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6,168자)
맨발의 섬
보라카이 윈드서핑 · 이수
마닐라 공항 국내선 활주로 끝에 선 비행기는 좌석이 열아홉 개였다. 날개 밑에 프로펠러가 하나씩 달려 있었다. 조종석 문이 없어서 조종사의 뒤통수가 보였다.
비행기는 한 시간을 날았다. 창밖으로 섬들이 점처럼 흩어졌다. 바다는 짙은 남색이었다가 섬 가까이에서 갑자기 옥색이 되었다. 산호초 위의 얕은 바다였다. 이수는 창에 이마를 대고 바다를 내려다봤다. 어섬 하늘에서 내려다본 시화호와 색이 달랐다. 시화호는 초록이 섞인 회색이었다. 여기는 물속 모래가 다 보였다.
카티클란 활주로는 짧았다. 비행기가 땅에 닿자마자 브레이크를 세게 밟았다. 비행기는 활주로 끝 야자수 앞에서 섰다.
“살았다.”
“아직 배 남았어.”
“배요?”
활주로에서 트라이시클을 타고 오 분을 가자 바닷가가 나왔다. 오토바이 옆에 지붕 달린 수레를 붙인 것이 트라이시클이었다. 수레 안에 셋이 앉으면 무릎이 맞닿았다. 바닷가에는 길쭉한 나무배들이 모래톱에 늘어서 있었다. 배 양옆으로 대나무 장대가 날개처럼 뻗어 물 위에 떠 있었다. 방카라고 했다. 장대가 물 위에 떠서 배가 뒤집히지 않게 받쳐 주었다.
“저게 배예요? 젓가락에 다리 달아 놓은 것 같은데요.”
이수는 카이트 가방을 메고 방카에 올랐다. 민하가 가방에서 주황색 구명조끼를 꺼내 입었다. 방카가 엔진 소리를 내며 바다로 나갔다. 건너편에 섬 하나가 길게 누워 있었다. 낮은 언덕에 야자수가 빽빽했고, 해안선을 따라 하얀 띠가 이어졌다. 모래였다. 하얀 띠가 너무 하얘서 눈이 부셨다. 화이트비치였다.
방카는 이십 분 만에 섬 서쪽 해변에 닿았다. 부두가 없었다. 방카는 해변 앞 얕은 물에 뱃머리를 들이밀고 섰다. 사공이 손짓했다. 내리라는 것이었다.
“어디로?”
“물로.”
이수는 바지를 무릎까지 걷고 뱃전을 넘었다. 물이 무릎까지 찼다. 따뜻했다. 시화호의 12월과는 다른 물이었다. 발밑의 모래가 밀가루처럼 고왔다. 이수는 카이트 가방을 머리에 이고 해변까지 걸었다.
민하는 뱃전에 앉아 내려다보기만 했다. 사공 하나가 민하 앞에 등을 돌리고 쪼그려 앉았다. 업히라는 것이었다. 민하는 이수를 봤다. 이수는 해변에서 웃고 있었다. 민하는 구명조끼를 입은 채로 사공의 등에 업혔다. 사공이 민하를 업고 물을 건넜다. 해변의 유럽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형, 저 사진 찍지 마요.”
“일회용 카메라는 네 거야.”
“그러니까 다행이에요.”
해변에 오르자 신발이 필요 없었다. 모래가 발목까지 빠졌다. 해변에 늘어선 가게 주인들이 다 맨발이었다. 야자수 그늘에 앉아 코코넛을 쪼개는 아이도, 해변을 쓰는 할머니도, 트라이시클 운전사도 맨발이었다. 길이 모래였다. 가게 바닥도 모래였다. 섬 전체가 모래 위에 놓여 있었다.
이수는 운동화를 벗어 가방에 넣었다. 민하는 끝까지 운동화를 신고 걸었다. 열 걸음마다 운동화에서 모래를 털었다. 스무 걸음째에 포기하고 벗었다.
윈드피아는 섬 반대편에 있었다. 해변 가게 아저씨가 손으로 섬 안쪽을 가리켰다. 저 길로 걸어서 십 분. 섬이 가운데가 잘록해서 서쪽 해변에서 동쪽 해변까지 걸어서 건널 수 있었다. 개뼈다귀 모양의 섬이라고 했다. 양 끝이 뭉툭하고 가운데가 가늘었다.
모래 길이 야자수 사이로 이어졌다. 닭이 길을 가로질렀다. 대나무 집 처마 밑에서 아이들이 고무줄을 했다. 길 양쪽 집들의 지붕은 마른 야자 잎을 엮어 덮은 것이었다. 큰 건물은 없었다. 삼층 넘는 건물이 하나도 없었다.
십 분을 걷자 바람 소리가 달라졌다. 야자수 잎이 세차게 흔들렸다. 앞이 트이면서 동쪽 바다가 나왔다.
불라복이었다.
서쪽 해변이 거울 같았다면 동쪽 해변은 살아 있었다. 바람이 바다에서 해변 쪽으로 곧게 불어왔다. 바다 위로 하얀 물결이 줄지어 밀려왔다. 해변에서 몇백 m 밖에 산호초가 길게 누워 있었고, 산호초 안쪽의 물은 잔잔한 옥색이었다. 산호초 바깥의 물은 짙은 파랑에 하얀 물결이 일었다. 산호초 안팎으로 색색의 세일 열몇 개가 떠 있었다. 빨강, 노랑, 형광 주황. 세일들이 기울어 물살을 그었다.
“민하야.”
“네.”
“바람이 날마다 이렇대.”
민하가 모래 위에 운동화를 내려놓고 바다를 봤다. 바람에 민하의 머리카락이 다 뒤로 넘어갔다.
“형, 이거 대여점 문 열면 원고가 다 날아가겠어요.”
해변 뒤 야자수 사이에 나무집 몇 채가 있었다. 처마 밑에 「윈드피아」라고 한글로 쓴 나무판이 걸려 있었다. 글씨가 삐뚤었다. 한글 밑에 영어로 「WINDPIA」. 집 옆 창고 앞 모래밭에 보드 스무 장이 줄지어 누워 있었다. 창고 벽 선반에 세일 수십 장이 돌돌 말려 꽂혀 있었다.
창고 앞에서 사내 하나가 세일을 펴고 있었다. 어깨가 검게 탔고, 무릎 위에 길게 꿰맨 수술 자국이 있었다. 목에 호루라기를 걸고 있었다. 사내가 고개를 들었다.
“한국에서 카이트 가져온다는 분?”
“네. 이수입니다.”
“대근입니다. 이쪽은?”
“후배요. 정민하.”
대근이 민하의 주황색 구명조끼를 위아래로 봤다.
“여기 물 깊이가 허리예요.”
“알아요. 근데 넘어지면 머리까지잖아요.”
대근이 처음으로 웃었다. 웃음이 짧았다.
대근은 이수의 카이트 가방부터 열어 보자고 했다. 방에 짐을 풀기 전이었다. 이수가 가방을 모래밭에 내려놓고 지퍼를 열었다. 대근이 쪼그려 앉아 접힌 카이트를 꺼냈다. 카이트 천을 손가락으로 비볐다. 컨트롤 바를 들어 무게를 가늠했다. 라인 네 가닥을 손에 감아 봤다. 다루는 손이 조심스러웠다. 비싼 물건을 다루는 손이었다.
“이거 얼마 줬어요?”
이수가 값을 말했다. 대근이 휘파람을 불었다.
“이거면 여기 세일 세 장 사요. 카이트 하나에.”
대근은 바 가운데 치킨 루프를 들여다봤다. 고리 아래 빨간 손잡이를 손가락으로 건드렸다.
“이건 뭐예요?”
“안전장치요. 당기면 고리가 풀려요. 카이트가 사람을 감당 못 하게 끌 때 당기면 카이트가 바람을 놓고 떨어져요.”
“떨어진 카이트는요?”
“바다로 날아가기도 하고요.”
대근이 빨간 손잡이를 오래 봤다. 엄지로 손잡이를 쓰다듬었다. 말이 없었다.
“세일 세 장이 바다로 날아가는 거네.”
“사람이 사는 거죠.”
대근은 대답 대신 카이트를 가방에 도로 넣었다. 지퍼를 닫았다. 가방을 창고 그늘로 옮겨 놓고 가방 위에 세일 덮개를 덮었다. 햇볕에 천이 상한다고 했다.
창고 뒤에서 맨발의 소년이 뛰어나왔다. 열아홉 살쯤으로 보였다. 깡마르고 까맸다.
“사장님! 7번 보드 또 핀 빠졌어요! 빨리빨리!”
한국말이었다. 대근의 말투 그대로였다.
“로엘이에요. 여기 일하는 애. 내 말투를 다 배워 버려서 손님들이 나인 줄 알고 전화를 끊어요.”
로엘이 이수와 민하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어서 오세요! 세일 말리세요! 모래 털고 들어오세요!”
“우리 세일 없는데.”
“그럼 모래만 털고 들어오세요!”
대근은 방 열쇠보다 세일을 먼저 골라 줬다. 이수의 몸무게를 묻고, 바다를 한 번 보고, 선반에서 세일 하나를 뽑았다. 마스트 아래쪽 천에 「5.0」이라고 적혀 있었다. 세일 넓이가 5㎡라는 뜻이었다. 대근은 모래밭에서 마스트를 세일 앞가장자리 주머니에 밀어 넣고, 마스트 밑동의 줄을 도르래에 걸어 힘껏 당겼다. 다운홀이라고 했다. 다운홀을 당기면 세일 위쪽이 느슨해지면서 센 바람을 흘려보낸다고 했다. 붐 끝에서 세일 뒤 귀퉁이를 잡아당기는 줄은 아웃홀이었다. 아웃홀을 당기면 세일이 납작해지고 풀면 불룩해졌다.
“시화호에서 몇 짜리 탔어요?”
“그런 건 안 물어봤는데요.”
“그럼 큰 거 탔겠네. 초보한테 남는 거 주니까. 여기선 바람 보고 줘요. 오늘은 5.0이면 돼요.”
처음엔 로엘이 내준 넓은 펀보드로 나갔다. 7번이었다. 이수는 세일을 세우고 시트 인을 했다. 보드가 앞으로 가지 않았다. 꼬리가 옆으로 미끄러지더니 보드가 제자리에서 빙글 돌았다. 다시 시트 인을 했다. 또 돌았다. 보드가 물 위에서 시계 바늘처럼 돌기만 했다. 해변에서 민하가 원고를 내려놓았다.
“형! 거기서 왜 춤춰요!”
대근이 물에 첨벙첨벙 들어와 보드 꼬리를 들어 올렸다. 꼬리 밑이 매끈했다. 있어야 할 것이 없었다.
“로엘! 7번이라니까!”
로엘이 창고에서 뭔가를 들고 뛰어왔다. 상어 등지느러미처럼 생긴 판이었다. 손바닥 두 개 길이에, 앞쪽은 둥글고 뒤쪽은 칼날처럼 얇았다. 핀이었다. 대근은 핀 머리를 보드 꼬리 밑 홈에 밀어 넣고 나사 두 개를 손으로 조였다.
“이게 윈드서핑의 반이에요. 세일 고르는 게 반이고 이게 나머지 반.”
“반이 두 개예요?”
“바다에선 반이 여러 개예요. 세일이 바람을 받으면 보드는 앞으로도 가고 옆으로도 밀려요. 핀이 물을 붙잡아서 옆으로 못 밀리게 해요. 옆으로 못 밀리니까 앞으로 가는 거예요. 화살 꼬리 깃이랑 같아요. 깃 없는 화살은 날아가다가 빙글 돌죠.”
“시화호 보드엔 가운데 칼 같은 게 있었는데요.”
“대거보드요. 큰 보드엔 둘 다 있어요. 대거보드는 천천히 갈 때 쓰고, 빨리 가면 대거보드를 올리고 핀 하나로 가요. 작은 보드엔 대거보드가 아예 없어요. 핀 하나가 다 해요.”
대근은 핀 끝을 엄지로 쓸었다. 끝이 조금 이가 빠져 있었다.
“산호초 안쪽이 얕아서 손님들이 핀으로 산호를 긁어요. 그래서 빠지고 부러져요. 물이 허리보다 얕으면 꼬리 들고 걸어 나와요. 핀이 바닥 긁는 소리 나면 그날 핀 값은 손님 거예요.”
오후 내내 이수는 핀을 단 7번으로 산호초 안쪽을 오갔다. 대근이 해변에서 호루라기를 불었다. 호루라기 한 번은 「시트 인」, 두 번은 「시트 아웃」, 길게 한 번은 「들어와」였다. 이수는 호루라기 소리를 들을 때마다 빠졌다. 물이 따뜻했다. 빠지는 게 시화호보다 덜 억울했다.
민하는 해변 야자수 그늘에서 원고를 읽었다. 구명조끼를 베개로 베고 누워 읽었다. 이수가 빠질 때마다 원고에서 눈을 떼지 않고 손가락만 접었다.
해가 기울자 대근이 말했다.
“해 지는 거 보려면 서쪽으로 가세요. 여기 동쪽은 해가 등 뒤로 져요. 화이트비치가 세계에서 제일 예쁘대요. 유럽 사람들이 그래요.”
“사장님은 안 가요?”
“나는 세일 말려야 돼요. 소금물 먹은 세일을 그냥 두면 천이 삭아요.”
이수와 민하는 모래 길을 다시 건넜다. 야자수 사이로 십 분. 서쪽 해변에 닿자 바람이 거짓말처럼 잦아들었다. 섬이 동쪽 바람을 막아 서쪽 바다는 잔잔했다. 해변에 사람들이 모래에 앉아 서쪽을 보고 있었다. 대부분 유럽 사람이었다. 다들 맨발이었다. 말소리가 낮았다.
해가 바다로 내려갔다. 하늘이 주황에서 분홍으로, 분홍에서 보라로 물들었다. 돛단배 몇 척이 해를 가로질러 검은 그림자로 지나갔다. 하얀 모래가 해를 받아 분홍빛이 되었다. 물이 너무 맑아서 해가 물속에도 하나 더 있었다.
이수는 어섬 하늘에서 보던 해 질 녘을 생각했다. 어섬에서는 날개에 매달려 위에서 봤다. 오늘은 모래에 앉아 맨발로 봤다. 민하가 옆에서 조용했다. 민하가 조용한 일은 드물었다.
“형.”
“응.”
“이거 판타지 표지로 쓰면 3권 넘어가요.”
“주인공이 밥을 안 먹어야지.”
“여기선 밥 안 먹어도 될 것 같아요.”
해가 다 지자 해변 뒤 가게들이 하나둘 불을 켰다. 발전기 소리가 야자수 사이에서 통통거렸다. 맨발의 아이 하나가 모래 위에 조개껍데기를 늘어놓고 팔았다. 민하가 조개껍데기 두 개를 사서 하나를 이수에게 줬다. 대여점 카운터에 둔다고 했다.
둘이 불라복으로 돌아왔을 때는 어두웠다. 윈드피아 창고에 백열등 하나가 켜져 있었다. 대근이 창고 안에서 세일을 한 장씩 펴서 민물로 헹구고 있었다. 헹군 세일은 벽에 걸어 말렸다. 손놀림이 느리고 꼼꼼했다. 로엘은 옆에서 보드 바닥의 긁힌 자국을 사포로 문질렀다.
이수는 창고 문간에 섰다. 백열등 불빛이 창고 안쪽 벽을 비췄다. 벽에 보드 한 장이 따로 걸려 있었다. 다른 보드들처럼 모래밭에 누워 있지 않았다. 벽에 박은 받침대 위에 비닐을 씌운 채 얹혀 있었다. 비닐 너머로 노란색이 비쳤다. 작고 날렵한 보드였다. 앞이 뾰족했다. 모래밭의 넓은 펀보드들과는 생김새가 달랐다.
“저건 빌려주는 거예요?”
대근이 세일을 헹구다 고개를 들었다. 이수가 가리키는 쪽을 봤다.
“저건 안 빌려줘요.”
“왜요?”
“슬라롬이에요. 선수용. 손님들 타면 사흘 만에 부러져요.”
로엘이 사포질을 멈추고 이수에게 속삭였다. 대근의 말투로.
“사장님 국가대표 때 타던 거예요. 사장님도 안 타요. 닦기만 해요.”
“로엘, 7번 핀.”
“네, 사장님! 빨리빨리!”
로엘이 사포를 놓고 뛰어갔다. 대근은 다시 세일을 헹궜다. 백열등 아래에서 노란 보드가 비닐을 쓴 채 조용히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