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293자) · 연우 · 동짓달 초여드레

받을 사람이 없는 짐

강을 건네주는 값은 목숨 하나 · 한도윤

이튿날 연우가 동안 나루에 소금 두 말을 내려놓았을 때, 삼돌은 어제와 같은 자리에 같은 모양으로 앉아 있었다. 밤새 거기 있었던 것처럼 무릎의 재가 두꺼웠다. 연우가 소금을 내려놓고 허리를 펴는 동안 삼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연우도 하지 않았다. 강에서 굳었다 풀리는 소리가 두 번 났다.

삼돌이 먼저 말했다.

“그 아이는 잘못한 게 없소.”

연우가 삿갓을 벗었다. 열두 해 전보다 턱이 길어졌고 눈썹이 짙어졌지만, 삿갓을 벗고 서서 기다리는 모양은 그때와 같았다. 삼돌이 그 얼굴을 올려다보고 웃었다. 웃는데 입꼬리 한쪽만 올라갔다.

“어제 얼음을 대고 알았소. 댁은 짐을 내려놓을 때 꼭 두 손으로 내려놓소. 열 살 때도 그랬소.”

“나 때문에 나가셨소.”

“그렇지 않소.”

삼돌이 나루 기둥을 짚고 몸을 조금 일으켰다.

“이야기를 하나 해 주겠소. 거기 앉으시오.”

*

동안 도강꾼은 스물다섯 해 전에 둘이었고, 열여덟 해 전에 셋이 되었다. 삼돌은 그 셋 가운데 둘째였고 백 발쯤을 갔다. 열세 해 전 겨울에 곽 도가에서 도망친 아이 하나가 나루 끝에 쓰러져 있었다. 삼돌이 그 아이를 넣어 넷이 되었다.

“넷이 되고 나서 나는 예순 발이 되었소. 다른 둘도 다 줄었소. 그때는 까닭을 몰랐소. 내가 늙었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나가기로 했소.”

삼돌은 제 무릎을 손바닥으로 쓸었다.

“나가기 전에 한 번 건너 보고 싶었소. 백 발 가던 사람이 삼백 발을 가겠다고 빈손으로 들어갔소. 그게 욕심이었지. 백이십 발에서 허리까지 빠졌소. 재는 겉은 차고 속은 뜨겁소. 허리 아래가 다 익는 줄 알았소.”

“그때 나는 나루에 있었소.”

“나도 알아. 댁은 들어오려고 했고, 셋째가 댁 목덜미를 잡아 뒤로 던졌소. 그리고 셋이 들어왔소. 첫째하고 셋째하고, 그때 막 마중을 서던 막내하고.”

삼돌이 강 가운데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셋이 내 둘레에 섰소. 세 발씩 떨어져서. 그러니까 재가 굳었소. 내 허리 아래까지 굳었소. 셋이 나를 끌어내고 나서 그 자리에 서서 서로 봤는데, 아무도 안 빠졌소.”

연우가 삼돌의 무릎을 보며 물었다.

“그때 까닭을 아셨소?”

“그때는 몰랐소. 한 해 지나고 알았소. 내가 나가고 셋이 되니까 다들 발수가 도로 늘었소. 그런데 셋이 같이 들어왔을 때는 아무도 안 빠졌소. 그 둘이 다르오.”

“그 둘이 어떻게 다르오?”

삼돌이 웃는데, 이번에는 입꼬리 양쪽이 다 올라갔다.

“뒤에 사람이 있는 것하고 옆에 사람이 있는 것이 다르오. 뒤에 있으면 내가 안 가도 되오. 옆에 있으면 내가 가야 하오. 댁은 넷째로 들어와서 끝자리에 섰소. 그러니까 다들 뒤가 생겼지. 댁이 잘못한 게 아니라 댁을 뒤에 세운 우리가 셈을 몰랐소.”

연우는 한참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열두 해 동안 가슴 한가운데 얹혀 있던 무엇이 한 번에 내려가지는 않았다. 대신 손끝부터 저렸다. 연우는 두 손을 무릎 위에 펴 놓고 그 저림이 팔꿈치까지 올라오는 것을 가만히 기다렸다.

삼돌이 조금 뒤에 말을 이었다.

“나는 댁 때문에 나간 게 아니오. 셋이 내 옆에 서는 걸 보고 나서, 나 같은 늙은이가 끼어 있으면 안 되는 자리라는 걸 알았소. 나는 옆에 서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소. 그래서 내 발로 나갔소.”

연우가 고개를 숙였다. 이마가 무릎에 닿았다. 재 냄새가 났다.

*

삼돌이 나루 끝의 궤를 가리켰다. 궤는 셋이었고, 짙은 참나무에 쇠 띠를 둘렀고, 뚜껑 위에 재가 손가락 두 마디 두께로 앉아 있었다. 자물쇠 구멍이 있어야 할 자리가 그냥 나무였다.

“서안 도강꾼 삯이오. 삼십 년 치. 불목 사람이 짐을 받으면 삯을 여기 넣소. 서안 사람은 안 가져가오.”

“열쇠는 누가 가졌소?”

“자물쇠가 아예 없소.”

“그럼 왜 안 가져가오?”

“가져가면 지고 가야 하니까. 제 삯은 제 것이오. 제 것을 지면 무겁소. 삼백열두 발을 제 것을 지고 가는 사람은 없소.”

삼돌이 손가락을 꼽았다.

“삼십 년 동안 그 뚜껑을 든 사람이 넷이오. 넷 다 닫았소. 나부터 셈하면, 나는 나가기 전날 들었소. 나가는 사람은 제 몫을 받아도 된다고 생각했소. 들고 보니 내 몫만 꺼낼 수가 없었소. 서안 삯하고 동안 삯이 섞여 있었소.”

“나머지 셋은 누구요?”

“둘은 서안 사람이오. 같은 밤에 들었소. 열두 해 전 겨울, 서안 첫째하고 서안 둘째.”

연우가 고개를 들었다. 열두 해 전 서안 둘째라면 지금의 첫째 한석이었다.

“그럼 넷째는 누구요?”

삼돌이 대답하지 않고 연우 손을 봤다. 연우가 일어나 궤 앞으로 갔다. 뚜껑에 두 손을 얹으니 나무가 차가웠다. 연우가 뚜껑을 들자 힘없이 들렸다. 안에 엽전 꿰미가 켜켜이 쌓여 있었고, 그 틈에 무명 필과 좁쌀 자루가 끼어 있었다. 삼십 년 동안 서안 사람들 손을 한 번도 안 탄 돈이었다. 엽전 녹 냄새가 코를 쏘았다.

연우는 뚜껑을 닫았다.

“넷째는 방금 댁이오.”

삼돌이 연우의 손을 보며 말했다.

“넷 다 닫았는데, 닫은 뒤가 다 달랐소. 그 얘기는 댁이 서안 첫째한테 들으시오.”

*

한낮이 조금 지나 재 위로 사람이 줄지어 건너왔다. 두칠이 빚꾼 여섯을 데리고 오는 길이었다. 빚꾼들은 빈 자루를 지고 있었는데, 빈 자루도 도가가 불목에 가서 받아 올 짐이라 재가 얕게나마 받쳤다. 그래도 백 발마다 누군가 발목까지 빠졌고, 두칠이 뒤에서 막대로 등을 찔러 세웠다. 막동이 줄 가운데에 있었다.

두칠은 나루에 올라서자마자 궤 앞으로 갔다.

“스무날 전이지만 미리 봐 두라는 분부요.”

불목 사람 몇이 집에서 나왔다. 대개 늙은이였고, 하나는 기침을 하면서 나왔다. 연우가 궤 앞에 섰다.

“이 궤는 아무도 못 옮기오.”

“댁들이 못 옮긴 거지. 댁들 삯이니까 댁들 것이고, 댁들 것이니까 무겁다며? 우리는 남의 것이오. 우리가 지면 재가 받치오.”

“받을 사람이 없는 짐이오.”

“그 삯은 도가가 받소.”

“도가가 받을 삯이 아니오.”

두칠이 웃으며 빚꾼 둘에게 턱짓을 했다. 둘이 궤 하나를 들어 두칠 등에 얹었다. 참나무 궤가 두칠의 넓은 등에 딱 맞게 얹혔고, 엽전 꿰미가 안에서 한쪽으로 쏠리면서 쇳소리를 냈다. 두칠이 한 손을 뒤로 돌려 궤 모서리를 잡고 재에 들어섰다.

“봐 두시오. 스무날부터는 이렇게 하오.”

열 발은 멀쩡했다. 스무 발에서 발목이 들어갔다. 서른 발에서 무릎까지 들어갔다. 두칠이 이를 악물고 발을 뽑아 앞으로 디뎠다. 사십 발에서 허리까지 빠졌다.

두칠의 얼굴이 하얘졌다. 재는 겉이 차고 속이 뜨겁다. 허리 아래가 익는 소리를 두칠은 제 귀로 들었다. 두칠은 궤를 놓았다. 궤가 등에서 미끄러져 재 위에 얹혔고, 그 순간 두칠의 몸이 한 뼘 떠올랐다.

“나를 끌어내라!”

재 위에서는 아무도 소리를 지르지 않는다. 두칠이 지른 소리는 불목 언덕에 부딪쳐 한 번 되돌아왔다. 빚꾼들은 머뭇거렸다. 빈손으로 들면 얕게 빠진다는 것을 다 알았다. 막동이 제 빈 자루를 쥐고 먼저 뛰어들었다가 스무 발에서 무릎까지 빠졌다.

연우가 빈손으로 들어가 막동 옆에 섰다. 세 발 떨어진 자리였다. 막동의 무릎 둘레가 굳었다. 연우가 손짓했고, 빚꾼 둘이 뒤따라 들어와 세 발씩 떨어져 섰다. 넷이 두칠의 둘레를 에워쌌다. 두칠 허리 아래의 재가 굳었다. 넷이 두칠의 두 팔을 잡아 끌어냈다.

나루로 돌아와서 두칠은 한참 엎드려 숨을 몰아쉬었다. 바지가 허리까지 누렇게 그을려 있었다. 궤는 사십 발 자리 재 위에 뚜껑을 하늘로 향한 채 남아 있었다. 조금씩, 눈에 안 보일 만큼 조금씩 가라앉고 있었다.

두칠이 일어나 연우를 노려봤다.

“댁이 나를 건졌다고 달라지는 건 없소. 스무날이오.”

“그것도 알고 있소.”

두칠이 빚꾼들을 몰아 돌아갔다. 막동이 줄 끝에서 연우를 한 번 돌아봤다. 입 모양으로 무언가를 말했는데, 연우는 그것이 고맙다는 말인지 형이라는 말인지 알아보지 못했다.

두칠이 떠나자 불목 집에서 사내 하나가 소매를 걷으며 나왔다. 불목의 하나뿐인 의원 마씨였다. 수염이 반은 하얗고 반은 재가 앉아 잿빛이었다. 마 의원은 연우 손을 덥석 잡고 흔들었다.

“어제 얼음 덕에 물을 끓였소. 끓인 물을 먹이니 앓던 사람들이 오줌을 누기 시작했소.”

“오줌 말이오?”

“재를 먹고 앓으면 오줌이 막히오. 오늘 아침에 열둘 가운데 일곱이 오줌을 눴소. 내 평생 남의 오줌 소리가 이렇게 반가운 건 처음이오.”

삼돌이 옆에서 한마디 거들었다.

“의원이 아침마다 집집 뒷간 앞에 서서 귀를 대고 있소. 동네 개들이 이상하게 보오.”

연우가 처음으로 소리 내어 웃었다. 웃고 나서 저도 놀라 입을 가렸다. 마 의원이 그 손을 또 잡아 흔들었다.

“얼음 더 있소?”

“서안 우물을 도가가 샀소. 집집 물독에 남은 물을 다 모아도 사흘이면 바닥이오.”

마 의원의 손이 느려졌다. 흔들던 손을 멈추고, 놓지는 않고 가만히 쥐고 있었다.

해가 기울 때 연우는 빈손으로 서안을 향해 재에 들어섰다. 백 발까지는 늘 그랬듯 발밑이 단단했다. 이백 발 자리에서 오른발이 발목까지 들어갔다. 연우는 발을 빼고 멈춰 섰다. 열세 해 동안 빈손으로 이 강을 건너면서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었다. 뺀 발목이 뜨거웠다. 연우는 제 두 손을 내려다봤다. 아무것도 들려 있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은 무언가를 지고 있는 것 같았다. 삼돌이 한 말이 등 한가운데 얹혀 있었다. 연우는 남은 백열두 발을 천천히, 두 번 더 빠지면서 건넜다.

*

해 질 녘 서안 헛간에서 기순이 먼저 연우 발목을 봤다. 짚신 끈 위로 살갗이 벌겋게 부풀어 있었다.

“빈손으로 빠졌소?”

“세 번 빠졌소.”

“빈손으로 삼백열둘을 가던 사람이?”

기순은 입속으로 무언가를 셈하다가 그만두고, 된장을 한 숟갈 떠서 연우 발목에 발라 주었다. 된장은 덴 데 바르는 게 아니라고 억쇠가 말렸지만 기순은 들은 척도 안 했다.

연우가 그날 일을 다 말했다. 궤 하나가 사십 발 자리에 남아 있다는 말에 기순이 먼저 탄식했다.

“삼십 년 치의 삼분의 일이 재 밥이 되는구먼.”

억쇠가 국그릇을 내려놓고 물었다.

“그럼 우리 삯은 영영 못 받소?”

한석이 짧게 대답했다.

“원래 안 받았소.”

연우가 한석을 봤다.

“삼돌이 그러는데, 열두 해 전 겨울 같은 밤에 서안 첫째하고 서안 둘째가 뚜껑을 들었다 하오.”

헛간이 조용해지고, 판개가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한석은 연우를 한참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나는 불목에 간 적이 없소. 서른 해 동안 열여덟 발 너머를 간 적이 없소.”

“삼돌은 첫째한테 들으라고 했소.”

“들을 게 없소.”

한석이 일어나 헛간 밖으로 나갔다. 문턱의 그릇 둘을 넘으면서 발끝이 그릇 하나를 건드렸다. 식은 밥이 조금 쏟아졌다. 한석은 돌아와 그 밥을 손으로 쓸어 그릇에 도로 담고 다시 나갔다. 손바닥이 아팠다.

4화는 어땠나요?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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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화만더2026.05.07· 4화

    이 작가님 다른 작품도 찾아 읽는 중입니다.

    • 한도윤작가2026.05.08

      찾아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재의 강을 건너」도 끝까지 함께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