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563자)
세뱃돈으로 감성돔이 쏟아졌다
세배 받는 청룡 · 소예찬
1월 26일 설날 오후 두 시, 기와집 마당에는 식구 여섯이 지붕을 올려다보며 서 있었다. 용마루에 누운 용은 낮잠이 들었는지 금빛 눈을 반쯤 감았고, 숨을 쉴 때마다 처마 끝 고드름에서 물방울이 떨어졌다. 고모가 팔짱을 끼고 연서 앞을 막았다.
“니가 지어낸 게 아니믄 증거를 대 봐라.”
“무슨 증거요?”
“저것한테 물어봐. 사라호 때 어매가 뭘 입고 있었는지. 그건 어매랑 나만 안다.”
연서는 지붕을 올려다보았다. 콜센터에서 본인 확인을 할 때처럼 목소리를 반 톤 올렸다.
“용님, 본인 확인을 위해 몇 가지 여쭙겠습니다. 칠십 년 전 태풍 날 할머니께서 입고 계셨던 옷이 뭐였나요?”
용이 한쪽 눈을 떴다. 지붕에서 파도가 굴을 치는 소리가 내려왔다. 연서의 귀에 들어온 말은 길었다.
“쪽빛 무명 치마다. 추석 아침이었다. 바람이 마을 지붕을 다 걷어 간 뒤였지. 모래에 처박힌 나를 보고 치마를 벗어 싸서 속곳 바람으로 바다까지 달렸다. 돌아가서 제 어미한테 부지깽이로 맞았다더구나.”
연서가 옮기는 동안 할머니는 마루 끝에서 손으로 입을 가렸다. 귀까지 붉어져 있었다.
“그건 말하지 말랬더니.”
고모가 팔짱을 풀었다.
“맞다. 외할매가 부지깽이 들고 온 동네를 쫓아다녔다고 했어. 치마 어따 두고 왔냐고.”
“그 치마 어디 갔는데요?” 태성이 물었다.
“바다에 줬제.” 할머니가 말했다. “치마째로 물에 넣었다. 이무기가 치마 속에서 안 나올라 해서.”
1959년 9월 17일, 추석 당일에 남해안을 덮친 태풍 사라호였다. 열아홉 살이던 조금례는 바람이 지나간 아침 갯바위 아래로 미역을 주우러 갔다가, 미역 더미 사이에서 손가락 굵기의 하늘빛 뱀 하나를 주웠다. 칠십 년 전의 뱀이 지금 지붕 위에서 하품을 하고 있었다.
“근데 왜 연서만 알아듣는데?” 고모가 다시 물었다.
용이 답했다. “그건 네가 알 바 아니다.”
연서는 잠깐 생각한 뒤 옮겼다.
“용님께서 그 부분은 개인 정보라 답변이 어렵다고 하십니다.”
태성이 아까 찍은 영상을 다시 틀었다. 휴대전화에서 나오는 것은 쏴아, 하는 파도 소리와 창호지 떠는 소리뿐이었다. 연서가 들은 말은 한 마디도 담겨 있지 않았다.
*
세 시가 되자 용이 몸을 반쯤 일으켜 마당을 내려다보았다.
“이제 절을 받겠다. 이 집 사람은 하나도 빼놓지 않는다.”
“용님께서 세배를 받으시겠답니다. 전원이요.”
“어매는?” 고모가 물었다.
“내 나이 천하고도 넷. 이 집에서는 내가 제일 어른이다. 금례도 내게 절을 해야 옳다.”
연서가 그대로 옮기자 태성이 손가락을 꼽더니 “천사 살이네” 하고 중얼거렸다. 할머니가 지팡이로 마루를 한 번 쳤다.
“칠십 년 전 내 치마 속에서 오줌 지린 놈이 무슨 어른이여.”
마당에 웃음이 터졌다. 용의 수염이 꼿꼿하게 뻗었다가 천천히 내려왔다. 한참 뒤 용이 말했다.
“금례는 빼 준다.”
고모가 먼저 마당 멍석에 무릎을 꿇었다. 꿇기 전에 큰삼촌을 흘겨보았다.
“오빠는 안 해?”
“장남이 짐승한테 절을 하냐?”
“짐승한테 하는 거 아니여. 어매 은인한테 하는 거제.”
“은인이 남의 집 지붕을 깔고 앉냐?”
고모가 절을 했고, 큰숙모가 했고, 태성이 했다. 태성은 일어나자마자 손바닥을 내밀었다.
“용님, 세뱃돈은요?”
연서가 차마 옮기지 못하고 있는데 용이 먼저 알아들었다. 사람 말은 다 알아듣는 용이었다.
“세뱃돈이라. 그래, 주마. 해 지거든 받아라.”
큰삼촌은 마당 끝 감나무 아래에서 팔짱을 낀 채 움직이지 않았다. 연서가 감나무 아래로 갔다.
“삼촌, 절 한 번만 하세요. 그래야 말이라도 붙여 보죠.”
“내가 절을 하믄 저놈 말을 인정하는 거여. 아무도 이 집 못 판다는 말.”
“절은 절이고 계약은 계약이잖아요.”
“니가 상담원이라 말을 잘한다. 근디 나는 장사꾼이여. 절 한 번이 공짜인 줄 아냐?”
큰삼촌이 감나무를 등지고 연서를 내려다보았다. 앞치마에는 아직 사골 국물 얼룩이 있었다. 연서는 얼룩을 보면서 할 말을 찾다가 찾지 못했다.
*
해는 다섯 시 반에 넘어갔다. 섣달그믐을 막 넘긴 초하룻날이라 하늘에 달이 없었다. 저녁상을 물리고 다들 마루에 모여 화투를 칠지 윷을 놀지 다투고 있을 때, 지붕 위에서 꼬리가 바다로 한 번 휘둘렸다.
멀리 갯바위에서 철썩, 하는 소리가 났다. 소리가 언덕을 타고 올라오는 데 두어 숨이 지났다. 다음 순간 마당과 마루 위로 무언가가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생선이었다. 손바닥보다 큰 감성돔이 마룻바닥에서 퍼덕였고, 은빛 숭어가 장독대에 부딪혀 튀었고, 팔뚝만 한 삼치가 신발장 앞에 누워 아가미를 벌렸다. 큰숙모가 비명을 지르며 부엌에서 대야를 들고 나왔다. 고모는 대야보다 먼저 손으로 삼치 꼬리를 움켜쥐었다.
“이게 세뱃돈이믄 나는 삼치 두 마리여!”
“고모, 그건 제 앞에 떨어진 거예요.”
“니 앞에 떨어진 건 숭어여. 삼치는 내 앞!”
태성 앞에는 감성돔 중에서도 제일 큰 놈이 떨어져 있었다. 태성은 감성돔을 안고 사진을 찍어 약대 동기 단톡방에 올렸다. 「세뱃돈 받음」. 일 분 만에 답이 쏟아졌다. 「그게 무슨 세뱃돈이야」 「회 뜨러 가도 됨?」.
큰삼촌의 슬리퍼 위에는 한 마리가 떨어져 있었다. 손가락만 한 망둥어였다. 망둥어가 슬리퍼 위에서 한 번 뛰었다.
“절 안 한 놈 몫이다.” 용이 말했다.
연서는 옮기지 않았다. 옮기지 않아도 다들 알아들었다. 큰삼촌이 망둥어를 집어 마당 밖으로 던졌다. 고모가 처음으로 오빠 앞에서 소리 내어 웃지 않고 입술만 깨물었다.
할머니는 퍼덕이는 감성돔 하나를 손바닥으로 눌러 잡고 비늘을 쓸었다. 손끝에 비린 물기가 묻었다.
“삼치가 이리 큰 거, 느그 할아버지 살았을 때 보고 처음이다.”
*
밤 열 시, 식구들이 생선을 다 손질해 냉동실에 밀어 넣고 잠든 뒤 연서는 장독대 옆 사다리를 타고 처마 높이까지 올라갔다. 흰 누빔 조끼 위로 패딩을 껴입었는데도 손가락이 곱았다. 사다리 꼭대기에서 고개를 내밀자 용의 얼굴이 바로 앞에 있었다. 콧구멍 하나가 연서 얼굴만 했다. 숨을 내쉴 때마다 바다 밑 돌 냄새가 났다.
“용님, 상담…… 아니, 여쭤볼 게 있어서요.”
“말하라. 너는 아까 절을 두 번 했으니.”
“왜 이제 오셨어요? 할머니 여든여덟이세요.”
용이 수염을 한 번 꼬았다가 풀었다.
“이무기는 천 년이 차야 용이 된다. 나는 네 해 전, 청룡의 해에 겨우 찼다. 찼으니 곧장 오려 했는데 바다가 너무 더웠다. 물길이 다 바뀌어서 길을 잃었다. 나로도에서는 사람들이 불붙은 쇠기둥을 하늘로 쏘아 올려서 놀라 숨었고. 작년 설에는 경남 남해에 사는 조금례를 찾아갔다.”
“다른 조금례요?”
“그 집 사람들도 절은 잘하더구나.”
연서는 사다리를 붙잡고 웃음을 참았다. 웃음이 새어 나와 입김이 하얗게 흩어졌다.
“그럼 대보름까지 계시는 건요?”
“세배는 대보름까지 다니는 것이다. 이 집 사람 모두에게 절을 받고, 금례에게 갚을 것을 갚으면 간다.”
“갚을 거요? 생선이요?”
용은 대답 대신 바다를 보았다. 갯바위 끝에서 흰 파도가 줄을 그었다 지워졌다.
“요양원이라는 것이 무엇이냐? 아까 저 큰 놈이 몇 번이나 말하더구나.”
연서는 말을 골랐다. 콜센터에서 해지 방어를 할 때보다 오래 골랐다.
“늙고 아픈 분들이 같이 사시는 집이에요. 밥도 챙겨 주고, 넘어지면 일으켜 주고요. 대신 할머니 집이 아니에요.”
“바다가 보이느냐?”
“순천은 산이 보인대요.”
용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처마 고드름 하나가 떨어져 장독대 뚜껑 위에서 깨졌다.
“하나만 더요. 왜 저만 용님 말을 알아들어요?”
“때가 되면 안다. 내려가라. 네 손이 얼었다.”
연서는 사다리를 내려오다 두 칸째에서 미끄러질 뻔했다. 지붕 위에서 따뜻한 바람이 한 줄기 내려와 등을 받쳤다. 바람에서 미역 냄새가 났다.
*
1월 27일 새벽 다섯 시, 금포 포구의 작은 배 일곱 척이 차례로 시동을 걸었다. 연휴 끝 날이라 다들 그물만 걷고 들어올 참이었다. 어촌계장 왕석두는 첫 그물을 올리다가 손을 멈췄다. 그물코마다 삼치가 머리를 박고 있었다. 두 번째 그물에는 감성돔이 겹겹이 걸려 올라왔다.
일곱 시, 왕석두와 이장 하판수가 스티로폼 상자 하나를 둘이 맞들고 언덕을 올라왔다. 상자에는 얼음 위에 삼치 다섯 마리가 누워 있었다. 이장은 일흔이 넘었는데 계단을 두 칸씩 뛰었다.
“금례 성님! 용님 어디 계시요?”
용은 용마루에서 아침 햇빛을 받으며 비늘을 말리고 있었다. 이장과 어촌계장은 상자를 내려놓고 마당에서 지붕을 향해 큰절을 올렸다. 어촌계장이 일어나며 무릎을 털었다.
“이 앞바다에 삼치 떼가 이리 들어온 건 삼십 년 만이요. 물이 차. 손을 담그믄 옛날 겨울 바다처럼 시리당께.”
연서는 처마 밑에서 자기도 모르게 지붕을 올려다보았다. 용이 연서만 들리게 말했다.
“내가 앉아 있는 동안 이 바다는 옛날 바다다.”
“용님 계시는 동안은 옛날 바다래요.” 연서가 옮겼다.
이장이 무릎을 탁 쳤다. 대문으로 큰삼촌이 들어왔다. 손에 휴대전화를 들고 있었다.
“판수 아재, 마침 잘 오셨소. 내가 아까 119랑 군청 당직실에 다 전화했소. 내일 사다리차 온다요. 저놈 지붕에서 내려야 돼요. 기와 다 깨지게 생겼어.”
“춘배야.” 이장이 상자 위에 손을 얹었다. “니 집 팔아묵는 건 니 맘인디, 용님 쫓는 건 마을 일이여.”
“마을 일이요? 해든솔라 땅 팔믄 마을 발전기금 나온다고 좋아라 한 게 누군디요?”
“그건 그거고.”
“그거가 뭔디요?”
어촌계장이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손에서 생선 비린내가 났다.
“춘배, 너도 배 타 봤응께 알 거 아니여. 삼치가 저리 들믄 한 철에 배 한 척이 얼마를 버는지. 용님이 대보름까지 계신다믄 우리는 대보름까지 그물 내린다.”
큰삼촌이 연서를 돌아보았다.
“니가 이 사람들한테 저놈 말 옮겼냐?”
“제가 옮긴 건 용님 말씀이고요, 삼치는 바다가 옮겼죠.”
“말 돌리지 마라.”
“돌린 거 아니에요. 삼촌은 집 팔고 싶으시고, 이분들은 고기 잡고 싶으시고, 용님은 절 받고 싶으신 거예요. 저는 중간에서 옮기기만 해요.”
큰삼촌이 마당 한가운데로 걸어 나와 지붕을 올려다보았다. 용이 금빛 눈을 반쯤 떴다. 사람과 용이 한참 마주 보았다. 큰삼촌이 먼저 눈을 돌렸다.
“사다리차는 내일 아침 아홉 시다. 판수 아재도 오시든가.”
마루에 켜 둔 텔레비전에서 아침 뉴스가 나왔다. 화면 아래 자막이 지나갔다. 「정부, 서남해안 송전망 확충 계획 이달 발표」. 할머니가 리모컨으로 소리를 줄이고 마당의 세 남자를 보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여덟 시, 마을회관 지붕의 스피커가 지지직 울렸다. 이장의 목소리가 언덕까지 올라왔다.
“아아, 알립니다. 금포마을 주민 여러분께 알립니다. 조금례 어르신 댁 지붕에 용님이 오셨습니다. 세배하실 분은 열 시부터 대문 앞에 줄을 서 주시고, 생선은 각자 가져가시되 한 집에 두 마리씩만…….”
방송이 끝나기 전에 연서의 휴대전화가 떨었다. 콜센터 팀장이었다.
「연서 씨, 내일 아홉 시 출근 맞죠? 연휴 끝이라 콜 폭주 예상입니다. 그리고 2월 10일 승진 심사, 근태 반영되는 거 알죠?」
연서는 화면을 내려다보았다가 지붕을 올려다보았다. 용이 꼬리 끝을 까딱였다. 대문 밖에서 벌써 동네 할머니 둘이 털모자를 쓰고 줄을 서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