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6,500자)
한겨울 시화호
보라카이 윈드서핑 · 이수
물이 귓속으로 들어왔다. 차가웠다.
이수는 시화호 물속에서 눈을 떴다. 탁한 초록빛 속에 세일이 천장처럼 덮여 있었다. 세일 아래로 빠진 것이었다. 고개를 들면 세일에 머리가 닿았다. 이수는 숨을 참고 세일 가장자리 쪽으로 손을 더듬어 헤엄쳐 나갔다. 물 밖으로 머리를 내밀자 11월의 바람이 젖은 얼굴을 때렸다.
“열일곱.”
물가에서 민하가 소리쳤다. 민하는 접이식 낚시 의자에 앉아 무릎에 담요를 덮고 있었다. 담요 위에는 원고 뭉치가 놓였고, 발치에는 주황색 구명조끼가 놓였다. 어섬에 들고 갔던 조끼였다. 입지는 않았다. 들고만 왔다. 민하는 조끼가 옆에 있으면 물이 덜 무섭다고 했다. 물가에서 2m 떨어진 의자 위에서.
“오늘만 열일곱 번째예요. 지난주까지 합하면 여든셋.”
“세지 마.”
“대여점 하는 사람은 세는 게 일이에요. 「흑룡의 검」이 3권에서 몇 권 빠졌는지, 연체료가 몇 날 쌓였는지. 형 빠지는 것도 세야 마음이 편해요.”
이수는 보드 위로 기어올랐다. 보드는 길고 넓었다. 시화호 동호회 길만석이 창고에서 꺼내 준 낡은 펀보드였다. 초보는 무조건 크고 넓은 보드로 시작한다고 했다. 넓은 보드는 웬만해서는 뒤집히지 않았다. 이수는 넓은 보드에서 하루에 스무 번씩 빠졌다.
보드 위에 무릎으로 섰다. 물에 누운 세일에 매인 굵은 줄을 잡았다. 업홀 라인이라고 했다. 줄을 당겨 세일을 물에서 끌어 올리는 것이었다. 세일이 물을 가득 머금고 있어서 처음엔 무거웠다. 마스트 끝이 물을 털고 올라오면서 가벼워졌다. 이수는 무릎을 펴고 일어섰다. 세일이 몸 앞에 수직으로 섰다. 세일 천에서 물이 줄줄 흘렀다.
여기까지는 이제 됐다.
다음이 문제였다. 세일을 바람에 열어야 했다. 바람을 등지고 서서 업홀 라인을 놓고, 앞손으로 마스트 바로 아래 붐을 잡는다. 마스트를 몸 앞으로, 바람이 가는 쪽으로 끌어당겨 세운다. 그다음 뒷손으로 붐 뒤쪽을 잡아 몸 쪽으로 당긴다. 만석은 그걸 「시트 인」이라고 했다. 당기면 세일이 바람을 받고, 놓으면 세일이 펄럭이며 바람을 흘린다. 놓는 건 「시트 아웃」이었다. 바람을 받은 세일은 앞으로 간다. 보드도 따라간다. 말로는 쉬웠다.
이수는 뒷손으로 붐을 당겼다. 세일이 바람을 받았다. 세일이 바람을 너무 많이 받았다. 세일이 이수를 앞으로 확 끌어당겼다. 이수는 세일을 놓지 않으려고 버텼다. 버티는 사이 보드가 뒤에서 미끄러져 나갔다. 이수의 몸이 세일과 보드 사이 허공에 걸렸다가 그대로 물에 떨어졌다.
“열여덟.”
이번에는 세일 위로 떨어졌다. 세일 천이 이수의 무게를 받아 물속으로 쑥 들어갔다. 만석이 물가에서 혀를 찼다. 만석은 시화호에서 십 년을 탄 사람이었다. 9월 저녁 어섬 아래 물가에서 이수가 처음 말을 건 검은 고무 옷의 사내였다.
“세일 위로 떨어지면 마스트가 부러져요!”
“죄송합니다!”
“사장님이 부러지는 건 괜찮은데 마스트는 안 돼요! 마스트는 비싸요!”
민하가 웃음을 참지 못하고 담요 속으로 고개를 박았다.
“형, 저 아저씨 형보다 마스트를 더 아껴요.”
이수는 물에서 고개를 내밀고 물가를 봤다. 만석이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웃는 얼굴이었다. 십 년 탄 사람은 마스트 걱정을 웃으면서 했다.
“마스트 부러지면 제가 새로 사 드릴게요.”
“그럼 마음 놓고 떨어지세요.”
11월이 지나갔다. 바람 부는 주말이면 이수는 시화호에 나갔다. 평일에도 바람이 좋으면 나갔다. 출판사 일은 송 실장이 다 했다. 이수는 사무실에 가면 원고 더미에서 다음 달에 낼 판타지 두 질을 골라 송 실장 책상에 올려놓고 나왔다. 이수가 하는 일은 원고 고르기 하나였다. 골라 놓은 원고는 대여점 육백 곳에 나가 다 팔렸다. 이수는 어떻게 다 팔리는지 잘 몰랐다. 첫 장을 읽으면 끝까지 읽힐 원고인지 아닌지 알았다. 아는 것은 하나뿐이었다.
민하는 주말마다 부천에서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시화호에 왔다. 대여점은 어머니에게 맡겼다. 민하가 물가에서 원고를 읽는 동안 이수는 물속에서 세일을 세웠다. 원고 한 권을 다 읽을 때쯤이면 이수는 스무 번쯤 빠져 있었다.
“이거 3권 넘어가요.”
민하가 원고를 넘기며 말했다. 이수가 물속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어떻게 알아?”
“주인공이 1권 끝에서 밥을 안 먹었어요. 밥 안 먹는 주인공은 3권까지 가요. 우리 대여점 중학생들은 주인공이 밥 먹는 장면에서 책을 덮어요. 배고파져서 라면 끓이러 가거든요. 그래서 라면 국물이 묻는 거예요.”
“그게 통계야?”
“대여점 육 년의 감이에요.”
12월 초, 첫 추위가 왔다. 만석이 이수를 창고로 데려가 드라이 슈트를 입혀 봤다. 목과 손목이 고무로 꽉 조였다. 안에 털옷을 입고 털옷 위에 입는 옷이었다. 물이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대신 몸이 고무 풍선 속에 들어간 것 같았다.
“이거 입으면 겨울에도 타요. 빠져도 안 젖어요. 근데 목이 조여서 숨이 좀 막혀요.”
“숨이 막히면 어떡해요?”
“빠지면 안 막혀요. 물이 차서 숨이 저절로 쉬어져요.”
만석의 설명은 늘 이런 식이었다. 이수는 드라이 슈트를 입은 채 거울을 봤다. 검은 고무 덩어리에 머리 하나가 꽂혀 있었다. 민하가 창고 문간에서 사진을 찍었다. 일회용 카메라였다.
“이거 대여점 카운터에 붙여 둘게요. 「본 대여점에 판타지를 공급하는 출판사 사장님」.”
“떼.”
“「연체하면 이 사람이 찾아갑니다」로 바꾸면요?”
“그건 괜찮다.”
12월의 시화호는 바람이 달랐다. 북서풍이 호수를 가로질러 세게 불었다. 물 위에 하얀 물결이 일었다. 만석은 그런 날을 「바람 터진 날」이라고 불렀다. 바람 터진 날이면 동호회 사람들이 하나둘 승합차를 몰고 나타났다. 작은 보드에 작은 세일을 달고 물 위로 나가 하얀 물살을 그으며 호수를 가로질렀다. 이수가 어섬 하늘에서 내려다본 물살이었다.
이수는 넓은 보드에서 아직 빠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빠지기 전에 몇 m를 갔다. 처음엔 5m였다. 다음 주엔 20m였다. 그다음 주엔 호수 가운데 부표까지 갔다가 돌아오지 못해 만석의 고무보트에 끌려 돌아왔다.
“돌아오는 건 다음 달에 배우세요.”
“가는 건 됐잖아요.”
“가는 건 누구나 돼요. 바람이 데려가니까. 돌아오는 게 실력이에요.”
만석은 다음 달까지 기다리지 않았다. 그날 저녁 물가 모래에 막대기로 시계를 하나 그렸다. 열두 시 자리에 「바람」이라고 썼다.
“바람이 여기서 와요. 열한 시부터 한 시까지는 못 가요. 바람 정면이라 세일이 펄럭이기만 해요. 거기는 노고 존이에요. 못 가는 데.”
“그럼 바람 쪽으론 영영 못 가요?”
“비스듬히 가요. 열 시 반으로 가다가, 한 시 반으로 가다가. 지그재그로. 바람 쪽으로 바짝 붙어 가는 걸 클로즈홀드라고 해요. 바람을 옆구리로 받으면 빔리치, 바람을 등 뒤 비스듬히 받으면 브로드리치. 바람을 등에 다 받고 똑바로 내려가면 러닝. 사장님이 부표까지 간 게 러닝이에요. 제일 쉽고 제일 못 돌아와요.”
만석은 보드 가운데 구멍에서 칼처럼 생긴 판을 뽑아 보였다. 대거보드라고 했다. 물속으로 내리면 보드가 옆으로 밀리지 않고, 올리면 옆으로 미끄러졌다.
“바람 쪽으로 올라갈 땐 이거 내려요. 이거 안 내리면 게처럼 옆으로 가요. 그리고 방향은 발로 안 틀어요. 마스트로 틀어요. 마스트를 보드 앞쪽으로 기울이면 앞머리가 바람 아래로 돌고, 뒤쪽으로 기울이면 앞머리가 바람 쪽으로 올라가요. 앞으로 기울이는 게 베어 어웨이, 뒤로 기울이는 게 러프 업.”
“앞으로 기울이면 내려가고 뒤로 기울이면 올라간다.”
민하가 낚시 의자에서 손을 들었다.
“형, 대여점 반납함이랑 같아요. 앞으로 밀면 책이 들어가고, 뒤로 당기면 책이 나와요.”
“그거랑 무슨 상관이야.”
“외우기 쉬우면 상관있는 거예요.”
만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부터 시화호 동호회에서 러프 업은 「반납함 당기기」가 됐다.
그달 남은 주말마다 이수는 바람 쪽으로 올라가는 것을 배웠다. 대거보드를 내리고, 마스트를 뒤로 기울여 바람에 바짝 붙고, 세일이 펄럭이기 직전까지 올라갔다가 조금 내려와 다시 바람을 채웠다. 노고 존 끝에 닿으면 방향을 바꿔야 했다. 태킹이었다. 마스트를 뒤로 눕혀 앞머리를 바람 속으로 밀어 넣고, 세일이 머리 위에서 펄럭이는 동안 마스트 앞으로 돌아 보드 반대편으로 건너간다. 발을 옮기는 동안 보드는 거의 멈춘다. 이수는 마스트 앞으로 돌아가다가 세 번에 두 번은 마스트를 끌어안은 채 물에 빠졌다.
“마스트는 껴안는 거 아니에요! 손만 짚고 돌아요!”
“무서워서 그래요!”
“마스트도 무서워해요!”
첫눈이 온 날이었다. 시화호 위로 눈이 비스듬히 날렸다. 바람이 셌다. 동호회 사람들도 물에 들어가지 않았다. 너무 셌다. 물가에 승합차 몇 대가 시동을 걸어 둔 채 서 있었고, 사람들은 차 안에서 커피를 마시며 호수를 봤다.
오후 세 시쯤 낯선 차 한 대가 물가로 들어왔다. 작은 승용차였다. 트렁크에서 사내 하나가 가방 하나를 꺼냈다. 등에 메는 가방이었다. 사내는 가방에서 커다란 천을 꺼내 모래밭에 펼쳤다. 반달 모양이었다. 펼친 천에 펌프로 바람을 넣자 천의 앞가장자리와 갈비뼈 같은 칸들이 빵빵하게 부풀었다. 사내는 천에 가는 라인 네 가닥을 이어 30m쯤 모래밭에 늘어놓고, 라인 끝을 어깨너비만 한 가로대 하나에 연결했다. 컨트롤 바였다. 바 가운데로 라인 두 가닥이 빠져나와 고리 하나에 모였고, 사내는 그 고리를 허리 하네스 갈고리에 걸었다.
“카이트다.”
민하가 차창에 이마를 붙이고 말했다.
사내가 바를 당기자 반달이 모래밭에서 일어섰다. 반달이 하늘로 솟았다. 바람을 받은 반달이 하늘에서 크게 원을 그렸다. 사내의 몸이 앞으로 끌려 나갔다. 사내는 끌려 나가면서 짧은 보드에 발을 올렸다. 곧장 물 위로 미끄러져 나갔다. 바람 터진 날,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는 호수 위를, 하늘의 카이트 하나에 끌려서.
승합차 문이 하나둘 열렸다. 동호회 사람들이 차에서 내려 물가에 섰다. 만석도 내렸다. 아무도 말이 없었다. 눈이 날리는 호수 위에서 카이트가 원을 그렸고, 사내가 물살을 그었다.
사내가 돌아왔다. 호주에서 일하다 배워 왔다고 했다. 한국에는 아직 탈 줄 아는 사람이 몇 없다고 했다. 이수는 사내에게 다가갔다.
“그거, 가방 하나에 다 들어가요?”
“다 들어가요. 카이트 둘, 컨트롤 바, 라인, 보드. 비행기에 그냥 실어요.”
이수는 뒤를 돌아 만석의 승합차 지붕을 봤다. 지붕 위에 마스트 두 개와 붐 하나, 길이가 이수 키를 훌쩍 넘는 보드 두 장이 끈으로 묶여 있었다. 비행기에 실을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사내는 이수에게 컨트롤 바를 쥐여 줬다. 바 가운데 고리 아래에 빨간 손잡이 하나가 달려 있었다.
“이 고리가 치킨 루프예요. 이름은 우스워도 사람을 카이트에 묶어 주는 고리예요. 빨간 건 퀵 릴리스. 이거 하나만 알면 돼요. 카이트가 사람을 감당 못 하게 끌면 이걸 당겨요. 당기면 고리가 풀리고, 카이트가 바람을 놓고 하늘에서 힘없이 떨어져요. 안전장치예요.”
“카이트는요?”
“카이트는 바다로 날아가든 말든. 사람이 살아야죠.”
사내가 웃었다. 이수도 웃었다. 소나무 꼭대기에 걸렸던 날개가 생각났다.
“이건 절대 묶지 마세요. 장비 아끼는 사람들이 이걸 끈으로 감아요. 카이트 날아갈까 봐. 그럼 카이트가 사람을 끌고 가요. 어디든.”
그달 이수는 카이트와 컨트롤 바와 짧은 보드를 샀다. 호주에서 들여오는 데 열흘이 걸렸다. 카이트가 오기 전에 이수는 사무실 컴퓨터로 밤마다 바람을 찾았다. 겨울에도 바람이 고르게 부는 바다. 따뜻한 바다. 카이트와 짧은 보드를 가방 하나에 넣어 갈 수 있는 바다.
필리핀이라는 글자가 몇 번 나왔다. 보라카이라는 섬 이름이 필리핀 뒤에 붙었다. 섬 서쪽은 하얀 모래 해변, 섬 동쪽은 불라복이라는 해변. 11월부터 4월까지 불라복에 북동풍이 분다고 했다. 날마다.
검색 결과 맨 아래에 엉성한 한국어 홈페이지 하나가 걸렸다. 「보라카이 윈드피아 — 불라복 윈드서핑 렌탈·강습·게스트하우스. 전 국가대표 이대근이 직접 가르칩니다. 한국 음식 있음. 김치 있음.」
김치 있음이 굵은 글씨였다.
이수는 홈페이지 맨 아래의 국제 전화번호를 눌렀다. 자정이 넘은 시각이었다. 신호가 길게 갔다. 받지 않으려나 할 때쯤 누가 받았다. 수화기 너머에서 바람 소리가 먼저 들렸다.
“네, 윈드피아입니다.”
“윈드서핑 배우러 가려고요. 한국에서요.”
“언제요?”
“바람 좋을 때요.”
“여기 지금부터 4월까지 날마다 바람 좋아요. 아무 때나 오세요.”
대근의 목소리는 낮고 빨랐다. 이수가 하나 더 물었다.
“혹시 거기 카이트 타는 사람 있어요?”
수화기 너머가 잠깐 조용했다. 바람 소리만 났다.
“카이트요? 카이트 매달고 타는 거?”
“네.”
“여기 그거 아무도 없어요. 사진으로만 봤어요. 손님 그거 탈 줄 알아요?”
“조금요.”
“그럼 가져오세요. 그거 가르쳐 주시면 윈드서핑은 공짜로 가르쳐 드릴게. 방값은 받고.”
이수는 전화를 끊고 민하에게 전화를 걸었다. 새벽 한 시였다. 민하는 세 번 만에 받았다.
“형, 왜요. 누가 연체했어요?”
“민하야, 너 여권 있어?”
“있죠. 신혼여행 가려고 만들어 놨어요.”
“너 결혼 안 했잖아.”
“그러니까 아직 새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