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366자)

상인회

마흔셋 경단녀, 동기는 스물넷 · 여시결

월요일 아침 여덟 시 오십 분⁠, 인턴 단체방은 주말 내내 조용했다가 한꺼번에 시끄러웠다⁠. 3조 청년은 「⁠그럼 정규직은 일반 트랙 여섯 명 중에서만이네요⁠」를 올렸다가 지웠다⁠. 지운 자리에 「⁠삭제된 메시지입니다⁠」가 남았다⁠. 교육장에 들어서자 인턴들이 단희에게 인사를 했다⁠. 평소보다 목소리가 컸고⁠, 평소보다 눈이 짧았다⁠. 사람들은 아픈 사람에게 그렇게 인사했다⁠.

표 선생이 창가에서 짐을 정리하고 있었다⁠. 노트북과 귤 봉지와 수학 강사 시절에 쓰던 빨간 펜⁠.

“⁠그만두세요⁠?⁠”

“⁠아니요⁠. 수료증은 받을 거예요⁠. 받을 게 그것뿐이니까 그거라도 받아야죠⁠. 최종은 안 나가요⁠. 남은 세 주는 딸 기말고사 기간이에요⁠. 딸 시험이 내 최종이에요⁠.⁠”

표 선생은 빨간 펜을 단희의 책상에 놓았다⁠.

“⁠이거 단희 씨 가져요⁠. 틀린 데 동그라미 칠 때 써요⁠. 회사가 틀린 데요⁠.⁠”

단희는 빨간 펜을 손목 보호대에 끼웠다⁠. 민성은 맨 앞자리에서 휴대전화만 보고 있었다⁠. 주말 내내 둘은 서로에게 한 줄도 보내지 않았다⁠.

*

월요일 새벽에도 단희는 떡집에 들렀다⁠. 두 주는 끝났지만 발이 먼저 시장으로 갔다⁠. 단희는 백설기를 자르면서 토요일 저녁 15층 라운지에서 있었던 일을 말했다⁠. 이사회 조건⁠, 수료로 끝⁠, 일반 트랙에서만⁠. 춘례는 끝까지 듣고 시루 뚜껑을 쾅 닫았다⁠.

“⁠그러니까 그 앱 회사가 너를 광고로만 쓰고 버린다고⁠?⁠”

“⁠버리는 건 아니고요⁠. 수료증은 줘요⁠.⁠”

“⁠수료증은 떡으로 치면 뭐야⁠?⁠”

“⁠시식이요⁠.⁠”

“⁠시식만 시키고 안 판다는 거잖아⁠.⁠”

춘례는 앞치마를 풀었다⁠. 방앗간 사장을 부르고⁠, 반찬가게 이모를 부르고⁠, 건어물 가게 이모를 불렀다⁠. 단희가 말리기도 전에 골목에 사람이 모였다⁠.

“⁠이 앱 우리 골목이 쓰기로 했잖아⁠. 단희가 만든 거라서⁠. 단희가 없으면 안 써⁠.⁠”

“⁠사장님⁠, 그러지 마세요⁠. 사장님 가게 일이 아니에요⁠.⁠”

“⁠내 가게 일이야⁠. 내 비 오는 날을 그 앱이 배웠다며⁠. 내 비 오는 날을 누가 가져가는지는 내가 봐야지⁠.⁠”

*

화요일 열두 시⁠, 가람디지털센터 1층 로비에 떡 상자가 쌓였다⁠. 상인회장인 방앗간 사장과 춘례⁠, 반찬가게 이모⁠, 건어물 가게 이모⁠, 그리고 시장 상인 여럿이 줄지어 들어왔다⁠. 점심 먹으러 내려오던 직원들이 엘리베이터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개찰구 앞에서 보안요원이 두 팔을 벌렸다⁠.

“⁠어르신들⁠, 출입증 없으시면 못 들어가세요⁠.⁠”

“⁠안 들어가⁠. 여기서 기다릴 거야⁠. 꼬박 높은 사람 나오라 그래⁠.⁠”

반찬가게 이모가 떡 상자 하나를 열어 보안요원에게 인절미를 내밀었다⁠. 보안요원은 거절하다가 한 개를 받았고⁠, 두 개를 받았다⁠. 세 번째에는 고개를 숙이고 받았다⁠.

십 분 뒤 실장 엄여란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회색 정장이었다⁠. 실장은 로비를 한 번 훑고 춘례 앞으로 곧장 왔다⁠. 떡집 골목에서 카메라를 가로막던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다⁠.

“⁠사장님⁠, 다시 뵙네요⁠. 무슨 일로 오셨어요⁠?⁠”

“⁠이 앱 우리 골목이 쓰기로 했어⁠. 마흔 집이야⁠. 상인회 이름으로 시험 쓰기로 했어⁠. 근데 이 앱 만든 사람이 광고만 찍고 잘린다며⁠.⁠”

“⁠잘리는 게 아니라 수료하시는 거예요⁠.⁠”

“⁠시식만 시키고 안 파는 거지⁠.⁠”

실장은 웃었다⁠.

“⁠사장님⁠, 기능은 회사 거예요⁠. 단희 님이 계시든 안 계시든 사장님들은 쓰실 수 있어요⁠.⁠”

“⁠떡도 내 거고 손님도 내 거야⁠. 기능이 회사 거면⁠, 그 앱 쓰는 손님은 누구 거야⁠?⁠”

로비가 조용해졌다⁠. 상인회장이 앞으로 나왔다⁠. 방앗간 기계 소리에 단련된 큰 목소리였다⁠.

“⁠우리는 사람 보고 써요⁠. 은행도 사람 보고 썼고⁠, 일수도 사람 보고 썼어요⁠. 그 앱 깔아 준 사람이 금단희 씨예요⁠. 그 사람이 없어지면 우리는 다음 날부터 지워요⁠. 마흔 집 다요⁠.⁠”

실장은 상인회장의 얼굴을 보고⁠, 쌓인 떡 상자를 보고⁠, 엘리베이터 앞에 몰린 직원들의 휴대전화를 보았다⁠. 휴대전화 몇 대가 이쪽을 찍고 있었다⁠.

“⁠사장님들 말씀 위에 전하겠습니다⁠. 떡은 잘 먹겠습니다⁠.⁠”

실장은 떡 상자 하나를 들고 엘리베이터에 탔다⁠. 문이 닫히기 직전⁠, 실장의 눈이 로비 구석의 단희에게 닿았다⁠. 단희는 피하지 않았다⁠. 보안요원이 인절미 묻은 손가락을 바지에 닦았다⁠.

*

수요일 오전⁠, 로비 영상이 인터넷에 돌았다⁠. 엘리베이터 화면의 뉴스 줄에도 떴다⁠. 「⁠떡 상자 들고 핀테크 회사 찾아간 시장 상인들⁠」 조회 수가 오전에만 십만을 넘었다⁠. 단희는 결재 서류를 들고 12층에 올라갔다가 임원 회의실 유리벽 앞에서 걸음을 늦추었다⁠. 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

안에는 대표와 재무이사와 실장이 있었다⁠. 재무이사가 휴대전화 화면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실장님⁠, 캠페인 그림이 망가졌어요⁠. 감동적인 경단녀 대신 떡 들고 온 시위대가 떴어요⁠. 투자사들이 이거 다 봐요⁠.⁠”

“⁠더 좋은 그림으로 만들게요⁠. 상인들이 회사 기능을 믿고 왔다는 그림이요⁠.⁠”

“⁠상인들은 회사 말고 그 인턴을 믿고 왔다잖아요⁠.⁠”

대표는 아무 말 없이 영상을 다시 틀었다⁠. 화면 속에서 춘례가 외쳤다⁠. “⁠그 앱 쓰는 손님은 누구 거야⁠?⁠” 대표가 영상을 멈추고 실장을 보았다⁠.

“⁠실장님⁠, 저 질문에 답 있어요⁠?⁠”

실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단희는 서류를 가슴에 안고 유리벽 앞을 지나쳤다⁠. 실장의 등이 꼿꼿했다⁠. 열두 살 아이 사진 하나 없는 책상 앞에서 열 해를 버틴 등이었다⁠.

*

수요일 저녁 여덟 시⁠, 구로역 앞 키즈카페는 문을 닫는 중이었다⁠. 볼풀장 공을 그물에 담던 나혜율이 단희를 보고 손을 멈추었다⁠. 이번에는 양말을 내밀지 않았다⁠.

“⁠로비 영상 봤어요⁠. 단톡방에 돌더라고요⁠. 1기 단톡방이요⁠. 셋이 아직 있어요⁠. 아무도 말은 안 하는데 방은 안 나갔어요⁠.⁠”

혜율은 공 하나를 손에 쥐었다⁠.

“⁠말할게요⁠.⁠”

“⁠각서는요⁠?⁠”

“⁠각서 깨면 모델료 돌려줘야 해요⁠. 아들 학원 하나 끊어야겠죠⁠. 그 돈이 그 학원이었으니까⁠.⁠”

혜율은 공을 그물에 넣었다⁠.

“⁠아들한테는 제가 직접 말할게요⁠. 엄마 회사 안 다닌다고⁠. 엘리베이터 화면에 나오는 사람은 엄마가 맞는데⁠, 엄마는 그 회사 직원이 아니라고⁠. 그 말을 내 입으로 먼저 하고 싶어요⁠. 광고가 먼저 하기 전에요⁠.⁠”

“⁠언제요⁠?⁠”

“⁠단희 씨가 서는 날이요⁠. 그날 저도 갈게요⁠. 계단으로요⁠.⁠”

*

목요일 오후 네 시⁠, 9층 작은 회의실⁠. 민성은 실장의 맞은편에 앉았다⁠. 회의실 유리벽 너머로 개발팀 사람들이 모니터 앞에 등을 구부리고 있었다⁠. 석 달 뒤 저기 앉을 사람이 정해진다⁠. 민성은 등을 하나씩 세다가 말았다⁠.

“⁠최종에서 혼자 발표하세요⁠.⁠”

실장은 서류 하나를 민성 앞에 밀었다⁠. 「⁠정규직 채용 확정 통보 — 데모데이 다음 날 발행⁠」 이름 칸에 민성의 이름이 이미 인쇄되어 있었다⁠.

“⁠비 오는 날 쉬어 가기는 민성 님 기능으로 발표하세요⁠. 코드 다 짜셨잖아요⁠. 단희 님은 캠페인으로 무대에 서시고⁠, 기능 발표에서는 도움 준 분으로 소개해요⁠. 그러면 민성 님 정규직은 데모데이 다음 날 확정이에요⁠. 3조 친구랑 겨룰 필요도 없어요⁠.⁠”

“⁠단희 씨가 그 기능 이름도 지었어요⁠.⁠”

“⁠이름은 바꿔도 돼요⁠.⁠”

민성은 서류의 제 이름을 보았다⁠. 신림동 고시원 주소까지 정확했다⁠. 휴대전화가 주머니에서 떨었다⁠. 보지 않아도 무엇인지 알았다⁠. 상환일까지 남은 날을 세는 알림이었다⁠.

“⁠실장님⁠, 이거 단희 씨도 알아요⁠?⁠”

“⁠곧 아실 거예요⁠.⁠”

“⁠생각할 시간 주세요⁠.⁠”

“⁠금요일 저녁까지요⁠. 데모데이 대본을 그때 넘겨야 해요⁠.⁠”

실장이 먼저 일어났다⁠. 민성은 회의실에 혼자 남아 서류를 접지 않고 오래 보았다⁠. 유리벽 너머에서 영두가 한정판 운동화를 신은 발로 의자를 밀며 지나가다 민성을 보았다⁠. 영두는 걸음을 멈추었다가⁠, 들어오지 않고 지나갔다⁠.

*

목요일 밤 열한 시 반⁠, 신림사거리점 계산대에서 민성은 영천의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손님이 없는 시간이었다⁠. 엄마는 신호가 두 번 가기 전에 받았다⁠.

“⁠민성아⁠, 밥 먹었나⁠?⁠”

“⁠먹었어⁠. 엄마는⁠?⁠”

“⁠엄마 요새 남의 미용실 나간다⁠. 직원으로⁠. 가위 잡으니 좋다⁠.⁠”

엄마의 목소리 뒤로 텔레비전 소리가 났다⁠. 민성은 실장이 내민 서류 이야기를 했다⁠. 이름이 미리 인쇄된 서류⁠, 단희의 이름이 빠지는 발표⁠. 엄마는 다 듣고 한참 말이 없었다⁠. 계산대 위의 온장고가 웅웅거렸다⁠.

“⁠민성아⁠, 엄마가 남의 가게 자리 얻어 봐서 안다⁠. 남의 거 가져와서 앉은 자리는 오래 못 앉는다⁠. 손님이 먼저 안다⁠.⁠”

“⁠빚은⁠?⁠”

“⁠빚은 갚으면 된다⁠. 남의 거 가져온 거는 못 갚는다⁠.⁠”

전화를 끊고 민성은 학자금 알림을 처음으로 끝까지 읽었다⁠. 상환일까지 열이레가 남아 있었다⁠. 문의 종이 울렸다⁠. 숙취해소제를 사러 온 손님이었다⁠. 민성은 바코드를 찍고⁠, 영수증을 건네고⁠, 서류 사진을 지우지 않고 휴대전화를 엎어 두었다⁠.

*

같은 시각⁠, 개봉동 식탁에서 경채가 프린터에서 갓 나온 종이를 단희 앞에 놓았다⁠. 「⁠육아휴직 신청서⁠」 세 번째 저장 끝에 처음 출력한 종이였다⁠.

“⁠읽어 봐⁠. 열네 장째 같은 거 있나⁠.⁠”

“⁠두 장이야⁠.⁠”

“⁠두 장 다 읽어⁠.⁠”

단희는 두 장을 다 읽었다⁠. 휴직 시작일은 5월 24일이었다⁠. 팀장이 말한 승진 심사 발표 사흘 전이었다⁠. 경채는 날짜를 고르지 않았다고 했다⁠. 고르다 보면 또 지울까 봐 달력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월요일을 적었다고 했다⁠. 찬결이 잠옷 바람으로 나와 종이를 들여다보았다⁠.

“⁠아빠 이제 회사 안 가⁠?⁠”

“⁠조금만 안 가⁠.⁠”

“⁠그럼 아빠도 인턴이야⁠?⁠”

경채가 웃음을 터뜨렸다⁠. 단희도 웃었다⁠. 찬결은 왜 웃는지 모르고 따라 웃었다⁠.

*

금요일 오후 다섯 시⁠, 3층 상담실⁠. 실장은 단희 앞에 광고 촬영 날 아침에 보았던 서류를 다시 놓았다⁠. 모델 계약서였다⁠. 네 장⁠. 마지막 장의 조항은 그대로였다⁠. 「⁠계약 기간 2년⁠, 광고 속 인물의 이야기와 다른 사실을 공개하지 않는다⁠.⁠」

“⁠데모데이에 서려면 이거 서명하세요⁠. 캠페인이 그날 투자자들 앞에서 처음 공개돼요⁠. 화면에 단희 님 손목이 나오고⁠, 무대에 단희 님이 서 있는 그림이 필요해요⁠.⁠”

“⁠이 조항은 빼 달라고 했어요⁠.⁠”

“⁠못 빼요⁠. 법무팀 조항이에요⁠.⁠”

단희는 계약서를 내려다보았다⁠. 빨간 펜이 손목 보호대에 끼워져 있었다⁠. 표 선생의 펜이었다⁠. 단희는 펜을 뽑아 마지막 조항 아래에 줄을 긋지 않고⁠, 손끝으로만 짚었다⁠.

“⁠제가 서명하면 제 이야기가 광고 이야기가 되네요⁠. 수료증 안고 어린이집으로 달려가는 이야기요⁠.⁠”

“⁠아름다운 이야기예요⁠.⁠”

“⁠아이 얼굴은 다른 집 아이고요⁠.⁠”

실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휴대전화를 확인하고⁠, 단희에게 덧붙였다⁠. 목소리가 밝았다⁠.

“⁠말씀드려야 공정하겠죠⁠. 민성 님한테도 제안했어요⁠. 최종에서 혼자 서면 정규직이라고요⁠. 비 오는 날 쉬어 가기는 민성 님 기능으로요⁠.⁠”

단희의 손끝이 계약서 위에서 멈추었다⁠.

“⁠민성 씨는 뭐래요⁠?⁠”

“⁠아직 대답 안 했어요⁠. 오늘 저녁까지 기다리기로 했어요⁠.⁠”

창밖의 해가 블라인드 사이로 줄무늬를 만들었다⁠. 줄무늬 하나가 계약서의 서명 칸을 가로질렀다⁠. 단희는 빨간 펜을 다시 손목 보호대에 끼웠다⁠.

10화는 어땠나요?

댓글 0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