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335자)

열한 시 오십구 분

알고리즘 추천 계정은 내 하루를 먼저 산다 · 윤솔채

새벽 여섯 시⁠, 새미는 소파에서 눈을 떴다⁠. 손에 휴대전화가 있었다⁠.

화면이 차가웠다⁠. 냉동실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된 차가움이었다⁠. 부엌에서 냉동실 문이 덜 닫힌 채 웅웅 울고 있었다⁠. 화면에는 알림이 줄줄이 쌓여 있었다⁠. 「⁠월세 자동이체가 해지되었습니다⁠」「⁠주문 완료 · 무선 선풍기⁠」「⁠주문 완료 · 앞머리 고데기⁠」「⁠주문 완료 · 컬러 렌즈 30일분⁠」「⁠주문 완료 · 진주 귀걸이 한 짝⁠」「⁠주문 완료 · 소금우유 모나카 10개입⁠」 엄지는 여섯 번째 「⁠바로 구매⁠」 위에 떠 있었다⁠.

새미는 휴대전화를 소파 쿠션 밑에 처박고 쿠션 위에 털썩 앉았다⁠. 엉덩이 밑에서 휴대전화가 한 번 더 떨었다⁠.

“⁠청약 철회는 칠 일 안에 하시면 됩니다⁠.⁠” 계단에서 공시생이 내려오며 말했다⁠. 머리카락이 까치집처럼 솟아 있었다⁠. “⁠발송 전이면 더 쉽고요⁠. 제가 민법은 약해서 조문 번호까지는 모릅니다⁠.⁠”

“⁠행정법은요⁠?⁠”

“⁠행정법도 지금은 약합니다⁠. 새벽이라⁠.⁠”

새미는 공시생과 나란히 앉아 주문을 하나씩 취소했다⁠. 선풍기⁠, 고데기⁠, 모나카는 취소가 되었다⁠. 렌즈와 귀걸이는 「⁠이미 출고되었습니다⁠」였다⁠. 집주인이 안방에서 나와 은행 알림을 들여다보았다⁠.

“⁠월세 안 들어오면 할머니는 어떡하니⁠. 이번 달 이자 날도 오늘인데⁠.⁠”

“⁠다시 걸어 둘게요⁠. 오늘 안에⁠.⁠”

“⁠내일 계정 새미가 끊은 거지⁠, 우리 새미가 끊은 거 아니지⁠?⁠”

“⁠손은 제 손이었어요⁠.⁠”

*

아침을 먹으며 새미는 「⁠새미의내일 · 7월 20일⁠」을 다시 틀었다⁠. 어제 새벽 골목으로 걸어 들어가던 영상이었다⁠.

영상이 달라져 있었다⁠.

안경 벗은 새미가 DM에 답을 치는 데까지는 같았다⁠. 카디건을 벗어 빨랫줄에 거는 대목에서 화면 속 손이 멈췄고⁠, 누군가의 굵은 손가락이 카디건 앞섶을 움켜쥐었다⁠. 화면이 대문 쪽으로 돌았다⁠. 철창⁠, 빗장⁠, 물줄기⁠. 물방울이 렌즈에 튀어 화면이 뿌옇게 번졌고⁠, 집주인의 목소리가 마지막 일 초를 덮었다⁠. “⁠물 먹어라 이놈아⁠!⁠”

영상 밑에 회색 글자가 붙어 있었다⁠. 「⁠수정됨 · 7월 20일 22⁠:41⁠」 조회수는 1⁠,402⁠,118에서 멈춰 있었다⁠.

“⁠언니⁠.⁠” 새미가 룸메이트를 불렀다⁠. “⁠우리 대문 영상⁠, 어젯밤 몇 시에 140만 넘었어⁠?⁠”

룸메이트가 편집용 노트북에서 분석 화면을 열었다⁠. 시간마다 막대가 하나씩 솟아 있었다⁠. 룸메이트의 손가락이 막대를 따라 옮겨 가다 한 자리에서 멈췄다⁠.

“⁠열 시 사십일 분⁠.⁠”

두 사람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냉장고 모터 소리만 부엌에 깔렸다⁠.

“⁠더 많이 본 하루가 남는 거야⁠.⁠” 새미가 먼저 말했다⁠. “⁠우리 영상이 내일 영상보다 많이 보이면⁠, 내일 영상이 우리 하루로 고쳐져⁠. 어제는 대문 영상이 이겨서 골목에 안 갔고⁠.⁠”

“⁠그럼 오늘도 이기면 빈 건물 안 가⁠?⁠”

“⁠열한 시 오십구 분까지 이기면⁠.⁠”

룸메이트가 노트북을 돌려 「⁠새미의내일 · 7월 21일⁠」을 보였다⁠. 아침 아홉 시인데 벌써 52만이었다⁠.

*

오전 열 시⁠, 옥상에서 촬영이 시작되었다⁠. 제목은 「⁠빈 건물 대신 옥상에서 고추 따기⁠」였다⁠. 집주인의 고추 화분이 물탱크 그늘을 따라 두 줄로 놓여 있었다⁠. 햇빛이 화분 흙을 하얗게 말렸고⁠, 고추는 아직 반쯤 푸르렀다⁠.

“⁠할머니⁠, 요즘 유행하는 손 춤 아세요⁠?⁠”

“⁠알지⁠. 알고리즘님이 하루에 백 번 보여 주셔⁠.⁠”

집주인은 고추 두 개를 양손에 하나씩 들고 춤을 추었다⁠. 한 번도 춰 본 적 없다면서 손목은 정확히 박자를 탔다⁠. 고추가 공중에서 빨간 줄을 그렸다⁠. 룸메이트가 짐벌을 들고 웃다가 화면이 흔들렸다⁠.

“⁠할머니⁠, 그거 어디서 배우셨어요⁠?⁠”

“⁠쇼츠에서⁠. 백 번 봤다니까⁠. 몸은 안 해 봤어도 눈은 다 해 봤어⁠.⁠”

공시생은 화분 사이에 앉아 고추 꼭지를 땄다⁠. 꼭지를 하나 딸 때마다 행정법 조문을 하나씩 외웠다⁠. 룸메이트가 꼭지 따는 장면에 「⁠고추 따며 합격 기운 받기⁠」 자막을 달았다⁠. 공시생은 자기 스터디 단톡방 백이십 명에게 영상을 돌렸고⁠, 집주인은 망원시장 상인회 단톡방에 올렸다⁠. 「⁠우리집 새미 영상 좋아요 누르면 고추 한 근 서비스♡⁠」

“⁠할머니⁠, 고추 한 근 서비스면 손해예요⁠.⁠”

“⁠한 근은 말로만 하는 거야⁠. 상인회 사람들 다 알아⁠.⁠”

열두 시에 올린 영상은 오후 세 시에 40만⁠, 저녁 여섯 시에 100만을 지났다⁠. 「⁠새미의내일⁠」도 같이 올라갔다⁠. 두 숫자가 번갈아 앞서 나갔다⁠. 망원시장 상인회 단톡방에서 하트가 수백 개씩 터졌고⁠, 공시생의 스터디원들은 「⁠합격 고추⁠」를 밈으로 만들었다⁠.

룸메이트는 저녁 내내 노트북 앞에서 숫자를 보았다⁠. 한 번은 「⁠새미의내일⁠」 화면을 오래 틀어 두었다⁠. 사층 계단참에서 손전등이 꺼지는 대목을 두 번 돌려 보았다⁠.

“⁠솔직히 빈 건물 콘텐츠가 더 세긴 해⁠.⁠”

“⁠언니⁠.⁠”

“⁠알아⁠, 알아⁠. 편집자 버릇이야⁠.⁠”

저녁 여덟 시⁠, 새미는 부엌 식탁에서 짧은 라이브를 켰다⁠. 링라이트의 흰 고리가 식탁 유리에 하나 더 떴다⁠. 동시 시청자는 금세 이천을 넘겼다⁠. 「⁠새미의하루⁠」 라이브에 이천 명이 모인 것은 처음이었다⁠.

“⁠오늘 옥상 영상 봐 주세요⁠. 그거 많이 보시면⁠, 저 밤에 빈 건물 안 가도 돼요⁠.⁠”

댓글이 아래에서 위로 흘렀다⁠. 「⁠무슨 소리임⁠?⁠」「⁠내일 새미 설정 놀이 하는 중⁠?⁠」「⁠빈 건물 가 줘ㅠㅠ 그거 보려고 기다림⁠」「⁠고추 할머니 또 나와요⁠?⁠」 한 댓글이 고정된 것처럼 여러 번 올라왔다⁠. 「⁠나는 내일 새미가 들어가는 거 볼래⁠. 오늘 새미는 맨날 볼 수 있잖아⁠.⁠」

“⁠맨날 볼 수 있으면 오늘도 봐 주세요⁠.⁠” 새미가 말했다⁠.

「⁠ㅋㅋㅋ말 잘하네⁠」「⁠오 오늘 새미도 좀 함⁠」 하트가 화면 오른쪽에서 거품처럼 올라갔다⁠. 집주인이 화면 뒤로 지나가며 고추 두 개를 흔들었고⁠, 하트가 두 배로 늘었다⁠. 해외에서 들어온 시청자들은 번역기를 돌린 서툰 한국어로 할머니를 다시 보여 달라고 했다⁠.

라이브를 끄자 손바닥이 땀에 젖어 있었다⁠. 숫자는 여전히 「⁠새미의내일⁠」이 앞서 있었다⁠.

*

밤 열 시⁠, 새미의 무릎이 먼저 일어났다⁠.

새미는 부엌 의자에 앉아 있었다⁠. 무릎이 펴지고 발이 현관으로 가고⁠, 손이 운동화 뒤축을 당겨 신었다⁠. 공시생이 손전등을 챙겨 들었고 룸메이트가 휴대전화만 들고 따라 나왔다⁠. 찍지 않겠다는 약속대로 렌즈는 바닥을 향해 있었다⁠.

재개발 구역까지는 걸어서 십 분이었다⁠. 골목마다 불 꺼진 빌라가 늘어 갔고⁠, 흰 공사 가림막이 길게 나타났다⁠. 가림막에는 「⁠안전제일⁠」 글씨가 반쯤 벗겨져 있었다⁠. 가림막 너머로 창문 없는 사 층 건물의 검은 윤곽이 보였다⁠.

가림막 앞에 사람이 여덟 있었다⁠. 다들 휴대전화를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왔다⁠, 왔다⁠. 진짜 왔어⁠.⁠”

“⁠안경 썼네⁠? 렌즈 낀다며⁠.⁠”

새미의 손이 가림막 이음새로 갔다⁠. 두 판 사이에 손바닥 하나 들어갈 틈이 있었다⁠. 새미는 다른 손으로 자기 손목을 잡았다⁠. 손목 안쪽에서 핏줄이 팔딱거렸다⁠. 공시생이 새미의 반대편 팔꿈치를 잡았다⁠.

“⁠새미 씨⁠, 숫자 불러 드릴까요⁠?⁠”

“⁠불러 주세요⁠.⁠”

“⁠열한 시 사십 분⁠. 저희 158만⁠, 내일 영상 176만⁠.⁠”

새미의 손가락이 틈 안쪽 함석판에 닿았다⁠. 쇠가 밤공기에 식어 차가웠다⁠. 사람들의 휴대전화 불빛이 새미의 등에 하얗게 모였다⁠.

“⁠열한 시 오십 분⁠. 164만⁠, 179만⁠.⁠”

룸메이트가 바닥을 향하던 휴대전화를 들었다⁠. 렌즈가 새미를 향했다가⁠, 빨간 불이 켜지기 직전에 멈췄다⁠. 룸메이트는 휴대전화를 도로 내렸다⁠.

“⁠열한 시 오십이 분⁠.⁠” 공시생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어⁠? 어어⁠? 저희 영상에 「⁠추천⁠」 떴어요⁠!⁠”

숫자가 한꺼번에 뛰었다⁠. 170만⁠, 174만⁠, 178만⁠. 가림막 앞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 화면을 보며 웅성거렸다⁠. 새미의 팔이 틈 안으로 팔꿈치까지 들어갔다⁠.

“⁠열한 시 오십구 분⁠. 181만⁠! 내일 영상 177만⁠!⁠”

팔이 빠졌다⁠. 누가 안에서 밀어낸 것처럼 쑥 빠졌다⁠. 다리에서 힘이 빠지자 새미는 연석에 주저앉았다⁠. 휴대전화 화면 위쪽 숫자가 00⁠:00으로 바뀌었다⁠. 가림막 앞 사람들이 실망한 소리를 냈다⁠. 「⁠노잼⁠」「⁠재미없게 사네⁠」 누가 소리 내어 댓글을 읽었다⁠.

*

연석 앞에 택시 한 대가 멈춰 있었다⁠. 뒷문이 열리고 두항이 내렸다⁠. 회색 반팔 티셔츠가 밤에 보니 더 희었다⁠.

“⁠축하드립니다⁠.⁠” 두항이 말했다⁠. “⁠처음 이기셨네요⁠.⁠”

“⁠여기까지 왜 오셨어요⁠?⁠”

“⁠보고 싶어서요⁠. 숫자로만 보다가⁠.⁠” 두항은 휴대전화를 들어 보였다⁠. 화면 맨 위에 영어 메일 제목이 떠 있었다⁠. 주간 체류 시간 보고⁠. “⁠열한 시 오십이 분에 새미 씨 영상을 추천에 올린 건 저예요⁠. 칠 분 동안요⁠.⁠”

새미는 연석에서 일어나지 못한 채 두항을 올려다보았다⁠.

“⁠실험이에요⁠?⁠”

“⁠이번 주 체류 시간 최고 기록이 오늘 밤 열한 시 사십 분부터 자정까지였습니다⁠. 두 하루가 경주를 하니까 사람들이 앱을 안 닫아요⁠.⁠” 두항은 가림막 앞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내일부터는 안 올립니다⁠. 공정하게 하려고요⁠. 사람들이 고르게⁠.⁠”

“⁠사람들이 빈 건물을 고르면요⁠?⁠”

“⁠그럼 사람들이 고른 거죠⁠.⁠”

“⁠저는요⁠? 저는 언제 골라요⁠?⁠”

두항은 대답하기 전에 일 초쯤 새미의 안경을 보았다⁠.

“⁠새미 씨는 오늘 고르셨어요⁠. 181만 명이 같이 골라 줘서⁠.⁠”

두항은 택시로 돌아갔다⁠. 문이 닫히기 전에 한마디를 더 했다⁠. “⁠집주인분 춤 좋았습니다⁠. 그 부분 평균 시청 시간이 제일 길었어요⁠.⁠”

*

집으로 걸어오는 길에 룸메이트는 말이 없었다⁠. 공시생이 손전등을 껐다 켰다 하며 앞서 걸었다⁠. 초록 대문이 보이는 골목에서 룸메이트가 걸음을 늦췄다⁠.

“⁠새미야⁠. 솔직히 말해도 돼⁠?⁠”

“⁠응⁠.⁠”

“⁠나 내일 영상 속 네가 더 좋아⁠.⁠”

새미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운동화 밑에서 모래가 사각거렸다⁠.

“⁠작년 겨울 전의 너 같아⁠. 줄 서고⁠, 아무 데나 들어가고⁠, 처음 보는 사람한테 말 걸고⁠. 너 겨울에 넉 달 동안 침대에서 안 나왔잖아⁠. 나는 그 넉 달 동안 네 얼굴을 한 번도 못 찍었어⁠.⁠”

“⁠내일 영상 속 나는 빈 건물에도 들어가⁠.⁠”

“⁠알아⁠. 그래서 말 안 하려고 했어⁠.⁠” 룸메이트가 연보라 니트 소매로 코끝을 문질렀다⁠. “⁠아까 렌즈 들었다가 내렸잖아⁠. 칭찬해 줘⁠.⁠”

“⁠잘했어⁠.⁠”

“⁠목소리에 진심이 없네⁠.⁠”

대문 앞에서 세 사람의 휴대전화가 동시에 울렸다⁠. 집 단톡방 「⁠초록대문⁠」이었다⁠. 집주인이 화면 갈무리를 한 장 올렸다⁠. 「⁠망원고추의내일 · 7월 22일⁠」 화면 속 집주인이 고추장 단지를 끌어안고 춤을 추고 있었다⁠.

「⁠할머니도 생겼다♡♡ 알고리즘님 감사합니다⁠」

공시생이 대문을 열다가 멈췄다⁠. 새미는 자기 계정을 눌렀다⁠. 23⁠:59를 지나 00⁠:00이 된 지 몇 분이 지나 있었다⁠.

「⁠새미의내일 · 7월 22일⁠」

화면 속 새미는 렌즈를 끼고 있었다⁠. 앞머리는 고데기로 동글게 말려 있었고⁠, 안경 없는 눈이 앞 카메라를 똑바로 보았다⁠. 라이브 화면이었다⁠. 동시 시청자 숫자가 오른쪽 위에서 올라갔다⁠. 화면 속 새미가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다들 우리 집 궁금했죠⁠? 합정동 초록대문으로 놀러 와요⁠. 골목 맨 안쪽이에요⁠.⁠”

3화는 어땠나요?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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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막차승객2026.10.31· 3화

    더 많이 본 하루가 남는다는 규칙에서 소름 돋았어요. 집주인 「망원고추의내일」은 왜 웃기면서 무서워요?

    • 윤솔채작가2026.10.31

      집주인님 고추가 많이 팔리면 좋겠다는 마음과 무서운 마음이 같이 들게 쓰고 싶었어요.

열한 시 오십구 분 · 알고리즘 추천 계정은 내 하루를 먼저 산다 · 나오늘 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