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416자)

소생실 3번 침대

응급실 구급차 · 금나율

7월 24일 밤 아홉 시 팔 분⁠, 팔공대병원 응급실 소생실 3번 침대 위로 무영등이 켜졌다⁠. 소생실은 커튼 대신 유리 벽으로 나뉜 방 세 칸이었고⁠, 1번에는 오토바이 사고 환자가⁠, 2번에는 심장 혈관 시술을 기다리는 남자가 누워 있었다⁠. 3번에 윤솔이 올라갔다⁠.

탁선영은 침대 머리맡에 서서 손가락으로 차례를 짚었다⁠. 가람이 누르던 가슴을 간호사가 넘겨받았고⁠, 하순영은 벽시계 아래에서 시각을 불렀다⁠. 제세동기가 세 번째로 윤솔의 몸을 튀겼다⁠. 선영이 부정맥을 누르는 약을 밀어 넣으라고 했다⁠. 아홉 시 십오 분⁠, 모니터에 산이 다시 올라왔다⁠.

“⁠맥박 있어요⁠.⁠”

선영은 대답 대신 초음파 기계를 끌어왔다⁠. 윤솔의 가슴에 젤을 짜고 탐촉자를 댔다⁠. 화면에 회색 부채꼴이 펼쳐지고 부채꼴 안에서 심장이 움찔거렸다⁠. 뛴다고 하기엔 모자랐다⁠. 물에 젖은 장갑이 쥐었다 놓는 정도의 움직임이었다⁠.

“⁠심근염 맞네요⁠. 짜는 힘이 십오 퍼센트도 안 돼요⁠.⁠” 선영이 탐촉자를 내려놓았다⁠. “⁠하순영 선생님⁠, 흉부외과⁠.⁠”

순영이 수화기를 내밀었다⁠. 선영은 수화기를 받아 들고 유리 벽 쪽으로 몸을 돌렸다⁠.

“⁠교수님⁠, 탁선영입니다⁠. 열일곱 살 심근염⁠, 재정지 두 번⁠…⁠… 네⁠. 네⁠. 알겠습니다⁠.⁠”

선영이 수화기를 내려놓고 동주를 보았다⁠.

“⁠수술 끝나려면 새벽이래요⁠. 그 전에는 에크모 못 달아요⁠.⁠”

동주는 3번 유리 벽 밖에 서 있었다⁠. 구급대원은 환자를 넘기고 나면 서류에 사인을 받고 떠나야 했다⁠. 동주는 사인을 받지 않았다⁠.

*

아홉 시 사십 분⁠, 소생실 앞 복도에서 선영이 동주 앞을 막았다⁠. 가운 주머니의 칫솔이 동주의 눈높이보다 한참 아래에 있었다⁠.

“⁠사인해 드릴게요⁠. 가세요⁠.⁠”

“⁠가면 이 아이 어디로 갑니까⁠?⁠”

“⁠제가 찾아요⁠. 이제 제 환자니까⁠.⁠” 선영이 볼펜을 꺼냈다⁠. “⁠표 반장님⁠, 하나만 물어볼게요⁠. 오늘 반장님이 한 거⁠, 다른 구급대원 열 명이 다 하면 어떻게 될 것 같아요⁠?⁠”

“⁠열 명이 다 받을 데를 못 찾으면⁠, 열 명 다 문 앞에 오겠지예⁠.⁠”

“⁠그러면 저는 문 앞에서 열 명을 다 받아요⁠. 소생실이 세 칸인데⁠.⁠” 선영이 3번 유리 벽을 턱으로 가리켰다⁠. “⁠지금 저 방 세 칸이 다 찼어요⁠. 지금부터 오는 심정지는 받을 데가 없어요⁠. 반장님이 저 칸을 고르신 거예요⁠.⁠”

“⁠법에는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 못 한다 안 돼 있습니까⁠?⁠”

“⁠정당한 사유가 뭔데요⁠?⁠” 선영이 볼펜 뚜껑을 닫았다⁠. “⁠법에 안 써 있어요⁠. 아무도 몰라요⁠. 사람이 죽고 난 다음에 판사가 정해요⁠. 3년 전에 대구에서 십대 아이가 병원 여러 군데를 돌다가 죽었잖아요⁠. 거절한 병원들 처분받고⁠, 아직도 소송해요⁠. 그 병원들도 그날 수술방에 사람이 있었어요⁠.⁠”

“⁠그 아이 소식은 저도 압니다⁠. 그래서 문 앞까지 왔습니다⁠.⁠”

“⁠저도 알아요⁠. 그래서 전화로 미안하다고 했고요⁠.⁠”

선영의 목소리는 끝까지 커지지 않았다⁠. 동주는 오히려 선영의 목소리 앞에서 할 말이 줄어드는 것을 느꼈다⁠. 선영의 눈 밑이 거뭇했고⁠, 입술 가장자리가 하얗게 일어나 있었다⁠.

“⁠선생님⁠, 집에 언제 가셨습니까⁠?⁠”

“⁠수요일 아침에 나왔어요⁠.⁠” 선영이 동주가 내민 일지에 사인을 했다⁠. “⁠전문의가 아홉이었는데 넷이 나갔어요⁠. 남은 다섯이 돌아가면서 밤을 서요⁠. 오늘 밤은 저 혼자예요⁠. 칫솔은 그래서 들고 다니고요⁠.⁠”

복도 끝에서 가람이 순영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선생님⁠, 두 분 부부 맞죠⁠?⁠”

“⁠병원에서는 아닙니다⁠.⁠”

“⁠집에서는요⁠?⁠”

“⁠집에 같이 있어 본 지가 오래돼서 잘 모르겠네요⁠.⁠”

가람이 입을 막고 웃음을 삼켰다⁠. 순영은 웃지 않고 동주에게 종이컵 커피를 하나 내밀었다⁠. 선영에게도 하나를 내밀었다⁠. 둘이 같은 커피를 들고 다시 마주 보았다⁠.

*

밤 열 시 십 분⁠, 접수대 전화가 울렸다⁠. 순영이 받아 듣다가 선영을 불렀다⁠. 선영이 수화기를 받았다⁠.

“⁠칠곡 구급대요⁠? 네⁠. 일흔둘⁠, 남자⁠, 의식 저하⁠, 오른쪽 마비⁠. 뇌출혈 의심⁠.⁠”

동주는 접수대 옆에 서 있었다⁠. 수화기에서 새어 나오는 목소리가 숨이 차 있었다⁠. 선영이 모니터 위의 소생실 배치도를 보았다⁠. 세 칸 모두 빨간 불이었다⁠.

“⁠죄송합니다⁠. 지금 소생실이 다 찼어요⁠. 신경외과 수술방도 막혀 있고요⁠. 다른 데 알아봐 주세요⁠.⁠”

선영이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동주를 보지 않았다⁠. 동주는 3번 유리 벽 안을 보았다⁠. 윤솔의 가슴이 기계에 맞춰 오르내리고 있었고⁠, 연두색 손톱이 흰 시트 위에 놓여 있었다⁠.

동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선영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순영이 접수 화면에 「⁠소생실 만실 — 22⁠:10⁠」을 쳐 넣었다⁠. 키보드 소리가 세 번 났다⁠.

*

밤 열한 시 반⁠, 응급실 뒷문 옆 흡연 금지 표지판 아래 벤치에서 태섭이 편의점 컵라면 세 개에 뜨거운 물을 부었다⁠. 매미가 가로등에 붙어 밤인데도 울었다⁠. 가람이 나무젓가락을 쪼개다가 한쪽을 짧게 부러뜨렸다⁠.

“⁠막내는 원래 짧은 거 쓰는 기다⁠.⁠” 태섭이 긴 젓가락을 자기 컵에 꽂았다⁠. 그리고 조끼 주머니에서 알약 통을 꺼내 하나를 삼켰다⁠.

“⁠반장님⁠, 그거 아침 약 아니에요⁠?⁠”

“⁠아침이 좀 길었다⁠.⁠”

가람이 구급차 단말기를 무릎에 올려놓고 화면을 넘겼다⁠. 응급의료 종합상황판⁠, 병원마다 빈 침대와 볼 수 없는 진료과를 띄우는 화면이었다⁠. 팔공대 칸에 빨간 글자가 떠 있었다⁠. 「⁠흉부외과 응급수술 불가⁠」⁠.

“⁠이거 지난달부터 밤마다 떠 있던데요⁠. 오늘만 그런 게 아니라⁠.⁠”

동주는 국물을 마시다가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메시지 옆에 띄운 시각이 오늘 저녁 여섯 시였다⁠. 동주는 아무 말 없이 화면을 가람에게 돌려주었다⁠. 구급대원들은 상황판을 믿지 않았다⁠. 빈 침대가 셋이라고 떠 있는 병원에 전화하면 셋 다 찼다고 했고⁠, 수술 불가가 떠 있는 병원이 가끔 받아 주기도 했다⁠. 그래서 전화를 걸었다⁠. 걸어서 사람 목소리로 거절을 들어야 다음 병원으로 갔다⁠.

“⁠동주야⁠.⁠” 태섭이 라면을 후루룩 넘기고 말했다⁠. “⁠니 오늘 한 거⁠, 내일 소문난다⁠.⁠”

“⁠압니다⁠.⁠”

“⁠열네 해 전 겨울에 니 김천 국도에서 할매 하나 보냈다 아이가⁠. 그때도 병원 못 찾아서⁠.⁠”

동주는 젓가락을 멈췄다⁠. 신규 석 달째였다⁠. 할머니의 손이 구급차 안에서 식는 동안 동주는 전화기만 붙들고 있었다⁠. 할머니가 마지막으로 내던 숨소리를 태섭은 운전석에서 다 들었다⁠.

“⁠그래서 밀고 들어갔다는 거 안다⁠. 근데 밀고 들어간 자리에 원래 누가 들어갈 거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가람이 라면을 내려놓았다⁠. 동주는 응급실 뒷문의 작은 유리창을 보았다⁠. 유리창 너머 복도 끝⁠, 3번 유리 벽 안에서 기계가 윤솔 대신 숨을 쉬고 있었다⁠.

*

선영과 순영이 번갈아 전화를 돌렸다⁠. 자정이 넘어 남천대에서 전화가 왔다⁠. 열두 시 오십 분이었다⁠.

“⁠에크모 한 대 떼어 낸 환자가 있습니다⁠. 보내세요⁠.⁠”

선영이 수화기를 든 채 눈을 감았다가 떴다⁠. “⁠한 시 십 분까지 보낼게요⁠.⁠”

옮겨 갈 구급차는 동주의 차였다⁠. 센터에 연락하자 구급차 한 대가 대구에서 밤새 묶인 사이 구미 출동은 옆 센터가 받고 있다고 했다⁠. 상황요원이 한숨을 쉬었다⁠. 「⁠표 반장님⁠, 이송 끝나면 꼭 복귀하세요⁠. 옆 센터 반장님이 라면을 두 번 불렸답니다⁠.⁠」

에크모 환자를 옮기는 길에는 간호사가 함께 타야 했다⁠. 선영은 응급실을 비울 수 없었다⁠. 순영이 가운을 벗고 수액 펌프를 챙겼다⁠.

“⁠제가 갈게요⁠. 에크모 이송은 제가 제일 많이 해 봤어요⁠.⁠”

“⁠수간호사가 빠지면요⁠?⁠”

“⁠두 시간이요⁠. 교수님은 이틀째시잖아요⁠.⁠”

선영은 잠깐 순영을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 시 십 분⁠, 구급차가 경산으로 출발했다⁠. 뒤 칸은 좁았다⁠. 들것 하나⁠, 펌프 셋⁠, 모니터 하나⁠, 동주와 순영과 가람⁠. 순영이 펌프 줄을 정리하다가 동주의 무릎을 손등으로 밀었다⁠.

“⁠표 반장님⁠, 무릎 좀 치워 주세요⁠.⁠”

“⁠여기 내 자리다⁠.⁠”

“⁠오늘은 제 환자예요⁠.⁠”

운전석에서 태섭이 큭 웃었다⁠. “⁠두 사람 집에서도 이래 싸우나⁠?⁠”

“⁠집에서는 안 싸워요⁠. 못 만나니까요⁠.⁠” 순영이 말하고 나서 펌프 숫자를 확인했다⁠. 대답에 웃음이 없었다⁠.

빨간 신호에 차가 멈춘 사이 순영이 동주를 보지 않고 말했다⁠.

“⁠교수님 내일 경위서 쓰셔야 해⁠. 당신 이름 들어가⁠.⁠”

“⁠들어가라 캐라⁠.⁠”

“⁠나 당신이 오늘 한 거 잘했다고 못 해⁠.⁠” 순영이 윤솔의 이마에서 땀을 닦았다⁠. “⁠잘못했다고도 못 하고⁠.⁠”

동주의 휴대전화에 문자가 왔다⁠. 왜관 외할머니 집에서 자고 있어야 할 준이였다⁠. 「⁠아빠 엄마 둘 다 안 와⁠? 할머니가 코 골아⁠」⁠. 동주가 화면을 순영에게 보여 주었다⁠. 순영이 이번에는 웃었다⁠. 짧게⁠.

*

새벽 한 시 오십오 분⁠, 남천대병원 응급실 앞에 에크모 팀이 기계를 끌고 나와 있었다⁠. 흉부외과 의사가 동주에게 말을 걸 틈도 없이 들것을 받아 소생실로 들어갔다⁠. 팀원 하나가 순영에게서 펌프 숫자를 받아 적었다⁠.

복도 의자에 방진복 차림의 여자가 앉아 있었다⁠. 머리에 공장 위생모를 그대로 쓰고 있었다⁠. 동주를 보자 벌떡 일어났다⁠.

“⁠구급대원님이세요⁠? 우리 윤솔이⁠…⁠…⁠.⁠”

“⁠어머니⁠, 지금 기계 다는 중입니다⁠. 심장을 대신 돌려 주는 기계입니다⁠.⁠”

백윤솔의 어머니 남경희는 동주의 활동복 소매를 붙잡았다⁠. 손에 힘이 많았다⁠. 어디서 몇 번 거절당했는지 묻지 않았다⁠. 고맙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소매를 붙잡은 채 소생실 문만 보았다⁠.

세 시 십 분⁠, 소생실 문이 열리고 흉부외과 의사가 장갑을 벗으며 나왔다⁠.

“⁠돌아갑니다⁠. 혈압 올라왔어요⁠.⁠”

경희가 소매를 놓았다⁠. 그제야 의자에 주저앉았다⁠. 위생모가 미끄러져 바닥에 떨어졌다⁠. 가람이 주워서 경희의 무릎에 올려놓았다⁠.

“⁠정류장에서 가슴 눌러 준 분이 계십니다⁠.⁠” 동주가 말했다⁠. “⁠편의점 사장님입니다⁠. 그분이 아니었으면 저희가 갔을 때 늦었습니다⁠.⁠”

경희가 위생모를 두 손으로 쥐었다⁠. “⁠그 편의점⁠, 우리 윤솔이가 맨날 삼각김밥 사 먹는 데예요⁠. 참치마요만 먹어요⁠. 내가 그거 좀 그만 먹으라 캤는데⁠.⁠”

말끝이 흔들렸다⁠. 순영이 경희 옆에 앉아 등을 한 번 쓸었다⁠.

*

새벽 다섯 시⁠, 구급차가 순영을 내려 주러 팔공대 진입로로 다시 들어갔다⁠. 하늘이 회색으로 밝아 오고 있었고⁠, 빨간 간판은 아직 불이 켜져 있었다⁠. 진입로에 칠곡 센터 구급차가 한 대 들어와 있었다⁠. 운전석에 앉은 사람이 태섭을 알아보고 창문을 내렸다⁠.

“⁠도 반장⁠, 니도 밤샜나⁠?⁠”

“⁠경산까지 갔다 온다⁠. 니는⁠?⁠”

“⁠다른 환자 하나 내리러 왔다⁠.⁠” 칠곡 반장이 운전대에 팔을 걸쳤다⁠. “⁠어젯밤에는 할배 하나 싣고 안동까지 갔다⁠. 열 시쯤 여기 전화했는데 소생실 꽉 찼다 카더라⁠. 대구 바닥 다 돌다가 안동 가서 수술 들어갔는데⁠, 네 시 십이 분에 갔다⁠.⁠”

동주는 구급차 뒤 칸 문손잡이를 잡고 있었다⁠. 손잡이가 새벽 공기에 차가웠다⁠.

“⁠열 시 몇 분에 전화하셨습니까⁠?⁠”

칠곡 반장이 단말기를 들여다보았다⁠. “⁠열 시 십 분⁠.⁠”

순영이 구급차에서 내리다 말고 멈췄다⁠. 동주를 보았다⁠. 동주는 응급실 유리문 너머를 보고 있었다⁠. 소생실 3번 유리 벽 안에서 미화원 한 사람이 빈 침대의 시트를 걷어 내고⁠, 소독약 묻힌 걸레로 난간을 한 칸씩 닦고 있었다⁠.

2화는 어땠나요?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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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필깎이2026.11.06· 2화

    윤솔이는 살았는데 같은 시각에 그 응급실 전화로 할아버지 한 분이 돌아섰다는 게 너무 아팠어요. 열 시 십 분이라는 시각을 묻는 동주 반장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빈 침대 시트 걷는 장면에서 한참 멈췄어요.

    • 금나율작가2026.11.06

      선영도 그 밤 소생실에서 할 수 있는 걸 다 했어요. 열 시 십 분이 동주와 선영 사이에 어떤 숫자가 되는지 다음 화부터 따라가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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