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775자)
세뱃상 상석에 용이 앉았다
세배 받는 청룡 · 소예찬
2028년 1월 25일 섣달그믐 저녁 여섯 시, 고흥 공용버스터미널 승강장에 내린 길연서는 다섯 시간 동안 접혀 있던 무릎부터 폈다. 서울 고속버스터미널에서 탄 버스는 휴게소 두 곳에 들렀고, 연서는 두 곳에서 모두 호두과자를 샀다. 한 봉지는 할머니 몫이었고, 한 봉지는 벌써 비어 있었다. 터미널 지붕 밑으로 들어온 바람이 목덜미를 훑었다. 서울 바람은 빌딩 사이를 빠져나오느라 먼지 냄새를 묻혀 오는데, 여기 바람에는 소금기와 김 말리는 냄새가 섞여 있었다.
“연서야! 여그여, 여그!”
주차장 끝에서 흰 승합차가 상향등을 두 번 깜박였다. 차 옆구리에 붉은 글씨로 「길가네 돼지국밥 · 순천 연향동 · 포장 됩니다」가 쓰여 있었다. 운전석 창문 밖으로 큰삼촌 길춘배가 팔을 내밀어 흔들었다. 국밥집 앞치마를 두른 채였다.
“삼촌, 앞치마는 벗고 오시지.”
“벗을 새가 어디 있냐. 점심 장사 끝내고 바로 왔다. 타라, 할매 기다린다.”
차 안은 사골 냄새가 의자 천까지 배어 있었다. 라디오에서 저녁 뉴스가 흘러나왔다. “지난해 우리 바다 표층 수온이 관측 이래 가장 높았다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남해안 연안 어획량은…….” 큰삼촌이 손을 뻗어 트로트로 돌렸다. 고흥 읍내를 빠져나오는 동안 길가 현수막 세 장이 헤드라이트에 차례로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군민 모두가 받는 에너지연금 — 읍면 설명회」 「송전선로 결사반대」 「설 명절 고향 방문을 환영합니다」.
“연서야, 할 말이 있다.”
큰삼촌이 트로트 소리를 반쯤 줄였다.
“올해가 할매가 이 집에서 보내는 마지막 설이다. 3월에 순천 요양원 들어가신다. 방도 잡아 놨다. 2인실, 창으로 산 보이는 데.”
연서는 호두과자 봉지를 쥔 채 운전석을 보았다.
“할머니가 가신대요?”
“가셔야제. 작년 겨울에 부엌에서 넘어지신 거 알제? 거기서 밤새 누워 계셨어. 내가 아침에 안 갔으면…….”
큰삼촌이 말을 끊고 와이퍼를 켰다. 비는 오지 않았다. 마른 유리 위에서 와이퍼가 끽끽 소리를 내며 두 번 오가다 멈췄다.
“그럼 집은요?”
“팔았다. 집이랑 아래 밭이랑. 해든솔라라고, 태양광 하는 회사.”
“할머니 도장은요?”
“위임장 받았다. 내가 장남이여.”
“장남이면 할머니 집을 파셔도 돼요?”
“그라믄 니가 할매 모실래? 서울 원룸에서? 니가 콜센터에 하루 열 시간 앉아 있는 동안 할매는 누가 보는데?”
연서는 입을 열었다가 일곱 해 동안 몸에 붙은 말부터 내보냈다.
“삼촌, 말씀 충분히 이해합니다. 다만…….”
“나한테 상담하지 마라.”
주머니에서 휴대전화가 연달아 떨었다. 가족 단톡방 「길씨네 금포 본가」였다. 고모 길영자가 먼저 올렸다. 「떡국 떡 내가 뽑아 간다!!! 아무도 사 오지 마라!!!」 아버지 길만배가 뒤를 이었다. 「명절 대목이라 택시 못 뺌. 엄마 세뱃돈은 연서 편에 보냈다」. 연서는 엄지로 답을 쳤다. 「아빠 저 돈 받은 적 없는데요」. 답은 금방 왔다. 「니가 먼저 드리고 나중에 받아라」.
*
금포마을 언덕 꼭대기 기와집은 어둠 속에서도 지붕 선이 하얗게 보였다. 사흘 전 내린 눈이 기와 골마다 남아 있었다. 마당에 내리자 집 아래로 펼쳐진 밭과 밭 끝의 갯바위, 갯바위 너머 검은 바다가 한꺼번에 숨을 쉬었다. 밭 가장자리에는 붉은 리본을 단 측량 말뚝이 한 줄로 박혀 있었다. 할아버지가 젊어서 돌을 져다 둑을 쌓고 일군 밭이었다.
할머니 조금례는 마루 끝 기둥에 등을 대고 앉아 있었다. 흰머리를 단정히 빗어 넘기고 누빔 저고리를 입은 할머니가 손녀를 보자 두 손을 무릎에서 떼었다.
“왔냐, 우리 강아지.”
“할머니, 서른한 살한테 강아지가 뭐예요.”
“내 눈엔 아직 여덟 살이여.”
안방 횃대에 옷 두 벌이 얹혀 있었다. 하나는 할머니의 연보라 한복이었고, 하나는 처음 보는 분홍 저고리와 연보라 치마, 흰 누빔 조끼였다. 할머니가 읍내 한복집에 손녀 치수를 불러 주고 맞췄다고 했다.
“서른 넘은 손녀 설빔이 어딨어요.”
“여기 있제. 조끼는 바닷바람 막으라고 누빈 거여.”
연서는 저고리 소매를 만지다가 할머니 얼굴을 보았다.
“할머니, 요양원 가시는 거 맞아요?”
할머니는 웃었다. 웃는 얼굴로 다른 말을 했다.
“떡국은 몇 그릇 먹을래? 내일은 귀한 손님도 오니께 많이 끓일란다.”
“누구요? 고모네요?”
“느그 고모는 손님 아니여.”
고모 길영자는 밤 열한 시에 떡국 떡 두 말을 들고 여수에서 도착했다. 대문을 들어서자마자 부엌에서 전을 부치던 큰숙모 노혜선과 동그랑땡 간을 두고 붙었다. 하나는 싱겁다 하고 하나는 고흥 사람은 원래 싱겁게 먹는다 했고, 결론은 나지 않았다.
*
1월 26일 설날 아침, 차례를 물리고 나니 아홉 시였다. 식구가 많아 세배는 마루에서 했다. 안방 문을 활짝 열어젖힌 마루 한가운데에 작은 세뱃상이 놓였다. 곶감과 귤, 흰 떡과 색떡, 식혜 한 대접에 약과 한 접시, 매화 가지를 꽂은 청화 꽃병. 할머니는 연보라 한복을 입고 마루 끝 기둥 아래 방석에 앉았다. 세뱃상 너머 상석에는 할아버지가 앉던 두툼한 방석이 비어 있었다.
순서부터 싸움이 났다.
“장남 내외부터 하는 거여.” 큰숙모가 치마를 여미며 앞으로 나왔다.
“어매 앞에서 장남 딸 따지냐? 먼저 온 사람부터 해.” 고모가 맞받았다.
“고모는 밤 열한 시에 왔잖아요.”
“그래도 그믐 안에 왔다!”
큰삼촌의 외아들 태성은 약대 등록금 고지서가 든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며 혼자 따로 절하겠다고 했다. 같이 하면 세뱃돈이 한 봉투로 나온다는 계산이었다. 할머니가 손을 들었다.
“절은 아무나 먼저 해라. 돈은 똑같다.”
절이 이어지는 동안 덕담도 아닌 말들이 마루를 오갔다. 큰숙모는 연서에게 올해는 국수 언제 먹여 줄 거냐고 물었고, 고모는 콜센터 그만두고 공무원 시험이나 보라고 했다. 연서는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숙였다.
“소중한 의견 감사합니다, 고모님. 검토 후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저것이 또 상담하네.”
연서 차례가 왔다. 안방 거울에 하나로 묶은 긴 갈색 머리와 동그란 안경, 분홍 저고리에 연보라 치마, 흰 누빔 조끼가 비쳤다. 서른한 살의 설빔이 생각보다 잘 맞았다. 연서는 할머니 앞으로 나가 두 손을 포개 이마에 대고, 무릎을 꿇고, 마룻바닥에 손을 짚었다. 마루는 아침 햇볕에 데워져 손바닥이 따뜻했다. 이마를 손등에 붙이고 속으로 셋을 셌다. 하나, 둘, 셋.
고개를 들었을 때 상석의 방석 위에 용이 앉아 있었다.
하늘빛 비늘이 마루 끝에서 마당까지 똘똘 감겨 있었다. 비늘마다 금빛 테가 둘러 있어 햇빛이 닿는 자리마다 잘게 반짝였고, 배는 은빛이었다. 머리에는 옅은 금빛 사슴뿔이 짧게 둘, 귀밑부터 흰 갈기가 흘러내렸고, 흰 수염 두 가닥이 세뱃상 곶감 접시 위까지 늘어져 있었다. 몸길이가 열 미터는 되어 보였다. 앞발 두 개를 단정히 포갠 용이 금빛 눈으로 연서를 내려다보았다.
큰숙모가 식혜 대접을 떨어뜨렸다. 고모는 “오메, 오메” 소리만 냈다. 태성은 비명을 지르는 대신 휴대전화를 들어 올렸다. 큰삼촌은 맨발로 마당에 뛰어내려 대빗자루를 집어 들었다.
할머니만 웃었다.
“청이 왔냐. 오래도 걸렸다.”
용이 입을 열었다. 마루 밑에서 바닷물이 동굴을 치고 나오는 것 같은 소리가 울렸고, 창호지가 일제히 떨었다. 연서의 귀에는 소리가 아니라 말이 들어왔다.
“어허. 절을 하다 말고 고개를 드는 법이 어디 있느냐? 다시 하라.”
“네?”
“천둥 치나?” 고모가 하늘을 보았다. “날은 맑은디.”
“절을…… 다시 하래요.”
식구들이 일제히 연서를 보았다. 태성이 휴대전화를 내렸다.
“누나, 저거 알아들어?”
연서는 대답하지 못하고 다시 이마를 손등에 붙였다. 이번에는 다섯까지 셌다. 고개를 들자 용이 수염을 한 번 쓸었다.
“되었다. 덕담을 주마. 너는 남의 성난 말을 너무 오래 받아서 귀가 닳았구나. 올해는 네 말을 하렷다.”
연서는 숨을 삼켰다. 지난주에만 욕설 통화가 마흔 통이었다. 연서는 식구들을 돌아보고 말을 골랐다.
“올해…… 건강하래요.”
“그리 말하지 않았다.”
용이 꼬리 끝으로 마룻바닥을 툭 쳤다. 세뱃상 위 약과가 한 번 튀었다.
*
“어매, 비키씨요!” 큰삼촌이 대빗자루를 창처럼 들었다. “저것이 뭐여!”
“빗자루 내려놔라. 손님한테.”
할머니가 곶감 하나를 집어 용의 수염 끝에 매달린 것처럼 들어 보였다.
“칠십 년 전 사라호 때, 바닷가 모래에 처박혀 있던 것을 내가 치마에 싸서 물에 넣어 줬다. 손가락만 한 이무기였어. 이제 용이 됐는갑다.”
열한 시, 대문 앞에 검은 세단이 멈췄다. 회색 코트를 입은 남자가 한우 선물 세트와 둥글게 만 달력을 들고 마당으로 들어왔다. 구두코에 밭 흙이 묻어 있었다. 남자는 마당 절반을 차지한 하늘빛 꼬리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이 초쯤 꼬리를 보다가, 넥타이를 한 번 고쳐 맸다.
“명절 인사 왔습니다. 해든솔라 개발팀장 석재학입니다.”
용의 금빛 눈이 남자를 따라갔다. 다시 마루 밑에서 파도 소리가 울렸다.
“절도 안 하고 남의 마당에 들어선 자는 누구냐?”
모두가 연서를 보았다. 연서는 무릎 위에 손을 모았다. 손이 저절로 헤드셋을 찾았다가 귀에 아무것도 없는 것을 알고 내려왔다.
“고객님, 아니, 팀장님. 용님께서…… 먼저 세배를 하시고 용건을 말씀하시랍니다.”
석재학은 웃지 않았다. 코트를 벗어 개어 마루 귀퉁이에 놓고, 마당에 깔린 멍석 위에서 용을 향해 반듯하게 절했다. 큰절이었다. 일어나며 무릎의 흙을 털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하네, 절을.” 큰삼촌이 빗자루를 든 채 중얼거렸다.
“너는 올해 남의 땅을 많이 사겠구나.” 용이 말했다. “발밑이 무르니 조심하렷다.”
연서가 그대로 옮기자 석재학은 고개를 숙였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석재학이 큰삼촌을 돌아보았다. “사장님, 측량 마무리는 연휴 끝나고 하겠습니다. 중도금은 예정대로 2월 15일입니다.” 그리고 다시 용을 보았다. “실례지만 이 생물은 매매 목록에 없습니다.”
용이 몸을 조금 일으켰다. 마루가 삐걱였다. 연서의 귀에 들어온 말은 낮고 또렷했다.
“이 집에는 대보름 달이 뜰 때까지 내가 앉는다. 이 집 사람들에게 절을 다 받기 전에는 아무도 이 집을 팔지 못한다.”
연서는 한 박자 늦게 그대로 옮겼다. 마루가 조용해졌다. 큰삼촌이 빗자루를 내리고 연서 앞으로 왔다.
“니가 지어낸 거제? 요양원 반대한다고.”
“제가 지어냈으면 이렇게 말 안 해요. 저는 삼촌한테 ‘아무도 못 판다’ 같은 말 못 해요. 무서워서.”
“그라믄 저놈한테 전해라. 이 집은 계약 끝난 집이여. 2월 15일에 중도금 들어오고, 3월에 비운다.”
“삼촌이 직접 하세요.”
“저놈이 내 말을 알아묵냐?”
“용님은 알아들으세요. 삼촌이 용님 말을 못 알아들으시는 거고요.”
큰삼촌의 귀가 붉어졌다. 연서는 무릎을 꿇은 채였고 큰삼촌은 서 있었다. 세뱃상 하나를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이 맞서는 동안 용은 곶감 하나를 수염으로 감아 입에 넣었다.
연서가 큰삼촌의 말을 옮기자 용이 웃었다. 웃음도 파도 소리였다. 하늘빛 몸이 마루에서 풀려 처마로 미끄러져 올라갔다. 기와 위에 쌓인 눈이 우수수 마당으로 쏟아졌다. 용은 지붕 꼭대기 용마루를 따라 몸을 길게 누이고, 꼬리를 한 바퀴 감아 굴뚝을 껴안았다. 기와가 끙, 하고 한 번 울었다.
석재학이 휴대전화를 꺼내 지붕을 찍고 무언가를 적었다. 그러고는 큰삼촌에게 차분하게 말했다.
“참고로 계약서에는 잔금 때 지장물 철거를 매도인이 맡기로 되어 있습니다.”
큰삼촌이 지붕을 올려다보았다.
“저것도 지장물이여?”
할머니가 소리 내어 웃었다. 처마 끝으로 흰 수염 두 가닥이 내려와 세뱃상 위에서 고드름처럼 흔들렸고, 수염 아래 매화 가지 꽃병에 햇빛이 한 줄 꽂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