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363자)

받겠습니다

응급실 구급차 · 금나율

10월 1일 목요일 아침 여덟 시⁠, 구미 센터 탈의실 사물함에서 동주는 주황 활동복을 꺼냈다⁠. 두 달 동안 걸어만 둔 옷에서 사물함 냄새가 났다⁠. 소매를 꿰자 어깨가 꼭 맞았다⁠. 서랍에 넣어 두었던 청진기를 목에 걸었다⁠. 차가운 쇠가 쇄골에 닿았다⁠.

차고에서 가람이 구급차 운전석 문을 열어 놓고 의자를 앞으로 당기고 있었다⁠. 태섭이 앉던 의자였다⁠. 등받이에 태섭이 붙여 놓은 쿠션이 그대로 있었다⁠.

“⁠반장님⁠, 오늘부터 제가 몰아요⁠. 새 운전 반장님은 다음 주에 오신대요⁠.⁠”

“⁠니가 몰면 십오 분이 이십오 분이다⁠.⁠”

“⁠그건 도 반장님 말씀이잖아요⁠.⁠” 가람이 시동을 걸고 계기판을 두드렸다⁠. “⁠근데 진짜예요⁠? 사이렌 켜면 연비 좋아져요⁠?⁠”

“⁠모른다⁠. 열네 해 탔는데 한 번도 안 재 봤다⁠.⁠”

가람이 쿠션을 떼려다가 그대로 두었다⁠. 대신 쿠션 위에 자기 목베개를 하나 더 얹었다⁠. 동주가 조수석에 올라 무전기를 켰다⁠. 첫 출동은 아홉 시 십 분⁠, 계단에서 미끄러진 할머니의 손목이었다⁠. 할머니는 구급차에 오르면서 구미 새솔병원 말고 다른 데로 가 달라고 했다⁠. 거기 응급실장이 무섭게 생겼다고⁠. 동주는 새솔병원으로 갔다⁠. 응급실장은 미숫가루 컵을 든 채 들것을 받았고⁠, 동주를 알아보고 턱으로 자기 의자를 가리켰다⁠. 앉으라는 뜻이 아니라 오늘은 비켜 줄 생각이 없다는 뜻이었다⁠.

*

오후 두 시⁠, 구미 시내 재활병원 3층 복도에서 태섭이 보행기를 잡고 서 있었다⁠. 환자복 바지 아래 발목이 가늘어져 있었다⁠. 옆에서 물리치료사가 허리띠를 잡았다⁠. 태섭의 딸이 복도 끝에서 휴대전화를 들고 찍고 있었다⁠.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를 접고 지난주에 돌아왔다고 했다⁠.

“⁠아빠⁠, 한 발만 더⁠.⁠”

“⁠찍지 마라⁠. 쇼츠 각이라 카지 마라⁠.⁠”

“⁠그 말 아빠가 왜 알아⁠?⁠”

“⁠막내가 맨날 그란다⁠.⁠”

태섭이 보행기를 밀고 한 발을 내디뎠다⁠. 오른발이 바닥을 끌다가 떨어졌다⁠. 두 발⁠, 세 발⁠. 네 번째 발에서 무릎이 흔들렸고 물리치료사가 허리띠를 당겼다⁠. 태섭이 숨을 몰아쉬며 동주를 보았다⁠.

“⁠봐라⁠. 세 발이다⁠. 지난주에는 한 발이었다⁠.⁠”

“⁠다음 주에는 다섯 발입니까⁠?⁠”

“⁠다음 주에는 니 차 운전석까지 걸어간다⁠.⁠” 태섭이 휠체어에 털썩 앉았다⁠. “⁠의사가 그라더라⁠. 감각이 반은 돌아왔고⁠, 나머지 반은 모르겠다꼬⁠. 모르겠다는 의사는 처음 봤다⁠. 정직하데⁠.⁠”

복도 휴게실 텔레비전에 국회 본회의 중계가 나왔다⁠. 화면 아래에 자막이 떴다⁠. 「⁠응급의료법 개정안 가결 — 재석 219명 중 찬성 172명⁠」⁠. 중증 환자의 병원을 상황실이 지정하고⁠, 거부할 수 있는 사유를 법에 적고⁠, 중환자를 받아 최선을 다한 의료진의 형사 책임을 면하게 한다고 아나운서가 읽었다⁠. 시행은 공포하고 여섯 달 뒤부터였다⁠.

태섭의 딸이 물었다⁠. “⁠아빠⁠, 이거 아빠 일이야⁠?⁠”

“⁠내 일이다⁠. 반은⁠.⁠” 태섭이 화면을 보았다⁠. “⁠법이 내 다리를 돌려주지는 않는다⁠. 그래도 다음에 누가 등이 찢어지면⁠, 부산까지 안 가도 될 수는 있다⁠. 될 수는⁠.⁠”

딸이 아버지의 휠체어 손잡이를 쥐었다⁠. 딸의 손목에 호주에서 사 왔다는 가죽 팔찌가 있었다⁠. 딸이 휴대전화를 들어 이번에는 아버지가 아니라 텔레비전 자막을 찍었다⁠.

“⁠아빠 약은 이제 내가 챙겨⁠.⁠”

“⁠가람이가 챙긴다 캤는데⁠.⁠”

“⁠가람 언니가 나한테 넘겼어⁠. 알람까지⁠.⁠” 딸이 휴대전화 화면을 보여 주었다⁠. 「⁠아침 일곱 시 — 아빠 약⁠. 안 먹으면 호주 다시 간다⁠」⁠.

태섭이 화면을 오래 보더니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았다⁠. 동주는 못 본 척 텔레비전으로 눈을 돌렸다⁠.

*

오후 네 시⁠, 센터 차고 앞 플라스틱 의자에 백윤솔이 앉아 있었다⁠. 교복 위에 카디건을 입었고⁠, 무릎 위에 편의점 봉지가 있었다⁠. 남경희가 옆에 서서 딸의 머리를 쓸었다⁠. 9월 중순부터 학교에 다시 나간다고 했다⁠.

“⁠구급대원님들 드세요⁠. 참치마요예요⁠. 이번엔 아무도 안 뺏어 가요⁠.⁠”

가람이 봉지를 받아 들고 하나를 바로 뜯었다⁠. “⁠우리 사장님⁠, 이번엔 할인해 주셨어⁠?⁠”

“⁠한 개 사면 한 개 더요⁠. 저 보더니 울면서 줬어요⁠. 아저씨가 운 거 처음 봤어요⁠.⁠” 윤솔이 동주를 보았다⁠. 목소리는 이제 쉬지 않았다⁠. “⁠반장님⁠, 저 학교에서 심폐소생술 수업 신청했어요⁠. 다음 달에 해요⁠. 그 아저씨처럼 하려고요⁠. 이십 년 뒤에도 기억나게⁠.⁠”

“⁠팔 굽히지 마라⁠. 체중으로 눌러라⁠.⁠”

“⁠알아요⁠. 그 아저씨가 벌써 가르쳐 줬어요⁠. 편의점 계산대에서요⁠.⁠”

윤솔이 봉지에서 삼각김밥 하나를 더 꺼내 손에 쥐었다⁠. 쥔 채로 한참 말이 없다가 입을 열었다⁠.

“⁠추석에 본철 아저씨랑 할아버지 산소 다녀왔어요⁠. 칠곡 포도밭 옆이에요⁠. 엄마도 갔어요⁠. 아저씨가 포도 한 상자 따 줬어요⁠.⁠” 윤솔이 김밥 비닐을 손톱으로 긁었다⁠. “⁠아저씨가 그러는데⁠, 할아버지는 열일곱 살 때 피난 갔대요⁠. 저랑 같은 나이에⁠. 산소 앞에서 저한테 그 얘기 해 줬어요⁠. 왜 해 줬는지는 말 안 했어요⁠.⁠”

경희가 딸의 어깨를 감쌌다⁠. 동주는 대답할 말을 찾지 않았다⁠. 차고 안 구급차 뒤 칸 들것 위에 오후 햇빛이 비스듬히 들어와 있었다⁠.

*

저녁 일곱 시⁠, 순영이 준이 손을 잡고 센터 차고로 들어왔다⁠. 순영의 다른 손에 보온 도시락 가방이 들려 있었다⁠. 첫날 저녁이라 김치찌개를 끓여 왔다고 했다⁠. 준이는 차고에 들어서자마자 구급차 뒷문으로 달려가 들것을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아빠⁠, 이거 오늘 누구 태웠어⁠?⁠”

“⁠손목 다친 할머니⁠.⁠”

“⁠그 할머니 응급실 들어갔어⁠?⁠”

“⁠들어갔다⁠. 바로⁠.⁠”

준이가 고개를 끄덕이고 가람에게 가서 운전석에 앉혀 달라고 졸랐다⁠. 가람이 준이를 안아 올려 태섭의 쿠션 위에 앉혔고⁠, 사이렌 단추를 가리키며 이것만은 누르면 안 된다고 세 번 말했다⁠. 준이는 세 번 다 네⁠, 하고 대답하며 단추만 보았다⁠.

순영은 차고 앞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도시락 뚜껑을 열었다⁠. 외래로 옮긴 지 두 주가 지났다⁠. 아침 여덟 시에 출근해 다섯 시 반에 퇴근했고⁠, 밤에 집에서 잤다⁠.

“⁠외래는 밤에 전화가 안 와⁠.⁠” 순영이 숟가락을 동주에게 건넸다⁠. “⁠이상해⁠. 자다가 자꾸 깨⁠. 수화기 소리가 안 나서⁠.⁠”

“⁠다시 응급실 갈 수 있나⁠?⁠”

“⁠교수님이 간호부에 말해 놨대⁠. 내년 봄에⁠. 그 전에 둘이 더 그만두면 더 빨리⁠.⁠” 순영이 웃었다⁠. 웃음이 짧지 않았다⁠. “⁠당신 그 얼굴 하지 마⁠. 내가 고른 거야⁠.⁠”

동주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문자였다⁠. 「⁠마재국⁠」⁠. 「⁠개정안 통과 축하해요⁠. 면책 조항은 시행 전 사건이라 내 재판엔 소용없대요⁠. 변호사가 웃더군요⁠. 그래도 다음 사람한테는 소용 있겠죠⁠. 다음 달 1심 선고예요⁠. 끝나면 어디서든 다시 열어 볼 생각이에요⁠. 심장 말고 수술방 문⁠」⁠.

동주가 화면을 순영에게 보여 주었다⁠. 순영이 한참 보더니 김치찌개 국물을 한 숟가락 떠서 동주의 밥 위에 얹었다⁠.

“⁠먹어⁠. 첫날이잖아⁠. 출동 나가면 못 먹어⁠.⁠”

밤 열 시 사십 분⁠, 단말기가 울렸다⁠. 칠곡 센터 구급차가 모두 출동 중이라 구미가 대신 가는 지원 출동이었다⁠.

「⁠흉통 · 70대 여성 · 칠곡 포도밭 농가 · 아들 신고⁠」

주소를 읽은 가람이 핸들을 잡은 채 동주를 돌아보았다⁠. 동주도 주소를 다시 읽었다⁠. 장례식장 화환 맨 앞에 「⁠포도작목반 일동⁠」이 있던 집이었다⁠.

십일 분 뒤⁠, 포도 덩굴이 마당까지 내려온 집 앞에 구급차가 멈췄다⁠. 현관 불이 켜져 있었고⁠, 문 앞에 구본철이 맨발로 서 있었다⁠. 동주를 보고 본철의 얼굴이 굳었다가 곧 풀렸다⁠.

“⁠어머니가 저녁 드시고 가슴이 조인다고⁠…⁠…⁠.⁠”

방바닥에 일흔 살쯤 된 여자가 모로 누워 왼쪽 가슴을 쥐고 있었다⁠.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동주가 심전도 패드를 붙였다⁠. 화면에 파형이 올라왔다⁠. 한 구간이 둥그렇게 솟아 있었다⁠. 심장에 피를 대는 혈관 하나가 막힌 모양이었다⁠. 막힌 혈관은 심장내과 의사가 다리나 손목으로 관을 넣어 뚫어야 했고⁠, 빠를수록 심장이 덜 죽었다⁠.

“⁠심근경색입니다⁠. 큰 병원 가야 합니다⁠. 지금⁠.⁠”

본철이 어머니의 신발을 챙기다 손을 멈췄다⁠. 동주를 보았다⁠.

“⁠이번에도 열두 군데 돌립니까⁠?⁠”

“⁠이번엔 안 그럴 겁니다⁠.⁠”

“⁠그걸 어떻게 압니까⁠?⁠”

동주는 대답 대신 들것 다리를 펼쳤다⁠.

*

밤 열한 시 이 분⁠, 구급차 뒤 칸에서 동주는 왼손으로 본철 어머니의 손을 쥐고 오른손으로 휴대전화를 귀에 댔다⁠. 본철은 들것 발치의 접이식 의자에 무릎을 붙이고 앉았다⁠. 가람이 사이렌을 켰다⁠.

광역상황실과 구급상황관리센터에 환자 정보가 동시에 넘어갔다⁠. 단말기 화면에 글자가 떴다⁠. 「⁠팔공대병원 수용 가능 — 심장내과 시술팀 호출 중⁠」⁠. 동주는 화면을 보고도 전화를 걸었다⁠. 열네 해 동안 몸에 밴 순서였다⁠. 신호가 한 번 가고 받았다⁠.

“⁠팔공대 응급실 탁선영입니다⁠.⁠”

동주가 불렀다⁠. 일흔⁠, 여자⁠, 가슴 통증 사십 분⁠, 심전도 솟음⁠, 혈압 백⁠.

“⁠데려와요⁠. 심장내과 불렀어요⁠. 시술실 열어 놓을게요⁠.⁠” 선영의 목소리는 여전히 낮았다⁠. “⁠흉부외과는 아직 없어요⁠. 오늘은 심장내과로 되는 환자라 다행이에요⁠.⁠”

“⁠알겠습니다⁠.⁠”

“⁠반장님⁠.⁠” 선영이 잠깐 말을 끊었다⁠. “⁠오늘 첫날이죠⁠? 축하해요⁠. 이번 거는 진짜로요⁠.⁠”

전화가 끊겼다⁠. 본철이 들것 발치에서 동주를 보았다⁠.

“⁠받는답니까⁠?⁠”

“⁠받는답니다⁠.⁠”

본철이 어머니의 발목을 손으로 감쌌다⁠. 굵은 손가락이 떨렸다⁠. 한참 뒤에 본철이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구급대 고소는 지난주에 취하했어요⁠. 병원 거는 아직 안 했고요⁠. 그건 판사가 끝까지 정하라 하려고요⁠. 누가 침대를 정하는지⁠.⁠”

“⁠예⁠.⁠”

“⁠근데 오늘은 고맙습니다⁠. 이 말은 하겠습니다⁠.⁠” 본철이 고개를 들었다⁠. 눈가가 붉었다⁠. “⁠아버지 때는 못 했으니까⁠.⁠”

본철 어머니가 눈을 떴다⁠. 아들을 보고⁠, 낯선 주황 옷을 보았다⁠. 산소마스크 너머로 작게 물었다⁠. 여가 어데고⁠? 동주가 마스크 가까이 얼굴을 숙였다⁠. 대구 가는 길입니다⁠, 어머니⁠. 받아 주는 데로 갑니다⁠.

*

밤 열한 시 이십일 분⁠, 구급차가 팔공대병원 진입로로 들어갔다⁠. 앞유리 너머에서 빨간 「⁠응급실⁠」 간판이 다가왔다⁠. 처음에는 손바닥만 하다가⁠, 신호등만 해지고⁠, 진입로 턱을 넘을 때에는 앞유리 위쪽을 다 채웠다⁠.

자동문이 먼저 열렸다⁠. 탁선영이 초록 수술복 위에 가운을 걸치고 나와 있었다⁠. 가운 가슴 주머니에 볼펜 두 자루와 칫솔이 꽂혀 있었다⁠. 뒤에 젊은 간호사 둘이 들것을 받을 자세로 서 있었다⁠. 순영은 없었다⁠. 순영은 낮에 외래 진료실에서 일했고⁠, 지금 칠곡 아파트에서 준이를 재우고 있을 시간이었다⁠.

가람이 차를 대자마자 동주가 뒷문을 열었다⁠. 들것 다리를 내리는데 선영이 먼저 들것 머리맡 난간을 잡았다⁠.

“⁠내리세요⁠.⁠”

동주가 들것 발치 난간을 잡았다⁠. 본철이 들것 옆에 붙어 어머니의 손을 놓지 않았다⁠. 바퀴가 진입로 바닥에 닿았다⁠. 선영과 동주가 같은 들것을 양 끝에서 밀었다⁠. 자동문이 열린 채 기다렸고⁠, 빨간 간판 불빛이 들것 위 흰 시트와 동주의 주황 소매와 선영의 칫솔 끝을 차례로 붉게 물들였다⁠. 들것 바퀴가 문턱을 넘어 응급실 리놀륨 바닥 위로 굴러 들어갔다⁠.

여기까지가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입니다

작가를 구독하면 다음 화가 올라올 때 알려 드립니다.

10화는 어땠나요?

댓글 0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