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324자)

짖는 개는 앉지 않는다

공항 탐지견 콩떡이 · 채이안

2027년 7월 20일 화요일 오후 두 시 이십 분⁠, 승무원 출구 옆 검사대에서 맹소리는 우기현의 검은 캐리어를 엑스레이 벨트에 올렸다⁠. 승무원 짐은 승객 짐과 다른 문으로 나간다⁠. 비행을 마친 조종사와 객실 승무원이 줄지어 가방을 끌고 지나가는 좁은 통로였고⁠, 검사대 직원 둘이 소리를 힐끔거렸다⁠. 개가 짖어서 조종사를 세웠다는 말은 이미 통로 끝까지 퍼져 있었다⁠.

“⁠검사 사유는 탐지견 반응입니다⁠. 열어 봐도 될까요⁠?⁠”

“⁠야⁠, 존댓말 하지 마⁠. 이상하잖아⁠.⁠” 기현이 웃으며 지퍼를 열었다⁠. “⁠열어⁠. 다 봐⁠. 부끄러운 건 양말밖에 없어⁠.⁠”

캐리어 안에는 다림질한 셔츠 두 장⁠, 면도기⁠, 전자책 단말기⁠, 그리고 쿠키가 있었다⁠. 은색 봉지 열 개가 가방 바닥을 반쯤 덮었다⁠. 봉지마다 망고 그림과 「⁠BUTTER COOKIES⁠」라는 글자가 찍혀 있었다⁠. 할머니의 은색 캐리어 손잡이에 꽂혀 있던 봉지와 같은 상표였다⁠.

“⁠방콕 공항 앞 가게에서 사⁠. 팀 막내들 나눠 주라고⁠. 이거 하나에 우리 돈 이천 원이야⁠. 한국 들어오면 팔천 원 받는다⁠.⁠” 기현이 봉지 하나를 들어 흔들었다⁠. “⁠콩떡이가 이 냄새를 좋아하나 보다⁠.⁠”

엑스레이 화면에는 셔츠와 면도기와 쿠키의 둥근 그림자만 떴다⁠. 이중 바닥도⁠, 이상한 덩어리도 없었다⁠. 검사대 직원이 화면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고개를 저었다⁠. 소리는 가방 바닥 안감을 손으로 눌러 보고 바퀴 쪽 이음새까지 살폈다⁠. 아무것도 없었다⁠.

“⁠바닥까지 봤어⁠?⁠” 기현이 물었다⁠. 웃는 얼굴이었는데 목소리가 아주 조금 높았다⁠.

“⁠봤어요⁠. 아니⁠, 봤어⁠.⁠”

“⁠봐⁠, 반말 되잖아⁠.⁠”

*

검사대 앞에서 나는 버터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열 봉지였다⁠. 한 봉지가 일곱 번째 가방 하나만 한데⁠, 그게 열 개였다⁠. 코가 버터로 막혀 숨을 입으로 쉬었다⁠.

항공유 냄새 사람이 쭈그려 앉아 내 앞에 손을 내밀었다⁠. 손에서 비싼 향수가 났고⁠, 손등에 바른 크림이 났고⁠, 쿠키를 쥐었던 손가락 끝에서 버터가 났다⁠. 손가락 끝을 한 번 더 맡았다⁠. 버터 밑에⁠, 손톱 밑에⁠, 아까 맡은 시큼한 것이 있었다⁠. 아까보다 더 옅었다⁠. 비누로 여러 번 씻은 손이었다⁠.

항공유 냄새가 내 머리를 쓰다듬는 동안 몸에서 땀이 확 올라왔다⁠. 귤 냄새 손이 무서울 때 나는 땀과 같은 짠 땀이었다⁠. 웃는 사람에게서 나는 땀이 아니었다⁠.

엉덩이가 내려갔다⁠. 이번에는 짖지 않고 앉았다⁠. 항공유 냄새 사람 발 앞이었다⁠.

항공유 냄새 손이 쿠키 한 조각을 내 코앞에 내밀었다⁠. 귤 냄새 손이 항공유 냄새 손목을 잡았다⁠. 귤 냄새에서 한숨이 났다⁠. 귤 냄새는 내가 쿠키 때문에 앉았다고 생각했다⁠. 나도 반은 그렇게 생각했다⁠.

*

계원철은 검사대 뒤 통로 끝에서 나타났다⁠. 뒤로 항공사 지상직 사무장이 서류철을 들고 종종걸음으로 따라왔다⁠. 사무장의 얼굴이 원철보다 더 빨갰다⁠.

“⁠누리온항공입니다⁠. 저희 부기장님이 다음 비행 대기 중이신데⁠, 개가 짖었다는 이유로 가방을 열고 계신다고 해서요⁠. 승무원 검사는 근거가 있어야 하는 걸로 압니다⁠.⁠”

“⁠근거는 있습니다⁠. 탐지견 반응입니다⁠.⁠” 소리가 말했다⁠.

“⁠짖은 거요⁠? 탐지견은 앉는 거 아니에요⁠?⁠” 사무장이 원철을 봤다⁠. “⁠저도 그 정도는 압니다⁠.⁠”

원철은 박하사탕 하나를 입에 넣고 깨물었다⁠. 엑스레이 화면을 한 번 보고⁠, 캐리어 속 쿠키를 한 번 보고⁠, 기현 발 앞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은 콩떡이를 한 번 봤다⁠. 콩떡이는 혀를 내밀고 쿠키 봉지를 보고 있었다⁠.

“⁠우 부기장님⁠, 협조 감사합니다⁠. 가방 닫으셔도 됩니다⁠.⁠” 원철은 기현에게 고개를 숙인 뒤 소리를 통로 구석 소화기 옆으로 데려갔다⁠. 목소리를 낮췄지만 한 글자도 흐리지 않았다⁠.

“⁠맹 주무관⁠. 탐지견은 짖지 않아⁠. 앉아⁠. 짖으면 반응이 아니라 소음이야⁠. 소음 듣고 조종사 가방 열면 내일 아침 본청에 내 이름으로 해명서가 가⁠. 항공사가 민원 넣으면 그다음엔 개 이름 말고 맹 주무관 이름이 올라가⁠.⁠”

“⁠지금은 앉았잖아요⁠.⁠”

“⁠쿠키 앞에서⁠.⁠”

소리가 대답을 찾는 동안 원철은 휴대전화를 꺼내 화면을 내밀었다⁠. 본청 조사국에서 온 문자였다⁠. 「⁠인천공항세관 탐지견 운용 관련⁠, 성수기 장비 시범 운영과 병행해 비교 결과 보고 바람⁠」⁠.

“⁠금요일 두 시⁠. 4번 벨트⁠. 같은 가방⁠, 같은 표본⁠, 개 한 마리랑 장비 한 대⁠. 본청에서 사람 내려와⁠.⁠” 원철이 사탕 조각을 마저 깨물었다⁠. “⁠지면 그날로 은퇴야⁠.⁠”

“⁠22일까지라고 하셨잖아요⁠.⁠”

“⁠본청이 정한 거야⁠. 나도 받은 거고⁠.⁠” 원철이 돌아서다 멈췄다⁠. “⁠그리고 저놈 발바닥⁠. 오른쪽 앞발에 껌 붙었어⁠. 떼 줘⁠.⁠”

소리는 콩떡이 앞발을 들어 봤다⁠. 정말 분홍 껌이 털에 엉겨 있었다⁠. 원철은 벌써 통로 끝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

밤 아홉 시⁠, 공항 직원 식당 구석 자리에서 기현은 자판기 커피 두 잔을 소리 앞에 밀었다⁠. 제복 윗옷은 벗어 의자에 걸었고⁠, 흰 셔츠 소매를 두 번 접었다⁠. 다음 비행은 모레 아침이라고 했다⁠.

“⁠미안⁠. 나 때문에 혼났지⁠.⁠”

“⁠선배 때문이 아니라 콩떡이 때문에요⁠. 아니⁠, 콩떡이 때문도 아니고⁠.⁠” 소리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설탕이 바닥에 가라앉아 있었다⁠. “⁠제가 짖는 걸 믿어서요⁠.⁠”

“⁠땅콩도 짖었잖아⁠. 사람 오면⁠.⁠”

소리는 웃음이 터졌다⁠. 땅콩은 고2 겨울 학교 뒤 체육 창고에 숨겨 키운 떠돌이 개였다⁠. 다리 하나를 절던 누런 잡종이었고⁠, 소리가 매점 소시지를 몰래 날랐다⁠. 사료 값이 모자라 쩔쩔맬 때 고3이던 기현이 편의점 야간 일을 하며 반을 냈다⁠. 체육 선생님에게 들킨 날 기현은 창고 열쇠를 자기가 훔쳤다고 우겼고⁠, 벌점은 기현이 받았다⁠. 땅콩은 봄에 마당 넓은 집으로 갔다⁠. 소리는 고2 겨울에 개 일을 하겠다고 정했다⁠.

“⁠너 아직도 개한테 존댓말 해⁠? 아까 들었어⁠. 주무관님⁠.⁠”

“⁠콩떡이는 저보다 먼저 들어왔어요⁠. 센터에서 태어나서 바로 훈련받았거든요⁠. 사료도 나라에서 나오고⁠, 건강검진도 저보다 자주 받아요⁠. 선배님이에요⁠.⁠”

“⁠그럼 나는 뭐야⁠. 선배의 선배야⁠?⁠”

“⁠선배는 짖음을 당한 사람이요⁠.⁠”

기현이 커피를 뿜을 뻔하다가 손등으로 입을 막았다⁠. 옆 테이블에서 야간 조 미화 직원 둘이 돌아봤다⁠.

“⁠선배는 조종사 됐네요⁠. 진짜로⁠.⁠”

“⁠진짜로⁠. 빚도 진짜로⁠.⁠” 기현이 웃었다⁠. “⁠비행 학교 다니는 데 일억 넘게 들었어⁠. 엄마 분식집 담보로 대출받고⁠. 그래도 앞에 앉으면 좋아⁠. 활주로 끝에서 바퀴 뜰 때⁠.⁠”

식당 벽 텔레비전에서 밤 뉴스가 돌았다⁠. 「⁠태국발 필로폰 국내 유입 급증⁠… 공항 단속 인력은 제자리⁠」⁠. 자막 밑으로 마약 묻은 과자 상자를 쌓아 놓은 압수품 사진이 지나갔다⁠. 기현이 텔레비전을 한 번 보고 커피를 저었다⁠. 저을 설탕도 없는 커피였다⁠.

테이블 위 기현의 휴대전화가 진동했다⁠. 화면에 「⁠방 사장님⁠」이 떴다⁠. 기현은 전화기를 뒤집어 놓았다⁠.

“⁠안 받아요⁠?⁠”

“⁠쿠키 거래처⁠. 내가 한국 올 때마다 샘플 들고 오는 데가 있어⁠. 부업이지⁠, 뭐⁠. 부기장 월급으로 대출 이자 내면 남는 게 없거든⁠.⁠” 기현이 커피를 다 마시고 종이컵을 구겼다⁠. “⁠근데 콩떡이 진짜 은퇴해⁠?⁠”

“⁠금요일에 기계한테 지면요⁠.⁠”

“⁠그럼 이기면 되지⁠.⁠” 기현이 일어나며 소리 머리를 한 번 헝클었다⁠. 고등학교 때와 똑같은 손이었다⁠. “⁠콩떡이한테 내 쿠키 하나만 주면 이길걸⁠.⁠”

“⁠선배⁠, 그러면 진짜 은퇴예요⁠.⁠”

*

밤 열한 시⁠, 견사에 귤 냄새가 다시 왔다⁠. 퇴근했다가 다시 온 냄새였다⁠. 버스 의자의 먼지와 편의점 삼각김밥과 다 식은 커피가 묻어 있었다⁠.

귤 냄새 손이 더미를 꺼냈다⁠. 더미에는 시큼한 냄새가 아주 조금 묻어 있었다⁠. 손이 더미를 견사 구석 담요 밑에 넣었다⁠. 나는 찾았다⁠. 앉았다⁠. 더미가 날아왔다⁠. 물었다⁠. 당겼다⁠. 귤 냄새가 웃었다⁠. 웃는 귤 냄새는 땀이 안 난다⁠.

다시 넣었다⁠. 이번에는 담요 옆에 귤 냄새 손이 쿠키 하나를 같이 놓았다⁠. 버터⁠. 엉덩이가 버터 쪽으로 반 바퀴 돌았다⁠. 손이 내 목덜미를 잡았다⁠. 아주 천천히⁠, 버터를 지나서⁠, 시큼한 담요 밑으로 코를 데려갔다⁠.

나는 앉았다⁠. 더미가 날아왔다⁠. 쿠키는 귤 냄새 주머니로 들어갔다⁠. 섭섭했다⁠. 아주 섭섭했다⁠.

*

맹소리는 견사 바닥에 앉은 채 휴대전화를 켰다⁠. 단톡방에 원철의 글이 올라와 있었다⁠.

「⁠계원철⁠: 7월 23일(⁠금⁠) 14시 4번 수하물 벨트 — 탐지견·신형 장비 비교 시험⁠. 본청 참관⁠. 결과에 따라 해당 탐지견 즉시 은퇴 조치⁠.⁠」

밑에 글이 하나 더 붙었다⁠. 「⁠문오석⁠: 금요일 번개 데리고 구경 감 ㅋ 쿠키 챙겨 갈게⁠」⁠.

소리는 답을 쓰지 않았다⁠. 콩떡이가 더미를 물고 와서 소리 무릎에 내려놓았다⁠. 한 번 더 하자는 얼굴이었다⁠. 소리는 더미를 담요 밑에 다시 넣고⁠, 이번에는 쿠키를 두 개 놓았다⁠.

*

2027년 7월 21일 수요일 아침 여덟 시⁠, 맹소리는 여행자통관과 사무실 문을 두드리지 않고 열었다⁠. 계원철 책상 위에는 결재 서류가 두 줄로 쌓여 있었고⁠, 모니터에는 엑셀 표가 떠 있었다⁠. 표 맨 위에 「⁠탐지견 1두 연간 운용비⁠」와 「⁠신형 장비 1대 연간 운용비⁠」가 나란히 적혀 있었다⁠. 책상 옆 의자에는 새온테크 부사장 표상민이 다리를 꼬고 앉아 종이컵 녹차를 마시고 있었다⁠.

“⁠노크는 우리 견사에서도 해⁠.⁠” 원철이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과장님⁠, 비교 시험을 벨트 하나에서 한 시간 하면 개가 지는 게 당연하잖아요⁠. 장비는 한 시간 내내 돌고⁠, 개는 삼십 분 일하면 쉬어야 해요⁠. 규칙이 처음부터 기계 편이에요⁠.⁠”

“⁠그래서 기계를 들이자는 거야⁠.⁠” 원철이 의자를 돌렸다⁠. “⁠맹 주무관 말이 맞아⁠. 개는 쉬어야 해⁠. 하루에 우범 노선 비행기가 몇 편 내리는지 알아⁠? 개가 쉬는 동안 들어오는 가방은 누가 봐⁠? 지금은 아무도 안 봐⁠. 사람이 몸으로 막고 있어⁠. 성수기에 개 한 마리가 하루 여덟 시간 벨트 앞에 서 있다가 발바닥 까진 거 본 적 있어⁠?⁠”

소리는 대답하지 못했다⁠. 본 적이 있었다⁠. 작년 여름 번개가 앞발 패드가 갈라져 열흘을 쉬었다⁠.

상민이 종이컵을 내려놓았다⁠. “⁠맹 주무관님⁠, 저희도 개를 없애자는 게 아닙니다⁠. 장비가 먼저 보고⁠, 개는 장비가 표시한 가방만 확인하면 됩니다⁠. 개도 편하고 사람도 편하죠⁠. 다만 그러려면 개가 제 몫을 해야 하는데⁠,⁠” 상민이 웃었다⁠. “⁠쿠키는 저희 장비가 못 잡아 드립니다⁠.⁠”

“⁠부사장님⁠, 저희 국장님이셨을 때도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소리가 물었다⁠.

상민의 웃음이 한 박자 늦게 돌아왔다⁠. 원철이 박하사탕을 깨물었다⁠. 사무실이 조용해서 사탕 부서지는 딱 소리가 크게 울렸다⁠.

“⁠금요일 두 시⁠. 본청에서 조사국 과장 내려와⁠.⁠” 원철이 다시 모니터로 돌아앉았다⁠. “⁠맹 주무관이 개를 아끼면⁠, 개한테 이길 수 있는 날을 골라 줘⁠. 그게 금요일이 아니면 지금 말해⁠. 은퇴 서류는 오늘 써 줄게⁠.⁠”

“⁠금요일이요⁠.⁠”

소리는 사무실을 나오다 문가에서 원철 책상 위 액자를 봤다⁠. 엎어 놓은 액자였다⁠. 뒷면에 누렇게 바랜 스티커 하나가 붙어 있었다⁠. 「⁠2016 탐지견팀⁠」⁠.

2화는 어땠나요?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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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귤까는중2026.11.06· 2화

    캐리어 열었더니 버터 쿠키 열 봉지라니 웃다가 울 뻔했어요. 콩떡이 입장에선 진짜 큰 발견이었을 텐데요. 지면 바로 은퇴라는 말에 소리 표정이 떠올라서 마음이 쓰였습니다.

    • 채이안작가2026.11.06

      콩떡이에게 버터 쿠키는 세상에서 제일 강한 냄새거든요. 비교 시험 날까지 소리와 콩떡이가 어떻게 버티는지 지켜봐 주세요.

짖는 개는 앉지 않는다 · 공항 탐지견 콩떡이 · 나오늘 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