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471자)

혼자 와요

알고리즘 추천 계정은 내 하루를 먼저 산다 · 윤솔채

「⁠새벽세시상수 : 영상 봤죠⁠? 세 시예요⁠. 혼자 와요⁠.⁠」

00시 1분이었다⁠. 새미는 차단 단추를 찾으려고 계정 이름을 눌렀다⁠. 엄지는 차단 대신 답장 칸을 눌렀고⁠, 자판이 떠올랐고⁠, 화면에 「⁠좋⁠」 한 글자가 찍혔다⁠. 새미는 휴대전화를 이불 위로 던졌다⁠. 링라이트가 매트리스에 부딪혀 둔한 소리를 냈다⁠.

“⁠언니⁠. 언니⁠, 일어나 봐⁠.⁠”

룸메이트가 모니터 앞에서 고개를 들었다⁠. 뺨에 키보드 자국이 줄줄이 찍혀 있었다⁠. 새미가 내민 화면을 보고 나서 룸메이트는 한참 말이 없었다⁠. 영상은 벌써 한 바퀴 더 돌아 있었고⁠, 조회수는 31만이었다⁠.

“⁠이거 우리 채널 두 해 치 조회수보다 많아⁠.⁠” 룸메이트가 말했다⁠.

“⁠지금 그게 중요해⁠?⁠”

“⁠중요하지⁠. 들어 봐⁠. 골목 입구까지만 가는 거야⁠. 내가 뒤에서 찍고⁠, 차가 보이면 소리 지를게⁠. 너는 입구에서 돌아서고⁠, 그걸 올리면 돼⁠. 내일 영상 따라간 척하다가 뒤집는 거지⁠. 반전 콘텐츠⁠.⁠”

“⁠저 영상 끝에 차가 와⁠.⁠”

“⁠그러니까 끝까지 안 가면 되잖아⁠.⁠”

“⁠언니가 찍으면 나 끝까지 가⁠.⁠”

새미는 자기 무릎을 손바닥으로 눌렀다⁠. 오후에 팝업 줄로 걸어가던 무릎이었다⁠. 룸메이트는 새미의 손등과 무릎을 번갈아 보다가 갈색 머리를 귀 뒤로 넘겼다⁠.

“⁠너 낮에 그거⁠, 진짜로 몸이 혼자 간 거야⁠?⁠”

“⁠응⁠.⁠”

“⁠나는 네가 오랜만에 신나서 그런 줄 알았어⁠. 작년 겨울 이후로 네가 줄 서는 거 처음 봤거든⁠.⁠” 룸메이트는 모니터를 껐다⁠. 방이 휴대전화 불빛 하나만큼 어두워졌다⁠. “⁠알았어⁠. 안 찍어⁠. 대신 너 혼자 나가면 나 진짜로 찍는다⁠.⁠”

*

새벽 한 시⁠, 일층 부엌에 집 사람이 다 모였다⁠. 공시생은 회색 트레이닝복 차림에 행정법 기본서를 옆구리에 끼고 있었다⁠. 시험이 석 달 남았다고 했다⁠.

“⁠휴대전화를 얼리면 됩니다⁠.⁠” 공시생이 말했다⁠.

“⁠네⁠?⁠”

“⁠냉동실에 넣으면 전파가 잘 안 나갑니다⁠. 고시원 시절에 형들이 공부할 때 그렇게 했어요⁠. 알림이 안 오니까 집중이 됐어요⁠.⁠”

“⁠그 형들 붙었어요⁠?⁠”

공시생은 잠깐 말을 고르다가 기본서를 반대쪽 옆구리로 옮겼다⁠. “⁠한 명은 붙었습니다⁠.⁠”

김치통 가장 작은 것을 비워 휴대전화를 눕혔다⁠. 링라이트가 통에 걸려 뚜껑이 잘 닫히지 않자 공시생이 뚜껑 위에 기본서를 올리고 눌렀다⁠. 딸깍⁠. 냉동실 맨 아래 칸⁠, 얼린 고춧가루 봉지 사이에 통을 밀어 넣었다⁠.

집주인이 거실에서 돋보기를 이마에 올린 채 들어왔다⁠. “⁠내 고춧가루에 전화기 냄새 배면 어떡해⁠.⁠”

“⁠할머니⁠, 전화기는 냄새가 없어요⁠.⁠”

“⁠요새 전화기는 다 냄새 나⁠. 사람 손 냄새⁠.⁠” 집주인은 냉동실 문을 한 번 더 꾹 눌러 닫았다⁠. “⁠새미는 오늘 할머니 소파에서 자⁠. 할머니는 어차피 밤에 쇼츠 봐⁠. 너 일어나면 다 보여⁠.⁠”

거실 창가마다 놓인 화분들이 어둠 속에서 잎 끝만 희미했다⁠. 새미는 소파에 누워 카디건 소매를 손등까지 끌어 내렸다⁠. 집주인의 휴대전화에서 강아지가 짖고⁠, 누가 라면을 끓이고⁠, 누가 고백하고⁠, 누가 차였다⁠. 화면이 바뀔 때마다 집주인 얼굴의 빛깔이 바뀌었다⁠. 새미는 빛깔이 몇 번 바뀌는지 세다가 잠들었다⁠.

*

눈을 떴을 때 새미는 이미 부엌에 서 있었다⁠.

냉동실 문이 열려 있었고⁠, 하얀 냉기가 발목으로 흘러내렸다⁠. 오른손이 김치통을 쥐고 있었다⁠. 손끝에 서리가 붙어 따끔했다⁠. 왼손이 뚜껑을 열었다⁠. 휴대전화 화면에 김이 서렸다가⁠, 엄지가 문지르자 맑아졌다⁠. 화면 위쪽 숫자는 02⁠:41이었다⁠.

“⁠새미야⁠.⁠”

집주인이 거실에서 일어나 부엌 문틀을 짚고 있었다⁠. 새미는 대답하려고 했다⁠. 입은 열리지 않았고 발이 현관으로 걸어갔다⁠. 차가운 휴대전화를 쥔 채로⁠, 링라이트를 켠 채로⁠. 흰 고리 빛이 복도 벽에 둥글게 미끄러졌다⁠.

“⁠할머니⁠, 저 좀 잡아 주세요⁠.⁠”

말은 겨우 나왔다⁠. 집주인이 달려와 새미의 손목을 잡았다⁠. 망원시장에서 서른 해 동안 고추 꼭지를 딴 손이었다⁠. 손가락 마디가 굵었고⁠, 쥐는 힘이 손목뼈까지 왔다⁠. 새미의 발은 멈추지 않았다⁠. 집주인을 매단 채 현관문을 열었고⁠, 마당으로 내려갔고⁠, 빨랫줄 앞에서 멈췄다⁠. 새미의 왼손이 카디건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이 계집애가⁠, 에어컨도 없는데 왜 벗어⁠.⁠”

“⁠제가 벗는 거 아니에요⁠.⁠”

집주인은 다른 손으로 카디건 앞섶을 움켜쥐었다⁠. 연두색 니트가 두 사람 사이에서 늘어났다⁠. 이층 창문이 드르륵 열렸다⁠. 룸메이트가 휴대전화를 든 채 몸을 내밀었다⁠. 렌즈 옆 작은 빨간 불이 켜져 있었다⁠.

대문 밖에서 소리가 났다⁠. 초록 철창이 덜컥 흔들렸다⁠.

남자 하나가 대문 밖에 서 있었다⁠. 서른 남짓⁠, 검은 모자⁠, 한 손에 휴대전화⁠. 화면 불빛이 남자의 턱 밑을 파랗게 비췄다⁠. 새미가 영상에서 본 골목이 아니었다⁠. 남자가 초록대문 앞까지 와 있었다⁠.

“⁠새미 씨⁠.⁠” 남자가 웃었다⁠. “⁠영상에 대문 나왔잖아요⁠. 초록색⁠. 지도에서 찾는 데 이십 분 걸렸어요⁠.⁠”

새미의 다리가 대문으로 한 걸음 나갔다⁠. 집주인의 슬리퍼가 마당 시멘트 위로 끌려 나왔다⁠.

“⁠가세요⁠.⁠” 새미가 말했다⁠. “⁠신고할 거예요⁠.⁠”

“⁠왜요⁠? 영상에서는 나왔잖아요⁠. 140만 명이 봤어요⁠. 내가 그중에 제일 먼저 왔고요⁠.⁠” 남자는 철창 사이로 손을 넣어 빗장을 더듬었다⁠. “⁠내일 새미 씨는 용감하던데⁠. 혼자 오라니까 혼자 오던데⁠.⁠”

“⁠저는 오늘 사는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오늘이 영상이랑 다르면 안 되죠⁠.⁠”

남자의 손가락이 빗장 끝에 닿았다⁠. 새미의 오른손도 빗장으로 올라갔다⁠. 두 손이 철창을 사이에 두고 같은 빗장을 잡았다⁠. 새미는 자기 손이 빗장을 여는 쪽으로 힘을 주는 것을 느꼈고⁠, 손가락 하나하나를 떼어 내려고 이를 악물었다⁠.

삼층 계단에서 쿵쿵 발소리가 내려왔다⁠. 공시생이 행정법 기본서를 두 손으로 머리 위에 치켜들고 있었다⁠.

“⁠주거 침입입니다⁠! 형법 제319조⁠!⁠”

“⁠행정법 책이잖아요⁠.⁠” 남자가 말했다⁠.

“⁠두꺼우니까요⁠!⁠”

공시생이 소리치는 동안 집주인이 새미의 손목을 놓고 수돗가로 갔다⁠. 고추 화분에 물 주는 호스가 감겨 있었다⁠. 집주인은 수도꼭지를 끝까지 틀고 호스 입구를 엄지로 눌렀다⁠. 물줄기가 철창 사이로 곧게 날아가 남자의 모자를 벗겼다⁠.

“⁠물 먹어라 이놈아⁠! 새벽에 남의 집 처녀를⁠!⁠”

남자는 휴대전화를 가슴에 안고 뒷걸음질 쳤다⁠. 물줄기가 남자를 골목 모퉁이까지 따라갔다⁠. 모퉁이에서 남자가 한 번 돌아보았다⁠.

“⁠내일 또 봐요⁠, 새미 씨⁠.⁠”

발소리가 멀어졌다⁠. 새미의 손이 빗장에서 떨어졌다⁠. 다리에 힘이 빠졌고⁠, 새미는 젖은 시멘트 바닥에 주저앉았다⁠. 카디건 앞섶이 주먹 하나만큼 늘어나 있었다⁠. 호스에서 아직 물이 흘렀다⁠. 집주인이 수도꼭지를 잠그고 새미 옆에 쪼그려 앉았다⁠.

“⁠할머니가 쇼츠에서 봤어⁠. 저런 놈은 물로 쫓는 거래⁠.⁠”

“⁠그건 고양이 쫓는 영상이었을 거예요⁠.⁠”

“⁠고양이나 저놈이나⁠.⁠”

*

7월 20일 오전 열한 시⁠, 룸메이트가 편집한 대문 영상이 「⁠새미의하루⁠」에 올라갔다⁠. 올리기 전에 룸메이트는 모니터를 돌려 새미에게 보여 주었다⁠. 철창⁠, 빗장 위의 두 손⁠, 날아가는 모자⁠, 「⁠형법 제319조⁠!⁠」 자막⁠.

“⁠올려도 돼⁠? 남자 얼굴은 다 가렸어⁠.⁠”

“⁠응⁠. 근데 할머니 대사는 살려⁠.⁠”

“⁠당연하지⁠. 이게 메인이야⁠.⁠”

오후 두 시에 50만⁠, 저녁 일곱 시에 130만을 넘겼다⁠. 「⁠새미의하루⁠」 영상이 백만을 넘긴 것은 두 해 만에 처음이었다⁠. 숫자가 올라가는데 구독자는 내려갔다⁠. 20⁠,412명이던 숫자가 저녁에는 19⁠,860명이었다⁠. 댓글이 이유를 말해 주었다⁠. 「⁠골목 갔어야지 노잼⁠」「⁠내일 새미가 나았다⁠」「⁠겁쟁이 본계 구독 취소합니다 내일계로 갈게요⁠」 영어 댓글도 붙었다⁠. 내일 새미는 용감한데 오늘 새미는 왜 저러냐는 말이었다⁠.

해 질 무렵⁠, 새미는 룸메이트와 상수동 골목에 가 보았다⁠. 내일 영상 속 새미가 걸어 들어가던 골목이었다⁠. 낮에 보니 빌라 사이로 난 평범한 골목이었고⁠, 끝에는 차 두 대가 겨우 서는 주차장이 있었다⁠. 주차장 앞에 사람이 여섯 있었다⁠. 다들 휴대전화를 같은 높이로 들고⁠, 영상 속 전조등이 켜지던 자리를 찍고 있었다⁠.

“⁠여기 맞죠⁠? 내일 새미 차 온 데⁠.⁠” 대학생으로 보이는 여자가 새미에게 물었다⁠. 새미를 알아보지 못한 얼굴이었다⁠. 안경과 카디건을 보고도 몰랐다⁠. 여자의 화면 속 새미는 안경을 벗고 있었다⁠.

“⁠네⁠, 여기 맞아요⁠.⁠”

“⁠성지순례 왔어요⁠. 근데 오늘 새미는 안 왔대요⁠. 겁쟁이래요⁠.⁠”

룸메이트가 새미의 카디건 소매를 끌고 골목을 나왔다⁠. 큰길로 나와서야 룸메이트가 웃음을 터뜨렸고⁠, 웃다가 멈췄다⁠.

“⁠너 방금 본인 앞에서 본인 욕 들었어⁠.⁠”

“⁠응⁠. 근데 맞는 말이라 할 말이 없었어⁠.⁠”

집에 돌아와 새미는 두 번째 신고를 넣었다⁠. 이번에는 「⁠사칭⁠」 말고 「⁠스토킹 위험⁠」을 골랐고⁠, 설명 칸에 대문 앞 남자 일을 적었다⁠. 답장은 이번에도 십 초 만에 왔다⁠.

「⁠고객님의 소중한 신고가 접수되었습니다⁠. 플랫폼은 모두가 안전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 위급한 상황에서는 112에 먼저 연락해 주세요 😊⁠」

“⁠웃는 얼굴이 두 개로 늘었어⁠.⁠” 새미가 말했다⁠.

“⁠위급할수록 많이 붙나 봐⁠.⁠” 룸메이트가 말했다⁠. “⁠셋 붙으면 진짜 큰일인 거야⁠.⁠”

밤 아홉 시⁠, 두항의 DM이 왔다⁠.

「⁠대문 영상 잘 봤습니다⁠. 평균 시청 시간이 사십 초 늘었어요⁠. 두 계정을 오가는 분들이 오늘 가장 많았습니다⁠. 새미 씨가 다르게 사실 때도 사람들은 남아 있네요⁠. 흥미로운 결과입니다⁠.⁠」

“⁠흥미로운 결과래⁠.⁠” 새미가 화면을 룸메이트에게 보였다⁠. “⁠사람이 철창 붙잡고 있었는데⁠.⁠”

룸메이트는 대답 대신 모니터의 숫자를 보았다⁠. 220만⁠. 룸메이트는 연보라 니트 소매를 걷어 올리고 다음 편집 파일을 열었다⁠.

뉴스 앱 알림이 떴다⁠. 「⁠SNS 영상 보고 찾아가는 ‘⁠현장 방문⁠’ 잇따라⁠… 경찰⁠, 스토킹 처벌법 적용 검토⁠」 새미는 알림을 길게 눌러 지웠다⁠.

*

23⁠:59⁠. 새미는 이층 침대 아래층에 앉아 있었다⁠. 휴대전화는 다시 김치통에 들어가 냉동실에 있었고⁠, 화면은 룸메이트의 노트북으로 보았다⁠. 룸메이트가 「⁠새미의내일⁠」을 눌렀다⁠.

「⁠새미의내일 · 7월 21일⁠」

아침 여섯 시⁠, 화면 속 새미가 침대에서 일어나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은행 앱이 열렸다⁠. 「⁠매월 21일 월세 자동이체 520⁠,000원 · 해지하시겠습니까⁠?⁠」 화면 속 엄지가 「⁠해지⁠」를 눌렀다⁠. 이어서 추천 피드가 열렸고⁠, 엄지가 「⁠바로 구매⁠」를 일곱 번 눌렀다⁠. 무선 선풍기⁠, 앞머리 고데기⁠, 컬러 렌즈⁠, 짝 없는 진주 귀걸이 한 짝⁠. 화면 속 새미는 렌즈를 끼고 안경을 침대 위에 던졌다⁠.

장면이 밤으로 넘어갔다⁠. 「⁠빈 건물에서 하룻밤 · 라이브⁠」 망원동 재개발 구역의 공사 가림막이 지나가고⁠, 창문 없는 사 층 건물이 손전등 불빛에 드러났다⁠. 화면 속 새미가 웃으며 계단을 올랐다⁠. 이층⁠, 삼층⁠, 사층⁠. 사층 계단참에서 손전등이 꺼졌다⁠. 깜깜한 화면 속에서 새미의 웃음소리만 이어지다 끊겼다⁠.

룸메이트가 노트북을 반쯤 덮었다⁠. 덮인 틈으로 조회수 숫자가 한 번 더 바뀌는 것이 보였다⁠.

“⁠월세 이체일이 내일이었어⁠?⁠” 룸메이트가 물었다⁠.

새미는 대답하지 않고 부엌 냉동실 문 여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아래층은 조용했다⁠. 새미의 오른손 엄지만 이불 위에서⁠,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두 번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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