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6,791자)
자이빙
보라카이 윈드서핑 · 이수
산호초 끝이 다가왔다.
이수는 보드 위에서 숨을 들이켰다. 3월 끝의 불라복은 바람이 조금 순해졌다. 북동풍이 계절의 끝을 알았다. 대근은 그런 날이 자이빙을 배우기 좋은 날이라고 했다. 바람이 너무 세면 도는 사이 세일이 사람을 날려 버리고, 너무 약하면 도는 사이 보드가 가라앉는다고 했다.
석 달 동안 이수는 산호초 끝에서 백 번 넘게 넘어졌다. 넘어지는 자리가 늘 같았다. 산호초 끝 짙은 물빛이 시작되는 데서 돌다가 세일을 넘기는 순간. 세일이 넘어가지 않거나, 넘어가면서 이수를 끌고 가거나, 이수가 세일을 넘기고 나서 보드가 가라앉았다.
스텝 자이브는 2월에 됐다. 속도를 다 죽이고, 마스트를 앞으로 기울여 보드를 천천히 바람 아래로 돌리고, 한 걸음씩 발을 옮겨 세일을 몸 앞으로 넘기는 자이빙이었다. 보드는 가라앉았지만 이수는 넘어지지 않았다. 돌고 나면 보드가 멈춰 있어서 다시 세일을 채워 출발해야 했다. 민하는 그걸 「정류장 자이빙」이라고 불렀다. 돌 때마다 서니까.
덕 자이브는 한 번 해 봤다. 클루를 잡아당겨 세일을 머리 위로 넘기고 그 밑으로 고개를 숙여 빠져나가는 것이었다. 이수는 고개를 숙였다. 세일이 넘어오지 않았다. 마스트가 이수의 뒤통수를 쳤다. 대근이 해변에서 호루라기 대신 박수를 쳤다.
“오리는 고개 숙이면 물에 들어가요! 사장님도 들어갔네! 그거 일 년 뒤에 해요!”
대근이 이번 달에 가르치는 것은 카빙 자이브였다. 플레이닝 속도를 그대로 안고 도는 자이빙이었다.
대근은 해변에서 호루라기를 쥐고 서 있었다. 대근이 지난 사흘 동안 한 말은 하나였다.
“빠르게 들어가서, 바람을 등지고, 발 바꾸고, 세일 넘기고, 다시 빠르게.”
다섯 동작을 한 숨에 하라는 것이었다. 이수는 다섯 동작을 다섯 숨에 했다. 그래서 넘어졌다.
이수는 플레이닝 상태로 산호초 끝에 들어갔다. 보드가 물 위로 떠서 위잉 소리를 냈다. 이수는 하네스 라인을 고리에서 뺐다. 뒷발을 풋스트랩에서 빼서 바람 아래쪽 레일 가까이 옮기고 발가락으로 레일을 눌렀다. 무릎을 굽혔다. 보드가 원의 안쪽으로 기울었다. 레일을 밟았다. 기운 보드가 스키처럼 원을 그리며 바람을 등지는 쪽으로 돌기 시작했다. 뒷손은 붐을 놓지 않고 당긴 채로 두었다. 시트 아웃 하면 세일이 힘을 잃고 보드가 선다고 대근이 백 번 말했다. 세일이 이수의 몸 앞에서 가벼워졌다. 바람을 등에 다 받는 러닝 방향을 지나자 세일이 바람을 덜 받았다.
지금이었다.
이수는 뒷손으로 붐을 놓았다. 세일이 저절로 돌아 넘어가려 했다. 이수는 마스트를 잡은 앞손으로 세일을 몸 앞에서 반대쪽으로 넘겼다. 세일이 이수의 얼굴 앞에서 펄럭이며 넘어갔다. 넘어가는 세일의 반대쪽 붐을 잡았다. 발을 바꿨다. 앞발이 뒷발이 되고 뒷발이 앞발이 됐다. 세일이 반대쪽에서 바람을 받았다. 보드가 가라앉지 않았다. 보드는 원을 다 그리고 반대 방향으로 미끄러져 나갔다. 쉬익. 플레이닝 소리가 끊기지 않았다.
이수는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해변 쪽으로. 산호초 끝이 등 뒤에 있었다.
돌았다.
해변에서 호루라기가 울리지 않았다. 대근은 호루라기를 입에 물고 있었지만 불지 않았다. 이수가 해변에 닿자 대근은 호루라기를 입에서 뺐다.
“그거예요.”
한 마디였다. 이번엔 한 마디가 더 붙었다.
“석 달 걸렸네요. 나는 일주일 걸렸는데.”
“칭찬이에요?”
“칭찬이에요. 일주일 걸린 사람은 내가 여기서 보지 못했어요. 석 달 걸린 사람도 대부분 석 달 만에 포기해요. 사장님은 포기 안 했잖아요.”
민하가 모래밭에서 등번호 77을 흔들었다. 아직 떼지 않고 있었다.
한 주 내내 이수는 산호초 끝에서 돌았다. 열 번에 여섯 번, 다음 날은 일곱 번. 도는 게 되자 불라복이 달라졌다. 산호초 끝은 넘어지는 자리가 아니라 돌아오는 자리가 됐다. 이수는 산호초 안쪽을 오가며 끝없이 돌았다. 어섬에서 섬 등줄기를 따라 몇 시간이고 오가던 것처럼.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날이었다. 이수는 4월 첫 주에 돌아가기로 했다. 송 실장이 「흑룡의 검」 6권 표지 시안을 세 번 마닐라로 부쳤다. 세 번 다 이수가 고르지 않아서 네 번째는 직접 와서 고르라는 편지가 같이 왔다. 대근도 다음 주에 섬을 떠난다고 했다. 신양 축제가 그다음 주였다.
저녁에 대근이 이수를 창고로 불렀다.
대근은 벽 앞에 서 있었다. 받침대 위의 노란 보드를 내려 바닥에 눕혔다. 비닐을 벗겼다. 비닐을 벗기는 손이 느렸다. 노란 보드가 백열등 아래에 드러났다. 작고 날렵했다. 앞머리가 뾰족했다. 바닥에 긁힌 자국 하나 없었다. 꼬리 쪽에 풋스트랩 세 개가 달려 있었다. 풋스트랩 고무가 낡아 하얗게 일어나 있었다.
“선발전 두 달 전까지 이거 탔어요.”
대근이 말했다.
“무릎 터지던 날도 이거 탔어요. 그날 발이 안 빠진 풋스트랩이 이거예요.”
대근이 낡은 풋스트랩을 손가락으로 건드렸다.
보드 꼬리 밑 핀 박스는 비어 있었다. 대근은 궤짝 맨 밑에서 수건에 싼 검은 핀을 꺼냈다. 펀보드 컵 결승에서 끼웠던 핀이었다. 대근은 수건을 풀지 않은 채 핀을 보드 위에 얹었다.
“핀은 따로 들고 가요. 꽂은 채로 비행기 태우면 핀 박스가 깨져요. 보드는 고칠 수 있어도 핀 박스 깨지면 그 보드는 끝이에요.”
“이 핀도 주시는 거예요?”
“이 보드엔 이 핀이에요. 둘이 같이 다녔어요. 떼어 놓으면 보드가 빙글 돌아요.”
“사장님 큰 카이트요.”
“네.”
“이거랑 바꿔요.”
이수는 대근을 봤다. 대근은 보드를 봤다.
“신양 가려면 카이트가 있어야 돼요. 사장님 내일 가면 카이트도 같이 가요. 카이트 살 돈은 없어요. 신양 출연료 받으면 살 수 있는데, 출연료 받으려면 카이트가 있어야 돼요.”
“빌려드릴게요. 가져가세요.”
“빌린 건 갚아야죠. 바꾼 건 갚을 게 없어요.”
대근이 노란 보드를 이수 쪽으로 밀었다. 보드가 창고 바닥 모래 위를 한 뼘 미끄러졌다.
“이거 팔면 카이트 하나 값은 나와요. 근데 안 팔았어요. 팔면 내가 선수였던 게 없어지는 것 같아서. 사장님이면 안 팔 것 같아서 주는 거예요.”
이수는 노란 보드를 내려다봤다. 바닥에 긁힌 자국이 하나도 없는 보드를. 대근이 십 년 넘게 닦기만 한 보드를.
“조건이 있어요.”
“말해요.”
“카이트 바에 감은 거, 풀어요.”
대근의 얼굴이 굳었다. 이수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거 풀면 바꿀게요. 안 풀면 안 바꿔요. 카이트도 안 드리고요.”
“신양 가기 전에 풀게요. 은비 씨한테도 그렇게 말했어요.”
“지금 풀어요.”
“지금은 바람이 이래요.”
대근이 창고 밖을 가리켰다. 3월 끝의 바람은 순했다. 야자수 잎이 천천히 흔들렸다.
“여기 바람은 순해서 풀어도 돼요. 신양 바람은 세다면서요. 세면 더 풀어야죠.”
“세면 더 꽉 잡아야죠.”
둘은 같은 말을 반대로 했다. 백열등이 바람에 한 번 흔들렸다. 둘의 그림자가 창고 벽 위에서 겹쳤다가 갈라졌다.
이수는 주머니에서 접이칼을 꺼냈다. 창고 바닥에 놓인 카이트 바를 집어 들었다. 검은 혹에 칼날을 댔다. 대근의 손이 이수의 손목을 잡았다. 붐을 십오 년 쥔 손이었다. 이수의 손목이 움직이지 않았다.
“사장님.”
대근이 낮게 말했다.
“저 보드 내 손으로 넘기는 거예요. 저 보드가 나예요. 나 믿으라고 주는 거예요. 내가 풀게요. 내 손으로.”
이수는 대근의 눈을 봤다. 세일 세 장 이야기를 할 때의 눈이었다. 은행 빚, 형님 빚, 선수촌 동기 빚을 말할 때의 눈이었다. 이수는 대근의 눈이 거짓말하는 눈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대근은 스스로도 모르는 것 같았다.
이수는 칼을 접었다.
“신양 가기 전에요.”
“신양 가기 전에.”
대근이 이수의 손목을 놓았다. 노란 보드를 다시 비닐로 감쌌다. 이번엔 이수를 위해. 비닐을 세 겹 감고 테이프로 붙였다. 테이프를 감는 손이 바에 테이프를 감던 손과 같았다.
다음 날 아침, 섬 사람들이 해변에 나왔다. 로엘이 노란 보드를 머리에 이고 방카까지 걸어갔다. 맨발로 무릎까지 물에 잠겨서. 대근은 해변에 서 있었다. 이수의 큰 카이트 가방을 어깨에 메고. 이수가 방카에 오르자 대근이 손을 한 번 들었다. 호루라기는 불지 않았다.
방카에 오르기 전에 대근이 민하를 불렀다.
“대여점 회원증 하나 만들어 줘요.”
“네?”
“로엘이 만드는 법 배웠다면서요. 나도 하나. 한국 가면 빌리러 갈게요. 사장님이 고른 거.”
민하는 가방에서 공책을 꺼내 한 장을 찢었다. 볼펜으로 또박또박 적었다. 「부천 대여점 — 회원번호 1번 — 보라카이 윈드피아」. 맨 아래에 한 줄을 덧붙였다. 「연체 없음」. 대근이 종이를 받아 들고 웃었다. 접어서 지갑 맨 안쪽에 넣었다. 송금 영수증들 사이에.
민하가 방카에 올라 구명조끼를 입었다. 이번엔 사공의 등에 업히지 않았다. 무릎까지 물에 잠겨서 걸었다.
“형, 저 오늘 처음 바다에 들어갔어요.”
“무릎까지.”
“무릎도 바다예요.”
노란 보드를 한국까지 가져가는 길은 길었다.
카티클란의 작은 비행기는 보드를 싣지 않았다. 문이 보드보다 좁았다. 이수는 보드를 이고 트라이시클을 두 번 갈아타 큰 항구로 갔다. 마닐라 가는 밤배가 있었다. 열여덟 시간이 걸렸다. 민하는 열여덟 시간 동안 구명조끼를 벗지 않았다. 배 위에서 잠도 구명조끼를 입고 잤다.
“형, 이거 잃어버리면 안 돼요.”
“왜?”
“형이 한 달 내내 고르지 않은 「흑룡의 검」 6권 표지보다 이게 더 비싸 보여서요.”
밤배 갑판 위에서 이수는 잠을 자지 못했다. 바다가 검었다. 배가 지나간 자리만 하얗게 거품이 일었다. 이수는 난간에 기대 전화기를 열었다. 신호가 없었다. 대근에게 보내려던 말을 문자 창에 적었다가 지웠다. 「풀었어요?」. 이수는 전화기를 접고 노란 보드를 봤다. 갑판 구석에 밧줄로 묶어 둔 보드가 배가 흔들릴 때마다 같이 흔들렸다. 민하가 구명조끼를 입은 채 보드 옆에 누워 코를 골았다. 보드를 지키는 사람 같았다.
마닐라 공항에서 항공사 직원이 보드의 길이를 쟀다. 줄자를 두 번 폈다. 초과 수하물 요금이 비행기표 값보다 많이 나왔다. 이수는 군말 없이 냈다. 수건에 싼 핀은 부치지 않았다. 기내 가방 맨 안쪽에 넣었다. 보안 검색대 직원이 가방을 열어 수건을 풀더니 검은 핀을 들고 한참 봤다. 칼인지 아닌지. 민하가 영어로 「피시. 피시 테일」이라고 설명했다. 직원은 더 헷갈린 얼굴로 핀을 돌려줬다. 민하가 초과 수하물 영수증을 꺼내 한참 봤다.
“형, 이 돈이면 「흑룡의 검」 1권부터 6권까지 우리 대여점에 서른 질 깔아요.”
“알아.”
“그런데 내요?”
“대근 씨는 십 년을 안 팔았대.”
인천공항에서 택시 세 대가 보드를 보고 그냥 지나갔다. 네 번째 택시 기사가 트렁크에서 끈을 꺼냈다. 보드를 택시 지붕에 얹고 끈으로 묶었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동안 지붕 위의 보드가 바람을 받아 웅웅 울었다. 기사가 백미러로 이수를 봤다.
“이거 날아가면 어떡해요?”
“날아가도 돼요. 사람만 안 다치면.”
“손님이 그런 말 하니까 더 무섭네.”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보드가 들어가지 않았다. 대각선으로 세워도 문이 닫히지 않았다. 이수는 보드를 어깨에 메고 계단을 올랐다. 열두 층. 민하가 꼬리 쪽을 받쳤다. 층마다 계단참에서 쉬었다. 7층 계단참에서 민하가 주저앉았다.
“형, 이거 왜 이렇게까지 가져와요?”
이수는 숨을 몰아쉬었다. 보드를 계단 난간에 기대 세웠다. 세 겹 비닐 너머로 노란색이 비쳤다.
“한국에서도 타려고.”
“어디서요?”
“시화호. 진하. 홀통. 신양.”
“신양은 성지 아니라면서요.”
“신양은 신양이래.”
열두 층 꼭대기 집에 보드를 들여놓았다. 보드는 거실에 들어가지 않고 베란다에 들어갔다. 이수는 비닐을 벗기지 않았다. 내일 시화호에 가지고 나가서 벗길 생각이었다. 비닐을 벗기는 건 물가에서 하기로 했다. 대근이 노란 보드를 처음 물에 띄운 날도 물가였을 것이었다.
베란다 창밖으로 4월의 밤이 내려앉았다. 이수는 전화기를 열었다. 대근의 섬은 전화가 잘 안 됐다. 이수는 문자를 하나 보냈다.
「잘 도착했어요. 신양 가기 전에, 꼭요.」
답장은 오지 않았다.
시화호에는 나가지 못했다. 이튿날부터 비가 왔다. 사흘째 되는 날 태풍에게서 전화가 왔다. 태풍은 대회가 끝나고 서울로 올라와 있었다.
“형님, 뚝섬 한번 오세요. 서울에도 바람 불어요. 가끔.”
이수는 뚝섬유원지에 갔다. 강가 둔치에 컨테이너 두 개를 붙인 클럽하우스가 있었다. 첫날은 바람이 없어서 태풍과 컨테이너 안에서 라면만 먹었다. 둘째 날도 바람이 없었다. 태풍은 라면 물을 올리며 서울 바람은 원래 오후 네 시에 온다고 했다. 네 시가 지나도 오지 않았다.
셋째 날 오후에 바람이 조금 일었다. 이수는 노란 보드를 가져가지 않았다. 노란 보드의 비닐은 바다에서 벗기기로 했다. 대신 클럽의 넓은 펀보드를 빌렸다. 시화호에서 처음 타던 것과 비슷한 보드였다.
강물은 탁한 갈색이었다. 발을 담그자 비린내와 기름 냄새가 함께 올라왔다. 바람은 강 위로 한 번 불었다가 건너편 아파트 숲에 막혀 끊겼다. 세일이 바람을 먹었다가 뱉고, 먹었다가 뱉었다. 보드는 한 번도 물 위를 달리지 못했다. 이수는 강 한가운데서 바람을 기다리다 빠졌다. 입에 들어간 물에서 냄새가 났다. 멀리서 지하철이 다리를 건너갔다.
불라복의 옥색 물이 생각났다. 발밑으로 산호와 모래가 줄무늬처럼 흘러가던 물. 날마다 같은 세기로 불던 바람. 쉬익 하던 플레이닝 소리.
태풍이 둔치에서 손을 흔들었다.
“형님! 서울 바람은 원래 이래요! 여기서 버틴 사람들이 보라카이 가면 다 날아다녀요!”
이수는 웃으며 손을 흔들어 줬다. 세일을 접어 돌려주고, 젖은 슈트를 갈아입고, 차에 올랐다. 창밖으로 갈색 강이 지나갔다. 이수는 운전해 돌아오며 다시는 뚝섬에 오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태풍에게는 말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