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466자)

같은 사진 두 장

곁가지는 친다 · 윤서각

1월 30일 월요일 오전 열 시⁠, 리학철은 책상 위에 놓인 사진 두 벌을 내려다보았다⁠. 같은 사진이었다⁠. 혜산역 앞 광장⁠, 털깃 단 검은 가죽코트를 입은 청년 일곱⁠, 뒷짐⁠, 들어 올린 턱⁠. 맨 오른편 청년의 소매가 손가락 끝까지 내려와 있었다⁠. 한 벌은 총무부 봉투에서⁠, 한 벌은 선전선동부 봉투에서 나왔다⁠. 두 봉투를 들고 온 두 사람이 학철의 책상 양편에 앉아 있었다⁠.

문정숙이 먼저 안경을 코끝에 걸었다⁠.

“⁠결정문 부록으로 붙일 자료입니다⁠. 제목은 「⁠혜산 장마당의 사치 풍조에 대하여⁠」⁠. 향도 김주애 동지의 차림을 장마당에서 베껴 팔고⁠, 청년들이 그 차림으로 흉내를 내며 웃습니다⁠. 위를 앞세우는 무리가 아래에 사치를 퍼뜨린 결과입니다⁠. 조직지도부 의견을 붙여 주십시오⁠.⁠”

진경훈이 다리를 꼬았다⁠.

“⁠같은 사진을 우리 부는 노동신문 3면에 싣고 싶습니다⁠. 제목은 「⁠향도를 따라 배우는 혜산의 청년들⁠」⁠. 청년들이 향도 동지의 차림을 따라 입습니다⁠. 인민이 먼저 따르는데 무슨 사치입니까⁠?⁠”

“⁠웃고 있지 않습니까⁠, 사진 속 청년들이⁠.⁠”

“⁠기뻐서 웃는 겁니다⁠.⁠”

“⁠기뻐서 뒷짐을 집니까⁠?⁠”

“⁠열병식 주석단 사진을 보셨으면 아실 겁니다⁠. 2026년 2월 김일성광장⁠. 향도 동지께서 아버지와 같은 가죽코트를 입으시고 주석단 한가운데 서셨습니다⁠. 그때부터 혜산 청년들은 그 사진을 보고 자랐습니다⁠.⁠”

학철은 두 사람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끝나지 않을 것을 알았지만 기다렸다⁠. 창밖에서 본부청사 마당의 눈을 치우는 부삽 소리가 들렸다⁠.

“⁠사진은 사진입니다⁠. 조직지도부는 간부를 봅니다⁠. 이 청년들은 간부가 아닙니다⁠.⁠”

“⁠청년들을 이렇게 만든 간부가 있지요⁠. 양강도당입니다⁠.⁠”

문정숙이 말했다⁠. 진경훈이 웃었다⁠.

“⁠양강도당 책임비서 자리는 지금 비어 있습니다⁠. 과장 동지 책상 위에⁠.⁠”

학철의 눈이 저절로 책상 왼편으로 갔다⁠. 문건철 열두 개⁠. 위에서 세 번째가 양강도당 책임비서 임명 문건이었다⁠. 문정숙과 진경훈의 눈도 같은 곳으로 갔다⁠. 세 사람이 한동안 회색 문건철을 보았다⁠.

“⁠혜산을 다스릴 사람이 정해지면 사진의 제목도 정해지겠군요⁠.⁠”

진경훈이 일어나며 말했다⁠. 문정숙은 일어나지 않았다⁠.

“⁠총무부는 그 문건의 후보를 다시 보자고 할 겁니다⁠. 지금 후보는 혜산 장마당을 키운 사람입니다⁠.⁠”

“⁠선전선동부는 지금 후보를 지지합니다⁠. 장마당을 키운 사람이 인민을 아는 사람입니다⁠.⁠”

두 사람이 같은 문건 하나를 두고 서로 다른 이름을 말했다⁠. 학철은 사진 두 벌을 한데 모아 서랍에 넣었다⁠. 서랍 안에서 사진이 12월 1일 자 노동신문 위에 포개졌다⁠. 금테 두른 붉은 의자와 의자 곁의 세 사람 위에⁠, 코트 입은 청년 일곱이 엎드렸다⁠.

“⁠두 의견 다 받았습니다⁠. 알았습니다⁠.⁠”

“⁠과장 동지는 정말 무엇이든 알았다고 하시는군요⁠.⁠”

진경훈이 문을 열고 나갔다⁠. 문정숙은 안경을 벗어 목에 늘어뜨리고 나서야 일어났다⁠.

*

2월 1일 수요일 저녁 일곱 시⁠, 윤설향은 혜산 압록강 둑길 아래 골목 끝 이층집의 부엌 바닥에 앉아 있었다⁠. 돈주 한경희의 집이었다⁠. 돈주는 장마당에서 큰돈을 굴리는 사람을 부르는 말이었다⁠. 쉰셋의 경희는 털 조끼를 입고 전기난로를 발치에 끌어다 놓았다⁠. 난로는 장백에서 넘어온 중국산이었고⁠, 전기가 들어오는 동안만 빨갛게 달았다⁠.

“⁠천 벌⁠.⁠”

“⁠삼백⁠.⁠”

“⁠천 벌이다⁠. 장백 공장 재단사가 3월 안에 맞춘다고 했다⁠. 한 벌에 사백 위안이 남는다⁠.⁠”

“⁠삼백 벌이면 보위국이 모르는 척한다⁠. 천 벌이면 혜산 청년이 다 코트를 입는다⁠. 그럼 사진이 또 올라감다⁠.⁠”

“⁠사진이 올라가면 값이 오른다⁠. 평양에서 사진을 둘이 서로 가지려 한다는 말 못 들었니⁠?⁠”

설향은 무릎을 끌어안았다⁠. 아흐레 전 보위국 조사실 지도원의 서랍 위에 놓인 전보 첫 줄이 떠올랐다⁠. 「⁠혜산 사치 풍조 사진 자료를 올려 보낼 것⁠」⁠. 경희는 전보를 보지 않고도 전보의 첫 줄을 알았다⁠.

“⁠형님은 청년들이 코트를 왜 사는지 압니까⁠?⁠”

“⁠반은 따라 하고 반은 비웃지⁠. 모든 아이의 아버지라던 분이 제 딸만 감싸고⁠, 제 또래는 돌격대에 끌려 나가 언 땅을 파는데 딸은 털깃을 두른다고⁠. 그런 말이 돌더라⁠. 말이 돌든 말든 코트는 팔린다⁠.⁠”

“⁠그 말이 성민이 입에서 나오면 성민이는 끝남다⁠.⁠”

“⁠기러니까 니 동생 입을 막는 데 돈이 드는 거지⁠. 천 벌이면 니 동생 돌격대에서 빼낼 돈이 백 번은 나온다⁠.⁠”

전기가 나갔다⁠. 난로가 꺼지고 부엌이 어두워졌다⁠. 경희가 성냥을 그어 초에 불을 붙였다⁠. 촛불 너머로 경희의 얼굴이 노랗게 떴다⁠.

“⁠오백⁠.⁠”

설향이 말했다⁠. 경희가 웃었다⁠.

“⁠칠백⁠.⁠”

“⁠오백임다⁠. 오백 넘으면 내 매대에서는 안 팜다⁠. 형님이 직접 파시라요⁠. 형님 얼굴이 평양에 올라가게⁠.⁠”

경희가 성냥개비를 손가락 사이에서 부러뜨렸다⁠.

“⁠오백⁠. 3월 첫 주에 강을 건넌다⁠. 니 몫 선금은 없다⁠.⁠”

“⁠선금 없으면 내 몫 이자도 없슴다⁠.⁠”

“⁠이 에미나이는 아버지를 안 닮고 할머니를 닮았구나야⁠. 그 할머니가 혜산 장마당에서 처음으로 중국 사탕을 판 사람이다⁠.⁠”

“⁠형님은 할머니한테 사탕 외상 진 거 아직 안 갚으셨다면서요⁠.⁠”

경희가 소리 내어 웃었다⁠. 웃음소리에 촛불이 흔들렸다⁠.

*

2월 3일 금요일 저녁 일곱 시⁠, 김인철은 외교단 숙소 1층 응접실의 가죽 소파에서 맞은편 손님을 보았다⁠. 선전선동부 부부장 진경훈이라고 했다⁠. 진경훈 뒤 문간에 호위사령부 군복의 젊은 중위가 서 있었다⁠. 어깨가 넓고 눈이 밝았다⁠. 혜림은 진경훈의 말 한마디에 응접실 밖으로 나갔다⁠. 나가면서 문을 반 뼘 열어 두었다⁠.

“⁠슬리퍼 드릴까요⁠? 하나 더 있소⁠.⁠”

“⁠일없습니다⁠. 금방 갑니다⁠.⁠”

진경훈은 서류 봉투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탁자 위로 밀었다⁠. 타자로 친 문장이었다⁠.

「⁠나는 백두의 직계 정통을 받들며⁠, 혈통에 대한 어떠한 권리도 내세우지 않는다⁠. 김인철⁠」

“⁠여기 서명하시면 다음 주 베이징행 비행기에 오르실 수 있습니다⁠. 베이징에서 프라하까지 표는 우리가 끊습니다⁠. 보위성 금고도 우리가 엽니다⁠.⁠”

“⁠금고 열쇠는 아무한테도 없다고 들었소⁠.⁠”

“⁠열쇠가 없는 금고는 없습니다⁠. 아무한테나 안 보여 주는 겁니다⁠.⁠”

인철은 종이를 들어 읽었다⁠. 「⁠어떠한 권리⁠」라는 말에서 눈이 멈췄다⁠. 권리라는 낱말을 들고 평양에 온 적이 없었다⁠.

“⁠할아버지는⁠?⁠”

“⁠할아버지께서는 평양에 계시면 됩니다⁠.⁠”

“⁠할아버지 표도 끊어 주시오⁠. 두 장⁠.⁠”

“⁠할아버지는 곁가지의 뿌리입니다⁠. 뿌리는 옮기지 않습니다⁠. 가지만 떠나시면 됩니다⁠.⁠”

“⁠뿌리를 두고 가지가 어떻게 떠나오⁠? 프라하 할머니네 사과나무도 그렇게는 안 되오⁠.⁠”

진경훈이 웃었다⁠. 웃음이 짧게 끊겼다⁠.

“⁠동무가 서명하시면 원로들은 손에 쥘 사내가 없어지고⁠, 총무부는 칠 곁가지가 없어집니다⁠. 그럼 할아버지는 아무한테도 쓸모가 없어집니다⁠. 쓸모없는 노인은 평양에서 가장 안전합니다⁠.⁠”

인철은 종이를 내려놓았다⁠. 문간의 중위가 처음으로 인철을 정면으로 보았다⁠. 인철이 중위의 눈을 마주 보자 중위가 시선을 문틀로 옮겼다⁠.

“⁠생각할 시간을 주시오⁠.⁠”

“⁠생각은 프라하에서 하셔도 됩니다⁠.⁠”

“⁠여기서 하겠소⁠. 할아버지가 여기 계시니까⁠.⁠”

진경훈은 종이를 봉투에 도로 넣지 않고 탁자 위에 두고 일어났다⁠.

“⁠전원회의가 이달 말입니다⁠. 그 전까지 이 종이는 살아 있습니다⁠. 그 뒤로는 모릅니다⁠.⁠”

진경훈이 먼저 현관을 나갔다⁠. 중위는 바로 따라가지 않고 응접실 문간에서 장갑을 꼈다⁠. 장갑 한 짝이 손에서 미끄러져 바닥에 떨어졌다⁠. 인철이 소파에서 일어나 장갑을 주워 건넸다⁠.

“⁠고맙습니다⁠.⁠”

“⁠총을 잘 쏘시오⁠?⁠”

“⁠다섯 발에 마흔여덟 점 쏩니다⁠.⁠”

“⁠나는 총을 못 쏘오⁠. 대신 사십 톤짜리 전차를 비 오는 날 내리막에서 세울 줄 아오⁠. 정류장 표시선에 앞바퀴를 맞춰서⁠.⁠”

중위의 입가가 조금 풀렸다⁠.

“⁠곁가지 손자는 무섭지 않습니까⁠? 여기서⁠.⁠”

“⁠무섭소⁠. 그래서 슬리퍼를 신소⁠.⁠”

중위가 경례 비슷한 것을 하다가 말고 장갑 낀 손으로 모자챙을 만졌다⁠. 현관 밖에서 진경훈이 이름을 불렀다⁠. 리정훈 중위⁠. 중위가 돌아서 뛰어나갔다⁠. 문간에 서 있던 혜림이 중위의 이름을 듣고 군복 가슴께를 손바닥으로 눌렀다⁠.

인철은 소파로 돌아와 탁자 위의 종이를 보았다⁠. 서명하지 않은 종이 옆에⁠, 아까 손님에게 내밀었다 거절당한 털 슬리퍼 한 켤레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

같은 날 밤 열 시⁠, 오혜림은 응접실 탁자 앞에 서서 서명하지 않은 종이를 내려다보았다⁠. 인철은 소파에 앉아 털 슬리퍼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 있었다⁠. 숙소 직원들은 퇴근했고⁠, 복도 끝 당직실에서 라디오가 낮게 행진곡을 틀었다⁠.

“⁠서명하실 겁니까⁠?⁠”

“⁠표가 두 장이면 하겠소⁠.⁠”

“⁠한 장이면요⁠?⁠”

“⁠한 장이면 생각하겠소⁠. 여기서⁠.⁠”

“⁠서명하시면 보고서에 써야 합니다⁠. 안 하셔도 써야 합니다⁠. 오늘 누가 왔는지⁠, 누가 문간에 서 있었는지⁠.⁠”

“⁠문간의 중위 이름도 쓰오⁠?⁠”

혜림은 대답하지 않았다⁠. 인철은 무릎 위의 슬리퍼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아까 동무가 가슴께를 눌렀소⁠. 공항에서도 그랬고 조사실에서도 그랬소⁠. 거기 뭐가 있소⁠?⁠”

“⁠종이입니다⁠.⁠”

“⁠무슨 종이요⁠?⁠”

“⁠아버지가 버리지 말라고 한 종이입니다⁠.⁠”

혜림은 말해 놓고 입술을 안으로 물었다⁠. 말할 생각이 없던 말이었다⁠. 인철은 더 묻지 않았다⁠. 대신 소파 등받이에 기대 천장을 보았다⁠.

“⁠나는 바르샤바 대사관 관저에서 났소⁠. 2004년 겨울에⁠. 할아버지가 그랬소⁠. 바르샤바에서는 설날마다 대사관 사람들이 다 모여서 만두를 빚었다고⁠. 누구 손이 빠르고 누구 손이 느린지 다 보였다고⁠.⁠”

혜림의 손이 군복 가슴께로 갔다가 내려왔다⁠.

“⁠아버지는 그 만두가 돼지고기였다는 것만 기억합니다⁠. 한 접시를 다 먹었다고 합니다⁠. 맛있어서⁠.⁠”

당직실 라디오의 행진곡이 끝나고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혜림은 탁자 위의 종이를 집어 들지 않고⁠, 종이 귀퉁이를 손가락 끝으로 탁자 모서리에 맞춰 반듯하게 놓았다⁠.

“⁠이 종이는 여기 두겠습니다⁠. 손대지 않았다고 쓰겠습니다⁠.⁠”

*

2월 5일 일요일 아침 일곱 시 사십 분⁠, 리학철은 중구역 아파트 부엌 식탁에서 노동신문 1면을 펼쳤다⁠. 정훈은 금요일 밤에도 토요일 밤에도 집에 오지 않았다⁠. 아내가 끓인 시래깃국이 식탁 위에서 김을 올렸다⁠.

1면 맨 위에 굵은 글자가 있었다⁠.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결정서 —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10기 제8차 전원회의를 2월 26일에 소집함에 대하여⁠」

결정서는 다섯 줄이었다⁠. 전원회의를 소집한다는 것⁠, 인민경제와 국방과 당 건설의 과업을 토의한다는 것⁠, 조직 문제를 다룬다는 것⁠. 학철은 다섯 줄을 두 번 읽었다⁠. 누가 회의를 지도하는지는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았다⁠.

67일째였다⁠. 1면에 김정은의 새 사진은 없었다⁠. 결정서 아래 귀퉁이에 김주애의 사진도 없었다⁠. 1면에는 글자만 있었다⁠.

“⁠아버지 오늘도 일하러 가요⁠?⁠”

김선희가 국자를 든 채 물었다⁠. 학철은 대답 대신 신문을 접었다⁠. 접다가 손을 멈추고 다시 폈다⁠. 「⁠조직 문제⁠」라는 네 글자가 접힌 자리 한가운데 들어가 있었다⁠. 학철은 신문을 접지 않고 식탁에 편 채 두었다⁠. 시래깃국 그릇 밑으로 신문 귀퉁이가 젖어 들었다⁠.

6화는 어땠나요?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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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막차승객2026.11.02· 6화

    프라하행 표랑 혈통 권리를 버린다는 진술을 바꾸자니… 진경훈이 학철 아들까지 데리고 온 게 제일 소름이었어요.

    • 윤서각작가2026.11.02

      표를 내미는 손 옆에 학철의 아들을 세워 두는 거죠. 진경훈은 협박을 협박처럼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