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396자)

다섯 박자

외계의 첫 답장 "밥은 먹었니?" · 은해록

아침 일곱 시 십 분⁠, 유성 햇살요양원 삼 층 식당에서 어머니가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흰죽이 반쯤 남아 있었다⁠. 어머니는 왼손으로 딸의 니트 소매를 잡아당기고 고개를 비스듬히 들었다⁠.

“⁠밥은 먹었니⁠?⁠”

끝이 위로 들렸다가 내려왔다⁠. 들린 높이는 손가락 한 마디쯤이었다⁠. 화영은 어머니의 높낮이를 손금처럼 알았다⁠. 걱정할 때는 끝이 한 마디 오르고⁠, 반가울 때는 두 마디쯤 올랐다⁠. 세 해 전 뇌졸중이 지나간 뒤로 어머니 입에 남은 말은 이 문장 하나였다⁠. 알아듣는 말은 예전과 같았다⁠. 내보낼 수 있는 말만 하나로 줄었다⁠.

“⁠먹었어⁠.⁠”

화영은 거짓말을 하고 어머니 입가의 죽을 휴지로 닦았다⁠. 가방 속에는 편의점 삼각김밥이 비닐도 안 뜯긴 채 들어 있었다⁠. 쟁반을 거두러 오던 요양보호사 마리셀이 화영의 가방을 힐끔 보았다⁠.

“⁠따님⁠, 거짓말할 때 코 만지는 거 알아유⁠? 어머님도 알아유⁠.⁠”

“⁠저 코 안 만졌는데요⁠.⁠”

“⁠지금 만졌슈⁠.⁠”

어머니가 웃었다⁠. 소리 없이 어깨만 들썩이는 웃음이었다⁠. 마리셀은 필리핀에서 와서 한국말을 요양원 할머니들에게 배운 사람이라 말끝이 늘 충청도로 늘어졌다⁠. 화영은 코에서 손을 떼고 어머니의 손등을 두 번 두드렸다⁠. 일곱 시 사십 분까지는 연구원 정문을 지나야 했다⁠.

식당 유리문에 화영의 모습이 비쳤다⁠. 보통 키에 반백이 섞인 곱슬 단발이 아침 바람에 부풀어 있었고⁠, 뿔테 안경은 언제나처럼 머리 위에 얹혀 있었다⁠. 크게 늘어난 회색 니트는 소매가 손등을 덮었다⁠. 목에 건 연구원 출입증만 새것이라 반짝였다⁠. 「⁠대전 천문연구원 · 외계신호해독팀 · 계약 연구원 소화영⁠」⁠. 마흔두 살에 처음 받아 본 연구원 출입증이었다⁠.

*

해독실은 본관 지하 이 층에 있었다⁠. 창 없는 방에 책상 여섯 개가 둥글게 놓였고⁠, 벽 한 면을 큰 화면이 차지했다⁠. 화면에는 점과 틈이 한 줄로 흘렀다⁠. 굵은 점과 가는 점⁠, 그리고 점 사이의 빈자리였다⁠. 오십 년 전 지구는 예순 개 말로 녹음한 인사를 점과 틈으로 바꿔 하늘에 띄웠다⁠. 아흐레 전 새벽 네 시 십이 분⁠, 제주 전파 관측소의 큰 접시가 하늘의 같은 자리에서 돌아온 줄을 처음 받았다⁠. 줄은 이후로 매일 같은 시각에 똑같이 다시 왔다⁠.

“⁠막내님⁠, 사백열두 번째 갑니다⁠.⁠”

진미경이 이어폰 한 짝을 내밀었다⁠. 화영보다 열여섯 살 어렸고 넉 달 먼저 들어왔다⁠. 해독팀은 들어온 순서로 부르는 곳이라⁠, 미경은 선배였고 화영은 막내였다⁠. 미경은 점과 틈을 소리로 바꾸는 프로그램을 직접 짰다⁠. 굵은 점은 낮은 똑⁠, 가는 점은 높은 똑⁠, 틈은 숨 한 번 쉬는 길이의 침묵이 되었다⁠.

화영은 이어폰을 꽂고 눈을 감았다⁠.

똑똑⁠, 틈⁠, 똑똑똑⁠.

마지막 똑이 앞의 넷보다 높았다⁠. 사백열두 번째에도 같았다⁠. 화영은 눈을 감은 채 입술만 움직였다⁠. 둘⁠, 쉬고⁠, 셋⁠. 끝이 오른다⁠.

팀장 오민석이 화이트보드 앞에서 마커 뚜껑을 딸깍 닫았다⁠. 회의가 길어지면 무엇이든 광년으로 바꿔 세는 천체물리학자였다⁠.

“⁠정리합시다⁠. 답장 맨 앞에 우리가 보낸 열아홉 번째 자리 표시가 그대로 붙어 왔어요⁠. 1985년 목록에서 열아홉 번째는 한국어 인사고⁠, 적힌 문장은 「⁠안녕하세요⁠」⁠. 다섯 음절이에요⁠. 답장의 점도 다섯 개고요⁠. 우리 인사를 받아서 우리 인사로 돌려준 거예요⁠. 깔끔하죠⁠.⁠”

미경이 손을 들었다⁠. “⁠근데 팀장님⁠, 사백 번 들었는데 이게 중간에 숨을 쉬거든요⁠. 안녕하세요는 중간에 안 쉬잖아요⁠.⁠”

“⁠외계인이 숨을 쉬는지 내가 어떻게 압니까⁠?⁠”

“⁠외계인 말고 우리말이요⁠.⁠”

“⁠1985년 녹음이 어떻게 됐는지는 아무도 몰라요⁠. 원본은 안 남았고 목록만 남았어요⁠. 목록에 안녕하세요라고 적혀 있으면 안녕하세요예요⁠.⁠”

화영은 이어폰을 뺐다⁠. 머리 위의 안경을 콧등으로 내렸다가 다시 올렸다⁠. 들어온 지 사흘 된 막내에게는 말을 꺼낼 때의 버릇이 아직 없어서⁠, 손이 안경을 대신 만졌다⁠.

“⁠팀장님⁠. 이건 안녕하세요가 아니에요⁠.⁠”

“⁠그럼요⁠?⁠”

“⁠둘 하고 쉬고⁠, 셋 하고 끝이 올라가요⁠. 묻는 말이에요⁠. 다섯 음절을 둘 셋으로 끊고 끝을 올리는 인사가 우리말에 몇 개 없어요⁠.⁠” 화영은 손가락 두 개를 폈다가 세 개를 폈다⁠. “⁠밥은⁠, 먹었니⁠.⁠”

해독실이 조용해졌다⁠. 미경의 의자 바퀴가 끼익 울었다⁠.

“⁠…밥은 먹었니⁠?⁠” 민석이 되물었다⁠.

“⁠네⁠. 밥은 먹었니⁠?⁠”

미경이 먼저 웃음을 터뜨렸다⁠. 웃음은 책상 여섯 개를 한 바퀴 돌았다⁠. 전파천문학자 둘이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떨었고⁠, 인공지능 번역 담당은 모니터 뒤로 얼굴을 숨겼다⁠. 민석만 웃지 않았다⁠. 마커를 쥔 손이 화이트보드 앞에 멈춰 있었다⁠.

“⁠소 박사님⁠. 오십 년 만에 온 우주의 첫 문장이 밥은 먹었니예요⁠?⁠”

“⁠네⁠.⁠”

“⁠근거는요⁠?⁠”

“⁠우리 엄마요⁠.⁠”

이번에는 아무도 웃지 않았다⁠. 화영은 휴대전화를 꺼냈다⁠. 오늘 아침 요양원 식당에서 몰래 녹음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어 있었다⁠. 미경이 반신반의하며 파일을 프로그램에 끌어다 놓았다⁠. 화면 아래에 새 줄이 생겼다⁠. 굵은 점 둘⁠, 틈⁠, 굵은 점 둘⁠, 가는 점 하나⁠.

하늘의 줄과 어머니의 줄이 위아래로 나란히 흘렀다⁠. 점의 개수와 틈의 자리가 맞았다⁠. 마지막 점 하나만 하늘의 것이 반 마디쯤 더 높았다⁠. 화영은 두 줄을 번갈아 보다가 숨을 내쉬었다⁠. 반가울 때의 높이였다⁠.

“⁠삼백 번 넘게 녹음했어요⁠. 엄마가 하루에 열 번은 물으시거든요⁠. 밥은 먹었니 하나로 걱정도 하고 반가워도 하고 야단도 치세요⁠. 저는 높낮이로 알아들어요⁠. 이 줄은 엄마가 저 반가울 때 하는 높이예요⁠.⁠”

미경이 입을 막았다⁠. 웃음이 아니었다⁠. 눈이 빨개져 있었다⁠.

“⁠막내님⁠, 이거 논문 각인데요⁠.⁠”

“⁠엄마 녹음으로 논문 안 써요⁠.⁠”

*

해독실 문이 벌컥 열렸다⁠. 군복 차림의 남자가 서류철을 옆구리에 끼고 들어왔다⁠. 머리를 짧게 깎았고⁠, 다림질 자국이 날카로운 바지를 입었다⁠. 국방부에서 파견 나온 편정훈 대령이었다⁠. 사흘 동안 해독실에 다섯 번 들렀고⁠, 다섯 번 다 아침을 거른 얼굴로 왔다⁠.

“⁠방금 뭐라고 했습니까⁠?⁠”

민석이 손을 내저었다⁠. “⁠아직 아무것도 아닙니다⁠, 대령님⁠. 막내 연구원의 의견이에요⁠.⁠”

“⁠무슨 의견입니까⁠?⁠”

화영이 대답했다⁠. “⁠밥은 먹었니요⁠.⁠”

편정훈은 웃지 않았다⁠. 서류철을 열어 화영의 책상 위에 펼쳤다⁠. 1985년에 우리가 보낸 지구 지도의 사본이었고⁠, 답장 줄 끝에 매일 따라오는 점 일곱 개가 지도 위에 빨갛게 찍혀 있었다⁠. 해독팀은 점 일곱 개를 대도시로 짐작했다가 맞지 않아 미뤄 두었다⁠. 편정훈의 지도에는 점마다 손글씨가 달려 있었다⁠. 호남평야⁠, 메콩 삼각주⁠, 갠지스 평원⁠, 나일 삼각주⁠, 흑해 북쪽 밀밭⁠, 북미 대평원⁠, 팜파스⁠.

“⁠국방부 지리정보단이 오늘 새벽에 작물 지도를 겹쳐 봤습니다⁠. 일곱 개 전부 곡창 지대예요⁠. 오차가 반경 이십 킬로미터 안쪽입니다⁠.⁠”

해독실이 다시 조용해졌다⁠. 이번에는 아무도 웃지 않았다⁠.

“⁠밥을 먹었냐고 묻고⁠, 곳간 일곱 군데를 짚었습니다⁠.⁠” 편정훈은 빨간 점을 손끝으로 하나씩 눌렀다⁠. “⁠안부라고 하시겠습니까⁠?⁠”

“⁠엄마가 밥 먹었냐고 물을 때 냉장고 위치를 몰라서 묻는 거 아니에요⁠.⁠”

“⁠어머님은 이십오 광년 밖에 안 사시잖습니까⁠?⁠”

민석이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가 멈췄다⁠. 광년이 나오자 몸이 먼저 반응했다⁠.

“⁠대령님⁠. 번역은 제가 했어요⁠. 해석까지 가져가시면 안 돼요⁠.⁠”

“⁠번역은 박사님 겁니다⁠. 해석은 제 일이고요⁠.⁠” 편정훈은 서류철을 덮었다⁠. “⁠박사님 번역이 맞으면 제 해석이 더 맞아집니다⁠. 박사님이 틀리셨으면 좋겠습니다⁠. 진심으로요⁠.⁠”

“⁠오늘 어디까지 올라가요⁠?⁠”

“⁠저녁 여섯 시에 장관께 올라갑니다⁠. 공식 번역이 아니라고 적어서요⁠.⁠”

편정훈이 나간 뒤에 민석이 화이트보드의 「⁠안녕하세요⁠」 밑에 줄을 두 번 그었다⁠. 지우지는 않았다⁠. 미경이 화영의 책상에 초코바 하나를 밀어 놓았다⁠.

“⁠막내님⁠. 아침 안 드셨죠⁠? 코 만지셨어요⁠.⁠”

*

오후 다섯 시 오십 분⁠, 복도 끝 자판기 앞에서 미경이 율무차 두 잔을 뽑았다⁠. 종이컵이 손가락을 데웠다⁠. 지하 이 층 복도는 형광등이 길게 이어져 있었고⁠, 해독실 문틈으로 점과 틈의 소리가 새어 나왔다⁠. 똑똑⁠, 틈⁠, 똑똑똑⁠. 사백 번을 넘게 들은 소리라 미경은 이제 걸음도 박자에 맞춰 걸었다⁠.

“⁠막내님은 어쩌다 막내가 되셨어요⁠? 마흔둘에 막내면 이 바닥 신기록인데⁠.⁠”

“⁠공고가 났잖아요⁠. 말소리 리듬 전문가 급구⁠. 접수 마감 열두 시간⁠.⁠”

“⁠그걸 열두 시간 안에 낸 사람이 막내님 하나였대요⁠.⁠”

“⁠시간이 많았거든요⁠.⁠” 화영은 율무차를 불었다⁠. “⁠대학에서 열 해 시간강사 했고⁠, 작년까지는 인공지능 음성 회사 하청이요⁠. 사투리 억양 표시하는 일⁠. 충청도 ‘⁠그려⁠’ 높낮이를 만 개쯤 달았어요⁠.⁠”

“⁠만 개요⁠?⁠”

“⁠그려⁠, 그려어⁠, 그려⁠?⁠, 그으려⁠. 다 달라요⁠. 기계는 다 똑같이 듣고요⁠.⁠”

미경이 율무차를 마시다가 사레가 들렸다⁠. 기침을 하면서도 손가락으로 ‘⁠그려⁠’를 세는 시늉을 했다⁠. 화영은 웃다가 해독실 문을 보았다⁠. 계약서에는 석 달이라고 적혀 있었다⁠. 석 달 뒤에 해독이 끝나든 안 끝나든 출입증은 반납이었다⁠. 요양원비는 다음 달에도 백팔십만 원이었다⁠.

“⁠그래도 여기는 좀 반가워요⁠.⁠” 화영이 말했다⁠. “⁠우리 엄마가 이 연구원 식당에서 서른 해 밥을 하셨어요⁠. 저 어릴 때 방학이면 여기 와서 엄마 퇴근 기다렸고요⁠.⁠”

“⁠진짜요⁠? 그럼 막내님 고향이 여기네요⁠.⁠”

“⁠식당 뒷문이 고향이죠⁠. 짬밥 냄새 맡으면서 숙제했어요⁠.⁠”

미경이 빈 컵을 구기며 말했다⁠. “⁠그럼 막내님 번역⁠, 식당 출신 번역이네요⁠. 저는 그게 더 믿음 가요⁠.⁠”

복도 저편에서 편정훈 대령이 휴대전화를 귀에 댄 채 걸어 나왔다⁠. 화영과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한 번 숙이고 계단으로 올라갔다⁠. 계단 위에서 낮은 목소리가 내려왔다⁠. “⁠예⁠, 장관님⁠. 여섯 시 정각에 올리겠습니다⁠. 표현은 원문 그대로 둡니다⁠.⁠”

*

밤 열한 시 반⁠, 화영은 연구원 앞 원룸 바닥에 앉아 삼각김밥의 비닐을 뜯었다⁠. 아침부터 가방에 들어 있던 김밥이라 김이 눅눅했다⁠. 창밖으로 연구원 본관 옥상의 빨간 항공등이 깜빡였다⁠. 원룸은 냉장고가 침대 머리맡에 붙어 있어서⁠, 밤마다 냉장고 모터가 화영 대신 한숨을 쉬었다⁠. 텔레비전에서는 칠레와 호주의 관측소도 같은 줄을 받았다는 뉴스가 돌았다⁠. 화면 아래로 자막이 흘렀다⁠. 「⁠유엔⁠, 외계 신호 관련 각국 공동 성명 검토⁠」⁠.

휴대전화가 떨렸다⁠. 마리셀이었다⁠.

「⁠따님 어머님 주무시기 전에 또 물어보셨어유⁠. 밥은 먹었니⁠. 내가 따님 먹었다고 했슈⁠. 나까지 거짓말 시켰슈 ㅋㅋ⁠」

화영은 답장 칸에 「⁠고마워요⁠」를 치다가 손가락을 멈췄다⁠. 화면 위로 알림이 하나 더 내려왔다⁠.

「⁠[속보] 국방부⁠, 외계 신호 관련 경계 태세 한 단계 상향 … “⁠답장 내용에 식량 관련 문의 정황⁠”⁠」

식량 관련 문의⁠. 화영은 알림을 두 번 읽었다⁠. 공식 번역이 아니라고 적었다던 한 줄이 여섯 시간 만에 나라의 경계 태세가 되어 돌아와 있었다⁠. 밥알 하나가 목에서 내려가지 않았다⁠. 화영은 물을 찾다가 그만두고⁠, 눅눅한 김이 손가락에 들러붙은 채 텔레비전 화면의 빨간 점 일곱 개를 오래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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