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495자)

여섯 시 사십 분

외계의 첫 답장 "밥은 먹었니?" · 은해록

10월 6일 아침 여덟 시⁠, 연구원 정문 경비실 창구에 출입증을 내려놓자 경비원이 출입증과 화영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텔레비전에 나온 분 맞죠⁠? 밥 박사님⁠.⁠”

“⁠밥 박사 아니에요⁠. 소화영이에요⁠.⁠”

“⁠우리 집사람이 그러대요⁠. 외계인도 밥 먹었냐고 묻는데 당신은 왜 전화 한 통이 없냐고⁠.⁠” 경비원은 출입증을 서랍에 넣으며 혀를 찼다⁠. “⁠덕분에 어젯밤에 장모님한테 전화했어요⁠. 십 년 만에요⁠.⁠”

정문 안쪽에서 미경이 뛰어나왔다⁠. 한 손에 종이 가방을⁠, 다른 손에 초코바 한 상자를 들었다⁠. 눈두덩이 부어 있었다⁠.

“⁠막내님 짐이요⁠. 책상 서랍에 있던 거 다 넣었어요⁠. 머리끈 일곱 개⁠, 볼펜 세 자루⁠, 사투리 사전⁠.⁠” 미경은 목소리를 낮췄다⁠. “⁠그리고 이거요⁠.⁠”

손톱만 한 저장 장치였다⁠. 줄의 소리가 사백 번 넘게 들어 있었다⁠.

“⁠선배⁠, 이거 들키면 선배도 잘려요⁠.⁠”

“⁠저는 아직 선배라서 괜찮아요⁠.⁠” 미경이 코를 훌쩍였다⁠. “⁠막내님⁠, 새벽에 국방부가 제주 관측소를 접수했대요⁠. 이제 줄은 국방부 거쳐서만 받아요⁠. 해독팀은 하루 늦게 받고요⁠. 팀장님이 아침부터 광년으로 욕을 하세요⁠.⁠”

“⁠광년으로 어떻게 욕을 해요⁠?⁠”

“⁠이십오 광년 동안 반성하라고요⁠.⁠”

화영은 웃다가 종이 가방을 받아 들었다⁠. 정문 밖으로 나서자 등 뒤에서 철문이 천천히 닫혔다⁠.

*

요양원 원무과 창구에서 고지서 한 장이 나왔다⁠. 「⁠10월분 이용료 1⁠,800⁠,000원 · 납부 기한 10월 25일⁠」⁠. 화영은 고지서를 반으로 접어 니트 주머니에 넣었다⁠. 통장에는 석 달 계약의 첫 달 치와 하청 회사 마지막 정산금이 남아 있었다⁠. 다음 달 고지서까지는 버틸 수 있었다⁠. 그다음 달은 버틸 수 없었다⁠.

점심시간의 삼 층 식당에서 어머니는 미역국에 밥을 말고 있었다⁠. 숟가락을 쥔 왼손이 느렸지만 흘리지는 않았다⁠. 화영이 옆자리에 앉자 어머니가 숟가락을 멈추고 딸을 올려다보았다⁠.

“⁠밥은 먹었니⁠?⁠”

“⁠엄마⁠. 나 잘렸어⁠.⁠”

어머니의 숟가락이 국그릇 가장자리에 걸쳐졌다⁠. 어머니는 한참 딸의 얼굴을 보다가 다시 물었다⁠.

“⁠밥은 먹었니⁠?⁠”

끝이 오르지 않았다⁠. 평평하게 깔렸다가 마지막에 아주 조금 내려앉았다⁠. 화영은 이 높이를 사전 어디에도 적지 않았다⁠. 열 해 전 시간강사 재계약에서 떨어진 날에도⁠, 아버지 장례를 치르고 돌아온 날에도 어머니는 이 높이로 물었다⁠. 밥은 먹었니⁠. 너 오늘 괜찮니⁠. 둘은 같은 말이었다⁠.

“⁠괜찮아⁠, 엄마⁠. 다른 데서 오라는 데가 있어⁠.⁠”

거짓말이었다⁠. 화영은 코를 만지려다 손을 무릎에 내렸다⁠. 어머니가 숟가락으로 국그릇을 화영 앞에 밀었다⁠. 반쯤 남은 미역국이었다⁠. 화영은 어머니의 숟가락으로 국을 떠먹었다⁠. 마리셀이 지나가다 두 사람을 보고 휴대전화로 사진을 한 장 찍었다⁠.

“⁠따님⁠, 다른 데서 오라는 데 있는 거 맞아유⁠? 코 안 만졌는데 귀 만졌슈⁠.⁠”

“⁠귀는 처음이에요⁠.⁠”

“⁠사람이 거짓말 새로 하면 새 데를 만지는 거여유⁠.⁠”

*

다른 데서 오라는 데는 오후 네 시에 왔다⁠. 요양원 정원 벤치에 편정훈 대령이 앉아 있었다⁠. 군복 대신 회색 점퍼를 입었고⁠, 무릎 위에 서류 봉투 하나를 올려놓았다⁠. 정원의 은행나무가 반쯤 노랬다⁠.

“⁠여기는 어떻게 아셨어요⁠?⁠”

“⁠설명회 끝나고 박사님 어머님 얘기가 기사에 나왔습니다⁠. 대전에 요양원이 많지 않습니다⁠.⁠” 편정훈은 봉투를 내밀었다⁠. “⁠국방부 외계신호분석반 자문 계약서입니다⁠. 제주 관측소에 상주하시고⁠, 기간은 여섯 달⁠, 보수는 연구원 계약의 세 배입니다⁠.⁠”

화영은 봉투를 받지 않았다⁠.

“⁠대령님⁠. 제 한 줄로 경계 태세를 올리셨어요⁠. 그 한 줄 때문에 저는 잘렸고요⁠. 이제는 그 한 줄을 더 쓰라고 부르세요⁠?⁠”

“⁠예⁠.⁠”

“⁠왜요⁠?⁠”

“⁠제 해석이 틀리면⁠, 제일 먼저 알아챌 사람이 박사님이니까요⁠.⁠” 편정훈은 봉투를 벤치 위에 내려놓았다⁠. “⁠제 밑에 있는 분석관들은 제가 듣고 싶은 걸 들어 옵니다⁠. 박사님은 안 그러실 겁니다⁠. 어제 기자 백 명 앞에서 팀장님 말을 뒤집으셨으니까요⁠.⁠”

“⁠그걸 칭찬이라고 하세요⁠?⁠”

“⁠칭찬은 아닙니다⁠. 쓸모입니다⁠.⁠”

화영은 웃음이 나오려다 말았다⁠. 은행잎 하나가 봉투 위에 떨어졌다⁠.

“⁠내일 아침에 답할게요⁠. 엄마 아침 먹이고요⁠.⁠”

“⁠몇 시에 오면 됩니까⁠?⁠”

“⁠여섯 시 반이요⁠.⁠”

“⁠여섯 시 반에 오겠습니다⁠.⁠”

*

10월 7일 아침 여섯 시 삼십 분⁠, 요양원 현관 앞에 편정훈이 정말로 서 있었다⁠. 이번에는 군복이었다⁠. 화영이 유리문을 밀고 나가자 편정훈이 손목시계를 보았다⁠.

“⁠제가 일 분 늦었습니다⁠. 주차장이 좁더군요⁠.⁠”

“⁠엄마는 아직 주무세요⁠. 아침은 일곱 시예요⁠.⁠”

“⁠그럼 기다리겠습니다⁠.⁠”

두 사람은 현관 차양 아래 나란히 서서 주차장을 보았다⁠. 새벽 공기가 차가웠다⁠. 화영은 니트 소매에 손을 집어넣었다⁠. 편정훈은 차렷 자세를 반쯤 푼 채로 서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 할 말이 많았지만 둘 다 꺼내지 않았다⁠.

여섯 시 사십 분⁠, 편정훈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편정훈은 화면을 보고 화영에게 고개를 한 번 숙인 뒤 전화를 받았다⁠. 목소리가 갑자기 반 박자 느려지고 끝이 둥글어졌다⁠.

“⁠예⁠, 엄니⁠.⁠”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새벽 공기를 건너 화영에게까지 들렸다⁠. 늙은 여자의 목소리였고⁠, 전라도 말이 굵었다⁠.

“⁠밥은 묵었냐⁠?⁠”

“⁠묵었어라⁠.⁠”

“⁠뭐 묵었는디⁠?⁠”

“⁠…김치찌개 묵었어라⁠.⁠”

“⁠아침부터 찌개를 끓여 묵어⁠? 니가⁠?⁠”

“⁠관사 식당이 잘 나와라⁠, 엄니⁠.⁠”

화영은 주차장을 보는 척하며 귀를 기울였다⁠. 편정훈은 전화를 받는 동안 왼손 엄지로 바지 솔기를 계속 문질렀다⁠. 묵었어라의 끝이 반 마디 떠 있었다⁠. 거짓말하는 사람의 끝은 내려앉지 못하고 공중에 머문다⁠. 화영이 만 개의 ‘⁠그려⁠’에서 배운 것이었다⁠.

“⁠논에 물은 뺐어라⁠? 예⁠. 나락은 다음 주에 베고⁠. 예⁠, 예⁠. 엄니도 묵어요⁠.⁠”

전화를 끊은 편정훈이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었다⁠. 화영과 눈이 마주쳤다⁠.

“⁠김치찌개 안 드셨죠⁠.⁠”

“⁠…티가 납니까⁠?⁠”

“⁠끝이 떠 있었어요⁠. 그리고 바지를 문지르셨어요⁠. 저는 코를 만지고요⁠.⁠”

편정훈이 처음으로 웃었다⁠. 소리는 내지 않고 입꼬리만 한쪽으로 올라갔다⁠. 이어서 점퍼 안주머니에서 접은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지구 지도의 일부를 크게 뽑은 것이었다⁠. 빨간 점 하나가 한반도 서남쪽 들판 한가운데에 찍혀 있었다⁠.

“⁠호남평야 점입니다⁠. 반경 이십 킬로미터 안에 김제 진봉면이 들어갑니다⁠. 우리 엄니 논이 거기 있습니다⁠. 여든두 살이신데 아직 직접 모를 심으십니다⁠.⁠”

화영은 빨간 점을 오래 보았다⁠. 해독실 지도에서는 일곱 개 가운데 하나였던 점이었다⁠. 이제는 한 사람의 논이었다⁠.

“⁠대령님은 그래서 곳간 얘기가 들리세요⁠?⁠”

“⁠그래서 곳간 얘기만 들립니다⁠.⁠” 편정훈은 종이를 접었다⁠. “⁠박사님은 반가운 높이가 들리시고요⁠. 둘 다 엄니 때문입니다⁠. 둘 중 하나는 틀렸습니다⁠. 어느 귀가 틀렸는지 같이 알아봅시다⁠.⁠”

화영은 니트 주머니 속 고지서를 손끝으로 만졌다⁠. 반으로 접힌 종이가 따뜻했다⁠.

“⁠조건이 있어요⁠. 저는 들은 대로만 옮겨요⁠. 대령님이 제 말을 한 글자라도 바꾸시면 그날로 나와요⁠.⁠”

“⁠번역은 박사님 것⁠, 해석은 제 것⁠. 그저께 드린 말씀 그대로입니다⁠.⁠”

일곱 시가 되자 삼 층 식당에 불이 켜졌다⁠. 화영은 어머니에게 흰죽을 떠먹이며 제주에 간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죽을 삼키고 물었다⁠. 밥은 먹었니⁠. 끝이 오르지 않았다⁠. 마리셀이 쟁반을 거두며 말했다⁠.

“⁠영상 매일 보내 드릴게유⁠. 어머님 진지 드시는 거⁠. 따님은 제주 가서 진지 드시는 거 보내유⁠. 서로 거짓말 못 하게⁠.⁠”

*

저녁 다섯 시⁠, 제주 동쪽 중산간의 억새 들판은 해가 비스듬히 들어 은빛으로 흔들렸다⁠. 들판 한가운데 하얀 접시가 하늘을 향해 누워 있었다⁠. 지름이 서른 미터가 넘는 전파 망원경이었다⁠. 접시 둘레에 새 철조망이 둘러졌고⁠, 정문 앞에 군 트럭 두 대가 서 있었다⁠.

정문 초소 앞에서 고무장화를 신은 남자가 군인 둘과 다투고 있었다⁠. 예순이 넘어 보였고⁠, 햇볕에 그을린 얼굴에 모자를 거꾸로 썼다⁠. 두 손에 커다란 양은 냄비를 들고 있었다⁠.

“⁠이 냄비가 위험물이우꽈⁠? 몸국이우다⁠, 몸국⁠! 이십팔 년 동안 곱단이 밥 챙긴 사람을 왜 못 들어가게 햄수과⁠?⁠”

“⁠어르신⁠, 곱단이가 누굽니까⁠?⁠”

남자가 턱으로 하얀 접시를 가리켰다⁠. “⁠저기 누워 있는 아이⁠.⁠”

군인 둘이 서로를 보았다⁠. 편정훈이 차에서 내리자 군인들이 경례를 했다⁠. 편정훈은 경례를 받고 남자에게 고개를 숙였다⁠.

“⁠부영철 선생님이시죠⁠. 관측소 운영 책임자님⁠. 국방부 편정훈입니다⁠.⁠”

“⁠책임자는 무슨⁠. 책임은 이제 대령님이 지시우다⁠.⁠” 부영철은 냄비를 고쳐 들고 화영을 보았다⁠. 머리 위의 안경과 늘어난 니트와 목에 건 새 출입증을 차례로 훑었다⁠. “⁠이 사람이 텔레비에 나온 밥 박사우꽈⁠?⁠”

“⁠소화영입니다⁠.⁠”

“⁠밥 먹언⁠?⁠”

화영은 대답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비행기에서 받은 땅콩 한 봉지가 오늘 먹은 전부였다⁠. 어머니에게도⁠, 마리셀에게도⁠, 경비원에게도 쉽게 나오던 말이 억새 바람 앞에서 나오지 않았다⁠.

“⁠…못 먹었어요⁠.⁠”

“⁠경허믄 들어옵서⁠.⁠” 부영철이 냄비 뚜껑을 열었다⁠. 돼지고기 국물에 모자반이 풀어진 냄새가 바람을 타고 퍼졌다⁠. 군인 하나가 침을 삼켰다⁠. “⁠대령님도 들어옵서⁠. 대령님도 못 먹은 얼굴이우다⁠.⁠”

관측소 부엌은 컨테이너 하나를 고친 방이었다⁠. 가스레인지 두 개와 밥솥 하나⁠, 벽에는 접시가 처음 하늘을 향하던 날의 사진이 누렇게 바래 있었다⁠. 부영철은 국자를 휘두르며 군인들에게도 그릇을 돌렸다⁠. 군인들은 편정훈의 눈치를 보다가⁠, 편정훈이 먼저 숟가락을 들자 얼른 따라 들었다⁠.

“⁠곱단이가 열이틀째 밤마다 같은 말을 듣고 있수다⁠.⁠” 부영철이 화영의 그릇에 국을 더 퍼 주었다⁠. “⁠나는 무슨 말인지 모르쿠다⁠. 근데 사람 부르는 소리인 건 알아⁠. 우리 어멍이 물질 끝내고 올라와서 바닷가에서 노는 나를 부를 때 그런 박자였수다⁠.⁠”

부엌 구석의 작은 텔레비전에서 뉴스가 돌았다⁠. 「⁠유엔 사무총장 “⁠어느 나라도 혼자 답하지 말라⁠” … 각국 관측소에 송신 자제 요청⁠」⁠. 편정훈이 국을 뜨다가 화면을 한 번 보았다⁠. 숟가락이 아주 잠깐 멈췄다가 다시 움직였다⁠.

*

관측소 제어실은 접시 바로 옆 낮은 건물에 있었다⁠. 몸국 두 그릇을 비운 뒤에 화영은 편정훈을 따라 제어실로 들어갔다⁠. 화면 여러 개가 벽에 붙어 있었고⁠, 군복 입은 분석관 다섯이 자리를 지켰다⁠. 벽 한가운데에 흰 상황판이 있었다⁠. 상황판 맨 위에 매직으로 큼직하게 적혀 있었다⁠.

「⁠대응 1안 — 침묵⁠. 송신 장비 봉인⁠」 「⁠대응 2안 — 기만 답장⁠. “⁠우리는 먹을 것이 없다⁠”⁠」

2안 옆에 이름표가 하나 붙어 있었다⁠. 「⁠담당⁠: 소화영 자문⁠」⁠.

화영은 상황판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몸국의 온기가 배 속에서 식어 갔다⁠.

“⁠대령님⁠. 이게 뭐예요⁠?⁠”

“⁠박사님 첫 일입니다⁠.⁠” 편정훈이 대답했다⁠. “⁠우리는 먹을 것이 없다⁠. 이 문장을 저 줄과 같은 박자로 만들어 주십시오⁠. 모레 새벽 네 시 십이 분까지요⁠.⁠”

“⁠거짓말이잖아요⁠.⁠”

“⁠예⁠. 곳간을 짚은 상대에게 곳간이 비었다고 말하는 겁니다⁠. 들은 대로 옮기신다고 하셨지요⁠. 이번에는 제가 드린 문장을 들으신 겁니다⁠.⁠”

창밖에서 하얀 접시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해가 진 하늘 한쪽에 별 하나가 먼저 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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