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366자)

꿩 피리

외계의 첫 답장 "밥은 먹었니?" · 은해록

밤 열한 시⁠, 해독실의 큰 화면에는 겹친 두 줄이 그대로 떠 있었다⁠. 미경은 자리를 비켜 복도로 나갔고⁠, 해독실에는 화영과 편정훈만 남았다⁠. 편정훈은 의자에 앉지 않았다⁠. 화면 앞에 서서 손가락으로 마지막 점의 높이를 쟀다⁠.

“⁠제가 김제에서 자랄 때 할아버지가 꿩 사냥을 하셨습니다⁠.⁠” 편정훈이 화면을 보며 말했다⁠. “⁠사냥 나갈 때 대나무 피리를 들고 가셨지요⁠. 피리를 불면 까투리 우는 소리가 납니다⁠. 장끼가 그 소리를 듣고 덤불에서 고개를 내밉니다⁠. 반가워서요⁠.⁠”

화영은 책상 위 사진을 봉투에 넣었다⁠.

“⁠지금 엄마 목소리가 꿩 피리라는 거예요⁠?⁠”

“⁠저쪽은 어머님 목소리를 오십 년 동안 갖고 있다가⁠, 어머님이 반가울 때 쓰신 높이 그대로 우리한테 불었습니다⁠. 우리는 반가워서 고개를 내밀었고요⁠. 박사님도⁠, 쌀국수집의 여덟 사람도⁠, 방콕 시장 사람들도⁠.⁠” 편정훈이 몸을 돌렸다⁠. “⁠제가 할아버지 옆에서 배운 건 하나입니다⁠. 제일 반가운 소리를 내는 건 사냥꾼입니다⁠.⁠”

“⁠대령님 할아버지는 꿩을 잡으셨죠⁠. 엄마는 연구원님들 밥 먹이셨고요⁠.⁠”

“⁠어머님 얘기가 아닙니다⁠. 어머님 목소리를 가진 상대 얘기입니다⁠.⁠”

화영은 봉투를 가슴에 안았다⁠. 종이가 구겨지는 소리가 났다⁠.

“⁠대령님⁠. 이거 국방부에 올리지 마세요⁠.⁠”

“⁠올려야 합니다⁠.⁠”

“⁠엄마는 말을 한 마디밖에 못 하세요⁠. 아니라고도 못 하시고⁠, 싫다고도 못 하세요⁠. 이게 나가면 엄마는 요양원 창문 밖으로 사진기만 보시다 돌아가실 거예요⁠.⁠”

“⁠제가 덮으면⁠, 저쪽이 우리나라 사람 목소리를 오십 년 동안 갖고 있었다는 사실을 나라가 모릅니다⁠.⁠” 편정훈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박사님 어머님을 지키는 일과 이걸 나라에 알리는 일이 부딪치면⁠, 저는 알리는 사람입니다⁠. 그걸 하려고 여기 있습니다⁠. 대신 이름은 빼겠습니다⁠. 「⁠1985년 연구소 직원⁠」으로만 올리겠습니다⁠.⁠”

“⁠이름 빼도 다 알아요⁠. 텔레비에 밥 박사 엄마가 연구원 식당 조리원이었다고 벌써 나왔어요⁠.⁠”

편정훈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손목시계를 보았다⁠. 열한 시 이십 분이었다⁠. 김제의 어머니가 잠자리에 드는 시각이었다⁠.

*

테이프 이야기는 국방부보다 경로당에 먼저 닿았다⁠. 이튿날 아침 열 시⁠, 화영은 요양원 휴게실 텔레비전에서 자기가 하지 않은 말을 들었다⁠.

「⁠첫말씀교회 “⁠첫 목소리의 어머니 찾았다⁠” … 대전 요양원에 계신 일흔두 살 전직 조리원⁠」

뉴스 화면에 시장 골목의 「⁠대성전파사⁠」 간판이 잠깐 지나갔다⁠. 전파사 주인이 모자이크 처리된 얼굴로 기자에게 말했다⁠. 경로당에서 테이프 얘기를 했을 뿐이라고⁠, 아줌마 목소리가 좋더라고 했을 뿐이라고⁠. 경로당에서 들은 교회 집사가 목사에게 전했고⁠, 목사는 새벽 기도 시간에 신도 삼천 명 앞에서 전했다⁠.

마리셀이 휴게실 창문 블라인드를 내리며 혀를 찼다⁠.

“⁠전파사 할아버지 입이 테이프보다 더 늘어졌네유⁠.⁠”

열한 시⁠, 국방부 대변인이 브리핑을 열었다⁠. 대변인은 원고를 읽었다⁠. 외계 답장의 첫 문장은 1985년 한국이 보낸 신호 속의 한 시민 목소리를 그대로 되돌린 것으로 확인됐다⁠. 상대가 오십 년 동안 지구인의 목소리를 보관하고 흉내 낼 수 있다는 점에서 국방부는 유인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대변인은 편정훈의 말을 그대로 썼다⁠. 반가운 소리를 내는 상대일수록 경계해야 한다⁠.

어머니는 텔레비전을 보지 않았다⁠. 휠체어를 창문으로 돌려 블라인드 틈으로 은행나무를 보았다⁠. 화영은 어머니의 등 뒤에서 니트 소매를 손등까지 끌어내렸다⁠.

*

정오가 되기 전에 요양원 정문 앞에 사람들이 모였다⁠. 기자들이 사다리를 펴고 카메라를 올렸고⁠, 흰 옷을 입은 첫말씀교회 신도들이 줄을 지어 모였다⁠. 신도들은 저마다 두 손에 하얀 밥공기를 받쳐 들었다⁠. 밥공기마다 김이 올랐다⁠. 현수막이 정문 담장을 따라 길게 펼쳐졌다⁠. 「⁠첫 목소리의 어머니 — 하늘이 어머니께 밥을 물으셨나이다⁠」⁠.

마리셀이 정문 안쪽에서 신도들을 향해 손나팔을 만들었다⁠.

“⁠여기 할머니들 낮잠 시간이에유⁠! 밥은 집에 가서 드셔유⁠!⁠”

신도 몇이 웃음을 참으며 밥공기를 고쳐 들었다⁠. 누군가 「⁠아멘⁠」이라고 대답했다⁠. 마리셀이 화영을 돌아보았다⁠.

“⁠따님⁠, 아멘이 무슨 뜻이에유⁠? 알았다는 거여유⁠, 안 간다는 거여유⁠?⁠”

“⁠둘 다요⁠.⁠”

정문 앞에 검은 승합차가 멈췄다⁠. 흰 양복의 여동현이 내렸다⁠. 텔레비전에서 보던 것보다 키가 작았고⁠, 목소리는 텔레비전보다 부드러웠다⁠. 여동현은 신도들 사이를 지나 정문 철창 앞까지 와서 화영을 보았다⁠.

“⁠소화영 박사님이시죠⁠. 여동현입니다⁠.⁠” 여동현이 철창 사이로 손을 내밀었다⁠. 화영은 손을 잡지 않았다⁠. 여동현은 손을 거두지 않고 철창에 가볍게 올려놓았다⁠. “⁠어머님을 뵙고 싶습니다⁠. 기도를 받고 싶습니다⁠. 하늘이 처음으로 말을 거신 분이니까요⁠.⁠”

“⁠엄마는 기도 안 하세요⁠. 밥 하셨어요⁠.⁠”

“⁠밥을 하시는 게 기도입니다⁠.⁠”

“⁠목사님⁠. 엄마는 오늘 아침에 죽 드시다가 텔레비에 나오는 목사님 보고 손을 저으셨어요⁠. 저리 치우라고요⁠.⁠”

신도들 사이에서 작은 웅성거림이 일었다⁠. 여동현은 웃었다⁠. 웃음에 노여움이 섞이지 않았다⁠.

“⁠박사님⁠. 저 밥공기 든 사람들 보이시죠⁠. 저 사람들이 왜 여기 왔는지 아십니까⁠?⁠” 여동현이 뒤를 돌아보았다⁠. “⁠나라는 무섭다고만 합니다⁠. 꿩 피리라고⁠, 유인이라고요⁠. 과학하는 분들은 모른다고만 하고요⁠. 사람들은 밤에 잠을 못 잡니다⁠. 쌀을 사재기하고⁠, 아이 손을 붙잡고 하늘을 봅니다⁠. 저 사람들한테 지금 필요한 건 엄마입니다⁠. 밥 먹었냐고 물어 주는 엄마요⁠.⁠”

“⁠그럼 목사님이 물어 주세요⁠. 우리 엄마 말고요⁠.⁠”

“⁠제가 물으면 목사가 묻는 겁니다⁠. 어머님이 물으시면 하늘이 묻는 겁니다⁠.⁠”

“⁠아니요⁠. 우리 엄마가 묻는 거예요⁠.⁠” 화영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철창이 손바닥 아래에서 차가웠다⁠. “⁠엄마는 세상 엄마 아니에요⁠. 제 엄마예요⁠. 엄마가 밥 먹었냐고 물을 때 대답할 사람은 저 하나예요⁠.⁠”

카메라 셔터가 쏟아졌다⁠. 여동현은 철창에서 손을 떼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고개를 숙여 화영에게 인사했다⁠. 인사는 깊고 정중했다⁠.

“⁠오늘은 돌아가겠습니다⁠. 저 사람들은 두고 가겠습니다⁠. 제가 데려온 사람들이 아닙니다⁠. 스스로 온 사람들입니다⁠.⁠”

*

오후 세 시⁠, 요양원 삼 층 복도 끝 창문으로 정문이 내려다보였다⁠. 신도들은 돌아가지 않았다⁠. 밥공기의 김이 식은 뒤에도 밥공기를 받쳐 든 채 서 있었다⁠. 기자 사다리 위의 카메라는 창문 하나하나를 훑었다⁠.

어머니는 점심을 반만 먹었다⁠. 휠체어를 창문 가까이 밀어 달라고 손짓했다⁠. 화영이 휠체어를 밀자 어머니는 블라인드 틈으로 정문 앞을 내려다보았다⁠. 하얀 밥공기 수백 개가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카메라 하나가 창문을 찾았다⁠. 플래시가 터졌다⁠. 어머니가 눈을 감고 얼굴을 손으로 가렸다⁠.

“⁠엄마⁠, 안 볼게⁠. 블라인드 내릴게⁠.⁠”

어머니가 손을 내리고 딸을 보았다⁠. 입술이 열렸다⁠.

“⁠밥은 먹었니⁠?⁠”

끝이 오르지도 내려앉지도 않았다⁠. 평평하게 깔렸다가 그대로 멈췄다⁠. 화영이 아는 높이 가운데 이 높이는 하나였다⁠. 어머니가 아버지 병원에서 밤을 새우고 돌아온 아침에 쓰던 높이⁠. 무서울 때의 높이였다⁠.

화영은 블라인드를 끝까지 내렸다⁠. 복도가 어두워졌다⁠. 정문 밖에서 누군가 확성기로 어머니의 문장을 따라 외쳤다⁠. 밥은 먹었니⁠! 신도들이 한 목소리로 받았다⁠. 먹었나이다⁠! 마리셀이 삼 층 창문을 하나씩 닫으며 중얼거렸다⁠. 할머니 한 분 무섭다는데 다 같이 밥 얘기여⁠.

다섯 시⁠, 정문 앞에 승합차 한 대가 더 멈췄다⁠. 옆구리에 「⁠하노이 엄마 국수⁠」라고 적힌 차였다⁠. 제주에서 첫 배를 타고 올라왔다고 했다⁠. 응옥이 큰 냄비를 안고 내렸고⁠, 쌀국수집의 여덟 사람 가운데 다섯이 뒤따랐다⁠. 인도네시아 청년 둘은 아이스박스를 하나씩 들었고⁠, 미얀마 남자는 일회용 그릇 묶음을 어깨에 멨다⁠.

응옥은 신도들 사이를 헤치고 정문 철창 앞까지 왔다⁠. 밥공기를 든 신도 하나를 내려다보았다⁠.

“⁠아저씨⁠, 그 밥 식었잖아요⁠. 아까부터 들고만 있고⁠.⁠”

“⁠이건 드리는 밥입니다⁠.⁠”

“⁠누구한테요⁠? 할머니는 이 밥 안 드셔요⁠. 할머니 이 안 좋아요⁠.⁠” 응옥이 냄비 뚜껑을 열었다⁠. 국물 냄새가 정문 앞에 퍼졌다⁠. “⁠식은 밥 들고 서 있지 말고 국수 드세요⁠. 공짜예요⁠. 대신 조용히 드세요⁠. 할머니들 주무셔요⁠.⁠”

신도들이 서로 얼굴을 보았다⁠. 맨 앞의 신도가 밥공기를 내려놓고 일회용 그릇을 받았다⁠. 다음 사람도 받았다⁠. 기자 하나가 사다리에서 내려와 줄 끝에 붙었다⁠. 카메라는 사다리 위에 두고 왔다⁠. 응옥이 국자로 국수를 말며 화영에게 소리쳤다⁠.

“⁠언니⁠! 이거 할머니 거는 따로 있어요⁠. 국물 연하게⁠, 면 짧게⁠. 이 안 좋은 할머니용⁠!⁠”

화영은 철창 너머로 플라스틱 통 하나를 받았다⁠. 뚜껑 위에 매직으로 「⁠봉애 할머니⁠」라고 적혀 있었다⁠. 미얀마 남자가 철창 사이로 고개를 숙였다⁠. 우리 엄마도 이가 안 좋아요⁠, 하고 작게 말했다⁠. 화영은 통을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삼 층까지 계단으로 올라갔다⁠. 일 층 엘리베이터 앞에는 카메라를 품에 숨긴 기자 하나가 화분 뒤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일곱 시⁠, 민석에게서 전화가 왔다⁠.

“⁠박사님⁠, 연구원장이 오늘 저녁에 발표했어요⁠. 1985년 목록이 틀렸다고⁠. 한국어 인사는 안녕하세요가 아니라 밥은 먹었니였다고⁠. 사과는 내가 했어요⁠. 기자들 앞에서요⁠.⁠” 민석의 목소리가 쉬어 있었다⁠. “⁠내가 말했죠⁠. 알고 나면 못 덮는다고⁠.⁠”

“⁠팀장님이 출입증 두고 내리셨잖아요⁠.⁠”

“⁠그러니까요⁠. 내가 덮을 걸 내가 열었어요⁠.⁠” 민석이 잠깐 말을 멈췄다⁠. “⁠어머님은 어떠세요⁠?⁠”

“⁠무서워하세요⁠. 처음 들어 보는 높이예요⁠. 아니⁠, 두 번째요⁠.⁠”

전화기 너머에서 민석이 오래 숨을 내쉬었다⁠. 해독실의 똑똑⁠, 틈⁠, 똑똑똑이 들리지 않았다⁠. 민석은 해독실 밖에 있었다⁠.

*

밤 아홉 시⁠, 요양원 주차장에 군용 승합차 두 대가 들어왔다⁠. 헌병 여덟이 내려 정문과 뒷문에 둘씩 자리를 잡았다⁠. 신도들이 술렁이며 길을 비켰다⁠. 기자들의 카메라가 일제히 헌병을 따라 돌았다⁠.

편정훈이 마지막으로 내렸다⁠. 군복 차림이었다⁠. 정문 안쪽에서 기다리던 화영 앞에 와서 멈췄다⁠.

“⁠국방부가 어머님 경호를 결정했습니다⁠. 오늘부터 헌병이 요양원을 지킵니다⁠. 기자와 신도는 정문 밖 오십 미터까지만 옵니다⁠.⁠”

“⁠고맙다고 해야 돼요⁠?⁠”

“⁠아닙니다⁠. 아직 말씀 다 안 드렸습니다⁠.⁠” 편정훈은 모자를 벗어 옆구리에 끼웠다⁠. 머리에 붙어 있던 억새 털은 없어져 있었다⁠. “⁠오늘 오후에 국방부 대응 회의가 열렸습니다⁠. 새 안이 올라왔습니다⁠. 저쪽이 어머님 목소리에 반응한다면⁠, 우리도 어머님 목소리로 대답하자는 안입니다⁠. 어머님 목소리로⁠, 우리가 정한 말을 하자는 겁니다⁠.⁠”

“⁠엄마는 한 마디밖에 못 하세요⁠.⁠”

“⁠한 마디면 충분하다고 했습니다⁠. 박자와 높이만 있으면 나머지는 기계가 만든다고요⁠. 그래서 경호가 같이 붙은 겁니다⁠.⁠” 편정훈이 고개를 들어 요양원 삼 층의 닫힌 창문을 보았다⁠. “⁠내일 오전에 국방부 음성 분석팀이 내려옵니다⁠. 어머님을 녹음하러요⁠.⁠”

8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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