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464자)
소방관도 지붕에 절부터 했다
세배 받는 청룡 · 소예찬
1월 27일 연휴 마지막 날 오전 열 시, 기와집 대문 앞에 줄이 생겼다. 털모자를 쓴 할머니들이 앞에 섰고, 경운기를 몰고 온 할아버지들이 뒤를 이었다. 누군가 보온병에 커피를 타 와서 줄 선 사람들에게 돌렸다. 마당 멍석 위에서 한 사람씩 지붕을 향해 절을 하면, 용이 덕담을 내리고 연서가 옮겼다.
“너는 며느리 흉을 그만 보렷다. 며느리가 다 듣는다.”
“용님께서 올해는 가족 간 소통에 힘쓰시라고 하십니다.”
“너는 술을 끊으렷다. 간이 붓기 시작했다.”
“어르신, 건강검진 꼭 받으시래요.”
절을 마친 사람은 마루 끝에 쌓아 둔 생선 상자에서 두 마리씩 가져갔다. 마을 사람들은 연서의 통역이 원래 말보다 짧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용만 알았다. 열한 번째 사람이 지나가자 용이 연서에게만 들리게 말했다.
“너는 내 말을 깎는구나.”
“상담원은 원래 그래요. 고객님 말씀을 그대로 옮기면 다 싸워요.”
“그대로 옮기지 않으면 아무도 안 싸우고 아무것도 안 바뀐다.”
연서는 대답하지 않고 다음 사람을 불렀다.
다음 사람은 절을 하지 않았다. 갯가댁 영감이라고 불리는, 바닷가에 밭 이천 평을 가진 노인이었다. 영감은 멍석 앞에 지팡이를 짚고 서서 지붕을 노려보았다.
“나는 절 안 한다. 해든솔라가 내 밭에 평당 십만 원 쳐 준다 했어. 시세 두 배여. 근디 지붕에 용이 앉았다고 소문나 봐라. 땅에 귀신 붙었다고 업자들이 다 내뺄 것이여.”
“영감님, 용은 귀신이 아니라…….”
“귀신이나 용이나. 니가 책임질래? 내 손자 장가 밑천이여.”
용이 수염을 늘어뜨려 영감 발치까지 내렸다. 영감은 한 걸음 물러섰지만 지팡이는 놓지 않았다.
“절을 안 하니 덕담은 없다. 다만 하나 일러 주마. 네 밭은 네 아비가 바다를 막아 만든 땅이다. 팔기 전에 아비 무덤에 한 번은 가 보렷다.”
연서가 옮기자 영감의 얼굴이 굳었다. 영감은 아무 말 없이 돌아서서 대문을 나갔다. 줄 선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영감 아버지가 금포 둑을 쌓다가 허리를 다쳤다는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이 마을에 없었다.
점심 무렵 고모가 여수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 건어물 가게를 연휴 끝 날까지 비울 수 없었다. 차에 삼치 상자를 싣고 나서 고모는 큰삼촌을 마당 구석으로 불러냈다. 목소리가 다 들렸다.
“오빠 혼자 정하믄 나 가만 안 있는다. 어매 일은 셋이 정하는 거여.”
“만배는 택시 몬다고 오지도 않았다.”
“그라믄 둘이 정해. 나 빼고 정하지 말고.”
큰숙모와 태성도 오후 버스로 순천과 서울로 흩어졌다. 큰삼촌은 남았다. 사다리차가 오는 날까지는 이 집을 비울 수 없다고 했다.
*
1월 28일 금요일 아침 여덟 시, 연서는 장독대 뒤에 쪼그리고 앉아 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두 번 가기 전에 팀장이 받았다. 수화기 너머에서 벌써 콜 대기 알림음이 삑삑 울렸다.
“연서 씨, 어디예요? 지금 대기 콜이 이백 개예요.”
“팀장님, 죄송한데요. 연차 쓰겠습니다. 오늘부터 2월 9일까지요.”
“연차 아홉 개를요? 연서 씨, 2월 10일 승진 심사 있는 거 알죠? 근태 감점이에요. 팀장 자리 이번엔 연서 씨라고 다들 그랬는데.”
“알아요.”
“무슨 일인데요?”
“가족 사정이…… 할머니 댁 지붕에 용이…….”
“네?”
“아니요, 지붕 수리요. 지붕이 내려앉을 것 같아서요.”
팀장이 긴 숨을 쉬었다. 대기 알림음이 세 번 더 울렸다.
“연차는 결재할게요. 심사는 저도 어떻게 못 해요.”
전화가 끊겼다. 연서는 휴대전화를 무릎에 내려놓았다. 일곱 해 동안 연차를 이틀 넘게 붙여 써 본 적이 없었다. 지붕 위에서 용이 비늘을 한 번 털었다. 마른 눈가루가 장독대로 흩날렸다.
“무엇을 내주었느냐?” 용이 물었다.
“팀장 자리요. 아마도요.”
“팀장이란 무엇이냐?”
“화난 전화를 받는 사람들한테 화내는 사람이요.”
“잘 내주었다.”
*
아홉 시 정각, 고흥소방서 구조대 차량과 사다리차가 언덕을 올라왔다. 뒤따라 군청 당직 직원이 경차를 몰고 왔다. 대문 앞에는 이장과 어촌계장, 마을 할머니 다섯이 의자를 펴고 앉아 있었다. 한 할머니는 손에 뜨개질감을 들고 있었다.
큰삼촌이 대문으로 나가 이장과 마주했다.
“아재, 비켜 주씨요. 소방서에서 오셨소.”
“소방서가 불 끄러 오지 용 끄러 오냐?”
“기와가 다 깨지게 생겼다고요. 집이 무너지믄 누가 책임질 거요?”
“무너지믄 우리가 다시 올려 주께. 용님 계실 동안 고기는 우리가 잡을랑께.”
구조대장이 두 사람 사이에서 서류철을 들고 난처한 얼굴로 서 있다가 연서를 찾았다. 연서가 마루에서 나왔다.
“통역하신다는 분이시죠? 저희가 일단 상태만 확인하겠습니다. 위험하면 바로 철수합니다.”
“네. 다만 용님께서 먼저 절부터 받으셔야 말씀을 들으세요.”
“예?”
사다리차 바구니가 천천히 올라갔다. 대원 하나가 헬멧 끈을 조이며 바구니 난간을 붙잡았다. 바구니가 처마 높이를 지나자 용이 고개를 들고 길게 숨을 내쉬었다. 숨이 하얀 안개가 되어 지붕을 덮고 마당을 덮고 대문까지 흘러내렸다. 십 초도 안 되어 한 걸음 앞도 보이지 않았다. 축축하고 짠 안개였다. 연서는 마루 기둥을 손으로 더듬어 붙잡았다.
안개 속에서 대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떨리고 있었다.
“대장님, 앞에 눈이…… 금색 눈이 있습니다. 제 머리만 한 게 두 개.”
“움직이지 마!”
지붕 위에서 파도 소리가 울렸다. 연서는 마당 한가운데로 걸어 나가 위를 향해 소리쳤다.
“대원님! 절부터 하시래요!”
“바구니 안에서 어떻게 합니까!”
“고개라도 숙이세요!”
잠시 조용했다. 안개 속에서 헬멧이 바구니 난간에 부딪히는 소리가 쿵, 하고 났다. 용의 목소리가 연서에게만 내려왔다.
“되었다. 너는 남의 지붕에 너무 자주 오르는구나. 네 집 지붕이 새니 그것부터 고치렷다.”
연서가 그대로 소리쳐 옮겼다. 바구니가 천천히 내려왔다. 안개가 걷히기 시작하자 대원이 헬멧을 벗고 이마의 땀을 닦으며 바구니에서 내렸다. 구조대장에게 다가가 작게 말했다.
“대장님, 저희 집 작은방 천장 새는 거 어떻게 알았을까요?”
구조대장은 서류철에 무언가를 적다가 펜을 멈췄다. 큰삼촌이 다가갔다.
“그래서 어쩔 거요?”
“선생님, 저희 동물 구조 매뉴얼에 용은 없습니다. 무리하게 접근하면 기와가 파손되고 대원이 다칩니다. 오늘은 철수하겠습니다.”
군청 당직 직원은 지붕 사진을 여러 장 찍고, 월요일에 과에 보고하겠다는 말만 남기고 떠났다. 사다리차가 언덕을 내려가는 동안 대문 앞 할머니 하나가 뜨개질을 멈추지 않고 말했다.
“거 봐라. 절부터 해야 일이 된당께.”
점심때가 지나자 단톡방이 불이 났다. 태성이 사다리차 영상을 올린 것이 시작이었다. 안개 속에서 헬멧 하나가 꾸벅 숙여지는 장면이었다.
「사다리차를 불렀다고??? 어매 집에???」 고모였다.
「기와 깨진다. 집 무너지믄 니가 책임질래」 큰삼촌이 받았다.
「형, 나는 형 편」 아버지가 끼어들었다.
「만배 니는 택시나 몰아라!!!」
「손님 태우고 신호 대기 중에 쓰는 거임」
「운전 중에 폰 하지 마라!!!」
「아빠 운전 중에 폰 하지 마세요」
연서가 마지막 줄을 보내자 단톡방이 잠깐 조용했다. 삼 분 뒤 아버지가 웃는 얼굴 그림 하나를 올렸고, 고모가 화난 얼굴 그림 세 개를 올렸다. 큰삼촌은 읽고 답하지 않았다. 마루에 앉아 휴대전화를 내려다보던 큰삼촌이 연서와 눈이 마주치자 화면을 엎어 놓았다. 화면 위쪽에 은행 앱 알림 한 줄이 떠 있다가 꺼졌다. 「대출이자 납입일 안내 — 1월 31일」.
*
저녁 여섯 시, 큰삼촌은 부엌에서 삼치를 토막 냈다. 칼이 도마에 닿는 소리가 일정했다. 국밥집을 스물두 해 한 손이었다. 무를 깔고 삼치를 얹고 고춧가루 양념을 끼얹는 동안 큰삼촌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연서가 옆에서 대파를 썰었다. 손이 큰삼촌 칼질 박자를 따라갔다.
“삼촌, 요양원비가 얼마예요?”
“한 달에 백십만 원. 2인실. 나라에서 대 주는 거 빼고.”
“식당은요?”
큰삼촌이 칼을 내려놓았다.
“빚이 1억 2천이다. 코로나 때 낸 대출을 아직 다 못 갚았어. 이자가 다달이 팔십이여. 태성이 약대는 한 학기에 칠백이고. 6년 다녀야 돼.”
조림 냄비가 끓기 시작했다. 큰삼촌이 불을 줄였다.
“작년 12월 19일. 내가 일요일마다 국밥 싸 들고 오는 거 알제? 그날 아침 여섯 시에 왔는디 부엌 불이 켜져 있드라. 할매가 여그 누워 있었어. 이 자리에.”
큰삼촌이 발끝으로 부엌 바닥 장판을 가리켰다. 장판 한 귀퉁이가 누렇게 바래 있었다.
“밤 열 시에 물 마시러 나왔다가 미끄러졌대. 고관절에 금이 갔어. 여덟 시간을 혼자 누워 있었어. 일어나지도 못하고 전화기도 방에 있고. 내가 문 열고 들어오니께 할매가 뭐라 했는지 아냐? 춘배야, 국밥 식는다.”
연서는 대파를 썰던 손을 멈췄다.
“그날 니는 서울에서 뭐 했냐?”
“야간 근무요.”
“그라제. 다들 일하제. 나도 일해. 그랑께 요양원이여. 땅 팔믄 할매 요양원비 십 년 치가 나오고, 내 빚도 갚고, 태성이 졸업도 시킨다. 이게 나쁜 거냐?”
“할머니한테 물어보셨어요? 가고 싶으시냐고요.”
“물어봤제.”
“뭐라세요?”
큰삼촌이 대답하지 않고 냄비 뚜껑을 열었다. 김이 확 올라와 두 사람 안경과 눈썹을 적셨다. 큰삼촌이 국자로 양념을 끼얹었다.
“지붕 위에 저놈한테 전해라. 내 어매 은인인 건 알겄는디, 은인이라고 내 어매를 굶기고 넘어뜨려 놓고 혼자 두라는 법은 없다고.”
연서는 부엌 쪽문을 열고 지붕을 올려다보았다. 용은 듣고 있었다. 연서가 옮기기 전에 용이 먼저 말했다.
“저 큰 놈은 절은 안 해도 말은 바르게 하는구나.”
*
밤 열 시, 연서는 안방에서 할머니 머리를 빗겨 드렸다. 흰머리가 손가락 사이로 가늘고 차갑게 빠져나갔다. 할머니는 무릎 옆에 지난겨울부터 짚는 나무 지팡이를 뉘어 두었다.
“할머니, 삼촌이 억지로 위임장 받아 간 거죠? 제가 막을게요. 계약금 두 배로 돌려주면 계약 물릴 수 있대요. 아까 찾아봤어요. 중도금 들어오기 전에만 하면 돼요.”
할머니가 거울 속 손녀를 보았다.
“막지 마라.”
“네?”
“억지 아니여. 팔자고 한 건 나다. 도장도 내가 찍었어. 춘배가 처음엔 안 된다 했다. 내가 팔라 했어.”
“왜요? 할머니 이 집 좋아하시잖아요. 바다 보이는 데서 사신다고 맨날…….”
“춘배가 일요일마다 순천서 한 시간 운전해 오는 게 몇 해째인 줄 아냐? 여섯 해여. 장사 끝나고 밤에 와서 새벽에 간다. 느그 아빠는 택시, 영자는 가게, 니는 서울. 내가 이 집에 있으믄 다들 이 집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산다. 목 아프다.”
“그래도요.”
“바다는 실컷 봤다. 팔십팔 년을 봤어.”
할머니의 목소리는 국 간을 볼 때처럼 담담했다. 연서는 빗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일곱 해 동안 수화기 너머의 화난 목소리 앞에서는 한 번도 떨지 않던 손이었다.
빗이 머리카락 중간에서 멈췄다. 지붕 위에서 용의 숨소리가 한 번 크게 났다가 잦아들었다. 할머니가 연서 손에서 빗을 받아 들고 남은 머리를 스스로 빗어 내렸다.
“내 집이여. 내가 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