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7,342자)

펀보드 컵

보라카이 윈드서핑 · 이수

불라복 앞바다에 세일이 백 장 넘게 떠 있었다⁠.

이수는 해변 야자수 그늘에 앉아 세일들을 셌다⁠. 다 세지 못했다⁠. 세일들이 쉬지 않고 움직였다⁠. 빨강⁠, 파랑⁠, 형광 노랑⁠, 투명한 창이 난 세일⁠, 숫자가 크게 적힌 세일⁠. 세일마다 번호가 있었다⁠. 해변 모래밭에 대나무로 엮은 심판석이 세워졌고⁠, 심판석 꼭대기에 깃발 몇 개가 바람에 팽팽하게 섰다⁠.

보라카이 국제 펀보드 컵이었다⁠. 해마다 1월에 불라복에서 열린다고 했다⁠. 유럽에서⁠, 일본에서⁠, 홍콩에서⁠, 필리핀 곳곳에서 선수들이 왔다⁠. 섬에 온 지 한 달 반이 된 이수는 그사이 플레이닝을 오래 할 줄 알게 됐다⁠. 방향은 아직 못 틀었다⁠. 산호초 끝에 닿으면 여전히 세일을 놓고 물로 뛰어들었다⁠.

“⁠형도 나가요⁠?⁠”

민하가 물었다⁠. 민하는 대회 접수처 앞을 세 번 왔다 갔다 했다⁠. 접수 탁자에 놓인 종이를 읽어 보고⁠, 접수하는 필리핀 아가씨에게 무어라 묻고⁠, 다시 이수에게 돌아왔다⁠.

“⁠나가려면 방향을 틀 줄 알아야 해⁠.⁠”

“⁠저는 나가도 된대요⁠.⁠”

“⁠뭘로⁠?⁠”

“⁠접수하는 분이 그러는데 아무나 등번호를 받을 수 있대요⁠. 아무나요⁠. 그래서 제 이름을 물어보길래 「⁠부천 대여점⁠」이라고 했어요⁠.⁠”

“⁠등번호 받았어⁠?⁠”

민하가 셔츠 앞섶을 들춰 보였다⁠. 가슴에 하얀 천 조각이 옷핀으로 꽂혀 있었다⁠. 숫자 77⁠.

“⁠구명조끼 위에 달아도 된대요⁠.⁠”

“⁠너 물에 안 들어가잖아⁠.⁠”

“⁠등번호는 물에 안 들어가도 받는 거예요⁠. 대여점 회원증도 책 안 빌려도 만들 수 있잖아요⁠.⁠”

경기가 시작됐다⁠. 호루라기 대신 뱃고동이 울렸다⁠. 세일 열몇 장이 출발선에서 한꺼번에 튀어 나갔다⁠. 슬라롬 경기였다⁠. 바다 위에 띄운 부표들을 지그재그로 돌아 결승선까지 누가 빨리 가는지 겨루는 경기였다⁠. 선수들이 타는 보드는 작고 날렵했다⁠. 대근 창고 벽에 걸린 노란 보드와 같은 생김새였다⁠. 보드가 물 위로 떠서 꼬리만 물에 닿았다⁠. 세일들이 부표를 돌 때마다 물보라가 줄지어 솟았다⁠.

선수 하나가 부표를 돌다 넘어졌다⁠. 뒤따르던 선수가 넘어진 선수를 아슬아슬하게 비켜 갔다⁠. 해변에서 함성이 났다⁠.

“⁠저게 자이빙이에요⁠.⁠”

옆에서 대근이 말했다⁠. 대근의 가슴에도 등번호가 달려 있었다⁠. 3번⁠. 대회 쪽에서 몇 해째 나와 달라고 조르던 것을 올해 처음 받아들였다고 했다⁠. 우승 상금이 세일 두 장 값이었다⁠.

“⁠선수는 안 된다면서요⁠?⁠”

“⁠국가대표는 안 된대요⁠. 섬 대회는 의사가 몰라요⁠.⁠”

대근은 창고 벽의 노란 보드를 타지 않았다⁠. 손님용 슬라롬 보드 가운데 가장 덜 긁힌 것을 골랐다⁠. 노란 보드는 오늘도 비닐을 쓴 채 벽에 있었다⁠. 대신 핀은 제 것을 끼웠다⁠. 창고 궤짝 맨 밑에서 수건에 싸인 핀을 꺼냈다⁠. 검고 길었다⁠. 손님용 핀보다 한 뼘이 더 길고 훨씬 얇았다⁠. 대근은 핀 머리를 보드 꼬리 밑 핀 박스에 밀어 넣고 나사를 드라이버로 끝까지 조였다⁠. 조인 다음 핀을 손으로 잡고 좌우로 흔들어 봤다⁠. 흔들리지 않았다⁠.

“⁠슬라롬은 핀 싸움이에요⁠. 부표와 부표 사이를 비스듬히 가로지를 때 핀이 약하면 보드가 바람 아래로 밀려서 부표를 놓쳐요⁠. 핀이 길고 단단하면 밀리지 않고 높이 붙어 가요⁠. 대신 잘못 밟으면 바로 스핀아웃이고⁠. 이 핀은 선수촌에서 받은 거예요⁠. 이것만 한국에서 들고 왔어요⁠. 빚 안 지고⁠.⁠”

“⁠부표 돌 때 바람을 등지고 세일을 반대로 넘기는 거⁠. 사장님이 산호초 끝에서 못 하는 그거⁠.⁠”

“⁠저렇게 빨리 하는 거예요⁠?⁠”

“⁠빨라야 돼요⁠. 느리면 보드가 가라앉아서 넘어져요⁠. 빠르게 들어가서 빠르게 넘겨야 보드가 떠 있는 채로 돌아요⁠.⁠”

대근은 모래에 손가락으로 반원 두 개를 그렸다⁠. 하나는 앞머리가 바람 속을 지나 도는 원이었다⁠. 태킹이었다⁠. 다른 하나는 꼬리가 바람을 지나 바람 아래로 도는 원이었다⁠. 자이빙이었다⁠.

“⁠태킹은 바람 쪽으로 올라갈 때 돌아요⁠. 보드가 거의 멈추니까 슬라롬에선 안 써요⁠. 슬라롬은 바람 아래로 내려가며 부표를 도니까 전부 자이빙이에요⁠.⁠”

대근은 자이빙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고 했다⁠. 손가락으로 하나씩 꼽았다⁠.

“⁠스텝 자이브⁠. 사장님 같은 사람이 처음 배우는 거예요⁠. 속도 다 죽이고⁠, 보드를 천천히 돌리고⁠, 발을 한 걸음씩 옮기고⁠, 마스트를 앞으로⁠, 바람 쪽으로 기울여서 세일을 몸 앞으로 돌려 넘겨요⁠. 보드는 가라앉아도 돼요⁠. 대신 안 넘어져요⁠.⁠”

“⁠그거 하면 되잖아요⁠.⁠”

“⁠그건 서서 도는 거고요⁠. 저 사람들 하는 건 카빙 자이브예요⁠. 파워 자이브라고도 해요⁠. 플레이닝 속도 그대로 들어가서⁠, 뒷발을 풋스트랩에서 빼 바람 아래쪽 레일을 눌러요⁠. 레일을 밟으면 보드가 스키처럼 원을 그려요⁠. 원 가운데서 세일을 넘기고⁠, 원 끝에서 발 바꾸고⁠. 보드가 한 번도 안 가라앉아요⁠.⁠”

대근이 세 번째 손가락을 꼽았다⁠.

“⁠덕 자이브⁠. 오리처럼 고개를 숙인다고 덕이에요⁠. 세일을 몸 앞에서 넘기지 않고 세일 뒤 귀퉁이⁠, 클루를 잡아서 머리 위로 넘겨요⁠. 사람은 세일 밑으로 쏙 빠져나가고요⁠. 원을 제일 작게 돌 수 있어요⁠. 부표에 바짝 붙을 때 써요⁠.⁠”

“⁠네 번째는요⁠?⁠”

“⁠클루 퍼스트⁠. 세일을 넘긴 다음에 일부러 세일을 거꾸로⁠, 클루를 앞으로 든 채 한참 가요⁠. 멋 부리는 거예요⁠. 섬 대회엔 멋 부리는 사람이 많아요⁠.⁠”

민하가 등번호 77을 매만지며 물었다⁠.

“⁠사장님은 몇 번째 해요⁠?⁠”

“⁠다 해요⁠. 무릎 꿰매고는 세 번째를 안 했어요⁠.⁠”

“⁠왜요⁠?⁠”

“⁠세 번째는 고개를 숙여야 되거든요⁠. 고개 숙이면 무릎이 먼저 굽혀져요⁠.⁠”

대근은 말을 하면서도 눈은 바다에 있었다⁠. 부표 쪽에서 선수 하나가 물에 빠져 손을 흔들었다⁠. 안전 요원 보트는 반대편 부표에 가 있었다⁠. 대근은 말을 멈추고 해변의 고무보트로 뛰어갔다⁠. 다친 무릎으로 모래밭을 뛰는 걸음이 조금 기울었다⁠.

이수는 대근의 고무보트를 눈으로 따라갔다⁠. 보트가 부표 옆에 닿자 대근이 물에 빠진 선수의 하네스를 잡고 한 번에 끌어 올렸다⁠. 일본 선수였다⁠. 선수의 세일은 물 위에 떠서 바람에 밀려가고 있었다⁠. 대근은 세일을 쫓지 않았다⁠. 선수를 보트 바닥에 눕히고 다리를 살폈다⁠. 보트가 해변으로 돌아왔다⁠. 세일은 산호초 쪽으로 밀려갔다⁠. 로엘이 헤엄쳐 가서 세일을 끌고 왔다⁠.

저녁에 윈드피아 마당에 한국 사람 여섯이 모였다⁠.

대회 소문을 듣고 한국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대근의 홈페이지에서 「⁠김치 있음⁠」을 보고 왔다고 했다⁠. 대근은 커다란 냄비에 김치찌개를 끓였다⁠. 로엘이 대나무 평상에 냄비를 올렸다⁠. 다들 맨발로 평상에 둘러앉았다⁠.

김치는 로엘이 대근에게 배워 담근 것이었다⁠. 박동철이 한 숟가락 떠먹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배추 맛이 아니었다⁠. 섬에서는 배추를 구할 수 없어서⁠, 필리핀 사람들이 절임으로 즐겨 먹는 풋파파야를 채 썰어 고춧가루에 버무렸다고 로엘이 대근의 말투로 설명했다⁠. 씹으면 아삭했고 끝맛이 들큼했다⁠. 다들 두 숟가락째부터는 맛있다며 냄비 바닥을 긁었다⁠.

동철은 울산 조선소의 용접공으로⁠, 한 해 휴가를 모아 두었다가 겨울에 한꺼번에 쓰는 사람이었다⁠. 타는 곳은 울산 진하해수욕장⁠. 해수욕장 앞바다에 명선도라는 작은 섬이 떠 있어서⁠, 섬과 해변 사이로 바람이 몰려 들어온다고 했다⁠.

문영길은 전남 무안에서 양파 농사를 지었다⁠. 겨울이면 양파밭에 손 갈 일이 없어 바람을 타러 다녔고⁠, 타는 곳은 집 앞 홀통해수욕장⁠, 갯벌 끝 소나무 숲 앞이었다⁠.

“⁠홀통은 물이 빠지면 갯벌이에요⁠. 물때를 봐야 돼요⁠. 잘못 나갔다가는 세일 들고 갯벌을 1km 걸어 들어와야 돼요⁠.⁠”

“⁠진하는 그런 거 없어요⁠. 대신 물이 차요⁠. 동해잖아요⁠. 12월에 들어가면 이가 딱딱 부딪혀요⁠.⁠”

“⁠차갑기는 시화호도 차요⁠.⁠”

이수가 말했다⁠. 다들 이수를 봤다⁠.

“⁠시화호에서 타요⁠?⁠”

“⁠거기서 배웠어요⁠. 겨울에⁠. 드라이 슈트 입고⁠.⁠”

동철이 이수의 어깨를 두드렸다⁠.

“⁠시화호에서 겨울을 넘긴 사람이면 어디 가도 살아요⁠.⁠”

고은비는 말이 적었다⁠. 서른한 살⁠, 제주 신양에서 온 사람이었다⁠. 신양은 성산 일출봉 바로 옆⁠, 섭지코지 앞의 해변이었다⁠. 해녀인 어머니가 물질하는 바다 옆에서 은비는 세일을 탔다⁠.

장태풍은 서른넷으로⁠, 은비와 같은 제주 동호회 회원이었다⁠. 제주에서 나고 자랐지만 서울 한강 뚝섬유원지에 윈드서핑 클럽을 하나 갖고 있었다⁠. 태풍 부는 날 태어나 이름이 태풍이 됐고⁠, 그래서 바람 약한 날은 물에 안 들어간다며 웃었다⁠. 낮에 슬라롬 예선을 1등으로 통과한 사람이 태풍이었다⁠. 대근은 2등이었다⁠.

“⁠형님 무릎 꿰맸다면서요⁠. 결승에서 봐 드릴까요⁠?⁠”

“⁠봐주면 세일 한 장 값 깎아 줄게요⁠. 우리 집 대여료⁠.⁠”

“⁠그럼 안 봐 드려야겠네요⁠.⁠”

태풍이 웃으며 김치찌개를 한 그릇 더 펐다⁠. 파파야 김치는 신경 쓰지 않았다⁠.

김치찌개가 반쯤 줄었을 때 동철이 말했다⁠.

“⁠윈드서핑 세계 3대 성지가 어딘지 알아요⁠? 하와이⁠, 스페인⁠, 그리고 여기 보라카이⁠.⁠”

“⁠하와이는 맞고요⁠.⁠”

영길이 숟가락을 들었다⁠.

“⁠스페인은 들어 봤어요⁠. 그런데 3대 성지라는 건 누가 정했어요⁠?⁠”

“⁠잡지에 나왔어요⁠.⁠”

“⁠어느 잡지요⁠?⁠”

“⁠외국 잡지요⁠. 사진이 크게 나왔어요⁠.⁠”

“⁠사진이 크면 성지예요⁠?⁠”

“⁠크게 나오면 성지지요⁠.⁠”

민하가 끼어들었다⁠.

“⁠대여점에서는 표지 크게 나온 책이 제일 잘 나가요⁠. 그러니까 맞는 말이에요⁠.⁠”

“⁠그럼 4대 성지는요⁠?⁠”

영길이 물었다⁠. 동철이 진하라고 했다⁠. 영길이 홀통이라고 했다⁠. 은비는 아무 말도 안 했다⁠. 대근이 은비를 봤다⁠.

“⁠신양은요⁠?⁠”

“⁠신양은 성지 아니에요⁠.⁠”

은비가 말했다⁠.

“⁠신양은 신양이에요⁠. 성지는 사람이 마음 편하게 타는 데잖아요⁠. 신양은 마음 편하게 못 타요⁠.⁠”

다음 날 오후⁠, 대회가 쉬는 사이였다⁠. 바람이 너무 세서 경기가 한 시간 늦춰졌다⁠. 선수들이 해변에 세일을 눕혀 놓고 쉬었다⁠. 대회를 여는 섬 사람 하나가 대근에게 다가왔다⁠. 무어라 길게 말했다⁠. 대근이 고개를 끄덕였다⁠.

“⁠카이트 띄워 달래요⁠. 쉬는 동안 손님들 구경하게⁠.⁠”

대근은 이수의 큰 카이트를 창고에서 꺼냈다⁠. 해변에서 바람을 넣었다⁠. 선수들이 하나둘 일어나 대근 주위로 모였다⁠. 큰 카이트가 하늘로 솟았다⁠. 바람이 센 날이라 카이트가 하늘에서 팽팽하게 섰다⁠. 대근이 보드에 발을 올리고 물로 미끄러져 나갔다⁠.

해변이 들썩였다⁠. 선수들이 휘파람을 불었다⁠. 유럽 사람들이 카메라를 들었다⁠. 대근은 산호초 안쪽을 한 바퀴 돌고 나서 바깥 바다로 나갔다⁠. 하얀 물결 위로⁠. 물결 하나를 타고 몸을 띄웠다⁠. 카이트가 대근을 하늘로 끌어 올렸다⁠. 대근의 몸이 물결 위로 3m쯤 떠올랐다가 가볍게 내려앉았다⁠. 해변이 한 번 더 들썩였다⁠.

이수는 웃지 않았다⁠. 대근의 허리 앞에서 바가 흔들렸다⁠. 바 가운데 검은 혹이 보였다⁠. 해변에서도 보였다⁠. 이수에게만 보였다⁠.

대근이 돌아오자 선수들이 대근을 둘러쌌다⁠. 일본 선수 하나가 대근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대회 사람들이 내년 대회에 카이트 경기를 넣어야겠다고 떠들었다⁠. 대근은 웃었다⁠. 빚 이야기를 할 때와는 다른 얼굴이었다⁠.

선수들이 흩어지고 나서 은비가 대근에게 다가왔다⁠.

“⁠4월에 신양에서 해변 축제가 있어요⁠.⁠”

“⁠네⁠.⁠”

“⁠제 외삼촌이 축제 일을 봐요⁠. 개막 날 바다에서 뭘 보여 줄 사람을 찾고 있어요⁠. 윈드서핑은 신양에서 다들 봐서 사람들이 안 놀라요⁠. 카이트는 제주에서 아무도 못 봤어요⁠.⁠”

대근이 은비를 봤다⁠.

“⁠얼마 줘요⁠?⁠”

은비가 금액을 말했다⁠. 대근은 따져 보지도 않았다⁠. 따질 것도 없었다⁠. 두 달 치 빚이었다⁠.

“⁠갈게요⁠.⁠”

대근이 바로 말했다⁠.

“⁠가요⁠. 날짜만 알려 주세요⁠.⁠”

은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한참 말이 없다가 덧붙였다⁠.

“⁠신양 바람은 여기 바람처럼 착하지 않아요⁠.⁠”

“⁠바람이 착하고 나쁜 게 있어요⁠?⁠”

“⁠여기 바람은 바다에서 와요⁠. 막는 게 없어서 고르게 와요⁠. 신양은 바람이 섭지코지를 넘어서 와요⁠. 언덕을 넘으면 바람이 꺾여요⁠. 오전엔 괜찮다가 오후 되면 언덕 너머에서 한 번씩 확 내려와요⁠. 우리 어머니는 그런 날 물질 안 나가요⁠.⁠”

“⁠몇 시까지 괜찮아요⁠?⁠”

“⁠두 시요⁠. 두 시 넘으면 몰라요⁠.⁠”

“⁠그럼 오전에 할게요⁠.⁠”

“⁠축제 개막이 오후 세 시예요⁠.⁠”

대근이 웃었다⁠.

“⁠바람 센 바다에서 십오 년 탔어요⁠.⁠”

은비는 웃지 않았다⁠. 은비의 눈이 대근의 바로 내려갔다⁠. 바 가운데 검은 혹으로⁠.

“⁠그건 뭐예요⁠?⁠”

대근이 바를 뒤로 돌려 쥐었다⁠.

“⁠손잡이 커버요⁠. 햇볕에 상하지 말라고⁠.⁠”

은비는 더 묻지 않았다⁠.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돌아섰다⁠. 모래밭을 걸어가는 은비의 뒷모습이 이수의 눈에 오래 남았다⁠. 은비는 걸어가다 한 번 뒤를 돌아봤다⁠. 대근이 아니라 이수를 봤다⁠.

이수는 밤에 창고 앞에서 대근을 붙잡았다⁠.

“⁠신양 갈 때 그거 풀고 가요⁠.⁠”

“⁠알아요⁠.⁠”

“⁠알면 풀어요⁠.⁠”

“⁠신양 가기 전에 풀게요⁠.⁠”

대근은 세일을 헹구며 말했다⁠. 등을 보인 채⁠. 이수는 대근의 등을 봤다⁠. 「⁠풀게요⁠」는 「⁠풀었어요⁠」가 아니었다⁠.

마당에서 민하가 등번호 77을 단 채 로엘에게 대여점 회원증 만드는 법을 가르치고 있었다⁠. 로엘이 받아 적었다⁠. 대근의 말투로⁠. 「⁠연체하면 사장님이 찾아갑니다⁠.⁠」

대회는 이틀 뒤에 끝났다⁠. 마지막 날 오후⁠, 슬라롬 결승에 세일 여덟 장이 섰다⁠. 3번 대근⁠, 11번 태풍⁠. 뱃고동이 울리자 여덟 장이 한꺼번에 튀어 나갔다⁠. 첫 부표에서 태풍이 앞섰다⁠. 태풍의 세일은 바람을 먹는 대로 앞으로 쏟아졌다⁠. 대근은 태풍의 꼬리 물보라 바로 옆에 붙어 갔다⁠.

마지막 부표였다⁠. 태풍이 카빙 자이브로 크게 돌았다⁠. 보드가 가라앉지 않게 넉넉히 원을 그렸다⁠. 대근은 부표에 바짝 붙어 들어갔다⁠. 바람 아래쪽 레일을 밟고⁠, 원이 반쯤 돌았을 때 뒷손으로 클루를 잡아당겼다⁠. 세일이 대근의 머리 위로 넘어갔다⁠. 대근은 고개를 숙여 세일 밑으로 빠져나왔다⁠. 덕 자이브였다⁠. 무릎이 먼저 굽혀졌다⁠. 대근은 굽혀지는 무릎을 펴지 않고 반대쪽 붐을 잡았다⁠. 빠르게 들어가서⁠, 바람을 등지고⁠, 발 바꾸고⁠, 세일 넘기고⁠, 다시 빠르게⁠. 이수가 한 달 넘게 산호초 끝에서 넘어지며 배우는 다섯 동작이 대근에게서는 한 동작이었다⁠. 대근의 보드가 태풍의 안쪽으로 빠져나왔다⁠. 보드 한 장 길이만큼 앞서서 결승선을 넘었다⁠.

해변이 들썩였다⁠. 로엘이 모래밭에서 펄쩍펄쩍 뛰었다⁠. 대근은 물에서 나오며 왼쪽 다리를 조금 끌었다⁠. 태풍이 뒤따라 나와 대근의 어깨를 쳤다⁠.

“⁠형님⁠, 제주 오시면 신양에서 한 판 더 해요⁠.⁠”

“⁠신양은 바람이 착하지 않다던데⁠.⁠”

“⁠그러니까 한 판 더 하자는 거죠⁠.⁠”

시상식에서 대근이 가운데 섰다⁠. 태풍이 왼쪽에 섰다⁠. 대근은 상금 봉투를 받자마자 반으로 접어 바지 주머니 깊이 넣었다⁠. 다음 날 아침 송금소 줄에 서 있을 봉투였다⁠. 민하는 마지막 날 시상식에 77번 등번호를 달고 서 있었다⁠. 상은 받지 않았다⁠. 대회 사람들이 「⁠가장 멀리서 온 대여점 대표⁠」라고 박수를 쳐 줬다⁠. 민하는 등번호를 떼어 대여점 카운터에 붙여 두겠다고 했다⁠. 「⁠본 대여점 대표⁠, 보라카이 국제 펀보드 컵 출전⁠」⁠.

“⁠너 물에 한 번도 안 들어갔잖아⁠.⁠”

“⁠출전은 했어요⁠, 형⁠. 등번호가 증거예요⁠.⁠”

7화는 어땠나요?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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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산없음2026.11.02· 7화

    등번호 77 달고 물에 한 번도 안 들어간 민하가 시상식에 서 있는 장면은 웃긴데, 은비가 손잡이 커버라는 말을 듣고 이수를 돌아보는 데서 숨이 막혔어요. 신양 바람이 착하지 않다는 말이 계속 걸려요.

    • 이수작가2026.11.02

      은비는 바다를 아는 사람이라 한 번 보면 알아요. 신양은 성지가 아니라 신양이라는 말을 대근이 조금만 더 오래 들었으면 좋았을 텐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