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395자)

오지 마라

외계의 첫 답장 "밥은 먹었니?" · 은해록

10월 19일 오전 열 시⁠, 요양원 삼 층 휴게실에 국방부 음성 분석팀 세 사람이 장비 가방을 열었다⁠. 마이크 받침대⁠, 헤드폰⁠, 노트북⁠, 그리고 은색 상자 하나⁠. 분석팀장은 쉰 살쯤 된 여자였고⁠, 말을 할 때마다 볼펜으로 공책을 두드렸다⁠. 헌병 둘이 휴게실 문 양쪽을 지켰다⁠. 편정훈은 창가에 등을 대고 서 있었다⁠.

“⁠보호자 동의서에 서명만 해 주시면 됩니다⁠. 십 분이면 끝나요⁠. 어머님께서 평소처럼 한 마디만 해 주시면 돼요⁠.⁠”

“⁠서명 안 해요⁠.⁠”

“⁠국가 안보 사안입니다⁠, 보호자님⁠.⁠”

“⁠엄마 목소리예요⁠. 엄마한테 물어보세요⁠.⁠”

분석팀장이 편정훈을 돌아보았다⁠. 편정훈은 고개를 아주 조금 끄덕였다⁠. 화영은 휠체어 앞에 쪼그려 앉아 어머니와 눈높이를 맞췄다⁠. 어머니는 점심 전 간식으로 나온 미역국을 앞에 두고 있었다⁠.

“⁠엄마⁠. 이분들이 엄마 목소리를 녹음해서⁠, 하늘에 대답을 보내고 싶대⁠. 엄마 목소리로 엄마가 안 한 말을 하게 만든대⁠. 싫으면 싫다고 해⁠.⁠”

어머니가 분석팀장을 보았다⁠. 다음에 은색 상자를 보았다⁠. 분석팀장이 마이크를 받침대에서 빼 어머니 입 가까이 가져갔다⁠. 어머니가 왼손을 들어 마이크를 밀었다⁠. 천천히⁠, 그러나 망설이지 않고 밀었다⁠. 마이크는 미역국 그릇 위로 기울어졌다가 국물에 머리를 박았다⁠.

휴게실에 아무도 숨을 쉬지 않았다⁠. 마리셀이 먼저 웃음을 터뜨렸다가 입을 막았다⁠. 분석팀장이 국물이 뚝뚝 떨어지는 마이크를 들어 올렸다⁠.

“⁠…이거 방수 아닌데⁠.⁠”

“⁠엄마가 싫다고 하셨어요⁠.⁠”

분석팀장은 볼펜으로 공책을 세 번 두드리고 장비를 거두기 시작했다⁠. 거두면서 편정훈에게 말했다⁠. 화영이 들으라고 하는 말이었다⁠.

“⁠대령님⁠. 사실 현재 음성은 꼭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1985년 테이프 사본이 연구원 서버에 있습니다⁠. 스물두 살 목소리로 충분히 만듭니다⁠. 오히려 그게 더 낫습니다⁠. 저쪽이 들은 게 그 목소리니까요⁠.⁠”

화영이 몸을 일으켰다⁠. 무릎에서 뚝 소리가 났다⁠.

“⁠동의 없이요⁠?⁠”

“⁠1985년 녹음은 연구원 자료입니다⁠. 어머님 개인 물건이 아니라요⁠.⁠” 분석팀장이 은색 상자를 닫았다⁠. “⁠국가 기관끼리 협조 요청하면 됩니다⁠.⁠”

편정훈은 창가에서 등을 떼지 않았다⁠. 화영은 편정훈을 보았다⁠. 편정훈은 화영의 눈을 피하지 않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10월 28일 오후 두 시⁠, 서울 용산 국방부 본관 회의실의 긴 탁자에 열두 사람이 앉았다⁠. 상석에 장관이 앉았고⁠, 오른편에 편정훈과 분석팀장이⁠, 왼편에 외교부 국장과 민석이 앉았다⁠. 화영은 탁자 맨 끝에 앉았다⁠. 앞에 놓인 명패에 「⁠1985년 음성 당사자 보호자⁠」라고 적혀 있었다⁠. 이름은 없었다⁠.

벽 화면에 안이 하나 떠 있었다⁠.

「⁠대응 3안 — 1985년 음성 기반 답신⁠. 문장⁠: “⁠먹었다⁠. 오지 마라⁠.⁠” 상대가 반응한 목소리로 거절 의사를 전달⁠」

분석팀장이 설명했다⁠. 저쪽은 1985년의 한국인 목소리에 반응했다⁠. 같은 목소리로 대답하면 저쪽은 귀를 기울일 것이다⁠. 같은 목소리로 거절하면⁠, 거절을 무겁게 받아들일 것이다⁠. 문장은 짧게⁠. 먹었다로 안부에 답하고⁠, 오지 마라로 선을 긋는다⁠.

장관이 탁자 끝을 보았다⁠. “⁠보호자분 의견을 듣겠습니다⁠.⁠”

화영은 두 손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니트 소매가 손등을 덮었다⁠.

“⁠엄마는 평생 오지 마라는 말을 한 번도 안 했어요⁠.⁠”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연구원 식당에서 서른 해 동안⁠, 밥 때 놓친 연구원님들이 밤 열한 시에 와도 엄마는 오지 말라고 안 했어요⁠. 식은 밥 데워서 줬어요⁠. 제가 대학원 떨어지고 석 달 방에서 안 나왔을 때도 문 앞에 밥상 놓고 갔지 오지 말라고는 안 했어요⁠.⁠” 화영의 목소리가 떨리지 않았다⁠. 떨리지 않게 하느라 손이 탁자를 눌렀다⁠. “⁠그 목소리로 오지 마라를 만드는 거는⁠, 엄마 말을 만드는 게 아니에요⁠. 엄마를 만드는 거예요⁠. 없는 엄마를요⁠.⁠”

분석팀장이 볼펜을 두드렸다⁠. “⁠감정적인 말씀은 이해합니다만⁠…⁠.⁠”

민석이 손을 들었다⁠. 회의 내내 한 마디도 하지 않던 민석이었다⁠.

“⁠과학 쪽에서 하나만 보태겠습니다⁠. 이 답장은 이십오 년 뒤에 닿습니다⁠. 저쪽이 이 목소리를 엄마 목소리로 알아듣는다고 가정하죠⁠. 국방부 가정 그대로요⁠.⁠” 민석이 안경을 벗었다⁠. “⁠엄마가 오지 말라고 하면 자식은 어떻게 합니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외교부 국장이 기침을 했다⁠.

“⁠옵니다⁠. 저는 어머니가 오지 말라고 하신 해에 고향에 세 번 갔습니다⁠.⁠” 민석은 안경을 다시 썼다⁠. “⁠농담이 아닙니다⁠. 국방부 가정대로라면⁠, 이 문장은 거절이 아니라 부르는 말로 들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1985년 음성 자료는 연구원 소유입니다⁠. 연구원은 이 안에 자료를 내드리지 않겠습니다⁠. 연구원장 허락은 오늘 아침에 받았습니다⁠.⁠”

분석팀장의 볼펜이 멈췄다⁠. 장관이 편정훈을 보았다⁠.

“⁠편 대령 생각은요⁠?⁠”

편정훈은 화면의 문장을 한참 보았다⁠. 먹었다⁠. 오지 마라⁠.

“⁠3안은 지금까지 나온 안 가운데 가장 덜 위험한 대답입니다⁠. 저쪽이 귀 기울이는 목소리를 처음으로 우리가 쥐었습니다⁠. 침묵만으로는 상대가 계속 묻습니다⁠. 두 번째 답장이 그걸 보여 줬습니다⁠.⁠” 편정훈이 숨을 골랐다⁠. “⁠다만 연구원이 자료를 거부하면⁠, 우리 단독으로는 못 합니다⁠. 유엔에 국제 공동안으로 올리는 방법뿐입니다⁠.⁠”

외교부 국장이 서류를 넘겼다⁠. “⁠어차피 단독 송신은 안 됩니다⁠. 유엔 안보리가 11월 4일 뉴욕에서 특별 회의를 엽니다⁠. 이튿날 표결입니다⁠. 침묵 결의와 공동 답신안이 같이 올라갑니다⁠. 우리 정부는 3안을 공동 답신안으로 내겠습니다⁠.⁠” 국장은 서류를 한 장 더 넘겼다⁠. “⁠분위기는 갈려 있습니다⁠. 미국과 유럽은 침묵 쪽으로 기울었고⁠, 아세안 여러 나라는 대답하자는 쪽입니다⁠. 자기들 말로 물었으니 자기들도 대답할 권리가 있다고요⁠. 중국은 아직 말이 없습니다⁠. 말이 없을 때가 제일 어렵습니다⁠.⁠”

장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회의가 끝났다⁠. 화영의 명패에는 끝까지 이름이 없었다⁠.

*

회의실 밖 복도의 창문으로 용산의 회색 하늘이 보였다⁠. 화영은 엘리베이터 앞에서 편정훈을 따라잡았다⁠.

“⁠대령님은 3안이 좋다고 생각하세요⁠?⁠”

“⁠덜 나쁘다고 생각합니다⁠.⁠”

“⁠엄마 목소리로 거짓말하는 거예요⁠. 엄마는 먹었다고 할지도 몰라요⁠. 근데 오지 마라는 절대 안 해요⁠.⁠”

“⁠압니다⁠.⁠”

“⁠아시면서요⁠?⁠”

편정훈이 엘리베이터 버튼에서 손을 뗐다⁠. 복도 끝에서 사람들이 지나갔다⁠. 편정훈은 목소리를 낮췄다⁠.

“⁠박사님⁠. 저는 몇 주째 지도만 봤습니다⁠. 김제 진봉면 빨간 점이 첫 답장에도 있었고⁠, 두 번째에도 있었습니다⁠. 두 번째에는 반경이 오 킬로미터로 줄었습니다⁠. 저쪽은 우리 엄니 논을 점점 정확하게 짚고 있습니다⁠.⁠” 편정훈의 엄지가 바지 솔기를 누르지 않았다⁠. 대신 주먹을 쥐었다⁠. “⁠저쪽이 귀 기울이는 목소리가 하나 있다면⁠, 저는 그 목소리로 우리 엄니 논에서 떨어지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게 어머님 목소리라서 미안합니다⁠. 진심입니다⁠.⁠”

“⁠엄마는 패가 아니에요⁠.⁠”

“⁠압니다⁠. 그래서 뉴욕에 제가 직접 갑니다⁠. 어머님 목소리가 어디까지 쓰이는지 제 눈으로 보겠습니다⁠. 거기서 선을 넘으면 제가 막겠습니다⁠.⁠”

“⁠대령님이 그 선을 그으시잖아요⁠.⁠”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편정훈이 먼저 타지 않고 문을 손으로 잡았다⁠. 화영이 타지 않자⁠, 편정훈은 혼자 타고 고개를 숙였다⁠. 문이 닫혔다⁠.

*

용산역으로 걷는 길에 부영철에게서 전화가 왔다⁠. 바람 소리가 먼저 들렸다⁠. 억새 들판 한가운데서 거는 전화였다⁠.

“⁠밥 박사⁠, 밥 먹언⁠?⁠”

“⁠아직이요⁠. 회의 끝났어요⁠.⁠”

“⁠회의는 밥 먹고 해야 끝나는 거우다⁠.⁠” 부영철이 혀를 찼다⁠. “⁠곱단이는 오늘 새벽에도 들었수다⁠. 네 시 십이 분⁠. 두 번째 답장이 열사흘째 똑같이 와⁠. 대답 안 해도 꼬박꼬박 와⁠. 군인들도 이제 네 시 십이 분 되면 다 깨서 듣고 있수다⁠. 박 대위는 수첩에 받아 적고⁠, 병장은 따라 해⁠. 똑똑⁠, 쉬고⁠, 똑똑똑⁠.⁠”

“⁠병장님이요⁠? 경상도 병장님⁠?⁠”

“⁠밥은 묵었나⁠, 하고 따라 해⁠. 제주 와서 전라도 대령 밑에서 경상도 사투리로 외계인 흉내를 내⁠.⁠” 부영철이 웃었다⁠. 웃음이 바람에 흩어졌다⁠. “⁠마을 사람들이 철조망에 새로 붙였수다⁠. 「⁠봉애 삼춘 목소리 함부로 쓰지 맙서⁠」⁠. 부녀회장이 붙였어⁠. 봉애 삼춘이 누군지도 모르면서⁠.⁠”

화영은 걸음을 멈췄다⁠. 용산역 광장의 비둘기들이 발밑에서 흩어졌다⁠.

“⁠선생님⁠. 저 뉴욕 가요⁠.⁠”

“⁠가서 밥 꼭 먹읍서⁠. 미국 밥은 양이 많다니까 남기지 말고⁠.⁠”

*

밤 여덟 시⁠, 대전역 대합실 의자에서 민석이 서류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봉투 안에 비행기표와 공문 한 장이 들어 있었다⁠.

「⁠대전 천문연구원 — 소화영을 1985년 신호 자료 해설 자문으로 위촉함⁠. 유엔 특별 회의 한국 대표단 연구원 측 수행⁠」

“⁠연구원장이 도장 찍었어요⁠. 사과하고 나니까 마음이 편해졌대요⁠. 오십 년 묵은 오타 하나 고친 사람이 됐다고요⁠.⁠” 민석이 넥타이를 손가락으로 당겼다⁠. “⁠비행기표는 내 돈이에요⁠. 이코노미예요⁠. 이십오 광년보다는 짧아요⁠.⁠”

“⁠팀장님⁠. 국방부한테 자료 안 준다고 하신 거⁠, 괜찮으세요⁠?⁠”

“⁠안 괜찮아요⁠. 내년 예산 깎일 거예요⁠.⁠” 민석은 웃었다⁠. 웃음이 피곤했다⁠. “⁠박사님⁠. 나는 처음에 안녕하세요라고 했어요⁠. 아무 데도 안 걸리는 말이라서⁠. 근데 아무 데도 안 걸리는 말은 아무한테도 안 가요⁠. 이번엔 걸리는 말 하러 가세요⁠.⁠”

민석은 의자에서 일어나 코트 주머니에서 호두과자 봉지를 꺼냈다⁠. 대전역에서 파는 것이었다⁠. 봉지를 화영의 무릎에 올려놓고⁠, 비행기에서 이거라도 먹으라고 했다⁠. 해독팀 사람들은 누구 하나 밥을 먹이지 않고는 떠나보내지 못했다⁠.

*

출국 전날 아침⁠, 요양원 식당에서 어머니는 흰죽을 다 먹었다⁠. 숟가락을 내려놓고 딸을 보았다⁠.

“⁠밥은 먹었니⁠?⁠”

끝이 한 마디 올라갔다⁠. 걱정의 높이였다⁠. 화영은 휴대전화 녹음 버튼을 눌렀다가⁠, 손가락을 멈추고 다시 눌러 껐다⁠. 오늘 하나는 녹음하지 않기로 했다⁠.

“⁠먹었어⁠. 엄마⁠, 나 뉴욕 가⁠. 엄마 목소리 함부로 못 쓰게 하고 올게⁠.⁠”

어머니가 딸의 니트 소매를 잡아당겼다⁠. 소매 끝의 보풀을 손가락으로 하나씩 뜯었다⁠. 오래 뜯었다⁠. 다 뜯고 나서 소매를 놓아주었다⁠. 마리셀이 쟁반을 거두며 말했다⁠.

“⁠어머님이 옷 정리해 주신 거여유⁠. 뉴욕 가는데 보풀 달고 가면 안 된다고⁠.⁠”

*

인천공항 출국장의 큰 화면에 뉴스가 돌았다⁠. 화영은 가방 끈을 쥔 채 걸음을 멈췄다⁠. 부영철이 제주 공항에서 부쳐 준 귤 상자가 짐칸에 실려 있었다⁠.

「⁠첫말씀교회 “⁠11월 5일 필리핀 민간 기지서 독자 송신⁠” … 유엔 표결 당일 “⁠주여 먹었나이다⁠” 보낸다⁠」

화면 속 여동현이 두 팔을 벌렸다⁠. 등 뒤로 필리핀 어느 바닷가의 낡은 접시 안테나가 보였다⁠. 곱단이보다 작고⁠, 페인트가 벗겨진 접시였다⁠. 표결이 열리는 날이었다⁠. 화영은 휴대전화를 꺼내 편정훈에게 문자를 보냈다⁠. 「⁠보셨어요⁠?⁠」 답장은 금방 왔다⁠. 「⁠봤습니다⁠. 비행기에서 뵙겠습니다⁠. 같은 비행기입니다⁠」⁠. 유엔이 무엇을 정하든⁠, 11월 5일 하늘로 올라가는 첫 대답은 따로 정해져 있었다⁠.

9화는 어땠나요?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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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이배2026.11.01· 9화

    엄마 목소리예요, 엄마한테 물어보세요. 이 대사에서 눈물 났어요. 저희 엄마도 밥 먹었냐고만 물으세요.

    • 은해록작가2026.11.01

      어머님께도 꼭 「먹었어」 대신 오늘 뭐 드셨는지 한번 말씀드려 보세요. 화영도 그 말을 하려고 끝까지 갑니다.

오지 마라 · 외계의 첫 답장 "밥은 먹었니?" · 나오늘 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