 이 집에서 부르지 않아도 열리는 무릎은 다희의 것 하나뿐이다. 도헌의 무릎은 늘 “호박, 무릎” 하고 불러야 열렸다. 도헌이 부르면 나는 꼭 한 번 못 들은 척하고 나서 올라갔다. 바로 올라가면 수컷의 체면이 서지 않는다.
다희는 화면을 누르며 낱말을 중얼거렸다. 한도, 금리, 기간. 같은 자리를 세 번 누르고 세 번 한숨을 쉬었다. 한숨마다 식은 커피 냄새가 내 귀 위로 내려왔다. 다희의 허벅지가 조금씩 딱딱해졌다. 사람은 숫자가 모자랄 때 다리부터 굳는다.
“모자라. 호박, 많이 모자라.”
나는 다희의 손등을 핥았다. 혀가 까끌해서 다희가 손을 움츠렸다가 다시 내밀었다.
방충망 아래에서 고등어가 올려다보았다. 나는 무릎에서 내려와 방충망에 코를 댔다. 화단에서 낯선 냄새가 올라오고 있었다. 차가운 민트 껌과 새 운동화. 오전에 온 남자가 돌아가는 길에 화단 급식소 앞에 멈춰 서 있었던 냄새였다. 플라스틱 그릇 하나가 뒤집혀 회양목 밑에 박혀 있었다. 고등어가 꼬리를 두 배로 부풀렸다가 천천히 가라앉혔다. 누가 내 밥그릇을 찼다는 말이었다.
나는 눈을 천천히 감았다 떴다. 고등어는 감지 않았다. 내 수염에 남은 민트 껌 냄새를 맡은 것이다. 고등어의 귀가 뒤로 눕고 입이 벌어졌다. 하악. 소리는 3층까지 올라오지 않았지만 수염 끝에 바람이 닿았다. 민트 껌 씹는 남자를 이 집에 들인 것이 나라고, 고등어는 믿었다.
*
월요일 열두 시. 삑, 삑, 삑, 삑, 삑, 삑. 높고, 낮고, 낮고, 높고, 높고, 낮고.
아랫집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새 번호를 한 번에 눌렀다. 들어오자마자 내 물그릇을 쏟고 새 물을 받았다. 모래 화장실 뚜껑을 열어 덩어리를 세고, 덩어리 크기를 손가락으로 재 보았다. 오줌 덩어리가 크면 물을 잘 먹은 것이고, 작으면 할머니가 혀를 찬다. 오늘은 혀를 차지 않았다.
“많이 쌌네. 잘했다, 뚱땡이.”
할머니는 소파 오른쪽 끝에 앉아 내 턱을 긁었다. 할머니의 손끝에서 늙은 흰 고양이의 침 냄새가 아주 희미하게 났다. 지난겨울 이후로 손을 몇백 번 씻었을 텐데도 남아 있었다.
“우리 집에 방석 있다. 우리 흰 애 쓰던 거. 너 오면 깔아 줄게.”
나는 눈을 천천히 감았다 떴다. 할머니가 알아듣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 그랬다.
초인종이 울렸다. 할머니가 문을 열었다. 도헌이었다. 점심시간에 회사에서 나온 냄새, 사무실 복사기와 식은 김치찌개가 묻어 있었다.
“할머니, 저 우편물 좀 가지러 왔어요. 번호 좀 알려 주시면…….”
“다희가 말하지 말래.”
“저 이 집 주인이에요.”
“반만.”
할머니는 문을 반만 열고 서 있었다. 할머니의 슬리퍼 사이로 내가 머리를 내밀었다. 도헌이 쪼그려 앉아 내 정수리를 만졌다. 박하 스킨로션이 다시 왔다. 오늘 아침에 새로 바른 것이다.
“할머니가 왜 저희 일에…….”
“내가 3년을 낮마다 봤어. 너 낮에 얘 뭐 하는지 알아?”
도헌은 대답하지 못했다.
“열두 시 반에 베란다에서 화단 고등어랑 눈 맞추고, 한 시엔 네 자리에서 자. 소파 왼쪽 끝. 너 나간 뒤로 하루도 안 빼고.”
도헌의 손이 내 정수리에서 멈췄다. 손바닥이 뜨거워졌다가 조금씩 식었다. 나는 머리를 들어 도헌의 손바닥에 정수리를 한 번 더 밀어 넣었다. 할머니가 혀를 찼다.
“둘이 정 못 하겠으면 내가 키운다. 농담 아니다.”
*
저녁에 할머니가 현관 앞에 놓인 상자 하나를 들여놓고 갔다. 도헌이 두고 간 상자였다. 다희가 퇴근해서 상자를 뜯었다. 새 플라스틱 냄새가 거실에 확 퍼졌다. 바퀴가 달리고 손잡이가 길게 빠지는 이동장이었다. 상자 안에 쪽지가 한 장 있었다. 다희가 소리 내어 읽었다.
“전주까지 세 시간. 이 정도면 호박도 편할 거야.”
다희는 이동장을 베란다 구석에 밀어 두었다. 휴대전화가 울렸다. 도헌이었다. 다희가 스피커를 눌렀다.
“그 부부가 다음 주 토요일에 다시 온대. 작은방 보고 싶대.”
“안 돼.”
“계약하려면 다 보여 줘야지.”
다희는 전화를 끊었다. 안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나는 베란다로 나가 이동장 냄새를 맡았다. 새 플라스틱 밑에 도헌의 손 냄새가 있었다. 상자를 들고 계단을 오른 땀, 손잡이를 몇 번이나 뺐다 넣었다 한 손바닥. 나는 이동장 안으로 들어가 몸을 둥글게 말았다. 굵은 꼬리가 문 밖으로 삐져나왔다. 안방 문틈으로 다희의 냄새가 새어 나왔고, 이동장 안에서는 도헌의 냄새가 났다. 나는 두 냄새 사이에서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