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443자)

청문회 증인석

응급실 구급차 · 금나율

9월 16일 수요일 아침 일곱 시 십 분⁠, 김천구미역에서 서울로 가는 고속열차 5호차에 동주와 순영이 나란히 앉았다⁠. 순영은 일주일 전에 준이를 데리고 왜관에서 돌아왔다⁠. 돌아온 날 저녁 둘은 김치찌개를 먹었고⁠, 청문회 얘기는 하지 않았다⁠.

두 줄 앞 창가 자리에 탁선영이 앉아 있었다⁠. 회색 정장을 입었는데 정장 가슴 주머니에 칫솔이 꽂혀 있었다⁠. 열차가 출발하기도 전에 선영은 창에 머리를 기대고 잠들었다⁠. 입이 조금 벌어져 있었다⁠.

“⁠교수님 어젯밤 당직이셨어⁠.⁠” 순영이 작게 말했다⁠. “⁠당직 끝나고 바로 역으로 오셨대⁠.⁠”

“⁠국회 가서 저 칫솔 꺼내시면 어쩌노⁠.⁠”

“⁠그럼 위원님들도 양치 한번 하시겠지⁠.⁠”

동주가 소리 없이 웃었다⁠. 순영도 입꼬리를 올렸다⁠. 일주일 만에 처음 함께 웃었다⁠.

4호차에는 구본철과 남경희가 방청석 자리를 얻어 함께 탔다고 했다⁠. 경희가 단톡방에 사진을 올렸다⁠. 본철이 삶은 계란 한 판을 무릎에 놓고 껍질을 까고 있었다⁠. 「⁠본철 씨가 계란 서른 개 삶아 왔어요⁠. 다 드시래요⁠」⁠.

동주의 휴대전화에 기사 알림이 하나 떴다⁠. 「⁠대법원⁠, 2023년 대구 ‘⁠응급실 뺑뺑이⁠’ 수용 거부 병원 처분 확정⁠」⁠. 지난 3일 판결이었다⁠. 구급대원과의 통화로 들은 단편적인 정보만으로 수용을 거절한 것은 정당한 사유가 되지 않는다는 판단이었다⁠. 아래에 다른 알림이 이어졌다⁠. 「⁠중증 응급환자 이송 병원⁠, 광역상황실이 선정 — 이달 전국 확대⁠」⁠.

동주가 화면을 순영에게 보여 주었다⁠. 순영은 한참 보다가 화면을 꺼 주었다⁠.

“⁠오늘은 그거 보지 마⁠. 당신 얼굴에 다 나와⁠.⁠”

서울역에 열차가 멎자 선영이 화들짝 깨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기 어디예요⁠? 응급실이에요⁠?⁠”

“⁠서울입니다⁠, 교수님⁠.⁠”

선영이 칫솔을 확인하듯 가슴 주머니를 만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

오전 열 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회의장⁠. 반원으로 놓인 위원석 아래 증인석과 참고인석이 한 줄로 있었다⁠. 방청석 맨 뒤 줄에 본철과 경희가 앉았다⁠. 본철은 양복을 입었는데 넥타이가 장례식장 완장처럼 팔뚝에 비해 작아 보였다⁠.

보건복지부 차관이 먼저 답변했다⁠. 중증 환자의 병원을 광역상황실이 고르는 방식을 이달부터 전국으로 넓힌다고 했다⁠. 위원회에 올라온 개정안⁠, 병원을 못 정하면 상황실이 지정하고 거부할 수 있는 사유를 법에 적고 중환자를 받아 최선을 다한 의사의 형사 책임을 면하게 하는 안을 정부도 지지한다고 했다⁠.

위원장이 참고인석을 보았다⁠. “⁠구미소방서 표동주 참고인⁠.⁠”

동주가 마이크를 당겼다⁠. 손바닥에 땀이 찼다⁠. 종이를 준비해 왔지만 펴지 않았다⁠.

“⁠7월 24일 저녁 일곱 시 삼십오 분에 열일곱 살 학생의 심장이 다시 뛰었습니다⁠. 여덟 시 사십 분까지 열 군데가 거절했습니다⁠. 아홉 시 사 분에 열두 번째가 거절했고⁠, 그때 학생의 심장이 다시 멎었습니다⁠. 저는 차를 돌려 들것을 밀고 대구 팔공대병원 응급실로 들어갔습니다⁠.⁠”

회의장이 조용했다⁠. 동주는 방청석 맨 뒤를 한 번 보았다⁠.

“⁠제가 들어간 자리는 소생실의 마지막 칸이었습니다⁠. 한 시간 뒤 칠곡에서 일흔두 살 어르신을 싣고 온 구급대가 같은 응급실에 전화했고⁠, 소생실이 찼다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어르신은 안동까지 가셨고 새벽 네 시 십이 분에 돌아가셨습니다⁠. 어르신 자리를 제가 먼저 잡았습니다⁠.⁠”

방청석에서 본철이 고개를 숙였다⁠. 경희가 본철의 팔에 손을 얹었다⁠.

“⁠그 열두 곳에 주말 이틀 동안 찾아가 이유를 들었습니다⁠. 의사가 혼자였고⁠, 아이를 볼 의사가 그 도시에 없었고⁠, 기계는 있는데 돌릴 사람이 없었습니다⁠. 거절한 사람은 많았는데 나쁜 사람은 없었습니다⁠. 지난달 말에는 제 반장님의 대동맥이 찢어졌습니다⁠. 대구 북쪽에 그 밤 가슴을 열 의사가 없어서 부산까지 갔습니다⁠. 반장님은 사셨고⁠, 다리를 못 쓰십니다⁠.⁠”

한 의원이 손을 들었다⁠. “⁠참고인⁠, 그러면 병원 지정은 찬성합니까⁠? 의료계는 지정이 강제 수용이라고 반대하는데⁠.⁠”

“⁠찬성합니다⁠. 지정해야 합니다⁠.⁠” 동주가 숨을 골랐다⁠. “⁠그리고 지정받은 병원에 의사가 있게 해 주십시오⁠. 둘 중 하나만 하시면 저는 또 문 앞에서 밀고 들어갈 겁니다⁠.⁠”

*

“⁠증인 탁선영⁠.⁠”

선영이 마이크를 당겼다⁠. 칫솔은 주머니에 그대로 있었다⁠. 맨 앞 줄 카메라가 칫솔을 잡았다⁠.

“⁠대구 팔공대병원 응급실 전문의는 아홉에서 다섯이 됐습니다⁠. 작년 가을 전공의들이 돌아왔을 때도 응급의학과 자리는 절반이 채 안 찼습니다⁠. 저는 지난 열 해 동안 소장을 세 번 받았습니다⁠. 세 번 다 이겼고⁠, 이긴 날마다 집에 가서 울었습니다⁠.⁠” 선영의 목소리는 국회에서도 낮았다⁠. “⁠저는 지정에 반대합니다⁠. 최종 치료를 할 사람이 없는 병원에 환자를 지정하면 환자는 두 번 옮겨지고⁠, 받은 의사는 법정에 섭니다⁠. 면책과 배후 진료 없이 지정만 하시면 남은 다섯도 나갑니다⁠.⁠”

위원장이 동주와 선영을 번갈아 보았다⁠. “⁠두 분 의견이 정면으로 다르네요⁠. 표 참고인⁠, 증인 말에 할 말 있습니까⁠?⁠”

동주가 마이크를 당겼다⁠. 선영을 보았다⁠. 선영도 동주를 보았다⁠. 둘 사이에 빈 의자 하나가 있었다⁠.

“⁠선생님 말씀이 맞습니다⁠. 지정만 하면 의사가 나갑니다⁠. 그런데 지정 안 하면 저희가 문 앞에서 열한 번 집니다⁠. 선생님은 거절할 때마다 지고⁠, 저는 거절당할 때마다 집니다⁠. 지는 자리를 법이 정해 주면 적어도 매일 밤 같은 데서 싸우지는 않습니다⁠.⁠”

“⁠표 반장님이 밀고 들어온 날⁠, 저도 지고 칠곡 어르신도 졌어요⁠.⁠” 선영이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밀고 들어오는 걸 법으로 만들면 매일 밤 누가 져요⁠?⁠”

“⁠거절을 법으로 만들면요⁠?⁠”

선영이 대답하려다 입을 닫았다⁠. 위원석 한가운데서 다른 의원이 서류 한 장을 들어 올렸다⁠.

“⁠증인⁠, 위원회가 요구해서 받은 자료입니다⁠. 팔공대병원 7월 24일 밤 수술실 사용 기록과 흉부외과 당직표⁠. 여덟 시부터 열한 시까지 흉부외과 수술방 두 개는 모두 비어 있었습니다⁠. 당직은 마재국 교수였고요⁠. 증인은 그 밤 구급대원에게 흉부외과가 수술 중이라고 했습니까⁠?⁠”

회의장의 공기가 한꺼번에 무거워졌다⁠. 참고인석 끝에서 순영이 두 손을 무릎 위에 포갰다⁠. 동주는 선영의 옆얼굴을 보았다⁠. 선영은 서류를 보지 않고 마이크를 조금 더 당겼다⁠.

“⁠네⁠. 제가 거짓말했습니다⁠.⁠”

카메라 셔터 소리가 한꺼번에 터졌다⁠.

“⁠마재국 교수님은 당직실에 계셨습니다⁠. 작년 수술 뒤 형사 재판을 받고 계셔서 외부 응급 환자를 받지 않기로 하셨고⁠, 제가 그 밤 전화했을 때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구급대원에게 수술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안 된다는 말보다 수술 중이라는 말을 들어야 문 앞의 싸움이 짧아집니다⁠. 저는 그 밤 그분을 지켰습니다⁠. 그 아이 대신 그분을 골랐습니다⁠.⁠” 선영이 숨을 한 번 쉬었다⁠. “⁠그분은 지난달 병원을 그만두셨습니다⁠. 이 자료가 오기 전에요⁠. 지금 대구 북쪽에는 밤에 심장을 여는 의사가 없습니다⁠. 제 거짓말이 그분을 열 달 더 붙잡아 두었고⁠, 그 거짓말이 들키자 그분이 나갔습니다⁠. 둘 다 제가 했습니다⁠.⁠”

“⁠증인⁠, 그 거짓말 때문에 환자가 위험해졌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거짓말이 없었으면 그분은 작년에 나갔다고도 생각합니다⁠. 둘 다 사실입니다⁠. 어느 것이 더 나았는지는 저도 모릅니다⁠.⁠”

*

열두 시 반⁠, 위원장이 정회를 선언했다⁠. 국회 구내식당에서 동주와 선영이 같은 줄에 붙었다⁠. 식판에 제육볶음과 미역국이 담겼다⁠. 둘은 빈 자리를 찾다가 같은 탁자에 마주 앉았다⁠. 순영은 화장실에 갔다⁠.

선영은 자리에 앉자마자 미역국에 밥을 말아 숟가락을 쉬지 않고 움직였다⁠. 동주도 그랬다⁠. 삼 분이 안 되어 두 식판이 거의 비었다⁠. 옆 탁자에서 정장 차림의 보좌관 둘이 두 사람을 신기한 듯 보았다⁠.

“⁠구급대원도 밥을 이렇게 먹어요⁠?⁠” 선영이 물었다⁠.

“⁠먹다가 출동 나가면 못 먹으니까요⁠.⁠”

“⁠응급실도 그래요⁠. 먹다가 심정지 오면 끝이에요⁠.⁠” 선영이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아까 그 서류⁠, 반장님이 요구한 거죠⁠?⁠”

“⁠예⁠.⁠”

“⁠잘하셨어요⁠. 그 말은 진심이에요⁠. 화난 것도 진심이고요⁠.⁠”

“⁠둘 다 진심인 거⁠, 이제 압니다⁠.⁠”

순영이 식판을 들고 왔다가 거의 빈 두 식판을 보고 멈췄다⁠. “⁠두 분 밥을 마셨어요⁠?⁠”

“⁠참고인 하순영⁠.⁠”

순영이 마이크를 당겼다⁠. 목소리가 처음 한 마디에서 떨렸다가 다음 마디부터 가라앉았다⁠.

“⁠팔공대 응급실 수간호사 하순영입니다⁠. 7월 24일 밤 여덟 시 십오 분⁠, 수간호사 자리 컴퓨터에서 흉부외과 수술방 두 개가 비어 있는 것을 봤습니다⁠. 아홉 시 십오 분 마 교수님께 콜을 드린 것도 저입니다⁠. 저는 그 사실을 남편에게 말했고⁠, 남편이 국회에 자료를 요구했습니다⁠.⁠”

방청석이 웅성거렸다⁠. 위원장이 의사봉을 한 번 두드렸다⁠.

“⁠그리고 하나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번 달에 저희 응급실 간호사 둘이 그만둡니다⁠. 지난달 말에 저는 부산까지 가는 구급차에 탔습니다⁠. 대구 북쪽에 밤에 심장을 열 의사가 없어서요⁠. 응급실은 거짓말로 하루를 버티고⁠, 거짓말이 들키면 사람이 나갑니다⁠. 거짓말 안 하고 버틸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저는 그것만 부탁드리러 왔습니다⁠.⁠”

*

오후 다섯 시⁠, 회의장 앞 복도⁠. 기자들이 선영을 둘러쌌다가 흩어졌다⁠. 선영이 벽에 등을 기댔다⁠. 순영이 생수 한 병을 건넸다⁠. 선영이 받아 반을 마셨다⁠.

“⁠순영 선생님⁠, 내일부터 응급실 아니래요⁠. 법무팀에서 연락 왔어요⁠. 외래로⁠.⁠”

“⁠압니다⁠. 저한테도 왔어요⁠.⁠”

“⁠미안해요⁠.⁠”

“⁠교수님은 미안하다는 말 하시면 안 된다면서요⁠. 법무팀이⁠.⁠”

선영이 처음으로 소리 내어 웃었다⁠. 웃다가 기침을 했다⁠.

복도 끝에서 본철이 걸어왔다⁠. 경희가 계란 봉지를 든 채 뒤따랐다⁠. 본철이 동주와 선영 앞에 멈췄다⁠. 동주와 선영은 나란히 서 있었다⁠. 본철은 둘을 한참 보았다⁠.

“⁠둘 다 맞는 말 하데요⁠.⁠” 본철의 목소리가 장례식장 때보다 낮았다⁠. “⁠둘 다 맞는 말 하는데⁠, 우리 아버지는 누가 받아 줍니까⁠?⁠”

동주도 선영도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 못 하는 거 압니다⁠. 대답할 수 있으면 오늘 여기 안 왔겠지⁠.⁠” 본철이 경희의 손에서 계란 봉지를 받아 동주의 손에 쥐여 주었다⁠. “⁠남았어요⁠. 내려가는 기차에서 드세요⁠. 아직 따뜻합니다⁠.⁠”

본철이 몸을 돌렸다⁠. 경희가 동주와 선영에게 고개를 숙이고 본철을 따라갔다⁠.

*

9월 17일 목요일 저녁 일곱 시⁠, 칠곡 아파트 식탁에서 동주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기사 알림이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응급의료법 개정안 의결 — 병원 지정·거부 사유·형사 면책⁠」⁠.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가 남았다고 했다⁠.

순영이 화면을 보았다⁠. 준이가 계란 껍질을 까며 화면을 보았다⁠.

“⁠아빠⁠, 이거 좋은 거야⁠?⁠”

“⁠모르겠다⁠. 반은 좋고 반은 무섭다⁠.⁠”

“⁠그럼 반만 좋아하면 되잖아⁠.⁠”

휴대전화에 문자가 하나 더 들어왔다⁠. 「⁠팔공대 탁선영⁠」⁠. 「⁠10월 1일부터 차 다시 타신다면서요⁠. 센터장은 내려놨어요⁠. 응급실은 그대로예요⁠. 오는 환자는 받아요⁠. 꿰맬 데 없어도 받아요⁠. 그건 법 말고 제가 정했어요⁠」⁠.

동주는 답을 쓰지 않고 휴대전화를 식탁 위에 엎어 놓았다⁠. 계란 하나를 집어 식탁 모서리에 톡 쳤다⁠. 껍질에 금이 한 줄 갔다⁠. 아직 미지근했다⁠.

9화는 어땠나요?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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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금빵2026.11.06· 9화

    준이가 「그럼 반만 좋아하면 되잖아」 하는데 울다가 웃었어요. 청문회에서 선영 교수가 거짓말했다고 말하는 장면도 숨 막혔고요. 「오는 환자는 받아요. 그건 법 말고 제가 정했어요」라는 문자가 오래 남네요.

    • 금나율작가2026.11.06

      법이 바뀌어도 받는 손은 사람 손이라서요. 동주가 다시 구급차에 오르는 10월 1일이 마지막 화입니다.

청문회 증인석 · 응급실 구급차 · 나오늘 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