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7,155자)

플레이닝

보라카이 윈드서핑 · 이수

대근은 이수에게 대여료를 냈다⁠.

새해 첫날 아침이었다⁠. 대근이 창고 앞 칠판에 분필로 적힌 대여료표를 가리켰다⁠. 「⁠보드 한 시간⁠」⁠, 「⁠세일 한 시간⁠」⁠, 「⁠강습 한 시간⁠」⁠. 맨 아래에 대근이 새로 한 줄을 써 넣었다⁠. 「⁠카이트 한 시간 — 사장님 것⁠」⁠. 옆에 값이 적혀 있었다⁠. 보드 대여료와 같았다⁠.

“⁠이거 뭐예요⁠?⁠”

“⁠사장님 큰 카이트 빌려 탈게요⁠. 시간당⁠. 손님들이 내 보드 빌리듯이⁠.⁠”

“⁠그냥 타세요⁠.⁠”

“⁠그냥은 안 탄다고 했잖아요⁠.⁠”

민하가 칠판 앞에서 팔짱을 끼고 대여료표를 봤다⁠.

“⁠형⁠, 이 가게 사장님이 손님한테 대여료를 내는 거예요⁠?⁠”

“⁠그런가 봐⁠.⁠”

“⁠우리 대여점에선 상상도 못 할 일이에요⁠. 손님이 책 빌려주고 제가 연체료 내는 거잖아요⁠.⁠”

로엘이 칠판 아래 쪼그려 앉아 대여료표를 공책에 옮겨 적었다⁠. 섬 말과 한국말을 섞어서⁠. 「⁠사장님 것⁠」 옆에 로엘은 웃는 얼굴을 하나 그렸다⁠.

1월의 불라복은 바람이 가장 고르고 셌다⁠. 날마다 오전 열 시쯤 바람이 일어나 해 질 때까지 같은 세기로 불었다⁠. 산호초 바깥은 하얀 물결로 덮였다⁠. 대근은 그런 날 이수를 넓은 펀보드에서 내리게 했다⁠.

“⁠오늘부터 이거 타요⁠.⁠”

대근이 창고에서 꺼낸 보드는 펀보드보다 한 뼘 짧고 폭이 좁았다⁠. 꼬리 쪽에 발을 끼우는 고무 고리가 세 개 달려 있었다⁠. 풋스트랩이었다⁠.

“⁠풋스트랩에 발 끼우면 보드랑 몸이 하나가 돼요⁠. 보드가 뜰 때 발이 안 떨어져요⁠.⁠”

“⁠보드가 떠요⁠?⁠”

“⁠오늘 뜰 거예요⁠. 바람이 이 정도면⁠.⁠”

이수는 대근의 무릎 위 수술 자국을 봤다⁠. 발이 풋스트랩에서 안 빠져 반대로 꺾였다던 무릎이었다⁠. 대근이 이수의 눈길을 따라 제 무릎을 내려다봤다⁠.

“⁠넘어질 때 발 먼저 빼요⁠. 그거만 지키면 돼요⁠.⁠”

오전 내내 이수는 작은 보드에서 빠졌다⁠. 작은 보드는 넓은 보드와 달랐다⁠. 무릎으로 올라서는 순간 한쪽으로 기울었다⁠. 일어서면 보드가 발밑에서 미끄러졌다⁠. 세일을 세우면 보드가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넓은 보드는 사람을 떠받쳤다⁠. 작은 보드는 사람이 보드를 떠받쳐야 했다⁠.

정오 무렵⁠, 이수는 작은 보드에서 일어서는 법을 몸으로 알았다⁠. 세일이 바람을 받는 순간에 맞춰 일어서는 것이었다⁠. 세일이 끌어 주는 힘으로 보드가 앞으로 나가면 보드가 덜 가라앉았다⁠. 보드가 앞으로 나가는 동안만 보드 위에 설 수 있었다⁠. 멈추면 가라앉았다⁠.

“⁠멈추지 마요⁠! 가는 게 서는 거예요⁠!⁠”

대근이 해변에서 소리쳤다⁠. 이수는 대근의 말을 오후 내내 들었다⁠.

점심을 먹고 나서 대근은 업홀 라인을 붐에서 풀어 버렸다⁠.

“⁠작은 보드에선 업홀로 세일 끌어 올리다가 하루가 다 가요⁠. 이제 워터스타트예요⁠.⁠”

대근은 허리 깊이 물에 들어가 시범을 보였다⁠. 물에 빠진 채로 마스트 끝을 바람 쪽으로 돌리고⁠, 세일 앞가장자리를 머리 위로 들어 바람이 세일 밑으로 들어가게 했다⁠. 세일이 물을 털고 떠올랐다⁠. 대근은 물에 누운 채 뒷발을 보드에 올리고 붐을 잡은 두 팔을 쭉 폈다⁠. 바람을 받은 세일이 대근의 몸을 물에서 끌어 올렸다⁠. 대근은 일어서는 것 같지 않았다⁠. 세일이 대근을 보드 위에 올려놓았다⁠.

“⁠사람이 일어나는 게 아니에요⁠. 세일이 일으켜 주는 거예요⁠. 사장님은 붐에 매달려만 있어요⁠.⁠”

이수는 매달려만 있지 않았다⁠. 세일이 끌어 올리는 순간 무릎을 펴려고 버텼고⁠, 버티는 동안 세일이 이수를 보드 너머로 넘겨 버렸다⁠. 열네 번째에 이수는 버티지 않았다⁠. 팔을 펴고 엉덩이를 보드 위로 밀어 넣기만 했다⁠. 몸이 물에서 뽑혀 나와 보드 위에 섰다⁠.

얕은 물에서는 비치 스타트를 했다⁠. 무릎 깊이에서 보드 옆에 서서 세일을 바람에 맞춰 세우고⁠, 뒷발을 보드 가운데에 올린 다음 세일에 끌려 앞발을 올리는 것이었다⁠. 민하가 해변에서 보다가 소리쳤다⁠.

“⁠형⁠, 그거 버스 올라타는 거랑 똑같아요⁠! 뒷발 먼저 올리고 버스가 출발하면 앞발⁠!⁠”

“⁠버스는 앞발 먼저야⁠.⁠”

“⁠부천 버스는 뒷발 먼저예요⁠. 기사님이 안 기다려 줘요⁠.⁠”

한 시가 넘자 바람이 한층 세졌다⁠. 대근이 호루라기를 길게 불어 이수를 불러들였다⁠. 이수의 5⁠.0 세일을 모래밭에 눕히더니 창고에서 4⁠.2 세일을 꺼내 왔다⁠.

“⁠바꿔요⁠. 바람 세지면 세일을 줄여요⁠. 큰 세일 붙들고 버티는 건 힘자랑이에요⁠. 힘자랑하다가 어깨 나가요⁠.⁠”

“⁠작은 세일이면 느리잖아요⁠.⁠”

“⁠센 바람에선 작은 세일이 더 빨라요⁠. 사람이 버틸 수 있어야 보드가 떠요⁠. 바람이 약해지면 다시 큰 걸로 바꾸고요⁠. 바람 따라 세일 크기를 바꾸는 게 이 운동의 반이에요⁠.⁠”

이수는 작은 세일을 받아 들었다⁠. 가벼웠다⁠. 붐 위치도 낮았다⁠.

오후 두 시⁠, 바람이 가장 셌다⁠. 이수는 하네스 라인을 고리에 걸었다⁠. 툭⁠. 이제 한 번에 걸렸다⁠. 허리로 세일을 버텼다⁠. 보드가 앞으로 나갔다⁠. 이수는 뒷발을 꼬리 쪽으로 옮겼다⁠. 풋스트랩에 발가락을 밀어 넣었다⁠. 앞발도 풋스트랩에 넣었다⁠. 몸이 보드에 묶였다⁠.

세일이 바람을 한가득 먹었다⁠.

보드가 빨라졌다⁠. 물을 밀어내는 소리가 커졌다⁠. 철썩철썩⁠. 보드 앞머리가 물결을 하나씩 들이받았다⁠. 이수는 몸을 물 쪽으로 더 뉘었다⁠. 하네스 라인이 팽팽해졌다⁠. 세일이 이수를 앞으로 끌었고 이수의 몸무게가 세일을 뒤로 당겼다⁠. 끄는 힘과 당기는 힘이 한 줄 위에서 맞섰다⁠.

순간 소리가 바뀌었다⁠.

철썩이던 소리가 그쳤다⁠. 대신 쉬익 하는 소리가 났다⁠. 길고 가는 소리였다⁠. 보드 앞머리가 물에서 들렸다⁠. 보드가 물을 밀어내지 않았다⁠. 물 위를 스쳤다⁠. 꼬리 끝만 물에 닿아 있었다⁠. 물보라가 꼬리에서 하얗게 뒤로 뻗었다⁠.

빨랐다⁠. 아까보다 두 배는 빨랐다⁠. 산호초 안쪽 옥색 물이 발밑에서 줄무늬처럼 흘러갔다⁠. 물속 산호와 모래가 보였다가 사라지고 보였다가 사라졌다⁠. 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이수는 눈을 가늘게 떴다⁠.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웃고 있었다⁠. 웃는 줄도 몰랐다⁠.

어섬 하늘에서 내려다보던 시화호의 하얀 물살이 생각났다⁠. 지금 이수의 꼬리에서 하얀 물살이 그어지고 있었다⁠. 위에서 누가 이수를 내려다본다면 하얀 직선 하나가 옥색 물을 가르는 게 보일 것이었다⁠.

산호초 끝이 다가왔다⁠. 너무 빨리 다가왔다⁠. 이수는 방향을 틀 줄 몰랐다⁠. 세일을 놓았다⁠. 발을 풋스트랩에서 뺐다⁠. 대근의 말대로 발 먼저⁠. 몸이 앞으로 날아갔다⁠. 물에 떨어지기 전 공중에 떠 있는 동안에도 이수는 웃고 있었다⁠.

물에서 고개를 내밀자 해변에서 호루라기 소리가 들렸다⁠. 한 번⁠, 짧게⁠. 이어서 대근의 목소리가 바람을 뚫고 왔다⁠.

“⁠그거예요⁠!⁠”

한 마디였다⁠. 대근의 칭찬은 늘 한 마디였다⁠. 이수는 물속에서 대근의 한 마디를 오래 들었다⁠. 물이 귀에 들어와 웅웅거리는데도 한 마디는 또렷했다⁠. 국가대표 시절 대근에게 칭찬을 한 마디씩 했던 사람이 있었을 것이었다⁠. 대근은 한 마디 칭찬 버릇을 그대로 물려받은 것 같았다⁠.

해변으로 돌아오자 민하가 모래밭에서 펄쩍펄쩍 뛰고 있었다⁠.

“⁠형⁠! 형 떴어요⁠! 보드가 물 위로 떴어요⁠! 형이 웃는 얼굴 봤어요⁠. 형 그렇게 웃는 거 고등학교 졸업식 이후로 처음 봐요⁠.⁠”

“⁠졸업식 때 웃었어⁠?⁠”

“⁠형이 졸업장을 거꾸로 받았잖아요⁠. 교장 선생님 앞에서⁠. 그때 웃었어요⁠.⁠”

대근은 이수의 보드를 받아 들고 바닥을 손바닥으로 쓸어 봤다⁠. 산호에 긁힌 데가 없는지⁠. 다 쓸어 보고 나서야 이수를 봤다⁠.

“⁠그게 플레이닝이에요⁠. 물을 밀고 가는 게 아니라 물 위를 타고 가는 거⁠.⁠”

“⁠다시 할 수 있을까요⁠?⁠”

“⁠내일은 더 오래 할 거예요⁠. 모레는 더 오래⁠. 그러다 어느 날 방향 틀 줄 알면 산호초 끝에서 안 넘어지고요⁠.⁠”

이수는 한 번 더 나갔다⁠. 두 번째 플레이닝은 금방 왔다⁠. 쉬익 소리가 나고 보드가 떴다⁠. 이수는 신이 나서 뒷발로 꼬리를 꾹 눌렀다⁠. 바람 쪽으로 조금 더 올라가 보려는 것이었다⁠.

꼬리가 옆으로 빠졌다⁠.

보드 꼬리가 바람 아래로 쭉 미끄러졌다⁠. 앞머리는 그대로인데 꼬리만 옆으로 달아났다⁠. 보드가 물 위에서 비스듬히 미끄러지다 멈췄다⁠. 세일이 이수를 앞으로 끌었다⁠. 이수는 붐을 쥔 채 세일 너머로 날아갔다⁠. 캐터펄트였다⁠. 두 번째였다⁠.

대근이 해변에서 이수의 보드를 뒤집어 보고 꼬리 밑 핀을 엄지로 두드렸다⁠. 핀은 멀쩡했다⁠.

“⁠스핀아웃이에요⁠. 핀이 물을 놓친 거예요⁠.⁠”

“⁠핀이 물을 놓쳐요⁠?⁠”

“⁠핀은 물을 붙잡고 버텨요⁠. 근데 너무 세게 누르면 핀 옆에 물 대신 거품이 붙어요⁠. 거품은 붙잡을 게 없잖아요⁠. 그럼 꼬리가 옆으로 날아가요⁠. 사장님이 뒷발로 꼬리를 밟았죠⁠? 바람 쪽으로 올라가 보겠다고⁠.⁠”

“⁠어떻게 알았어요⁠?⁠”

“⁠다 그래요⁠. 처음 뜨면 다 밟아요⁠. 바람 쪽으로 올라가는 건 꼬리를 밟는 게 아니라 핀에 발을 얹는 거예요⁠. 앞발을 풀고⁠, 뒷발로 핀 위를 지그시 누르고⁠, 보드를 살짝만 기울여요⁠. 그럼 핀이 바람 쪽으로 물을 깎으면서 올라가요⁠. 플레이닝 할 때는 대거보드가 없으니까 바람 쪽으로 올라가는 힘이 다 핀에서 나와요⁠.⁠”

대근은 창고에서 핀 세 개를 꺼내 모래밭에 나란히 눕혔다⁠. 길이가 다 달랐다⁠. 짧은 것은 손바닥 하나 반⁠, 긴 것은 팔꿈치에서 손끝까지였다⁠.

“⁠핀도 세일 따라 바꿔요⁠. 세일이 크면 긴 핀⁠, 세일이 작으면 짧은 핀⁠. 큰 세일은 힘이 세니까 긴 핀이 붙잡아 줘야 하고⁠, 작은 세일에 긴 핀을 달면 핀이 너무 많이 붙잡아서 보드 한쪽이 들리고 뒤집혀요⁠. 오늘 사장님 4⁠.2엔 이거⁠.⁠”

대근이 가운데 핀을 집었다⁠. 이수가 받아 들었다⁠. 생각보다 무거웠다⁠. 앞가장자리는 둥글고 뒷가장자리는 손을 벨 것처럼 얇았다⁠.

“⁠세일이 바람 받는 거랑 핀이 물 받는 게 같은 모양이에요⁠. 세일은 공기 속 날개고⁠, 핀은 물속 날개예요⁠.⁠”

이수는 핀을 손가락으로 쓸어 봤다⁠. 바람을 넣으면 부푸는 패러글라이더 날개 칸의 옆모습과 생김새가 같았다⁠. 앞이 둥글고 뒤가 얇았다⁠.

대근은 보드를 모래밭에 눕히고 큰 카이트를 들고 물로 들어갔다⁠. 제 대여료를 낸 시간이었다⁠. 대근은 해 질 때까지 큰 카이트를 탔다⁠. 이수의 큰 카이트가 불라복 하늘에서 원을 그렸다⁠. 해변의 유럽 사람들이 이제 대근의 이름을 불렀다⁠. 「⁠대군⁠!⁠」 「⁠대군⁠!⁠」⁠. 섬의 아이들은 대근을 카이트 아저씨라고 불렀다⁠.

밤이 되자 민하는 맥주를 찾으러 창고에 갔다⁠.

윈드피아 냉장고는 창고 안에 있었다⁠. 발전기가 저녁에만 돌아서 냉장고도 저녁에만 차가웠다⁠. 민하는 맨발로 모래 마당을 건넜다⁠. 창고 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 백열등이 켜져 있었다⁠.

대근이 창고 바닥에 앉아 있었다⁠. 무릎 위에 이수의 큰 카이트 바가 놓여 있었다⁠. 대근은 바 가운데 치킨 루프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고리 아래 빨간 손잡이를⁠. 손에 하얀 끈 한 타래가 들려 있었다⁠. 세일 끝을 묶을 때 쓰는 가는 끈이었다⁠.

대근은 끈을 빨간 손잡이에 감았다⁠. 손잡이와 고리를 한데 묶어 감았다⁠. 한 바퀴⁠, 두 바퀴⁠. 감을 때마다 끈을 세게 당겼다⁠. 열 바퀴쯤 감고 나서 대근은 검은 절연 테이프를 꺼냈다⁠. 끈 위에 테이프를 감았다⁠. 빨간색이 테이프 아래로 사라졌다⁠. 고리 아래 검은 혹 하나가 남았다⁠.

민하는 문간에 서 있었다⁠. 맥주를 잊었다⁠.

“⁠그거 왜 감아요⁠?⁠”

대근이 고개를 들었다⁠. 놀라지 않았다⁠. 대근은 테이프 끝을 엄지로 눌러 붙이며 말했다⁠.

“⁠바람 세면 손이 저절로 가요⁠. 여기로⁠.⁠”

대근이 검은 혹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지난번에 손이 저절로 갔어요⁠. 카이트가 바다로 갔고요⁠. 손 못 가게 하는 거예요⁠.⁠”

“⁠그거 형 카이트잖아요⁠.⁠”

“⁠그러니까요⁠. 빌려 탄 장비는 더 아껴야죠⁠. 잃어버리면 갚을 수가 없어요⁠. 내 카이트는 내가 잃어버리면 내가 손해고 끝인데⁠, 사장님 카이트는 잃어버리면 내가 평생 빚쟁이예요⁠.⁠”

민하는 대근의 말이 맞는지 틀리는지 알 수 없었다⁠. 대여점에서 책을 잃어버린 손님에게 민하는 늘 책값을 받았다⁠. 받는 게 맞았다⁠. 그런데 지금은 맞는 것 같지 않았다⁠.

민하는 맥주 없이 방으로 돌아왔다⁠. 모래 마당을 건너는 동안 뒤에서 테이프 뜯는 소리가 한 번 더 났다⁠. 대근이 한 겹을 더 감는 소리였다⁠. 민하는 돌아보지 않았다⁠. 이수는 모기장 안에서 원고를 읽고 있었다⁠. 송 실장이 마닐라 우체국으로 부친 원고였다⁠. 민하가 모기장 앞에 쪼그려 앉았다⁠.

“⁠형⁠.⁠”

“⁠응⁠.⁠”

“⁠사장님이 형 카이트에 끈 감았어요⁠. 빨간 거에⁠. 테이프로 덮었어요⁠.⁠”

이수가 원고를 내려놓았다⁠.

다음 날 아침⁠, 이수는 창고에서 대근을 찾았다⁠. 대근은 큰 카이트에 바람을 넣고 있었다⁠. 바가 카이트 옆 모래밭에 놓여 있었다⁠. 고리 아래 검은 혹이 아침 햇빛에 번들거렸다⁠.

“⁠풀어요⁠.⁠”

대근은 펌프질을 멈추지 않았다⁠.

“⁠그거 풀어요⁠. 제 카이트예요⁠.⁠”

“⁠사장님 카이트니까 감은 거예요⁠.⁠”

“⁠제 카이트니까 제가 풀라는 거예요⁠. 당기면 카이트 날아가도 돼요⁠. 그거 날아가면 제가 하나 더 사요⁠. 대근 씨한테 하나 사 드릴게요⁠. 새 걸로⁠. 두 개⁠.⁠”

대근이 펌프질을 멈췄다⁠. 이수를 봤다⁠. 대근의 눈이 처음 보는 눈이었다⁠.

“⁠사장님⁠.⁠”

“⁠네⁠.⁠”

“⁠사장님 돈으로 내 바다를 사겠다는 거예요⁠?⁠”

이수는 말을 멈췄다⁠. 대근이 일어섰다⁠.

“⁠사장님은 다 살 수 있죠⁠. 카이트도⁠, 세일도⁠, 비행기표도⁠. 송 실장님이 원고를 팔면 다 돼요⁠. 나는 못 사요⁠. 나는 잃어버리면 끝이에요⁠. 끝나지 않게 하는 방법이 이거 하나예요⁠.⁠”

대근이 검은 혹을 가리켰다⁠.

“⁠나는 십오 년을 바람 센 바다에서 탔어요⁠. 카이트가 나를 끌고 가도 나는 안 놓쳐요⁠. 손이 기억해요⁠.⁠”

“⁠지난번엔 손이 저절로 갔다면서요⁠.⁠”

대근의 입이 다물어졌다⁠. 바람이 둘 사이로 지나갔다⁠. 펌프질하다 만 카이트가 모래밭에서 반쯤 부푼 채 펄럭였다⁠.

“⁠그럼 가져가세요⁠.⁠”

대근이 바를 집어 이수에게 내밀었다⁠.

“⁠가져가세요⁠. 그럼 나 다시는 카이트 안 타요⁠. 섬에 하나밖에 없는 카이트였는데⁠. 손님들 오면 이제 카이트 아저씨 없다고 하죠⁠, 뭐⁠.⁠”

이수는 내민 바를 봤다⁠. 검은 혹을 봤다⁠. 받으면 대근이 카이트를 안 탄다⁠. 받지 않으면 대근이 검은 혹을 단 채 카이트를 탄다⁠. 이수는 둘 중 어느 쪽이 더 나은지 알 수 없었다⁠. 어섬 소나무에 매달렸을 때는 버클을 풀면 끝이었다⁠. 지금은 풀 버클이 이수에게 있지 않았다⁠.

이수는 바를 받지 않았다⁠.

대근이 바를 거두었다⁠. 카이트에 다시 펌프질을 했다⁠. 카이트가 단단하게 부풀었다⁠. 대근은 카이트를 들고 물로 들어갔다⁠. 해변에서 아이들이 「⁠카이트 아저씨⁠!⁠」 하고 불렀다⁠. 큰 카이트가 불라복 하늘로 올라갔다⁠.

민하가 이수 옆에 와서 섰다⁠.

“⁠형⁠, 그냥 둬요⁠?⁠”

“⁠지금은⁠.⁠”

“⁠지금은이요⁠?⁠”

이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늘의 카이트를 봤다⁠. 카이트는 부채꼴 가장자리에서 조용히 떠 있었다⁠. 바 가운데⁠, 대근의 허리 앞에서 검은 혹이 흔들리는 것은 해변에서 보이지 않았다⁠.

6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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