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425자)

장례식장의 육개장

응급실 구급차 · 금나율

7월 25일 토요일 오후 세 시⁠, 칠곡 석적의 아파트 거실에서 동주는 소파에 누운 채 눈을 떴다⁠. 에어컨이 돌아가고 있었고⁠, 배 위에 아들 준이가 엎드려 공룡 그림책을 펴 놓고 있었다⁠. 왜관 장모가 점심때 데려다 놓고 간 모양이었다⁠.

“⁠아빠⁠, 구급차는 빨간불에 그냥 가도 돼⁠?⁠”

“⁠사이렌 켜면 된다⁠.⁠”

“⁠그럼 나도 사이렌 사 줘⁠. 학교 늦을 때 켜게⁠.⁠”

“⁠아빠도 아직 못 샀다⁠.⁠”

안방 문이 닫혀 있었다⁠. 순영은 아침 일곱 시에 들어와 씻지도 못하고 잠들었다⁠. 식탁 위에 순영이 남긴 쪽지가 있었다⁠. 「⁠윤솔이 밤새 혈압 유지⁠. 남천대에서 연락 옴⁠」⁠. 동주는 쪽지를 접어 활동복 주머니에 넣었다가⁠, 활동복이 아니라 반바지라는 것을 알고 식탁에 도로 올려놓았다⁠.

휴대전화가 울렸다⁠. 센터장이었다⁠.

“⁠동주야⁠, 쉬는 날 미안하다⁠. 팔공대에서 본부로 민원 들어왔다⁠. 수용 불가 통보받은 구급대가 환자를 강제로 내려서 진료를 방해했다꼬⁠. 월요일 열 시에 감찰 조사 있다⁠.⁠”

“⁠예⁠.⁠”

“⁠하나 더 있다⁠. 칠곡에서 그날 밤 돌아가신 할배 아들이 니 이름을 묻고 다닌단다⁠. 구미에서 온 구급차가 누구 차였냐꼬⁠.⁠”

동주는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준이가 배에서 굴러떨어지며 그림책을 붙잡았다⁠.

*

7월 26일 일요일 저녁 일곱 시⁠, 칠곡의 한 병원 장례식장 2호실 앞에 화환이 다섯 개 놓여 있었다⁠. 「⁠포도작목반 일동⁠」이 맨 앞이었다⁠. 동주는 검은 셔츠를 입고 왔고⁠, 태섭은 검은 양복이 작아서 단추 하나를 풀고 왔다⁠.

영정 사진 속 노인은 밀짚모자를 쓰고 포도 덩굴 아래서 웃고 있었다⁠. 동주는 절을 두 번 하고 상주에게 고개를 숙였다⁠. 상주는 쉰 넘은 남자였고⁠, 검은 상복 소매 아래로 팔뚝이 굵었다⁠. 완장이 팔에 비해 작았다⁠.

“⁠구미 119 구급대 표동주입니다⁠.⁠”

상주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었다⁠. 구본철은 접객실 구석 자리를 턱으로 가리켰다⁠.

접객실 상 위에 육개장과 편육과 떡이 놓였다⁠. 태섭은 육개장을 한 숟가락 뜨다가 동주의 눈치를 보고 숟가락을 내려놓았다가⁠, 다시 들었다⁠. 본철이 소주잔에 술을 따랐다⁠. 자기 잔에만 따랐다⁠.

“⁠아버지가 그날 저녁 드시고 마당에서 쓰러졌어요⁠. 칠곡 구급차가 대구 병원 아홉 군데를 돌렸답니다⁠. 팔공대가 제일 가까웠고⁠, 거기서 소생실이 꽉 찼다고 했다더라고요⁠. 구미에서 온 구급차가 여자애 하나를 밀고 들어가서⁠.⁠”

“⁠맞습니다⁠. 제가 밀고 들어갔습니다⁠.⁠”

본철이 잔을 들었다가 마시지 않고 내려놓았다⁠.

“⁠여자애는 살았다면서요⁠.⁠”

“⁠예⁠. 경산에서 기계 달고 버티고 있습니다⁠.⁠”

“⁠열일곱은 살고⁠.⁠” 본철의 목소리가 접객실 전체에 퍼졌다⁠. 옆 상의 조문객들이 숟가락을 멈췄다⁠. “⁠일흔둘은 죽어도 됩니까⁠?⁠”

동주는 상 위에 두 손을 올려놓았다⁠. 대답을 미리 생각해 오지 않았다⁠. 생각해 온 대답이 여기서 쓸모없을 것이라는 것만 알고 왔다⁠.

“⁠죽어도 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날 밤에 침대가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그 침대를 먼저 잡았습니다⁠.⁠”

“⁠그럼 당신이 우리 아버지 침대를 뺏은 거네요⁠.⁠”

“⁠예⁠.⁠”

본철이 상을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소주잔이 넘어져 편육 접시로 술이 흘렀다⁠. 상복 차림의 중년 여자가 달려와 본철의 등을 때렸다⁠.

“⁠니 손님한테 와 이카노⁠! 찾아온 사람한테⁠!⁠” 본철의 고모라고 했다⁠. 고모는 행주로 술을 닦고 태섭 앞에 떡 접시를 하나 더 밀어 놓았다⁠. “⁠드이소⁠. 우리 오빠 포도 농사 지은 걸로 빚은 술떡이라예⁠.⁠”

태섭이 떡을 받아 들고 고개를 숙였다⁠. “⁠잘 먹겠습니다⁠. 맛있습니더⁠.⁠”

“⁠아직 안 드셨잖아예⁠.⁠”

“⁠보기만 해도 압니더⁠.⁠”

고모가 웃음을 참으려다 실패했다⁠. 본철은 웃지 않았다⁠. 고모가 물러가자 본철은 넘어진 잔을 세웠다⁠.

“⁠팔공대 그 여자 교수도 고소할 거고⁠, 당신도 할 겁니다⁠. 누가 잘못했는지 판사가 정하라 하겠습니다⁠.⁠”

“⁠하십시오⁠.⁠”

“⁠말리지도 않네⁠.⁠”

“⁠말릴 말이 없습니다⁠.⁠”

밖에서 태섭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화면에 「⁠호주 딸⁠」이 떴다⁠. 태섭이 복도로 나가 작은 소리로 받았다⁠. 호주는 구급차 부르면 돈을 내야 한다더라⁠, 아빠는 공짜로 태워 주는 나라에서 일해서 좋겠다⁠, 그런 말이 복도에서 들렸다⁠. 태섭은 응⁠, 응⁠, 약 먹었다⁠, 하고 거짓말을 했다⁠.

*

7월 27일 월요일 오전 열 시⁠, 구미소방서 3층 회의실에 다섯 사람이 앉았다⁠. 본부 감찰 담당과 센터장⁠, 팔공대병원 법무팀장⁠, 탁선영⁠, 동주였다⁠.

선영은 밤 근무를 끝내고 곧장 온 차림이었다⁠. 가운은 벗었지만 셔츠 가슴 주머니에 칫솔이 꽂혀 있었다⁠. 법무팀장은 넥타이를 맸고⁠, 서류 파일을 세 개 가져왔다⁠.

“⁠7월 24일 오후 여덟 시 십오 분⁠, 저희 병원은 구미 구급대에 수용 불가를 통보했습니다⁠.⁠” 법무팀장이 서류를 넘겼다⁠. “⁠여덟 시 오십팔 분⁠, 구급대가 통보를 무시하고 내원했고⁠, 아홉 시 칠 분⁠, 환자를 강제로 하차시켜 소생실에 진입했습니다⁠. 이 때문에 열 시 십 분 다른 중증 환자를 수용하지 못했습니다⁠. 저희는 업무방해 고소도 검토하고 있습니다⁠.⁠”

감찰 담당이 볼펜으로 책상을 톡톡 쳤다⁠. “⁠표 반장⁠, 할 말 있나⁠?⁠”

“⁠아홉 시 사 분에 환자 심장이 다시 멎었습니다⁠. 멎은 자리가 팔공대 앞 강변 도로였습니다⁠. 거기서 제일 가까운 응급실이 팔공대였습니다⁠. 심정지 환자는 가장 가까운 응급실로 갑니다⁠.⁠”

“⁠그 앞 단계를 묻는 겁니다⁠.⁠” 법무팀장이 말했다⁠. “⁠통보를 받고도 왜 출발하셨느냐고요⁠.⁠”

“⁠열한 군데가 안 된다 했습니다⁠. 갈 데가 없었습니다⁠.⁠”

“⁠갈 데가 없으면 저희가 갈 데가 됩니까⁠?⁠”

“⁠고소는 안 할 거예요⁠.⁠” 선영이 처음 입을 열었다⁠. 법무팀장이 고개를 돌렸다⁠. 선영은 법무팀장을 보지 않고 동주를 보았다⁠. “⁠고소해 봐야 응급실에 의사 하나 안 생겨요⁠. 대신 하나는 해 주세요⁠. 수용 불가를 통보한 병원으로는 출발하지 않는다⁠. 본부에서 그 공문 하나 내 주세요⁠.⁠”

센터장이 헛기침을 했다⁠. 감찰 담당은 받아 적었다⁠.

“⁠선생님⁠.⁠” 동주가 말했다⁠. “⁠그 공문 나가면 그날 밤 그 아이는 어디로 가야 했습니까⁠?⁠”

“⁠제가 찾았잖아요⁠. 남천대가 비었어요⁠. 세 시간 뒤에⁠.⁠”

“⁠세 시간 동안 어디 있어야 했습니까⁠? 구급차 안에요⁠?⁠”

“⁠반장님이 밀고 들어온 다음 세 시간 동안 칠곡 할아버지는 구급차 안에 있었어요⁠.⁠” 선영의 목소리는 여전히 낮았다⁠. “⁠안동까지 갔어요⁠. 저는 그날 열 시 십 분 전화를 제 손으로 끊었고요⁠. 어제 그 아들이 응급실로 저를 찾아왔어요⁠. 반장님한테도 갔죠⁠?⁠”

“⁠예⁠.⁠”

“⁠반장님은 반장님이 이겼다고 생각하세요⁠?⁠”

동주는 대답하지 않았다⁠.

“⁠저는 제가 졌다고 생각 안 해요⁠. 반장님도 지고 저도 지고 할아버지가 졌어요⁠. 이긴 사람이 없어요⁠. 그런데 다음 주에 또 누가 밀고 들어오면⁠, 다음 할아버지가 또 져요⁠.⁠” 선영이 의자에서 일어났다⁠. “⁠저 열한 시에 다시 들어가야 해요⁠. 전문의 하나가 아파서요⁠.⁠”

선영이 회의실 문을 열고 나갔다⁠. 법무팀장이 서류를 챙겨 따라 나가며 동주에게 명함 한 장을 남겼다⁠. 감찰 담당이 볼펜을 내려놓았다⁠.

“⁠표 반장⁠, 징계위원회 열릴 때까지 구급 업무에서 빠진다⁠. 내일부터 소방서 구급 담당 내근이다⁠.⁠”

*

열 시 사십 분⁠, 소방서 주차장 그늘에 흰 경차가 한 대 시동을 켠 채 있었다⁠. 운전석에서 선영이 삼각김밥 비닐을 벗기고 있었다⁠. 비닐이 한 번에 안 벗겨져서 김이 반쯤 찢어졌다⁠. 동주가 창문을 두드렸다⁠. 선영이 창문을 내렸다⁠. 에어컨 바람과 함께 참치마요 냄새가 나왔다⁠.

“⁠아침이에요⁠. 점심일 수도 있고요⁠.⁠”

“⁠아까 왜 고소 안 한다 하셨습니까⁠?⁠”

선영이 찢어진 김을 밥에 대충 붙였다⁠. “⁠반장님을 고소하면 다음 구급대원은 문 앞까지도 안 와요⁠. 전화로 거절당하면 그냥 돌아가요⁠. 그것도 무서워요⁠. 문 앞에 오는 사람이 있어야⁠, 제가 안 된다고 말하는 게 얼마나 무거운지 알거든요⁠.⁠”

“⁠그럼 공문은요⁠?⁠”

“⁠그건 진심이에요⁠. 둘 다 진심이에요⁠.⁠” 선영이 김밥을 한 입 베어 물고 씹었다⁠. “⁠어제 그 아들 앞에서 저는 미안하다는 말을 못 했어요⁠. 법무팀이 하지 말래요⁠. 미안하다고 하면 잘못을 인정하는 게 된대요⁠. 그래서 고개만 숙였어요⁠. 반장님은 했죠⁠?⁠”

“⁠제가 침대 뺏었다고 했습니다⁠.⁠”

선영이 씹던 것을 멈췄다⁠. 한참 뒤에 삼켰다⁠.

“⁠부럽네요⁠. 저는 그 말 하면 면허가 걸려요⁠.⁠” 선영이 창문 버튼에 손을 올렸다⁠. “⁠윤솔이 오늘 아침 소변 나왔대요⁠. 콩팥이 버텨요⁠. 남천대에서 저한테도 연락 줘요⁠.⁠”

창문이 올라갔다⁠. 경차가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윤솔의 콩팥이 버틴다는 소식을 동주는 아내보다 교수에게서 먼저 들었다⁠.

*

7월 28일 화요일 낮 열두 시⁠, 센터 휴게실에서 태섭이 컵라면 다섯 개를 일렬로 놓고 물을 부었다⁠.

“⁠송별회다⁠. 냉면은 니 징계 끝나고 사 주께⁠.⁠”

“⁠징계 끝나면 반장님이 사 주십니까⁠?⁠”

“⁠니가 사야지⁠. 니가 잘못했는데⁠.⁠”

가람이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화면에 짧은 영상이 돌고 있었다⁠. 구급차 뒤 칸⁠, 주황 활동복 등판⁠, 휴대전화를 귀에 댄 남자의 뒤통수⁠, 들것 위의 작은 손⁠. 얼굴은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그날 찍은 거 아니에요⁠. 지난달 거예요⁠. 반장님 뒤통수만 모았어요⁠. 올리진 않을게요⁠.⁠”

“⁠올리지 마라⁠.⁠”

“⁠제목은 지어 놨어요⁠. 「⁠우리 반장님은 뒤통수가 제일 바쁘다⁠」⁠.⁠”

태섭이 라면 국물을 뿜을 뻔했다⁠. 동주도 사흘 만에 처음으로 웃었다⁠.

“⁠동주야⁠, 니 없으면 내 혈압약은 누가 챙기노⁠?⁠”

“⁠제가요⁠.⁠” 가람이 손을 들었다⁠. “⁠알람 맞춰 놨어요⁠. 아침 일곱 시⁠, 「⁠도 반장님 약⁠」⁠.⁠”

“⁠그걸 왜 내 폰이 아이고 니 폰에 맞추노⁠?⁠”

“⁠반장님은 알람 끄시잖아요⁠.⁠”

오후에 동주는 소방서 2층 구급 담당 자리로 짐을 옮겼다⁠. 주황 활동복 대신 남색 근무복을 입었다⁠. 책상 위에 이송 통계 서류철과 구급차 정비 일정표가 쌓여 있었다⁠. 목에 걸던 청진기는 걸 데가 없어서 책상 서랍 맨 위 칸에 넣었다⁠.

*

저녁 일곱 시 십 분⁠, 퇴근하려고 소방서 주차장으로 나온 동주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구본철입니다⁠. 오늘 고소장 냈습니다⁠. 팔공대병원하고⁠, 구미 구급대하고 둘 다⁠.⁠”

“⁠예⁠. 알겠습니다⁠.⁠”

“⁠변호사가 그러더라고요⁠. 구급대원은 잘못이 안 될 거라고⁠. 법에 가까운 데 가라고 돼 있다고⁠.⁠” 본철이 잠깐 숨을 골랐다⁠. “⁠그래도 냈습니다⁠. 누가 그 침대를 정하는지 듣고 싶어서요⁠.⁠”

전화가 끊겼다⁠. 동주가 차 문을 여는데 휴대전화가 다시 울렸다⁠. 이번에도 모르는 번호였다⁠.

“⁠표동주 반장님 맞으시죠⁠? 대구 지역 방송 기자 반도섭입니다⁠. 7월 24일 밤 구미에서 대구까지 응급실 열두 곳이 거절한 환자 얘기⁠, 들었습니다⁠. 얘기 좀 해 주실 수 있을까요⁠?⁠”

동주는 차 문을 반쯤 연 채 서 있었다⁠. 소방서 차고 안에 동주가 타던 구급차가 대어져 있었다⁠. 뒷문이 열려 있었고⁠, 가람이 들것 매트를 닦고 있었다⁠.

“⁠지금은 안 됩니다⁠.⁠”

“⁠언제면 될까요⁠?⁠”

“⁠열두 곳에 먼저 가 보겠습니다⁠. 왜 안 됐는지 그 사람들한테 직접 듣고⁠, 그다음에 말씀드리겠습니다⁠.⁠”

동주는 전화를 끊고 차에 올랐다⁠. 조수석에 아까 서랍에 넣었던 청진기가 놓여 있었다⁠. 퇴근하면서 저도 모르게 도로 꺼내 왔다⁠.

3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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