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395자)

안녕하세요는 쉬지 않는다

외계의 첫 답장 "밥은 먹었니?" · 은해록

아침 일곱 시 반⁠, 연구원 정문 앞 마트의 쌀 진열대가 비어 있었다⁠. 맨 아래 칸에 찹쌀 한 봉지만 모로 누워 있었다⁠. 계산대 앞에서 한 남자가 이십 킬로그램 포대 셋을 카트에 싣고 직원과 실랑이를 했다⁠.

“⁠한 사람당 한 포대라니까요⁠, 손님⁠.⁠”

“⁠우리 식구가 셋이에요⁠. 한 사람당 한 포대⁠.⁠”

“⁠식구분들 다 모시고 오셔야죠⁠.⁠”

남자가 휴대전화를 꺼내 아내와 아들에게 영상 통화를 걸었다⁠. 화면 속 두 사람이 졸린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직원이 한숨을 쉬고 포대에 스티커를 붙였다⁠. 화영은 우유 하나를 들고 줄 끝에 서서 실랑이를 끝까지 보았다⁠. 자기가 옮긴 한 줄이 남의 카트에 이십 킬로그램씩 실려 나가고 있었다⁠.

계산대 위 작은 화면에서 아침 뉴스가 돌았다⁠. 「⁠외계 첫 답장 “⁠밥은 먹었니⁠?⁠”⁠」 「⁠시카고 곡물 시장 쌀 선물 개장 직후 급등⁠」⁠. 화면이 바뀌자 흰 양복의 목사가 두 팔을 벌리고 서 있었다⁠. 하단 자막에 「⁠첫말씀교회 여동현 목사⁠」라고 떴다⁠.

“⁠하늘이 우리에게 먹었느냐고 물으십니다⁠. 생명의 떡을 먹었느냐고 물으시는 겁니다⁠!⁠”

계산하던 직원이 바코드를 찍다가 중얼거렸다⁠. “⁠생명의 떡도 한 사람당 하나만 팔아야겠네⁠.⁠”

새어 나간 길은 단순했다⁠. 국방부가 밤사이 「⁠식량 관련 문의 정황⁠」이라고 발표했고⁠, 기자들이 연구원 사람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인공지능 번역 담당의 대학 동기가 기자였다⁠. 해독팀 단톡방 화면 한 장이 새벽 세 시에 밖으로 나갔다⁠. 「⁠막내님 번역⁠: 밥은 먹었니⁠? ㅋㅋㅋ 근거⁠: 막내님 어머님⁠」⁠. 사진 한 장이 아침까지 세계를 세 바퀴 돌았다⁠.

*

팀장실 책상 위에 종이 한 장이 놓여 있었다⁠. 민석이 볼펜 끝으로 종이를 화영 앞으로 밀었다⁠.

「⁠해독팀 의견 — 답장 첫 문장은 ‘⁠안녕하세요⁠’ 또는 이와 비슷한 인사로 본다⁠. 소화영 연구원의 해석은 개인 의견이다⁠.⁠」

“⁠서명해 주세요⁠. 오후 세 시 기자 설명회 전에⁠.⁠”

“⁠제 해석이 아니라 제 귀예요⁠. 서명 못 해요⁠.⁠”

“⁠소 박사님⁠.⁠” 민석은 볼펜을 내려놓고 의자에 등을 기댔다⁠. 밤을 새운 얼굴이었다⁠. 넥타이는 매다 만 채 목에 늘어져 있었다⁠. “⁠오늘 아침에 쌀값이 몇 퍼센트 올랐는지 아세요⁠? 국방부는 박사님 한 줄로 경계 태세를 올렸어요⁠. 종교 방송은 하늘이 떡을 묻는다고 하고요⁠. 안녕하세요라고 발표하면 사흘 안에 다 가라앉아요⁠.⁠”

“⁠그럼 틀린 걸 발표하시는 거예요⁠.⁠”

“⁠틀렸는지 아무도 몰라요⁠. 원본이 없으니까⁠.⁠”

“⁠1985년 녹음은 없어도 1985년 방식은 남았잖아요⁠.⁠” 화영은 책상 모서리를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똑똑⁠, 쉬고⁠, 똑똑똑⁠. “⁠목소리의 길이하고 높낮이를 점과 틈으로 바꾼 방식이요⁠. 선배가 그 방식 그대로 프로그램을 짰어요⁠. 사람 목소리를 넣으면 같은 줄이 나와요⁠.⁠”

“⁠박사님 어머님 목소리 하나로요⁠?⁠”

“⁠그럼 여럿으로 해요⁠. 오늘 점심에⁠.⁠”

민석이 천장을 보았다⁠. 광년으로 무엇을 세는지 입술이 잠깐 움직였다⁠. 이윽고 손목시계를 보았다⁠.

“⁠열두 시부터 한 시까지⁠. 그 뒤에는 서명⁠.⁠”

*

열두 시 사 분⁠, 연구원 구내식당 배식대 앞에 줄이 길게 이어졌다⁠. 미경이 계산대 옆에 마이크 하나와 노트북을 놓았다⁠. 노트북 화면 위에 손으로 쓴 종이가 붙어 있었다⁠. 「⁠인류를 위해 한 문장만 해 주세요⁠. 식판은 들고 하셔도 됩니다⁠」⁠.

처음 마이크 앞에 선 사람은 전파천문학과 박사후연구원이었다⁠. 식판을 든 채 또박또박 말했다⁠. “⁠안녕하세요⁠.⁠” 화면에 굵은 점 다섯 개가 틈 없이 붙어 나왔다⁠. 이어서 “⁠밥은 먹었니⁠?⁠” 점 둘⁠, 틈⁠, 점 셋⁠, 마지막 점이 가늘게 올라갔다⁠.

“⁠다음 분이요⁠.⁠” 미경이 외쳤다⁠.

연구원 스무 명이 지나갔다⁠. 안녕하세요는 스무 번 다 쉬지 않았다⁠. 밥은 먹었니는 스무 번 다 둘 셋으로 끊어졌다⁠. 박자는 사람마다 조금씩 달랐지만 틈의 자리는 한 번도 옮겨 가지 않았다⁠. 민석은 식당 맨 뒤 기둥에 기대 팔짱을 끼고 있었다⁠. 팔짱이 조금씩 풀렸다⁠.

배식대 안쪽에서 흰 모자를 쓴 조리원이 국자를 든 채 고개를 내밀었다⁠. 예순은 넘어 보였고⁠, 앞치마 가슴에 「⁠조장⁠」이라고 수놓아져 있었다⁠.

“⁠거⁠, 마이크 우리도 해도 되는 겨⁠?⁠”

“⁠그럼요⁠, 조장님⁠. 인류를 위해서요⁠.⁠”

“⁠인류가 우리 밥 먹고 산 지가 언젠데⁠.⁠”

조장이 배식대를 돌아 나오자 조리원 넷이 줄줄이 따라 나왔다⁠. 조장은 마이크를 국자처럼 쥐고⁠, 줄 맨 앞의 젊은 연구원을 노려보며 말했다⁠.

“⁠밥은 먹었니⁠?⁠”

끝이 아래로 뚝 떨어졌다⁠. 야단치는 높이였다⁠. 젊은 연구원이 저도 모르게 “⁠죄송합니다⁠” 하고 식판을 내밀었다⁠. 식당에 웃음이 터졌다⁠. 다음 조리원은 같은 말을 노래하듯 늘였고⁠, 그다음 조리원은 손녀에게 하듯 속삭였다⁠. 높낮이는 다섯 사람이 다 달랐다⁠. 둘 셋으로 끊기는 자리만은 다섯이 똑같았다⁠.

조장이 마이크를 돌려주다가 화영의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가만있어 봐⁠. 자네 봉애 언니 딸 아녀⁠? 화영이⁠?⁠”

“⁠네⁠. 우리 엄마 아세요⁠?⁠”

“⁠알다마다⁠. 언니가 나 여기 처음 들어올 때 칼 잡는 거 가르쳐 줬어⁠. 언니는 요새 어때⁠?⁠”

“⁠요양원에 계세요⁠. 말씀은 한 마디만 하세요⁠.⁠”

“⁠무슨 말⁠?⁠”

화영이 웃었다⁠. “⁠밥은 먹었니요⁠.⁠”

조장이 국자를 내려놓았다⁠. 무언가 말하려다 그만두고⁠, 배식대에서 계란말이 세 조각을 집어 화영의 식판에 얹었다⁠. 서른 해 전 방학마다 식당 뒷문에서 받아먹던 계란말이와 두께가 같았다⁠.

민석이 기둥에서 몸을 떼고 다가왔다⁠. 노트북 화면에 스물다섯 사람의 줄이 겹쳐 있었다⁠. 민석은 안경을 벗어 넥타이 끝에 문질렀다가 다시 썼다⁠.

“⁠서명은 됐어요⁠. 설명회에서는 내가 말해요⁠. 박사님은 뒤에 앉아 계시고요⁠.⁠”

*

두 시 사십 분⁠, 강당 뒤 비상계단에서 화영은 요양원에 영상 통화를 걸었다⁠. 마리셀이 받았다⁠. 화면이 한참 흔들리다가 휴게실 텔레비전 앞에 멈췄다⁠. 텔레비전에 아침 단톡방 사진이 크게 떠 있었고⁠, 사진 귀퉁이에 화영의 출입증 사진이 붙어 있었다⁠. 머리 위에 안경을 얹은 얼굴이었다⁠.

“⁠따님⁠, 테레비 나왔슈⁠. 할머니들이 다 따님 아는 척해유⁠. 저 집 딸이 외계인하고 밥 얘기 하는 딸이라고⁠.⁠”

“⁠엄마는요⁠?⁠”

마리셀이 휴대전화를 돌렸다⁠. 휠체어에 앉은 어머니가 텔레비전을 보다가 화면 속 딸을 보았다⁠. 왼손이 휴대전화 쪽으로 올라왔다⁠. 손가락이 화면의 화영 얼굴을 한 번 짚었다⁠.

“⁠밥은 먹었니⁠?⁠”

끝이 두 마디 올라갔다⁠. 화영은 계단 난간을 붙잡았다⁠. 계란말이 세 조각이 아직 속에 있었다⁠.

“⁠먹었어⁠, 엄마⁠. 이번엔 진짜야⁠. 식당 조장님이 계란말이 주셨어⁠.⁠”

어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끄덕이다가 텔레비전을 다시 가리켰다⁠. 화면에서는 흰 양복의 여동현 목사가 두 팔을 벌리고 있었다⁠. 어머니가 손을 휘휘 내저었다⁠. 저리 치우라는 손짓이었다⁠. 마리셀이 웃음을 참느라 화면이 다시 흔들렸다⁠.

비상계단 문이 열리고 편정훈이 들어왔다⁠. 손에 편의점 김밥 한 줄을 들고 있었다⁠. 화영을 보고 멈칫했다가 계단 두 칸 아래에 자리를 잡았다⁠.

“⁠통화 중이셨습니까⁠?⁠”

“⁠끝났어요⁠. 대령님은 점심이세요⁠?⁠”

“⁠아침입니다⁠.⁠” 편정훈은 김밥 비닐을 뜯었다⁠. “⁠오늘 아침 일곱 시 반에 정문 앞 마트에 계셨지요⁠. 저도 있었습니다⁠. 포대 셋 실은 분 뒤에요⁠.⁠”

“⁠보셨어요⁠?⁠”

“⁠예⁠. 한 사람이 한 줄 듣고 쌀 육십 킬로그램을 샀습니다⁠.⁠” 편정훈은 김밥 하나를 입에 넣고 천천히 씹었다⁠. “⁠나라는 한 줄 듣고 무엇을 사겠습니까⁠? 저는 그걸 정하는 사람들 옆에 앉아 있습니다⁠. 그분들께 반가운 높이 얘기는 안 들립니다⁠.⁠”

“⁠그래서 곳간 얘기만 하세요⁠?⁠”

“⁠곳간 얘기가 들리니까요⁠.⁠” 편정훈은 일어나서 김밥 꽁지를 비닐에 쌌다⁠. “⁠설명회에서 뵙겠습니다⁠. 박사님 귀가 맞기를 저도 바랍니다⁠. 틀리시면 제가 편해지고요⁠.⁠”

*

오후 세 시⁠, 본관 강당에 기자 백여 명이 들어찼다⁠. 단상 긴 탁자 가운데 민석이 앉았고⁠, 오른편에 편정훈 대령이 앉았다⁠. 화영은 맨 뒷줄 구석에 앉아 니트 소매를 손등까지 끌어내렸다⁠. 출입증이 목에서 덜렁거렸다⁠.

민석은 준비한 말을 읽었다⁠. 답장 첫 문장은 인사로 보이고⁠, 해독팀은 「⁠안녕하세요⁠」나 이와 비슷한 인사로 본다⁠. 식량과 관련된 표현이라고 단정할 근거는 아직 없다⁠. 민석은 「⁠밥⁠」이라는 낱말을 한 번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첫 질문은 편정훈에게 갔다⁠. 국방부가 「⁠식량 관련 문의 정황⁠」을 발표한 근거가 무엇이냐는 질문이었다⁠. 편정훈은 마이크를 끌어당겼다⁠.

“⁠답장 끝에 지구 위의 점 일곱 개가 붙어 옵니다⁠. 일곱 개 모두 세계의 곡창 지대입니다⁠. 첫 문장이 무엇이든⁠, 국방부는 이 점 일곱 개를 가볍게 보지 않습니다⁠. 해독팀과 국방부의 의견이 다르다는 사실도 숨기지 않겠습니다⁠.⁠”

강당이 술렁였다⁠. 민석의 귀가 빨개졌다⁠. 맨 앞줄의 외신 기자가 손을 들었다⁠.

“⁠해독팀 안에 다른 의견을 낸 연구원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막내님⁠’이라고 불리는 분이요⁠. 오늘 이 자리에 계십니까⁠?⁠”

민석이 대답하기 전에 강당 뒤에서 누군가 “⁠저기요⁠!⁠” 하고 외쳤다⁠. 아침의 단톡방 사진을 휴대전화로 띄운 기자였다⁠. 사진 속 이름 옆에 화영의 출입증 사진이 붙어 있었다⁠. 고개 백여 개가 한꺼번에 맨 뒷줄로 돌아갔다⁠. 카메라 셔터가 소나기처럼 울렸다⁠.

화영은 일어나지 않으려고 했다⁠. 무릎이 먼저 일어났다⁠. 누군가 무선 마이크를 건넸다⁠. 마이크가 손바닥에서 미끄러졌다⁠.

“⁠소화영입니다⁠. 해독팀 막내예요⁠.⁠”

“⁠답장의 첫 문장이 무엇입니까⁠?⁠”

민석이 단상에서 화영을 보았다⁠. 고개를 아주 조금 저었다⁠. 화영은 민석의 눈을 보다가⁠, 탁자 끝의 편정훈을 보았다⁠. 편정훈은 아무 표정 없이 기다렸다⁠. 화영이 무슨 말을 하든 받아 적을 준비가 된 얼굴이었다⁠.

“⁠밥은 먹었니⁠? 맞아요⁠.⁠” 화영은 숨을 한 번 들이쉬었다⁠. “⁠근데 안부예요⁠. 걱정하는 말이 아니고 반가운 말이에요⁠. 저희 엄마가 저 반가울 때 쓰는 높이예요⁠.⁠”

셔터 소리가 다시 쏟아졌다⁠. 편정훈이 마이크를 끌어당겼다⁠.

“⁠해독팀 연구원의 귀를 존중합니다⁠. 저도 같은 문장으로 듣겠습니다⁠. 밥은 먹었니⁠. 국방부가 걱정하는 것은 그다음에 붙어 온 일곱 군데입니다⁠.⁠”

*

설명회가 끝나고 한 시간 뒤⁠, 민석이 지하 이 층 해독실 문간에 서서 화영을 불렀다⁠. 넥타이는 끝내 매지 못한 채였다⁠.

“⁠박사님⁠, 오늘 뉴스 제목이 뭔지 아세요⁠?⁠”

“⁠모르겠어요⁠.⁠”

“⁠「⁠해독팀 막내 ‘⁠밥 맞다⁠’ … 국방부 ‘⁠곡창 일곱 곳 주시⁠’⁠」⁠. 내 말은 한 줄도 안 나갔어요⁠.⁠” 민석은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었다⁠. “⁠연구원장이 계약 해지를 하래요⁠. 내부 의견을 기자 앞에서 뒤집었다고요⁠. 내일부터 안 나오셔도 돼요⁠.⁠”

화영은 출입증을 손에 쥐었다⁠. 새것이라 모서리가 아직 날카로웠다⁠.

“⁠팀장님도 들으셨잖아요⁠. 스물다섯 번⁠.⁠”

“⁠들었어요⁠.⁠” 민석이 해독실 화면을 돌아보았다⁠. 줄이 흘렀다⁠. 똑똑⁠, 틈⁠, 똑똑똑⁠. “⁠들은 거하고 발표하는 거는 달라요⁠. 박사님은 아직 그걸 몰라요⁠.⁠”

미경이 모니터 뒤에서 일어나다가 의자를 넘어뜨렸다⁠. 의자가 바닥에 부딪치는 소리가 해독실을 한 번 울렸다⁠. 화영은 출입증을 목에서 벗지 않았다⁠. 내일 아침 정문까지는 아직 열네 시간이 남아 있었다⁠.

2화는 어땠나요?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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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겨울차2026.11.01· 2화

    쌀 포대 하나 더 사려고 영상 통화로 식구 인증하는 아저씨ㅋㅋ 현실에서 진짜 있을 것 같아요.

    • 은해록작가2026.11.01

      화영이 옮긴 한 줄이 마트 계산대까지 내려온 장면이에요. 웃기면서도 화영 마음은 무거웠을 겁니다.

안녕하세요는 쉬지 않는다 · 외계의 첫 답장 "밥은 먹었니?" · 나오늘 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