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463자)

응급실 앞에서 내린 들것

응급실 구급차 · 금나율

2026년 7월 24일 금요일 저녁 일곱 시 이십 분⁠, 구미 시내에서 센터로 돌아가는 구급차 운전석에서 도태섭 반장이 냉면 얘기를 하고 있었다⁠.

“⁠이런 날은 물냉이다⁠. 이 더위에 비냉 먹는 사람은 인생을 모르는 기라⁠.⁠”

뒤 칸에서 막내 여가람이 휴대전화를 들어 올렸다⁠. “⁠도 반장님⁠, 방금 그 말 쇼츠 각인데요⁠.⁠”

“⁠찍지 마라⁠. 내 얼굴 나가면 호주 간 우리 딸이 아빠 또 혈압약 안 먹었냐고 전화한다⁠.⁠”

“⁠드셨어요⁠?⁠”

“⁠아침에 먹을라 했다⁠.⁠”

표동주는 들것 옆 의자에 앉아 방금 내려 준 취객이 남긴 막걸리 냄새를 환기구로 빼고 있었다⁠. 에어컨 바람은 뒤 칸까지 오다 말아서 주황 활동복 등판이 셔츠처럼 몸에 붙었고⁠, 해가 서쪽으로 기울면서 뒷유리에 붙은 하늘이 귤껍질 빛으로 변해 갔다⁠. 라디오에서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가 응급실 환자 거부를 막는 법안을 다시 들여다본다는 뉴스가 흘렀다⁠. 태섭이 볼륨을 줄였다⁠.

“⁠법 바뀐다고 의사가 생기나⁠.⁠”

단말기가 울렸다⁠. 화면에 글자가 떴다⁠.

「⁠심정지 추정 · 10대 여성 · 학원가 버스정류장 · 행인 심폐소생술 중⁠」

태섭이 사이렌을 켜고 핸들을 꺾었다⁠. “⁠봐라⁠, 사이렌 켜면 연비가 좋아진다⁠.⁠”

“⁠그런 차가 어디 있어요⁠?⁠”

“⁠여기 있다⁠. 사람이 급하면 차도 가볍다⁠.⁠”

*

일곱 시 이십칠 분⁠, 학원 간판 열댓 개가 한 건물에 붙은 거리의 버스정류장 앞에 사람들이 둥그렇게 모여 있었다⁠. 흰 러닝셔츠에 편의점 조끼를 걸친 예순쯤 된 남자가 소녀의 가슴을 누르고 있었다⁠. 팔을 굽히지 않고 체중을 실어 누르는 품이 서툴지 않았다⁠. 옆에 편의점 벽에서 떼어 온 자동심장충격기가 열려 있었고⁠, 패드 두 장이 소녀의 가슴에 붙어 있었다⁠.

“⁠한 번 쳤심더⁠. 기계가 치라 캐서⁠.⁠” 남자가 숨을 몰아쉬었다⁠. “⁠학교에서 배운 대로 했어요⁠. 이십 년 전에⁠.⁠”

“⁠잘하셨습니다⁠. 제가 받겠습니다⁠.⁠”

동주가 다부진 몸을 접어 무릎을 꿇었다⁠. 땀에 젖은 짧은 검은 머리에서 물방울이 떨어져 소녀의 쇄골에 맺혔다⁠. 짙은 눈썹 아래 눈이 소녀의 입술 빛과 가람이 붙이는 모니터 화면을 오갔고⁠, 목에 건 청진기가 소녀의 어깨에 닿아 달그락거렸다⁠. 하늘색 반팔 셔츠에 회색 체육복 바지⁠, 옆에 쓰러진 학원 가방에는 영어 단어장이 반쯤 빠져나와 있었다⁠.

모니터의 선이 톱니처럼 떨렸다⁠. 심실세동⁠, 심장이 뛰지 않고 떨기만 하는 상태였다⁠.

“⁠충전⁠. 다들 손 떼요⁠.⁠”

몸이 한 번 튀었다⁠. 가람이 바로 가슴 압박을 이었고⁠, 동주는 소녀의 정강이뼈에 바늘을 박아 길을 냈다⁠. 무전으로 지도의사가 에피네프린을 지시했다⁠. 두 번째 충격 뒤 이 분이 지나자 모니터에 뾰족한 산이 하나 올라왔고⁠, 이어서 둘⁠, 셋⁠.

“⁠맥박 있어요⁠.⁠” 가람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반장님⁠, 돌아왔어요⁠.⁠”

일곱 시 삼십오 분이었다⁠. 구경하던 사람들 사이에서 누가 박수를 쳤다가 멈췄다⁠. 편의점 남자는 아스팔트에 주저앉아 조끼 자락으로 얼굴을 닦았다⁠.

동주는 박수를 듣지 않았다⁠. 맥박은 백사십을 넘었고 혈압은 칠십에서 더 오르지 않았다⁠. 심전도의 파형이 넓게 퍼져 있었다⁠. 심장이 돌아왔는데 짜는 힘이 없었다⁠. 소녀의 발끝을 쥐어 보니 여름 저녁인데도 찼다⁠.

학원 가방 안에서 휴대전화가 울렸다⁠. 화면에 「⁠엄마⁠」⁠. 동주가 받았다⁠.

“⁠윤솔아⁠, 엄마 지금 쉬는 시간인데⁠…⁠…⁠.⁠”

“⁠어머니⁠, 구미 119 구급대원 표동주입니다⁠. 따님 이름이 윤솔이 맞습니까⁠?⁠”

수화기 너머에서 기계 소리가 멎었다⁠. 4공단 야간조라고 했다⁠. 백윤솔⁠, 열일곱 살⁠, 고등학교 2학년⁠. 지난주에 감기를 앓았다⁠. 동주는 어머니에게 지금 출발하지 말고 병원이 정해지면 다시 전화하겠다고 하면서⁠, 정해지는 데 얼마나 걸릴지는 말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전화를 끊기 전에 두 번 물었다⁠. 우리 윤솔이 숨 쉬지예⁠? 동주는 두 번 다 쉰다고 대답했다⁠.

*

일곱 시 사십 분⁠, 들것을 실은 구급차 뒤 칸에서 동주는 왼손으로 윤솔의 손을 쥐고 오른손으로 휴대전화를 귀에 댔다⁠. 병원 전 중증도 분류⁠, 구급대원이 환자의 위중함을 다섯 단계로 매기는 기준으로 윤솔은 맨 위 소생 단계였다⁠. 이런 환자는 심장을 다룰 수 있는 큰 병원으로 가야 했다⁠.

구미의 새솔병원은 심장내과 당직이 퇴근했다고 했다⁠. 늘봄병원은 중환자실이 꽉 찼다고 했다⁠. 119구급상황관리센터의 상황요원이 다른 줄로 같이 돌렸다⁠.

“⁠표 반장님⁠, 김천 청람병원은 소아는 안 된답니다⁠.⁠”

“⁠열일곱이 소아요⁠?⁠”

“⁠열여덟까지 소아로 친답니다⁠. 소아청소년과 당직이 없대요⁠.⁠”

태섭이 칠곡 방향으로 차를 몰았다⁠. 칠곡 다온병원은 에크모 기계는 있는데 돌릴 사람이 없다고 했다⁠. 에크모는 멎어 가는 심장과 폐 대신 몸 밖에서 피를 돌려 주는 기계였고⁠, 관을 꽂을 흉부외과 의사와 기계를 지킬 사람이 둘 다 있어야 했다⁠. 대구 침산병원은 응급실 침대가 없었고⁠, 앞산대병원은 소아 심장을 보는 의사가 학회에 갔다고 했다⁠.

여덟 시 십오 분⁠, 일곱 번째로 대구 팔공대병원 응급실에 걸었다⁠.

“⁠팔공대 응급실 하순영입니다⁠.⁠”

동주는 숨을 한 번 골랐다⁠. 아내의 목소리였다⁠.

“⁠순영아⁠, 나다⁠.⁠”

“⁠표 반장님⁠.⁠” 순영의 목소리가 한 칸 내려갔다⁠. “⁠환자 정보부터 주세요⁠.⁠”

동주가 불러 주었다⁠. 열일곱⁠, 여자⁠, 목격된 심정지⁠, 충격 두 번⁠, 자발 순환 회복⁠, 맥박 백사십⁠, 혈압 칠십⁠. 순영은 받아 적는 소리 없이 듣다가 “⁠교수님 바꿔 드릴게요⁠” 하고 수화기를 넘겼다⁠.

“⁠응급의학과 탁선영입니다⁠.⁠”

낮고 마른 목소리였다⁠. 동주가 다시 불렀다⁠. 선영은 중간에 한 번도 끊지 않았다⁠.

“⁠심근염 가능성이 높네요⁠. 에크모가 필요할 거예요⁠.⁠”

“⁠그래서 선생님한테 전화했습니다⁠.⁠”

“⁠응급실 자리는 있어요⁠. 그런데 에크모 관을 꽂을 흉부외과가 지금 수술방에 들어가 있어요⁠. 새벽까지 못 나와요⁠.⁠”

“⁠자리 있으면 받아 주이소⁠. 약으로라도 버티고 있으면⁠…⁠…⁠.⁠”

“⁠받는 거랑 살리는 건 달라요⁠.⁠” 선영의 말이 빨라지지 않았다⁠. “⁠우리가 받으면 이 아이는 에크모 없는 방에서 약으로 버티다가 죽어요⁠. 그러면 그건 우리가 받아서 죽인 게 돼요⁠. 가족은 우리를 고소하고⁠, 저는 질 거예요⁠. 에크모 팀이 있는 데를 찾으세요⁠.⁠”

“⁠찾고 있습니다⁠. 일곱 번째입니다⁠.⁠”

“⁠압니다⁠. 미안해요⁠.⁠”

전화가 끊겼다⁠. 동주는 휴대전화를 무릎에 내려놓고 윤솔의 손을 다시 쥐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찼다⁠. 손톱에 연두색 매니큐어가 반쯤 벗겨져 있었다⁠. 가람이 산소마스크 끈을 고쳐 매며 동주를 보았다⁠.

“⁠반장님⁠, 방금 그분 사모님이세요⁠?⁠”

“⁠지금은 수간호사다⁠.⁠”

경산 남천대병원은 에크모 두 대를 다 돌리는 중이라고 했다⁠. 대구 칠성의료원은 심장내과가 시술 중이었다⁠. 여덟 시 사십 분⁠, 영천 솔빛병원이 심장 수술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동주는 통화를 끊고 손목시계를 보았다⁠. 한 시간 동안 열 번이었다⁠.

“⁠동주야⁠.⁠” 태섭이 백미러로 뒤를 보았다⁠. “⁠어디로 가꼬⁠?⁠”

“⁠팔공대요⁠.⁠”

“⁠방금 안 된다 했다며⁠.⁠”

“⁠문 앞에서 한 번 더 물어보입시더⁠. 거기가 제일 가깝고⁠, 거기가 제일 큽니다⁠.⁠”

태섭은 대답 대신 가속 페달을 밟았다⁠. 경부고속도로 옆 국도로 칠곡을 지나는 동안 대구 달서 한결병원이 열한 번째로 고개를 저었다⁠. 응급실장이 혼자 외상 환자 셋을 보고 있다고 했다⁠. 동주의 휴대전화에 문자가 하나 들어왔다⁠. 「⁠아빠 오늘 몇 시에 와⁠?⁠」 여덟 살 아들 준이였다⁠. 동주는 답을 쓰다가 지웠다⁠.

*

여덟 시 오십팔 분⁠, 구급차가 팔공대병원 응급실 진입로로 들어갔다⁠. 구급차가 대는 자리 위에 빨간 「⁠응급실⁠」 간판이 불을 켜고 있었다⁠. 뒷문을 열기도 전에 자동문이 열리고 흰 가운을 입은 여자가 나왔다⁠.

탁선영은 키가 작았고⁠, 가운 아래 초록 수술복이 구겨져 있었다⁠. 가운 가슴 주머니에 볼펜 두 자루와 칫솔 하나가 꽂혀 있었다⁠. 칫솔모가 위로 나와 있었다⁠. 머리를 하나로 묶었는데 빠져나온 머리카락이 땀으로 이마에 붙어 있었다⁠.

“⁠전화로 말씀드렸잖아요⁠.⁠”

“⁠얼굴 보고 한 번만 더 여쭤보려고 왔습니다⁠.⁠”

선영은 대답하지 않고 구급차 뒤 칸에 올라탔다⁠. 모니터를 보고⁠, 윤솔의 발을 쥐어 보고⁠, 자기 청진기를 꺼내 가슴에 댔다⁠. 손이 빨랐다⁠. 삼십 초쯤 지나 청진기를 귀에서 뺐다⁠.

“⁠제 말이 맞아요⁠. 심장이 짜질 못해요⁠. 여기 내리면 저는 약을 쏟아붓고 흉부외과를 기다려야 해요⁠. 기다리는 동안 이 아이 심장은 또 멎을 거고요⁠.⁠”

“⁠그래도 침대 위에서 기다리는 거 아닙니까⁠. 선생님⁠, 들어 보이소⁠. 차 안에서 기다리는 거보다는⁠…⁠…⁠.⁠”

“⁠침대 위에서 죽는 거랑 구급차에서 죽는 거⁠, 부모한테는 다르겠죠⁠.⁠” 선영이 장갑을 벗었다⁠. “⁠저한테는 같아요⁠. 둘 다 못 살린 거예요⁠. 남천대에 제가 다시 걸어 볼게요⁠. 경산 방향으로 출발하세요⁠. 거기 에크모가 하나라도 비면 제일 빨라요⁠.⁠”

“⁠안 비면요⁠?⁠”

선영은 대답하지 않았다⁠. 구급차에서 내려 휴대전화를 귀에 대고 자동문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문이 닫혔다⁠. 문 안쪽 유리 너머로 순영이 서 있었다⁠. 순영은 남편을 보지 않고 선영의 등을 보고 있었다⁠.

태섭이 기어를 넣었다⁠. 구급차가 진입로를 빠져나가는 동안 동주는 윤솔의 손을 쥔 채 뒷유리를 보았다⁠. 빨간 간판이 작아졌다⁠. 유리창 두 칸 사이에서 간판이 흔들리다가 가로수에 가려졌다⁠.

아홉 시 사 분⁠, 선영의 전화가 왔다⁠.

“⁠남천대 안 된대요⁠. 경주도 물어봤는데 안 된대요⁠.⁠”

열두 번째였다⁠. 동주가 입을 열기 전에 모니터가 날카롭게 울었다⁠. 화면의 선이 다시 톱니가 되었다⁠.

“⁠어레스트⁠!⁠” 가람이 윤솔의 가슴에 두 손을 포갰다⁠.

동주는 휴대전화를 귀에서 떼지 않았다⁠. “⁠선생님⁠, 지금 다시 멎었습니다⁠.⁠”

수화기 너머가 조용했다⁠. 동주는 운전석을 향해 소리쳤다⁠.

“⁠반장님⁠, 돌려요⁠!⁠”

태섭이 중앙선 끊긴 자리에서 핸들을 끝까지 감았다⁠. 사이렌 소리가 아파트 벽에 부딪혀 두 겹으로 돌아왔다⁠. 들것이 흔들렸고⁠, 가람은 무릎으로 들것 난간을 버티며 하나⁠, 둘⁠, 셋 숫자를 소리 내어 셌다⁠.

*

아홉 시 칠 분⁠, 구급차가 다시 빨간 간판 아래로 들어갔다⁠. 동주가 뒷문을 걷어차듯 열고 들것 다리를 내렸다⁠. 가람은 들것 위에 무릎을 대고 올라탄 채 가슴을 눌렀다⁠. 바퀴가 진입로 턱에 덜컹 부딪혔다⁠.

자동문이 열렸다⁠. 선영이 안쪽 복도 끝에서 휴대전화를 든 채 몸을 돌렸다⁠. 순영이 접수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대기 의자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다리를 거두었다⁠.

“⁠심정지입니다⁠.⁠” 동주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느렸다⁠. “⁠충격 가능 리듬⁠, 재정지 삼 분 경과⁠. 선생님⁠, 이제 받으셔야 합니다⁠.⁠”

선영은 들것과 동주의 얼굴을 한 번씩 보았다⁠. 들것 위에서 가람이 땀을 떨어뜨리며 가슴을 누르고 있었다⁠. 윤솔의 연두색 손톱이 들것 가장자리에서 흔들렸다⁠.

“⁠표 반장님⁠.⁠” 선영의 목소리가 낮았다⁠. “⁠이게 무슨 뜻인지 아시죠⁠?⁠”

“⁠압니다⁠.⁠”

선영이 휴대전화를 가운 주머니에 넣었다⁠. 칫솔 옆이었다⁠.

“⁠소생실 3번 비워요⁠. 제세동기⁠, 에피⁠, 기도 삽관 준비⁠.⁠” 선영이 들것 난간을 잡았다⁠. “⁠하순영 선생님⁠, 흉부외과 콜⁠.⁠”

순영이 수화기를 들었다⁠. 동주는 들것을 밀었다⁠. 바퀴가 응급실 리놀륨 바닥 위에서 소리를 냈고⁠, 등 뒤에서 자동문이 닫히며 빨간 간판 불빛이 문 유리에 한 번 비쳤다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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