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341자)

오리 피리

외계의 첫 답장 "밥은 먹었니?" · 은해록

11월 3일 낮⁠, 태평양 위의 비행기에서 승무원이 손수레를 밀고 왔다⁠. 승무원은 영어로 소고기와 닭고기 가운데 무엇을 드시겠느냐고 물었다⁠. 화영이 대답하기 전에 옆자리의 편정훈이 손을 들었다⁠.

“⁠밥 있습니까⁠?⁠”

승무원이 눈을 깜빡였다⁠. 이어서 한국어로 대답했다⁠. 비빔밥이 있습니다⁠.

“⁠그거 두 개 주십시오⁠.⁠”

편정훈은 국방부 출장비로 이코노미를 탔다⁠. 민석이 사 준 표와 같은 비행기의 옆자리였다⁠. 국방부 담당관이 일부러 붙여 놓은 자리라고 했다⁠. 감시냐고 화영이 묻자 편정훈은 고개를 저었다⁠. 대화하라는 겁니다⁠, 하고 덧붙였다⁠.

비빔밥 그릇의 뚜껑을 열자 고추장 튜브가 따라 나왔다⁠. 편정훈은 고추장을 끝까지 짜 넣고 숟가락으로 비볐다⁠. 비비는 손이 빨랐다⁠. 군대에서 배운 속도였다⁠.

“⁠대령님 밥 드시는 거 두 번째 봐요⁠.⁠”

“⁠세 번째입니다⁠. 제주에서 몸국⁠, 텔레비전 보면서 화날 때⁠, 그리고 지금⁠.⁠”

“⁠지금은 왜요⁠?⁠”

“⁠내일 회의장에서는 아무도 밥을 안 먹을 겁니다⁠.⁠” 편정훈은 한 숟가락을 크게 떠 넣었다⁠. “⁠회의하는 사람들은 굶어야 일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편정훈의 휴대전화가 비행기 모드 직전에 떨렸다⁠. 화면에 김제에서 온 문자가 떠 있었다⁠. 글자가 크고 띄어쓰기가 없었다⁠. 「⁠뉴욕가서도밥은묵어라외국밥은속이빈다⁠」⁠. 편정훈은 문자를 화영에게 보여 주지 않으려다 화영이 이미 본 것을 알고 화면을 내밀었다⁠.

“⁠우리 엄니가 처음 보낸 문자입니다⁠. 조카가 가르쳐 줬다고 합니다⁠.⁠”

“⁠속이 빈다는 게 무슨 뜻이에요⁠?⁠”

“⁠배는 부른데 허전하다는 뜻입니다⁠. 엄니 말로는 쌀이 아니면 다 그렇답니다⁠.⁠”

*

11월 4일 오전 열 시⁠, 뉴욕 유엔 본부의 작은 회의실에는 둥근 탁자가 없었다⁠. 긴 탁자가 말발굽 모양으로 놓였고⁠, 나라 이름이 적힌 명패가 마흔 개 남짓 줄지어 있었다⁠. 대표들 뒤에는 수행원들이 의자를 붙이고 앉았다⁠. 탁자 위에 놓인 것은 물병과 종이와 마이크뿐이었다⁠. 빵 한 조각도 없었다⁠.

화영은 한국 대표단 맨 뒷줄에 앉았다⁠. 목에 건 유엔 방문증이 연구원 출입증보다 컸다⁠. 늘어난 회색 니트는 보풀이 하나도 없었다⁠. 어머니가 출국 전날 아침에 다 뜯어 준 소매였다⁠. 양복 입은 사람들 사이에서 회색 니트는 혼자 자리를 넓게 차지했다⁠.

의장이 한국 대표단에 발언권을 주었다⁠. 대사가 짧게 인사하고 화영을 소개했다⁠. 1985년 신호 자료 해설 자문⁠. 화영이 일어나 마이크 앞으로 갔다⁠. 통역 부스의 창이 회의실 위쪽에 보였다⁠. 유리 너머에서 통역사들이 헤드셋을 고쳐 썼다⁠.

“⁠소리를 하나 들려 드리겠습니다⁠.⁠”

화영은 녹음기의 재생 단추를 눌렀다⁠. 회의실 스피커에 연구원 식당의 그릇 소리가 퍼졌다⁠. 남자가 안녕하세요를 시키고⁠, 스물두 살 어머니가 숨을 들이마셨다⁠.

밥은 먹었니⁠?

통역 부스의 통역사들이 일제히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여섯 개 공용어로 옮기기 전에 원래 목소리가 한 번 더 이어졌다⁠. 먹고 해요⁠, 먹고⁠. 뒤에서 조리원들이 깔깔 웃었다⁠. 대표 몇이 저도 모르게 웃었다⁠. 화영은 테이프를 멈추고 하늘의 첫 답장을 이어서 틀었다⁠. 똑똑⁠, 틈⁠, 똑똑똑⁠. 두 소리의 박자가 같다는 것을 귀로 알아듣는 데 통역은 필요 없었다⁠.

“⁠하늘은 이 사람의 목소리를 오십 년 동안 들고 있다가 돌려보냈습니다⁠. 반가울 때의 높이 그대로요⁠. 두 번째 답장에서는 같은 말을 쓰는 여덟 나라의 인사를 모아 다시 물었습니다⁠. 저는 이 말들이 엄마들의 말이라고 들었습니다⁠. 제주에서 여덟 나라 사람이 직접 들었고⁠, 여덟 명 다 같은 말을 했습니다⁠.⁠”

통역 부스의 창 너머로 통역사 하나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보였다⁠. 화영은 자리로 돌아왔다⁠. 손바닥이 땀에 젖어 있었다⁠.

*

다음 발언은 한국 대표단의 군사 자문⁠, 편정훈이었다⁠. 편정훈은 마이크 앞에서 노트북을 열었다⁠. 화면에 영상 하나가 떴다⁠. 갈대숲의 늪이었다⁠. 위장복을 입은 사냥꾼이 나무 피리를 입에 물고 불었다⁠. 꽥⁠, 꽥꽥⁠. 하늘에서 오리 떼가 방향을 꺾어 늪으로 내려왔다⁠.

회의실 여기저기서 고개가 끄덕여졌다⁠. 미국 대표가 의자에 등을 기댔다⁠. 오리 피리는 미국 대표의 나라에서 가장 흔한 사냥 도구였다⁠.

“⁠제 할아버지는 대나무 피리로 꿩을 불렀습니다⁠. 이 사냥꾼은 나무 피리로 오리를 부릅니다⁠. 둘 다 같은 원리입니다⁠. 상대가 가장 반가워하는 소리를 냅니다⁠.⁠” 편정훈의 영어는 느렸지만 또박또박했다⁠. “⁠조금 전 들으신 목소리는 진짜 엄마의 목소리입니다⁠. 저도 그렇게 믿습니다⁠. 문제는 그 목소리를 오십 년 동안 갖고 있다가⁠, 곳간 열아홉 군데 지도와 함께 보낸 상대입니다⁠. 그 상대가 엄마인지 사냥꾼인지⁠, 우리는 모릅니다⁠. 모를 때 군인은 사냥꾼이라고 가정합니다⁠. 틀리면 사과하면 됩니다⁠. 반대로 틀리면 사과할 사람이 남지 않습니다⁠.⁠”

회의실이 조용했다⁠. 미국 대표가 마이크를 켰다⁠.

“⁠한국 자문께 묻겠습니다⁠. 엄마인지 사냥꾼인지⁠, 무엇으로 구별할 수 있습니까⁠?⁠”

의장이 화영을 보았다⁠. 화영은 의자에서 일어나 마이크 앞으로 나갔다⁠. 걸어가는 동안 대답을 찾았다⁠. 높낮이⁠, 박자⁠, 여덟 사람의 귀⁠. 하나도 증거가 되지 않았다⁠. 사냥꾼의 피리도 높낮이와 박자를 흉내 냈다⁠. 여덟 사람의 귀는 반가운 소리에 속은 오리의 귀일 수도 있었다⁠.

“⁠지금은 구별할 수 없습니다⁠.⁠”

회의실이 술렁였다⁠.

“⁠다만 하나는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사냥꾼은 한 번 불고 기다리지 않습니다⁠. 오리가 안 오면 다른 소리를 냅니다⁠. 이 상대는 대답을 못 들었는데도 같은 말을 두 번 물었습니다⁠. 두 번째는 걱정의 높이로요⁠.⁠” 화영은 마이크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그게 엄마라는 증거는 못 됩니다⁠. 그래도 엄마들이 그렇게 합니다⁠.⁠”

아세안 대표석 몇 곳에서 작은 박수가 났다가 의장의 망치 소리에 멈췄다⁠. 베트남 대표가 손을 들어 짧게 말했다⁠. 통역 헤드셋 속에서 통역사가 옮겼다⁠. 저희 나라 말로도 물었습니다⁠. 저희에게도 대답할 차례가 있습니다⁠. 필리핀 대표가 마이크를 켜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미국 대표는 메모를 했다⁠. 중국 대표는 끝까지 아무것도 적지 않았다⁠.

휴회를 알리는 망치가 울리자 대표들이 일어나 물병을 챙겼다⁠. 누구도 먹을 것을 찾지 않았다⁠. 화영은 가방 속의 호두과자 봉지를 만지작거렸다⁠. 민석이 대전역에서 준 봉지였다⁠. 반쯤 남아 있었다⁠. 화영은 봉지를 꺼내 옆자리 한국 대표단 막내 외교관에게 하나 건넸다⁠. 막내 외교관은 놀란 얼굴로 받아 들고⁠, 화장실에 가서 몰래 먹겠다고 했다⁠.

*

점심 휴회 시간⁠, 화영은 유엔 본부 앞 광장으로 나갔다⁠. 길 건너에 흰 옷 입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첫말씀교회 뉴욕지교회 신도들이었다⁠. 현수막의 영어 글씨 아래 한국어가 작게 붙어 있었다⁠. 「⁠주여⁠, 우리가 먹었나이다⁠」⁠. 신도들은 하얀 밥공기 대신 종이컵을 들고 있었다⁠. 종이컵 안에 흰쌀밥이 한 숟가락씩 담겨 있었다⁠.

흰 양복이 길을 건너왔다⁠. 여동현이었다⁠. 이번에는 철창이 없었다⁠.

“⁠박사님⁠. 회의장 안의 말씀을 생중계로 들었습니다⁠. 엄마들이 그렇게 한다는 말씀이요⁠. 제 설교보다 낫더군요⁠.⁠”

“⁠목사님 내일 보내신다면서요⁠. 필리핀에서⁠.⁠”

“⁠보냅니다⁠. 유엔이 침묵을 정하면 인류의 첫 대답은 침묵이 되겠지요⁠. 저는 그걸 못 봅니다⁠.⁠” 여동현이 종이컵 하나를 내밀었다⁠. 화영은 받지 않았다⁠. “⁠제안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어머님 테이프를 주시면⁠, 저희가 보내는 대답에 어머님 목소리를 넣겠습니다⁠. 국방부처럼 오지 마라가 아니라⁠, 먹었나이다로요⁠. 국방부보다 따뜻하게 쓰겠습니다⁠.⁠”

“⁠목사님도 엄마 목소리로 엄마가 안 한 말을 시키시는 거예요⁠.⁠”

“⁠어머님은 먹었냐고 물으셨습니다⁠. 먹었다고 대답하는 게 어머님 말씀을 거스르는 겁니까⁠?⁠”

화영은 대답을 고르다 말았다⁠. 여동현의 말은 반쯤 맞았다⁠. 반쯤 맞는 말이 제일 무서웠다⁠.

“⁠엄마한테 대답하는 건 엄마 목소리가 아니에요⁠. 엄마는 묻는 사람이에요⁠. 대답은 우리가 하는 거고요⁠.⁠”

여동현이 종이컵을 거두었다⁠. 고개를 숙여 정중하게 인사했다⁠. 내일 표결 시각에 맞춰 보내겠다고 말하고 길을 건너갔다⁠. 신도들이 여동현을 맞으며 종이컵을 하늘로 들었다⁠.

*

밤 일곱 시⁠, 32번가 코리아타운의 작은 식당에서 편정훈은 된장찌개를⁠, 화영은 순두부찌개를 시켰다⁠. 반찬이 일곱 가지 나왔다⁠. 편정훈은 반찬 그릇을 하나씩 손으로 짚으며 세었다⁠. 일곱 개⁠. 곳간 일곱 군데⁠. 두 사람 다 웃지 않으려다 웃었다⁠.

“⁠장관께서 지시하셨습니다⁠. 3안이 표결에서 지면⁠, 한국은 침묵 결의에 찬성합니다⁠. 침묵 결의가 통과되면 곱단이는 영구 봉인입니다⁠. 각국 접시도 송신을 막습니다⁠.⁠”

“⁠그럼 하늘에 올라가는 첫 대답은 필리핀 바닷가의 먹었나이다예요⁠.⁠”

“⁠예⁠. 법으로 막을 수 없는 나라의 기지입니다⁠.⁠” 편정훈이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저는 침묵이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침묵하는 동안 다른 누가 대답하면⁠, 그건 침묵이 아닙니다⁠. 우리가 대답할 권리를 남한테 넘기는 겁니다⁠.⁠”

편정훈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뉴욕 저녁 일곱 시 사십 분⁠. 김제는 아침 여섯 시 사십 분이었다⁠. 편정훈이 전화를 받았다⁠.

“⁠예⁠, 엄니⁠.⁠”

“⁠밥은 묵었냐⁠?⁠”

편정훈은 된장찌개 그릇을 내려다보았다⁠. 반쯤 남은 찌개에서 김이 올랐다⁠. 편정훈이 숟가락으로 두부 한 조각을 떠서 입에 넣고 씹었다⁠. 씹는 소리가 전화기에 들어갔다⁠.

“⁠지금 묵고 있어라⁠, 엄니⁠. 된장찌개⁠.⁠”

“⁠워메⁠, 뉴욕에서 된장을⁠?⁠”

“⁠한국 사람이 하는 식당이 있어라⁠. 박사님하고 같이 묵어요⁠.⁠”

끝이 내려앉았다⁠. 공중에 뜨지 않고 바닥에 닿았다⁠. 화영은 순두부를 뜨다가 숟가락을 멈췄다⁠. 처음 듣는 높이의 묵었어라였다⁠. 편정훈의 엄지는 바지 솔기를 문지르지 않았다⁠. 숟가락을 쥐고 있었다⁠.

전화를 끊은 편정훈이 화영의 표정을 보았다⁠.

“⁠이번에는 안 떴습니까⁠?⁠”

“⁠안 떴어요⁠. 바닥에 닿았어요⁠.⁠”

편정훈은 고개를 끄덕이고 남은 찌개를 다 먹었다⁠. 화가 나서 다 먹는 얼굴이 아니었다⁠.

화영은 휴대전화를 꺼내 녹음 폴더를 열었다⁠. 「⁠엄마_0814_아침_걱정⁠」에서 「⁠엄마_1029_아침_걱정⁠」까지 삼백열두 개의 파일이 내려왔다⁠. 세 해 동안 모은 어머니의 한 마디였다⁠.

“⁠대령님⁠. 내일 회의장에서 이걸 틀 거예요⁠. 엄마가 밥은 먹었니 한 마디로 무슨 말을 다 하는지⁠. 걱정하고⁠, 반가워하고⁠, 야단치고⁠, 무서워하고⁠. 삼백열두 번이요⁠. 사냥꾼 피리는 한 가지 소리만 내요⁠. 엄마는 한 마디로 삼백 가지를 해요⁠.⁠”

편정훈은 휴대전화 화면의 파일 목록을 보았다⁠. 오래 보았다⁠. 이윽고 화영의 눈을 보았다⁠.

“⁠그거 트시면⁠, 어머님은 내일부터 남의 어머니가 됩니다⁠. 세상 사람 전부의 어머니요⁠. 박사님이 요양원 정문에서 여동현 목사한테 하신 말씀⁠, 기억하십니까⁠?⁠”

“⁠우리 엄마는 세상 엄마 아니라고요⁠.⁠”

“⁠예⁠.⁠”

화영은 휴대전화를 식탁 위에 엎어 놓았다⁠. 순두부찌개가 식어 갔다⁠. 식당 창밖으로 뉴욕의 밤거리가 시끄럽게 흘렀다⁠. 필리핀 바닷가에서는 벗겨진 페인트의 접시가 새벽을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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