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306자)

해커톤

마흔셋 경단녀, 동기는 스물넷 · 여시결

5월 6일 밤 열한 시 오십팔 분⁠, 단희의 휴대전화가 떨었다⁠. 해커톤 팀 등록 마감 이 분 전이었다⁠.

「⁠팀 등록했어요⁠. 금단희 · 차민성⁠. 싫으시면 내일 일곱 시 전에 실장님한테 빼 달라고 하세요⁠.⁠」

단희는 답장 칸에 「⁠혼자 한다고 했잖아요⁠」를 썼다가 지웠다⁠. 「⁠민성 씨는 왜 이 분 남기고 해요⁠」를 썼다가 또 지웠다⁠. 자정이 지나 마감이 닫힌 뒤에 한 줄을 보냈다⁠.

「⁠일곱 시에 봬요⁠. 컵라면은 내가 사요⁠.⁠」

답은 바로 왔다⁠. 「⁠컵라면은 팀장님이 사 온대요⁠. 운동화 신고요⁠.⁠」

*

5월 7일 금요일 저녁 여섯 시⁠, 단희는 거실에서 노트북 가방을 챙겼다⁠. 칫솔⁠, 여벌 블라우스⁠, 손목 보호대 하나 더⁠. 경채는 다섯 시 KTX로 부산에 가기로 되어 있었다⁠. 아이들은 친정엄마가 무릎을 끌고 와서 보기로 했다⁠. 엄마는 계단 대신 엘리베이터만 탄다는 조건을 붙였다⁠.

현관문이 열렸다⁠. 경채가 출장 가방을 든 채 들어왔다⁠. 가방은 아침에 싼 그대로 지퍼가 잠겨 있었다⁠.

“⁠기차 놓쳤어⁠?⁠”

“⁠안 탔어⁠.⁠”

경채는 가방을 현관에 내려놓고 구두를 벗었다⁠. 찬결이 달려와 경채의 다리에 매달렸다⁠.

“⁠팀장한테 전화했어⁠. 이번 주말은 못 간다고⁠. 애들 봐야 한다고⁠.⁠”

“⁠팀장이 뭐래⁠?⁠”

“⁠한숨 네 번⁠. 저번보다 한 번 늘었어⁠. 그러더니 승진 심사 얘기를 하더라⁠. 알겠다고 했어⁠.⁠”

단희는 노트북 가방 지퍼를 쥔 채 경채를 보았다⁠. 경채는 넥타이를 풀어 찬결의 목에 걸어 주려다 그만두고 제 주머니에 넣었다⁠. 목에 뭐 감으면 안 된다는 말을 기억한 손이었다⁠.

“⁠할 말 있어⁠.⁠”

“⁠해⁠.⁠”

“⁠작년 가을에 회사에 육아휴직 신청서 썼어⁠. 두 번⁠. 두 번 다 임시 저장만 하고 지웠어⁠. 팀장 얼굴이 떠올라서⁠.⁠”

거실 시계 초침 소리가 들렸다⁠. 해윤이 방문 틈으로 둘을 내다보았다⁠.

“⁠왜 말 안 했어⁠?⁠”

“⁠말하면 내가 안 내는 게 다 보이잖아⁠.⁠”

단희는 노트북 가방을 내려놓고 경채의 넥타이를 주머니에서 꺼내 다시 접어 넣었다⁠. 대답은 넥타이로 했다⁠. 엄마에게는 오지 말라고⁠, 무릎 쉬시라고 전화를 했다⁠.

*

저녁 일곱 시⁠, 15층 라운지의 통유리창 밖으로 구로디지털단지의 불빛이 켜지기 시작했다⁠. 인턴 여덟 명이 다섯 팀으로 나뉘어 소파와 빈백에 흩어졌다⁠. 실장 엄여란이 마이크를 들었다⁠. 오늘은 회색 정장 대신 꼬박 로고가 박힌 후드티였다⁠.

“⁠주제는 하나예요⁠. 사장님이 꼬박페이 때문에 더 힘들어지지 않게 하는 기능⁠. 스물네 시간 드릴게요⁠.⁠”

옆 탁자의 3조 청년은 에너지 음료 여섯 캔을 피라미드로 쌓아 놓고 시작했다⁠. 일곱 시 반에 한 캔⁠, 여덟 시에 한 캔⁠. 아홉 시에는 피라미드가 무너졌고 청년은 화장실을 네 번 다녀왔다⁠. 표 선생이 귤을 까서 청년에게 건네며 말했다⁠. 카페인은 적분이 아니에요⁠, 쌓는다고 넓이가 되지 않아요⁠. 청년은 귤을 받으며 무슨 말인지 몰라 고개만 숙였다⁠.

단희와 민성은 창가 끝 탁자를 잡았다⁠. 단희가 공책을 폈다⁠. 춘례의 영수증 두루마리에서 옮겨 적은 비 오는 날들이 있었다⁠.

“⁠사장님들이 꼬박페이를 일수라고 하는 건⁠, 장사가 안 되는 날에도 똑같이 떼어 가서예요⁠. 비 오는 날 매출이 반인데 상환은 그대로면 그날은 빚만 늘어요⁠.⁠”

“⁠그럼 비 오는 날은 덜 떼요⁠?⁠”

“⁠덜 떼고⁠, 다시 오르는 날 나눠서 받아요⁠. 창구에서는 사장님이 와서 사정하면 그렇게 해 드렸어요⁠. 사정하러 못 오는 사장님은 못 해 드렸고요⁠.⁠”

민성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매출이 석 달 평균보다 크게 꺼진 날은 상환을 줄이고⁠, 꺼진 날 뒤 사흘 동안 나누어 받는다⁠. 사장님이 사정하지 않아도 앱이 먼저 알아챈다⁠. 둘은 기능 이름을 두고 십 분을 싸웠다⁠. 민성은 「⁠유동 상환 조정⁠」을 원했고 단희는 「⁠비 오는 날 쉬어 가기⁠」를 원했다⁠. 지나가던 표 선생이 판정했다⁠. 춘례 사장님이 읽을 수 있는 이름으로 하세요⁠. 이름은 단희 것으로 정해졌다⁠.

밤 열 시⁠, 둘은 처음으로 기능을 두고 정면으로 부딪쳤다⁠. 민성이 화면에서 손을 떼고 말했다⁠.

“⁠사장님⁠, 이거 회사는 손해예요⁠. 비 오는 날마다 덜 받으면 돈이 늦게 돌아와요⁠. 심사위원들이 그거 제일 먼저 물어요⁠.⁠”

“⁠손해 아니에요⁠.⁠”

“⁠숫자로는 손해예요⁠.⁠”

“⁠비 오는 날 똑같이 떼어 가면 사장님이 그날 일수를 써요⁠. 일수 이자가 꼬박페이보다 세요⁠. 일수를 쓰기 시작하면 꼬박페이부터 못 갚아요⁠. 춘례 사장님이 그 겨울에 그랬어요⁠. 제가 창구에서 거절한 다음에요⁠. 그게 진짜 손해예요⁠.⁠”

민성은 한참 화면을 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엄마 미용실도 장마철에 손님이 반이었어요⁠. 그때 카드 대출 상환일이 꼭 장마 한가운데였어요⁠. 엄마가 그걸 막으려고 다른 카드를 썼고요⁠.⁠”

“⁠그래서 문 닫았어요⁠?⁠”

“⁠그래서 문 닫았어요⁠.⁠”

민성은 화면에 한 줄을 더 넣었다⁠. 꺼진 날 뒤 사흘 동안 나누어 받는다⁠. 단 다시 오른 날이 오기 전에는 받지 않는다⁠. 단희는 한 줄을 소리 내어 읽고 고개를 끄덕였다⁠.

자정⁠, 길영두가 수면 바지에 한정판 운동화를 신고 나타났다⁠. 양손에 컵라면 상자가 들려 있었다⁠.

“⁠밤샘엔 컵라면이지⁠. MZ 국룰⁠.⁠”

“⁠팀장님⁠, 국룰은 맞게 쓰셨어요⁠.⁠”

“⁠드디어⁠!⁠”

영두가 컵라면 상자를 번쩍 들었다가 허리를 삐끗했다⁠. 마흔하나의 허리였다⁠.

*

새벽 두 시⁠, 표 선생이 노트북을 덮었다⁠. 휴대전화 화면에 「⁠엄마 열 나⁠」가 떠 있었다⁠. 고등학생 딸이었다⁠. 표 선생은 가방을 메며 단희의 탁자 앞에 잠깐 멈추었다⁠.

“⁠저는 여기까지예요⁠. 다시봄 필수라는데⁠, 필수를 못 지키네요⁠. 단희 씨는 끝까지 하세요⁠. 내 몫까지 하라는 말은 안 할게요⁠. 그런 말 들으면 무거워지니까⁠.⁠”

표 선생이 엘리베이터에 타자 실장이 멀리서 무언가를 휴대전화에 적었다⁠. 단희는 실장의 엄지를 보았다⁠. 첫날 회의실 유리문 밖에서 민성을 보고 적던 엄지와 같은 움직임이었다⁠.

새벽 세 시⁠, 기능은 돌아갔지만 시험할 매출이 가짜였다⁠. 회사가 연습용으로 준 숫자는 비가 와도 꺼지지 않았다⁠. 민성이 머리를 쥐어뜯었다⁠.

“⁠진짜 매출이 있어야 비 오는 날이 보여요⁠. 이 숫자로는 발표 못 해요⁠.⁠”

컵라면 국물을 마시던 영두가 둘의 화면을 넘겨다보았다⁠. 한참을 보다가 영두는 제 노트북을 끌어왔다⁠. 이름을 지운 실제 가맹점 매출을 시험하는 서버였다⁠. 개발팀장만 열 수 있었다⁠.

“⁠이거 열면 내가 위에 불려 가⁠.⁠”

“⁠그럼 열지 마세요⁠, 팀장님⁠.⁠”

“⁠단희 님이 그만둘까 봐 말 안 한 사람이 할 소리는 아니지⁠.⁠”

영두는 비밀번호를 쳤다⁠. 화면에 이름 없는 가게 수천 곳의 석 달이 쏟아졌다⁠. 비 오는 날마다 꺼지고 다시 오르는 줄이 파도처럼 겹쳤다⁠.

“⁠책임은 내가 져⁠. 대신 내 운동화 얘기는 이제 그만해⁠.⁠”

“⁠그건 약속 못 해요⁠.⁠”

민성이 처음으로 영두를 보며 웃었다⁠.

*

새벽 네 시⁠, 단희는 커피를 받으러 라운지 끝 창가로 갔다⁠. 실장이 먼저 와 있었다⁠. 실장은 통유리 너머의 불 꺼진 사무실들을 보며 종이컵을 쥐고 있었다⁠.

“⁠잘되고 있네요⁠. 영두 팀장이 서버 연 거 봤어요⁠.⁠”

“⁠팀장님 탓 하지 마세요⁠. 우리가 부탁했어요⁠.⁠”

“⁠탓 안 해요⁠.⁠”

실장은 종이컵을 내려놓았다⁠.

“⁠단희 님⁠, 이기시면 안 돼요⁠.⁠”

“⁠일등 하면 최종에 올려 주신다면서요⁠.⁠”

“⁠올려 드려요⁠. 약속은 지켜요⁠. 그런데 다시봄 인턴이 최종에서 정규직 자리를 가져가면⁠, 이사회는 이 트랙이 일반 인턴 자리를 뺏는다고 할 거예요⁠. 2기는 없어요⁠. 단희 님이 이기면 내년 이맘때 이 라운지에 마흔 넘은 사람은 없어요⁠.⁠”

“⁠제가 지면요⁠?⁠”

“⁠2기가 있어요⁠. 수료증이라도 받을 사람이 생겨요⁠.⁠”

단희는 창에 비친 제 얼굴을 보았다⁠. 연노랑 카디건 어깨에 컵라면 국물 자국이 있었다⁠.

“⁠수료증 받을 사람을 뽑으려고 2기를 지키세요⁠?⁠”

“⁠없는 것보다는 나아요⁠.⁠”

“⁠실장님은 열 해 전에 그 말 들으면 납득하셨어요⁠? 석 달 만에 복직하실 때요⁠. 없는 것보다는 낫다는 말이요⁠.⁠”

실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창밖에서 첫 지하철이 지상 구간을 지나며 불빛을 끌고 갔다⁠.

“⁠저 이길게요⁠. 2기는 실장님이 지키세요⁠. 저 말고 다른 방법으로요⁠.⁠”

*

토요일 아침 여덟 시⁠, 대표가 후드티 차림으로 라운지에 올라왔다⁠. 손에 김밥 줄이 든 비닐봉지가 들려 있었다⁠. 대표는 단희의 탁자에 김밥 두 줄을 놓고 빈백에 털썩 앉았다⁠.

“⁠떡집 사장님은 잘 계세요⁠? 시연 때 그 떡집이요⁠.⁠”

“⁠앱 까셨어요⁠. 대출 버튼은 안 누르셨고요⁠.⁠”

“⁠안 누르셨어요⁠?⁠”

“⁠빌리는 건 사장님이 정할 때 하신대요⁠. 앱이 정할 때 말고요⁠.⁠”

대표가 김밥을 하나 집어 먹으며 웃었다⁠. 웃음 끝이 길지 않았다⁠.

“⁠다음 달에 투자사들이 와요⁠. 15층에서 데모데이 해요⁠. 그날 못 받으면 우리도 옆 건물처럼 돼요⁠.⁠”

대표는 김밥 봉지를 단희 앞에 밀어 놓고 일어났다⁠. 실장이 앉은 탁자에는 들르지 않고 곧장 엘리베이터로 갔다⁠.

*

토요일 낮 두 시⁠, 단희의 휴대전화에 영상 통화가 왔다⁠. 화면 속에서 해윤이 외할머니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고 있었다⁠. 경채가 뒤에서 브로콜리 머리를 한 해윤의 머리를 손으로 가렸다⁠. 찬결이 화면을 차지했다⁠.

“⁠엄마 회사 꼭대기야⁠? 하늘 보여⁠?⁠”

단희는 휴대전화를 창으로 돌렸다⁠. 5월의 하늘이 통유리 가득 파랬다⁠.

“⁠우와⁠. 엄마 하늘에서 일해⁠?⁠”

“⁠응⁠. 오늘만⁠.⁠”

통화를 끊고 돌아오니 민성이 빈백에 기대 잠들어 있었다⁠. 마흔여덟 시간째 제대로 못 잔 얼굴이었다⁠. 단희는 연노랑 카디건을 벗어 민성의 어깨에 덮었다⁠. 남구로시장 반찬가게 이모의 꽃무늬 담요가 생각났다⁠. 이십 분 뒤 민성은 카디건을 개어 단희의 탁자에 올려놓고 아무 말 없이 키보드를 쳤다⁠.

*

토요일 저녁 일곱 시⁠, 심사가 끝났다⁠. 대표⁠, 기술이사⁠, 영두⁠, 실장이 앞줄에 앉아 있었다⁠. 대표가 결과를 읽었다⁠.

“⁠일등⁠, 금단희 차민성 팀⁠. 비 오는 날 쉬어 가기⁠.⁠”

박수가 터졌다⁠. 영두가 수면 바지 차림으로 일어나 휘파람을 불었다⁠. 상품은 꼬박이 인형이었다⁠. 노란 동전 모양 인형이 단희의 품에 안겼다⁠. 대표가 마이크를 실장에게 넘겼다⁠. 실장이 앞으로 나와 단희와 민성을 보았다⁠. 목소리가 밝았다⁠.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모두에게 공정하게 말씀드릴 것이 있어요⁠.⁠”

라운지가 조용해졌다⁠.

“⁠다시봄 트랙은 이사회 조건상 수료로 끝나는 트랙입니다⁠. 금단희 님은 약속대로 최종 발표에 서십니다⁠. 다만 정규직은 이사회 조건대로 일반 트랙에서 뽑습니다⁠. 오늘 결과가 그 조건을 바꾸지는 않습니다⁠. 오해가 없도록⁠, 다 같이 아시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인턴들이 서로를 보았다⁠. 3조의 청년이 민성을 보았고⁠, 민성은 단희를 보았다⁠. 영두는 휘파람을 불던 입 모양 그대로 굳어 있었다⁠. 단희는 꼬박이 인형을 안은 채 서 있었다⁠. 손목의 구슬 팔찌 사이에 끼워 둔 해윤의 색종이 카네이션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단희는 허리를 굽혀 카네이션을 주웠다⁠. 일어나면서 단희는 실장을 정면으로 보았다⁠. 실장도 눈을 피하지 않았다⁠.

9화는 어땠나요?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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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슬안2026.11.01· 9화

    마감 이 분 전에 팀 등록하고 싫으면 빼 달라고 하라는 민성이요. 이거 고백 아니에요?

    • 여시결작가2026.11.01

      민성 씨 사전에는 고백이라는 말이 없어요. 대신 이 분을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