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614자)

밤새 날았다

동물원 원숭이가 진짜 근두운을 얻었다 · 길담이

토요일 새벽⁠, 해오름 동물원 주차장에는 방송국 차가 다섯 대로 늘어 있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차 지붕마다 접시 안테나가 하늘을 향해 입을 벌렸다⁠. 청계산 등산로 들머리에도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다들 같은 데를 올려다보았다⁠. 과천 하늘을 덮은 구름 층 한가운데가 아래로 불룩하게 처져 있었고⁠, 처진 자리가 어둑했다⁠. 어젯밤 아홉 시 뉴스는 과천 상공의 미확인 그림자라는 말로 끝났다⁠.

주차장 맨 끝에는 낡은 승용차 한 대가 있었다⁠. 운전석 등받이를 끝까지 젖히고 두식이 자고 있었다⁠. 뒷자리에는 종이 상자가 실려 있었다⁠. 출입증은 원장이 가져갔지만 두식은 집에 가지 않았다⁠.

원숭이 산 장대 밑에서 꼬장은 밤새 한숨도 못 잤다⁠. 캄차카의 눈밭과 김 오르는 개울과⁠, 물고기 그림자 하나 없던 물을 생각했다⁠. 생각할 때마다 발바닥이 저렸다⁠.

근두운이 그물 틈으로 내려왔다⁠. 석봉은 구름에서 내리며 말했다⁠.

“⁠열한 길⁠. 넝쿨 끝이 전부 구름 바다에 잠겼다⁠. 아이들은 어젯밤에 넝쿨에서 다 끌어 올렸다⁠. 산 밑의 바위 하나가 빠져서 구름 바다로 떨어졌다⁠.⁠” 석봉이 꼬장을 보았다⁠. “⁠곰한테 가고 싶은 얼굴이구나⁠.⁠”

“⁠보기만 할게요⁠. 살아 있는지만⁠.⁠”

“⁠시합이다⁠.⁠”

둘은 구름에 올랐다⁠. 구름이 떠오르고 기울고 돌았다⁠. 꼬장은 눈을 감았다⁠. 발바닥으로 들었다⁠. 구름이 기울기 전에 발바닥이 먼저 간지러웠고⁠, 꼬장의 무게는 간지러운 자리로 미리 가 있었다⁠. 대걸레 자루는 가로로 들고만 있을 뿐 한 번도 구름에 닿지 않았다⁠. 구름이 다섯 번 돌았을 때 석봉이 먼저 한 발을 짚었다⁠. 짚고 나서야 석봉은 제가 짚은 것을 알았다⁠.

“⁠곰한테 배웠구나⁠.⁠” 석봉이 발을 내려다보았다⁠. “⁠좋다⁠. 가라⁠. 나도 탄다⁠. 해 지기 전에 돌아온다고 약속해라⁠.⁠”

“⁠약속해요⁠.⁠”

*

구름이 원숭이 산 그물 틈을 빠져나가 주차장 위를 지날 때⁠, 낡은 승용차 문이 벌컥 열렸다⁠. 두식이 차에서 뛰어나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머리가 한쪽으로 눌려 있었다⁠.

“⁠꼬장아⁠! 어디 가⁠! 꼬장아⁠!⁠”

꼬장은 대걸레 자루를 들어 흔들었다⁠. 두식이 손을 흔들었다⁠. 흔들다가 멈추고 다시 흔들었다⁠. 방송국 카메라 다섯 대가 한꺼번에 하늘로 돌아갔다⁠.

*

토요일 낮의 해오름 동물원은 사람으로 미어졌다⁠. 매표소 앞 줄이 큰길을 따라 버스 정류장 둘을 지나갔다⁠. 원장은 매표소 유리창에 「⁠구름 원숭이 특별 관람⁠」 종이를 한 장 더 덧붙여 값을 또 올렸다⁠. 그러고 나서 주차장 맨 끝의 낡은 승용차를 발견했다⁠.

“⁠견인차 불러요⁠. 직원 아닌 사람 차가 동물원 주차장에 왜 있습니까⁠?⁠”

견인차 기사는 한 시간 만에 왔고⁠, 오자마자 하늘의 구름 층 처진 자리를 올려다보느라 한 시간을 더 보냈다⁠. 기사가 고리를 걸려고 허리를 숙이자 펭귄 사에서 늙은 펭귄 둘이 일제히 꽥꽥댔다⁠. 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기사가 놀라 고리를 떨어뜨렸고⁠, 떨어진 고리가 기사의 발등을 찍었다⁠. 기사는 절룩거리며 견인차를 몰고 그냥 가 버렸다⁠. 원장은 펭귄 사를 노려보았다⁠. 펭귄 둘은 원장을 마주 노려보았다⁠.

원숭이 산에서는 우두머리가 무리를 실내 우리에 몰아넣고 있었다⁠. 하늘이 처질수록 사람들이 하늘을 보았고⁠, 사람들이 하늘을 볼수록 우두머리는 무리를 안으로 들였다⁠. 무리가 다 들어가자 우두머리는 혼자 실내 우리 문간에 앉아 앞마당의 상자 더미를 세었다⁠. 오늘도 서른이었다⁠.

*

캄차카 골짜기의 눈 위에는 곰 발자국이 둘이었다⁠. 하나는 크고 넓적했고⁠, 하나는 더 크고 발톱 자국이 깊었다⁠. 두 발자국이 개울가에서 엉켜 눈이 파헤쳐져 있었다⁠. 눈 위에 붉은 얼룩이 드문드문 찍혀 있었다⁠.

늙은 불곰은 김 오르는 개울가 바위 밑에 엎드려 있었다⁠. 왼쪽 어깨 털이 뭉텅 빠져 있었고 귀 한쪽이 찢어졌다⁠. 숨을 쉴 때마다 콧김이 눈 위에 작은 구멍을 냈다⁠. 등성이 위에서 젊은 수곰 한 마리가 이편을 내려다보다가 구름이 내려오자 숲으로 물러갔다⁠.

꼬장이 구름에서 뛰어내렸다⁠. 곰이 눈을 떴다⁠.

“⁠왔네⁠.⁠”

“⁠다쳤잖아요⁠.⁠”

“⁠하루⁠… 살았다⁠.⁠” 곰이 느릿느릿 말했다⁠. “⁠눈 냄새⁠… 실컷 맡았다⁠. 저 녀석이⁠… 여기가 자기 개울이라더라⁠. 맞는 말이다⁠. 나는⁠… 개울도 없이 왔다⁠.⁠”

꼬장은 개울을 따라 뛰어다니며 먹을 것을 찾았다⁠. 눈을 헤치면 마른 풀뿌리가 나왔고⁠, 바위 밑을 뒤지면 언 개구리 알이 나왔다⁠. 곰은 꼬장이 내미는 것을 냄새만 맡고 고개를 돌렸다⁠. 석봉이 구름에서 내려와 볼주머니를 손으로 눌렀다⁠. 일본원숭이든 화과산 원숭이든 원숭이에게는 볼 안쪽에 먹을 것을 넣어 두는 주머니가 있었다⁠. 석봉의 볼에서 납작하게 눌린 복숭아 하나가 나왔다⁠. 석봉은 복숭아를 곰의 코앞에 내려놓았다⁠.

“⁠화과산 복숭아다⁠. 사흘 웃는다는 그것이다⁠. 사흘은 아니어도 한나절은 버틴다⁠.⁠”

곰이 복숭아를 핥았다⁠. 한 입 베어 물자 곰의 입꼬리가 아주 조금 올라갔다⁠. 꼬장이 석봉을 보았다⁠. 석봉은 볼주머니가 비어 홀쭉해진 얼굴로 헛기침을 했다⁠.

“⁠볼에 넣고 다니던 건 오래돼서 그렇다⁠. 아깝지 않다⁠.⁠”

꼬장은 석봉을 다시 보았다⁠. 석봉은 구름 위로 돌아가 해를 보고 있었다⁠. 해는 벌써 서쪽으로 많이 기울어 있었다⁠. 발자국을 쫓아 골짜기를 셋 넘는 동안 반나절이 갔다⁠.

“⁠태워요⁠. 같이 가요⁠.⁠”

“⁠해가 진다⁠.⁠” 석봉이 말했다⁠.

“⁠알아요⁠.⁠”

곰은 일어서지 못했다⁠. 꼬장과 석봉이 양쪽에서 어깨로 곰을 밀어 구름에 올렸다⁠. 손은 쓰지 않았다⁠. 곰은 구름 위에 배를 깔고 엎드렸다⁠. 쥐지 않고 엎드리기만 하니 구름이 흩어지지 않았다⁠. 대신 곰의 무게만큼 구름이 한 자쯤 가라앉았다⁠. 구름이 떠올랐다⁠. 어제보다 느렸다⁠.

*

동해 한가운데서 해가 바다 밑으로 떨어졌다⁠.

구름이 멈췄다⁠. 웅 하고 울더니 앞이 아니라 위로 몸을 틀었다⁠. 해가 지면 근두운은 산으로 올라간다⁠. 위로⁠, 위로⁠. 곰이 엎드린 구름이 비스듬히 기울었고⁠, 기운 구름 위에서 곰의 몸이 가장자리로 미끄러졌다⁠. 이대로 오르면 곰을 실은 채로는 산까지 못 간다⁠. 곰을 실은 구름은 느렸고⁠, 산은 바다 건너 멀리 있었다⁠. 구름은 짐을 내려놓을 데를 찾아 아래를 두리번거리는 것처럼 바다 위에서 머뭇거렸다⁠. 아래는 밤바다뿐이었다⁠.

“⁠구름을 보내라⁠.⁠” 석봉이 말했다⁠. “⁠곰은 바다에 내려놓고⁠.⁠”

“⁠바다에요⁠?⁠”

“⁠밤을 비우면 산이 떨어진다⁠. 넝쿨이 아니라 산이⁠. 삼천이⁠.⁠”

꼬장은 구름에 대고 말했다⁠.

“⁠가지 마⁠.⁠”

구름이 떨었다⁠.

“⁠가지 마⁠. 곰 데려다주고 가⁠. 집까지 가⁠. 밤새 가⁠.⁠”

구름이 오르기를 멈췄다⁠. 다시 앞으로 날기 시작했다⁠. 느리게⁠, 곰의 무게를 진 채로⁠, 서쪽으로⁠.

석봉이 일어섰다⁠. 석봉은 손을 등 뒤로 감추고 어깨로 곰을 밀었다⁠. 곰의 몸이 구름 가장자리로 한 뼘 밀려났다⁠. 꼬장이 석봉과 곰 사이로 뛰어들어 머리로 석봉의 가슴을 받았다⁠. 석봉이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가 다시 어깨를 들이밀었다⁠. 둘은 손을 쓰지 않으려고 뒷짐을 진 채 몸통으로 부딪혔다⁠. 바다 한가운데 어둠 속에서 원숭이 두 마리가 다친 곰을 사이에 두고 배치기를 했다⁠. 펭귄들이 응원하던 날의 배치기와는 달랐다⁠. 아무도 웃지 않았다⁠.

“⁠비켜라⁠!⁠”

“⁠싫어요⁠!⁠”

“⁠삼천이다⁠! 곰 하나에 삼천이다⁠!⁠”

“⁠아저씨네 막내 손자는 넝쿨에서 올렸다면서요⁠! 곰은 누가 올려요⁠!⁠”

석봉의 어깨가 곰의 등에 닿았다⁠. 한 번만 더 밀면 곰은 밤바다로 떨어졌다⁠. 곰이 눈을 떴다⁠. 곰은 석봉을 보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몸을 피하지도 않았다⁠. 석봉은 곰의 눈을 오래 보았다⁠.

석봉이 어깨를 거두었다⁠. 구름 반대편 가장자리로 가서 등을 돌리고 앉았다⁠. 밤새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다⁠.

밤바다 위는 캄캄했다⁠. 별이 머리 위에 빽빽했고 발밑에서는 파도 소리만 올라왔다⁠. 꼬장은 서 있었다⁠. 한 시간이 지나자 발바닥이 저렸고⁠, 두 시간이 지나자 발바닥이 있는지 없는지 몰랐다⁠. 발바닥을 모르니 발바닥으로 들을 수가 없었다⁠. 꼬장은 곰의 숨소리로 들었다⁠. 곰이 숨을 들이쉬면 구름이 한 치쯤 오르고 내쉬면 한 치쯤 내려앉았다⁠. 꼬장은 곰의 숨에 맞춰 무릎을 굽혔다 폈다⁠. 곰의 숨이 고르면 꼬장도 고르게 섰다⁠.

“⁠아저씨⁠.⁠” 자정쯤 꼬장이 어둠에 대고 말했다⁠. “⁠산에 지금 누가 있어요⁠?⁠”

석봉은 대답하지 않았다⁠. 등만 보였다⁠. 둥근 등이 별빛을 받아 희끄무레했다⁠.

*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눈을 과천 위 구름 층 너머로 옮기면⁠, 같은 밤 화과산이 보였다⁠.

자정에 산이 기울었다⁠. 복숭아 숲의 나무들이 일제히 한쪽으로 눕고⁠, 원숭이 삼천이 나무에서 뛰어내려 바위에 매달렸다⁠. 늙은 원숭이들이 어린것들을 겨드랑이에 끼고 산 위쪽으로 기어올랐다⁠. 석봉의 막내 손자는 기울어진 복숭아나무 꼭대기에 매달려 할아버지를 불렀다⁠. 대답이 없자 막내 손자는 나무에서 내려와 다른 어린것들 틈에 끼어 늙은 원숭이 겨드랑이로 파고들었다⁠. 오백 년 동안 대장이 밤에 산을 비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산이 구름 층을 뚫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구름 층이 산 둘레에서 찢어지며 솜처럼 흩어졌다⁠.

새벽 세 시⁠, 화과산 밑바닥이 청계산 꼭대기 바위에 닿았다⁠. 쿵 소리가 과천 시내 아파트 창문을 흔들었다⁠. 산 밑의 바위 뿌리가 청계산 꼭대기를 긁고 지나가며 멈췄다⁠. 물 커튼 동굴 앞 폭포의 벼랑에 금이 갔다⁠. 금이 간 틈으로 폭포 물이 옆으로 터져 나왔다⁠. 터진 물이 청계산 등성이로 쏟아졌다⁠.

*

동이 틀 무렵 구름은 과천 하늘로 돌아왔다⁠. 꼬장은 밤새 서 있었다⁠. 무릎이 제 무릎이 아니었고 발바닥이 제 발바닥이 아니었지만 꼬장은 서 있었다⁠. 곰은 엎드린 채 잠들어 있었다⁠. 석봉은 등을 돌리고 앉아 있었다⁠.

과천 하늘에 산이 떠 있었다⁠.

청계산 꼭대기 바로 위⁠, 손을 뻗으면 닿을 만한 높이였다⁠. 산은 한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기운 쪽 벼랑에서 폭포 물이 하얗게 쏟아져 청계산 숲으로 떨어졌다⁠. 산 밑에 거꾸로 매달린 바위 뿌리들 사이로 칡넝쿨이 끊어진 채 늘어졌다⁠. 벼랑 끝마다 원숭이들이 매달려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나⁠, 둘이 아니었다⁠. 산 가장자리를 원숭이 얼굴이 테처럼 빙 둘렀다⁠.

복숭아가 떨어졌다⁠.

기운 복숭아 숲에서 익은 복숭아가 우수수 쏟아져 내렸다⁠. 복숭아는 청계산 숲을 지나 담을 넘어 해오름 동물원에 떨어졌다⁠. 펭귄 사 지붕에 떨어졌고⁠, 낙타 없는 낙타 우리 모래에 떨어졌고⁠, 주차장의 방송국 차 접시 안테나에 떨어졌다⁠. 낡은 승용차 앞유리에도 하나가 퍽 떨어졌다⁠. 운전석에서 두식이 벌떡 일어났다⁠. 앞유리에 복숭아즙이 흘러내렸다⁠. 두식은 즙 너머로 하늘을 보았다⁠. 하늘에 산이 있었다⁠. 산 아래에 구름이 있었고⁠, 구름 위에 원숭이 한 마리가 서 있었다⁠.

구름이 곰 사에 내려앉았다⁠. 두식은 승용차에서 뛰어나와 동물원 담을 따라 뒷문으로 달렸다⁠. 바지 주머니에서 열쇠 꾸러미를 꺼냈다⁠. 원장에게 내준 것 말고 하나 더 있던 열쇠였다⁠. 뒷문이 열렸다⁠. 두식은 곰 사 철문까지 달려가 문을 열고⁠, 엎드려 잠든 곰 옆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곰의 찢어진 귀를 보고⁠, 빠진 어깨 털을 보았다⁠. 두식은 곰의 콧김을 손바닥으로 받았다⁠. 콧김이 따뜻했다⁠.

석봉은 구름에서 일어섰다⁠. 꼬장을 보지 않았다⁠. 석봉은 곰 사 바위를 차고 뛰어올라 청계산 위에 매달린 화과산의 바위 뿌리를 향해 솟구쳤다⁠. 끊어진 칡넝쿨 끝을 붙잡고 기어올랐다⁠. 위에서 원숭이 삼천의 얼굴이 대장을 내려다보았다⁠.

꼬장은 구름 위에 서서 올려다보았다⁠. 삼천의 얼굴들이 석봉에게서 눈을 돌려 꼬장을 내려다보았다⁠. 아침 해가 산의 기운 벼랑을 비췄다⁠. 복숭아 하나가 꼬장의 발밑 구름에 떨어져 굴렀다⁠. 구름은 복숭아를 흩어 놓지 않고 받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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