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353자)

새벽 두 시, 반장의 등

응급실 구급차 · 금나율

8월 31일 월요일 새벽 한 시 사십 분⁠, 구미 센터 휴게실 탁자 위에 치킨 상자 두 개가 열려 있었다⁠. 잠이 안 와서 동주가 사 들고 왔다⁠. 순영과 준이가 왜관에 간 지 열흘째였고⁠, 아파트 냉장고에는 크레파스 그림과 김치통만 남아 있었다⁠. 집이 조용해서 동주는 밤마다 텔레비전을 켜 놓고 잤고⁠, 켜 놓아도 잠이 오지 않는 밤에는 이렇게 센터로 왔다⁠.

“⁠징계받은 사람이 야식을 사 오네⁠.⁠” 태섭이 닭다리를 집었다⁠. “⁠견책이라며⁠? 견책이 뭐고⁠?⁠”

“⁠혼나는 겁니다⁠. 종이로⁠.⁠”

“⁠종이로 혼나고 치킨을 사 오면 남는 장사다⁠.⁠” 태섭이 닭다리를 한 입 물었다⁠. “⁠10월부터 차 다시 탄다며⁠. 그때까지 내가 니 자리 데워 놓으께⁠.⁠”

가람이 소스를 찍다가 말했다⁠. “⁠반장님⁠, 금요일부터 상황판 보셨어요⁠? 팔공대 흉부외과 칸이요⁠.⁠”

가람이 단말기를 내밀었다⁠. 팔공대 칸에 빨간 글자가 떠 있었다⁠. 「⁠흉부외과 응급수술 불가 — 전문의 부재⁠」⁠. 전에는 밤마다 떴다 지던 글자가 이제 시각 표시 없이 붙박여 있었다⁠.

“⁠사흘 전부터 안 꺼져요⁠.⁠”

동주는 화면을 오래 보았다⁠. 마재국이 양복 바지 위로 수술복을 꿰어 입다 비틀거리던 팔이 생각났다⁠.

태섭이 의자에서 일어나 정수기로 가다가 멈췄다⁠. 손에 든 종이컵이 바닥에 떨어졌다⁠. 물이 신발 위로 쏟아졌다⁠.

“⁠아이고⁠.⁠”

태섭이 등을 짚었다⁠. 짚은 손이 등 뒤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무릎이 꺾였다⁠. 동주가 의자를 차고 일어나 태섭의 겨드랑이를 받쳤다⁠.

“⁠반장님⁠!⁠”

“⁠등이⁠…⁠… 등이 찢어진다⁠. 누가 칼로 쭉 긋는 거 맞다⁠.⁠” 태섭의 이마에 땀이 한 번에 맺혔다⁠. “⁠아래로 내려간다⁠. 허리로⁠.⁠”

*

새벽 한 시 오십이 분⁠, 휴게실 바닥에 태섭을 눕히고 가람이 혈압계 띠를 왼팔에 감았다⁠. 동주는 오른팔에 다른 띠를 감았다⁠.

“⁠왼쪽 백구십⁠.⁠”

“⁠오른쪽 백사십⁠.⁠”

두 팔의 혈압이 오십이나 차이가 났다⁠. 동주와 가람이 동시에 서로를 보았다⁠. 대동맥⁠, 심장에서 몸통으로 피를 내보내는 굵은 혈관의 벽이 찢어지면 이렇게 팔마다 혈압이 달라졌다⁠. 찢어진 틈으로 피가 파고들면 몇 시간 안에 터질 수 있었다⁠. 고칠 방법은 가슴을 열고 꿰매는 것 하나였다⁠.

“⁠대동맥 박리 의심이다⁠. 가람아⁠, 차 시동 걸어라⁠. 니가 몰아라⁠.⁠”

“⁠제가요⁠?⁠”

“⁠내는 뒤에 탄다⁠.⁠”

가람이 차 키를 쥐고 달려 나갔다⁠. 동주와 옆 센터에서 지원 온 대원이 태섭을 들것에 옮겼다⁠. 태섭이 들것 위에서 동주의 손목을 붙잡았다⁠.

“⁠막내가 모는 차 타는 게 등보다 더 무섭다⁠.⁠”

“⁠사이렌 켜면 연비 좋아집니다⁠. 반장님이 그랬습니다⁠.⁠”

“⁠그건 내 차 얘기다⁠.⁠”

*

새벽 두 시⁠, 구급차 뒤 칸에서 동주는 왼손으로 태섭의 손을 쥐고 오른손으로 휴대전화를 귀에 댔다⁠. 운전석의 가람이 사이렌을 켜고 핸들을 두 손으로 꽉 잡았다⁠. 앞만 보는 가람의 어깨가 귀에 붙어 있었다⁠.

119구급상황관리센터 상황요원이 다른 줄로 같이 돌렸다⁠. 대구 북쪽에서 밤에 가슴을 열 흉부외과가 남은 병원은 없었다⁠. 남천대는 흉부외과가 다른 환자를 수술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상황판 글자와 전화 목소리가 같았다⁠. 대구 남쪽의 두 병원도 안 된다고 했다⁠. 상황요원의 목소리가 떨렸다⁠.

“⁠표 반장님⁠, 부산까지 알아볼까요⁠?⁠”

“⁠알아보이소⁠. 그 사이에 저는 팔공대 걸어 보겠습니다⁠.⁠”

동주는 숫자를 눌렀다⁠. 신호가 두 번 가고 받았다⁠.

“⁠팔공대 응급실 탁선영입니다⁠.⁠”

순영이 아니라 선영이 직접 받았다⁠. 동주가 불렀다⁠. 쉰다섯⁠, 남자⁠, 구급대 운전원⁠, 갑자기 찢어지는 등 통증⁠, 양팔 혈압 차이 오십⁠, 대동맥 박리 의심⁠.

“⁠흉부외과 없어요⁠.⁠” 선영이 말했다⁠. 말을 바로 이었다⁠. “⁠데려와요⁠. 받을게요⁠. 시티 찍고 혈압 내려 놓고⁠, 꿰맬 데는 제가 찾을게요⁠.⁠”

동주는 수화기를 귀에서 떼고 화면을 보았다⁠. 다시 귀에 댔다⁠.

“⁠선생님⁠, 흉부외과 없다 하셨습니다⁠.⁠”

“⁠들었어요⁠. 제가 말했으니까⁠.⁠” 선영의 목소리는 7월 24일 밤과 똑같이 낮았다⁠. “⁠최종 치료 못 하는 거랑 받는 건 다른 일이에요⁠. 반장님이 저한테 가르쳐 줬잖아요⁠. 이십 분이면 와요⁠?⁠”

“⁠십오 분이요⁠.⁠” 운전석에서 가람이 소리쳤다⁠.

태섭이 들것 위에서 눈을 떴다⁠. 땀이 눈썹에서 떨어졌다⁠.

“⁠동주야⁠, 막내가 십오 분이라 카면 이십오 분이다⁠.⁠”

“⁠반장님⁠, 지금 저 칭찬하시는 거예요⁠?⁠”

“⁠욕하는 기다⁠. 앞에 봐라⁠.⁠”

*

새벽 두 시 이십삼 분⁠, 팔공대 진입로 빨간 간판 아래에서 자동문이 먼저 열렸다⁠. 탁선영과 하순영이 들것 끝을 받았다⁠. 순영은 동주를 한 번 보고 바로 태섭의 팔에 바늘을 꽂았다⁠. 소생실 1번으로 들어갔다⁠.

혈압을 내리는 약이 들어가고⁠, 이동식 엑스선이 찍히고⁠, 이십 분 뒤 시티 화면이 떴다⁠. 선영이 화면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심장 바로 위에서 시작한 대동맥이 두 겹으로 갈라져 있었다⁠. 안쪽 벽이 찢어져 펄럭이는 막처럼 보였다⁠.

“⁠스탠퍼드 에이형⁠. 심장 바로 위부터 찢어졌어요⁠. 수술해야 해요⁠. 몇 시간 안에⁠.⁠”

선영이 수화기를 들었다⁠. 번호를 누르고 오래 기다렸다⁠. 동주는 1번 유리 벽 앞에 서 있었다⁠. 선영이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마 교수님한테 걸었어요⁠. 안 받으세요⁠. 받으셔도 못 오세요⁠. 이제 이 병원 사람이 아니라 수술방을 열 수가 없어요⁠.⁠”

순영이 태섭의 이마에 젖은 거즈를 얹었다⁠. 태섭이 눈을 감은 채 웃었다⁠.

“⁠수간호사님⁠, 우리 동주가 집에서도 이래 고집 셉니까⁠?⁠”

“⁠집에서는 더 세요⁠.⁠”

“⁠그라믄 내가 참는다⁠. 나는 이 차만 같이 타면 되니까⁠.⁠”

선영이 소생실 밖으로 나와 동주 앞을 막았다⁠. 가운 주머니의 칫솔이 동주의 가슴께에 있었다⁠.

“⁠반장님⁠, 이것만 말할게요⁠.⁠” 선영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흔들렸다⁠. “⁠마 교수님이 아직 있었으면⁠, 저 깨웠을 거예요⁠. 이번엔⁠. 그날 밤처럼 수술 중이라고 안 했을 거예요⁠.⁠”

“⁠제가 쫓아냈습니다⁠.⁠”

“⁠반장님 혼자 쫓아낸 거 아니에요⁠.⁠” 선영이 고개를 저었다⁠. “⁠병원도 쫓아냈고⁠, 검사도 쫓아냈고⁠, 저도 거짓말로 붙잡아 두다가 놓쳤어요⁠. 근데 지금 그거 따질 시간 없어요⁠. 부산 동백대에 흉부외과가 있어요⁠. 방금 상황실에서 받겠대요⁠. 한 시간 반⁠.⁠”

“⁠가겠습니다⁠.⁠”

“⁠순영 선생님이 같이 가요⁠.⁠” 선영이 순영을 돌아보았다⁠. 순영은 이미 수액 펌프를 들것에 걸고 있었다⁠. “⁠제가 보내는 거예요⁠. 둘이 싸우지 말고⁠.⁠”

*

새벽 세 시 오 분⁠, 구급차가 중앙고속도로를 거쳐 부산으로 내려갔다⁠. 대구를 벗어나 남쪽으로 가는 길은 가로등이 띄엄띄엄했다⁠. 운전석의 가람은 이제 말이 없었다⁠. 뒤 칸에서 순영이 혈압 숫자를 오 분마다 불렀고⁠, 동주는 태섭의 손을 쥐고 있었다⁠.

“⁠동주야⁠.⁠” 태섭이 눈을 감은 채 말했다⁠. “⁠호주 딸한테는 말하지 마라⁠. 거기 지금 아침이다⁠. 아침부터 울면 하루가 길다⁠.⁠”

“⁠말씀 안 드리겠습니다⁠.⁠”

“⁠거짓말해도 된다⁠. 오늘은⁠.⁠” 태섭이 숨을 몇 번 골랐다⁠. “⁠혈압약은 니가 챙긴다 캤제⁠. 니가 안 챙겨서 이래 됐다⁠.⁠”

“⁠예⁠. 제 잘못입니다⁠.⁠”

“⁠니 잘못 아이다⁠. 내 잘못이다⁠.⁠” 태섭이 눈을 떴다⁠. 구급차 천장 등을 보았다⁠. “⁠봐라⁠, 이래 쉽다⁠. 내 잘못이다 카는 거⁠.⁠”

순영이 혈압을 불렀다⁠. 백십⁠. 약이 듣고 있었다⁠. 순영은 숫자를 부른 뒤 동주를 보았다⁠. 열흘 만에 처음으로 오래 보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동주도 하지 않았다⁠. 둘 사이에 들것이 있었고⁠, 들것 위에서 태섭이 둘을 번갈아 보더니 다시 눈을 감았다⁠.

“⁠둘 다 내 앞에서 그러지 마라⁠. 내 등 더 찢어진다⁠.⁠”

*

새벽 네 시 사십 분⁠, 부산 동백대병원 응급실 앞에 흉부외과 의사 둘이 나와 있었다⁠. 들것이 넘어갔다⁠. 다섯 시에 수술방 문이 닫혔다⁠. 문 위에 「⁠수술 중⁠」 불이 켜졌다⁠.

수술은 아홉 시간이었다⁠. 동주와 순영과 가람은 수술실 앞 의자에서 기다렸다⁠. 가람은 의자에 앉은 채 잠들었다가 깨서 운전대를 잡는 손 모양을 하고 다시 잠들었다⁠. 아침 일곱 시⁠, 동주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화면에 모르는 번호가 떴다⁠.

“⁠마재국입니다⁠.⁠” 낮고 느린 목소리였다⁠. “⁠선영이가 새벽에 전화했던데 자느라 못 받았어요⁠. 문자 보고 알았어요⁠. 부산 동백대 갔다면서요⁠. 거기 흉부외과 과장이 내 후배예요⁠. 방금 전화해 놨어요⁠. 손 빠른 사람이에요⁠.⁠”

“⁠교수님⁠.⁠”

“⁠고맙다는 말은 하지 마요⁠. 내가 거기 있었으면 대구에서 끝났을 일이에요⁠. 그 말 듣기 싫어서 전화한 거니까⁠.⁠” 마재국이 잠깐 말을 끊었다⁠. “⁠수술 끝나면 문자 하나만 줘요⁠. 숫자로⁠. 몇 시간 걸렸는지⁠.⁠”

전화가 끊겼다⁠. 동주는 휴대전화를 쥔 채 수술실 문 위의 빨간 불을 보았다⁠.

정오에 순영이 편의점에서 삼각김밥 셋을 사 왔다⁠. 참치마요였다⁠.

“⁠윤솔이가 이것만 먹는대서⁠.⁠” 순영이 하나를 동주에게 내밀었다⁠. “⁠당신 이것도 고르다가 한 시간 걸릴 거잖아⁠.⁠”

오후 두 시 십 분⁠, 「⁠수술 중⁠」 불이 꺼졌다⁠. 흉부외과 의사가 마스크를 내리며 나왔다⁠. 찢어진 대동맥을 인공 혈관으로 바꿨다고 했다⁠. 살았다고 했다⁠. 다만 다리 쪽으로 가는 피가 몇 시간 모자랐을 수 있어서⁠, 깨어나 봐야 안다고 했다⁠.

동주는 마재국에게 문자를 보냈다⁠. 「⁠아홉 시간⁠. 살았습니다⁠. 다리는 깨어나 봐야 안답니다⁠」⁠. 답은 일 분 만에 왔다⁠. 「⁠후배가 잘했네⁠. 다리는 기도하는 수밖에 없어요⁠. 의사가 이런 말 하면 안 되는데⁠」⁠. 가람이 어깨너머로 화면을 보다가 눈가를 손등으로 문질렀다⁠. 운전대를 쥐던 손 모양 그대로였다⁠.

*

9월 1일 화요일 아침 여덟 시⁠, 부산 동백대병원 중환자실에서 태섭이 눈을 떴다⁠. 관을 뺀 지 한 시간 만이었다⁠. 동주가 침대 옆에 서 있었다⁠. 태섭이 쉰 목소리로 동주를 불렀다⁠.

“⁠동주야⁠.⁠”

“⁠예⁠, 반장님⁠.⁠”

“⁠다리에 감각이 없다⁠.⁠”

동주는 태섭의 발을 쥐었다⁠. 발이 따뜻했다⁠. 따뜻한데 태섭은 동주가 발을 쥔 것을 몰랐다⁠. 동주는 손에 힘을 주었다⁠. 태섭은 천장만 보았다⁠.

“⁠이제 운전 안 해도 되겠네⁠.⁠” 태섭이 말했다⁠. 웃으려고 입꼬리를 올렸다가 내렸다⁠. “⁠막내가 몰면 되겠다⁠. 이십오 분 걸리는 걸로⁠.⁠”

동주는 대답하지 못하고 중환자실 밖으로 나왔다⁠. 복도 창가에 순영이 서 있었다⁠. 밤을 새운 얼굴에 마스크 자국이 붉었다⁠. 순영이 창밖의 부산 바다를 보다가 동주를 돌아보았다⁠.

“⁠나 청문회 나갈게⁠.⁠”

동주는 순영 앞에 멈췄다⁠.

“⁠그날 밤 수술실 화면 본 거 말할게⁠. 마 교수님이 왜 안 오셨는지도⁠. 마 교수님이 왜 그만두셨는지도⁠. 대구 북쪽에 밤에 심장 열 사람이 없어서 반장님이 부산까지 왔다는 것도⁠.⁠” 순영이 마스크를 벗어 손에 쥐었다⁠. “⁠당신 편 드는 거 아니야⁠. 교수님 편 드는 것도 아니야⁠. 오늘 이 길에서 본 걸 말할 거야⁠. 교수님한테는 내가 먼저 말할게⁠.⁠”

“⁠수간호사 자리 잃는다⁠.⁠”

“⁠알아⁠.⁠” 순영이 마스크를 접었다⁠. “⁠알면서 하는 거⁠, 당신만 하는 거 아니야⁠.⁠”

창밖으로 부산 바다에 아침 해가 비쳤다⁠. 순영이 접은 마스크를 동주의 손에 쥐여 주고 중환자실 문으로 걸어갔다⁠. 문 옆 손 소독기를 두 번 누르고⁠, 손을 비비며 태섭의 침대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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