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734자)

어섬의 해 질 녘

보라카이 윈드서핑 · 이수

바다 바람이 둔덕을 밀어 올렸다⁠.

이수는 날개를 등 뒤 풀밭에 반달처럼 펼쳐 놓고 바람을 기다렸다⁠. 어섬 꼭대기 둔덕이었다⁠. 시화호 간척으로 둘레 땅이 넓어진 작은 섬⁠, 꼭대기에 소나무가 몇 그루 서 있고 소나무 아래로 풀을 짧게 깎은 비탈이 바다 쪽으로 열려 있었다⁠. 비탈 머리 장대 끝에 윈드삭 하나가 매달려 있었다⁠. 바람의 세기를 보는 천 자루였다⁠. 꼿꼿하게 수평을 이루면 강풍이 부는 것이고⁠, 구겨져 있거나 아래로 처져 있으면 바람이 약하거나 없는 것이었다⁠. 오늘 윈드삭은 수평보다 조금 아래로 기울어 섬 쪽으로 부풀어 있었다⁠. 이우한이 만든 활공장이었다⁠.

“⁠형⁠, 이거 진짜 떠요⁠?⁠”

정민하가 옆에서 물었다⁠. 민하는 비탈 위 소나무 그늘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있었다⁠. 무릎에 원고 뭉치를 들고 있었다⁠.

“⁠바다 위로 떨어지면 어떡해요⁠?⁠”

“⁠여기서 바다까지 갯벌이 1km야⁠.⁠”

“⁠갯벌도 물이에요⁠.⁠”

민하는 부천에서 도서대여점을 했다⁠. 이수의 고등학교 후배였다⁠. 오늘은 이수가 고른 다음 달 원고를 먼저 읽으러 따라왔다⁠. 대여점 하는 사람에게 이수가 고른 원고는 미리 보는 시험지였다⁠.

“⁠바람이 바다에서 와서 이 언덕에 부딪히지⁠. 부딪힌 바람은 갈 데가 없어서 위로 올라가⁠. 거기 올라타는 거야⁠.⁠”

“⁠올라탄다⁠.⁠”

“⁠언덕 앞에 투명한 미끄럼틀이 하나 거꾸로 서 있다고 생각해⁠. 거꾸로 선 미끄럼틀이라 내려가는 게 아니라 올라가⁠.⁠”

“⁠형은 출판사 사장님이면서 왜 미끄럼틀 얘기를 해요⁠?⁠”

“⁠판타지 원고를 하루에 열 권씩 읽으면 세상 모든 게 미끄럼틀로 보여⁠.⁠”

비탈 아래에서 우한이 올라왔다⁠. 우한은 이수와 동갑내기 친구였다⁠. 행글라이더 국가대표였다⁠. 대회를 그만두고 패러글라이딩을 가르쳤다⁠. 어섬 꼭대기의 잡목을 베고 비탈의 풀을 깎아 이륙장을 낸 것도 우한이었다⁠. 섬 주인 할아버지에게 막걸리를 몇 말 날랐는지는 우한도 세다가 그만뒀다고 했다⁠. 이수는 우한에게 비행을 배운 지 두 해째였다⁠.

우한은 비탈 머리에 서서 윈드삭을 보고⁠, 갈대밭을 보고⁠, 손바닥을 바람에 펴 보였다⁠. 둔덕 아래로 갈대밭이 바다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갈대 끝이 일제히 섬 쪽으로 누웠다⁠. 바람이 고르다는 뜻이었다⁠.

“⁠됐다⁠. 이수 먼저⁠.⁠”

“⁠너는⁠?⁠”

“⁠나는 위에서 너 보려고⁠. 행글라이더 하던 놈이 날개 밑에 매달려 있으면 자꾸 몸이 앞으로 엎어져⁠. 버릇이야⁠.⁠”

이수는 산줄을 한 번 털고 날개 앞 가장자리를 손으로 들어 바람에 보였다⁠. 날개 천이 숨을 들이켜듯 부풀었다⁠. 두 걸음을 뛰었다⁠. 날개가 머리 위로 섰다⁠. 세 걸음째에 발이 풀을 놓쳤다⁠.

몸이 떴다⁠. 언덕 끝을 넘자 갈대밭이 발아래로 쑥 꺼졌다⁠. 날개가 바람을 받아 위로 올랐다⁠. 이수는 하네스에 엉덩이를 깊이 넣고 오른손 조종줄을 조금 당겼다⁠. 날개가 언덕을 따라 북쪽으로 미끄러졌다⁠. 언덕에서 열 걸음쯤 떨어진 허공이 가장 단단했다⁠. 거기를 벗어나면 바람이 물러졌다⁠.

뒤에서 우한이 떴다⁠. 우한은 이륙하면서 한 번도 비틀거리지 않았다⁠. 바람이 우한을 기다렸다가 받아 올리는 것 같았다⁠. 우한은 금세 이수보다 높이 올라갔다⁠.

“⁠이수야⁠, 언덕에서 너무 멀다⁠! 두 걸음만 붙어⁠!⁠”

우한의 목소리가 위에서 떨어졌다⁠. 무전기가 없었다⁠. 둘은 소리를 질러 말했다⁠. 바람이 소리를 섬 쪽으로 가져갔다⁠. 우한의 목소리는 그래도 잘 들렸다⁠. 행글라이더 시절 대회장에서 단련된 목이라고 했다⁠.

둘은 섬 위를 오갔다⁠. 북쪽 소나무 숲 끝에서 돌아 남쪽 포도밭 머리까지⁠, 다시 북쪽으로⁠. 섬의 등줄기를 따라 바람이 고르게 솟았다⁠. 우한이 돌면 이수가 따라 돌았다⁠. 이수는 늘 한 박자 늦었다⁠. 우한이 이미 북쪽 끝에서 돌아 나올 때 이수는 아직 숲 위에 있었다⁠.

둔덕에서 민하가 손을 흔들었다⁠. 원고를 흔들었다⁠. 원고 몇 장이 바람에 날아가 갈대밭으로 떨어졌다⁠. 민하가 원고를 쫓아 비탈을 뛰어 내려갔다⁠. 위에서 보니 갈대밭에서 사람 머리 하나가 원고 종이를 쫓아 이리저리 움직였다⁠. 이수는 웃다가 조종줄을 놓칠 뻔했다⁠.

한 시간이 지났다⁠. 둘째 시간이 지났다⁠. 날개 아래로 포도밭 고랑이 한 줄씩 그늘에 잠겼다⁠. 포도를 따던 할머니 하나가 허리를 펴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이수가 손을 흔들었다⁠. 할머니는 손 대신 포도송이를 들어 보였다⁠.

바지 주머니에서 휴대전화가 떨었다⁠. 이수는 조종줄을 왼손에 몰아 쥐고 오른손으로 전화기를 꺼냈다⁠. 접힌 전화기를 엄지로 열었다⁠. 송 실장이었다⁠.

“⁠사장님⁠, 대여점 총판에서 연락 왔습니다⁠. 「⁠흑룡의 검⁠」 3권⁠, 육백 곳에서 주문 넣었어요⁠. 4권 원고 언제 나오냐고⁠.⁠”

“⁠작가님한테 다음 달 말이라고 해 주세요⁠.⁠”

“⁠사장님 지금 어디세요⁠? 바람 소리가 너무 큰데⁠.⁠”

“⁠하늘이요⁠.⁠”

송 실장이 잠깐 말이 없었다⁠.

“⁠하늘에서 전화 받으시는 분은 사장님밖에 없을 거예요⁠.⁠”

이수는 전화기를 접어 주머니에 넣고 지퍼를 끝까지 올렸다⁠. 위에서 우한이 소리쳤다⁠.

“⁠비행 중에 전화하지 마⁠! 떨어지면 출판사도 같이 떨어진다⁠!⁠”

“⁠출판사는 송 실장님이 들고 있어⁠!⁠”

해가 기울었다⁠. 대부도 쪽으로 해가 내려가자 갯벌에 물길이 하나씩 불을 켰다⁠. 썰물이 남긴 물줄기마다 붉은빛이 차올랐다⁠. 하늘은 주황에서 분홍으로 물들었다⁠. 바다 바람이 조금 더 고르게⁠, 조금 더 부드럽게 둔덕을 밀었다⁠. 해 질 녘의 바람은 늘 그랬다⁠. 낮 동안 데워진 땅이 식으면서 바다와 땅 사이가 조용해졌다⁠.

이수는 어섬에서 이 시간을 가장 좋아했다⁠. 오후 늦게 떠서 섬 등줄기를 따라 몇 시간이고 오가다 보면 해가 서해로 들어갔다⁠. 날개에 매달린 채 해 지는 바다를 보는 사람은 이 섬에 몇 없었다⁠.

“⁠이수야⁠! 저기⁠!⁠”

우한이 손가락으로 동쪽을 가리켰다⁠. 섬의 동쪽⁠, 방조제 너머로 시화호가 넓게 누워 있었다⁠. 물 위에 하얀 점이 몇 개 떠 있었다⁠. 점이 아니었다⁠. 세일이었다⁠.

세일 하나가 물 위를 가로질렀다⁠. 이수는 날개를 동쪽으로 조금 틀었다⁠. 언덕의 바람을 벗어나지 않을 만큼만⁠. 세일 아래로 하얀 물살이 길게 그어졌다⁠. 물살은 직선이었다⁠. 세일이 기울어 있었고⁠, 세일을 잡은 사람은 몸을 물 쪽으로 길게 눕혀 매달려 있었다⁠. 사람과 세일과 보드가 한 덩어리로 물 위를 미끄러졌다⁠.

빨랐다⁠.

이수는 섬 북쪽 끝에서 남쪽 끝까지 날아가는 동안 세일을 눈으로 따라갔다⁠. 날개가 섬을 한 번 건너는 사이에 세일은 호수를 두 번 가로질렀다⁠. 세일이 방향을 틀 때 물보라가 하얗게 솟았다가 붉은 햇빛에 물들어 떨어졌다⁠.

“⁠윈드서핑이다⁠. 우리랑 같은 바람이야⁠.⁠”

우한이 위에서 말했다⁠.

“⁠근데 왜 저렇게 빨라⁠?⁠”

“⁠날개는 바람을 타고 떠 있고⁠, 세일은 바람을 타고 달리니까⁠. 우리는 내려가는 걸 늦추는 거고 쟤들은 앞으로 가는 거고⁠.⁠”

이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같은 바람인데 하나는 머물렀고 하나는 갔다⁠.

해가 수평선에 닿았다⁠. 바람이 한숨처럼 잦아들기 시작했다⁠. 내려야 했다⁠. 우한이 먼저 내렸다⁠. 비탈 아래 풀밭에 두 발로 내려 한 걸음도 더 뛰지 않고 섰다⁠. 날개가 뒤에서 풀밭에 천천히 누웠다⁠.

이수가 내려올 차례였다⁠. 소나무 숲을 끼고 돌아 풀밭으로 들어가는데⁠, 숲 뒤에서 바람이 한 번 비틀렸다⁠. 바다 바람이 소나무를 넘으며 뒤로 말린 것이었다⁠. 날개 왼쪽이 아래로 쑥 빠졌다⁠. 이수는 오른손을 당겨 버텼다⁠. 날개가 기우뚱하며 숲 쪽으로 미끄러졌다⁠. 땅이 빨리 올라왔다⁠. 소나무 가지가 빨리 다가왔다⁠.

날개 천이 소나무 꼭대기에 걸렸다⁠. 산줄이 가지 사이로 휘감겼다⁠. 이수의 몸이 허공에서 뚝 멈췄다⁠. 발끝 아래로 땅이 3m쯤 있었다⁠. 하네스가 그네처럼 흔들렸다⁠.

“⁠형⁠!⁠”

민하가 비탈을 뛰어 내려왔다⁠. 구명조끼를 들고 왔다⁠.

“⁠이거 던져 드려요⁠?⁠”

“⁠그걸 왜 던져⁠!⁠”

“⁠몰라요⁠, 손에 있으니까요⁠!⁠”

민하가 소나무 밑동을 붙잡았다⁠.

“⁠잠깐만요⁠, 제가 올라가서 날개 풀게요⁠. 저 나무 잘 타요⁠. 어릴 때 감 따러 다녀서⁠.⁠”

“⁠올라오지 마⁠.⁠”

“⁠날개 찢어져요⁠! 그거 비싼 거잖아요⁠!⁠”

이수는 머리 위를 올려다봤다⁠. 날개 천 한쪽이 솔가지에 꿰여 있었다⁠. 산줄 대여섯 가닥이 가지를 몇 번 감았다⁠. 바람이 다시 불면 날개가 부풀어 이수를 위로 끌어 올리거나⁠, 아니면 솔가지가 천을 찢고 이수를 땅에 떨어뜨릴 것이었다⁠. 어느 쪽이 먼저일지 알 수 없었다⁠.

이수는 하네스 가슴 버클에 손을 얹었다⁠.

“⁠뭐 해요⁠?⁠”

“⁠내린다⁠.⁠”

“⁠날개는요⁠?⁠”

“⁠날개는 사면 돼⁠.⁠”

이수는 다리를 하네스 밖으로 뺐다⁠. 가슴 버클을 풀었다⁠. 다리 버클 두 개를 마저 풀었다⁠. 몸이 하네스에서 빠져나갔다⁠. 이수는 하네스 다리 끈을 두 손으로 잡고 매달렸다가 손을 놓았다⁠. 발이 풀밭에 떨어졌다⁠. 무릎을 굽히며 옆으로 굴렀다⁠. 솔방울 하나가 등 밑에 깔렸다⁠.

빈 하네스가 위에서 흔들렸다⁠. 바람이 한 번 더 불었다⁠. 날개가 부풀었다⁠. 솔가지가 찢는 소리를 냈다⁠. 천이 한 뼘쯤 갈라졌다⁠. 하네스가 크게 흔들리다 멈췄다⁠.

민하가 입을 벌리고 날개를 올려다봤다⁠.

“⁠찢어졌어요⁠.⁠”

“⁠응⁠.⁠”

“⁠형이 저기 매달려 있었으면 형이 찢어졌겠네요⁠.⁠”

“⁠그래서 내렸어⁠.⁠”

우한이 날개를 접다 말고 풀밭을 가로질러 왔다⁠. 소나무를 올려다봤다⁠. 날개가 소나무 꼭대기에 빨래처럼 널려 있었다⁠. 우한은 한참 말이 없었다⁠. 민하가 침을 삼켰다⁠.

“⁠하늘은 자유다⁠.⁠”

우한이 말했다⁠.

“⁠나무는 아니고⁠.⁠”

우한은 이수의 어깨를 한 번 짚었다⁠.

“⁠버클 푼 거 잘했다⁠. 날개 살리겠다고 매달려 있다가 허리 부러진 놈을 내가 둘 봤다⁠. 날개는 꿰매면 되고 허리는 안 돼⁠.⁠”

우한은 차에서 사다리와 낫을 꺼냈다⁠. 셋이 해가 다 진 소나무 아래에서 날개를 내렸다⁠. 산줄 두 가닥은 잘라야 했다⁠. 천은 한 뼘 반이 찢어졌다⁠. 우한이 손전등으로 찢어진 자리를 비춰 보더니 이수에게 날개를 접어 건넸다⁠.

“⁠꿰매면 다시 사용할 수 있어⁠. 근데 너 오늘 하늘에서 계속 딴 데 보더라⁠.⁠”

“⁠봤어⁠?⁠”

“⁠하늘에서는 다 보여⁠.⁠”

이수는 날개 가방을 우한의 차에 싣고 둑길을 걸어 내려갔다⁠. 방조제 쪽으로⁠. 민하가 구명조끼를 들고 따라왔다⁠. 시화호 물가에 닿았을 때 해는 다 지고 하늘에 보랏빛만 남았다⁠. 물가 자갈밭에 낡은 승합차 두 대가 서 있었다⁠. 사람 셋이 물에서 세일을 끌고 나오고 있었다⁠. 세일 아래로 물이 줄줄 흘렀다⁠.

이수는 세일을 끌고 나오는 사람에게 다가갔다⁠. 검은 고무 옷을 입은 사내였다⁠. 얼굴이 바닷바람에 거칠었다⁠.

“⁠아까 저 위에서 봤어요⁠. 날개 타고⁠.⁠”

사내가 섬 꼭대기를 올려다봤다⁠. 소나무 실루엣만 보였다⁠.

“⁠아⁠, 날개 둘⁠. 우리도 봤어요⁠. 하늘에 떠서 한참 안 내려오던데⁠.⁠”

“⁠그거 어디서 배워요⁠?⁠”

“⁠이거요⁠?⁠”

사내가 세일을 들어 보였다⁠. 마스트가 이수의 키보다 두 배는 길었다⁠. 사내는 손가락으로 하나씩 짚었다⁠. 세일 앞가장자리에 끼운 긴 기둥이 마스트⁠, 세일 허리를 가로지르는 손잡이가 붐⁠, 마스트 밑동을 보드에 꽂는 고무 관절이 조인트⁠. 조인트가 사방으로 꺾여서 세일을 어느 쪽으로든 기울일 수 있다고 했다⁠.

“⁠같은 바람이에요⁠. 날개 탈 줄 알면 바람 읽는 건 반은 배운 거고⁠. 나머지 반은 물에 빠지면서 배워요⁠. 한 백 번⁠.⁠”

“⁠백 번이요⁠?⁠”

“⁠겨울엔 이백 번⁠. 물이 차서 빠지면 정신이 번쩍 들거든⁠. 그래야 빨리 배워⁠.⁠”

민하가 이수의 팔을 잡았다⁠.

“⁠형⁠. 하늘은 그래도 떨어질 때까지 시간이라도 있죠⁠. 물은 빠지면 바로 물이에요⁠.⁠”

이수는 물가에 쪼그려 앉아 손을 물에 넣어 봤다⁠. 9월의 시화호는 아직 미지근했다⁠. 겨울이 오면 얼음장이 될 물이었다⁠.

“⁠민하야⁠.⁠”

“⁠네⁠.⁠”

“⁠드라이 슈트가 어디서 팔지⁠?⁠”

“⁠드라이 뭐요⁠?⁠”

이수는 물에서 손을 뺐다⁠. 손등에서 물방울이 떨어졌다⁠. 호수 저편에서 마지막 세일 하나가 어둠 속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보이지는 않았다⁠. 물 가르는 소리만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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