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446자)

망원고추의내일

알고리즘 추천 계정은 내 하루를 먼저 산다 · 윤솔채

아침 일곱 시⁠, 「⁠새미의하루⁠」에 새 영상이 올라갔다⁠. 어제 가림막 앞에서 주저앉은 이야기를 룸메이트가 삼 분으로 줄인 영상이었다⁠. 열 시가 되어도 조회수는 300이었다⁠. 열한 시에도 300이었다⁠. 숫자 옆에 늘 붙던 회색 「⁠추천⁠」 글자가 없었다⁠.

새미는 두항에게 DM을 보냈다⁠. 「⁠공정하게 한다면서요⁠.⁠」

답은 오 분 뒤에 왔다⁠. 「⁠공정하게 하고 있습니다⁠. 어제는 제가 칠 분 동안 올렸고⁠, 오늘은 아무도 올리지 않았어요⁠. 새미 씨 구독자 19⁠,000명 가운데 오늘 아침 영상을 고른 분이 300명입니다⁠. 「⁠새미의내일⁠」 구독자는 210만 명이고요⁠.⁠」

“⁠210만⁠.⁠” 새미가 소리 내어 읽었다⁠.

“⁠우리 채널을 열 번 하고도 남게 만들어도 모자라⁠.⁠” 룸메이트가 말했다⁠. 침대 위층에서 다리를 늘어뜨린 채였다⁠. “⁠어제처럼은 이제 못 이겨⁠. 두항이 한 번 보여 준 거야⁠. 이길 수 있게 해 주면 이기고⁠, 안 해 주면 못 이긴다는 거⁠.⁠”

현관에서 초인종이 울렸다⁠. 택배였다⁠. 어제 「⁠이미 출고되었습니다⁠」라던 상자 둘이었다⁠. 컬러 렌즈 한 통과 진주 귀걸이 한 짝⁠. 새미는 상자를 뜯지 않고 책상 서랍 맨 안쪽에 밀어 넣었다⁠. 서랍을 닫는 동안 손가락이 렌즈 상자 모서리를 한 번 쓰다듬었다⁠. 새미는 서랍을 닫은 손을 다른 손으로 덮었다⁠.

*

일층 부엌에서 고추 볶는 냄새가 올라왔다⁠. 매운 연기가 계단을 타고 이층까지 와서 눈을 따갑게 했다⁠.

부엌 식탁 위에 유리 단지가 열두 개 늘어서 있었다⁠. 집주인이 고무장갑을 끼고 고추장을 퍼 담고 있었다⁠. 단지마다 손글씨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초록대문 고추장 · 망원고추 할머니가 직접⁠」 거실 창가의 화분들 사이로 아침 햇빛이 들어와 빨간 단지들을 반짝이게 했다⁠. 식탁 끝에는 집주인의 휴대전화가 세워져 있었다⁠. 화면에서 「⁠망원고추의내일 · 7월 22일⁠」이 반복 재생되고 있었다⁠.

화면 속 집주인은 지금 부엌의 집주인과 같은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다⁠. 화면 속 집주인이 고추장 단지를 안고 손 춤을 추었다⁠. 그리고 카메라에 대고 또박또박 말했다⁠. “⁠초록대문 고추장 사러 와요⁠! 합정동 골목 맨 안쪽 초록 대문⁠! 저녁 여덟 시 라이브에서 주소 다 불러 줄게⁠!⁠”

조회수는 52만이었다⁠.

“⁠할머니⁠.⁠” 새미가 부엌 문턱을 붙잡고 불렀다⁠. “⁠이거 밤에 라이브에서 주소 말하시잖아요⁠.⁠”

“⁠말해야 사러 오지⁠.⁠”

“⁠그러면 사람들이 집으로 와요⁠. 대문 앞 그 남자 같은 사람도요⁠.⁠”

“⁠그놈은 물로 쫓으면 되고⁠.⁠” 집주인은 고무장갑 낀 손으로 단지 뚜껑을 비틀어 닫았다⁠. “⁠새미야⁠, 할머니 이 방 저 방 반년째 비어 있다⁠. 이층 작은방이랑 삼층 끝방⁠. 이자가 달마다 백사십만 원씩 나가⁠. 시장 그만두고 나서 할머니한테 사람이 이렇게 많이 와 본 적이 없어⁠.⁠”

“⁠사람이 오는 거랑 구경하러 오는 거랑은 달라요⁠.⁠”

“⁠다 똑같아⁠. 와서 사 가면⁠.⁠” 집주인은 단지 하나를 들어 햇빛에 비춰 보았다⁠. “⁠너 이거 봐⁠. 화면 속 할머니는 허리를 안 짚어⁠. 오늘 할머니는 아침에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았는데⁠, 영상 따라 춤추니까 하나도 안 아파⁠.⁠”

“⁠안 아픈 게 아니라 아픈 걸 모르시는 거예요⁠.⁠”

집주인은 단지를 내려놓고 새미를 보았다⁠. 돋보기가 이마에서 코끝으로 미끄러졌다⁠. 돋보기 너머로 집주인의 눈이 크게 보였다⁠.

“⁠너도 내일 계정 처음 나왔을 때 모나카 먹고 웃었잖아⁠. 할머니가 봤어⁠. 그날 너 얼굴이 넉 달 만에 제일 좋았어⁠.⁠”

새미는 대답할 말을 찾다가 놓쳤다⁠. 부엌 창으로 매미 소리가 쏟아져 들어왔다⁠. 집주인이 고무장갑을 벗어 식탁에 툭 내려놓았다⁠.

“⁠할머니가 주소 안 말하면⁠, 할머니 영상은 어떻게 되는데⁠?⁠”

“⁠내일 영상이 이기면 영상대로 가요⁠. 할머니가 버텨도요⁠.⁠”

“⁠그럼 버틸 필요가 없네⁠.⁠” 집주인은 휴대전화를 집어 들고 춤 영상을 처음으로 되감았다⁠. “⁠할머니는 버티기 싫어⁠. 평생 버텼어⁠.⁠”

*

점심때 삼층에서 비명이 들렸다⁠. 새미와 룸메이트가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공시생이 책상 앞 의자에서 일어나 두 팔을 머리 위로 뻗고 있었다⁠.

“⁠생겼어요⁠! 저도 생겼어요⁠!⁠”

모니터에 「⁠합격까지D-90의내일 · 7월 22일⁠」이 떠 있었다⁠. 화면 속 공시생은 도서관 열람실에서 모의고사를 풀고 있었다⁠. 빨간 펜으로 채점한 점수가 화면 가득 확대되었다⁠. 98⁠. 화면 속 공시생이 주먹을 쥐고 소리 없이 환호했고⁠, 이어서 화장실 거울 앞에서 바리캉으로 머리를 밀었다⁠.

“⁠빨간 펜 안 쓰신다면서요⁠.⁠” 룸메이트가 말했다⁠.

“⁠내일의 저는 쓰나 봅니다⁠.⁠” 공시생의 목소리가 떨렸다⁠. “⁠저 모의고사에서 90점 넘은 적이 한 번도 없어요⁠. 다섯 번 떨어졌어요⁠. 고향에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해 놨는데⁠.⁠”

“⁠머리는요⁠?⁠”

“⁠머리는⁠…⁠… 밀어야겠죠⁠. 영상에서 밀었으니까⁠.⁠”

오후 세 시⁠, 공시생은 도서관에서 모의고사를 풀고 돌아왔다⁠. 96점이었다⁠. 빨간 펜이 손에 쥐여 있었다⁠. 화장실 문이 닫히고 바리캉 소리가 났다⁠. 십 분 뒤 나온 공시생의 머리는 초록 대문 철창처럼 반짝였다⁠.

“⁠두 점은 왜 깎였어요⁠?⁠” 새미가 물었다⁠.

“⁠영상보다 머리를 늦게 밀어서인 것 같습니다⁠.⁠” 공시생은 진지했다⁠. “⁠내일은 아침에 밀겠습니다⁠.⁠”

“⁠더 밀 게 없잖아요⁠.⁠”

“⁠그러니까 걱정입니다⁠.⁠”

룸메이트가 웃다가 계단 난간을 붙잡았다⁠. 새미도 웃었다⁠. 웃음 끝에 공시생의 모니터를 다시 보았다⁠. 98이라는 숫자가 화면 빛 속에서 하얗게 떠 있었고⁠, 새미는 웃음이 어디서 끊겼는지 몰랐다⁠.

*

오후 다섯 시⁠, 새미는 세 번째 신고를 넣었다⁠. 대상은 「⁠망원고추의내일⁠」⁠, 사유는 「⁠개인정보 노출 위험⁠」 설명 칸에는 오늘 밤 여덟 시에 집 주소가 나간다고 썼다⁠. 답장이 십 초 만에 왔다⁠.

「⁠고객님의 소중한 신고가 접수되었습니다⁠. 신고하신 영상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담고 있어 현재 기준으로는 개인정보 노출로 보기 어렵습니다 😊😊😊 일어난 뒤에 다시 신고해 주세요 😊⁠」

“⁠셋 붙었어⁠.⁠” 새미가 화면을 내밀었다⁠.

룸메이트가 화면을 들여다보다 소리 없이 웃었다⁠. “⁠진짜 큰일이네⁠. 일어난 뒤에 신고하래⁠. 주소 나간 다음에⁠.⁠”

“⁠일어나기 전에 알려 주는 계정을 만들어 놓고⁠, 일어나기 전에는 못 막는대⁠.⁠”

“⁠플랫폼이 원래 그래⁠. 사고 나면 빨라⁠.⁠” 룸메이트는 웃음을 거두고 편집 화면을 띄웠다⁠. 「⁠새미의내일 · 7월 22일⁠」 조회수 그래프가 하늘로 꺾여 올라가 있었다⁠. 룸메이트의 손가락이 그래프 끝을 한 번 쓸었다⁠. 쓸고 나서 손을 무릎 사이에 끼웠다⁠.

“⁠언니⁠, 그 그래프 왜 그렇게 봐⁠?⁠”

“⁠편집자가 그래프 보는 거야⁠. 버릇⁠.⁠” 룸메이트는 노트북을 덮었다⁠. “⁠저녁에 옥상으로 와⁠. 할 말 있어⁠.⁠”

*

저녁 일곱 시 반⁠, 룸메이트가 옥상으로 새미를 불렀다⁠. 물탱크 그늘에 삼각대가 세워져 있었다⁠.

“⁠라이브 하자⁠.⁠”

“⁠언니⁠.⁠”

“⁠들어 봐⁠. 어차피 여덟 시에 라이브는 켜질 거야⁠. 영상에서 켰으니까⁠. 그럼 켜는 건 우리가 켜⁠. 내가 화면 잡고⁠, 너는 주소만 말하지 마⁠. 주소 대목에서 내가 음악 크게 틀게⁠.⁠” 룸메이트가 삼각대 다리를 하나씩 펴며 말했다⁠. “⁠어제 렌즈 내린 것처럼⁠, 이번에도 잘라 줄게⁠. 편집자가 라이브에서 할 수 있는 건 그거밖에 없어⁠.⁠”

새미는 삼각대 위 휴대전화를 보았다⁠. 꺼진 링라이트에 노을이 붉게 비쳤다⁠. 망원동 지붕들 위로 해가 낮게 내려앉아 있었다⁠.

“⁠알았어⁠. 대신 내가 이상하면 꺼⁠.⁠”

여덟 시 정각⁠, 새미의 손이 먼저 라이브 단추를 눌렀다⁠. 링라이트가 켜졌다⁠. 동시 시청자 숫자가 순식간에 만을 넘겼다⁠. 「⁠렌즈 꼈어⁠?⁠」「⁠안경 쓴 거 실화⁠?⁠」「⁠주소 언제 말해요⁠」 댓글이 빗줄기처럼 흘렀다⁠.

“⁠안녕하세요⁠, 새미의하루예요⁠. 오늘은 옥상에서⁠…⁠…⁠”

입이 다음 말을 밀어냈다⁠. 새미는 알았다⁠. 영상 속 새미가 하던 말의 첫 글자들이 혀 밑에 줄 서 있었다⁠. 다들 우리 집 궁금했죠⁠. 합정동⁠. 초록⁠.

“⁠합정동 초⁠…⁠…⁠”

새미는 이를 다물었다⁠. 혀끝에 쇠 맛이 퍼졌다⁠. 룸메이트가 블루투스 스피커 음량을 끝까지 올렸다⁠. 옥상에 트로트가 쾅 터졌다⁠. 댓글창이 「⁠?⁠?⁠?⁠」로 뒤덮였다⁠. 새미의 턱이 혼자 열리려고 했고⁠, 새미는 손바닥으로 턱을 받쳐 눌렀다⁠.

트로트 사이로 다른 목소리가 올라왔다⁠. 아래층⁠, 일층 부엌 창문이 열려 있었다⁠. 집주인의 목소리였다⁠. 집주인도 여덟 시에 라이브를 켰다⁠.

“⁠초록대문 고추장 사러 와요⁠! 합정동 골목 맨 안쪽⁠, 초록 대문 집⁠! 망원시장에서 걸어서 칠 분⁠! 할머니가 문 열어 놓을게⁠!⁠”

옥상 휴대전화의 마이크가 아래층 목소리를 다 받았다⁠. 새미의 라이브에도⁠, 집주인의 라이브에도 같은 주소가 흘렀다⁠. 댓글창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주소 할머니가 말해 줌ㅋㅋㅋ⁠」「⁠협업 미쳤다⁠」「⁠지금 출발합니다⁠」

새미의 턱에서 힘이 빠졌다⁠. 영상 속 말을 다른 입이 대신 해 버린 뒤였다⁠. 룸메이트가 라이브를 껐다⁠. 트로트만 옥상에 남아 혼자 꺾였다⁠.

*

밤 열한 시⁠, 초록 대문 앞에 사람이 셋 모였다⁠. 자정 무렵에는 아홉이 되었다⁠. 다들 링라이트를 켜 들고 있었다⁠. 흰 고리 아홉 개가 골목 담벼락에 나란히 떴다⁠.

집주인은 대문 안쪽에 접이식 탁자를 펴고 고추장을 팔았다⁠. 단지 열두 개가 한 시간 만에 다 나갔다⁠. 집주인은 계좌 이체 알림이 울릴 때마다 「⁠띵동⁠」 하고 따라 말했다⁠.

옆집 이층 창문이 열렸다⁠. 러닝셔츠 차림의 아저씨가 고개를 내밀었다⁠.

“⁠거 조용히 좀 합시다⁠! 여기 사람 사는 동네요⁠!⁠”

“⁠고추장 하나 드릴게⁠!⁠” 집주인이 외쳤다⁠.

“⁠…⁠…매운 거요⁠?⁠”

“⁠할머니 고추장은 다 매워⁠!⁠”

창문이 닫혔다가⁠, 잠시 뒤 아저씨가 슬리퍼를 끌고 내려왔다⁠. 단지가 다 나가서 집주인은 냉장고에 있던 자기 먹을 단지를 꺼내 주었다⁠.

새미는 이층 창가에서 대문 앞을 내려다보았다⁠. 휴대전화 뉴스 앱이 알림을 올렸다⁠. 「⁠‘⁠내일 계정⁠’ 국내 3만 개 넘어⁠… 해외에서도 ‘⁠내일 따라 살기⁠’ 유행⁠」 기사 사진 속에서는 낯선 나라의 낯선 사람이 자기 얼굴을 한 화면 앞에서 웃고 있었다⁠.

룸메이트가 새미 옆에 와서 창틀에 팔을 걸쳤다⁠. “⁠이겼어⁠, 졌어⁠?⁠”

새미는 「⁠새미의내일 · 7월 22일⁠」을 열었다⁠. 영상 밑에 수정 표시가 없었다⁠. 조회수는 410만이었다⁠. 「⁠새미의하루⁠」 오늘 라이브는 38만이었다⁠.

“⁠졌어⁠. 주소가 나갔으니까⁠, 영상대로 된 거야⁠.⁠”

*

00⁠:00⁠. 「⁠새미의내일 · 7월 23일⁠」

화면 속 새미는 렌즈를 끼고 있었다⁠. 한쪽 귀에 진주 귀걸이가 흔들렸다⁠. 입술 선이 오늘 거울에서 본 것보다 조금 도톰했고⁠, 눈은 조금 더 컸다⁠. 화면 속 새미가 새벽 두 시 홍대 골목을 걸었다⁠. 뒤에 사람들이 따라왔다⁠. 링라이트를 든 사람들이었다⁠.

편의점 문이 열렸다⁠. 계산대 뒤에 남자 하나가 서 있었다⁠. 화면에 남자의 휴대전화 화면이 겹쳐 떴다⁠. 「⁠팩트만씀 · 새미 얼굴 필터 빼면 진짜 볼 거 없음⁠」「⁠팩트만씀 · 내일 새미가 본체임 오늘 거는 불량품⁠」 화면 속 새미가 댓글을 소리 내어 읽고⁠, 웃고⁠, 계산대 너머 남자의 휴대전화를 손으로 쳐서 떨어뜨렸다⁠. 뒤따라온 사람들이 환호했다⁠. 편의점 유리문에 빨갛고 파란 불빛이 번갈아 비쳤다⁠.

영상이 끝나자 서랍 안쪽에서 무엇이 달각거렸다⁠. 새미는 책상 서랍을 열었다⁠. 귀걸이 상자 뚜껑이 반쯤 열려 있었다⁠. 진주 하나가 화면 빛을 받아 둥글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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